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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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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10,000
잡지 가격 11,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조경학 교육인증제, 첫걸음
이번 달 기획 지면의 출연진은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젊다. 특집 ‘캠퍼스 톡담, 배움을 설계하다’에 여섯 개 대학 조경학과 학부생 여섯 명을 초대했다. 경희대 강다연, 계명대 김은주, 서울대 권효진, 서울시립대 신진호, 전남대 정세영, 한경국립대 안태경은 편집부가 던진 여섯 가지 공통 질문에 이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공들여 쓴 각자의 답변을 서로 돌려본 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활기찬 토론을 벌이며 생각을 나눴다. 강의, 설계 스튜디오, 커리큘럼, 캠퍼스 일상, 외부 활동, 사회 이슈 등을 둘러싼 이들의 생각이 모든 조경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조경 교육의 현실과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 과제의 단서를 파악하게 해주는 생생한 자료로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학생의 이야기는 얼핏 읽으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행간에는 기성 조경(학)계의 안일한 현실 인식과 틀에 박힌 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짚고 있는 문제가 설계·시공 실무 현장과 유리된 교육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특집이 조경 교육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전국의 교수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조경의 역사와 조경 교육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 두 갈래의 50년은 과연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을 이뤄왔는가. 별도의 지면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일 테지만, 그간의 조경 교육이 전문직능(profession)이자 학문분과(discipline)인 조경(학) ‘전문 교육’ 실천의 목표, 체계, 내용 정립에 소홀했다는 점만큼은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교는 다양성과 다각화를 추구하면서, 또 일부 학교는 학부 중심 교육보다 대학원 중심 연구에 비중을 두면서 조경학과의 중심에서 조경(학) 자체가 흐릿해진 상황이라는 진단도 가능할 것이다. 교수 연구성과의 양은 늘었지만 그러한 성과가 막상 조경 실무의 질적 발전이나 졸업생의 조경 관련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역설. 폭넓은 스펙트럼인가, 조경(학) 없는 조경 교육인가. 한국 조경 교육 50년 역사가 배출한 조경가가 과연 몇 명인지 꼽아본다면, 기성의 조경 교육을 교정하고 다음 50년의 새 교육 기반을 구축할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경의 전문성 자체를 교육의 중심에 두고 전문 교육과 전문 학위, 면허로 이어지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가협회와 힘을 합쳐 (가칭)‘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9월부터 심층 연구와 토론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필요성과 목적은 대학 조경 교육의 정상화와 정체성 정립, 교육-학위-면허의 연속적 체계 확립, ‘조경사’ 제도와의 연동, 국제적 기준의 조경 교육의 내용과 질 확보, 인구 감소에 따른 조경학과 폐과 위기 대응 등 다양한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조경진흥법’에 기반한 ‘제2차 조경진흥계획’(2022)의 과제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설계 자격 제도 (가칭)‘조경사’의 필요조건은 교육인증을 받은 조경학과 졸업이다. 교육인증제와 조경사 제도가 원활하게 맞물리면 조경 교육과 실무의 유기적 관계가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경학 교육인증제는 조경 교육과 실무의 전문성과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위원회는 우선 1단계(2023~2024)로 각 학교의 교육 현황(교수, 학생, 교육과정, 성과, 취업, 시설 등)을 조사하고 국내외 사례 연구에 착수하며, 인증 기준과 절차(인증기관, 자격, 교육과정, 인증 평가 기준과 절차 등)에 관한 연구에 나선다고 한다. 2단계(2025~)로는 다양한 형식의 토론과 공론화(워크숍, 세미나, 심포지엄 등), 인증 기준과 절차 심화 연구, ‘조경사’ 자격제와 연계 추진 등을 전개한다고 한다. 