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paradise은 ‘여기here’가 아닌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발붙인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의미하는 낙원이란 말에는 이미 상실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잃어버린 낙원이란, 우리의 상실감을 자극해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애틋하게 만든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 예술이 이미 무르익었던 명·청 원림의 성과를 집대성한 제왕의 궁원이다. 강희제가 ‘최초 원명원’을 옹정제에게 내려준 이래로, 청나라의 전성기인 소위 ‘강건성세’(강희, 옹정, 건륭 134년에 걸친 시기)를 지나 중국이 서구 열강과 충돌하는 도광제, 함풍제 재위기에 이르기까지 원명원은 끊임없이 조영되었다. 청조의 다섯 황제는 500에이커(약 61만 평)가 넘는 땅 위에 100여 개의 전당과 정자가 이루는 ‘낙원’의 풍경을 창조했다. 그러나 원명원은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살라졌으며, 동치제가 그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훼손되었다. 중화민국 이래로는 도시화와 현대화에 따른 파괴가 이어졌다. 원명원 약탈은 1970년대 원명원 복원의 움직임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도서출판 한숲, 2015)은 지금은 폐허로 남은 원명원을 중국의 원림사와 문화사, 근현대 정치사를 넘나들며 글로 복원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인 왕롱주는 중국에서 태어나 타이완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역사학자다. 이 책의 초판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타이페이와 중국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애초에 저자가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은 다분히 서구의 독자들을 겨냥한 저술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이 책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휘말린 원명원의 운명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배치에서 우리는 저자의 메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를들어 화친이 맺어진 날에도 방화가 여전히 계속되었음을 논증한다거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한 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비판했던 빅토르 위고가 원명원의 ‘약탈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장면에서는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적 태도에 대한 냉소를 느낄 수 있다.
서태후(자희 태후)에 대한 기술도 흥미롭다. 함풍제와 서태후의 유명한 로맨스도 원명원에서 시작된다. 청나라를 40년간 지배했던 그녀는 아편전쟁 이후 파괴된 원명원을 재건하려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태후는 군함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가로채 청의원 보수를 위한 경비로 충당했다. 물론 그녀가 세계사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홀로 바꾸기는 어려웠겠지만, 자신의 향락과 원명원에 대한 애정으로 중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화원을 남겼다. “크게 보면 이화원은 청의원을 보수한 것이지만, 청의원 본래의 설계를 개선하여 모든 건물과 풍경을 극도로 세밀하게 일치시켜 전체적인 공간의 완전성을 추구했다. 정원의 바위는 예술적으로 쌓아올렸고, 그림 같이 자연스런 배경과 시적 상상력을 자아내는 인공 건축은 정교하게 안배했다. 그것이 지금의 이화원이다.” 원명원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일상에 대한 묘사는 지금은 없는 이 낙원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원명원이란 문화 유적을 둘러싼 중국 학계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한껏 고양된 애국심은 원명원의 대대적인 복원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과연 복원을 해야 하는지부터 복원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때 왕즈리란 인물이 “원명원의 건축 역사에서 설계의 변동은 늘 있었던 일”이라고 일깨우며, 전체 포국은 유지하면서 “낡은 건축을 현재의 필요에 알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시대와 생활에 맞게 설계 변동이 있었던 역사 유적이 비단 원명원뿐은 아니리라. 우리도 파괴되고 훼손된 전통 건축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복원한다면 어떤 시점을 원형으로 삼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또 한 시점의 복원을 위해서라면 이후의 역사적 흔적은 없애는 것이 옳은지 늘 논쟁거리다.
원명원의 복원뿐만 아니라 재현의 문제도 떠올랐다. 중국 저장성에 이번 달 실물크기의 복제 원명원, ‘원명신원圓明新園’이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원명신원이 처음 계획될 당시부터 반대했다는 실제 원명원 측은 “원명원은 문화유산 자원으로 유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제가 불가능하다”면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한다.1 원명원을 재현(복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홍콩부근의 도시 주하이는 서양루, 구주청안, 방호승경을 모방하여 원명신원을 지었다. 그리고 이 원명신원의 첫해 수입은 1.6억 위안이 넘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새로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제왕 궁원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가나 건축가 할 것 없이 모두 현대화 속에서 어떻게 본래 유적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의 저자 왕롱주는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통 건축과 원림 공예의 최고 수준의 기술은 이미 알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자금이 충분하면 언제라도 잃어버린 궁원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잃어버린 기예는 다시 되찾을 수 없다.” 저자는 원명원 유적 공원이든 복제 원명원이든 상업주의의 위협에 맞서 완전하게 예술적 품위를 재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상태를 온전히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역사가인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와 대면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도서출판 한숲에서 직접 편집한 첫 번째 단행본이란 의미가 있다. 편집자는 책의 첫 번째 독자다. 지난 몇 달간 원명원이라는 커다란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건축물과 사람들의 이름에 편집의 속도를 내지 못하기도 하다가, 원명원이 중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부분에서는 원명원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면서 서구의 침탈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식 한자의 벽 앞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화의 원형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느린 편집자를 진득하게 기다려준 디자이너와 편집장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한동안 함께 했던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놓고, 새로운 독자 품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잠시 맡아 기르며 정붙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심정이랄까. 부디 두루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