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미로 대표되는 페르시아(Persia)문화의 심장-
수도 테헤란(Teheran)에서 남쪽으로 935km 떨어진 인구 120만의 쉬라즈(Shiraz)는 이란(Iran) 남서부 파르스(Fars)주의 주도(州都)이다. 파르스주는 한때 세계를 향해 강력한 힘을 과시했던 고대 페르시아(Persia)제국이 탄생한 곳이다. ‘페르시아(Persia)’라는 이름은 이 ‘파르스(Far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파르스지역이 최초의 통일왕조인 아케메네스(Achaemenes)왕조의 발상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대 제국의 명칭이 된 것이다. 키루스대왕(Cyrus the Great, 재위 BC 559-529)에 의해 첫 수도로 정해졌던 파사르가드(Pasargadae),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다리우스대왕(Darius the Great, 재위 BC 522-486)의 영화를 한껏 드러내고 있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영원히 지속될 제국의 번영을 꿈꿨던 역대 제왕들이 묻힌 바위산 암벽묘(岩壁墓)가 있는 낙쉐루스탐(Naqsh-e Rustam)과 같은 페르시아제국의 고대 유적지들을 구경하려면 반드시 쉬라즈를 거쳐야 한다.
쉬라즈는 이러한 유적지들의 관문이자 거점의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이 도시 외곽의 길목에는 ‘코란 게이트(Koran Gate, Darvaazeh Quran)’라 불리는 조형문을 설치하고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관광도시로서의 상징성을 높이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석판(石板)에 새겨진 ‘SHIRA-ITS-TSI-ISH’가 당시 쉬라즈의 지명으로 알려지는 등, 이 도시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이 도시가 파르스지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것은 3세기 무렵인데, 이후 역사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흔히 쉬라즈를 “시와 장미의 도시”로 지칭한다. 이는 이 도시가 13-14세기에 사디(Saadi, 1190-1290)나 하페즈(Hafez, 1320-1389)와 같은 유명한 시인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쉬라즈는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 그들은 없지만 그들이 안치된 묘소는 그들을 추념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사디의 묘(Aramgah-e Saadi)’와 ‘하페즈의 묘(Aramgah-e Hafez)’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에 해당하는데, 묘소라는 암울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시 시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일종의 정원이나 공원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100년을 살았다는 사디는 ‘과수원(Orchard)’이란 뜻의 ‘부스탄(Bustan)’과 ‘장미정원(Rose Garden)’을 뜻하는 ‘골레스탄(Golestan)’을 저작한 인물이다. 현재 도심의 북동쪽에 있는 사디의 묘는 이란의 근대화와 개방화에 주력했던 팔레비(Phalevi)왕조가 통치하던 1952년에 개축된 것이다. 시신이 안치된 석관(石棺)은 회랑(回廊)과 둥근 돔(Dome)의 지붕이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대리석 건물의 중앙에 있다. 석관과 주위 벽면에는 그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는 문맹(文盲)이 따로 없다. 아라비아(Arabic) 서체로 휘갈겨 새겨진 그의 시구(詩句)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입체감이 돋보이는 시구는 건물 내부를 장식하는 화려한 문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주변은 울창한 숲과 장미를 비롯한 화려한 꽃들의 화단으로 꾸며져 있고, 건물 지하층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 휴게실에 조성된 우물 형상의 연못에는 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이처럼 지하층에다 연못을 설계한 사례는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데, 연못은 지하수로인 카나트(Qanat)로 연결된다. 카나트는 강수량이 매우 부족한 지역에서 물을 공급하는 시설로, 땅 속으로 깊게 판 우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지하수로이다. 우물의 깊이는 수십 미터에 이른다. 깊게 판 우물에는 땅 속의 주변 습기가 모이게 되고, 이러한 습기가 모여 물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로 믿기에 어려운 이야기가 이곳의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연못 속의 고기들은 사디의 시심(詩心)을 좇아 이름모를 먼 곳에서 카나트를 따라 이곳에 모인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운율의 서정시(抒情詩)인 가잘(Ghazal)의 대가인 하페즈는 세계 각국을 떠돌았던 사디와는 달리 일생을 쉬라즈에서 보냈다. 그는 이란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국민적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는 위대한 시인의 영혼으로 채워진 그의 시를 “별빛이 반짝이는 우주와 같은 신비한 구성(Turning like the starry spheres)”으로 격찬했다. 현재 도심에 위치해 있는 하페즈의 묘는 사디의 묘와 같이 팔레비왕조가 통치하던 1953년에 개축된 것이다. 울창한 숲과 시원스런 연못으로 정원을 꾸미고, 그 중앙의 화려한 원형 정자에다 석관을 안치했다.
