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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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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절제와 진정성
새봄을 알리는 화창한 표지로 시작하는 이번 3월호에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유럽 조경계의 지성으로 이름난 토르비에른 안데르손Thorbjörn Andersson의 근작 세 점과 에세이 한 편을 싣는다. 스웨덴과 미국에서 미술사, 건축, 조경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부터 조경가로 활동해 온 안데르손은 지난 30여 년간 조경 설계를 통해 도시 공공 공간의 사회적 역할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그의 작업에는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검박하고 섬세한 디테일, 단순과 절제의 미덕, 실용적 기능성이 도시 공간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케아IKEA와 에이치앤엠H&M의 고향 스웨덴만큼 자연 환경이 디자인 문화에 영향을 미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넓지만 척박한 토지, 제약이 많은 기후와 지형은 사회민주주의 정신과 결합되어 패션과 가구, 음악과 영화, 제품 디자인과 건축은 물론 도시설계와 조경에서도 “더 아름다운 실용”을 지향하는 “굿 디자인”의 전통을 낳았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식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 열풍의 핵심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디테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이런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한 문화적 토양이 곧 스웨덴 디자인의 열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르비에른 안데르손의 조경 작업은 스웨덴 디자인 정신의 도시 공간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호 지면에 소개하는 그의 캠퍼스, 묘지공원, 기업 정원은 서로 다른 성격의 도시 공간이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가로지르는 절제와 실용의 미학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안데르손은 『환경과조경』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특집 격으로 다루고 싶은 ‘위시 리스트’ 조경가 중 한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우연한 기회에 다소 급하게 섭외되어 그의 작업 전체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홈페이지http://thorbjorn-andersson.com에 공개된 포트폴리오를 통해서라도 그가 지향하는 절제thrift와 진정성authenticity의 도시 조경 전반을 살펴보시길 권한다. 조경가에 의해 생산되고 있는 동시대의 많은 외부 공간이 얼마나 과장과 허위로 가득 차 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손의 조경가로서 이력 중 특이한 점은 30년 이상 북유럽의 대표적 조경가로 활약해 왔음에도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경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한 사무실에 적을 두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작업하며 때로는 다른 조경가, 건축가, 도시계획가와 유연하게 협력하는 이채로운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독립 조경가, 프리랜서, 1인 오피스 등 여러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그의 작업 방식이 어떤 장점과 한계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데르손의 방식은 최근 국내외의 젊은 세대 조경가들 사이에서 시도되고 있는 1인 또는 소규모 작업 집단 경향과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토르비에른 안데르손을 작품보다 글로 먼저 만났다. 그는 실무 조경가로서는 드물게 여러 책과 잡지를 통해 적지 않은 글을 발표해 왔다. 조경 작품 못지않게 검박하고 단순한 그의 글에는 현대 조경이 도시 공공 공간의 형성과 회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장이 군더더기 없는 정제된 논리로 담겨 있다. 이를테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vs. 조경 설계”에서 그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옴스테드나 맥하그의 접근 방식과는 달리 “건축 중심의 블록이 아니라 공공의 공간”을 출발점 삼아 도시의 생존과 회복을 꾀하는 시대정신이라고 해석하면서 동시대 조경 설계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Topos 71, 2010). 이번 『환경과조경』 3월호를 위해 그가 보내 온 에세이 “설계 방법으로서 자연”은 짧고 간소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현대 도시에 자연의 진정성을 제공하는 조경의 가치를 담담히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도시 교외 지역들이 상상 속에만 존재할 법한 고풍스러운 작은 마을을 흉내 내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으며, 에어컨이 가동되는 쇼핑몰들은 전 세계 이국적인 명소를 보여주는 환상의 테마 상업 시설로 설계되고 있다. 이는 가공된 환경일 뿐 진정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조경은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 자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스러움은 진정성 넘치는 경험을 제공한다. … 이러한 경험은 … 자연과 도시 사이에 개념적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자연에 대한 경험은 예측 불가능한 개방적 성격을 띠며 변화의 여지를 갖고 있다. … 자연은 현대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은 나무, 식물, 바위 그리고 개울 같은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양상을 품은 여러 과정의 집합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다시 찾아온 봄에 길을 내주고 있다. 이번 3월호가 독자 여러분의 봄기운 가득한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이번 호에는 자르뎅 드 바빌론(Jardins de Babylone)의 도전적 작업들도 소개한다. 진취적 실험을 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도 갖춘 이 젊은 조경가 그룹의 대표 아모리 갈롱(Amaury Gallon)과의 인터뷰를 본지 프랑스 리포터 박연미 씨가 담당해 주었다. 작품 섭외와 인터뷰를 진행해 준 수고에 감사드린다. 집적경관, 축조경관, 절충경관으로 이어진 최영준 소장(Laboratory D+H)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옮긴 그의 베이스캠프가 ‘전진경관’의 새로운 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LTH 캠퍼스 파크
LTH(Lund Institute of Technology) 캠퍼스 파크의 핵심은 대규모 녹지 공간이다. 캠퍼스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펼쳐져 있는데, 과거에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1961년 LTH가 설립됐을 당시, 이 대학의 목표는 스웨덴 남부 지역에 건축 등 기술 분야의 교육을 담당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LTH는 1만여 명의 학생에게 고등 교육을 하고 있다. 건축가 클라스 안셀름(Klas Anselm)이 단순한 형태의 붉은 벽돌 건물 10여 동을 설계했는데, 이 건물들은 언덕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배치됐다. 추후 건물을 확장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둔 것이다. 실제로 학교는 많이 발전했지만, 여유 공간이 사라질 만큼 충분한 확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다소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Thorbjörn Andersson and PeGe Hillinge Project Team Staffan Sundström, Nicholas Bunker, MonicaZulunga Client Akademiska Hus Location Lund, Sweden Area 17,000m2 Completion 2016 Photographs Thorbjörn Andersson 토르비에른 안데르손(Thorbjörn Andersson)은 스웨덴과 미국에서조경, 건축, 미술사를 연구하며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그중에서도 도시의 공공 공간을 만드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주요 프로젝트로는 스웨덴 칼스타드의 산드그룬드 공원(SandgrundPark), 스톡홀름의 셰빅스토리에트 광장(Sjövikstorget Plaza), 말뫼의 다니아 공원(Dania Park) 등이 있다. 1989년부터 스웨코 아키텍츠(Sweco Architects)에 적을 두고 있으며, SLU(Swedish Universityof Agriculture)의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스킴 메모리얼 그로브
아스킴Askim은 고텐부리Gothenburg 남부에 위치한 사목구parish로 언덕 위에 교회와 공동묘지를 두고 있다. 기존의 공동묘지를 확장하려 했는데, 전통적인 공동묘지에서 벗어난 메모리얼 그로브Memorial Grove를 만들고자 했다. 언덕 북쪽에는 높이가 5m에 달하는 화강암 옹벽이 분명한 경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지가 펼쳐져 있다. 이 공간은 분지 같은 형상인데 과거에는 개울이 흐르는 협곡이었다. 그 영향으로 지면은 물기를 머금고 있으며, 관목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Landscape Architect Thorbjörn Andersson and Sweco Architects Project Team Staffan Sundström, Malin Unger, Charlotta Löfstedt, Tobias Phersson Location Gothenburg, Sweden Area 3,500m2 Completion 2017 Photographs Åke E:son Lindman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노바티스 캠퍼스 피직 가든
노바티스 캠퍼스에 위치한 피직 가든Physic Garden은 고대 수도원의 정원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고대 수도원은 과거 수도사들이 식물의 약제학적 특성에 대해 연구했던 장소로, 숨겨진 야외 실험실이자 세속적 삶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해 야외극장, 미로 또는 여러 겹의 양파 같은 구조의 반개방형 공간을 조성했다. 방문객은 주목과 너도밤나무로 구성된 울타리에 난 네 개의 입구를 통해 내부로 진입하게 된다. 정원 중심부의 선큰 공간에는 31종의 약용 식물이 줄무늬 모양으로 식재되었다. 화강암 벽이 그 둘레를 두르고 있으며, 지면보다 낮은 레벨에 위치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식물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풍긴다. 방문객은 모종밭을 내려다보며 다채로운 색상과 질감의 회화 작품이나 줄무늬 카펫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Thorbjörn Andersson and SwecoArchitects Project Team Pege Hillinge, Johan Krikström, JohnnyLindeberg, Emma Norrman, Therese Egnor, AlexanderCederroth, Markus Moström, Pål Svensson Consultants Schönholzer + Staufer GmbH, Beat Rösch,Basler + Partner Client Novartis Pharma Location Novartis Campus, Basel, Switzerland Area 2,800m2 Completion 2012 Photographs Jan Raeber and Sweco Architects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설계 방법으로서 자연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 중 하나로, 북반구의 높은 위도에 위치해 영토 일부가 북극권에 속하는 나라다. 만류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매우 따뜻하지만,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상당히 춥다. 인구 밀도는 낮은 편이며 영토 대부분이 숲, 산, 해안가로 이루어져 있다. 그로 인해 세 개 지역 정도만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로 발전했다. 얇은 토양층, 노출된 암반, 울창한 산림, 호수 등이 지리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척박한 환경은 이동 거리를 길게 만들고 발전을 어렵게 해 성장 가능성의 한계로 작용해왔다. 광대한 토지, 기후 그리고 척박한 환경은 스웨덴의 문화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명료한 움직임, 단순함, 순수함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웨덴 디자인의 특징이다. 이는 패션, 요리, 문학, 영화, 음악, 가구, 조경 등 모든 문화적 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웨덴 디자인의 핵심은 솔직함과 진솔함으로 장식이나 꾸밈을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 하더라도 단순한 기본 형태를 해치지 않는다. 만약 스웨덴 사람이 절제와 풍요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대개 절제를 고를 것이다. 스웨덴식 조경은 가능한 것을 다 하는 조경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쓰는 조경이다. 이러한 태도는 검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오늘날 스웨덴은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는 부유한 국가지만, 희박함sparseness은 스웨덴의 전통 일부를 차지한다. 기후와 지형이 스웨덴의 조경 설계에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지에 이질적인 것을 더하는 대신 현재 지닌 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로 인해 기능적이고 단순하며 자연 소재를 최대한 활용한 조경이 탄생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꾸미거나 정돈하기보다 날것 그대로를 드러낸 것이다. 설계 시 활용할 수 있는 식물 종 역시 제한되는데, 식물학자 후고 쇼르스Hugo Sjors는 스웨덴 전역에 분포하는 식물군을 서식지 기준으로 12개가량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공중 정원
