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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학도, 유럽서 ‘자발적’ 순천만 홍보
유럽 6개국 방문해 정원박람회 알려
국립 순천대학교에서는 매년 세계교육문화탐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탐방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준다.마침 2013년 4월 개최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세계교육문화탐방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자연과 조경, 정원들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먼저 같은 마음을 가진 조경학과 친구들을 모았다. 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에서 열려서 그런지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뜻이 맞았던 신정우, 서보람, 이재운 3명의 친구들과 함께 고민 끝에 서양조경사에서 자주 배우며 익숙한 곳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과 평소 가고 싶었던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등 총 6개국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또 도시는 그 나라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있는 곳을 위주로 선택하였다. 한마음 한뜻이 되다보니 구체적인 계획은 일사천리로 세울 수 있었다. 결국 세계교육문화탐방에 합격하게 되었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박석곤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님의 조언에 따라 나라별 유명한 조경작품과 정원을 조사, 스크랩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팀에 찾아가기 위해서 순천시청을 찾아갔다. 홍보팀은 우리의 계획을 듣더니 영어로 된 팸플릿과 부채, CD자료, 마우스패드 등의 홍보물품을 지원해주며 “이번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홍보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었다. 더욱 실감이 나면서 보다 효율적이고 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였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 가운데, 우리의 모습을 캐릭터로 만들어 단체 티와 현수막을 제작하였으며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소개할 때 사용할 영어 멘트들을 적어보는 등 구체적인 홍보방법을 준비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2012년 7월 5일, 희망찬 마음을 가지고 38일간의 긴 여정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발을 내딛은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는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3.12~1700.9.15)가 설계한 보르비꽁트(Vaux Le Vicomte)와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전이 있어서 우리 조경학과 학생들에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곳에 직접 가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홍보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우리가 한국을 대표해서 온 홍보대사 같은 사명감도 들었다. 보르비꽁트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태가 된 성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해 소박하지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중략)
우리의 팀명은 온새미로다.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라는 뜻으로, 해외에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가 처음 함께 하고자 했던 마음 변치 않고 잘 다녀오자는 마음과 더 나아가 자연그대로의 우리나라의 자연을 알리고 해외의 자연을 배우고자 했던 마음에서 선택한 순 우리말이다.이 말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도 적용되면 하고 소망해본다. 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조경을 세계에 더욱 알리기 위해서는 보다 자연적인 것, 변함없이 꾸밈없는 그대로가 진정으로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지 싶다.나비효과. 우리의 이 작은 날개 짓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관심을 가지는 작은 미풍이 되고, 그렇게 열의와 관심이 하나의 큰 바람이 되어 순천만에서 국제적으로 개최되는 정원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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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라펜트 제28기 통신원 동계엠티
함께 만들어가는 조경 이야기
<환경과조경>·라펜트 제28기 통신원 동계엠티가 지난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장태산 옥류정팬션형 가든에서 열렸다. 28기 통신원을 주축으로 한 이번 행사는 29기로 활동할 예비 통신원과 OB 통신원을 포함하여 약 70여 명의 인원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선후배 통신원 간 질의응답 방식으로 토론회가 진행되어 예비 통신원들에게는 통신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진로와 분야에 대한 고민까지 더욱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통신원들은 게임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함께 식사 준비를 하면서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을 가졌다. 28기 통신원들은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가졌으며, 동시에 예비 통신원들의 활동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이날 참석하기로 했던 통신원이 대부분 도착한 저녁 무렵에는 과거, 현재, 그리고 예비 통신원이 함께하는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조경을 하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 졸업 후 진로, 졸업 전에 체험해 볼 수 있는 조경분야의 프로그램과 관련한 주제로, 사회는 28기 황희정 통신원(고려대)이 맡았다.