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에디토리얼] 제도가 낳은 도시와 그 이면
    2023년 1월부터 격월 연재한 유영수 교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의 ‘제도가 만든 도시’를 이번 호로 끝맺는다. 저자는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이므로,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와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의 기획은 ‘제도’라는 도시의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417호) 조회하고 비평하는 긴 여정이었다. 연재의 첫 글은 ‘도시의 제도는 정당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제도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가치 체계와 질서를 작동시키는 공간적 장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이 공공에게 이익을 가져올 때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도시 제도는 특정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절대적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당하며, 종종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만 예속된 도구가 되기 쉽다”(417호). 이러한 문제의식은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보”는, 즉 ‘도시의 제도는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도시 제도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 이상으로 “적절한 설계 기준과 다양한 규제의 방식 자체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유연한 허용을 합리적으로 허용하고 그러한 허용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419호). 우리는 도시에서 제도가 결정하는 공간의 ‘크기’에 묶여 살아간다. 저자는 “제도가 규정하는 크기 제한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그 크기―특히 면적과 높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시의 열망을 살피고, 작은 도시 조직과 형태에 더 가혹한 제도의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421호). 그는 ‘크기’의 쟁점을 인구 감소에 따른 축소도시 문제와도 연결한다. “감소한 인구에 맞춰 도시의 크기를 적정한 수준으로” 줄여야 하지만, “성장과 달리 축소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를 줄이더라도 “도시의 삶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 즉 “자율주행, AI 로봇 등 발전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비롯해 도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423호). 연재는 제도가 규정하는 ‘도시의 비움’을 되묻는다. 도시의 제도는 밀집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야기한 정주 환경의 악화는 밀집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낳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곧 도시계획과 제도의 소명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제도는 “‘채움’을 억제하고 ‘비움’을 강제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채움과 비움의 양과 크기에 대해 비율, 최대‧최소의 기준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익숙한 건폐율과 용적률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제도에 따른 비움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제도가 만든 나쁜 비움”을 우려한다. 총량만을 고려해 “비움의 배분”에 관여하지 못하는 제도, “비움의 위치와 형태”를 다루지 않는 제도, “비움의 획일성과 평면적 비움”의 한계를 지적한다(425호). 도시의 “다양성은 도시가 사회와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자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제도가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라는 저자의 탐색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켤레 관계에 관한 논의로 확장된다. 우리는 통일성을 다양성의 반대 극단에 있는 가치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저자가 다양한 논거를 들어 예증하듯,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를 맺는다. 도시의 제도는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되고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427호)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 생명체처럼 도시도 삶과 죽음을 겪는다. “도시 공간 요소가 새로 태어나고 쓰이다 낡고 죽는 생로병사, 혹은 신진대사는 …… 도시의 긴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저자는 보도블럭 교체부터 재건축, 재개발에 이르는 폭넓은 사례를 들어 도시의 제도와 엮인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를 살핀다(429호). 도시의 ‘시간’과 관련한 의제는 여덟 달 뒤의 글인 ‘도시의 역사, 문화유산’(437호)과 교집합을 갖는다. 그는 경직된 제도에 의해 “문화유산[이] ‘과거’에 박제되고 주변의 ‘현재’ 도시 공간의 필요와 충돌”하는 난맥을 짚는다. 