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법철학
근대 소유제도는 모든 산과 바다를 개인·단체 또는 국가의 소유로 전환시켰다. 무주물선점(先占)과 국유화선언이 이를 뒷받침하였다. 인간은 모든 자연자원의 소유권자로 등극하였다. 토지 또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장 자크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토지에 경계를 긋고 자기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가장 용기있는 피조물이 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뻔뻔 스러운 생명체가 되었다. 인류는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창조주로부터 모든 자연과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종교에 따라 지구상의 자연과 자원에 대한 인간의 향유권이 도출될 수 있더라도 독점배타적 지배가 허용되는 소유권은 도출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산하
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함은 다른 생물종과의 공존을 부정하는 월권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법질서
현행법제는, 전통법제와 달리, 자연신탁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 서구의 실정법만을 계수한 현행법제는 불문법으로 발전된 자연신탁의 법리를 함께 들여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1961년의 신탁법상의“공익신탁”(제65조)은 다른 법률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토지수용법, 공특법(公共用地의取得및損失補償에관한特例法), 공유수면매립법, 전원개발특례법과 같이 수용 내지 수용의제 규정들을 두고 있는 현행법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연신탁제도 자체의 시행이 불가능하다. 자연신탁에 관한 법이 제정되더라도 특례법보다 우월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행되더라도 후속 개정법률들에 의하여 신탁의 취지가 쉽게 무시될 수도 있다.
전통법질서
서구식 신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한국 전통사회의 제도중에서 신탁과 유사한 방식을 찾아 양자의 접목을 시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봉건적인 제도가 모두 후진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포스트모던의 경향은 원시회귀성을 지닌다. 전통사회의 총유재산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신탁과 근접할 수 있다. 동네주민들의 공동재산이었던 동유재산(松山·漁場등)은 동네주민의 자격으로 이를 향유할 수 있었지만 이를 처분하거나 나
누어 가질 수 없었다. 동유재산에 대한 주민의 권리는 동네가입(入戶)과 더불어 취득하고 동네탈퇴(黜洞)와 더불어 상실하였다. 근대민법과 판례는 이를 이른바 “총유”재산으로 취급하였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동유”재산은 동네 주민들 모두의 동의를 받아 처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체 소유자의 동의로 처분이 가능한 총유재산과 구분되었다. 동유재산은 마을과 운명을 같이 하였고 주민들의 생존의 기초였기 때문에 전통사회의 법의식은 동
유재산을 처분불능의 역사적 유산으로 간주하였다.
법문화적 접근
자연은 자기 자신의 영역을 가진다. 산신과 지신 그리고 하신을 믿고 섬겼던 전통사회의 종교관념은 땅과 물에는 인간이 넘보지 말아야 할 불가침의 영역이 있음을 시사한다. 외래종교의 압도 및 문명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자연의 불가침영역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지만, 오늘날의 과학기술 수준이 인류최후의 단계가 아니라면, 자연에의 외경은 여전히 요청된다. 환경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사용가치 내지 미래의 선택가치를 위하여 일정부분의 자연자원은 인간의 손을 타지 않게 보존하여야 한다. 원주민들을 위하여 설정한 보호구역(reservation)을 넘어 자연 자체를 위한 보호구역이 설정되어야 한다. 자연환경보전법상의 생태계보전지역은 이러한 자연관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 보전지역은 그린벨트의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침해받기 쉽다. 인간의 이름으로 국가조차도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영역을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실정법적 접근
현재 실시되고 있는 바와 같은 자연환경의 보전은 1865년 미국에서 시작되고 19세기말 유럽 각지로 전파된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의 재인식에 기원을 둔다. 이러한 흐름으로인하여 영국에서는 1889년에 (왕립)조류보
호협회가 그리고 1895년에는 국민신탁(National Trust) 등의 임의단체들이 창설되었다. 이 단체들은 공익에 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서식지와 종의 양자를 보호하기 위한입법을 촉구하였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유사한 기구들이 유럽 각지에서 창설되고 있고 영국도 현재 자연환경보전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키는데 동참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노르웨이(1910)·덴마크(1917)·핀랜드(1923)·오스트리아(1928)에서 보는 바와같이 자연환경보전법들이 통과됨으로써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까지 자연환경의 보전을위한 제정법적 기초가 발전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법적 및 행정적 골격들이 정비되었다. 이 골격은 현재까지 유럽공동체 입법에 의하여 경우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
현행법제의 정비신탁의 개념과 범주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현행 1961년의 신탁법에 의하면, “신탁”이라 함은 신탁설정자[委託者]와 신탁을 인수하는 자[受託者]와의 특별한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특정의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일정한 자[受益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제1조제2항). 현행 신탁제도는 부동산·증권 등에 관한 사법적(私法的) 법률관계의 설정(제1조제1항)을 목적으로 하는 ‘사익신탁’(私益信託)과 학술·종교·제사·자선·기예 기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신탁’(제65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공익신탁의 일종으로 국민자연신탁을 설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종래의 ‘신탁’시스템은 새로운‘국민자연신탁’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협소하다.
국민자연신탁의 본격화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별도의 법을 제정함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전통적인 신탁과 다른 자연신탁의 개념을 설정하고 자연신탁에 인문과 환경 개념을 포섭시켜 예컨대 ‘문화유산’과 ‘생태계’에 대한 자연신탁의 설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 키워드 : 트러스트. 트러스트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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