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다. 얼마 전, 열렬히 시청해 온 드라마 ‘시그널’이 종영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며 주말을 맞이하던 밤이 허전해졌다. ‘시그널’은 과거와 연결되는 무전기를 통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5가지의 미제 사건을 16부작으로 다뤘다. 사건을 모두 해결하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조금 빠듯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방영 시간 안에 풀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일 경우) 시청자에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군더더기 없이 긴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시청자를 작품 속에 깊게 몰입시킨다. 실제로, 시그널을 보며 마시려고 사온 맥주 한 캔을 다비우지 못한 채 드라마가 끝나기 일쑤였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난 후의 여운도 장편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남는다. 이는 드라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소설 역시 같은 특징을 갖는다. 미스터리나 범죄를 다룬 짧은 단편 소설의 경우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장편 소설보다 반전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나는 언제나 옳다』는 반가운 책이었다. 특히 여러 단편 소설을 하나의 단편집으로 묶어 펴내지 않고 한 편의 단편 소설(96페이지)만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시집처럼 느껴지는 얇은 책의 두께에서 어떤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책을 두르고 있는 붉은 띠지에서 저자가 2014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나를 찾아줘’의 원작자라는 문구를 읽자마자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했다.
“내가 손으로 해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 둔 거지.”1 이야기는 주인공이 매춘부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소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주인공의 말투는 소설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영국식 블랙 코미디에 큰 일조를 한다. 매춘부를 그만 둔 주인공은 어린 시절 구걸을 하면서 터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능숙하게 읽는 능력을 살려 사이비 점쟁이의 길에 나선다. 주인공의 고객은 대부분 상류층이다. 주인공은 상류 사회에서 점이나 심령술이 유행하는 것을 비웃는다. 그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슬픔의 이유를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리고 그들에게 건네는 그럴듯한(말도 안 되는) 조언과 이 조언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옷차림이나 행동을 꾸미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박식함을 뽐내지만, 매주 자신을 찾아와 수음을 부탁하는 남자의 부도덕함을 꼬집는다.
수전 버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수전 버크의 옷차림과 행동을 관찰하며 그녀의 성격과 성장 배경을 멋대로 넘겨짚는다. 다른 손님들보다 까다로운 면이 있었지만, 수전 버크도 다른 손님들과 같이 주인공의 거짓 점술에 속아 넘어간다. 수전 버크 역시 수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이었을까 생각되지만, 주인공이 수전 버크의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수전 버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저택에서는 전형적인 공포 소설에서 이용하는 클리셰가 등장한다. 음산한 기운을 뿜는 빅토리아풍의 저택, 벽지를 물들이는 핏자국, 어두운 복도, 촛대 모양의 조명과 조명에 목을 맨 인형까지. 이 기괴한 저택에는 부유하지만 바쁜 아버지와 새 어머니,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새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의붓아들이 살고 있다.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가족과 대조되는 삶—미혼모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구걸을 하며 자라서 매춘부가 된—을 살아온 주인공과 수전 버크, 의붓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심리전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심리전에 몰입했던 독자들은 “그건 아줌마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느냐에 달려있죠.”2라는 아이의 말에 혼란에 빠진다. 진실이 무엇인지 이야기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제목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책의 제목은 확신에 찬 문장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지는, 자기반성에 가까운 문장일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는 많은 공모전이 소개됐다. 공모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패널과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대학생 시절 패널을 만들며 밤을 새우던 일이 떠올랐다. 패널은 모형과 더불어 설계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최종 작업물이기 때문에, 패널의 완성도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A1 안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채워 넣고 배치하는 것은 소설가나 방송 피디의 고충과 견주어도 될 만큼 치열한 작업이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패널을 만들 때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어떤 이미지를 얼마나 크게 넣어야 할지, 레이아웃을 어떻게 짜는 것이 효과적일지, 분량을 맞추기 위해 어떤 부분을 생략해야 할지. 과연 설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피곤함과 귀찮음을 이유로 ‘아냐, 내가 옳아’라고 생각하며 자신과 타협을 한 건 아닐까? 언젠가는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문장을 변명하듯이 작게 웅얼거리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