복원의 원형과 시점, 규제 일변도의 역사경관 문제 등에 관한 논의를 통해 저자는 제도적 방법의 다양성이 도시의 역사적 품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도시를 둘러싼 제도의 핵심은 ‘소유’로 수렴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도시 공간은 …… 어느 한 조각도 ‘소유’의 밖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유와 재산권은 도시의 제도에서 매우 견고하게 작동한다. 물론 도시의 다양한 제도는 헌법상의 “‘공공복리’를 근거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며 …… 공간의 소유에 배타적으로 보장되는 사용‧수익‧처분의 권리 모두에 촘촘하게 개입”하지만, 결국 도시 개발의 이익 문제와 얽힌다. 소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결국 도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소유가 독점하는 배타적 권리의 선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질문은 필요하다”(431호). 도시의 자연을 만드는 것도 결국 도시의 제도다. “도시 안에서 자연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들은 자연의 여러 가치[가] 효과적으로 달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을까?” 저자는 획일적인 양적 공급이나 면적 확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상 도시 공간의 작은 자연” 혹은 “도시 내 작은 자연의 조각에 대한 개별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433호). 도시에서 기능의 위치와 배열은 도시 공간의 구조를 형성한다. 저자는 우리 도시의 기능과 구조를 강력하게 규정하는 용도 지역(zoning)과 획지의 허점을 짚으며 “더 유연하고 역동적이거나 더 높은 혼합을 위한 계획적 수법”(435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2회에 걸친 ‘제도가 만든 도시’를 맺으며 저자는 “‘일반해’로서 제도의 실행 방식”이 낳은 “획일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되짚는다. 그리고 “양적 기준 위주의 운용에서 비롯된” 난맥을 넘어설 수 있는 “정성적 가치의 제도화”, “집합적 중재와 거버넌스”, “전문가의 역할과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라는 과제를 던진다(439호). 도시 공간의 현재를 낳은 제도와 그 이면을 탐사한 유영수 교수의 긴 여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큰따옴표 안의 구절과 문장은 모두 연재 글에서 가져왔다.
  • [풍경 감각] 발끝에 걸린 풍경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쭉 읽을 순 없을까. 몇 페이지 넘기다 멈추고 쌓아둔 책 더미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시작한 책을 마무리하기 전에 자꾸만 새 책을 기웃거리는 버릇 탓에 책 더미와 그만큼의 죄책감이 자꾸만 늘어난다. 읽다 만 책을 늘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표지 그림부터 제목, 목차, 소개 글, 내지 디자인까지 완벽히 내 취향인 책을 만난다. 당장 주문해서 펼쳐 든다. 역시 재미있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이 슬슬 등장한다. 설마 끝까지 이러겠어? 남은 페이지를 훑어본다. 두툼한데 글이 빽빽해서 잘 읽히지 않을 것 같다. 조금 질리는 찰나 인터넷 서점 메인 페이지에 흥미로운 책이 등장한다. 책의 상세 페이지를 읽다가 이 책이야 말로 완벽히 내 취향임을 알게 되고 또 구입한다. 지난 봄, 북한산 산책을 다녀왔다. 완만한 길만 골라 천천히 걷는데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바람을 넣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경치가 근사하다고. 건물 4~5층 정도 높이의 전망대는 꼭대기까지 계단이 이어졌다.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면과 한 뼘씩 멀어지더니 머리 위에 있던 나뭇가지가 어느새 발아래에 있었다. 생각보다 꽤 아찔해서 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오를수록 더 무서울 텐데 어쩌지. 어정쩡한 자세로 손잡이를 꼭 붙잡고 등산객을 원망하다가 발아래의 높이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을 다음 계단 안쪽에 완전히 들어오게 올려놓았다. 안전하다고 느껴질 만큼 아주 천천히. 그렇게 계단 하나를 밟고 다음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하나씩 꼭꼭 밟아 나가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멈춰버렸던 책도 한 권씩 꺼내어 그 문장을 하나하나 꼭꼭 밟아 나가고 싶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가닿을 때까지. 참, 그때 올랐던 전망대의 풍경은 무심코 주워섬긴 말처럼 근사하지는 않았다. 북한산이긴 해도 작은 동네 전망대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봄바람은 상쾌했다. 완독의 기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가 만든 도시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됐다. 여러 법제도가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 시행되며 어떤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지에 관심을 가져 왔고, 그간 몇몇 연구와 수업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제로 열두 번의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두었던 ‘거리’가 금세 떨어져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복해서 등장한 소재도 있다. 