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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것, 사라지면서 존재하다
  • 환경과조경 2009년 3월
A temporary thing, exist while disappearing

크리스토 & 장 끌로드는 정말 독특한 작가들이다. 포장 예술가라고 해야 할까? 프랑스의 퐁네프 다리나 독일의 의회건물 라이히스탁과 같은 건축물부터 강의 물줄기나 해안가의 절벽과 같은 자연지형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불가능해보이는 대형 스케일로 사물을 덮어 씌운다. 때론 섬을 빙 둘러 싸기도 하고, 계곡을 가로막기도 할뿐 아니라, 마치 만리장성처럼 보이는 끝없는 펜스를 설치하기도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Wrapped Trees>처럼 직설적으로 랩핑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덮거나 감싸거나 가린다는 점이고, 그 규모가 매머드급이며, 특히나 천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거대 규모는 그들의 작품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덮어씌움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천은 그 재질의 특성상 나무나 철과 달리, 덮어씌운 사물의 형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무엇을 덮었는지를 알려주면서도 정작 그 안에 숨겨진 대상의 정확한 디테일은 감추어, 익숙하고 낯익은 대상의 정확한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건 분명히 퐁네프 다리인데, 다리의 난간은 어떠했더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들 작품의 목적이 이러한 갸웃거림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재윤 씨 원고의 마지막 대목인“물리적인 공간의 변화가 아닌 기억을 통해 반추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여러가지 의도 중의 하나이겠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며 정작 그 안에 감추어진 익숙하고 낯익은 것의 상세가 어떠했더라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 _ 네이버 백과사전) 효과를 느낀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도 한 적이 있다. 6년여간 다녔던 대학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숱하게 드나들었던 마로니에 공원이건만, 그곳에 어떤 조각품이 있는지는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어떤 조각이 있기는 했었나 싶었는데, 2003년 전시회(‘공원 쉼표 사람들전’) 취재 때문에 찾은 마로니에 공원에는 제법 많은 조각작품들이 ‘나 여기 있으니 좀 보아 달라’는 투로 서있었다. 그 넓지 않은 공원의 곳곳에 그렇게 조각작품들이 있었는지, 한마디로 놀라웠다.

그날의 조각작품들은 형형색색의 얼룩무늬 천을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박용석 作, <공공조형물을 위한 추상적인 옷>), 작가는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감추고자 할 때 사용하는 위장무늬천으로 조각작품을 뒤덮어, 장소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작품들이 그저 무덤덤하게 공원 내 자리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드러내었다(월간 <환경과조경> 2003년 10월호, p.119 참조). 공원 내 작품과 설치물에 무심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책하고자 한 것일 수도 있을텐데, 알록달록한 천으로 덮이기 전까지 익숙하고 평범한 배경에 불과하던 추상조각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나는 더 새로웠다.

전시회가 끝나고 조각에 입혀졌던 다양한 색깔의 천은 벗겨졌고, 적벽돌로 지어진 건물 외벽을 수놓았던 색색의 스트라이프 무늬(각종 문화 예술 관련 홈페이지 주소를 적어 놓은 양주혜 作, <소요>)도 사라졌지만, 이후로 마로니에 공원을 찾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당시에 천을 뒤집어쓰고 있던 조각들에 눈길을 주고, 스트라이프 무늬의 외벽이 있던 모습을 떠올리곤 했었다(물론 어쩌다 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천이 벗겨지자 감추어졌었던 조각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제는 부재중인 형형색색의 천 조각이 눈에 아른거렸다. 배경처럼 뒤로 물러나 있던 조각들은 예전처럼 다시 무대 아래로 사라졌는데, 정작 눈앞에서 없어진 일시적인 것들이 머릿속에 남아 버린 것이다.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는 힘이 있는 경우에 더욱 그렇겠지만, 이처럼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에 일시적으로 출현하는 어떤 새로운 요소는 제법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마로니에의 경우처럼 조각작품과 같은 오브제가 아니라, 센트럴파크를 무대로 한 크리스토 & 장 끌로드의 작품처럼 공원이나 광장, 가로와 같은 공간을 무대로 한 일시적인 것들은 공간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또 익숙한 풍경을 뒤흔드는 유쾌한 파열음은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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