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을 의미하는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광복 이후 70년간 국가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한국인의 주택은 절박한 희망에서 출발해 개발에 대한 욕망을, 핵가족화의 단면을, 고도성장의 명암을 투영해왔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세찬 파고 속에서 세워지고 부서졌던 우리의 주택은 어떤 지형도를 그려왔을까? 또 그 지형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건축학회(회장 김광우)와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재영)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주택·도시의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광복 이후 70년간의 주택·도시 변천 과정을 그린 ‘타임캡슐70’, 1945년부터 지속되어 온 건축학자들의 주택 도시 연구 보고서 아카이브 ‘아키피디아 2015’, 국가 주도의 공공 개발 자료를 모은 ‘신도시 개발 변천사’, 주택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브랜드 아파트를 조명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건축가들의 우수 주택 작품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 주택선’,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주택 실험을 소개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 어린이 건축 교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건축 모형을 전시한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 등으로 구성된다. 과거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주택에서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주택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미래의 주택문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는 11월 5일부터 15일까지는 서울 대치동 푸르지오 밸리(대우건설 주택문화관)에서,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옥에서 진행된다. 특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오늘, 주택을 말하다’, ‘건축 큐레이터 토크’, ‘건축가와의 만남’, ‘노후공동주택 맞춤형 리모델링’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및 프로그램이 함께 기획되었다.
한국의 주택과 도시의 흐름
주택 건설과 도시 개발은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현대사의 주요 이슈였다. 그동안 한국의 주택이 흙벽 돌 집에서 판잣집, 외인주택, 농촌표준주택, 새마을운동 개량 주택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동안 우리의 도시에는 개인과 사회의 모든 욕망과 고뇌가 펼쳐졌다.
‘타임캡슐70’, ‘아키피디아 2015’, ‘신도시 개발 변천사’등의 전시실에서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주택과 도시가 밟아온 도정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와 과제를 반추한다.
특히 ‘타임캡슐70’은 가로 22m, 세로 12m, 높이 3.3m 크기의 전시실 한 칸을 꽉 채워 주택 문화사를 캡슐 형태로 전시해 근현대 한국 주택 문화사와 당시의 문화, 경제, 정치, 기술, 사건 등을 한 눈에 비교·대조할 수 있게 했다. 시대 순으로 정렬한 연표와 사진, 영상이 주택·도시 역사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수도권 및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도시의 공간적 확산 과정을 그려낸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마당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중산층은 편리와 쾌적을 충족시켜주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열광했다. 신도시와 중산층의 끈끈한 관계이면에는 대단위 택지 확보를 가능하게 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이 있었다. 민간과 공공 주택 공급 기관이 더불어 주도한 신도시의 주택 상품인 아파트 단지는 한국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담아내는 보편적 재화로 자리하게 되었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중산층의 아파트 수요를 충족시켰던 ‘택지개발촉진법’은 지난해 9.1부동산정책에 의해 폐지될 예정이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재생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한국의 주택·도시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에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지난 시대의 개발 역사를 되짚어 본다.
주택이 그리는 미래의 삶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숨 가쁘게 변모해 온 우리의 주택과 도시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1층에 전시된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과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새로운 미래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은 개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작품을 사진과 모형으로 소개한다. 이정훈(조호건축), 조진만(조진만 아키텍츠), 오신욱(라움), 조성욱(조성욱건축사사무소) 등 신진건축사 대상과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24명의 젊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고 주택 분야의 미래 트렌드를 전망할 수 있게 했다.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대한건축학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어린이 건축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삭막하고 획일화 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익숙한 아이들의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래 주택에 대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집을 공중에 띄우기도 하고 집 내부에 나무와 벤치를 들여 놓아 공원처럼 꾸미기도 하는 등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은 우리나라 주택과 도시의 궤적을 추적하고 주택과 도시가 반영하는 시대상을 비춘다. 단순히 주택·도시 변천사의 단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흐름과 엮어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주요 아파트 브랜드의 특징을 소개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섹션은 특정 회사들의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그쳤고 한국건축문화대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주택선’ 섹션은 평면적 전시 구성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