연재 전에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연재를 하면서 알게 된 것도 많다. 쓰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하며 문장을 짓는 나의 대책 없는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참 무모한 도전이었고, 부끄러움을 평생 지고 가야할 것 같다. 마지막 원고에 이르러 이 연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돌이켜보며 열한 편의 원고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제도는 정당한가, 그리고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재를 시작한 이래, 도시 제도와 우리 도시 공간의 ‘크기’, ‘비움’, ‘다양성과 통일성’, ‘생로병사’, ‘소유’, ‘자연’, ‘기능’, 그리고 ‘역사’에 관여하는 바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특히 여러 현실 공간의 사례와 기사를 많이 다루려 했다(그림 2). 대개는 우리 도시 제도가 만든 공간 현상의 부정적 결과를 들추며 제도의 불완전함과 부작동, 나아가 부조리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첫 원고에서 ‘제도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질문했지만, 역시나 비판이 쉽기 때문이다. 전보다 더 나은 도시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 도시 제도도 많고, 제도 자체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데 그런 부분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각 꼭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시의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최소’, ‘최대’ 같은 기준으로 도시의 웬만한 공간 요소의 크기를 재단한다. 우선적으로는 더 높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제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동시에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더 높고, 더 큰 도시를 향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을 수용하고 혹은 부추기며, 작은 공간에 더불리하고 가혹하게 작용하는 ‘이중 플레이’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 방 창문의 크기부터 도시의 크기까지, 도시 공간의 크기를 정하는 제도가 못하는 것이 있다. 도시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도시 자체의 ‘크기’에 관여하는 현대의 도시계획 제도는 오로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하고 그에 맞춰 도시를 넓혀 짓는 물레라서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합리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한 도시계획 제도는 사실상 아직 없다. 그러나 인구 감소를 넘어 소멸을 우려하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기성 시가지 밖 새로운 땅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을 허용하는 물레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 사실상 도시를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 도시의 ‘비움’에서는 공공이 마련하는 ‘공동의 비움’과 민간이 대지 단위에서 확보하는 ‘개별의 비움’ 간의 균형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 도시의 주거지에서 단지형 아파트가 점점 더 우세해지는 상황은 도시가 공유하는 비움이 아닌 외부에 배타적인 비움이 늘어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안에서 그 분포와 역할이 다른 두 비움 간의 적정한 배분이나 상호 관계에 대해 도시 제도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공동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와 ‘개별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는 각각 움직인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해륙순환 도시주의] 바당 가는 길
    “바당서 나오당 다쳐시녜” 바당밭으로 들어가는 길 위 이씨 삼춘(삼촌의 제주 방언)의 한 팔이 굽어 있었다. 푸른 깁스가 무심히 그의 팔을 감쌌다. 수확한 물건을 들고 오던 삼춘은 젖은 현무암에 미끄러졌고. 그 와중에도 삼춘은 성한 한 팔로 갈퀴를 쥐고 사락거리는 검붉은 톳을 바당밭 앞 시멘트 도로에 펼치고 있었다. 해녀는 바다와 땅을 오간다지만 인간은 본래 땅 위에 사는 동물이다. 숨을 쉴 수 있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안정적인 2차원의 땅과는 달리, 바다는 잠시 숨을 참고 방문하는 중력과 부력 사이의 3차원 공간이다. 그 둘을 오가는 데는 다양한 기술(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이 필요하다. 호흡을 참고 내쉬는 기술(숨비질), 한기를 견디는 기술, 물건을 채집하고 물 밖으로 운반하는 기술(테크닉)부터 물에 떠서 잠시 기댈 곳이 되어주는 테왁, 잡은 물건을 넣는 망사리, 고무옷, 물안경과 같은 도구, 몸을 덥히는 불턱이나 목욕을 할 수 있는 탈의장, 바당밭 진입로와 해녀배가 접안할 수 있는 항구와 같은 기반 시설까지(테크놀로지). 이러한 기술들은 다양한 관습과 제도와 맞물려 바당밭을 오랫동안 가꿔왔다. 첫 번째 글 “잠수하는 풍경”에서 필자는 해륙순환 도시주의를 해녀가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듯 건축과 조경이 수면 위아래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부가)생산물들을 호혜 교환하는 지역적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제도로써 고무옷과 금채기, 바당밭 진입로와 물마중을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필자가 참여한 물마중의 경험을 통해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는 기술로써의 ‘길’과 해녀 공동체와 바깥 사회를 연결하는 사회적 연결로써의 ‘길’을 새롭게 상상해보겠다. 