본지는 오는 11월호 특집으로 조경학 교육인증제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환경과조경』의 베테랑 에디터인 김모아 기자가 이번 8월호부터 격월로 인터뷰 지면, ‘오늘의 대화, 어제의 재구성’을 꾸립니다. 김 기자는 “조경의 한복판에서, 혹은 조경의 언저리에서 독특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내밀한 대화까지” 나눌 것이라고 합니다. 첫 인터뷰이는 조경가이자 만화가인 김수린입니다. 새 지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풍경감각] 버스 유람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이 가까웠던 이전 작업실에서는 붐비고 밀리는 버스로 발걸음이 선뜻 향하지 않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바닥이 흥건하고 축축한 공기가 유리창을 뿌옇게 가렸다. 그래서 화창한 날씨, 한산한 시간만을 골라 버스에 올랐다. 지금 작업실은 서울답지 않은 한적한 구석. 북한산 자락이고 다다음 정류장이 종점이기에, 창밖은 푸르고 버스 안은 늘 한적하다. 버스 출입문 바로 앞자리에 앉는다. 어쩐지 동승자가 되는 기분이 들어 기사님에게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좁은 도로에 햇살이 내리쬐고, 내놓은 플라스틱 화분에 코스모스며 해바라기 따위를 가꾸는 작은 집과 가게를 지난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닮은 작은 건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빌딩이 가득한 곳에 도착한다. 이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면 이제는 어디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가장 바깥으로 옮겨간 만큼 이동 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환승을 많이 해야 한다고. 내가 먼 길을 왔으니, 이제 네가 우리 동네 놀러 올 차례라고. 그렇지만 실은 나쁘지 않다. 짧은 버스 유람을 하고 오는 길이니까. 이게 외딴곳에 사는 매력 아닐까.
성수동 코너 19, 25, 50
부동산 개발과 성수동 성수역과 뚝섬역 근방 성수동 일대는 도심권과 강남권을 잇는 서울 제3의 업무지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해마다 오피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신축, 증축, 리모델링 등 건축 공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부동산 개발 일변도의 성수동 풍경은 역설적으로 이 지역에 질 좋은 공공 공간을 새로 공급하는 가장 큰 동력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흔히 공개공지로 불리는 공공 공간은 건축주에게 용적률 추가 획득 등 혜택을 줘 부동산 가치를 높일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공공의 어메니티 증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해 민과 관이 상호 윈윈하는 대표적 도시계획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성수동 일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개공지를 포함한) 민간의 질 좋은 외부 공간이 건축 및 인테리어와 더불어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핵심 요소임을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많은 부동산 디벨로퍼가 양질의 디자인을 제공하는 조경가와 건축가를 찾고 있으며, 이는 조경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성수동 코너(이하 코너) 19, 25, 50 프로젝트도 이러한 상황에 기인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다. 홍콩의 저명한 부동산 디벨로퍼가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투자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타깃이 바로 성수동 일대였다. 성수동 일대 세 곳 필지를 구입해 오피스 건물을 신축하게 됐고 우리가 조경설계를 담당하게 됐다. 2018년 처음 설계에 착수했고 코너 50을 마지막으로 세 건물을 모두 준공한 시점이 2022년이니, 설계에서 시공까지 총 4년이 소비된 비교적 긴 호흡의 프로젝트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외부 공간의 다양한 기능적·미적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설계를 한 우리가 직접 시공해야 함을 여러 사례를 보여주며 역설했고, 결국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시공까지 맡게 되다 보니, 조경설계의 기본 프로세스(계획설계-기본설계-실시설계)를 다 밟은 뒤에도 건물 골조가 완성될 즈음부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다양한 생각을 공사에 담아낼 추가 설계를 진행하게 됐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클라이언트와 얼굴을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안을 다듬어 나간 것이 