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복잡한 세상을 그리는 좋은 소재가 되곤 한다. 짧지만 권선징악을 압축해 보여주는 이솝우화부터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풍자한 『동물농장』까지. 특히 귀여운 동물 캐릭터는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친근감을 줄 수 있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2016년 개봉한 ‘주토피아(Zootopia)’ 역시 동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해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시작은 평범하다. 토끼인 주디는 경찰관을 꿈꾸지만, 작고 힘이 약한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다른 동물의 비웃음만 산다. 하지만 여느 디즈니의 주인공처럼 주디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인 날쌘 몸놀림을 살려 경찰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꿈의 도시 주토피아로 발령을 받는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식의 진부한 결말로 마무리될 것 같지만, 아직 러닝 타임은 한참이나 남았다.
영화는 주디가 주토피아에 도착하며 색다른 국면에 놓인다. 우선 주토피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동물(Zoo)의 이상향(Utopia)처럼 꾸며진 도시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주디가 타고 온 기차부터 사뭇 다르다. 기차에는 햄스터같이 작은 동물이 내릴 수 있는 문, 비버가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문, 주디부터 기린까지 덩치 큰 동물도 불편함 없이 오갈 수 있는 문 등이 마련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해 사탕을 파는 작은 가게까지, 주토피아의 모든 시설에는 모든 동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멋진 도시라는 걸 과시하듯 앵글은 화려한 주토피아의 모습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하지만 주토피아가 마냥 아름다운 도시인 것은 아니다. 주디가 경찰청에서 처음 맡게 된 임무는 불법 주차 단속.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동료들은 여전히 토끼는 작고 약하기에 위험한 임무를 맡을 수 없다고 말한다. 토끼뿐만이 아니다. 여우는 교활하다는 통념, 육식 동물은 포악함을 숨기고 있다는 믿음 등 평화로운 도시 주토피아의 이면에는 편견이 가득하다. 영화는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로 나누어진 단순한 구도를 사용했지만 여기에 인종, 이데올로기, 성별, 지역, 출신 등 어느 것을 대입해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편견과 줄곧 싸워온 주디가 자신 역시 또다른 편견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영화는 좀 더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분화한다. 나 역시 편견인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여겨온 일은 없었을까. 영화는 고민에 빠진 관객을 질책하기보다 위로한다. 우리는 “내일도 실수할 거고, 또 실수할 것(I’ll keep on making those new mistakes. I’ll keep on making them every day)”이지만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든 계속 시도할 것(I wanna try everything)"(각주 1)이기 때문에.
‘주토피아’가 캐릭터 간의 갈등과 눈물 어린 화해의 과정을 통해 주제를 이야기한다면 『고양이 낸시』는 귀여운 에피소드를 통해 편견에 대해 말하는 만화다. 낸시는 고양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 천적임에도 불구하고 쥐들이 낸시를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냈다. 가볍지만 때로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붕어빵 봉지를 품에 넣은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본래 트위터에서 한 장 내지 두 장으로 짧게 연재되던 만화가 책으로 출간될 수 있던 힘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쥐들이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낸시의 귀여움이다. 하얗고 부드러운 털과 분홍빛이 감도는 코. 딱하지만 고양이를 마을에 두면 위험하다며 만일의 일을 걱정하던 쥐들은 낸시를 만나자마자 외친다. “이런 망할! 정말 귀엽잖아!"(각주 2)집단이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은 낸시의 귀여움으로 손쉽게 사라진다. 만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지만, “이런 망할! 정말 귀엽잖아!”라는 대사에는 쥐들이 고양이가 아닌 낸시 자체를 바라보았다는 의미가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편견이 없는 어린 쥐들은 더욱 쉽게 낸시와 가까워진다. 후에 낸시가 북쪽에서 온 하얀 쥐가 아닌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어린 쥐들은 낸시가 혹여 마을에서 쫓겨날까 걱정부터 한다. 아이들에게 이미 ‘북쪽에서 온 하얀 쥐’나 ‘고양이’는 수식어에 불과하며, 낸시는 배려심이 깊고,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힘이 쎈, 하얀 털이 보드라운 친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와 조금 다르지만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물론 작가의 말처럼 “요즘엔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도 자신과 다르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만약 현실이었다면 더 갈등이 심화되고 낸시는 더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낸시에게 “분명히 좋은 친구들이 생길 테고, 그로 인해 행복"(각주 3)해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고양이 낸시』는 복잡한 사회를 단순하게 바라봄으로써 얻는 즐거움을 알려줄 것이다. 참고로 엘렌 심은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학교를 그린 ‘환생동물학교’를 연재 중이다. 주인을 그리워하는 동물이 가득한 AH-27반 학생들과 선생님을 통해 이번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엘렌 심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면 ‘환생동물학교’를 통해 따뜻한 그림체로 그려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살짝 엿보시길!
*각주 정리
1. ‘ 주토피아’의 OST ‘Try Everything’의 가사 일부.
2. 엘렌 심, 『고양이 낸시』, 북폴리오, 2015, p.43.
3. 이지혜, “[고양이 낸시] 엘렌 심 ‘제 고양이도, 독자분들도 낸시처럼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IZE 2015년 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