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는 서브어반 도시의 진화 모델의 한 극단이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대함은 초현실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이 도시는 무한히 펼쳐진 연속적인 인공의 표면이다. 그 표면에는 끊어짐이 없다. 보존된 자연 지역도,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농지도, 행정 구역상 다른 두 도시를 구분해주는 경계 지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과 비교해볼 때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의 인구는 1,310만 명, 서울은1,045만 명으로 로스앤젤레스가 서울보다 30% 정도 많다. 그러나 물리적인 면적은 로스앤젤레스가 12,562㎢, 서울은 605㎢ 이다.15 즉 서울의 20배의 면적이다. 미국 도시에 스프롤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전부터, 이 천사의 도시는 이미 서브어브가 장악한 스프롤의 도시였다.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는 이전까지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구조를 가진 도시였다.
1933년에 열린 제 4차 CIAM 회의에서 전세계 건축가들이 모여 동일한 스케일의 지도를 준비하여 각국의 주요 도시 구조를 비교하는 전시회를 열었을 때, 리차드 노이트라가 준비한 로스앤젤레스의 지도는 거의 전시장의 모든 공간을 차지하였고, 유럽의 건축가들은 이 새로운 도시의 비상식적인 거대함에 경악하였다. 로스앤젤레스는 과밀화된 산업 도시의 형태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어간 도시가 아니었다. 태생부터 로스앤젤레스는 스프롤화 된 서브어브의 천국으로 계획되고 태어난 도시였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으로부터 90km 떨어져있는 오렌지 카운티는 이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의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서브어브의 제국이다. 오렌지 카운티는 그 이름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듯이 본래 오렌지 농업에 기반한 지역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직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았던 이 균질한 농업 지역에 유일한 이질적인 요소는 군사시설들이었다. 하지만 전후 1950년대 미국 대륙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system)가 건설되어 이 지역과 로스앤젤레스가 연결되자마자 광대한 오렌지 농장은 빠르게 저밀도의 주거지로 변해갔다.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의 새로운 서브어브 유토피아로 편입된 오렌지 카운티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 되었다. 30년도 지나지 않아 한가한 오렌지 농장 지대는 인구 300만에 34개의 도시를 가진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의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수많은 학자들의 비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의 확장은 그 물리적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아니 그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도 한번도 멈추지 않고 끝없이 진행되어 갔다.
2000년대 들어서 오렌지 카운티의 개발은 그 정점에 달한다. 지가는 매년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과열된 부동산 시장은 더욱더 많은 개발을 요구하였다. 자연히 개발업자들은 유일하게 남은 미개발지인 1950년대의 군사 시설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오렌지 농장 사이에 산재해 있던 군기지들은 이제 주택지와 바로 인접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어색한 도시와의 동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정점에 달했던 2005년 미국 최대
규모의 개발 업체 중 하나인 르나(Lennar)는 4,639에이커에 달하는 엘 토로 해병대 기지를 6억5천만 불에 매입하여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할 계획을 착수하였다. 르나는 시당국과 이 거대한 부지의 개발권을 갖는 대신 전체 면적의 1/4에 해당하는 1,347에이커의 부지를 공원으로 개발하기로 계약을 체결한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공원이 될 오렌지 카운티 그레이트 파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공모전이었다. 공모전의 결과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 켄 스미스, 올린 파트너십, 리차드 하그, 로이스턴 하나모토 엘리 앤 에비, 이렇게 미국의 다섯 개 회사, 그리고 아발로스 앤 헤레로스, 두 스페인 회사가 최종 경쟁작으로 뽑혔고, 켄 스미스의 안이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