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요 >
. 대지면적 : 150,618.129M2(약 45,640평)
. 세대수 : 2,176 세대
. 조경면적 : 45,394.31M2(약 13,750평)
. 준공일 : 2002. 10. 31.
. 시공사 : (주)대우건설 조경담당 김순분 차장, 최병호 차장
. 조경설계 : (주)그룹·한(박명권 소장, 최철호 실장, 유한건, 서미영)
. 조경공사 : 동남산업개발(주), (주)한일환경디자인, 청우개발
<건축의 틀 깨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처음 이 단지의 건축 배치도를 보았을 때, 우리는 한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기존의 배치안은 그야말로 성냥갑을 나란히 세워 놓은 것 같은 동 배치에다가, 그 동들 사이로는 온통 아스팔트로 뒤덮인 주차장만이 가득한 최악의 조건이었다.
대부분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들은 층고가 보통 20층 이상이어서 인동간격이 비교적 넓은데 반하여, 이 단지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하여 층고를 15층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동과 동 사이에 양면 주차장을 설치하고 나면, 고작해야 동 앞면, 뒷면에 얇은 띠 모양의 녹지밖에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이 답답한 건축의 직선들을 흐트러뜨리기로 하였다.
맨 처음 단지 중앙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주동선이 S자 곡선을 그리도록 구불구불하게 조정하였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단지 내 도로를 계획할 때 교통전문회사의 자문을 토대로 직선 형태의 도로를 설계하는데, 이는 자동차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잘못된 계획이다. 단지 내에서는 어린이나 노약자 등 보행자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런 직선형 도로는 오히려 차량의 속도를 증가시켜서 보행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단지 내 도로가 비교적 길 때는 가급적 굴곡에 따른 시선의 초점 변화를 유도하여, 경관의 다양성을 꾀하고 차량이 저속 운행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는 사각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을 원형으로 바꾸었다. 대부분의 단지 내 주차장은 효용을 높이기 위해 사각형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디자인은 정형적인 아파트 동으로 둘러싸여 있는 단지 내에서 녹지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제공할 수 없다.따라서 판에 박힌 듯 획일적인 녹지만 양산되는데, 이는 볼륨감 있는 녹지를 만들어서 층위 구조를 이루도록 하는 생태적인 식재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반면 사각의 틀 안에서 원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은 가장자리에 깊이가 있는 녹지를 만들게 되므로 식물 생육에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조망 경관이 특히 중요시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녹시율(綠視率)을 높여 줌으로써 경관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원형으로 계획된 주차장이 주차하기가 어렵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고수부지에 나가서 같은 지름의 원을 그려놓고 주차 실험까지 해가며 설득하여 우리는 이 계획안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결론은 성공이었다. 우선 단지 내 고층에서 바라본 주차장의 모양이 훨씬 자연스럽고, 주차장 가운데 요소요소에 녹지 섬이 생겨나서 썰렁하기만 했던 주차장이 풍성한 녹지공간으로 바뀌었다. 또한 보행 몰을 따라서 눈높이에서 보이는 주차장의 모습도 중첩된 녹지로 말미암아 실제보다 녹지가 많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길과 공간을 엮어내기: 보행자가 우선이다>
이렇게 큰 틀을 짜고 나서 주민들을 위한 세부적인 공간들을 계획하였다.
우선 단지 내 중앙도로를 따라 통행이 가장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행로를 가능한 한 넓히고, 그래도 부족한 곳은 건축과 협의하여 1층을 피로티로 개방한 후 최대한 넓은 길을 조성하였다.
또 도로의 주요 결절부에는 포장을 다르게 처리하고 패턴을 넣어서, 광장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위 아래로 나누어진 단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도록 계획하였다.
어린이 놀이터와 휴게소, 운동시설 등은 가급적 보행로쪽으로 재배치하여 이 길을 따라 편의 시설들이 포도송이처럼 엮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주민들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편의시설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기: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계획된 각각의 공간들에 활력을 실어주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화곡동(禾谷洞)이라는 지명 유래에서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팔괘(乾,坤,坎,離)의 Concept을 끌어내고, 이 팔괘가 상징하는 여덟 개의 자연을 주제로 각각의 공간들을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해서 입구부터 동서남북 사 방위에 따라 한빛마당(불), 흙내음원(땅), 하늬바람원(바람), 맑은못원(연못), 하얀빛원(번개), 푸른뫼원(산), 큰하늘원(하늘), 물그림자원(물) 순으로 주제공간들을 배치하였다.
한빛마당은 단지의 입구로서 불을 상징하는 햇살문양의 포장과 조명 열주를 도입하고 환경조형물로 해시계를 설치하였다.
흙내음원은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로서 땅을 상징하는 방형(方形)의 놀이시설을 설계하였다. 또 하늬바람원은 바람개비 열주가 설치된 소용돌이 모양의 어린이 놀이터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맑은못원과 물그림자원은 각각 벽천과 자연 연못을 도입한 놀이터와 휴게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하얀빛원은 번개를, 큰하늘원은 하늘을 상징하는 형태나 시설이 디자인되었다. 끝으로 푸른뫼원은 건축 데크를 이용하여 산 모양의 갤러리를 만들고 환경조각이 어우러진 주민 공동 시설로 설계하였다. 또 단지중앙의 시각적 초점에는 벽천을 만들고 보행로를 따라 계류가 흐르도록 계획하였다.
<단지 내 조경은 현재 진행 중: 조경은 살아 숨쉬며 변해가야 한다>
이렇게 실시설계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추가적인 보완 설계를 하게 되었다.
그 주된 이슈는 단지를 좀 더 생태적으로 가꾸는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완공과 동시에 끝나는 조경이 아니라 주민들이 계속적으로 가꾸고 돌보면서 스스로 변해가는 지속 가능한 조경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추가로 계획하였다. 우선 단지내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계류를 생태적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둘째는 상가나 유치원의 옥상을 녹화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가지는 동 측벽을 이용하여 벽면을 녹화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계획들 중에서 옥상 녹화와 벽면 녹화는 실행에 옮겨졌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아파트 단지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자연형 실개천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서 색깔이 불분명한( 자연형도 아니고, 모던 스타일도 아닌) 계류로 변해버렸다. 그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단지의 주민들은 아마도 아파트 벽면에서 해마다 자라나는 담쟁이와 옥상위에서 새록새록 커나가는 새덤(sedum)의 모습에서 여전히 살아숨쉬면서 변화해나가는 조경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단지의 완성을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박 명 권 Park, Myoung Kweon
(주)그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