계획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공통의 조형 언어, 개별적 변주 세 대상지는 성수동 구석구석에 떨어져 있지만,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기획 초기부터 세 건물을 연동해 사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세 프로젝트를 하나로 엮는 일련의 브랜딩 작업(글꼴, 캐릭터, 가구 등)을 통해 건물이 가질 유무형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일례로 클라이언트는 코너 19, 25, 50을 상징하는 동물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이를 건물 테넌트 구성 및 인테리어 콘셉트와 연결해 사용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는 건축과 조경에 비슷한 요청을 했는데, 세 건물이 공통의 조형 언어를 갖추되 각각의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원했다. 이에 건축가는 성수동을 상징하는 대표 소재인 벽돌 및 격자창을 공통 재료와 조형으로 선정해 디자인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우리는 전통 한옥 대청마루에서 발견되는 격자를 응용한 포장 패턴을 사용했다. 조형은 대청마루 격자 패턴으로 통일하되, 재료의 색상이나 마감에 차이를 두어 각 프로젝트의 개성은 살리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너 19는 진회색 콘크리트와 전벽돌, 코너 25는 사비석과 회벽돌, 코너 50은 회색 콘크리트와 고흥석이 변주를 위한 주 재료로 선정됐다. 쿨하고 힙한 이장님 강아지, 코너 19 코너 19는 세 프로젝트 중 대지 면적이 가장 작다. 클라이언트는 각 건물을 상징하는 동물 캐릭터와 콘셉트를 설정했는데, 코너 19는 ‘쿨하고 힙한 이장님 강아지’다. 이는 단순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테넌트 타깃에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 콘셉트다. 만화 카페, 멀티숍, 재즈바 등 성수동의 힙한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상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연결된다. 조경설계의 물리적 대상은 지상 1층과 옥상이다. 지상 1층은 서울시 건축조례 상 ‘전면 조경’으로 명명된 곳 인데, 클라이언트는 이곳에 적절한 녹지를 조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건물 용적률에 인센티브를 획득한 상태였다. 따라서 광장형 공간보다는 녹지와 어우러진 작은 쉼터를 만드는 설계가 필요했다. 꽃이 매력적인 서부해당화와 개회나무를 이용해 공간의 얼개를 짜고, 하부에는 설유화와 미스김라일락 등으로 풍성함을 더했다. 포장은 진회색 콘크리트 워싱 마감과 전벽돌을 이용해 공통의 조형 언어인 대청마루를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용 면적이 좁은 관계로 이용자 시선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 포장 가장자리에 설치한 석재 벤치는 고흥석 통석을 자연면 마감 처리해 사용했는데, 매끈한 질감이 넘쳐나는 성수동 도심과 대비되는 거친 질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옥상정원은 지상 1층 구성과 사뭇 다르다. 멀티숍, 재즈바, 다용도 오피스 등이 건물의 주요 테넌트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어 중소 규모의 다양한 모임을 돕는 몇 개의 포켓 공간을 만드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평상, 벤치, 선베드 등 포켓 공간과 연동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어낸 것이 큰 특징이다. 후면부 식재 공간에는 다간형 마가목을 공간의 전체 배경이 되는 주재료로 사용해 공간에 통일감과 구조미를 부여했다. 게으르고 느긋한 요리사 토끼, 코너 25 F&B를 주 테넌트 타깃으로 설정한 코너 25는 세 프로젝트 중 중간 규모 프로젝트다. 테넌트 타깃과 조경 계획의 자연스러운 연계를 위해 제안한 콘셉트는 ‘지상의 유실수정원’과 ‘옥상의 텃밭 정원(edible garden)’이다. 지상 1층에는 이른 봄에 연분홍색 꽃을 연달아 피우는 유실수(매화나무, 살구나무)와 벚나무을 식재했고 그늘이 드리우는 작은 휴게 공간을 마련했다. 건물 외벽은 황색벽돌로 치장 마감됐는데, 이 톤에 맞추기 위해 사비석 벤치를 선택했다. 벤치는 매화나무와 살구나무 아래에 위치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된다. 옥상정원 중앙에 자리한 유리 온실에는 공유 주방이 들어설 예정인데, 주방에서 쓸 식재료를 옥상정원에서 직접 키울 것을 제안해 클라이언트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토심이 부족해 옥상정원의 큰 틀을 토심 확보를 위한 플랜터로 구상해야 했다. 영미권 텃밭정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물조리개, 삽 등 정원 도구의 재료인 함석을 주 재료로 사용했고, 옥상정원의 콘셉트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함석 플랜터를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함석을 고속도로 가드레일이나 전봇대 외장재 등에 주로 쓰기 때문에 값싼 공업용 소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아름다운 도금 무늬와 풍화 후 나타나는 고급스러운 질감 때문에 도시 공간에서 흔히 쓰인다. 