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의 배경
한 사람의 상상력과 꿈에 조력자의 열정이 합쳐지면 역사가 변한다. 필자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를 최초 제안하고 추진·노력했던 사람이다. 한때 치열한 시민운동과 대한주택공사에서 도심재개발연구를 담당하는 부장으로 열심히 살았다. 운동장 공원화 고민의 근저에는 ‘도심재생과 서울다움을 어떻게 창조를 할 것인가’였다. 방법론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마을가꾸기를 적용하려 했다.
동대문운동장을 공원화할 계획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주공에서 도심재개발 연구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8년 IMF이후 도심이 단순 소비 장소가 아닌 생산성과 문화성을 담보로 하는 활력있는 공간조성에 관한 연구를 했다. 당시 필자의 연구팀이 마케팅장소로 결정한 것은 충무로와 동대문이었다. 이 두 공간이 서울이 가진 창조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다이나믹, 디지털, 디자인 즉, 한국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면서 다른 선진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를 가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몇 차례 현장 서베이를 통해 충무로는 동대문운동장 개발 후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되었다. 영화산업은 공간제약이 있으며 명동개발과 더불어 진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장애요인이 많다고 판단했다.
이후 주공 내부에서 조직개편이 되고 도심연구팀이 분해되면서 동대문만은 꼭 살려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2000년 포럼을 결성하고 회원들의 도움으로 운동장공원화를 정책화하게 됐다.
잠시 동대문시장의 특성을 살펴보자. 동대문시장은 낮과 밤이 따로 없다. 하루 30-40만명의 인파와 4만개의 점포가 활기찬 관계를 맺는 곳이다. 또 2000년 이래 서울을 찾는 젊은 외국인의 약 70%가 동대문시장을 찾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매체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해외유행을 접하는 첨단디지털상인이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이들은 밀라노나 파리, 하라쥬쿠의 패션을 우리식으로 가공하여 소비자들의 선호를 이끄는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한 소비자수요 대처나 제품경쟁력과 모든 샘플을 24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신속성이 경쟁의 원천기술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동대문시장 안에는 뛰어난 인재도 없다. 대부분이 고졸 정도의 학력에 젊은 패기와 감각을 가진 영세상인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세계 캐쥬얼 패션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네트워크와 차별화이다.
필자는 이들이 서울의 경쟁력이라고 판단했고 이들을 담을 수 있는 공적기능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와 지하공간에 공적기능을 집어넣고 장소마케팅을 하는 방안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대문포럼의 탄생배경에 대해 소개하겠다. 동대문포럼은 2000년 4월 20일 당시 유상오(주공), 신용남(동타닷컴), 김양희(삼성경제연) 3인이 발기했다. 필자는 도시개발과 운동장 공원화를 통한 장소마켓을 주장했다. 신사장은 디지털동대문, 김박사는 동대문의 산업프로세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후 이재준(협성대), 김세용(고려대), 김신원(경희대), 진양교(시립대)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포럼이 활성화되었다. 이후 포럼은 도시계획분과와 시장분과로 구분해 활동했다. 2002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인 이명박, 김민석씨를 초청해 동대문에서 세미나를 개최해 두 사람 모두 공원화를 선거공약으로 채택하도록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씨는 ‘선 청계천개발 후 동대문공원화’, 김민석씨는 선 동대문공원화 후 청계천복원‘을 제1공약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오세훈씨가 공약으로 채택한 것은 이후 동대문운동장 공원화는 대선과 국회의원선거때마다 단골공약으로 나왔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오시장을 지지하던 박계동 의원이 후보사퇴를 하면서 이 공약을 그대로 제1공약으로 가지고 가면서 운동장 공원화가 현실화되었다.
동대문포럼은 2000년에서 2004년까지 매월 한차례씩 약 60여회의 월례포럼과 3차례의 세미나 3종류의 보고서, 50여 차례의 각종회의와 자문, 100차례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당시로서는 장소마켓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참신한 기획과 시도였다.
혹자는 ‘왜 동대문포럼을 계속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에 대해 계획가의 역할과 책임을 말하곤 한다. 물론 동대문포럼이 계속 이니시어티브를 행사했다면 현재 당선작보다 좀 더 좋은 계획안이 나오고 친근한 공간으로 변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은 더하지만, 만약 그렇게 했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며, 또한 계획 말고도 노점상문제와 주변 상가들과의 관계, 교통, 환경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문제의 해결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컸다. 서울시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차선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며, 물론 아쉬움도 큰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