독특하고 정교한 거미줄 형태의 식재 프로젝트 자르뎅 드 바빌론Jardins de Babylone은 건축설계사무소인 아키빌드Archi-build, 조경가 캐시 비비스Cathy Vivies와 함께 거미줄 형태의 독특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 엘리제 궁 맞은편, 다게소 거리rue d’Aguesseau와 생토노레 거리rue du Faubourg Saint-Honoré 사이에 위치한 독특하고 인상 깊은 구조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중량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알루미늄 구조를 사용했다. 케이블 1톤, 기초 4톤, 식재용 화분 300kg이 소요됐다. 수많은 알루미늄 화분을 맞춤 제작했고, 제이콥Jakob 케이블 구조를 사용했다. 실외용 반음지 식물을 도입했는데, 동물 종 다양성을 위해 꽃가루를 생산하는nectar-producing 식물을 식재했다. 식물종은 사전에 검역했다. ...(중략)... Creator Jardins de Babylone Client AXA Groupe Location Rue Aguesseau, Paris, France Realization 2015 Photographs Jardins de Babylone 자르뎅 드 바빌론(Jardins de Babylone)은 2004년 설립된 벽면 녹화 전문 조경 회사로, 건물 내ㆍ외부 식재와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건축가, 조경가, 디자이너, 디벨로퍼 등에게 혁신적이고 적절한 해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금속 및 목재 전문가, 엔지니어 등과 긴밀한협업을 통해 공중 정원과 같은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자르뎅 드 바빌론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며, 식재가 가능한 가구도 생산한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코다마 트리
물방울과 세포 사이의 디자인 2017년 파리 디자인 위크Paris Design Week 2017에 전시된 이 나무는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에서 영감을 받았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나무를 구부려 나뭇가지를 표현했고, 이 가지에 코다마Kodama 램프를 매달았다. 램프의 재료는 램프를 제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자르뎅 드 바빌론이 채소 램프Vegetable Lamp를 제작하기 위해 시도했던 퍼즐 방식의 프로토타입 이후, 코리안Corian이 구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0mm 두께의 트레이에서 5–축 절삭기로 잘랐다. 이 퍼즐 조각은 연동 고정 시스템으로 구성된 조각들을 서로 맞물리게 하여 코리안을 가열하여 모양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변형의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5–축 절삭기의 진동으로 인해 많은 조각들이 파손되었다. ...(중략)... Designer Amaury Gallon(Jardins de Babylone) Creator Jardins de Babylone Client/Exposition Paris Design Week 2017 Completion 2017 Photographs Jardins de Babylone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생명의 나무
장엄한 대나무 바오밥 자르뎅 드 바빌론은 대나무 주위에 놀라운 공간을 상상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내에 자연의 오아시스로 정원이 구현되었다. 콘크리트와 환경 오염, 도시의 끝없는 소음은 평온과 경이로움의 장소를 필요로 한다. 이곳은 위안의 장소로서 평온함을 가져온다. ...(중략)... Designer Amaury Gallon(Jardins de Babylone) Creator Jardins de Babylone Realization 2013 Photographs Jardins de Babylone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그린 버블
자연에 가까운 휴식을 위해 자르뎅 드 바빌론은 네덜란드 화훼 사무소Office Hollandais des Fleurs의 의뢰로 파리 시내 네 곳, 콜레트 광장Place Colette,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 쿠르 생테밀리옹Cour Saint-Emilion, 생제르맹데프레 광장Place Saint Germain-des-Prés에 그린 버블을 설치했다. 장소마다 각기 다른 초화류를 식재하여 장소별로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프레스티지The Prestigious: 파리 국립극장 앞 콜레트 광장의 고귀한 분위기는 난초와 에스키난너스 자포로레피스Aeschynanthus japhrolepis (lipstick plant)로 만들었다. 정글The Jungle: 몽파르나스 역 앞의 정글에는 필로덴드론Philodendrons , 메디닐라 마그니피카Medinilla magnifica(showy medinilla), 네펜데스Nepenthes (벌레잡이통풀tropical pitcher plant)를 식재했다. 초현실Psychedelic: 쿠르 생테밀리옹에는 화려하고 붉은 베고니아, 갈색 초화와 브리에세아Vriesea, 네오레겔리아Neoregelia , 타카Tacca 와 같은 풍성한 초화가 선택됐다. Creator Jardins de Babylone Client L’office Hollandais des Fleurs Location 4 different places in Paris Realization 2010 Photographs Jardins de Babylone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식물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자르뎅 드 바빌론Jardins de Babylone은 전통적인 조경 회사로 시작해 벽면 녹화,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분야에서 독특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는 아틀리에로 변화를 꾀하며 주목받는 회사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자르뎅 드 바빌론을 이끌고 있는 아모리 갈롱Amaury Gallon을 본지 프랑스 리포터인 박연미 씨가 인터뷰했다. _ 편집자 주 Q. 식물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2004년 프랑스 몽트뢰유Montreuil에서 전통적인 조경 회사로 시작했다. 주로 개인 정원의 설계와 유지ㆍ관리를 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는 특별한 경쟁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매우 빠르게 깨달았다. 이때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 처음으로 시작한 예술적 벽면 녹화mur vegetal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7년 가지고 있던 5만 유로(약 6,700만 원)를 전부 투자하여 파리에서 쇼룸이자 사무실인 현재 아틀리에를 열고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초기 단계에서 많은 프랑스 조경 회사가 이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해 방수 처리와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여 설치할 수 있는 벽면 녹화를 위한 기술 특허를 내고 상업화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기술적인 안정성 때문에 많은 아티스트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이를 통해 여러 디자인상(A’Design Award(2014), Acteurs du Paris Durable(2015), Paris Shop & Design(2016), Les Victoires du Paysage(2016) 등)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9년 즈음에는 이 분야에도 새로운 경쟁자가 빠르게 나타났고 좀 더 혁신적인 분야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때 관심 가진 분야가 그린 디자인이었다. 정원을 설계할 때 건물 내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식물을 통한 인테리어 설계를 시작했다. 기존의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식물을 활용한 우리의 새로운 시도를 프랑스의 한 조경 잡지사가 주목했다. 프랑스에는 튈르리Tuileries에서 열리는 자르뎅 자르뎅Jardins, Jardin,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등 많은 조경 관련 축제가 있어, 새로운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는 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 잡지사는 우리에게 매해 백지 수표를 주며 이런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게끔 했다. 이때 상업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그린 디자인 분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우리만의 디자인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러 매체에 노출되면서 마케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재는 조경 설계, 벽면 녹화, 그린 디자인 분야가 전체 수익의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도그패치 로프워크
도그패치Dogpatch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근대 역사의 켜는 여러 가지이지만 3번가와 23번가의 교차로만큼 다양한 측면을 내포하는 장소는 많지 않다. 비전형적인 각도로 위치한 건물들은 장소의 역사적 맥락을 암시하는데, 이전에 밧줄 생산 공장인 터브스 코르디지 컴퍼니 로프워크Tubbs Cordage Company Ropewalk가 있던 장소다. 터브스 코르디지 컴퍼니 로프워크가 비스듬하게 놓여 있던 부두는 전통적인 도시 조직을 가로질렀으며, 만Bay을 향해 1,000피트 이상 뻗어 밧줄 생산 공장과 고객들을 이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밧줄 공장은 1856년부터 1963년까지 운영되었으나 해상 산업의 쇠퇴에 따라 1970년대 말, 존 M. 우드 모터 코치 센터John M. Woods Motor Coach Center로 변경되어 운영되었다. 오늘날 기존 건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주택난 해결과 맞물려 지금까지 존재하던 몇 안 되는 창고와 공장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도그패치 산업 유산 계승의 중요한 시점인 오늘날 도그패치 로프워크는 역사적인 부두의 기억을 되살리고 경관 디자인을 통해 해상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구현하고자 설계되었다. Lead Designer David Fletcher(Fletcher Studio) Developer Avant Housing Contractor Devcon Construction Incorporated Landscape Contractor Martina LandscapeContractors Civil Engineer BKF Irrigation Design ISC Irrigation Irrigation System Hunter Industries Client/Owner AGI Capitol Location San Francisco, CA, USA Size 1.2 ac Budget $1.2 million Completion 2017 Photographs Craig Crozart 플레처 스튜디오(Fletcher Studio)는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건축, 도시설계, 환경 계획 등 포괄적인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설계사무소다. 다양한 협업 방식과 맥락적인 접근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지속가능한 경관, 도시 공간 그리고 생활 기반 시설을 만들고 있다. 또한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 역사, 정책, 경제, 생태 등 대상지의 특성에서 디자인과 계획의 해법을 도출해낸다.