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이날 행사에는 전조련의 김찬욱(동국대) 회장도 참석했는데, 통신원 모임 참석 이유에 대해 전조련의 활성화를 위해 <환경과조경>·라펜트 통신원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조련과 <환경과조경>·라펜트 통신원이 교류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했고, 학생들의 지원을 끌어내는데 통신원들이 도움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김 회장은 “전조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있지만,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각 학교 학생회장들과 온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만남이 진행 중이고, 3월 중에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전조련을 구성하고 있는 각 학교의 문제들을 수렴할 계획이다. 28기 채승우 통신원(순천대)은 “아직 학생들은 전조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국의 조경학를 위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잘 모르고 있다. 또한 8년이라는 기간이 증명해주듯 예전만큼 선배들이 끌어주는 것도 부족한 것 같아서 전조련의 부활이 잘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통신원들과 소통을 통해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취재 _ 권서란(경북대), 유선화(한경대) 통신원 | 사진 _ 채승우(순천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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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물을 철학하다
Water is expressed philosophically as old paintings
신화시대의 물2-물을 흐르게 하는 자, 천하를 얻으리라
귀신과 사람이 뒤섞여 살던 신화시대에 홍수는 가장 큰 재난이었다. 적당한 물은 대지에 생명을 제공하지만 넘치는 물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음에 빠뜨린다. 홍수가 발생할 때면 물에 빠져 대책 없이 허우적거리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태평성대의 모델로 추앙받는 요순(堯舜) 임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치수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 시기가 바로 요순 임금 때다. 요순이 실존한 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사서의 저자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은 삼황(三皇)은 빼고 다섯 명의 제왕(五帝)에서 『사기(史記)』를 시작한다. 삼황은 그 존재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 순 등 오제가 다스리는 시대 또한 역사 이전의 신화시대인 만큼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오제 역시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옴직한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마천이 선정한 오제 대신 시대에 따라 다른 왕이 첨가되기도 한다.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 요, 순이 들어가거나, 태호(太昊), 염제(炎帝), 황제, 소호씨(小昊氏), 전욱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 신(神)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마천이 중국 역사를 황제에서 시작한 것은 황제가 염제, 치우와 싸워 이긴 후 천자로 추대되어 실제적인 중국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길을 막아 치수에 실패한 곤한나라 화상석에는 고대 전설상의 신과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화상석 맨 위의 중앙에는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가 앉아 있고, 아랫단에는 창조신부터 하夏의 마지막 왕까지 새겨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에는 세상을 창조한 인면사신(人面蛇身) 여와와 복희가 서 있다. 그들은 손에 자와 컴퍼스를 들고 서 있는데 아랫부분은 서로 꼬리가 얽혀 있다. 다음에는 불의 신 축융(祝融)과 농업의 신 신농이 배치되어 있는데 두 신은 면류관을 쓰지 않은 매우 서민적인 모습이다. 아직 천자로서의 왕권이 확립된 시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황제는 이름이 헌원(軒轅)인데 전욱, 제곡, 요, 순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황제는 중국 최초의 시조신이면서 모든 부족의 공통 시조로 인정받고 있다. 황제 때부터 순 임금까지는 천하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선양(禪讓)을 선택했다. 우(禹) 임금 때부터는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부자상속이 시작된다. 우는 부자상속을 통해 왕권을 강화한 하夏나라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라는 마지막 왕 걸桀에 의해 끝나고 탕(湯)왕에 의해 은(殷)이 세워진다. 화상석의 맨 끝에 걸을 새겨 넣은 이유는 하 왕조의 끝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 임금은 부자상속을 통해 왕권을 넘겨준 왕이기 이전에 치수에 성공한 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치수에 성공하기까지는 아버지 곤鯀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되었다. 요 임금 때의 일이다. 태평성대로 알려진 요 임금 때는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황제가 싸워 진 염제는 남방을 담당하는 농업의 신인데 그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신화는 이미 황제 때 농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염제 신농은 농사 뿐 아니라 약초로 병을 다스리는 방법까지 알려준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가지 풀을 씹어 풀의 효능을 확인했는데 때로 독초에 중독될 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단장초라는 풀을 씹어서 약효를 실험하다 창자가 끊어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의약의 신으로서 염제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미 이 시기에 풀로 약초를 쓸 만큼 농업기술이 발달했음을 말해준다.농사지을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적당한 때 비가 내려야 작물이 싹이 트고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내린 것이 문제였다. 세상은 홍수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백성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성을 제 몸처럼 아낀 요 임금은 홍수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때 여러 제후들이 곤을 추천했다. 곤은 성격이 강하고 제멋대로였기 때문에 요 임금은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제후들의 거듭되는 추천에 못 이겨 그에게 치수를 맡겼다. 그러나 7년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가 택한 치수방법은 무작정 흙으로 물을 막고 둑을 쌓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치수 실패를 물어 우산(羽山)에서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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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전설1-초등학교의 기억