고무옷과 금채기 땅과 바다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많은 기술 중에서 해녀의 물질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은 1970년대 고무옷의 도입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녀들은 물적삼과 물소중이라고 부르던 무명이나 광목 소재의 작업복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물질에 최적화된 디자인이었지만 젖은 무명이나 광목은 바다 속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해녀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 중간, 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에 불을 피우는 자리인 불턱을 만들었다. 불턱에서 몸을 녹이고 들어가도 작업 시간은 30분에서 한 시간 내외였다. 자신의 숨 길이와 추위로 인한 작업 시간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바당밭의 고갈을 방지했다. 하지만 짧은 물질과 불턱으로 몸을 녹이던 작업 리듬이 고무 잠수복의 도입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사온 고무옷을 입은 해녀들이 3~5시간 작업을 하며 4배에서 5배 더 많은 물건을 수확하자 이 기술의 도입을 반대하는 해녀들이 생겼다.(각주 1) 그들은 갑자기 증가한 생산성으로 인해 “물건이 씨가 말라”버릴 것을 걱정했다. 고무옷 도입을 찬성하는 해녀들은 고무옷이 가져온 열적 편의(thermal comfort)와 생산성의 향상, 경제적 이득을 우선시했다. 해녀 공동체는 이러한 논쟁을 고무옷과 함께 자원 고갈을 방지할 여러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간 불문율로 존재했던 관습을 ‘공동어장관리규약’으로 문서화해 물질 시간을 제한하고, 계절에 따라 건질 수 있는 물건의 종류와 크기 등을 규정하고, 자치 기구를 두어 이 규칙을 집행·감독했다. 예를 들어 해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뿔소라의 경우 산란기인 6월부터 9월까지 채집을 금했고(금채기), 7cm 이하의 소라는 잡거나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지속가능하게 했다. 채집하는 양을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녀는 바당밭에 ‘씨’를 뿌리기도 한다. 바당밭 내의 ‘자연 양식장’을 두어 소라나 전복, 해삼의 작은 개체들을 풀어주고, 이것이 자랄 때까지 그 구역에서 물질을 금지했다.(각주 2) 또한 해초의 경우, 돌미역이나 톳, 그리고 비료로 사용하던 듬북까지도 특정 기간에는 채집을 금지해 이것이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녀들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 바당밭을 보존해올 수 있었다.(각주 3) 유학생에서 일손으로 2020년 9월 27일, 종일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렸지만 별반 건진 것 없이 돌아가는 길이었다.검은 현무암이 펼쳐진 해안가 멀리 작은 검은색 매스가 서 있었다. 오름을 닮아 둥근 지붕을 가진 단층 건물은 현무암으로 마감되어 있어 마치 그곳에서 솟아난 듯 했다. 정면에 걸린 ‘제주시수산업협동조합 삼양어촌계 잠수탈의장’이라는 손글씨 현판이 정겨웠다. 문을 두드리니 한 해녀가 나왔다. 그는 몸이 안 좋아 물질을 나가지 못했다면서도 내가 해녀 건축과 풍경을 연구한다고 말하자 탈의장과 불턱을 보여주었다. 탈의장에는 여럿이 동시에 씻을 수 있는 큼직한 공용 목욕탕이 있었고 작은 거실, 그보다 더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쓰지 못한다는 불턱은 옆집 창고가 입구를 막고 있어 접근이 어려웠고 태풍에 반쯤 무너져 있었다. 어느덧 동료들이 물에서 나올 시간이 되었다며 따라가겠느냐고 묻기에 냉큼 따라나섰다. 해안가 돌길을 따라 걸으니 멀리 해녀들이 물 밖으로 망사리를 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뒤로는 20대로 보이는 관광객 두 명이 해안가 의자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급히 사진을 마저 찍고 망사리를 건져내는 데 손을 보탰다. 소라가 가득 담긴 망사리는 20kg은 거뜬히 나가는 듯했다. 망사리 그물을 들면 그 사이로 튀어나온 소라뿔이 몸을 찔렀고, 거기서 떨어지는 물이 현무암을 더 미끄럽게 했다. 겨우 언덕을 올라 도로 위 리어카에 실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사이, 큰 목소리로 얘기하는 해녀들에게서 수확의 흥분과 땅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신 차리고 보니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게난 여기서 뭐햄서(그러니까 여기서 뭐하느냐)?” 한 삼춘이 뒤에서 리어카를 밀며 물었다. 미국서 건축 공부하는데 해녀의 디자인과 풍경을 연구한다고 하자 별반 말이 없었다. 이후 이어지는 질문들. “결혼은 해시냐(했느냐)”, “여자 친구는 이시냐(있느냐)”, “무사 머리는 여자추룩 그자락 길렁다념서(왜 머리는 그렇게 여자처럼 길게 하고 다니느냐)?” 결혼은 아직이며 여자친구는 없다고 하자, 삼춘들은 나지막한 탄식과 함께 그 원인이 내 머리 길이 때문이라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 아찔하고 흥겨운 대화에 함께 웃다 보니 탈의장에 도착했다. 삼춘들은 즉시 소라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고, 일부는 삶아 살만 꺼내고 껍질을 버렸다. 생물로 팔 것은 바닷가 웅덩이를 창고 삼아 그 속에 넣어 보관했다. 일이 끝나가자 이씨 삼춘이 수고했다며 내게 작은 문어 한 마리와 소라를 검은 봉지에 싸주었다. 해녀가 바다에서 나올 때 마중 나가는 것을 ‘물마중’이라고 한다. 보통 이때 육지에서 기다리던 남자들이 물건을 건지고 옮기는 일을 돕는다. 