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Bay
“Prince Jerome Gulf를 목표로 하여 항해한 지 이틀 만에 도착한 곳은 Prince Imperial Archipelago의 남단에 돌출해 있는 해안선으로, Joachin Bay, Caroline Bay, Deception Bay가 서로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프랑스 정찰자들의 정보에 의하면 이 일대에 4,000명의 주민이 있는 촌락이 있다고 했다. 가능한 곳까지 만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으나 해안에는 촌락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19세기 후반의 어느 항해기록의 첫머리 일부다. 미지의 땅을 항해하다가 이들이 최초로 상륙한 곳은 Caroline Bay의 어느 한 어촌마을이었다. 어느 나라의 어느 해안인지 이 글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 여행기에는 항해를 하면서 작성한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이 지도를 우리나라 서해안 일대의 지도와 맞추어 놓고 보면, Prince Jerome Gulf는 아산만이며, Prince Imperial Archipelago를 비롯하여 Caroline Bay, Deception Bay 등 영문으로 표기된 곳은 각각 덕적군도, 가로림만, 대호지만으로 불리는 태안반도 북쪽해안 일대임이 드러난다. 이들이 처음 상륙했다는 마을이 있는 Caroline Bay는 태안반도 북쪽해안의 가로림만을 말한다.
오페르트와 남연군묘 굴총
위의 글은 대원군 집권시절 우리나라 서해안을 항해한 유태계 독일 상인 오페르트의 여행기다. 우리에게는 남연군묘 도굴하려 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나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세 차례 서해안에 왔다. 그의 세 번째 항해는,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왕실의 보물을 감추어 둔 보물창고를 털려던 것”이었으니, 결국 남연군묘를 도굴하려던 것이 주 목적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왜 그랬을까? 그 이전에 두 차례 서해안에 온 것은 무엇을 하려던 것이었을까?
오페르트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지적으로 또는 역사학이나 사회학적으로 따지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이 글을 통하여 내가 다룰 바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다만 오페르트는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유럽인이자 서해안의 한적한 어촌과 해안을 두루 항해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점을 주시하게 된다.
오페르트의 여행기를 잘 들여다보면, 근대 이전의 서울이나 도시가 아닌, 서해안 일대의 어촌의 경관과 사람들 그리고 풍습 같은 것을 생생히 전해 받을 수 있다. 굳이 전통조경이야기에서 오페르트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그 점을 위해서이다.
오페르트의 여행기는 독일어와 영어 판으로 발간되었던 모양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독일어판인데, 영어 판을 원본으로 한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 있다.
오페르트의 세 번째 항해는 애초에 남연군묘를 굴총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고, 오페르트 일행은 아산만의 행담도에 정박한다. 행담도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해대교 중간 즈음에 맞게 되는 휴게소가 있는 곳이다. 오페르트 일행은 행담도에서 작은 배를 타고 지금의 삽교호가 있는 쪽으로 삽교천을 따라 들어와 구만이라는 곳에서 배를 내린다. 거기서 육로를 통하여 남연군묘로 향한다. 남연군묘에 도착한 오페르트는 “참으로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을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세 번째 여행기록에서는 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에서는 첫째 항해와 두 번째 항해의 기록을 중심으로 다루어 볼까한다. (중략)
Verfremdungseffekt, 또는 우리 경관 “낯설게 보기”
아직 오페르트의 여행기를 따라 답사여행을 시작하지 않던 즈음, 우연히 우석대의 김두규 교수와 오페르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오페르트에 관한 한 역사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는 굴총사건이 어떨지 모르지만 경관을 다루는 입장에서 그의 여행기는 우리에게 익숙해 있는 우리의 경관을 다른 시각으로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싶다는 식으로 나의 견해를 피력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나는 김교수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Brecht란 독일의 한 현대작가가 주창한 Verfremdungseffekt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고 했다. Verfremdung이란 대략 “낯설어지기” 정도의 뜻이 될 것 같다. 낯설어지기, 이미 우리 주변에 있어왔기에 너무 익숙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새삼 낯설어질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문학이든 문학이론이든 전혀 문외한이지만 평소 경관을 대하면서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바로 낯설어지기라는 현대문학이론과 맞닿아 있었구나 싶다. 매일 보아온 일상 주변의 경관, 또는 자주 가 보지는 않았지만 워낙 우리 눈에 익어있는 우리의 산천이기에 자칫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칠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정말 그런가 싶다. 그 며칠 후, 집사람한테 Brecht의 Verfremdungseffekt를 아는가 하고 물어보았는데 (딴은 어찌 그런 걸 알겠나 싶었지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브레히트 희곡의 소외효과!”라는 것이란다. 물론 소외효과란 희곡 장르상에서는 그렇게 통용되지만 오히려 낯설어지기란 의미가 더 적합할 것 같다고 했다. 아주 가까이에 나름대로의 전문가를 두고 나는 머나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역사경관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우리가 역사경관을 가까이하고 이를 보다 근접된 연구를 하며 보다 실제에 다가가는 이해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주 처음 만나는 듯 낯선 대상인 듯 다가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도굴범) 오페르트는 (참으로 묘하게도) 우리에게 우리의 경관을 새롭게 만나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페르트를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야 어떻게 평가되고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하는 점과 무관하게 그가 남겨 놓은 글을 통하여 우리는 구한말의 우리 옛 경관을 새롭게 접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음이 틀림없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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