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공원, 생성의 공공 영역으로.”
2008년 8월, 일간지에 연재하던 칼럼 한 꼭지의 제목이다. 글 속에서 마로니에공원은, 비록 그 태생은 황당했지만 주변 지역 전체가 문화의 영역으로 재편되어 온 놀라운 과정을 증거하며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할 도시 공공 영역의 잠재력이 가득한 곳이라 했다. 칼럼이 실린 얼마 후, 30년을 그렇게 지내왔던 ‘근린공원’이 ‘재정비 기본계획’이란 이름으로 조달청 입찰에 등장했다.
동기:
도시 공공 영역, ‘입찰’되는 처지에 놓이다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 한 곳이 낙찰 받았고 그 회사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대학로에 사무실을 둔내가 오랫동안 그 공원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던 차에, 위 칼럼까지 읽었으니 이 프로젝트는 내가 맡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하자마자 대학로 전체의 역사와 변화 과정에 대한, 문화에 대한, 도시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 등, 과업 항목에도 없는 이야기로 당시의 담당자들을 당혹하게 하며 공식·비공식 논의들을 풀어나갔다. 각종 심의 또한 무사히(?) 완료해 주니 그제야 서로 이해의 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곳을 도시 공공 영역으로 간주하는 근본 인식에는 끝내 함께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제기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와의 경계 지우기, 서울대학교 기념물의 이전 등을 실행시키려는 의지는 결국 엿볼 수 없었다.
2010년 가을, 새로이 선출된 구청장에게 마로니에공원은 이미 익숙하고 각별한 과제였다. 묻혀있던 기본계획이 다시 시작되면서 더욱 많은 협의 과정이 필요했다. 공연 관계자, 시민단체, 주민들을 비롯해 대학로에 관계하는 온갖 분야의 사람들과 단체가 논의 대상이었고, 그 외에 작품을 설치한 작가, 문리대 이적지 기념물과 연관된 서울대 학교 동창회, 김상옥 열사 유족회, 장애우 협회 등 그 범위도 아주 넓었다. 논의 과정은 설계자의 위치에서, 때론 발주자의 위치에서 진행되었다. 어쨌든 그 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가진 희망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이 과정에서 모두 고스란히 드러났고, 논의되었고, 조정되었고, 합의되었다. 우리 사회의 공공적 과제의 진행에서 이제 본격적인 협치, 즉 ‘거버넌스governance’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스로 떠안은 일을 과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공공적 과제의 치열함을 멀리 피하고 싶은 도시 공공 영역, 마로니에공원 규방의 계획가들은 안전하고 따뜻한 규방에 그대로 남으라.
과정:
설득과 협상의 진수를 겪다
지하의 공중화장실은 안전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다 결국 지상으로 올라왔다. 때마침 터진 도심홍수 덕택에 한 개 층 깊이로 내려가는 계단식 야외 공연장의 경사를 완만하게 조절했다. 이 공연장은 공원의 일부이자 휴식 장소, 작은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쏟아낸 요구는, 내가 믿는 바 이 공원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프로그램과 그 운영 원칙에 따라 설득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요구가 각자의 꿈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 가운데 최고의 사건은 공사 막바지에 벌어졌다. 보기 드문 두께의 장대석을 투수 공법으로 공원 전체에 깔아 나가던 중, 왜 공원을 흙바닥으로 만들지 않느냐는 전임 시장의 지적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쓸모없는 회의가 이어졌고 공사 현장의 리듬이 깨졌으며, 나의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마저 고갈시켰다. 어처구니없는 그 일은 3개월 후 다시 시작된 현장 작업의 질에 최악의 영향을 끼쳤다. 개탄스러운 일 그 자체였다.
마로니에공원 작업에서 기록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은 이 영역의 한 주체인 예술위와의 소통과 협력이었다. 이 공원의 태생적 한계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할의 문제였다. 모두의 인식 속에 마로니에공원은 공원과 건물 영역이 하나지만 기실 그 속에는 종로구청과 예술위가 엄연히 소유와 관리의 영역을 나누고 있다. 인식과 실재가 다르다는 말이다. 한때 이 모든 영역의 관리가 문예진흥원(예술위의 전신)에 위탁된 시기가 있었지만 어설프게 조각공원을 만들려 시도하다 실패한 일도 있었다. 그 후 공원에는 두 주체에 의해 경쟁하듯 많은 어설픈 것들이 쌓여 나갔고 못난 TTL극장도 그 틈에서 만들어졌다. 예술위 또한 본관 건물(현재는 예술가의 집)에 울타리를 두르고 관공서처럼 이 영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깨뜨리고 정돈하는 일,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식과 실재의 영역이 일치하도록 만드는 일을 위해서 두 주체, 종로구청과 예술위의 대화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글 이종호
사진 유청오
총괄 건축가 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스튜디오 메타)
건축 설계 우의정, 이상진, 김회성(건축사무소 MIC)
조경 설계 박승진(기술 자문), 이든플랜(실시 설계)
토목 설계 대한컨설턴트
구조 설계 제이텍구조 엔지니어링
기계·전기 설계 GK기술단
막구조 설계 대동 시공 삼일기업공사
발주 종로구청
공사비 약 36억
원설계 기간 2009년 9월 ~ 2011년 12월
공사 기간 2012년 2월 ~ 2013년 10월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24-1번지 외
주요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 전시장, 공원
대지 면적 5,802.00
건축 면적 323.77㎡
조경 면적 829.41㎡
이종호는 1957년 서울 생이다. 1989년 건축과 예술을 통해 사회의 점진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스튜디오 메타를 설립한 이후 건축, 도시 연구, 문화기획, 출판 등 전방위적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노근리역사 평화박물관 등 사회의 기억을 매개로 발언하는 건축 작업을 진행한 바 있으며,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 도시기본구상, 순천 문화도시연구 등 문화도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대구 문화창조발전소 조성사업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2014년부터 운용될 차세대 KTX의 차량 디자인 진행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