물에서는 부력으로 뜨던 물건들이 물 밖에서는 무거워지기 때문에 일손이 더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갔던 날도 한 할아버지가 나와서 물건 건지는 일을 함께했다. 그날 우연히 물마중을 나가게 된 인연으로 나는 삼양 삼춘들을 자주 찾아 만나고일하는 모습을 기록하며 삼춘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3월쯤 아예 삼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한동안 삼춘들을 볼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갈 때마다 다음에 찾아오라며 돌려보냈고, 포기할까 고민하던 2021년 4월 14일, 장문의 편지를 써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텅 빈 탈의장 주변을 걷다 보니 잠수회장이었던 이씨 삼춘이 저 멀리 바당밭 진입로에서 날 보고 손짓했다. 팔에 깁스를 한 삼춘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대신 수확한 톳을 한 팔로 고르게 너는 중이었다. 시간 있으면 도우라는 말에 오랜만에 쓸모가 있어진 나는 그날부터 삼일 내리 삼춘들과 톳을 수확했다. 보통은 남편이나 아들 등 다른 남자들이 일을 돕는다는데, 삼양 3동에서는 첫날 임금을 받고 일하던 한 남성을 제외하고는 오직 나와 대여섯명의 삼춘들이 전부였다. 톳 수확은 물의 흐름을 따라간다. 썰물이 시작되면 삼춘들은 톳을 수확해서 빨간 포대에 담은 후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간다. 어느 정도 무거워지면 포대를 근처에 두고 계속 전진한다. 밀물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돌아오면서 하나씩 육지로 옮긴다. 톳이 파도에 떠내려가기 전에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 없다. 삼춘들은 계속 톳을 담고, 나는 계속 뭍으로 날랐다. 20kg 내외의 톳 한 포대를 들고 현무암 지대를 지나가는게 쉽지 않았다. 현무암 표면은 거칠지만 물과 이끼로 미끄러웠고, 겉에서 보기에는 안정적이어도 밟으면 흔들리기 일쑤였다. 이씨 삼춘처럼 나도 넘어져서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이 까졌다. 일하는 게 영 불안한 나를 보며 삼춘들은 길을 일러주었다. ‘보기엔 다 검은 돌이지만, 걸어 보면 흔들리지 않는 길이 있다.’ 오직 노동으로 익힌 길. 3일차 작업이 끝나자 머리 긴 일꾼이 쓸 만했는지 늘 까칠하던 한 삼춘이 번호를 쓰고 가라고 했다. 그러곤 빳빳한 오만 원 권 두 장을 쥐어 주며 내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길 근대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제주, 해녀들은 바당밭 작업로를 포장함으로써 바당밭 풍경을 바꿔 나갔다. 검은 현무암 사이로 회백색 시멘트가 틈을 메꾸었고, 두터운 선이 되어 바다와 육지를 가름했다. 그 길 위로 해녀들은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걸었고, 물차(운송 트럭)는 해안가 더 깊이 들어와 바다 창고에서 물건을 건져 갔다. 하지만 시멘트 포장은 돌 틈에서 살아가는 소라와 거북손, 게와 같은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시멘트의 생산과 운송, 폐기에 있어서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두 환경을 연결하는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해륙순환 도시주의적 제안은 소라 껍데기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소라나 전복 껍데기는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바닷가 주변이나 폐기장에 버려진다. 1920년대 일제 식민지 시절 이러한 껍데기를 가공해 단추로 재활용하는 공장이 제주에 있었지만 1980년대에 문을 닫으면서 껍데기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각주 4)해녀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많은 음식점의 경우에는 해산물 껍데기를 모아 폐기물 업체에 넘기는데 이 중 일부만이 비료나 자개의 재료로 재활용됐다.(각주 5)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제주도는 몇 마을에 분쇄기를 도입해서 껍데기를 갈아 비료로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다양한 기관들이 자원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각주 6)나는 뿔소라 껍데기를 조간대 길의 골재로 사용해보는 것을 상상해본다.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뿔소라 껍데기는 겉에 나있는 뿔과 나선형의 형태 덕분에 압력이나 충격에 강하다.(각주 7)또한 그껍데기를 쌓았을 때 뿔이 맞물리고 단단하게 결합한다. 해녀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3차원 지오넷을 설치하고 그 속을 소라 껍데기로 채우는 것이다. 이런 길은 해녀들의 작업을 조금이나마 덜 위험하게 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은 관광객이나 다른 주민에게 산책로가 될 수도 있다. 그 길 위에서 해녀가 아닌 사람들도 땅과 바다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면, 바다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이 조금 더 쉬워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해녀의 일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며 파도와 사람들의 걸음으로 소라 껍데기가 깨지고 부서졌을 때, 그 길을 새롭게 채우는 것도 하나의 의례가 될 것이다. 해녀 공동체는 신규 해녀의 부재, 물질 소득과 농어촌 인구의 감소 등의 이유로 사라져가고 있다. 해녀 평균 연령은 이미 2020년에 70대를 넘어섰고,(각주 8)제주 해녀 인구는 1970년 1만 4,143명에서 2023년 2,839명으로 급감했다. 해녀학교가 신규 해녀를 양성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촌계에 가입해 해녀가 되기란 어렵다. 