스토르스트룀 스테이트 프리즌
경관 속 교도소 팔스테르Falster에 위치한 신축 교도소인 스토르스트룀 스테이트 프리즌Storstrøm State Prison은 5,000년 전의 거주 흔적이 남겨진 오래된 농업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대지는 스칸디나비아의 마지막 빙하기 때 조성된 것으로 완만한 곡선을 형성한다. 교도소를 에워싸는 높이 7m, 길이 1,300m의 콘크리트 벽은 이러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래된 지형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하학적인 선과 유기적인 경관의 관계를 다룬 작업인 크리스토의 ‘달리는 담Running Fence’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교도소의 벽이 경관 속에 어떻게 자리할 것인가에 대한 영감이 되었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Marianne Levinsen Landskab Consortium C.F Møller Architects A/S, Rambøll A/S Client The Danish Prison & Probation Service /Direktoratet for Kriminalforsorgen Location Blichersvej 1 Gundslevmagle, 4840 Nørre Aslev,Denmark Area 290,000m2 Construction Cost DKK 50,000,000 Competition 2010 Completion 2017 Photographs Torben Eskerod 마리아네 레빈센 란스카브(Marianne Levinsen Landskab)는 도시계획, 기후 변화 대응 프로젝트부터 공공 공간 및 개인 정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조경을 수행하고 있다. 휴먼 스케일과 주어진 공간 사이에서 이용자와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건물과 경관 간의 대화에서 표현적인 해법을 창출하고자 한다. 또한 지속가능성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기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 환경과조경 358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대연 롯데캐슬 레전드
대연 롯데캐슬 레전드Daeyeon Lotte Castle Legend는 남쪽으로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며 황령산, 이기대공원 등 자연 녹지 공간과 가까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자랑하는 단지다. 총 30개 동, 3,149세대 규모의 대형 단지로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상징적인 외부 공간을 연출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레전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건폐율을 16.58%로 낮추고 조경 면적을 최대한 확보해 입주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우선 대단지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단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 오픈스페이스와 단지 전체를 순환하는 동선을 계획했다. 중앙 오픈스페이스는 최대폭 40m, 연장 400m 규모의 대형 녹지 공간으로 산수정원, 캐스케이드, 계류로 이어지는 수경관이 특징적이다. 특히 입주자 사전 점검 단계에서 한파를 기회로 삼아 수경 시설을 밤새 가동해 빙벽을 조성했는데, 이는 부산은 물론 기존 아파트 단지에서 찾아볼 수 없던 특별한 경관을 선사했다. 수경 시설을 따라 모던한 직선형의 대형 티카페와 야외 테이블을 적소에 배치하고, 다양한 조형물과 어우러진 암석원과 초화원 등을 조성해 공간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경 설계 제이티이엔지 건축 설계 (주)성일종합건축사사무소, (주)일신설계 시공 롯데건설(주)(현장: 양태봉 과장, 김재경 대리, 김종식 대리 / 본사: 정재혁 부장, 김승태 사원) 조경 식재 (주)이길조경 조경 시설물 아세아환경조경 산수 정원 청람조경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주)원앤티에스 놀이 시설 (주)원앤티에스, (주)에코밸리, (주)드림월드, (주)청우펀스테이션 발주 부산대연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 위치 부산시 남구 남구청1길 27 일원 대지 면적 130,665m2(30개동, 3,149세대) 조경 면적 44,157.31m2(조경면적율: 33.8%) 완공 2018. 2.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영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Winner Adjaye Associates, Ron Arad Architects With Gustafson Porter + Bowman, Plan A, DHA Designs 아자예 어소시에이츠, 론 아라드 아키텍츠, 구스타프슨 포터 + 보맨, 플랜 A, DHA 디자인 Honourable Mention Diamond Schmitt Architects With Ralph Appelbaum Associates, Martha Schwartz Partners, Arup 다이아몬드 슈미트 아키텍츠, 랠프 아펠바움 어소시에이츠, MSP, 아럽 Honourable Mention heneghan peng architects, Sven Anderson With Gustafson Porter + Bowman, Event, Bartenbach, Arup, Bruce Mau Design, BuroHappold, Mamou-Mani, Turner & Townsend, PFB, Andrew Ingham & Associates, LMNB 헤네간 펭 아키텍츠, 스벤 안데르손, 구스타프슨 포터 + 보맨, 이벤트, 바르텐바흐, 아럽, 부르스 마우 디자인, 뷰로하폴드, 마무-매니, 터너 앤 타운젠드, PFB, 앤드루 잉햄 앤 어소시에이츠, LMNB 심사위원 Sir Peter Bazalgette(Jury Chair), Charlotte Cohen, Samantha Cohen CVO, The Lord Daniel Finkelstein OBE, Alice M. Greenwald, Ben Helfgott MBE, Rt Hon Sajid Javid MP, Natasha Kaplinsky, Rt Hon Sadiq Khan, Chief Rabbi Ephraim Mirvis, Dame Julia Peyton-Jones DBE, Paul Williams OBE, Sarah Weir OBE, Malcolm Reading 영국 DCLG(The Ministry of Housing,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가 주관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는 지난 2016년 9월 공고를 시작으로 2단계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2016년 11월 참가 의사를 밝힌 100여팀 가운데 10팀을 선정했으며, 2017년 10월 ‘아자예 어소시에이츠 + 론 아라드 아키텍츠’ 팀을 최종 당선자로 선정했다. 런던 빅토리아 타워 가든Victoria Tower Gardens 내 웨스트민스터 궁(영국 국회의사당) 인근에 계획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메모리얼과 교육센터(지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설계안은 빅토리아 타워 가든의 경관(접근성, 동선, 표지판, 야간 조명, 편의 시설, 식재 등)을 개선하는 동시에 공원으로서의 기존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메모리얼은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나 런던의 중심지에 위치하는 추모를 위한 국가적 랜드마크의 가치를 지녀야 하며, 대상지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 센터는 메모리얼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하며, 수백 명을 수용하는 행사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공모의 핵심이다. 진행 김정은, 김모아, 박경의, 이윤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당선팀, UK Holocaust Memorial Foundation
[영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Adjaye Associates, Ron Arad Architects
대상지와 주제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해 설계안을 도출했다. 대상지 자체의 맥락과 그에 따른 책임감의 무게를 존중하고, 이 비극으로부터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방문객을 고취하고자 했다. 새로운 시점으로 공원을 바라보고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존의 수목 캐노피 아래에 섬세하면서도 뚜렷한 경사지를 제안했다. 이는 공원에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템스 강이 보이는 새로운 경관을 선사하며, 방문객이 다른 관점으로 대상지 전체를 바라보게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영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Diamond Schmitt Architects
지하 3.5m 지점에 조성된 메모리얼은 홀로코스트로 인한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을 나타내는 공허한 공간이다. 넓고 완만한 나선형의 경사로를 따라 진입할 수 있으며, 어두운 철제 벽에는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와 집단 처형장의 이름을 크게 새겨 넣어 방문객에게 침통함을 느끼게 한다. 경사로와 벽을 서로 교차되는 형태로 계획해, 그에 따라 유입되는 자연광량이 달라지게 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경사로가 벽의 궤도를 벗어나는 것은 공동체가 인종주의로 인해 사일로silo로 쪼개지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결과는 어둠, 분열, 그리고 파괴적 부조화임을 암시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영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heneghan peng architects, Sven Anderson
설계안은 국회의사당의 우뚝 솟은 존재감을 인지하되 그 화려한 도상성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있다. 빅토리아 타워 가든Victoria Tower Gardens의 지상부는 현재의 기준선datum이며, 메모리얼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과거뿐만 아니라 과거의 위기가 현재에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목소리와 만날 수 있다. 지상부보다 낮은 곳에 조성된 메모리얼 뜰courtyard에서 올려다본 풍경은 국회의사당과 영국 시민 그리고 지난날의 민주주의적 다짐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상부에 올라서면 관용적인 사회의 가치와 현재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집단적 바람에 공감할 수 있다. 지하부로 내려가는 내러티브와 전환적 경험, 자연광이 쏟아지는 현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의 회귀는 방문객이 하나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빛, 창, 공간
새 달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환경과조경』이 도착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아 들고 어떤 글들이 실렸나 살펴봅니다. 생각, 사진 그리고 소식이 적당히 섞인 『환경과조경』, 그야말로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책을 보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벌써 원고 마감할 때구나. 이번엔 어떤 사진으로 글을 쓰나?’ 사진 폴더를 뒤적입니다. 그 달에 찍은 신선한(?) 사진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오래된 사진들까지도 들춰 봅니다. 추억이 담긴 음악이 옛 시간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예전 사진을 볼 때면 사진을 찍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겐 사진이 일종의 기억 저장 매체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번 사진은 며칠 전 답사한 당진 아미미술관의 전시실 모습입니다. 아미미술관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미술가 부부가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꾸민 곳인데, SNS를 통해 사진들이 소개되면서 최근 부쩍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전시실 한쪽 면을 넓게 차지하는 창문들과 마룻바닥을 통해 예전 교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니 전시실의 작품들이 또 새롭게 보입니다. 전시실 흰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전시물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빛인가 봅니다. 조경에 비해 건축은 훨씬 더 치열하게 빛을 고민하던데, 조경가도 빛에 대해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미미술관. 따뜻한 빛이 가득한 전시실 내부도 좋았지만 기다란 복도와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작은 시골 학교의 느낌도 참 좋았습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절충경관