The Legend of Chun Hyang(1)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지가 있기에 글 쓰는 작업도 외롭지 않다. 글을 쓰면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 나와 동질의 시각으로 출판된 책을 보면 내 이야기는 없어지고 그의 글을 인용하기 시작한다. 활자화된 글을 보면 왠지 세련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을 느낄 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지면의 낭비요, 넘치는 정보의 시대에 내 글이 쓰레기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환경과조경>에 연재하기 시작할 무렵, 신상섭 교수님(우석대학교)께서 한 권의 책을 선물해 주셨다. 지금은 선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고 앞 페이지에 몇 자 적어 우정의 증표로 삼았던 기억이 났다. 학창시절, 서점은 약속장소였지만 대형서점으로 인해 조그만 서점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형서점도 인터넷 서점에 밀려 문을 닫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간혹 답사를 다니다 작은 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는 것, 그것은 아마도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중략)
요즘 뜬금없이 본방을 사수하는 TV프로그램이 생겼다. 일일시트콤 ‘패밀리’이다. 유전자적으로 우성인 가정과 열성인 가정이 모여 새로운 가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내용이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채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 점차 하나의 가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훈훈한 저녁 볼거리가 되었다. 여배우 황신혜의 변화모습이 남다르다. ‘미모의 능력 있는 이혼녀’에서 ‘가족을 배려하는 따뜻한 엄마’로 변화해 간다. 나는 이것을 장소의 원칙이라 말한다. 장소는 3인칭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1인칭 관점, 즉 실존적 장소가 되어야 맛이 난다. 전설적인 장소는 타인의 일상적 기억들을 함께 소통하고 배려할 때, 집단적 기억으로 승화되고 비로소 신화를 창출하게 된다. 우리집 동네에 신평상회가 있다. 동네의 유일한 생활필수품 창고이다. 달달한 것이 먹고 싶으면 사탕을 사러 가게에 들르곤 했다. 어느 날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뉴슈가와 소다였다. 달고나 혹은 띠기라고 불리는 간식의 주재료이다. 추억의 재생산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때 최고의 간식이었고, ‘사탕물고기’를 타기 위해 용돈을 투자했던 주범이었다.
(중략)
흔히 역사도시, 역사경관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북촌, 전주, 안동 등의 한옥마을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 중 전주한옥마을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전통과 상업개발주의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괴물이다. 반면 남원 구도심은 전통, 근대, 그리고 현대가 녹아든 거리 박물관이다. 일식건물의 병원, 1960~1970년대 익숙한 간판 등은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근대경관이다.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묻어져 있는 근대경관은 박물관 유리관에 전시된 문화가 아니라 시대의 정신과 한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래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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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술관은 어디에?
Where is My Art Museum?
미술관은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사는 서교동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려면 강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야 한다. 동물원 옆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서야 미술관에 도착한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계단을 오르고 입장료를 지불한 후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은 후에야 조명 속에서 드러나는 빛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은 하얀 큐브 속에서 보물들처럼 반짝이고 있다. 나는 그 보물들을 보기 위해 신전을 찾아왔는지 모른다. 미술관은 멀고 드물다. 그런 만큼 작품은 고귀하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에 붙어 있는 수천만 원대의 저 고귀한 가격표들은 미술관의 거리만큼이나 나의 실감 저 너머에 있다. 이렇게 제도화된 미술관은 신전을 짓고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작품들을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보물로, 값비싼 상품으로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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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 동떨어짐으로써 그 존재이유를 찾는 작품들은 그것이 큰 시장적 영향력을 가질 때조차도 어딘가 삶의 에너지가 박제된 것처럼 느껴진다. 왕궁이나 신전이 시정에서 멀어짐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다한 것과 비슷하게, 예술가들의 집단주거나 작업실도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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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미술관들은 고정된 장소에 놓여 있다. 작품의 전시나 상영 혹은 공연은 그 장소에 가 야 만 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작년 7월 15일부터 30일까지 부평 콜트콜텍 공장에서는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가 열렸다. 폐쇄된 공장이 미술관으로 바뀐 것이다. 그곳은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었지만, 회사가 2007년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해외공장을 만든 후 폐쇄된 상태였다. 노동자들은 해고무효투쟁을 벌였고 2,000일을 맞은 때에 노동자들을 예술적으로 돕기 위한 방법으로 19명의 개인작가와 두 개의 작업그룹이 공장에서 이 전시회를 연 것이다. 미술관은 건물관리인들의 방해와 협박에 대항하면서 형성되는 저항력만큼의 크기로, 그 현장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불러내는 상상력만큼의 강도로 만들어졌다. 그 미술관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일종의 ‘일시적 자율공간(TAZ: Temporary Autonomous Zon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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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Chung Pyeong Sa