최소 물질 일수를 채워야 하고 기존 공동체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각주 9)직업인으로서 해녀를 양성하는 것이 해녀의 소멸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조금 느슨하고 열린 공동체는 어떤가? 길 위해서 만나는 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 문화유산으로서의 해녀가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이웃으로, 관광객이 아니라 물마중 나오는 지인으로서. 조금씩 우연히 함께 걷다 보면 연결될 테니. **각주 정리 1. 고광민,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속의 해녀 연구”, 『무형유산』 6, 2019, p.232. 김경돈, 류석진, “비배제성과 경합성의 순차적 해소를 통한 공유의 비극의 자치적 해결방안 모색: 제주도 동일리 해녀의 자치조직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20(3), 2011. 2. 안미정, 『제주 잠수의 어로와 의례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화전략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07, p.119. 3.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알에이치코리아, 2010. 해녀 공동체가 어떻게 오스트롬이 정리한 지속가능한 공유 자원의 여덟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노우정의 『제주 해녀공동체의 특성과 지속가능한 마을어장 관리』(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1)를 참조. 4. 장태욱, “군수시설에서 통조림공장, 도시재생까지 요동치는 근대 유산”, 「서귀포신문」 2019년 3월 18일. 5. “버려지던 굴, 조개 껍데기 새로운 소득원 된다”, 해양수산부 보도자료, 2023년 1월 12일. 6. 김태홍, “서귀포시, 소라, 성게 껍질 해양오염방지 농가 퇴비로 재활용… 파쇄기 지원”, 「제주환경일보」 2022년 2월 28일. 7. 권예슬, “자연계 최고로 단단한 소라껍데기의 비결은”, 『동아사이언스』 2016년 2월 18일. 8. 이진호. “‘은퇴자가 신규해녀의 10배, 제주 해녀 인구 3000명대 붕괴’ 소멸해가는 해녀, 그 속의 작은 움직임들 지켜내야”, 「한경」 2024년 3월 25일. 9. 위의 글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 강준호 / 2024년11월 / 439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서도 축적된 랜드스케이프를 탐구하고 재해석해 장소에 새로운 연속성을 부여하다
    오피스의 시작 사무실을 시작한 건 설계를 하다 보면 장소가 지닌 정체성을 단순히 컴퓨터 화면과 종이의 결과물로 구현할 수 없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게 디자인 빌드였다. 사무실 개소 후 첫 디자인 빌드 프로젝트는 보리(Voree)였다. 보리는 서해라는 서사가 담긴 랜드스케이프와 농경 문화가 스며 있는 장소다. 이 지역이 가진 독창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의 고유한 질감을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해의 석양과 청보리, 메밀의 생산적 경관을 감상하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지속가능한 로컬리티가 형성됐다. 클라이언트, 건축가, 조경가, 시공자가 긴밀하게 협의했다. 덕분에 보리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장소의 탐구와 해석 오랜 세월 동안 장소는 생태학적 요소와 인문학적 요소로 인해 고유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이을 수 있게 현 시점에 필요한 순기능을 디자인 요소로 도입해 지속가능한 경관을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성된 공간은 긴 생명력을 지니게 되고 동시대의 공유 공간이 된다. 보리는 영광군 백수해안도로 한편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지역의 고유한 랜드스케이프를 발굴하는 과정을 가졌는데, 그때 해안가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청보리, 해안 절벽과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을 새롭게 조성하기보다는 기존 경관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는 설계를 하며 지역 고유의 질감을 유지하고 주변 자연 경관에 순응하게 했다. 전면에 긴창이 설치된 건축물에서 석양과 청보리밭의 파노라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차경을 통해 방문객이 건축물 내부에서 자연 경관을 감상하고, 외부로 나와 자연의 경이로움과 서사적 풍경을 직접 경험하길 바랐다. 이를 위해 외부 공간으로 안내하는 유입 요소가 필요했다. 청보리밭에서 해안 절벽의 파도 소리와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두 곳을 결절점으로 설정했다. 결절점에는 인근 지역에서 자란 팽나무를 식재했으며, 목재 오브제를 설치해 방문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진입을 유도하고자 했다. 그늘목 아래에 서면 서해의 환상적인 해질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고유한 질감 찾기 땅의 기억과 흔적 장소의 고유한 질감은 땅의 기억과 흔적에 새겨져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프로젝트에서는 현장에서 독특한 반달 패턴의 담장을 발견했다. 반달 형태의 콘크리트 블록을 패턴화해 이 장소의 고유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반달 모양의 낙서판, 가족들이 담소를 나누는 반달 테이블, 다채로운 활동을 유도해 생동감을 불어 넣는 두더지 잡기, 용산 미8군 클럽무대에서 모티브를 얻은 무대 놀이터 등 독특한 패턴의 디자인을 통해 이 지역의 기억과 흔적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시경원(時景園)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대상지는 고봉산의 낮은 구릉지에 야생 초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 지역이 지니고 있는 경관적 특성과 땅의 흔적을 존중하여 장소가 지니고 있던 기억에 어긋나지 않고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지역의 식생 경관을 그라스와 암석 소재를 활용해 디자인했다. 