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여성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던 내가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꾼 후 그 초기부터 현재까지 디자인 프로젝트는 물론 연구와 강의까지 모든 활동을 함께 해 온 건축가 파트너이자 남편인 매튜 줄Matthew Jull과의 대화를 담고자 한다. 설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공동 작업의 과정과 팀의 시너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작은 회사의 특성상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팀 자체가 바뀔 때가 많고 학교에서 직접 가르치는 학생들도 많이 참여시키다보니 그렇게 만들어진 팀원간의 궁합까지 매번 다른 것이 사실이다. ‘같이 하기’는
쿠토노톡KUTONOTUK과 북극 디자인 그룹Arctic Design Group(ADG)의 공동 대표로서 나와 매튜 줄이 디자인과 연구를 병행하는 방법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영어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조금 달라지기도 했지만, 되도록 평소 대화할 때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조리나(이하 조): 우리 둘만의 돋보이는 공통점은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던 게 아닐까? 지금은 디자이너로 인정받으며 활동하고 있지만, 다른 대학원생들과 비교하면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디자인 비전공자들이었잖아. 결국 대학원에서 각각 건축과 조경 학위를 수여받긴 했지만 디자인은 우리에게 두번째 길이었어. 너는 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연구원 생활까지 하다가 건축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고, 나 역시 정치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NGO에서 일하다가 조경의 길을 선택한 거잖아. 학부 때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점이 현재 우리 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
매튜 줄(이하 줄): 글쎄. 하나 확실한 건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학부 전공으로 건축이나 조경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도록 말리겠다는 거야. 우리의 배경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인은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특히 지금 시대의 건축가나 조경가는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알아야 하는 제너럴리스트임이 분명한데다 서로 다른 가치와 사고 방법을 연결하고 종합할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잖아. 물론 도시의 물 순환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거나 공공 건축을 위주로 설계를 진행했다거나 구체적인 전문 분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조: 하지만 우리의 그런 배경이 디자인에 매번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줄: 그게 아이러니한데,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아. 하지만 공간 또는 디자인을 정의하고 해석하는 방향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우리가 북극 디자인 그룹을 만든 이유 중의 하나도 디자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과 디자인을 이야기해 보기 위해서잖아?
조: 뭐.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개념 중의 하나가 세상의 모든 것이 문화적 구성체cultural construct라는 점이었던 것 같아. ‘태생적 운명’이라는 개념에 도전하면서 무엇이 되었든 인간 사회에서는 역시 각자 생각하고 말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하는 거지. 진리도 언젠가는 변할 문화적 사상이라는 얘기잖아. 조경을 하면서 특히 ‘자연’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 이런 여성학의 배경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자연’ 또한 언제 어디서나 색다르게 제조manufacture될 수 있는 문화적인 매체라는 거지.
또 한 시대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지 NGO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바꾸겠어!’ 같은 슬로건을 보면 오히려 사기가 떨어져. 안 믿겨지더라고. (웃음)
조리나는 1982년 생으로, 미국 웰슬리 대학교(Wellesley College)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마이클 반 발켄버그 어소시에이츠(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맥스완 아키텍트 + 어바니스트(Maxwan Architects + Urbanists)에서 다양한 도시설계, 조경,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조경건축학과 대학원 강사로 있으며, 하버드 GSD에서 초청강사로 가르친 바 있다. 건축가인 매튜 줄(Matthew Jull)과 쿠토노톡(KUTONOTUK)의 공동 대표로서 헬싱키 구겐하임(Helsinki Guggenheim)과 헬싱키 공공 도서관(Helsinki Public Library), MoMA PS1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MoMA PS1 Young Architects Program), 유로판(Europan)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수상한바 있다. 또한 북극 디자인 그룹(Arctic Design Group)의 대표로서 미국 워싱턴 D.C.의 정책 연구 기관과 협력하여 북극 도시와 극한 랜드스케이프(extreme landscapes)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www.kutonotuk.com | www.arcticdesigngroup.org
매튜 줄(Matthew Jull)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Theoretical Geophysics)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파리의 지구물리학 연구소(Institut de Physique du Globe)와 미국의 우즈 홀 해양 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버드 GSD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SOM(Skidmore, Owings & Merrill LLP), 스티븐 홀 아키텍트(Steven Holl Architects), MIT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에서 건축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08~2012년에는 네덜란드 OMA/Rem Koolhaas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건축학과 조교수(Assistant Professor)이자 조리나와 쿠토노톡 및 북극 디자인 그룹의 공동 대표로 있다. www.kutonotuk.com | www.arcticdesigngroup.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