잠시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3시 34분. 알람을 못 들었는데 눈이 떠졌다. 상하이의 밤은 아직 컴컴하다. 이제 3박째. 첫 이틀 동안 클라이언트 그룹과 설왕설래하며 잡아놓은 방향대로 수정하려 막상 도면을 펴니 생경하게 다가온다. 내일 있을 보고에서 옥상 정원의 계획안을 확정 짓지 못하면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실시 설계팀이 무너지게 된다. 폴더를 뒤적여 라이노 파일을 찾는다. SHCL001_6F_Rooftop_16.3dm, 16번째 수정본이다. 그간 전반적인 변화가 있는 대규모 변경이 서너 번 있었다. 어제 오후 조경부 부장이 지켜보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태블릿으로 그린 평면을 클라우드로 보내 3차원 모델의 바닥에 깔아보는데, 모퉁이에 그려놓은 입면의 비율이 틀렸음을 깨달으며 식은땀이 나려 했다. 다행히 높이 값을 주어보니 그다지 나쁘진 않다. 어서 재질을 입혀 루미온으로 익스포트. 캐드에서 가장 멍청하면서도 스마트한 명령어는 ‘해치넣기’다. 많은 경우 캐드를 멈추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잡한 영역에 대한 면적을 쉽게 알려준다. 수십여 번의 해치 끝에 나온 제곱미터 값, 아니 헤베 값을 넣고 엑셀의 수식을 돌린다. 항목별 총량이 나오고 채팅창에 받아 놓은 단가를 다음 열에 넣기 시작한다. 합계를 돌려보기 무섭지만 AutoSum 기능은 이미 매우 높은 첫자리 숫자를 보여주고 있다. 실수는 안 했는지 다시 면적을 구해보지만 고작 수십만 원의 오류를 찾았을 뿐 아직도 3백만 원 이상이 초과된 숫자가 맨 아래에 보인다. 물론 이것은 이윤이 전혀 없는 실행가에 가깝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결국 다시 스케치하기 위해 펜을 잡는다. 인천공항에 내리기 두 시간 남짓 남았다는 방송이 나온다. 노파심에 좌석 사이 전원에 랩톱을 다시금 연결해 본다. 불이 켜지지 않는, 배터리가 다 된 랩톱을 탓해도 소용없다. 항공기 좌석의 전압이 너무 낮다. 공원심의위원회에 재심의 요청을 결정한 어제 저녁, 분명하지 않은 변경 사항에 최대한 대응한 수정안을 머릿속에 계속 그려보며 준비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심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2시간 안에 시 담당 부서에 접수해야 하는데, 인천공항에 체류하는 14시간 동안 수정하고 변경해야 하는 80장 분량의 파워포인트와 조서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원이 구비된 커피숍을 찾지만,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새벽 5시. 조건부 가결이라도 되어야 올해 예산으로 집행될 텐데…. 작은 기도를 읊조리며 작은 의자에 앉아 11시간을 줄곧 작업해 제출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에 오른다. 위의 일기 같은 몇몇 에피소드는 지난 몇 년간 설계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다. 설계는 결과물로 평가를 받고 설계팀 크레디트에 첫 번째로 이름이 올라간 사람이 주도해 만들어내는 듯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여러 주체가 종합적으로 참여하고 절충해 만드는 합작품이다. 좋은 의미로 참여와 절충이지, 한 프로젝트를 둘러싼 많은 주체의 알력과 복잡다단한 절차가 대본에 없던 캐릭터로 설계라는 드라마에 출연해 수많은 갈등을 일으킨다. 의뢰인 측이 보내는 코멘트가 지난 몇 달의 노력을 일순간에 허사로 만들기도 하고, 설계와 시공 사이의 간극은 늘 멀기만 하다. 허가 절차나 녹지율 같은 행정적 요구 사항이 설계가의 발목을 굳게 잡고 있기에 막판 스퍼트는 없고 다리를 절며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서야 하는 것이 설계의 마지막 레이스다. 이 모든 난관은 ‘갑’이라 불리는 의뢰인 또는 건축주가 발생시키지만 계약의 결과로 받는 서비스의 일부이기에 ‘그들’은 보통 관조하고 때로는 인내심이 바닥났음을 알려오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그들 중 일부가 같은 배에 타서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반전도 있다. 모든 설계는 갑과 을, 제약과 기회 간의 절충의 역사다. 그 치열한 절충, 타협, 조정, 조율, 대응, ‘밀당(밀고 당기기)’의 결과로 경관에 경계가 그어지고 경관의 최종 모습이 결정된다. 설계가인 ‘그’가 초기에 그려낸 설계안이나 도면이 완공된 모습과 같은 경우는 지구상에 단연코 없다. 수많은 ‘그들’과의 절충의 담금질만이 최종 경관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재의 제목으로 적절한 것은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아니라 ‘그들과 설계하는 법’일 것이다. 상하이 믹시몰(The MixC Mall) 프로젝트의 기회가 왔는데, 위치도, 규모도 당시 우리 회사 입장에선 꽤나 좋은 위상의 프로젝트로 보였다. 간단한 화상 인터뷰를 하더니 다 좋은데 중요한 프로젝트이기에 내부 공모전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계속 해보겠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왕 뽑아 든 칼, 휘둘러 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열흘 남짓한 시간, 스케치 수준의 간 보기 결과물이 요구됐다. 알고 보니 경쟁 상대는 대상지 건너편의 대형 회사 사옥 캠퍼스와 조각 공원을 말끔히 설계한 아시아권에서 이름 있는 회사. 다행히도 주어진 짧은 시간에 그들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뽑아낸 우리에게 설계권이 부여됐지만, 계약 진행은 늦어져만 가고 그들의 간 보기는 계속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프로젝트는 무려 7년을 표류하며 설계사가 세 번 바뀌고, 담당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수차례 바뀐 악명 높은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개입한 그 시점에도 누구나 알 법한 대형 사무소의 실시 설계가 이미 완료됐고, 포장 공사가 시작되어 포장재와 시설물이 현장에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설계를 바꾸게 된 계기는 이 집단의 모든 리더가 최근에 교체되어 프로젝트의 위상과 디자인 방향이 모두 초기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울 정도로 커다란 ‘예상할 수 없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일반적인 설계 결정 과정에서는 최종 결정권자의 비전과 선호를 잘 이해하고 있는 조경 부서 관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은 결정권자에게 최종 승인을 받아내기 위한 충분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트렌드를 개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사를 이끌며 조율해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의 코멘트 하나하나에 최종 결정자와 회사의 정신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을수록 프로젝트 진행은 수월해진다. 그런데 리더가 다 바뀐 이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제곱미터 당 시공비의 제한도 없이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이미 정해진 촉박한 쇼핑몰 오픈 일정만은 분명했다. 또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자 부담은 새로운 리더들이 이 프로젝트를 경영진 교체의 상징적 전환점으로 삼아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건물 외관이 90% 넘게 완성된 이상, 이제는 조경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했다. 일반적으로 중국 상업 프로젝트의 경우, IP라 불리는 관심을 사로잡는 대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 콘셉트로 삼아 설계를 풀어간다.2 예를 들면 중앙 광장에 동물 조형물을 세워놓고 그것을 각인시키는 홍보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실무진들이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이런 방식을 탈피한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해 달라는 것이었다. 간 보기에 그칠 것이라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설계에 대한 기대감도 안은 채 내부 공모에서 제안한 안을 업그레이드해나갔다. 설계 대상지는 상하이의 주요 대로 중 하나인 우종로(Wuzhong-road)에 면하는 약 700m 길이의 슈퍼 블록을 모두 점유한다. 인접한 녹지대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쇼핑몰 앞 70m 정도의 폭 중 약 40m의 구간에 공공 녹지대를 구축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쇼핑몰의 주 입구부에는 각종 상업 이벤트를 위해 포장된 광장부가 필요하기 때문에 높은 비율의 녹지 확보가 도전 과제이기도 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대지 상황에서 주목한 점은 기다란 대지의 길이 그 자체였다. 이렇게 긴 도시 오픈스페이스는 흔하지 않은 기회의 공간이다. 방문자가 과연 이 공간을 어떻게 온전히 즐기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10,000개의 경관을 감상하는 길’3이라는 콘셉트로 독특한 도시 경험을 제공하는 특별한 산책로 중심의 조경 개념을 제안했다. 대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길이 때로는 지면으로, 때로는 공중으로 떠가게 해서 녹지율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부지를 흥미롭게 걷게 하는 제안이었다. IP와 같은 상징물이 중심이 되면 시각적 자극과 인상만을 남기는 데 비해 다채롭게 걷는 행위를 통해 온 감각의 자극과 인상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한 개념인데, 클라이언트의 반응이 미지수였다. 의뢰인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콘셉트를 요구하고서 정작 조금이라도 관례에서 벗어난 제안을 하면 의구심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백한 모순 같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설계자에게 새로우면서도 실현 가능한 안을 뽑아내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태도다. 이 모순을 풀 열쇠는 적절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례 제시다. 마침 이번 아이디어의 좋은 레퍼런스로는 맨해튼 허드슨 야드에 지어지고 있던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작품 ‘베셀The Vessel’이 있었다.4 도시를 경험하는 조망점을 다양하게 하는 것만으로 도시의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이미지가 1번 안의 출발점을 끊어주었고, 그 전략을 담은 첫 스케치 발표를 본 실무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안을 더 개선할 수 있는 의견을 교환하며 몇 번의 스케치를 반복한 끝에 개념 설계안이 발전됐다. 보행교를 제안하는 방식이야 그리 새롭지 않았지만 보행로가 전망대, 분수, 음악 산책로, 수변 다리, 물 위를 걷는 다리, 갤러리 길 등으로 변모하며 대상지를 훑어가는 제안이 그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1차 발표 뒤 마케팅팀의 피드백이 분위기를 틀어 버렸다. 그들이 문제 삼은 쟁점은 폭이 100m나 되는 광장일지라도 그 중간에 떠 있는 보행교가 있으면 건물 전면부를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의견이 사실임은 인정하지만 가려지는 범위나 정도가 그리 크지는 않다는 것을 여러 차례 증명해보고자 노력했음에도, 완강한 타 부서들의 반대에 부딪혀 설계 방향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상업 프로젝트에서 공들여 결정한 건물의 파사드는 온전히 노출되어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공식이자 ‘그들’의 절대 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권유받은 설계 방향은 설계자로서 가장 피하고 싶던 IP 중심의 접근이었다. 피하고 싶던 이유는 IP로 제안받은 대상이 프로젝트의 중국어명 ‘만상성万象城’의 두 번째 글자의 동음이의어인 동물, 즉 코끼리였기 때문이다.5 그러나 ‘을’인 우리 팀에겐 선택권이 없었고, 조경 부서도 우리의 안을 지지하지만 너무나 결정적인 건물 전면의 노출 문제이기에 손을 쓸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승인될 수 있는 설계안을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계팀만이 아니라 운영팀과 마케팅팀 모두의 승인을 얻고 건축팀의 지원을 받아야 임원진 리뷰에 도달할 수 있기에, 프로젝트의 중요도에 비례해 넘쳐나는 그들의 여러 의견을 수용하는 절충의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고 담당자는 위로했다. 코끼리. 대부분의 설계가가 가장 싫어하는 설계라 할 수 있는 직설적 설계 앞에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코끼리를 다루게 된 이상 지나치게 추상화하여 코끼리의 상象이 희미해지면 안 되는 것이 상업 프로젝트의 IP이기에, 코끼리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우회적인 설계 어휘를 쓰기 위해 요구 조건과 결과물 사이의 거센 절충과 타협의 과정을 거쳤다. 중국 프로젝트를 하며 코끼리를 다루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당시 2주간의 작업 과정은 치열한 내적 갈등과 난해한조형의 시간이었다. 결과물의 제목은 ‘10,000개의 코끼리’. 조경 실무자들과 여러 대화 끝에 코끼리의 실루엣이나 코를 형상화한 요소가 상업적 분위기를 진하게 연출하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우리 팀에게는 만족과 불만족의 경계 밖에 있는 설계 콘셉트였기에 스스로는 여전히 가치 판단을 유보한 채 의뢰인 집단인 ‘그들’의 결정을 온전히 존중한 안이었다. 스스로도 뜨거움을 담지 못한 결과물이라 그런지 이에 대한 반응 또한 그다지 뜨겁지 못했다. 클라이언트의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미지근함의 이유였는데, 우리 팀의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직설적 설계를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믿는 마케팅 트렌드를 위한 희생과도 같았던 실험의 시간이 지나고 첫 번째 안과 두 번째 안의 프레임워크를 절충해 최종안을 진행할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 전달되었다. 절충안의 방향은 IP를 피하면서도 과도한 설계를 지양하고, (정의하기 어렵지만) 고급스럽고 (정의하기 더 어렵지만) 격조 있고 우아한 설계 스타일을 만들라는 지침이었다. 그들의 급작스러운 방향 선회가 어떤 연유인지 알아보니, 당시 구정 연휴를 이용해 일본의 성공적 프로젝트들을 답사하고 돌아온 상급자들이 최신 사례에 영향을 받아 설정한 방향이며 최고 결정자의 본래 경향도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특유의 미니멀한 언어를 사용하고 절제된 형태에서 면밀한 디테일의 완성도를 요구하는 ‘스타일’이 요구 조건이었던 것이다. 설계가가 (직설적 설계 다음으로) 두 번째로 지양하고자 하는 설계가 아마도 ‘스타일’에 맞추는 설계일테다.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본과 중국의 시공 완성도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크기에 설계사 입장에서는 무리수가 매우 큰 방향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중국 상업 조경의 스타일이 아닌 조경 공간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믿으면서 일본의 단순함을 중국의 콘텍스트에 녹이는 방향의 안을 발전시켜 나갔다. 실시 설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더 높은 지위의 결정권자와 긴밀한 소통을 하며 설계안을 완성해 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설계자인 우리 팀부터 조경부 실무자, 조경부장, 다른 부서장, 지역 책임자에 이르는 여러 관련자의 공통된 목표가 중국 북부 지역 총책임자의 승인을 얻는 것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느낌이 분명해진 순간에는 수많은 사람이 한 개인의 기호를 맞추는 게 설계인가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한 개인의 승인을 받는다는 것이 비단 그 책임자의 개인적 선호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며, 그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설정한 가장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흥행을 낳는 비전에 가장 가까운 설계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 합일점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이 클라이언트 회사는 2017년 중국 대륙에서 상업시설 중 부동산 실적 1위를 기록한 가장 거대한 ‘그들’이었고, 이 같은 관료 체계가 무수한 우회를 발생시켰지만 그러한 우회는 그들 집단 모두의 합의를 얻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어쩌면 더 큰 성공이 보장된 설계안을 위한 의미 있는 여정임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오픈을 석 달 반쯤 남기고 드디어 계획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의 승인을 받아냈다. 전체 그림이 선명해지자 디테일을 구체화하는 단계가 시작됐는데, 큰 그림 안에서 설계 결정 절차는 짧고 단순화되어 이 지역 디자인 디렉터와 직접 소통하게 되었다. 