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무한 반복해 듣는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른 곡을 섞어 들을 때도 있지만 그건 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비와 당신1’, ‘비와 당신2’, ‘비와 당신3’의 방식으로 파일명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연이어 재생했다. 왜 ‘비와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몹시 궁색하다. ‘확실히 멜로디가 키보드 두드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어’라고 황당한 답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고, ‘다음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목소리야’라며 감탄한 적도 부지기수다. 멋쩍게…. 특히나 ‘빛바랜, 사무친, 이젠 괜찮은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와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올 때면, 꾸역꾸역 한 문장 한 문장을 메꿔 나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별 이유 없이 관대해진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국화 노래를 이 곡 저 곡 찾아 듣다가1집에 실려 있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제목에 꽂혔다(노래가 아니라). ‘서론만 있는 글쓰기’란 작위적인 제목은 그 후유증이다. 미리 자비를 구한다.
서론 하나, 종이 잡지
몇 해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국가별 종이 신문의 사망 연도를 발표했다. 한두 나라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전 세계 52개국의 종이 신문이 몇 년도에 사라지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의 확산 속도를 볼 때,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종이 신문이 파산을 선고하고,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종이 신문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2029년과 2030년, 일본과 중국은 2031년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른 2026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정확한 연도에는 오차가 클 수 있지만, 각 언론사의 기조가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그의 예측이 부도수표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이다. 종이 신문의 내일과 종이 잡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한때 우후죽순 늘어났던 지하철 무가지가 이제 1종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종이 매체가 실제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1 공짜로 손에 쥐어주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를 펼쳐들지 않을 만큼 종이 매체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한 해가 다르게 기능과 디자인, 휴대성을 강화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물론 종이 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기업 광고가 아닌 ‘독자’를 기반으로 존립하고 있는 독일 신문처럼 종이 신문이 독자와의 소통을 전향적으로 늘려야2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종이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디지털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서론 둘, 조경 매체
조경 분야의 매체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경과조경’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환경과조경』과 월간 『에코스케이프』 이외에, 『조경세계』라는 제호를 단 잡지도 있고, 일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라펜트’와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도 있다. 『환경과조경』만 존재하던 시기(198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에는 인사 동정이나 행사 소식과 같은 뉴스부터 새로 완공된 작품, 설계공모 수상작, 비평, 에세이, 답사기, 신제품 소개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콘텐츠 구성이 불가피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인사 동정이 실려 있는 뉴스 지면부터 펼쳐보았다. 그만큼 정보 창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이는 꼭 관련 매체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의 발달에 기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환경 속에서 『환경과조경』은 어떤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까?
서론 셋, 저널과 매거진
‘잡지’는 일정한 제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을 일컫는다. 동일한 제호와 정기적인 발간이 핵심이다. ‘저널’은 프랑스어인 ‘주르날journal’에서 비롯된 것으로,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잡지는 주간으로 발행된 과학 저널이었다. ‘매거진’은 원래 군대의 무기고 또는 총의 탄창을 가리키는 말이 었으나, 1731년 런던에서 발행된 『더 젠틀맨스 매거진The Gentleman’ Magazine』의 제호에서 유래하여 현재는 잡지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해 ‘무기고’라는 단어가 쓰였다.3 어쩌면 지식의 탄창, 정보의 무기고 같은 의미였을 수도 있다. 잡지는 신문과 다르게 조금 더 제한적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보다 세분화된 분야나 주제 혹은 취향과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설 자리를 넓혀 나간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같은 제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발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 성격이 나뉜다.
『환경과조경』이 독자들의 무기고에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본론은 시작도 못하고 서론만 세 가지 버전으로 써버리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정제된 정보’를, 오직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신문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손으로 펼쳐 볼 수 있는 ‘편집된 지면’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건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무엇이고, ‘누가’ ‘왜’ 종이 잡지를 읽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대목을 쓰고 나니,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란 럼블피쉬 최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니, ‘비와 당신’을 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