청평사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74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면적 43,098㎡의 고려시대 사찰로 고려 광종 24년(973) 영현선사에 의해 백암선원으로 창건된 이후 보현원, 문수원으로 불려오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에 의해 중건 및 정원조영이 이루어졌다. 사찰 일원은 아늑한 분지형을 이룬 입지환경 속에 계곡, 영지(影池), 소(沼), 반석(너럭바위),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천혜의 산수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명승지로, 경내에는 회전문, 경운루, 대웅전, 극락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4년 12월 28일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
The Chung Pyeong Sa is the Korean traditional Temple in Cheongpyeong-ri, Buksan-myeon, Chuncheon-si, Gangwon-do and it had been built in Gwang-Jong's period(973) in Korea dynasty. The location of the temple has aesthetics of the adaptation as the symmetry of Buddhism, and the harmony of the nature and Human work. The area of the temple is 43,098㎡ and it is basically made up of Hoejeonmun, Gyeongullu, Daeungjeon, Geungnakjeon. It is connecting with condition of the selecting of the building area by environment and aesthetic. It appointed as the Gangwon-do monument 55 at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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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노믹스 시대, 조경계 여성 리더들
Women Leaders of the Field of Landscape Architecture in Womenmics Era
첫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근대 이후, 아니 지난 1,000여 년 이래 최초의 국가리더이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로서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 우리도 사회적 영역에서 여성들의 설 자리가 굳건해진 것일까? 벌써부터 사회 일각에서는 볼멘소리로 ‘역차별’을 운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 모계사회’ 도래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한들 고진(Karatani Kojin)의 말처럼 모계사회가 반드시 모권사회이지는 않다. 객관적인 지표를 살펴보자. UNDP(유엔개발계획)의 2012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남녀평등지수는 세계 146개국 중에서 11위이다. 그런데, 세계경제포럼WEF은 2012년에 한국의 성평등 순위를 세계 135개국 중에서 108위로 발표했다. 이렇게 상반된 통계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성 근로 문제가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모성사망률, 교육률, 경제활동참가율 등의 양적 지표UNDP의 지표는 전세계 톱 텐을 바라본다. 그러나, 질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성평등 면에서 세계가 공인한 후진국일 뿐이다. 구미와의 비교는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필리핀(6위), 스리랑카(39위), 몽골(44위), 중국(69위)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도 한참 뒤진다. 추가로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보고서를 하나 더 보자. 아시아 744개 기업에서 여성임원비율을 조사한 자료이다. 한국은 간신히 1명 이상의 여성임원이 있는 국가에 들어갔지만,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보다 한참 뒤진다. 한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은 아직까지 이렇게 견고하다.그러나 햇살에 얼음 녹듯이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로 못 박았고, 인류학자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미래 산업구조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0세기에는 여성들에게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처럼 일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젠 남성처럼 일하지 말고 여성처럼 일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산업혁명 이후 양적 생산의 효율성을 중시한 사회에서는 통제를 위한 수직적 리더십이 필요했으나, 창의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와 정보기술의 시대에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감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특유의 수평적 리더십으로 여성이 경제와 산업 전반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이른바 ‘위미노믹스(womenomics)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조경분야는 건설업 특유의 보수성 때문에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소규모 기업으로서 비교적 창업이 용이한 설계사무실에서는 여성 리더가 적잖다. 그러나 엔지니어링으로 가면 그 수는 대폭 줄어들며 건설사는 더 심하다.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여성 진입이 용이하지만 근무 연수가 길어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점에서 엔지니어링, 건설사, 공공부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여성 조경가 6인을 만났다. 냉정한 현실로 존재하는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려운 고비는 어떻게 넘겼는지, 자기관리의 노하우는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6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이제 들어보자.