그만큼 더 짧은 피드백 시간 안에 ‘그들’이 믿는 성공적인 디자인의 디테일을 달성해야 했고, 오픈 한 달 전까지 지속적으로 변경된 건물 프로그램 변화에 맞추어 수정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빠른 결정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은 옵션 두세 가지 정도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설계자에게는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발표와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은 후 또 다른 대안을 준비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애초에 대조적인 두 가지 이상의 대안을 들고 가는 게 도움이 되기에 처음부터 여러 옵션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공비 제한 없이 그들의 새로운 리더를 만족시킬 높은 표준의 흥행성 달성만이 목표였기에, 한 요소당 평균 8개 이상의 대안 설계를 진행해 디자인 디렉터와 마케팅팀의 지속적인 리뷰를 거쳤다.6 대안 개수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았기에 디자인의 대안을 개발하는 순수 설계 시간만큼이나 여러 디자인 대안을 리뷰하며 결정하는 의사소통 과정에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통해 배우게 되는 현실적 정보가 많았음은 물론 때로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직접 반영해 설계가 발전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광기 넘치는 동거가 오픈 한 달 전까지 이어졌다. 끊임없는 설계 수정, 재료 선택, 샘플 리뷰를 빈틈없이 요구하며 우리를 괴롭히던 그들은 어느덧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 팀이 되어 있었다.7 현장 사무실의 한쪽 벽에 시뻘건 글씨로 적혀 있던 오픈 일까지의 카운트다운을 마치고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료됐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모든 일정을 그들과의 설계를 통해 가능으로 이끌어낸 인생 최대의 난작難作으로 기록됐다.8 지붕감각(Roof Sentiment) 2015년 4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팀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당선작의 조경을 의뢰하는 반가운 답장이 왔다. 설계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초반이었는데, ‘지붕감각’ 파빌리온의 주인공인 특별한 지붕을 원안의 형태와 소재로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스터디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확한 예산이 파악되어야 조경의 규모와 복잡도도 가늠할 수 있기에, 건축 소장들과 함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중국인 친구인 우리 사무실 파트너에게 갈대발 업체 수소문을 부탁해 보았다. 파트너는 산둥 지방의 거대한 갈대밭을 배경으로 3대째 갈대발을 생산하는 업체를 운 좋게 한 번에 섭외해냈다. 건축팀의 몫인 갈대발 지붕의 순조로운 진행을 기대하며 그 아래의 땅을 살펴나갔다. 석 달 안에, 그리고 극히 제한된 예산 안에서 시공과 설치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라 모든 결정이 실시 설계 수준이어야 했다. 다시 말해, 정확한 제품 정보와 품이 동반되어야 했다. 한국의 가격 정보와 실상에 대한 지식과 상식이 전무한 때였다. 이번엔 한국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가깝게 지내는 시공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세 명은 다 같이 만난 적도 없었지만 인터넷 3인 통화로 수차례 초기 검토를 진행했고, 마침내 몇 주 뒤 현장인 MMCA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나 팀 ‘동산바치’란 이름으로 의기투합해 ‘지붕감각’ 조경의 시공까지 함께하게 된다.9 당선작인 SoA의 ‘지붕감각’은 대상지 MMCA가 위치한 오래된 서울의 한옥과 궁궐의 전통 지붕 아래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지붕으로부터의 공간적 감각을 극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파빌리온이다. 이 극적 경험은 ‘과장된 지붕’이 만들어내는 무게감과 깊이에서 오는데, 단청으로 채색된 무거운 목조의 전통 정자나 누각이 아니라 자연 소재인 손으로 엮은 갈대발의 지붕을 10m 높이의 수직적 주름 형태로 만들었다. 즉 현대 다층 건축물의 평 슬래브 사이에서 느끼는 지붕에 대한 제한적 경험이 갈대발 사이로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건축의 아래층을 구축하는 조경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건축물의 가장 원초적이고 순전한 요소인 지붕과 조경이 뿌리내리는 대지라는 두 요소 간의 관계, 즉 건축과 조경의 관계를 맺고 조율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조경과 가장 직접적 영향을 주고받는 부분은 큰 지붕을 지지하는 구조체와 그 구조체의 기초가 땅과 만나는 부분의 처리 방식이었다. 한 묶음의 구조체는 네 개의 원형 강관이 중간에서 교차되어 묶인 다발 기둥으로, 위로는 갈대발 걸이 역할의 보를 받쳐주고 아래로는 기초와 접합되는 형상이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원형 강관의 마감 처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극적이고 자연을 닮은 지붕 아래에 차갑고 시퍼런 느낌의 철재 다발 기둥이 보행자 레벨에서 그대로 노출될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개의 둔덕을 기둥 하부에 만들고 그 위에 적절한 높이의 식물을 밀식해 기둥의 삭막함과 지면과의 날 선 만남을 완화하는 개념을 기초로 한 초안을 만들었다. 개략 내역을 뽑아봤는데, 그제야 주어진 예산이 제안된 지형 요소를 최소화하고 나머지의 예산을 표면 처리에만 사용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설계의 초점을 우회하여 어떻게 바닥 면을 처리하면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최대한 아름다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스터디했다. 다발 기둥 기초부의 조경 둔덕은 나머지 예산이 허락하는 만큼의 크기로 조성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갈대발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과의 만남, 방문자가 밟았을 때의 느낌이나 소리, 갈대발의 재질감과의 조화, 단가 등을 고민한 끝에 내린 1차 바닥 재료는 쇄석이었다. 인왕산을 향하는 경관축을 따라 주름을 잡아놓은 지붕의 결 방향과 평행하게 두 가지 색의 쇄석을 이용해 바닥에 선형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의 경계가 전시 기간 동안 방문자들의 발자국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로 섞이는 일종의 참여적 퍼포먼스로 만들어 가는 안을 제안했다. 긍정적인 건축팀의 반응과 달리 궁극의 클라이언트인 미술관 측의 견해는 달랐다. ‘그들’은 쇄석이 마감재로 쓰이면 방문하는 아동들이 쇄석을 가지고 놀다가 집어던지기 마련이고, 미술관의 전면이 유리 소재이기에 파손의 우려가 크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관리 중심적 의견을 냈다.10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운영자인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른 소재를 찾아 나섰다. 표면 소재의 후보군인 고무칩은 안전하게 다양한 질감을 연출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폐타이어를 재활용한 저렴한 제품의 생산처를 찾을 수 없어 단가가 높은 제품을 써야만 했다. 또 다른 표면 소재인 폐유리를 마모 처리한 반투명 인공 자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달이 어려울 뿐 아니라 쇄석과 같은 안전 문제를 야기할 소재였다. 갈대발의 직조가 대부분 진행되고 기둥의 구조 또한 확정되던 즈음, 현장에서 갈대발의 실제 질감을 느낀 모든 팀원은 더욱 자연적인 소재로 눈을 돌렸고, 멀칭재로 쓰이는 수피로 만든 바크가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안전에도 문제가 없고 비용면에서도 저렴하고 재질의 성격도 갈대발과 매우 유사한 1석 3조의 소재였다. 게다가 부족한 예산 때문에 밀도 있는 식재가 어려운 식재 마운드에 노출될 식물 사이의 토양도 자연스럽게 가려주고 평평한 바닥과 융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새벽 습기를 머금거나 관수를 하고 나서 물기에 살짝 젖은 적송 바크는 소나무 숲 속의 향기를 지붕 아래에 채워주며 감각의 확장을 가져다주는 화룡점정의 소재였다. 안전에 대한 다소 지나친 그들의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차선으로 채택한 소재가 오히려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에 걸맞은 감각을 일깨우는 경험의 단계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소재가 된 것이다. 적송 바크는 이 공간에 적절한 습도와 향기 그리고 걸음걸음마다 숲 속을 걷는 보행감을 선사해주며, 서울 한가운데에서 발만 들여놓으면 자연 속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자연으로의 통로이자 마법 같은 미기후의 공간인 ‘지붕감각’의 조경을 완성했다. 앞의 상하이 프로젝트와 정반대로 예산 규모는 한정적이다 못해 전체 팀이 손해를 보아야 할 정도의 비관적 상황이었다. 또 운영과 관리 주체인 미술관은 협조적이기보다는 안전 문제와 기존 포장의 보호에 더욱 신경을 쏟았지만, 그들의 우려에 절충한 결정이 최종적으로는 예상외의 결과와 함께 의뢰인의 우려도 불식시키는 선택이 되었다. 창천문화공원 한 건축사무소와의 오랜 협업 끝에 마침내 처음으로 공공 프로젝트 공모전의 당선 소식을 들었다. 대상지는 8090시대 대학 문화의 1번지였던 신촌을 다시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조성하려는 ‘신촌 도시재생사업’의 거점 지역 중 하나인 창천공원. 이 공원을 청년 문화 전진 기지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였다. 인접한 백화점의 주차 타워와 중심 거리에서 이격된 위치 때문에 늘 그늘이 드리워지는 이 공원을 젊은이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신촌 지역을 다시 홍대만큼의 중량감을 갖도록 회복하는 것이 목표였고, 청년 문화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청년 문화 발전소를 조성하는 것이 해당 구청의 요구였다. 우리 팀의 제안은 공원 중심에 길게 건물을 배치하되, 1층의 공원부는 파빌리온과 같은 최대한 개방된 구조로 열어주는 것. 주변 건물과 비슷한 규모의 적절한 상부층을 두어 실내의 청년 활동을 지원하는 건물이 되도록 하며, 공원을 휘감는 조경의 중추 골격이 건물과 맞물려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도시와의 교호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건물이 공원의 중앙부를 가로지르기에 공원 전체를 청년 문화의 콘텐츠가 생성, 연습, 소비되어 즐길 수 있는 장으로 만들기 위한 중심이자 배경이 되도록 배치한 결과물이라 자평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모전 당선 직후의 심사 결과 종합 회의에서 건물의 위치가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토지 이용이 공원으로 지정된 땅이고 개선 공사를 위해서는 상위 부처인 시 단위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의 계획안은 공원처럼 보이지 않기에 심의 통과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담당 부서의 의견이었다. 조경 관련 심사위원 중 일부가 공원 내 건물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사업이 준비되고 과업 지시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이 모든 것이 예측되고 반영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미 공모전이 완료된 상황에서 이 같은 행정적 한계는 설계사와 지자체 모두가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자 ‘그들이 이미’ 답을 내어놓은 룰이었다. 다수의 심의위원에게 ‘공원의 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예상된 청년문화센터 건물의 존재감을 줄이기 위한 대안들을 만들며 가장 난관이 될 공원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절충안 수립에 들어갔는데, 사실 완전히 새로운 계획안에 가까웠다. 여러 다른 위치를 검토했지만, 현존하는 경로당 건물과 비슷한 규모와 위치의 건물을 지어 새 건물의 존재감을 줄이는 방향이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정은 조경에게는 기회이자 동시에 도전이었다. 현 위치인 공원 서측은 공원의 안쪽에 해당하기에, 건물이 그곳에 위치하면 건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공원 활성화의 촉매 효과가 공원의 중심이나 바깥인 동편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대상지 동쪽으로 편중된 도시 문화의 무게중심을 서쪽으로 끌어오는 과제가 상당 부분 조경으로 넘어오게 되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무게중심의 변화에 대응하여 도시의 에너지를 더욱 공원 안쪽인 서측으로 끌어올 수 있는, 조경 중심의 강력한 구심점 구축을 대상지 남측 삼각 모서리 공간에 제안했다. 이곳은 1m가량의 등고 차이를 이용할 수 있고, 명물 거리로 열린 대지 동측과 상업 가로인 북측 가로에 비해 독립된 공간이었다. 우리 팀은 이곳에 수직적 상징성과 수관 하부의 활용도가 높은 메타세쿼이아로 구성된 작은 숲을 제안했다. 백화점이 드리운 그림자 대신 공원의 나무가 드리우는 생명력 있는 그늘 쉼터를 만들어 주고, 규모 면에서도 남측에 위치한 높은 건물에 대응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무엇보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나무 아래 쉼터라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청년문화센터와 함께 이 공원으로 시민들을 이끄는 양대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건물 외관은 명소를 만들겠다는 구청의 의지가 담겨 한층 더 상징적인(iconic) 외피를 갖게 되었고, 메타세쿼이아 숲과 함께 그들이 구상한새로운 공원의 얼굴이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첫 번째 절충안이 공원과 건물, 조경과 건축의 사이좋은 공생과 충분한 화제성을 만들 수 있는 안이라고 판단했지만, 1차 공원 심의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여전히 복잡한 대학가의 비워두어야 할 오픈스페이스를 건축물로 채우는 생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버리지 않았다. 조경하는 사람으로서는 반가운 의견이면서도, 점유율도 낮고 공원과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 충실한 현재의 건축 설계가 그들에게 여전히 공원의 악으로 보이는지 아니면 공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가치가 우선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도 공식 심의 결과문에서 공원 내 건물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는 철회되어 전면적 수정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남측의 도시숲이 공원의 유연성을 저해하니 좀더 열린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유연성은 오픈스페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주제 중 하나인데, 이를 문제시한 그들의 의견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고 지하고를 높게 유지하고 그 하부를 유연하게 쓰도록 한 의도가 그들에게 읽히지 않았는지 답답했다. 아무리 지하고가 높은 수목을 여유 있게 배치한 숲이라도 그 공간이 크게 탄력적인 공간으로 쓰이기 어렵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었고, 결국 수용해야만 했다. 두 번째 최종 절충안은 숲이 있던 자리에 청년 문화를 표출할 수 있는 원형 무대 광장인 ‘신촌포럼’을 만들어 그들이 강조한 공원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증진하는 안으로 정리되었다. 