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기품 있고 아름다운 외계인이 UFO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누빈다. 매의 시력과 늑대의 청력, 순간 이동 능력을 지녔다는 이 외계인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두 다리로 페달을 밟는다.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이 독특한 설정의 외계인은 지난 2014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이다. 드라마에서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은 람보르기니나 BMW를 거칠게 운전하는 재벌 2세가 아니라 유유히 자전거를 타는 외계인도민준의 소탈한(?) 자태였다.
판타지 드라마 속 설정이긴 하지만 별에서 온 외계인도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할 정도로 우리의 도시에서 자전거의 위상이 달라졌다. 최근 수년 사이, 서울한강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와 4대강 유역 등 전국에 자전거 도로가 신설·정비되면서 자전거를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자전거 인구는 1,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1 그중에서도 특히 자전거 출근 족, 일명 ‘자출족’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자출족 인구를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지만, 휴대하기 편리해 출퇴근용으로 주로 이용되는 미니벨로의 판매가 이전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보아 전체 자전거 인구 중에서도 자출족이 크게 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2 그동안 주로 레저나 여가용으로 인식되었던 자전거가 이제는 도시민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심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자전거의 어떤 매력에 빠져 매일 아침저녁으로 페달을 밟는 것일까? 우리의 도시는 이 ‘진격의 라이더’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번 특집에는 에디터가 자전거를 타보는 기사가 있어야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다’는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의 은근한 유혹에 덜컥 자전거 출근에 도전하고 말았다. 평범한 체력과 운동신경을 가진 20대 여성 직장인의 자전거 출근기를 소개한다.
두 번의 예행연습, 그리고 출근
지금까지 약 10개월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출근에 예행연습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안전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촬영 포인트는 물론 돌발 상황에 대비해 동선과 도로 및 자전거 상태, 도로 안전 등을 사전에 확인해야 했다. 신촌에 있는 집에서부터 방배동의 회사까지는 약 13km 정도의 거리로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자전거로 약 1시간 30분 정도(평범한 체력의 20대 여성의경우)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자전거 길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을 네비게이션 삼아 길을 수시로 확인하고 예행연습까지 해보았는데도 직관적으로 길을 알아 볼 수 없는 복잡한 구간이 많아 길을 찾느라 예측한 시간 이상으로 허비하게 되었다. 또 겨우내 묵혀둔 자전거가 삐걱대는 느낌이 들어 중간에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점검을 받느라 길 위에서 허둥대기도 했다. 도저히 누그러질 줄 모르는 꽃샘추위로 인해 미리 계획했던 자전거 출근일을 속절없이 미루며 자전거에 아예오르지 못한 날도 있었다. 변수의 연속이었다. 칼바람에 코를 훌쩍거리며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한 이번 기획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평소 따뜻한 주말에 친구들과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곤 했던 터라 자전거 출근도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자전거만 있으면 언제고 달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단순히 레저를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과 출근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달랐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전거 출근에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교통수단과 연계해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매일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해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건축설계사무소 겐슬러Gensler가 런던 시 정부와 시 의회, 비영리단체 런던 퍼스트London First, 로얄 타운 플래닝 인스티튜트Royal Town Planning Institute(RTPI)가 주최하는 런던 플래닝 어워드London Planning Awards에서 자전거를 위한 계획안으로 수상했다. 수상 작품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지하 터널을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전용 도로로 만든다는 계획안이다. 지하 공간에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만든다면 외부 조건에 덜 영향받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전거를 타면서 탁 트인 외부 경관을 감상하는 매력은 느끼기 힘들겠지만 이동의 편리함만 생각한다면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