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s My Art Museum?
미술관은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사는 서교동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려면 강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야 한다. 동물원 옆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서야 미술관에 도착한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계단을 오르고 입장료를 지불한 후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은 후에야 조명 속에서 드러나는 빛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은 하얀 큐브 속에서 보물들처럼 반짝이고 있다. 나는 그 보물들을 보기 위해 신전을 찾아왔는지 모른다. 미술관은 멀고 드물다. 그런 만큼 작품은 고귀하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에 붙어 있는 수천만 원대의 저 고귀한 가격표들은 미술관의 거리만큼이나 나의 실감 저 너머에 있다. 이렇게 제도화된 미술관은 신전을 짓고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작품들을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보물로, 값비싼 상품으로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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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 동떨어짐으로써 그 존재이유를 찾는 작품들은 그것이 큰 시장적 영향력을 가질 때조차도 어딘가 삶의 에너지가 박제된 것처럼 느껴진다. 왕궁이나 신전이 시정에서 멀어짐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다한 것과 비슷하게, 예술가들의 집단주거나 작업실도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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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미술관들은 고정된 장소에 놓여 있다. 작품의 전시나 상영 혹은 공연은 그 장소에 가 야 만 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작년 7월 15일부터 30일까지 부평 콜트콜텍 공장에서는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가 열렸다. 폐쇄된 공장이 미술관으로 바뀐 것이다. 그곳은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었지만, 회사가 2007년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해외공장을 만든 후 폐쇄된 상태였다. 노동자들은 해고무효투쟁을 벌였고 2,000일을 맞은 때에 노동자들을 예술적으로 돕기 위한 방법으로 19명의 개인작가와 두 개의 작업그룹이 공장에서 이 전시회를 연 것이다. 미술관은 건물관리인들의 방해와 협박에 대항하면서 형성되는 저항력만큼의 크기로, 그 현장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불러내는 상상력만큼의 강도로 만들어졌다. 그 미술관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일종의 ‘일시적 자율공간(TAZ: Temporary Autonomous Zone)’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