예산 집행을 위해 심의 통과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에 그들의 의견에 순종하듯 그대로 따르고 서둘러 마련한 절충안으로 수정하여 통과를 받아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러 명의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공원 내부의 건축물이 디자인과 상관없이 반드시 공원을 해치는 악인가? 그리고 공원 내의 작은 숲 공간이 공원의 유연한 이용을 막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이 공원에서 진정한 공공의 가치를 끌어내었는가? 앞에서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 대명사를 설계자가 아닌 다른 모든 주체를 지칭하는 데 의도적으로 많이 썼다. 의뢰인, 디벨로퍼 집단, 건축가, 행정 주체, 심의위원, 또는 다른 조경가들. 이들 모두는 갑이든 을이든, 우리 편이든 상대편이든, 모두 다 그들이었다. 그들과의 얽히고설킨 설계 이야기를 적고 보니 그들을 이해하고 절충을 이뤄내지 못했다면 새로운 경관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며, 주변에 있던 모든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들중 하나라는 점을 잊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영감을 주는 그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의 마무리다. 십수 년 동안 땅덩이를 놓고 고민해온 소사를 ◯◯경관이라는 제목에 끼워 맞추어 집적, 축조, 절충이란 단단한 발음의 어휘로 묶어보았다. 정리하고 싶었던 이야기, 끝없이 영감을 주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과 밀고 당기던 이야기를 담았다. 다음에 이렇게 돌아볼 기회가 있을 때는 주변의 이웃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연재를 마친다(연재 끝). **각주 1. (제목)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모든 설계의 끝자락에 절충과 타협이 기다리고있다고 해서 미리 한발 물러선 설계를 하는 것이 현명한가? 설계가마다생각이 다르겠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요”다. 절대 아니다. 결국 절충은너무나 여러 가지 형식과 이름으로(원가 검토, VE, 각종 심의 등) 거쳐야하기에 피할 수 없는 절차다. 그런데 설계가가 처음부터 예산, 규제 항목, 취향 등과 같은 제한 요소에 지나치게 구애받은 채 설계를 하면 좋은 설계를 도출하기 어렵다고 본다. 처음부터 죽을 쑤어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구첩반상을 차려갈 각오로 하다 보면 나중에 한두 가지 찬이빠지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고, 그러다가 정 죽을 쑤어야 하면언제든 물을 부으면 되는 것이다.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김치 한 가지에 흰 죽만 내놓는 수동적이고 이미 절충된 경관의 재생산이다. 조경설계가 내놓을 수 있는 여러 재료를 이용한 깊은 맛의 잔칫상을 만들어가보고, 때로는 조경이 더 능동적으로 건설 환경에 참여하며 우리 영토밖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믿는다. 2.영어로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는 ‘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인 이단어는 중국적 맥락에서 변용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원래는 영화, 게임, 출판계에서 일종의 상징물이나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여러제품이나 시리즈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상업적 콘텐츠를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가,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는 한 프로젝트를 다른 프로젝트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오브젝트를 의미하는 어휘가 되었다. 이 오브젝트는 하나의 개발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용도이기에 지적 자원을 넘어 정체성을 규정하는 상징물이라 볼수 있다. 3.‘The MixC’의 중국어 이름은 ‘만상성’으로, 만이 의미하는 무수함을 담으려 했다. 4.http://www.heatherwick.com/project/vessel/ 5.같은 디벨로퍼가 개발한 같은 이름의 쇼핑몰이 2주 차이로 선전에도 오픈했는데, 이곳에는 코끼리 형상의 조형물이 프로젝트 중앙에 설치되었다. 6.포장의 대안은 셀 수 없고, 선큰 광장은 14가지, 중앙 입구부 드롭-오프(drop-off)는 20가지, 6층 옥상 정원은 16가지의 대안 설계가 진행되었다. 7.설계 일을 시작하고 가장 뿌듯했던 말을 그들의 선봉대에 섰던 클라이언트에게서 들었다. “이렇게 같이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가직접 설계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하게 되면 당신 회사에서 같이 하고싶다. 이건 진심이다.” 8.이 프로젝트와 함께 부임한 조경부장의 첫 성과 보고 마지막 페이지는내 여권의 중국 비자 페이지였다. 2017년 미국에서 상하이로 간 횟수는9번, 체류일의 합은 두 달이 조금 넘는다. 9.이렇게 만난 인연이 이어져 ‘2017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설계와 시공도 완료했다. 현재는 설계와 시공을 함께하는 집단으로 활동 중이다. 10.실제로 조경부가 완공된 당일, 한 초등학생이 안전 펜스 사이로 몰래들어왔다. 기초 보강재로 쓰인 쇄석이 노출된 부분을 뒤적여 돌을 찾더니 미술관 건물로 던지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불완전함과 시간이 빚은 자연스러움
알록달록한 색상의 포장석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독특한 디테일의 포장이다. 검은색, 흰색 그리고 붉은색과 노란색까지 다양한 색상의 화강석 판석을 세워 쌓듯이 바닥에 깔아놓았다. 각각의 판석은 대략 230mm 너비에 30mm 폭의 좁고 긴 모양으로, 100mm 깊이로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포장의 레이아웃에는 길이쌓기running bond 같은 정형적인 포장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포장 줄눈의 배열에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지는 않다. 포장 숙련공의 손재주와 판단에 따라, 하나하나 다른 색상의 돌을 고르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쌓아나간 것으로 보인다. 포장석의 이음매는 오픈 조인트open joint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이 그 틈을 메우고 군데군데 잡풀이 자라고 있다. 조인트에 흙이 채워지면서 불규칙한 폭의 이음매가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이 불완전한 디테일이나 시공상의 실수로 보이기보다는, 마치 손 스케치처럼 자연스럽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포장석을 재단한 모양 또한 반듯하고 정확한 형태의 직사각형이 아닌, 모서리가 닳고 이지러진 모양으로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색상의 다양함과 석재를 재단한 모양의 불규칙함, 그리고 줄눈의 불완전함으로 연출되는 자연스러움은 설계가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도면에 명시하여 컨트롤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솜씨 좋은 시공과 함께, 시간에 따른 자연의 레이어가 추가되어 완성된 디테일이다. 이 포장석 길은 2004년 완공 당시에는 원래 흙다짐 포장이었지만, 이는 5년도 지나지 않아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휠체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울퉁불퉁하게 망가져버렸다. 견고한 새 포장 방법의 모색 끝에, 부엌의 조리대countertop를 시공하고 남은 화강석 조각을 모아 포장 재료로 재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포장 재료의 알록달록한 색상은 자투리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차명호 섬이정원 대표
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안온한 계곡은 바람도 잠잠했다. 태양을 받아안듯 팔을 벌린 초겨울의 남해, 정원 산책은 한마디로 행복감이었다. 다랑이논이라는 지형 위에 다양한 형식의 컨템퍼러리 가든을 제시한 섬이정원.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둠벙과 농업용 수로라는 문화재급 경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식으로 귀화한 유럽 스타일과 노하우를 접목시켰다. 외래종과 토종이 서로 어울려 자라고 반딧불과 논의 생물이 번성하는 곳. 우리 국토는 하나의 큰 정원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발아래 펼쳐진 남해 바다와 다도해 섬들의 풍광은 ‘섬이 곧 정원이다’라는 뚜렷한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르락내리락 높낮이가 다른 다랑이논은 누군가 오래 전에 쌓은 돌담으로 지탱된다. 그렇다, 오래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 열한 개의 작은 정원이 각각의 방처럼 다른 주제를 선보이며, 때로는 이태리처럼, 때로는 캘리포니아스럽게 펼쳐진다. 다랑이논은 산 위의 바다 같다. 정원이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초겨울이라 모든 것이 말라 있을 법한 계절이었지만, 섬이정원의 곳곳은 물길과 연못으로 가득했다. 한겨울에도 풍성함과 생동감을 주는 물소리는 반도의 남쪽 끝을 실감케 한다. 정원이란 해 보기 전엔 결코 모르는 것이다. 엄청난 노동이다.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지배하는 정원을 혼자의 힘으로 가꾼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이정원은 빼어나다. 무엇보다 정원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 차명호 대표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 차분하고 짙게 반영된 곳이라 더욱 값지다. 철저하게 나만의 정원인데,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곳보다 공감되는 정원이기 때문이다. 50톤의 자갈을 수레로 깔았다. 나무 한 그루, 바닥 한 뼘에도 큐레이터로서 그의 판단과 손길이 속속들이 채워져 있다. 어쩌면 채우는 것은 돈으로 가능하지만, 비우는 것은 안목일 수밖에 없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정원 탐독] 폭력의 상징이 된 식물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독을 품은 숲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2년 만화로 발표되었다. 이후 1984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상영된 후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꼽힌다. 나우시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에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나우시카를 구상할 때 SF 소설의 대가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어스시의 마법사The Wizard of Earthsea』를 비롯해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 많은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것은 조국 일본 미나마타 해안의 급격한 오염이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오염이 곧 인류에게 가장 큰 위험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나우시카는 환경 오염과 인간이 일으키는 전쟁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천 년 전, 인간은 대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류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개발해서는 안 되는 살인 무기, 거인병까지 만들어낸다. 이 거인병은 결국 7일간 지구를 잿더미로 태우며 전쟁을 끝낸다. 전쟁의 결과 그 어떤 자의 승리도 없었다. 인류의 반 이상이 죽었다. 나머지도 황폐화된 환경 속에 독을 뿜는 균과 거대 갑각류 곤충의 등장으로 방독면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천 년이 흘렀지만 인류는 여전히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전쟁을 막고 오염된 지구를 살리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거대 곤충과 함께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소녀의 이야기다. 나우시카는 인간이 오염시킨 흙에 의해 균이 독을 뿜어내게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소녀는 오염되지 않은 흙과 공기만 있다면 균이 더 이상 독을 뿜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빠진 모래 무덤 밑 지하에 맑은 공기와 물이 있음을 발견한다. 결국 답은 나무에 있었다. 나무가 뿌리로 흙의 오염 물질을 빨아들인 뒤 정화하고 죽어서 지구의 환경을 돌려놓고 있는 중이었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코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지의 사건, 외로움, 기약 없는 이별 등이라고 한다. 만약 죽은 후에 먼저 죽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리며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멕시코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이가 1년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러 온다고 믿는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는 멕시코 전통 명절인 ‘죽은 자의 날’을 모티브로 삼아 삶과 죽음의 연속성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유쾌한 방식으로 그린다. ‘죽은 자의 날’은 3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멕시코에서는 해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공원과 가정에 제단을 차리고 죽은 이들을 기린다. 금잔화와 촛불로 무덤을 환하게 장식하고, 죽은 이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며, 즐겨 듣던 음악을 듣는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돌아올 때 무덤에서 집으로 온다고 믿기에 잘 찾아 올 수 있도록 꽃길을 꾸민다. 이 전통은 멕시코 토착 공동체의 일상에 미치는 사회적 기능과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12세 소년 미구엘의 5대에 걸친 가족사를 소개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축제의 날, 거리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색종이 공예를 활용하여 픽사의 전작인 ‘업Up’(2009)처럼 긴 시간의 서사를 압축해 전달한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는 음악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조할머니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고조할머니는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워서 고난을 극복하며 딸을 키웠다. 구두 만들기는 그녀의 딸의 딸의 딸로 이어져 5대째 내려오는 가족 사업이 되었다. 미구엘은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와 씩씩한 할머니와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산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본 영화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새롭기도 하고, 못보고 지나쳤던 것도 보인다. ‘패터슨’ 덕에 다시 본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은 처음 보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나이 드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문화의 단
