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이 가까웠던 이전 작업실에서는 붐비고 밀리는 버스로 발걸음이 선뜻 향하지 않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바닥이 흥건하고 축축한 공기가 유리창을 뿌옇게 가렸다. 그래서 화창한 날씨, 한산한 시간만을 골라 버스에 올랐다.
지금 작업실은 서울답지 않은 한적한 구석. 북한산 자락이고 다다음 정류장이 종점이기에, 창밖은 푸르고 버스 안은 늘 한적하다. 버스 출입문 바로 앞자리에 앉는다. 어쩐지 동승자가 되는 기분이 들어 기사님에게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좁은 도로에 햇살이 내리쬐고, 내놓은 플라스틱 화분에 코스모스며 해바라기 따위를 가꾸는 작은 집과 가게를 지난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닮은 작은 건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빌딩이 가득한 곳에 도착한다. 이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면 이제는 어디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가장 바깥으로 옮겨간 만큼 이동 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환승을 많이 해야 한다고. 내가 먼 길을 왔으니, 이제 네가 우리 동네 놀러 올 차례라고. 그렇지만 실은 나쁘지 않다. 짧은 버스 유람을 하고 오는 길이니까. 이게 외딴곳에 사는 매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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