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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계획, 그 이상’ 국제 컨퍼런스
새로운 도시 계획 방향과 세운상가 재생 사업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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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대규모 계획, 그 이상’ 국제 컨퍼런스의 일환으로 심포지엄이 서울시청에서 개최되었다. ⓒ양다빈

 

지난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대규모 계획, 그 이상 Beyond Big Plans(BBP)’ 국제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박소란(WeLoveTheCity, 도시계획가·건축가), 박혜리(KCAP, 도시계획가·건축가), 강빛나래(델프트 공과대학교 PhD 연구원)가 기획하고, 국제도시지역 계획가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City and Regional Planners(ISOCARP)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가 주최했다. BBP 국제 컨퍼런스는 최근까지 도시 개발의 주를 이루었던 마스터플랜을 통한 ‘대규모 도시 개발’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세운상가를 주제로 국내외 도시계획 및 개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앞으로의 도시개발 방향과 그 이행 전략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특히 최근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변경안’1과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와 맞물려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컨퍼런스 첫 날인 12일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아홉개국 열다섯 명의 도시계획 전문가의 주제 발표와 관련 토론으로 구성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으며,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국내외 60여 명의 전문가들이 세운상가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 결과를 발표했다. 심포지엄은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세션은, ‘도시계획을 재구성하자!Let’s Reinvent Planning!’는 주제로 도시 개발 과정에서 개발의 스케일과 개발 과정에서의 시민과 전문가의 역할 재정립 등에 대한 논의로 꾸며졌다. 두 번째 세션, ‘세운이야기Sewoon Story’는 컨퍼런스 이튿날부터 진행되는 전문가 워크숍 대상지인 세운상가 지역을 역사·사회·문화·경제적 관점에서 되짚어보며, 세운상가 재생 사업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대안적인 접근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세 번째 세션은 ‘다른 도시에서 배우다Learning from Cities’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각 도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계획 전문가와 학자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도시계획의 새로운 태도

첫 번째 세션에서 케이스 크리스티안서Kees Christiannse 교수(취리히 공과대학교, KCAP 설립자)는 ‘로프트 시티loft city’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처럼 크고 작은 스케일의 계획이 중첩된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대규모 계획이 기능에 따라 조닝을 했다면, 이제는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은 규모의 계획, 즉 지역별 특색에 따라 다양한 용도와 스케일의 개발이 섞여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지역을 마스터플랜에 따라 개발한다면 자본의 흐름에 따라 위험부담을 안게 되므로 작은 규모의 점진적 개발을 통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진 두 개의 주제 발표는 도시 개발 과정의 주체와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회복력 있는 도시를 넘어Beyond Resilience’라는 주제로 발표한 제프 헤멀Zef Hemel 교수(암스테르담 대학교)는 ‘집단 지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계획 과정에서 배제해 온 것”이라며, “전문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식의 태도로 수백 수천 아마추어의 아이디어를 수용하지 않는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예로 들며, “온라인상의 열린 플랫폼에 (옳고 그른) 많은 생각이 모이고, 각각의 아이디어가 서로를 고쳐주는 과정에서 더 나은 지식이 완성” 된다며, 도시계획 과정이 더 나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것이 아닌, 많은 아이디어를 축적하는aggregate 과정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이렇게 축적된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만드는 중계자moderator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요르크 슈톨만Jörg Stollmann교수(베를린 공과대학교) 역시 주제발표, ‘생산적인 공통의 기반을 위한 가치 발견Mining Value for Productive Common Ground’에서 “시민을 전문가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헤멀 교수와 의견을 같이 했다.


세운상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운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두 번째 세션에서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는 ‘20세기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운상가에 대한 역사·도시적 평가’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안 교수는 아시아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이후 소개도로의 슬럼화,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도심재개발사업의 결과로 탄생한 세운상가를 냉전 체제의 산물이자 과거 현대 건축의 상징으로 정의 내리며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한때 도심 상권의 번영을 주도했던 세운상가는, 강남 개발, 명동백화점 상권 부활, 도심부적격산업의 이전 등으로 상권이 이탈하면서 현재 도심 속 흉물로 남았다.