지난 2월 12일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가 진행한 세종문화정원 조치원정수장 설계공모 결과가 발표됐다. 1등작은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EMA건축사사무소(대표 이은경)의 ‘문화의 단壇’으로 건축물의 의미와 구성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문화의 단은 ‘단’이라는 콘셉트로 기존 시설을 보존하면서 필수 기능을 센터동으로 집중 배치한 작품이다. 순환 동선을 계획해 외부 공간을 통합하며 기존 수로를 활용한 수공간을 연출했다. 동측에 자리한 길고 투명한 센터동, 북측의 기존 정수 시설과 서측 공원을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복잡한 외부 환경에 대응시켜 다양한 문화 활동이 가능한 실용적인 실외 공간을 계획했다. 세종시는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이번 설계공모 당선 작품과 응모 작품을 시청 로비 및 조치원정수장 일원에 전시해 주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또한 당선안을 토대로 5월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진행하고 12월 개관하는 것이 목표다. 문화의 단 ‘단’은 터를 잡고 그 위에 인공물을 세우기 위한 바탕이 되는 구축물이다. 발전이 정체된 구도심에 새로운 문화의 토대가 될 단을 놓는다. 정수장과 소공원의 역사적 가치와 기억을 지닌 기존 시설들은 단의 재료이자 그 자체다. 여기에 새로운 단이 더해져 과거, 현재, 미래가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으로 조우하게 된다. 통합을 지향하며, 각 요소가 자율적으로 상호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세대와 사람이 모여 세종문화정원에서 각자의 가치를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서울 에어 팩토리
지난 2월 2일 서울시는 ‘성수동 레미콘공장 이전부지 활용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의 최종 수상작을 발표했다. 시는 2022년 6월까지 이전이 확정된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27,828m2)의 활용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약 한 달간 진행했고, 그 결과 총 498개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대상에는 산업화의 역사를 품은 레미콘공장을 철거하지 않고 ‘공기 공장’으로 재생하는 방안을 제시한 ‘서울 에어 팩토리(Seoul Air Factory)’(신용환·윤종호)가 선정됐다. 시멘트 사일로(silo)(저장고)를 공기 정화탑으로 바꾸고, 시계의 톱니바퀴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물로 단절된 서울숲과 응봉동(응봉역)을 잇는 아이디어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상에는 시멘트 사일로 내부를 전시장으로, 집진기 설비를 공기 청정 타워로 개조한 ‘서울숲 미래 재생 문화공원’(이동원)과 공장 부지가 숲으로 천천히 전이되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생태 복원 숲을 조성하고 시민이 서포터즈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나브로’(고성화·하형석)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인라이튼 성수(ENLIGHTEN SUNGSU)’(정은호), ‘한강 놀이터’(이광훈·유채린), ‘서울유스파크 10-20’(송민원)이 차지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서울특별시장상이 수여된다. 시는 제출된 아이디어를 참고해 서울숲 일대 세계적 문화명소 조성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서울 에어 팩토리 서울숲은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속 녹지 공간이지만, 숲을 가로지르는 교차로와 주변 시멘트 공장으로 인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서울숲역을 중심으로 주요 시설이 북동측에 치우쳐 있어 서측으로 유입되는 방문객 수가 현저히 적다. 이 같은 문제점을 주변 환경을 고려한 접근성 향상, 분절된 단지 간의 적극적인 연계, 새로운 목적형 공간 구성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e-환경과조경, 네이버·다음 카카오 뉴스와 제휴
지난 2월 9일 e-환경과조경이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 뉴스검색제휴 평가에 합격했다. 그간 조경매체가 다음 카카오 뉴스와 제휴한 적은 있지만 네이버 뉴스검색제휴 심사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조경계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조경 분야 전체의 경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뉴스제휴평가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일부터 2주간 총 630개(네이버 539개, 카카오 341개, 중복 250개) 매체가 뉴스검색제휴 평가를 신청했다. 이 중 정량 평가를 통과한 472개(네이버 435개, 카카오 254개, 중복 217개) 매체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약 6주간 정성 평가를 받았고, 그 결과 총 118개(네이버 104개, 카카오 66개, 중복 52개) 매체가 평가를 통과해 18.73%의 통과율을 보였다. 이번 평가는 제휴 규정에 따라 기사 생산량, 자체 기사 비율 등을 평가하는 정량 평가(30%)와 저널리즘의 품질, 윤리성, 수용자 등의 요소를 평가하는 정성 평가(70%)로 진행됐다. 평가에는 한 매체당 무작위로 배정된 평가위원이 최소 9명씩 참여했으며,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인 매체만 평가를 통과했다. e-환경과조경 기자들은 “질 좋은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었으며, 밤낮없이 기사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해왔다”며 전문 분야에겐 다소 높아 보였던 양사 뉴스검색제휴 심사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열정” 덕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환경과조경은 이번 양대 포털의 뉴스검색 서비스 진입을 계기로 국가 정책에 대한 감시와 대안제시를 강화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 생활 속 조경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편 e-환경과조경의 뉴스는 앞으로 양사 검색 서비스의 준비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배재대학교 조경학과,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네 가지 로드맵 구축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배재대학교 설립자의 가르침이다. 배재대학교는 130년의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닌 배재학당이 운영하는 대학이다. 1885년 고종황제에게 ‘대한제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라’는 어명이 담긴 배재학당 현판을 하사받아 국한문과·영문과·신학과 등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대학을 설립했다.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의 교육 철학은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민족 시인 김소월, 독립운동가 서재필, 한글 학자 주시경이 대표적이다. 배재학당은 현재의 배재유치원,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에 이르렀으며 학당 동문은 10만 명, 대학 동문은 5만 명에 달한다. 그중 배재대학교 조경학과는 1996년 원예조경학부 환경녹지학 전공으로 신설되어 조경 학부생을 모집하고, 조경 전공 대학원 과정을 마련했다. 23년이 흐른 올해는 조경학과로 독립해 건축·예술·디자인대학으로 새롭게 편제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당당한 홀로서기 “이제 조경학과입니다”
최근 학과 개편 과정에서 대부분의 조경학과가 통폐합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과 달리 배재대학교 조경학과는 오히려 학부에서 분리돼 ‘조경학과’라는 이름으로 당당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에 학과장을 맡고 있는 이시영 교수를 만나 학과 분리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Q. 배재대학교 조경학과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대전은 인구 150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광역시인데 배재대학교를 제외하면 조경학과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공원녹지기본계획’ 수립 등 대전시의 조경과 관련한 대표적인 역할을 배재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수행하고 있다. 배재대학교 조경학과는 본래 원예학과에서 시작됐다. 약 20년 전 시대의 필요에 의해 원예학과에서 원예조경학과로 변경됐다가, 올해 새 학기부터 원예학과와 조경학과가 분리돼 운영된다. 학과가 생긴 지 20년이 되다 보니 대전시청을 비롯해 5개 구청의 공무원으로 진출한 졸업생이 많다. 지방은 공직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정책 결정이 가능한 인적 인프라도 많다. 산업 분야에도 300여 개 시공 업체에 졸업생들이 포진해 있고, 지역에 자리를 잡은 업체 대표들도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LWI 미래포럼] 연대를 생각하며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자신의 학문 수양 발전 과정을 회고하며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흔히 40대를 불혹의 시기라고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한국 현대 조경의 나이도 대략 4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조경학회가 1972년에 설립되었고, 조경학과의 첫 학번이 73학번이다. 참고로 필자는 1974년생이다. 불혹의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 조경이나 필자나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때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철학과 방향이 확고해야 하리라. 공자도 15세는 지우학志于學으로 학문에 뜻을 둔 시기라 했고, 30세는 이립而立으로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고 마음을 확고히 해 뜻을 세우는 나이라 했다. 불혹을 위해서는 지학과 이립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국 조경이나 필자의 나이 모두 마흔을 넘었는데, 지학과 이립이 잘 된 것인지 필자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사십대 중반을 맞으며 고민이 많은 필자에게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2013)는 기억에 오래 남는 책 중 하나다. 유시민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핵심은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압축된다. 인류 최초의 도시라 불리는 우루크의 통치자 길가메시의 서사시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 “인생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으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놀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유시민은 여기에 ‘연대’를 더한 셈이다. 물론 그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연대를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도 연대다. 유시민의 정의에 나오는 ‘공동선’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조경이라는 한 분야의 연대를 꿈꾼다. 특정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 범 조경계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연대를 지향한다. 범 조경계 내부의 연대는 물론이고, 외부 유관 단체나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이를테면, 철학—와의 연대도 필요하다. 그 동안의 여러 노력으로 어느 정도 체계는 갖추어져 있다. 더 긴밀한 유대가 필요하다. ...(중략)... *환경과조경359호(2018년 3월호)수록본 일부 조동길은 1974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2004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5년 자연환경관리기술사를 취득했다.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의장이면서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겸임교수다. 생태복원, 생태 조경, 정원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며, 『생태복원 계획·설계론』(2011, 2017 개정) 등 다양한 저술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편집자의 서재] 고양이 낸시
