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사진첩을 찾았다. 부모님이 소중히 보관하고 계신 어린 시절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다시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왠지 사진첩이 사라지면 내 유년기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다. 빛바랜 책장을 넘기니 익숙한 장면들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날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이지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당시 거실 커튼의 문양과 소파 팔걸이의 나무 색깔 같은 것들이다. 진짜 그 순간이 기억나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에서 봤기 때문에 기억한다고 생각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영화 ‘당신과 함께 한 순간들’(2017)은 기억에 관한 영화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마조리는 남편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복원된 인공지능 월터와 추억을 나눈다. 마조리의 딸 테스는 홀로그램인 월터를 못마땅해 하지만, 마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인공지능 마조리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테스는 남편에게 말한다. “기억은 우물이나 서랍장 같은 게 아니야.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한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것뿐이야. 복사본의 복사본처럼 계속 희미해질 뿐 절대 생생해지거나 선명해지지 않아. 그래서 강렬한 기억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끊임없이 조금씩 유실되거든.”
인공지능인 월터는 인간에게 추억을 들으며, (딥러닝을 통해) 점차 실제의 그와 비슷해져가는 것처럼, 마치 진짜 인간과 추억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청혼을 받을 때 보았던 영화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아니라 ‘카사블랑카’였으면 좋았겠다는 마조리의 바람을 듣고 기억을 수정하는 인공지능 월터의 모습에서, 기억이란 불완전하고 왜곡되기(윤색되기) 쉽다는 것을 영화는 드러낸다.
필름 카메라를 쓰지 않게 되면서 더 많은 사진을 찍게 되었고, 휴대 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하면서 사진 찍기는 일상화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많은 디지털 이미지들이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사진을 다시 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일의 빈도는 내가 찍은 사진의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기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매체가 필요한 것일까?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 역시 물리적인 무언가, 이를테면 공간이나 기념비(memorial)에 깃든다. 홀로코스트는 대표적인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각주 1) 중 하나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문명권에서 기억은 “세속적인 용어이면서 종교성을 강하게 함축한다.” 영기(aura), 외상(trauma), 애도, 숭고, 정체성, 치유, 정화, 치료, 목격, 증언, 영혼 등은 기억 연구의 이론서에서 자주 보이는 용어이면서,(각주 2) 메모리얼의 설계 개념을 설명할 때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기억을 종교적 계율로 강조하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이다. “헤브라이어 성경에 항상 이스라엘이나 신을 주어로 하여 동사 ‘기억하다’가 169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이 유난히 강하다고 하는 유대교에서 그것은 전통적으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주로 기억(곧 암송과 제례)을 통해 표출되었다.” 기억은 마치 우리의 ‘살풀이’와 유사한 정화 내지 치유 능력을 지녔고,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은 ‘기억 산업’(기념관, 기념물, 박물관, 공식 행사, 그리고 매체와 문화 산업 등)의 붐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의 집단기억의 핵심이 되어 정체성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기억, 외상, 그리고 역사의 개념에 관한 일련의 성찰을 고무했다.(각주 3)
기념비나 기념 공간이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집단기억 역시 윤색될 수 있다. 한 장소에 얽힌 기억들도 재구성될 수 있으며, 기억의 경합 과정에서 대립되는 기억은 제거되기도 하며 장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기억의 매개체인 메모리얼은 어쩌면 매우 선별적으로 이 정도만 기억하자는, 그리고 나머지는 잊자는 사회적 합의일 수도 있다.
이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이해는 흥미롭다. “미국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은 만들면서 자국사의 두 본질적인 측면인 원주민의 대학살과 흑인의 노예화는 외면한다. … 이른바 유럽의 팽창 이래로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이 행해졌고, 특히 1850~1950년의 100년은 유럽 대량학살의 ‘인종적 세기’이건만, 그것들은 문명과 진보의 이름으로 이해되고 설명되었다. 식민지인들에게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금지된 것’이었고” 그러한 유럽 중심의 담론 질서 속에서 홀로코스트는 역사상 유일무이하고 비교 불가능한 신화가 된다.(각주 4)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을 신탁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다. 얼마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대사관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묵인과 동조 속에 전쟁과 학살은 끝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호에는 영국에서 진행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의 결과를 수록했다. 런던의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 조성될 이 기념비와 교육 센터를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와 조경가들이 참여했다. 그들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설계안 외에도, 메모리얼 조성을 주도하는 이들이(혹은 우리도)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지, 또 어떤 기억을 소거하려는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아닐까.
*각주 정리
1. 사회심리학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기억 속에는 본질적으로 집단적 성격이 내재해 있다고 전제했다. 즉 기억을 소유하는 단위는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 가운데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확인된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기억은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다. 최호근, “집단기억과 역사”, 『역사비평』 85, 2003, pp.160~165.
2. 최갑수, “홀로코스트, 기억의 정치, 유럽중심주의”, 『사회와역사』 70, 2006, p.105.
3. 위의 글, pp.103~112.
4. 위의 글, pp.113, 13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