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준 편집장의 코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이번 달도 코다를 쓰고 있다. 편집장과 번갈아 쓰고 있는 이 지면을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난달에도 말씀드렸듯 10월 여러분께 찾아갈 ‘2016 서울정원박람회’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박람회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편집장의 낭랑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편집장이 동심원의 20주년 기념 작품집 제작 역시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경계에서 한 설계사무소가 20년을 버텨왔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기록을 남긴다는 점도 반길 만하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라면 한 기업의 사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조경계의 역사라고 부를 법하다. 최근 몇몇 설계사무소에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사진작가에게 작품 촬영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경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은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과거를 정리하고 반추하며, 미래를 위해 장점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결론은 그래서 이번 달도 바쁜 편집장을 대신해 코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서울정원박람회 오픈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 뒷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볼까 한다.
식물을 경험하는 또 다른 감각
성황리에 사전 접수가 마감된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는 서울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정원을 전문 가드너와 함께 돌아보며 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성식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센터장, 노회은 제이드가든 가드너, 남수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 그리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김장훈 전문정원사까지 총 6명의 전문가가 흥미로운 정원 식물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본래 독특한 디테일이 더 있었다. 기획자인 이형주 기자가 장애인을 위한 정원 투어를 제안했다. 감각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정원을 통해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저널리스트 고규홍에게 투어 해설을 부탁드렸다. 고규홍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 경험을 담은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을 펴냈고, 이 기자는 이 두 사람의 사례에 감화된 상태였다.
정원 투어 요청에 대해 이 기자가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규홍은 김예지와 1년 가까이 교감한 덕택에 그녀가 나무를 느끼는 데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전언은 인상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교감하는 방식에 관해 특강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해주기도 했다. 조경가나 전문가들에게 정원을 조성하는 데 색다른 시각을 던져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여러 여건상 그 특강은 이번 박람회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일련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오팔지 휘날리며
그리고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늘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의 개ㆍ폐막식, 정원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벌어질 박람회장 중앙무대 앞 광장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미션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가려야 하므로 기성품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듯 광목천을 씌우려고 했지만 천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초의 천문학적(!) 제작비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다음 등장한 아이디어가 헬륨 풍선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7시간 밖에 못 견딘다는 한계 때문에 탈락. 그럼 이번엔 일반 풍선. 애드벌룬 업체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물을 지탱하던 풍선이 터져 버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그럼 가벼운 셀로판지를 달자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L.A.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에 설치된 ‘Liquid Shard’가 확신을 주었다. 그물망에 불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하늘로 날리는 영상은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물망에 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타프(tarp)를 치듯이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그늘막 디자인을 맡았던 C 실장은 매번 초조한 얼굴로 편집부 문을 밀고 들어왔다.
C 실장은 셀로판지를 달 그물망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새를 막는 방조망부터 차량 덮개용 그물, 운동 경기용 네트까지 알아본 끝에 부산에서 적당한 어망을 발견했다. 그물코를 계산해 어망을 제작하니 이번에는 셀로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몇 장이나 달아야 할까. 이때 쓰인 셀로판지의 이름은 업계 용어로 ‘오팔지’, 쉽게 설명하면 사탕 포장지다. 환경과조경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마케팅팀의 P 부장과 H 대리가 그물망과 씨름하며 적당한 모듈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 동기가 떠올랐다. 졸업 후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휘하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한다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비즈(beads) 2천 개를 일일이 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천 개 쯤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이다. 계산 결과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필요했다. 그 다음의 제작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