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도시
사나울 폭(暴), 불꽃 염(炎), 날이 몹시 더운 상태를 의미하는 폭염이 올해 여름 한 달 이상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소방방재청은 최근 기상 재해 중 폭염을 가장 큰 재해로 선정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에 비해 국민들은 물론 정부조차 폭염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의 냉방 시설 없이 천막만 설치해 놓은 무더위 쉼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허술한 방역 시스템으로 콜레라나 식중독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심각한 가뭄과 농업용수 고갈로 인한 농업 시스템 마비, 농수산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예측 불가능한 기후 예보 시스템 및 근시안적인 재해 대책 등이 줄지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무더위로 말라비틀어진 도시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상 최대의 지진을 경험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과 5.1의 강력한 지진과 200회가 넘는 여진이 발생하여, 경북 경주시를 비롯한 주변 지역의 도시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도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급작스러운 재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으며, 곳곳에서 피해가 급증했다. 원활하지 않은 통신 시스템으로 인한 사회적 네트워크(연결성, connectivity) 마비는 재해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증대시켰다. 또한 재해 시 대피 장소로 활용이 가능한 방재 공원과 같은 다기능성을 지닌 장소(중복성, redundancy)가 부족했으며, 지진이라는 재해를 예측하고 적응할 수 있는 계획이나 설계 방안(적응적 계획, adaptive planning)이 미흡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진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학습과 매뉴얼(다양성, diversity) 등 충분한 사전 조치가 없었다.
위 사례와 같이 오늘날 도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도시 시스템은 예측 불가능하고 강력한 재해에 의해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해 있으며, 도시의 사회적·경제적·생태적·공간적 요소인 연결성, 중복성, 적응적 계획, 다양성 등의 부족은 재해에 취약한 도시를 만들었다. 이에 많은 계획가와 설계가가 기존의 도시설계와 계획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설계 및 계획의 패러다임인 도시 리질리언스를 위한 도전을 시작했으며, 아무리 큰 재해가 오더라도 도시의 기능과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도시로의 첫걸음을 뗐다.
도시 리질리언스
리질리언스는 생태학에서 태동하여 사회학 및 경제학 분야로 확장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 개념으로 발전됐다. 이는 인간 사회가 자연환경에 속해 있다는 ‘자연 속 인간 모델(Human-in-Nature model)’과 인간 사회의 구조와 기능은 주변 자연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환경 결정론’ 등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 개념이 도시계획 및 설계 분야로 확장되었으며, 도시 리질리언스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도시 구조의 파괴와 무분별한 도시 확장으로 많은 조경가는 ‘지속가능한 도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도시생태학’에 집중했다. 조경과 건축 분야에서 발전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도시설계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됐던 경관을 중심 요소로 격상시켰다. 또한 ‘경관생태학’을 기반으로 발전된 ‘도시생태학’은 경관을 도시 생태계의 구조적·기능적 단위로 바라보았고, 도시의 생태학적 패턴 및 프로세스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이용의 변화를 이용했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두 이론은 그린인프라스트럭처 등을 통해 도시 내 조경 공간으로 구현됐으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설계하는 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도시들은 기후 변화로 급증한 수많은 재해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도시’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대기 및 수질 오염, 생태계 파편화, 열섬 현상 등과 같은 문제를 동반했고 지진, 태풍, 홍수, 가뭄 등에 의한 피해를 심화시켰다. 많은 학자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전략이 부족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주로 토지이용만을 다루는 ‘도시생태학’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융합한 ‘생태적 어바니즘’을 새로운 대안으로 내세우며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예측 불가능한 교란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인 도시 리질리언스을 갖춘 회복력 있는 도시를 구현하고자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조경학 교수인 앤 스펀(Anne Spirn)은 생태적 어바니즘은 회복력 있는 도시를 설계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이를 바탕으로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조경가는 도시 리질리언스를 증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복력 있는 도시를 조성하고자 하는 조경가는 생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도시 시스템을 다섯 가지 렌즈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첫째, 도시를 자연환경의 일부로 바라볼 수 있다. 둘째, 도시를 생태계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도시란 동태적이고 상호 연계된 복잡계다. 넷째, 그 도시만이 가진 고유한 역사와 맥락이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설계는 미래의 변화에 대한 적응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는 점이다. 즉 생태적 어바니즘은 도시를 하나의 역동적인 생태계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도시가 예측 불가능한 재해에 적응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도시를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회복력 있는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록펠러 재단은 2014년부터 ‘100 리질리언트 시티(100 Resilient City)’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100개 도시를 선정하여 도시마다 취약한 재해 혹은 교란의 종류를 분석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전략과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