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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공원 ; 하늘에 걸린 초원 : 난지하늘초지공원의 공간과 의미
  • 환경과조경 2000년 10월

설계는 아무래도 논리와 거리가 먼 모양이다. 논문을 쓰다가 설계를 해야 하거나 설계를 하다가 논문을 써야 할 때, 서로 간 적응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심할 때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속에서 에너지가 타는 것을 느낄 정도다. 설계과정 중에 꼭 필요한 단계로 알려지고 있는 대상지분석(site analysis)은 논리적 사고를 요구한다. 대상지가 갖고 있는 여러속성들을 명확하게 과학적인 시야로 읽어내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분석이란 행위는 자신의 논리적 성격 때문에 원래 의도와는 달리 이후 진행될 설계단계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킨다. 게다가 더 나쁘게도 논리적 분석은 대상의 겉을 훑게 만든다. 대상이 갖고 있는 속마음 - 설계개념의 몸체가 될- 을 읽기에는 분석이란 논리적 틀이 그리 걸맞지 않는 것이다.

기존의 논리적 분석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방식을 ‘주관적 체험의 방식’이라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으로 대상지에 접근해보면 -대상지에 가만히 귀를 대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 대상지가 얼마나 많은 얘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본적인 설계의 뼈대, 설계의 메타언어 또는 설계어휘, 설계개념,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대 상지가 전해주는 얘기 속에 모두 담겨있다. 논리적 분석방식으로는 별반 쉽지 않은 일이다.
소위 주관적 체험의 방식으로 대상지에 가장 잘 귀 기울이는 현대 조경가가 누굴까. 피터 워커? 마샤 슈왈츠? 마이클 발버그? 다 재주 있는 사람들이지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정답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필자의 생각이지만, 좀 옛사람으로는 리처드 해그이고 요즈음은 조지하그리브스다. 이들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는 이 지면에서는 논외로 하자. 대상지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도 다소 달라, 해그는 대상지가 전해주는 얘기를 곧이곧대로 듣는 스타일이고, 하그리브스는 영악하게 대상지의 얘기를 여러 각도로 변용하는 재주를 부린다. 따라서 해그나 하그리브스 같은 친구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들 작품 속에 가려져 있는 본래의 대상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물론 그들처럼 주관적 체험의 방식으로 말이다.

두 개의 난지매립지 중 제2매립지가 설계대상지이다. 제2매립지보다 조금 더 큰 제1매립지에는 어울리지 않게 9홀 퍼블릭 골프장을 만들고 있다. 설계대상지의 현황을 요약해보면, 표고 100m, 지반고 80m의 사다리꼴 직육면체의 윗면에 해당되는 지역이고, 지하 20m, 지상 80m, 총 100m 두께의 생활쓰레기가 매립되어있는 곳이다. 매립된 쓰레기의 침하 때문에 향후 20년에 걸쳐 0.19~2.13미터의 침하가 예상되는 지반불안정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지반 안정화사업이 진행 중에 있으며, 매립지 상부는 안정화 사업의 결과로 규칙적인 4~8% 배수구 배를 갖는 4개 단위지역으로 구분된다. 피라미드형태의 각 단위지역 중심지점과 모서리부분의 높이 차이는 최대 10.5미터에서 최소 3.7미터이다. 안정화 사업에 의해 불투과막(membrane)위 30㎝ 두께의 배수층과 60㎝ 두께의 표토층 (30㎝ 식생층, 30㎝ 표층)이 포설된다.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부지의 북동쪽으로 북한산, 동쪽으로 63 빌딩 등의 고층 건물군과 남산이 명쾌하게 조망되고, 남동, 남서, 그리고 서쪽으로 한강의 중류와 하류의 대부분이 시야에 들어오는 탁월한 조망여건을 갖추고 있다. 접근성이 밀레니엄 공원 전체 부지중 가장 열악한 곳의 하나이며, 구배가 평균 15%이상의 경사로를 거쳐 진입해야 하므로, 특정 목적의 토지 특성이 반영되지 않으면 이용활성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난지하늘초지공원이 보여주는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지형의 굴곡은 오직 초지와 함께만이 표현될 수 있다는 필자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 대개 교목은 10여 미터 이상의 높이로 자라지 않는가 말이다 - 섬세한 피라미드동산의 초지경관을 망가뜨리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늘초지공원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초지로만 구성된 5만평의 고원의 경관, 억새와 띠가 바람에 흔들리는 고원의 모습, 그리고 몸에 착 달라붙은 얇은 옷을 입어 몸매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여인의 모습일 것이라고 믿는다. 예쁘고 편하고 그럴듯한 공원보다는, 때론 거칠고 버려진 듯하며 특이한 그리고 많은 얘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 공간을 보고 싶기도 한 법이니까. 내부 조망공간에 아무런 시설을 두지 않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피라미드동산을 오른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열려진 하늘에서, 어느덧 도시에서 쉽게 찾기 어렵게 된 별과 구름을 마음껏 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을 따라 시원하게 올라간 가오리연과 방패연들이 건물이나 나무에 걸림이 없이 자유로워야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팀장이라는 어려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기본계획위원회를 멋지게 이끌어 간 이인성 교수께 이 지면을 통해 큰 박수를 보낸다.


※ 키워드 : 밀레니엄공원, 난지하늘초지공원의 의미, 난지하늘초지공원, 난지공원, 하늘공원
※ 페이지 : p92~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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