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적인 대형 공원을 위한 상상적 기획
2015년 11월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했던 용산공원 국제 심포지엄을 끝으로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는 공식적인 활동을 마무리했다. 2015년 2월 용산공원 조성 부지를 세계 기념물 감시World Monument Watch(WMW)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에 참여 하면서 ‘용산공원’을 처음 맞닥뜨린 후 10개월 만이다. 익히 들어 익숙하지만 아직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공원, 용산공원을 함께 그려 나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이 글은 용산공원과 관련해 ‘무엇인가’를 처음 기획하던 때부터 심포지엄을 마치고 다시 ‘우리의 공원’상을 모색하는 출발점에 선 현재까지 과정상의 결과물이며, 실재와 비실재로 경험한 장소에 관한 것이다.1 시작은 이러하다. 201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 도시공원 컨퍼런스International Urban Parks Conference에 참석했다.2 미국 각지에서 모인 1,000여 명의 도시공원 커뮤니티 리더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도시공원의 디자인과 개발 방식, 운영·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재정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컨퍼런스가 개최된 샌프란시스코는 용산공원 계획의 벤치마킹 사례로 접했던 프레시디오가 있는 곳 이라 한층 기대가 높았다. 도시의 확장에 따라 도심지와 인접하게 된 프레시디오 공원은 도시의 활력과 공원의 여유가 공존하는 생경한 장소였다. 습관적으로 계획가·설계가의 관점에서 공원을 들여다보던 경직된 사고에 경고등이 켜졌다. 도시 삶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촉매제인 도시공원의 역할을 다시 반문하기시작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공공적인 대형 공원을, 다시 말해서 모든 시간대에 모든 장소에 무료로 접근 할 수 있고 전적으로 공공의 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대형공원을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느 정도 이러한 현상은 공원의 물리적 스케일과 사회적 복잡성의 영향이다.”3
줄리아 처니악과 조지 하그리브스가 펴낸 『라지파크 Large Parks』에서 존 비어즐리는 공공적인 대형 공원의 위기를 지적한다. 이미 민관 파트너십public-private partnership에 의한 도시공원 조성과 운영관리의 당위성이 많은 사례를 통해 논증되었고, 최근에는 확장된 개념의 공원 거버넌스가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장소만들기place-making 관점에서 추진해 온 공공 주도의 순차적 방식―1단계: 정책 수립(policy), 2단계: 자금 투입 및 조성 (finance and place-making), 3단계: 관리(maintenance)―은 재고되어야 한다. 공원의 100년, 그 이상을 바라보는 국가공원을 만드는 일에 새로운 관점과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용산공원의 조성·계획 과정에는 20년 이상 논의되어 온 깊고 넓은 담론의 층위가 있다. 현재 용산공원 조성은 기본계획과 설계공모 당선안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용산공원 주변 지역의 관리·계획 수립 역시 추진 중에 있다. 현재 시점에서 용산공원 계획에 대한 이슈와 쟁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도시공원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레시디오를 사례로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도시공원의 혁신과 새로움을 모색하는 상상적인 기획imaginative enterprises.4 하나의 사례가 둘이 되고 연이어 늘어나 지난 11월 심포지엄에서 도시공원의 운영관리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글은 심포지엄 기획 시 고려했던 관점을 공유한다. ‘좋은 공원의 계획과 설계, 그리고 이후 단계에서 누가 어떻게 공원을 운영·관리하는가.’, ‘그리고 이를통하여 어떤 가치를 창출해 내는가.’ 네 가지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자족적 도시공원 운영관리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시드니 하버국립공원이며, 두 번째는 연방 정부 산하 조직으로 출발하여 독립적인 트러스트 조직이 운영·관리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세 번째는 시와 민간 조직의 연대를 통해 점진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시애틀의 맥너슨 공원, 마지막으로 시민 주도 단체가 정부의 유휴 부지 개발 계획을 저지하고 공원으로 지켜낸 베를린의 템펠호프다.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 자족적 공원 모델의 지향
시드니 동북쪽 연안에 위치한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Sydney Harbour National Park은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이민자의 역사가 시작된 상징적인 장소이며, 남태평양연안으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지니고 있다. 군사 방어 기지가 점유했던 장소를 1990년대 후반 공원으로 변모시킨 사례다.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은 시드니 하버 연안 250km를 따라서 위치하고 있는 6개의 수변 지역―울위치 항구와 파크랜드(Woolwich Dock & Parklands), 플래티퍼스 뉴트럴 베이(Platypus Neutral Bay), 차우더 베이(Chowder Bay), 미들 헤드(Middle Head), 조지 하이츠(Georges Heights), 노스 헤드 생크추어리 맨리(North Head Sanctuary Manly―과 2개의 섬―코카투 섬(Cockatoo Island), 스네퍼 섬(Snapper Island)―을 포함한다. 코카투 섬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는 17세기 말 대영 제국 시대에 건설된 교도소 수용 시설과 18~19세기의 산업 시설, 군사 방어 시설을 포함하는 역사·문화 유산이 있다. 특히 코카투 섬의 교도소 터Convict Site는 대영 제국 식민지에 조성된 11개의 교도소 시설 가운데 하나다. 호주 독립 이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네거티브 유산으로 유럽 식민지 세력의 확장을 위해 동원되 었던, 수천 명의 청교도 죄수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공공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군사 기지 폐쇄 이후에는 유보지인 상태로 방치되었다. 1990년대 초 호주의 연방 정부는 이 지역에 업무·상업 기능 복합 재개발을 구상했고, 민간 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부지에 위치한 역사·문화적 자원의 가치와 자연 환경 복원의 필요성을 인식한 지역 사회는 거세게 반발했고, 공원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호주연방 정부는 부지 매각을 금지하는 특별법을 재정하기에 이른다.
심주영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2015년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도시의 외부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시의 삶에서 필요한 좋은 공원을 위해 지속가능한 도시 공원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