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광장하면 유럽의 도시를 연상할 정도로 유럽의 도시에는 크고 작은 광장들이 많다.
특히 이태리나 스페인의 경우, 도시의 구성이 광장으로 이어지듯 오늘날까지도 도시생활의 필수적 요소로 남아있다. 이러한 광장 속에는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으면서 그 국가의 자존심과 도시의 대표적 얼굴이 되기도 한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로마의 「라보나」광장과 시에나의「캄포」광장에서는 진입하기까지의 골목길에 매력이 넘치고, 그들의 생활모습 등에 시선을 멈추게 된다.
또한 바로셀로나의「독립궁 앞 광장」과「스페인 광장」, 파리의「라·데팡스」등에서는 압도적인 규모와 조형성에 감탄하게도 된다.
이러한 광장에 비하여 시대와 국가에 따라 목적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북경의「천안문 광장」은 나름대로 그 국가, 도시의 위상을 담고 있다.
그 중 중국의 경우, 동양의 전통적 도시에서는 광장이란 개념이 없었으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성되었기에 시민광장으로서의 본래 기능은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천안문 광장은 그러한 군중 집회의 장소 였었고, 건국 50주년 기념행사에서와 같이 장안대로(長安大路)의 대대적인 퍼레이드는 그들 특유의“길”의 문화였을 뿐이다.
이러한 “반(反)시민적 장소”에 대한 견해를 관련 있는 인사들에게 제기하면 정치성과 상반되는 개인의 의견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중국의 도시에 시민 배려에 대한 현대적 시설공간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공간이 북경의 서단문화광장(西單文化廣場)과 쇼핑으로 유명했던 왕부정(王府井)거리이다.
▲ 북경시 서단광장의 측면
서단문화광장
옛부터 북경성에는 서단(西單)과 동단(東單)거리라는 시장(市場)이 있었다.
서단은 자금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2블럭 지나 서장안가(西長安街)와 서사대가(西四大街)의 교차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10여 년 전부터 서단상장(西單商場쇼핑센터)을 빼고는 모두 규모가 작은 가게들이였으며 특히 식료와 의류, 일용품점이 많아 북경서구(西區)지역 서민들의 거리였었다.
80년대 중반기부터 이러한 상업지구는 현대적인 금융거리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광장 대상지 만큼은 집중적인 녹지시설로 환경조건을 개선하려했으나 경제적 부담으로 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7년 9월 북경시정부에서는 이곳을 건국 50주년기념 사업대상지의 하나로 지정하고 (역사박물관, 북경식물원, 왕부정거리 등) 본격적인 광장조성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부정(王府井)의 보행자 전용도로(Shopping mall)
1999년 8월경 몽골 여행을 마치고 북경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 북경시 원림고건 설계원(園林古健設計院)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마침 한국을 방문했던 지면(知面)있는 인사와의 대화 중 서단광장과 왕부정거리의 개조 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 길로 안내를 받아 서단광장을 보고 확인하면서도 보행자 전용도로의 출현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듯 우리나라의 도시문제와 개발과정을 비교하여 본다 하더라도 그동안 자동차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얼마나 절감하였기에 도시정책에 반영되었을까 하는, 예측 할 수 없는 변화를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기존의 쇼핑공간에 포장만 새롭게 한 것이 아니었겠나 하였으나 막상 도착하여 보니 지난날의 왕부정거리가 아니었다. 한창 뒷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필요성에 대한 효과로 북쪽의 미술관일대 가로까지 연장하려 한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필자는 두 가지 면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된다.
우선 이곳이 서구화된 동남아 어느 도시이거나 일본의 신쥬구 거리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내부 상점가와 판매원들의 서비스자세까지, 지난날의 안·밖의 모습이 함께 일신되었다는 외형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보행 환경에 대한 개념 전환과 이용 행태의 적응 및 공간확보에 대한 제도적 집행 능력이었다.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로서 강한 실천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난날의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인 것이다.
그동안 이곳은 백화점, 의류점, 외국산 시계점, 서점, 공예, 미술품 등과 중국 각지의 특산품으로 비교적 지방인들과 외국 관광객들로 메워져 우측의 동단(東單)거리와 함께 북경의 대표적 시장이었던 곳이다.
그런데 북경시 백화점(北京市 百貨大樓) 앞 음악분수 광장과 건너편에 신축된 연립상가들 전면에는 화려한 포장패턴과 세련된 가로 편익시설들로 젊은이들의 천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민적이고 전통적인 환경조각들이 중국 특유의 가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곳이 북경거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쇼핑센타 내부에는 민속 공예품점과 양고기 요리로 유명했던 똥라이순(東來順)도 옛날 그 자리 위에 남아 멋과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재미있는 장소로는 옛날 시장가에 남아있던 북경 경극(京劇)이 동호인들끼리의 모임으로 지하층 모퉁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전통공예품과 약전 골목에 이어진 이러한 옛 모습들은 후미진 곳에서나마 북경시민들(老百性)의 향수를 달래주거나 호기심에 찬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금년 여름 중국 방문길에도 이 두 곳을 다시 찾았었다.
마침 2008년 올림픽 개최를 발표하는 날이라 군중이 모인 곳에 접근하지 말라는 사전 안내가 있었다는데도 광장과 넓은 가로 곳곳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발표시간 전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그 날도 비행기는 연착이었고 한국인 여행객들의 불평과 불신에 찬 투덜댐은 다른 해와 변함이 없었다.
어제의 중국다운 이러한 혼란과 내일에 대한 회의적 기대 속에 T.V중계에서의 올림픽 발표순간이 되자 전국적인 광란과 함께 폭발하고 있는 함성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머쓱하여진 외국인들과 비교되는 이러한 모습에서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향하여 흐르는 속도를 재촉하고 있을 뿐이란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비록 서구지향적 도시광장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중국다운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 역시 그 동안의 문화적 공백을 메워보려는 몸부림과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즉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의 형식과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된 시간표 상의 제 2의 "문화혁명"중임을 확인하는 순간인 것이었다.
4시간이 지났을까 그들 뜻대로 비행기는 도착하였고, 떨떠름한 한국 여행객들은 "떠들석한 중국집"을 서둘러 나오게 되었다.
장태현 Jang, Tae Hyun·청주대학교 환경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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