소재의 물성 재료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재를 활용해 디자인한다. 재료 본연의 질감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시간 변화에 따라 재료의 물성도 함께 변화해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석은 지역마다 색상과 질감이 다르다. 예부터 마을의 담장에 쓰인 돌은 집터, 경작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주변 산이나 강가에서 주워 오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지역마다 석재의 특성을 구분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암석을 활용해 디자인에 적용한다. 목재도 종종 활용한다. 목재는 시간의 물성을 잘 나타내는 소재다. 영구적이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환원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감과 질감의 물성이 변화한다. 주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 사람의 피부가 닿는 곳에는 목재를 주된 소재로 활용한다. 식물 식물로 고유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연스레 씨가 떨어져 오랜 시간 동안 천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식생 경관을 아무리 비슷하게 묘사하더라도 본연의 모습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유사하게 연출하기 위해 주변 식생을 관찰하고 관련 문헌 조사를 진행한다. 대상지 인근 지역의 생태 조사 보고서를 참고하다 보면 지역 자생종과 식생 환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기후 조건, 생육 환경, 수급 여부를 고려해 수종을 선정한다. 인문학 관련 문헌을 조사하면 식물에 담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끼는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가장 먼저 나타나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식물로 알려져 있고, 과거에는 아기 기저귀 재료로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식물이다. 이렇듯 식물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인문학적 특성을 고려해 수종을 선정하고 식재 디자인을 한다. 식재 디자인은 다양한 색감을 이용한 화려하고 돋보이는 식재 패턴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색감을 이용해 자연이 주는 서정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보태니컬 커뮤니티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자연이 전해주는 위안과 환기의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태니컬 커뮤니티(botanical community)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식물을 매개체로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사이드 아웃 가든(Inside Out Garden)은 친근한 영화 캐릭터와 정원이 결합된 형태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연을 이해하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아홉 가지 색깔이 전하는 식물 이야기를 통해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고 마음 속 평온함을 느끼길 바랐다. 대상지는 한강의 서사적 풍경을 차경할 수 있는 입지적 특성이 있다. 한강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눈높이보다 낮은 수종을 식재해 열린 시야를 확보했다. 또한 퇴적층이 형성된 토양으로 원활한 배수가 힘든 구조였다. 토양 치환 및 마운딩을 통해 배수를 원활히 하고 땅의 지력을 높여 생육 환경을 개선했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진입할 수 있게 보행 동선 폭을 1.5m 이상 확보해 누구든지 편하게 접근하게 했다. 보행 편의성, 내구성을 고려하여 워싱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했다. 캐릭터가 위치한 곳에는 높이가 낮은 암석을 함께 배치하여 잠시 걸터앉아 쉴 수 있게 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감정들의 아홉 가지 색깔을 고려해 아홉 가지 색상 구역을 형성했다. 진입부는 웰컴 정원으로 기쁨을 상징하는 옐로우 존으로 설정했다. 구역마다 색깔을 고려해 식재를 연출했다. 열매가 붉은 계열인 산사나무와 팥배나무는 레드 존, 보라색 열매가 있는 뽕나무를 퍼플 존, 단풍색을 고려하여 계수나무를 오렌지 존에 식재했다. 관목과 초화류는 구역별 색상을 고려해 식재했다. 자연이 전해주는 환기와 쉼의 여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무용(無用)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생산적인 무용한 것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그래서 땅과 물, 빛과 바람, 자연의 생명력을 만나는 곳에서 잃어버렸던 무용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우리의 삶이 자연으로부터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설계에 임한다.