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어떤 나라일까. 호주의 대표적 조경설계사무소의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계속 머리를 맴도는 생각이다.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를 떠나는 먼 나라,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 정도가 호주에 대한 내 남루한 지식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하셀(Hassell),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 등의 설계사무소가 호주에 기반을 두었다는 정도.
이번 TCL 특집호는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2015년 2월호),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 이후 세 번째 조경설계사무소 특집이다. 토포텍 1이나 아장스 테르의 작품에서 독일적 특징이나 프랑스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 특집을 통해 ‘호주성/호주 조경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에 조성된 그들의 작업을 촬영한 사진은 낯선 대륙의 건조한 공기나 나른함, 드넓은 자연의 웅장함이나 밝은 태양을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분명 유럽이나 북미의 세련됨이나 도시성과는 다른 종류의 인상이었다. 편집 디자이너 팽선민은 이번 특집의 메인 컬러를 ‘브릭 오렌지(brick orange)’로 정한 뒤, TCL의 시그니처 프로젝트인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의 붉은 모래가 “워낙 강렬해 다른 색은 생각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대표적 로드무비 중 하나인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2015)의 포스터도 광활한 호주 대륙의 붉은 황무지(outback)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평생 호주 시골 마을인 브로큰힐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택시 기사 렉스가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존엄사 허용법이 통과된 다윈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몰고 무려 3,000km의 호주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 여정에서 난생 처음 바다를 보기도 하고,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이 받는 차별에 맞서기도 한다. 고향에서 렉스는 원주민인 폴리를 사랑하지만 백인 이웃에게는 비밀로 하고, 원주민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 바에 함께 가지도 못한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차별받는 원주민들이 숲 속에서 종족과 상관없이 어울리는 모습에서, 호주의 문화가 호주를 정복한 유럽의 것이라면, 숲이나 황무지로 대변되는 호주의 자연은 원주민과 더 가깝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TCL은 원주민의 화전 농법을 추상화한다거나(컬티베이티드 바이 파이어), 문화를 예술적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고(애들레이드 식물원 습지),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여 화합할 방법을 강구한다(빅토리아 스퀘어).
TCL의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이 호주 조경계에 미친 영향은 흥미롭다. TCL의 디렉터 중 한 명인 페리 레슬린은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이 호주 조경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당시 호주에서 조경은 역사가 길지 않은 새롭고 젊은 전문 직종이었다. 대부분의 조경은 호주의 지질, 지형 문화, 기후, 식생을 반영하기보다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이후 호주의 경관과 식생을 사랑하고 호주에서 교육받은 열정적인 젊은 조경가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호주의 식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생태계를 복제하기보다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추상적으로 묘사하거나 조형적,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방문자에게 호주의 경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방문자들이 이 정원을 통해 우리 대륙으로 은유적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스토리를 구상했다”는 답변을 남겼다.(34쪽)
1966년 호주조경학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조경학회가 1972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호주 조경가들의 고민이나 궤적이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얼마 전 한 젊은 조경가가 과연 한국 조경의 특색은 무엇인가(혹은 정체성이 있는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성에 대한 질문이 좋은 작업을 생산해내는 데 의미 있는 접근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독창성이나 정체성(혹은 나만의 경쟁력)을 고민하면서 자신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숙명에 공감하기도 했다.
“TCL의 작업이 유니크하다고 생각하는가? TCL의 작업은 호주 고유의 문화나 기후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TCL의 디렉터들은 “전 세계의 조경가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이 고유한 성장 배경, 교육, 관심,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각 사이트마다 다른 특징이 있고 우리는 그저 그 땅의 맥락과 문화, 기후에 맞춰 디자인할 뿐이다. … 호주 조경의 스타일이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저 호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춰 디자인하고 호주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사용할 뿐이다. 아시아, 유럽이나 아메리카와 비교해 특별한 접근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나라의 조경가와 마찬가지로 사이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접근할 뿐”이라고 답했다.(114쪽)
세 번째 작가 특집호를 마무리하고 보니, 호주 조경가도 호주의 경관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여러 독자에게도 동시대 조경가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지면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이번 특집을 위해 헌신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뛰어준 호주 리포터 이홍인과 TCL의 마케팅 및 홍보 담당자 리키 레이 리카르도(Ricky Ray Ricardo)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