참여자엔지니어링박기숙·(주)이산 조경부, 상무박승자·(주)평화엔지니어링 조경부, 부사장
건설사김태연·(주)대우건설 조경팀, 부장
박유정·(주)삼성물산 토목조경팀, 차장
공공부문김선미·한국토지주택공사 녹색경관처, 처장오순환·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동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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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중앙녹지공간 기본계획 및 기본설계(5)
The Master Plan and Schematic Design for Central Open Space in M.A.C, Korea(5)
세종시 금강길 / 세종시 둘레길(가칭)중앙녹지공간 구역을 중심으로 약 6.5km에 이르는 중심구역 순환길은 세종시 도시개념의 비워진 내부를 순환하는 링으로서 인접한 시설에 따라 각각의 특성을 갖고 연결되도록 계획되었다.2007년부터 시작된 기본계획 조정은 최초 중앙녹지공간 계획구역 내에 포함되었던 금강수변구역양안이 4대강 시범사업구역으로 제척되고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변공원 구역과 자연녹지 지역이 중앙녹지공간 계획구역으로 포함됨에 따라 이에 대한 체계화 및 연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먼저 중앙녹지공간으로의 보행 및 자전거길 등을 통해 도시의 각 구역으로부터 접근과 연결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환상형의 대중중심순환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주요 세지점(중심행정타운, 2생활권, 시청사)을 순환하는 셔틀이 계획되었고 이를 가칭 세종시 금강길(둘레길)이라는 명칭으로 세종시를 동서로 잇는 수변구역과 연결하여 세종시 전체 구역을 잇는 공원 녹지축 및 보행연결을 보완하였다.중앙녹지공간은 원수산과 전월산을 잇는 남북 육생녹지축과 금강의 동서축을 잇는 세종시 녹지체계의 근간이다.세종시 금강길은 사람의 연결뿐만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중앙녹지공간으로 이어준다.중앙녹지공간과 도시구역을 연결하며 특성화하는 도시상징문화밴드와 도시공원 프로그램밴드, 문화클러스터 및 도시휴양센터는 세종시를 동서로 잇는 가칭 ‘세종시 금강길(둘레길)’과 중심구역 순환길에 의해 도시 전체로 보행, 자전거, BRT 등의 동선으로 연결된다.세종시 금강길은 입지특성에 따라 생태예술경관 테마길(보존녹지 및 재자연화, 재생소재예술의 대지조성), 문화경관 테마길(중앙녹지공간, 중앙호수공원 및 제천변 문화클러스터 연계, 축제와 도시예술길조성), 친수경관 테마길(4대강 사업 연계 강변경관특성화길, 첫마을 및 2생활권 도시경관과 연계된 커뮤니티특성길)로 각각 구분되어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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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할렌 광장
Zollhallen Plaza
Jessica Read | Atelier Dreiseitl | www.dreiseitl.com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위치한 졸할렌 광장은 2009년 복원된 세관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고 역동적인 도시의 광장으로 조성되었다. 이 광장은 과거 화물열차 터미널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황무지가 되었던 곳을 지역주민을 위한 통합적이고 다기능적인 사회자원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모든 광장은 기후조절장치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설계자는 시 정부의 부담완화를 위해 대상지를 지역과 연계된 하수체계에서 분리하였다. 이 하수체계는 폭우 시 그 수용력을 이미 초과하여 재앙이 닥치는 것을 기다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셀필룸(creeping thyme)이 심어진 투수성 포장과 식재대를 활용하면 광장 일대의 열섬효과를 줄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찾아냈다
저관리형의 아름다운 식수대들은 넓은 지표면 아래 자갈 배수로로 통하는 정화와 침투가 일어나는 곳으로, 이는 지하수면을 유지해줄 수 있는 빗물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다. 하중을 견디는(load-bearing) 지반층인 여과재(모래, 자갈, 등 다공질층)를 이용한 이러한 혁신적인 방법은 하수시스템에 과도한 수압이 걸리는 것을 줄여준다. 이렇게 빗물을 하수관거로 흘러들지 않게 함으로써 지하수면을 유지하게 되었다.광장의 설계요소는 화물수송 철도 조차장이었던 대상지의 역사적인 과거를 상기시킨다. 벤치는 크게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거나 개인이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과밀한 도시에서 평화로움과 시원스러움을 느끼도록 하였다.