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헤아림(林) 정원에 들어오면 새소리와 꽃내음 등 자연이 전해주는 생명력과 무용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내온 능수버들나무와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이 있다. 능수버들나무 테이블에 앉아 자연이 주는 느긋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나무와 꽃, 돌담이 있는 언덕에 오르면 정원의 풍경과 한강이 전해주는 쉼의 여백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의 중점이 되는 버드나무 경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색감이 화려한 식재보다는 암석을 활용한 연출로 버드나무를 강조했다. 능수버들 나무 아래에는 커뮤니티 테이블을 설치해 담소와 간단한 식음 공간으로 활용하고 테이블 하부의 일부를 개방해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하게 했다. 브랜드 슬로건과 BI에서 모티브를 얻은 돌담을 조성해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돌담의 높이는 눈높이보다 낮게 해 시각적 개방성을 강조했다. 정원에는 인위적 시설을 배제하고, 돌, 나무, 꽃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놀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아카이빙 오피스의 미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매번 반복적인 문구를 쓰게 된다. 주변 경관에 순응, 지역 고유한 색상과 질감, 온전히 이어가는 디자인, 진귀하고 화려함이 강한 수종보다는 인근 지역 환경에 적응한 수종 중심으로 식재, 자연 소재 등등.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게 16년 동안의 실무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옛 우리 선조들이 그렸던 ‘원(園)’의 모습은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이 흐르고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아 경관을 감상하는,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풍경이다. 정원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주변 경관의 일부가 되는 정원을 그려낸 것이다. 우리 정서에 맞는 정원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원고를 쓰기 위해 예전 자료들을 살펴보며 잠시 잊고 있었던 랜드스케이프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울림이 있었던 시간을 보냈다. 스튜디오 명칭을 리스케이프 대신 서도라고 새로 바꿨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지혜와 이치를 탐구하고 장소에 새로운 연속성을 부여하는 랜드스케이프를 그려나가고 싶다. 서도(諝道, 구 리스케이프)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곳을 작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2020년에 문을 열어 조경설계, 정원 디자인 빌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도는 한자로 ‘지혜’와 ‘이치’란 뜻을 담고 있으며, 장소에 축적된 랜드스케이프의 본질적인 탐구와 해석을 통해 새로운 연속성을 부여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LH 공공주택 작가정원, 팜 보리(Farm Voree), 신사동 사옥 건축 외부 공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기념과 기억 사이
    에피소드 1. 용산공원에서 내셔널 몰까지 12시간 15분 오전 5시 10분, 우려와 달리 눈이 번쩍 뜨였다. 몇 달을 기다려온 출장이다. 올해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미국조경가협회) 대회가 워싱턴 DC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으쌰으쌰 발표 자료를 만들어냈다. 동료 발제자들과 용산공원의 시민 참여에 관한 다양한 켜를 다루는 교육 자료를 준비했는데, 과연 이게 먹힐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사실 여러모로 조경과 연관 있는 도시인만큼 그냥 간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겠냐만 왠지 모르게 ‘대회’, ‘학술’, ‘답사’라는 키워드를 끼고 가야 양심이 덜 아프다. 집 현관에서 워싱턴 DC 숙소까지 비행 시간 열두 시간을 포함해 꼬박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못 했다는 걱정도 잠시, 파란 하늘과 듀폰 교차로 광장(Dupont Circle) 주변 예쁜 역사 유적지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역시 집 바깥은 즐겁다. 내셔널 몰이 ‘몰’인 이유 몰(mall)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모습이 쇼핑몰이다. 긴 보행로 양측으로 상점가가 길게 늘어선 실외 또는 실내 공간. 하지만 녹지를 양옆으로 둔 긴 가로도 몰이라고 부른다. 후자에 해당하는 몰의 어원은 16세기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늘날 크리켓의 원형인 펠-멜(pall-mall) 게임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각주 1) 실제로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제야 어원을 납득할 수 있다. 판더페너의 그림은 녹지 공간 사이 선형으로 길쭉한 경기장을 담고 있다. 손잡이가 긴 나무 망치로 공을 쳐서 멀리 위치한 골대로 가게 하는 게 게임의 목적이다. 즉 ‘녹지를 양옆으로 둔 선형의 넓은 가로’라는 점에서 이 공간이 오늘날 공원이나 오픈스페이스의 몰이 된 것이다. 이 어원을 염두에 두면 결국 몰이란 녹지를 양옆에 둔 넓은 직선형 오픈스페이스라고 정리할 수 있다. **각주 정리 1. 이탈리아어로 공과 나무 망치를 의미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