강 철 기 Kang, Cheol 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수도 테헤란(Teheran)에서 남쪽으로 935km 떨어진 인구 120만의 쉬라즈(Shiraz)는 이란(Iran) 남서부 파르스(Fars)주의 주도(州都)이다. 파르스주는 한때 세계를 향해 강력한 힘을 과시했던 고대 페르시아(Persia)제국이 탄생한 곳이다. ‘페르시아(Persia)’라는 이름은 이 ‘파르스(Far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파르스지역이 최초의 통일왕조인 아케메네스(Achaemenes)왕조의 발상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대 제국의 명칭이 된 것이다. 키루스대왕(Cyrus the Great, 재위 BC 559-529)에 의해 첫 수도로 정해졌던 파사르가드(Pasargadae),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다리우스대왕(Darius the Great, 재위 BC 522-486)의 영화를 한껏 드러내고 있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영원히 지속될 제국의 번영을 꿈꿨던 역대 제왕들이 묻힌 바위산 암벽묘(岩壁墓)가 있는 낙쉐루스탐(Naqsh-e Rustam)과 같은 페르시아제국의 고대 유적지들을 구경하려면 반드시 쉬라즈를 거쳐야 한다.
쉬라즈는 이러한 유적지들의 관문이자 거점의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이 도시 외곽의 길목에는 ‘코란 게이트(Koran Gate, Darvaazeh Quran)’라 불리는 조형문을 설치하고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관광도시로서의 상징성을 높이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석판(石板)에 새겨진 ‘SHIRA-ITS-TSI-ISH’가 당시 쉬라즈의 지명으로 알려지는 등, 이 도시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이 도시가 파르스지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것은 3세기 무렵인데, 이후 역사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흔히 쉬라즈를 “시와 장미의 도시”로 지칭한다. 이는 이 도시가 13-14세기에 사디(Saadi, 1190-1290)나 하페즈(Hafez, 1320-1389)와 같은 유명한 시인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쉬라즈는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 그들은 없지만 그들이 안치된 묘소는 그들을 추념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사디의 묘(Aramgah-e Saadi)’와 ‘하페즈의 묘(Aramgah-e Hafez)’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에 해당하는데, 묘소라는 암울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시 시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일종의 정원이나 공원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100년을 살았다는 사디는 ‘과수원(Orchard)’이란 뜻의 ‘부스탄(Bustan)’과 ‘장미정원(Rose Garden)’을 뜻하는 ‘골레스탄(Golestan)’을 저작한 인물이다. 현재 도심의 북동쪽에 있는 사디의 묘는 이란의 근대화와 개방화에 주력했던 팔레비(Phalevi)왕조가 통치하던 1952년에 개축된 것이다. 시신이 안치된 석관(石棺)은 회랑(回廊)과 둥근 돔(Dome)의 지붕이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대리석 건물의 중앙에 있다. 석관과 주위 벽면에는 그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는 문맹(文盲)이 따로 없다. 아라비아(Arabic) 서체로 휘갈겨 새겨진 그의 시구(詩句)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입체감이 돋보이는 시구는 건물 내부를 장식하는 화려한 문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주변은 울창한 숲과 장미를 비롯한 화려한 꽃들의 화단으로 꾸며져 있고, 건물 지하층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 휴게실에 조성된 우물 형상의 연못에는 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이처럼 지하층에다 연못을 설계한 사례는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데, 연못은 지하수로인 카나트(Qanat)로 연결된다. 카나트는 강수량이 매우 부족한 지역에서 물을 공급하는 시설로, 땅 속으로 깊게 판 우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지하수로이다. 우물의 깊이는 수십 미터에 이른다. 깊게 판 우물에는 땅 속의 주변 습기가 모이게 되고, 이러한 습기가 모여 물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로 믿기에 어려운 이야기가 이곳의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연못 속의 고기들은 사디의 시심(詩心)을 좇아 이름모를 먼 곳에서 카나트를 따라 이곳에 모인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운율의 서정시(抒情詩)인 가잘(Ghazal)의 대가인 하페즈는 세계 각국을 떠돌았던 사디와는 달리 일생을 쉬라즈에서 보냈다. 그는 이란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국민적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는 위대한 시인의 영혼으로 채워진 그의 시를 “별빛이 반짝이는 우주와 같은 신비한 구성(Turning like the starry spheres)”으로 격찬했다. 현재 도심에 위치해 있는 하페즈의 묘는 사디의 묘와 같이 팔레비왕조가 통치하던 1953년에 개축된 것이다. 울창한 숲과 시원스런 연못으로 정원을 꾸미고, 그 중앙의 화려한 원형 정자에다 석관을 안치했다.
강 철 기 Kang, Cheol 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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