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협력하여 1970년 설립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 tee on Cultural Landscapes(이하 ISCCL)는 문화 경관의 유산 가치 정립과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연구 및 학술 활동을 총괄하는 단체로 매년 연례 회의를 진행한다. 또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는 문화 경관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의 정보 교환 및 교류의 장으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2년에 한 번씩 연례회의와 함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에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연례 회의에 이어 3일부터 6일까지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두행사는 각각 해녀박물관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문화 경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 경관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는 장으로서 활용되었다. 또한 연례 회의와 국제 심포지엄은 회의와 연구 발표를 통한 지식 교류와 함께 3번의 문화 경관 답사가 포함된다. 참석자들은 올레길, 별방진, 불턱, 돌하르방공원, 성읍민속마을,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비자림, 만장굴 등 제주도가 가진 독특한 경관을 직접 둘러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상과 연계된 경관
26개국에서 약 1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 일상과 연계된 경관Re-thinking Lifescape: Linking Landscape to Everyday Life’이라는 주제 아래 총 4개의 세부 주제(문화경관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론, 보존과 관리 전략 및 계획, 사례와 경험, 섬 경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매기 로Maggie Roe(영국 뉴캐슬대학교 건축계획조경학부 부교수)는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변화와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에 대해 설명하며 경관과 우리 삶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시했다. ‘경관의 계획, 관리, 디자인 및 보호 측면에서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경관 여행에서 지나치는 장소에 대한 의미의 이해에 경관의 묘사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인간과 자연 프로세스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어떻게 ‘무형 경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근거와 일상적 경관이 제공하는 문화적 의미 및 연상에 대한 지각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경관 의식’의 개념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어서 두 번째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제주대학교 부총장)은 심포지엄이 개최된 제주도의 특별한 일상 문화 경관에 대해 설명했으며, 이후 심포지엄은 네 가지 세부 주제별로 각각의 연구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을 아우르는 주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번 심포지엄이 주목한 경관은 우리의 평소 생활상을 담은 일상 경관이다. 주제에 맞춰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가 심포지엄에서 다수 발표되었다. 세계조경가협회 전 회장이 었던 마사 세실리아Martha Cecilia Fajardo는 유럽경관협약에 이어 일상 경관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기위해 도입된 두 번째 국제적 협력의 결과라 할 수 있는 LALILatin American Landscape Initiative를 소개하며 문화 경관의 보존에서 해당 지역의 일상 경관이 가지는 독자적인 성격에 기반한 보존과 활용이 모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LALI는 경관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다양성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LALI는 이에 참여하는 각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밀라노공대 건축건설환경시공학과의 리오넬라 스카조시Lionella Scazzosi는 시골 경관Rural Landscape의 유산적 가치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어 다른 발표자들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그밖의 많은 나라의 다양한 문화 경관 사례에 대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중국 칭화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후 유안Xu Yuan이 발표한 ‘티베트의 일상 경관 형성에 있어 불교가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 등은 그간 우리가 알 수 없는 해외의 독특한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섬 경관과 제주
이번 심포지엄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세부 주제는 개최지의 특성을 고려한 섬 경관이었다. 섬 경관이라는 주제 아래 제주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섬이 가지고 있는 내륙과는 다른 독특한 일상 경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심포지엄 개최지인 제주도의 경관에 대한 다양한 논의 이외에도 한국의 다도해와 터키 쿤다섬Cunda Island, 크로아티아 흐바르섬Hvar Island, 오스트레일리아 로트네스트섬Rottnest Island 등의 문화 경관이 소개되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최혜경은 제주의 해녀 문화에 대해 해석하고 제주의 독특한 바다 경관인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이 ‘해녀 경관’이라 표현한 제주도의 독특한 해녀 문화는 불턱 등 다양한 형태로 제주도의 물리적 경관 형성에도 그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고령화가 심화되어 해녀 경관의 보존이 절실한 상태다. 섬 경관과 같은 작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 경관에 대한 사례 연구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본 심포지엄에서 여러 국가의 섬 경관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보다 많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섬 경관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격년제로 운영되는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은 2016년 터키의 이스탄불 연례 회의에서는 개최되지 않으며, 2017년 인도의 델리에서 연례 회의와 함께 ‘유산과 민주주의Heritage & Democracy’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순기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역사 보전을 공부하고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지정이 마을주민과 관광객에게 가져온 인식 변화와 마을 문화 경관 보존 방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세계유산과 문화 경관, 그리고 그 변화과정의 기록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