동물은 복잡한 세상을 그리는 좋은 소재가 되곤 한다. 짧지만 권선징악을 압축해 보여주는 이솝우화부터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풍자한 『동물농장』까지. 특히 귀여운 동물 캐릭터는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친근감을 줄 수 있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2016년 개봉한 ‘주토피아(Zootopia)’ 역시 동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해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시작은 평범하다. 토끼인 주디는 경찰관을 꿈꾸지만, 작고 힘이 약한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다른 동물의 비웃음만 산다. 하지만 여느 디즈니의 주인공처럼 주디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인 날쌘 몸놀림을 살려 경찰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꿈의 도시 주토피아로 발령을 받는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식의 진부한 결말로 마무리될 것 같지만, 아직 러닝 타임은 한참이나 남았다. 영화는 주디가 주토피아에 도착하며 색다른 국면에 놓인다. 우선 주토피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동물(Zoo)의 이상향(Utopia)처럼 꾸며진 도시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주디가 타고 온 기차부터 사뭇 다르다. 기차에는 햄스터같이 작은 동물이 내릴 수 있는 문, 비버가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문, 주디부터 기린까지 덩치 큰 동물도 불편함 없이 오갈 수 있는 문 등이 마련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해 사탕을 파는 작은 가게까지, 주토피아의 모든 시설에는 모든 동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신경 쓴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멋진 도시라는 걸 과시하듯 앵글은 화려한 주토피아의 모습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하지만 주토피아가 마냥 아름다운 도시인 것은 아니다. 주디가 경찰청에서 처음 맡게 된 임무는 불법 주차 단속.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동료들은 여전히 토끼는 작고 약하기에 위험한 임무를 맡을 수 없다고 말한다. 토끼뿐만이 아니다. 여우는 교활하다는 통념, 육식 동물은 포악함을 숨기고 있다는 믿음 등 평화로운 도시 주토피아의 이면에는 편견이 가득하다. 영화는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로 나누어진 단순한 구도를 사용했지만 여기에 인종, 이데올로기, 성별, 지역, 출신 등 어느 것을 대입해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편견과 줄곧 싸워온 주디가 자신 역시 또다른 편견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영화는 좀 더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분화한다. 나 역시 편견인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여겨온 일은 없었을까. 영화는 고민에 빠진 관객을 질책하기보다 위로한다. 우리는 “내일도 실수할 거고, 또 실수할 것(I’ll keep on making those new mistakes. I’ll keep on making them every day)”이지만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든 계속 시도할 것(I wanna try everything)"(각주 1)이기 때문에. ‘주토피아’가 캐릭터 간의 갈등과 눈물 어린 화해의 과정을 통해 주제를 이야기한다면 『고양이 낸시』는 귀여운 에피소드를 통해 편견에 대해 말하는 만화다. 낸시는 고양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 천적임에도 불구하고 쥐들이 낸시를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냈다. 가볍지만 때로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붕어빵 봉지를 품에 넣은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본래 트위터에서 한 장 내지 두 장으로 짧게 연재되던 만화가 책으로 출간될 수 있던 힘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쥐들이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낸시의 귀여움이다. 하얗고 부드러운 털과 분홍빛이 감도는 코. 딱하지만 고양이를 마을에 두면 위험하다며 만일의 일을 걱정하던 쥐들은 낸시를 만나자마자 외친다. “이런 망할! 정말 귀엽잖아!"(각주 2)집단이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은 낸시의 귀여움으로 손쉽게 사라진다. 만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지만, “이런 망할! 정말 귀엽잖아!”라는 대사에는 쥐들이 고양이가 아닌 낸시 자체를 바라보았다는 의미가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편견이 없는 어린 쥐들은 더욱 쉽게 낸시와 가까워진다. 후에 낸시가 북쪽에서 온 하얀 쥐가 아닌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어린 쥐들은 낸시가 혹여 마을에서 쫓겨날까 걱정부터 한다. 아이들에게 이미 ‘북쪽에서 온 하얀 쥐’나 ‘고양이’는 수식어에 불과하며, 낸시는 배려심이 깊고,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힘이 쎈, 하얀 털이 보드라운 친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와 조금 다르지만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물론 작가의 말처럼 “요즘엔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도 자신과 다르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만약 현실이었다면 더 갈등이 심화되고 낸시는 더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낸시에게 “분명히 좋은 친구들이 생길 테고, 그로 인해 행복"(각주 3)해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고양이 낸시』는 복잡한 사회를 단순하게 바라봄으로써 얻는 즐거움을 알려줄 것이다. 참고로 엘렌 심은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학교를 그린 ‘환생동물학교’를 연재 중이다. 주인을 그리워하는 동물이 가득한 AH-27반 학생들과 선생님을 통해 이번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엘렌 심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면 ‘환생동물학교’를 통해 따뜻한 그림체로 그려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살짝 엿보시길! *각주 정리 1. ‘ 주토피아’의 OST ‘Try Everything’의 가사 일부. 2. 엘렌 심, 『고양이 낸시』, 북폴리오, 2015, p.43. 3. 이지혜, “[고양이 낸시] 엘렌 심 ‘제 고양이도, 독자분들도 낸시처럼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IZE 2015년 3월 23일.
[CODA] 기억의 매개체
지난 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사진첩을 찾았다. 부모님이 소중히 보관하고 계신 어린 시절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다시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왠지 사진첩이 사라지면 내 유년기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다. 빛바랜 책장을 넘기니 익숙한 장면들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날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이지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당시 거실 커튼의 문양과 소파 팔걸이의 나무 색깔 같은 것들이다. 진짜 그 순간이 기억나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에서 봤기 때문에 기억한다고 생각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영화 ‘당신과 함께 한 순간들’(2017)은 기억에 관한 영화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마조리는 남편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복원된 인공지능 월터와 추억을 나눈다. 마조리의 딸 테스는 홀로그램인 월터를 못마땅해 하지만, 마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인공지능 마조리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테스는 남편에게 말한다. “기억은 우물이나 서랍장 같은 게 아니야.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한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것뿐이야. 복사본의 복사본처럼 계속 희미해질 뿐 절대 생생해지거나 선명해지지 않아. 그래서 강렬한 기억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끊임없이 조금씩 유실되거든.” 인공지능인 월터는 인간에게 추억을 들으며, (딥러닝을 통해) 점차 실제의 그와 비슷해져가는 것처럼, 마치 진짜 인간과 추억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청혼을 받을 때 보았던 영화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아니라 ‘카사블랑카’였으면 좋았겠다는 마조리의 바람을 듣고 기억을 수정하는 인공지능 월터의 모습에서, 기억이란 불완전하고 왜곡되기(윤색되기) 쉽다는 것을 영화는 드러낸다. 필름 카메라를 쓰지 않게 되면서 더 많은 사진을 찍게 되었고, 휴대 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하면서 사진 찍기는 일상화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많은 디지털 이미지들이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사진을 다시 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일의 빈도는 내가 찍은 사진의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기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매체가 필요한 것일까?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 역시 물리적인 무언가, 이를테면 공간이나 기념비(memorial)에 깃든다. 홀로코스트는 대표적인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각주 1)중 하나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문명권에서 기억은 “세속적인 용어이면서 종교성을 강하게 함축한다.” 영기(aura), 외상(trauma), 애도, 숭고, 정체성, 치유, 정화, 치료, 목격, 증언, 영혼 등은 기억 연구의 이론서에서 자주 보이는 용어이면서,(각주 2)메모리얼의 설계 개념을 설명할 때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기억을 종교적 계율로 강조하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이다. “헤브라이어 성경에 항상 이스라엘이나 신을 주어로 하여 동사 ‘기억하다’가 169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이 유난히 강하다고 하는 유대교에서 그것은 전통적으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주로 기억(곧 암송과 제례)을 통해 표출되었다.” 기억은 마치 우리의 ‘살풀이’와 유사한 정화 내지 치유 능력을 지녔고,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은 ‘기억 산업’(기념관, 기념물, 박물관, 공식 행사, 그리고 매체와 문화 산업 등)의 붐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의 집단기억의 핵심이 되어 정체성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기억, 외상, 그리고 역사의 개념에 관한 일련의 성찰을 고무했다.(각주 3) 기념비나 기념 공간이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집단기억 역시 윤색될 수 있다. 한 장소에 얽힌 기억들도 재구성될 수 있으며, 기억의 경합 과정에서 대립되는 기억은 제거되기도 하며 장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기억의 매개체인 메모리얼은 어쩌면 매우 선별적으로 이 정도만 기억하자는, 그리고 나머지는 잊자는 사회적 합의일 수도 있다. 이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이해는 흥미롭다. “미국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은 만들면서 자국사의 두 본질적인 측면인 원주민의 대학살과 흑인의 노예화는 외면한다. … 이른바 유럽의 팽창 이래로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이 행해졌고, 특히 1850~1950년의 100년은 유럽 대량학살의 ‘인종적 세기’이건만, 그것들은 문명과 진보의 이름으로 이해되고 설명되었다. 식민지인들에게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금지된 것’이었고” 그러한 유럽 중심의 담론 질서 속에서 홀로코스트는 역사상 유일무이하고 비교 불가능한 신화가 된다.(각주 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을 신탁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다. 얼마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대사관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묵인과 동조 속에 전쟁과 학살은 끝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호에는 영국에서 진행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의 결과를 수록했다. 런던의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 조성될 이 기념비와 교육 센터를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와 조경가들이 참여했다. 그들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설계안 외에도, 메모리얼 조성을 주도하는 이들이(혹은 우리도)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지, 또 어떤 기억을 소거하려는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아닐까. *각주 정리 1. 사회심리학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기억 속에는 본질적으로 집단적 성격이 내재해 있다고 전제했다. 즉 기억을 소유하는 단위는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 가운데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확인된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기억은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다. 최호근, “집단기억과 역사”, 『역사비평』 85, 2003, pp.160~165. 2. 최갑수, “홀로코스트, 기억의 정치, 유럽중심주의”, 『사회와역사』 70, 2006, p.105. 3. 위의 글, pp.103~112. 4. 위의 글, pp.113, 131~132.
[PRODUCT] 실내로 들어온 ‘토인 라탄’
국내에서 라탄rattan 소재는 휴양지 외부 공간이나 데크가 있는 정원 등 야외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해외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실내에서도 라탄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토인 라탄’은 이러한 국내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실내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라탄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주거 공간에 적합한 사각형의 현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의 소파, 테이블 세트뿐만 아니라, 원형이나 곡선이 강조된 제품도 계획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골라 독특한 공간 연출을 할 수 있다. 또한 해외 라탄 제품과 다르게 한국인의 체형에 맞추어 제작했기 때문에 국내 이용자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토인 라탄 파이버Fiber의 기본 소재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합성 섬유다. 친환경 소재일 뿐 아니라 햇빛은 물론 수분에도 강하다. 프레임에는 부식에 강한 알루미늄을 사용해 내구성을 높여 빛과 압력에 잘 견디도록 했다. 오염됐을 때 물 세척이 가능하고 무게가 가벼워 관리가 편한 것이 장점이다. 또한 일반적인 브라운, 블랙 계열부터 원색의 파이버까지 다양한 색상의 제품이 마련되어 있어 기호와 공간의 분위기에 맞는 색상을 골라 사용할 수 있다. 형태 역시 다양해 휴양지의 따뜻한 느낌부터 캐주얼한 감성의 공간까지 분위기에 맞게 연출할 수 있다. 앞으로도 토인은 단순한 야외 가구를 넘어 실내외 어느 곳에나 다양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라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TEL. 02-533-3720 E-mail. www.toinp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