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시점은 드디어 마감 날이다. 그러나 이미 두 시간 전에 자정이 지났건만 마지막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마지막 원고는 바로 이번 호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토포텍 1의 수장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인터뷰 원고다. 해외 출장이 잦은 라인-카노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생생한 지면을 위해 인터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비해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마 지금쯤 멀리 베를린에서 인터뷰어인 고정희 대표가 원고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늘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특집’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제와 우리가 독자들에게 환기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다(대다수의 독자들은 과묵(!)하기 때문에 그 숨겨진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늘 어렵다). 또한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러한 줄다리기 속에서 매달 특집이 탄생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호에 실린 ‘하이라인의 교훈’은 예정에 없었던 특집이다. 편집부는 하이라인 3구역의 공식 오픈 일정을 주시하며 기사화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특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소개에서 특집으로 급선회했다. 다행히 하이라인의 설계에 참여했던 윤희연 교수와 프롬나드 플랑테를 읽어준 황주영 박사가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에 응해주어 깊이 있는 들여다보기가 가능했다. 특히 두 명의 핵심 인사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는 최이규 뉴욕지사장의 발 빠른 섭외로 가능했던 지면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일정을 조율한 JCFO의 조경가 안동혁 씨의 노고는, 전 세계에 동일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상황에서 『환경과조경』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이번 토포텍 1 특집의 경우는 그 준비 기간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지난 10월호 work & criticism에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트슈타인’을 소개한 뒤, 토포텍1은 우리에게 작품집 출간을 제의해왔다. 편집부는 『환경과조경』 해외판 론칭을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콘텐츠의 중복이 우려되기도 했고, 국내 조경가들에게 토포텍 작업의 규모와 성격이 단행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만큼 흥미로운지 확신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덴마크 파빌리온에서 수퍼킬렌이 소개된 뒤, 국내에서도 수퍼킬렌과 토포텍 1에 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편집부는 토포텍 1에게 작품집 대신 특집을 제안했다. 2015년을 준비하며 편집부는 한 조경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연간 계획 속에 넣어 두었다. 가급적 새롭게 부상하는 오피스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국내외 조경가를 두루 조명할 요량이었다. 마침 그 대상자와 게재 시점을 고민하던 중이었으므로, 반쯤은 필연적으로 또 반쯤은 우연히 조경가 특집의 첫 번째 작가로 토포텍 1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토포텍 1과의 만남은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아쿠아 사커를, 코펜하겐에서 수퍼킬렌을 답사했다. 고백하건데 아쿠아 사커는 박람회장에서 일별하는 수준이었다. 넓은 박람회장을 빠르게 둘러보아야 했던 촉박한 일정 탓도 있었지만 수많은 정원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정원 정도로 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수퍼킬렌의 첫인상은, 여러가지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흩어져 있는 강렬하지만 바랜 듯한 붉은색 공원(아마도 처음 도착한 곳이 레드 스퀘어였기 때문일 것이다)이었다. 그 전에 둘러보았던 그림같이 아름답게 가꿔놓은 유럽의 여러 공원과 달리 수목이 별로 보이지 않는,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고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남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수퍼킬렌의 다문화적인 맥락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토포텍 1의 작품이 정원의 전통과 다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편집)하는가에 따라 잡지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토포텍 1이 도발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그 모티브를 설득력 있게, 혹은 논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드문 오피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번 특집은 양다빈 기자가 토포텍 1과의 연락을 담당했다. 토포텍 1의 출판 담당자인 이폴리타는 마감이 끝나갈 무렵, 이번 호가 출간되고 나면 다니엘(양다빈 기자의 영어 이름)이 그리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만 100통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폴리타의 그 메일의 의미가 양 기자의 집요한 확인과 질문, 끈질긴 추가 요청에 대한 귀여운 항의인지, 아니면 그간 진짜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