이충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세운상가 활성화 계획 총괄계획가)는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세운상가 재생 계획Sewoon Regeneration Plan에 관해 설명했는데, 세운상가를 재생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시가 진행한 일련의 도심부 발전 계획에는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한 뒤, 그 공간에 녹지축을 조성하고 주변을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계획이 지속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 교수는 “매번 계획에 포함되던 녹지축은 주민들의 이주를 필요로 했기에 큰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며, 수차례에 걸쳐 변경된 세운상가 활성화 계획이 매번 실행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서울시는 2013년 3월에 이르러 세운상가 건물군을 존치하고 주변 역사문화자산과 기존 산업 클러스터군을 활용하는 점진적 재생 개발 사업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세운상가 존치 결정 이후 진행 중인 점진적 성격의 재생 사업은 크게 ‘활성화 프로그램’, ‘산업 생태계 지원 보전’, ‘입체보행 네트워크’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그 첫 사업으로 종로에서 퇴계로까지의 전 구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1단계로 공공의 영역인 종묘 앞 종로의 광폭횡단보도, 복합문화공간인 광장, 3층 레벨의 보행데크, 청계천 상부의 공중 보행데크, 1층 주차 공간과 보행공간을 아울러 입체보행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충기 교수는 서울시에서 “이와 관련해 ‘초록띠 공원’의 복합 문화 공간화, 공중 보행로를 통한 주변 지역연계, 청계천 주변을 연결하는 수직 보행 네트워크 개발 등을 계획하고 있다”2고 밝혔다. 한편 이동연 교수(한국종합예술종합학교)는 1980년대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술하위문화적 유산―1980년 대 초반에 애플 복제 컴퓨터와 홈비디오가 호황을 누리며 세운상가 주변에는 청년 기술마니아들과 록메탈 등 불법 복제된 LP 음악과 성인 에로 비디오를 구하러 온 하위문화 주체들이 모였다―에 대해 설명하면서 향후 세운상가의 재생을 위해서는 건축 및 도시공학적 계획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원을 통한 창조적 기획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세운상가 활성화 계획과 관련해 보다 심층적인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좌장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는 청계천 복원 사업(2005년 완료)과 세운상가의 초록띠공원(2009년 조성)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며, 공공성의 가치를 내세워 역사적 건축물을 철거하고 공원화했던 과거 서울시의 행정 방식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운상가 활성화 계획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다. 안창모 교수는 “청계천 복원 사업 대상지의 대부분이 공공(서울시)의 소유였다는 점에서 대상지의 대부분이 민간소유인 세운상가 활성화 사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며 정책적으로 큰 변화라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 마치 세운상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공 소유의 ‘길’에 국한된 것이며, 민간의 요구가 있을 때만 정부 차원의 보조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세운상가 설계공모가 여전히 빅플랜(마스터플랜)을 요구하면서 ‘사적 영역’을 계획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충기 교수는 설계공모를 두고 “지속적인 세운상가 산업 쇠퇴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라며, 서울시에서는 공공이 할 수 있는 사업을 부분적으로나마 시행함으로써 세운상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 과정에서 민간 수준의 갈등 해소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세운상가 활성화 사업과 같은 재생 사업에서 고려될 수 있는 ‘서브컬처sub-culture’, 즉 활성화 과정에 문화예술을 결합하려는 노력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이동연 교수는 문래예술공장의 예를 들면서 “서브컬처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고무적이지만, 예술이 산업 클러스터를 점유하고 독점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 방안으로 기존 산업체와의 자재 선순환을 고려한 문화예술산업 도입,장인들의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콘텐츠 산업 개발 등을 꼽았다.


다른 도시에서 배우다

세운상가에 대한 논의 후 이어진 세 번째 세션에서는, ‘대규모 계획’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 여러 도시의 실험적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안드리스 헤이르서Andries Geerse 위러브더시티WeLoveTheCity 대표는 네덜란드디벤터 시City of Deventer의 예를 들며, 전문가의 역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시민들의 거친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그들이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을 정교하게 시각적으로 대신 표현해주는 역할에서 전문가의 역량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셩밍 우ShengMing Wu 홀+아키텍트Whole + Architects 대표는 타이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건축가)만의 언어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시민들에게 (도면이 아닌 그림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우리의 제안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에서 개선될 수 있는지 쉽게 지적한다”며 헤이르서 대표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빌럼 코릇할스 알터스 Willem Korthals Altes 교수(델프트 공과대학교)는 ‘대규모 계획’에서 연속된 ‘작은 계획’으로 전환된 세 개의 네덜란드 도시계획 사례(Amsterdam IJ Waterfront, Amsterdam Zuidas, Utrecht Centrum)를 들어 작은 계획이 연속적으로 수립되는 것이 큰 계획에 비해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대규모 계획은 구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대부분 측정된 예산보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하며, 계획 대상지는 완성될 때까지 이용이 불허되는 등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 워크숍

15일에는 심포지엄 이후 세운상가 개발 사업과 관련한 전문가 워크숍 최종 발표가 있었다. 이날 오전까지 이어진 3일간의 워크숍은 토지, 시간, 자본 및 투자, 개발방향, 산업 주체,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일곱 개의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두 시간에 걸친 최종 발표 후 시민 질의응답 및 워크숍 최종 요약 등이 이어졌다. 일곱 개의 팀으로 나누어 워크숍 발표가 진행되었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관련 제안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압축되었다.

“기존의 완전 철거 방향에서 선회한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이나, 아직 작은 계획의 스케일의 적정성이나 섬세함에서는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의견, “새로운 계획에서 지정한 건축 용적률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비율을 낮추거나 단계적·전략적으로 높여가야 한다”는 의견, “(공중보행로 사업에 대해) 공간을 연결하는 것은 다양한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새로 창출될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의견”, “현재 존재하는 산업 클러스터들의 연결고리를 파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 “여러 산업 군과 주변 지역을 포함해 하나의 큰 창조적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 등이 주를 이루었다.


한편, 3월 12일부터 22일까지 11일간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서는 ‘에이징 드래곤aging dragons’이라는 제목의 도시·건축 전시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는 국제 컨퍼런스와 연계해 준비된 것으로서 홍콩, 서울, 싱가포르, 방콕, 그리고 도쿄를 중심으로 아시아 선진 도시의 성장과 그 이면을 담았다.


지난 10여 년간 서울에서 시도된 야심찬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들이 최근 변경되거나 취소되고―뉴타운 재개발 수습방안 발표 및 7개 구역 해제(2012), 용산업무지구개발사업 취소(2013), 세운재개발촉진지구 변경(2013)― 다수의 아파트 단지가 미분양된 채 남아있는 등 그동안 제기되었던 도시개발 방식에 대한 의문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컨퍼런스는 이러한 의문에 답하려는 시도와 함께 ‘더 나은 도시 개발 방식’을 고민하고, ‘세운상가의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했다. 12개의 다양한 주제 발표와 토론, 그리고 전문가 워크숍까지 진행되었지만, 마지막 날 최종 종합에서 언급된 것처럼 “한 번에 뚜렷한 방향성을 제기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운상가 활성화 계획’의 현재 진행 상황과 개발 방향이 시민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국제 컨퍼런스가 세운상가를 위한 ‘대규모 계획, 그 이상’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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