Landscape Architecture _ Atelier DreiseitlClient _ Aurelis, Stadt FreiburgLocation _ Freiburg, GermanyArea _ 5,600㎡Planning and Design _ 2009~2010Completion _ 2011
The Zollhallen Plaza in Freiburg, Germany is a new, dynamic urban counterpart for the conservation listed customs hall which was restored in 2009. The plaza has been transformed from being a freight train terminal and then wasteland into an integrated, multifunctional social resource for the local neighbourhood.
Every plaza has the potential to be a climate adaption tool. To the relief of the city government, we started by disconnecting the site from the local combined sewer system, which is already overcapacity during storm events, a disaster waiting to happen. We saw the potential how the plaza area could contribute to reducing the heat island effect by using permeable paving with creeping thyme and planting pockets. These permeable surfaces can breath, increasing evaporation and cooling the city and thus providing a micro-situational mitigating of the heat island effect which is increasingly causing sudden, heavy downpours in summer.
Low-maintenance and beautiful planters are in fact cleansing and infiltration points to a large subsurface gravel trench from where the rainwater can recharge the groundwater table. Using this innovative, load-bearing filter medium reduces the hydraulic overload on the sewer system. No rain water is fed to the sewer system, instead the groundwater table is recharged.Design elements on the plaza playfully recall the historic past of the site which was a freight railyard. The benches are oversized so that several people can sit together, or individuals can spread out and find peace and space in a dense urb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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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소방관 추모공원
Canadian Firefighters Memorial
PLANT Architect Inc. | | www.branchplant.com
2012년 9월 9일, 캐나다 소방관 추모공원이 공식 개장했다. 공원은 1900년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화재가 발생했던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 건립되었다. 이 도시계획적인 기념사업은 PLANT 건축회사와 캐나다 시각디자이너, 소설가인 더글러스 커플랜드의 합작으로 설계되었다.
캐나다 수도권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된 이 추모공원은 순직한 소방관에게 존경을 표하고 개인적 추모를 위한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매년 오타와의 르프레튼 광장(LeBreton Flats)에 몰리던 CFFF의 연례 추모행사를 위한 장이 되고 있다.새로 건립된 추모공원은 캐나다다운 경관과 어울리는 ‘특징’에 대한 연출(mis-en-scéne)로서, 국가 유산의 주요한 측면들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의례행사 체험과 공공집회를 강화하며 고무시켜준다. 추모 의식과 행렬의 목적을 충족하고 이곳을 지나는 방문객들에게 방향을 유도하기 위한 건축적이고 조형적이며 조경적인 간섭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중심 추모공간은 서로 마주한 지형물에 의해 한정되고 표현된다. 이들은 순직자 명단이 있는 추모벽을 따라 줄지어 선 방문객들을 헌정수인 소나무 아래로 이끈다.
Design _ PLANT Architect Inc. in collaboration with Douglas CouplandPLANT Team _ Mary Tremain, Vanessa Eickhoff, Lisa Rapoport, Chris Pommer, Suzanne Ernst, Jeremy McGregorArtist Team _ Douglas Coupland and David WeirClient _ Canadian Fallen Firefighters Foundation, National Capital CommissionLocation _ Ottawa, CanadaArea _ Approximately 1 acreCompletion _ 2012. 9
On 9 September 2012, the Canadian Firefighters Memorial officially opened in Ottawa, Canada. Located at the site of the capital’ devastating fire of 1900, this urban-planning memorial ensemble was collaboratively designed by PLANT Architect Inc. and Canadian visual artist and novelist Douglas Coupland.
A symbolic landmark of our nation’ capital region, the memorial park honours the fire service of fallen Canadians, creates an intimate space for personal reflection, and provides a home for the CFFF’ Annual Memorial Ceremony each fall on Ottawa’ LeBreton Flats.As a mis-en-scéne of “haracters” integrated into the Canadian landscape, the new Memorial embodies key aspects of our nation’ heritage, as well as shapes, enhances, and inspires experiences of ritual and public gathering. To fulfil the purposes of ceremony and procession, and to navigate visitors through the space, a series of architectural, sculptural, and landscape interventions were introduced: the central ceremony area is defined and framed by the site’ two opposing landforms, leading visitors along the Name Wall to the base of the Dedication Pine 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