다만 우리조차 익숙한 소재가 아닌 까닭에 설계 도면에 스펙 명기가 부족했고, 금속 제작사의 노하우 부족, 디자인 감리 미흡 등의 이유로 인해 의도했던 마감 완성도에 다소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꼼꼼하고 호기심 많은 만능 맥가이버 펭귄, 코너 50 코너 50은 세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다. 이곳은 코너 19와 코너 25 대지 면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면적을 가진 만큼, 지상 1층 공개공지도 비교적 넓었다. 두 개 옥상정원과 건물 층별로 조성된 테라스와 실내 정원까지, 조경에서 다룰 수 있는 인공 지반의 모든 유형을 고민한 프로젝트다. 공개공지를 포함한 지상 1층 외부 공간은 단정한 생울타리와 높은 캐노피를 형성하는 튤립나무로 공간의 기본적 틀을 짰다. 장식적이고 자잘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공간 디자인 교과서에 나올 법한 ‘바닥과 천정의 형성’이라는 클래식한 원리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코너 50의 공간감을 지배하는 요소는 단연 튤립나무다. 높은 지하고와 단정한 수형, 적벽돌과 병치되는 단풍까지. 우리가 원하는 코너 50 공개공지의 공간감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다. 다만 설계 단계에서 이식의 어려움, 천근성, 하자 등 여러 가지 이슈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준공 뒤 1년 반이 지난 지금, 튤립나무의 생육은 많은 이들의 걱정과 달리 아주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 튤립나무와 함께 지상 1층 디자인의 큰 단초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단차다. 보도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약 50cm 단차가 있었는데, 이를 몇 개 기단으로 나눠 넓은 광장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 공간은 코너 프로젝트의 공통 조형 언어인 대청마루 패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으로 진회색 콘크리트 워싱 마감과 고흥석 판석을 패턴화해 적절히 사용했다. 건물 남측과 북측 옥상에는 각각 옥상정원이 있다. 남측 옥상정원은 깨끗한 판석 포장과 다간형 화살나무 캐노피로 이루어진 정갈한 휴게 공간으로 연출했고, 북측 옥상정원은 조망이 좋은 관계로 주변을 두루 전망할 수 있는 긴 앉음벽과 개방감 있는 화단 및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대조적 분위기의 두 옥상정원은 한층 차이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관리차 옥상정원을 방문할 때마다 이용자 행태를 비교 관찰하는 편인데, 설계 당시 의도한 방식으로 두 정원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자본과 공공 공간 조경설계를 업으로 삼은 이래, 꽤 많은 부동산 디벨로퍼를 만나왔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 개발업은 ‘거대 자본을 투입해 단 시간에 건물을 올려 유무형 가치를 만든 뒤 이를 되팔아 일정 이상 수익을 남기는’ 냉철하고 차가운 분야라고 인식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가 건축, 인테리어 및 조경 공간을 통해 여러 말랑말랑한 생각들을 만들고, 이를 사업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인식이 꽤 구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들이 동시대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장소성과 연결해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조경설계를 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이는 조경설계가 단순히 공간을 직조하는 설계 행위 자체뿐 아니라 민간 자본의 브랜딩, 마케팅 방식 등 주변 분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최근 많은 정책 결정자와 공공 공간, 정원, 녹지 확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 주도 아래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서울 시내에 수많은 공공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경 분야 성장으로 보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공공 공간의 양적, 질적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순수히 공익적 차원, 관의 차원, 메가 프로젝트 차원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민간 투자자의 자발적 공공 공간 조성 욕구를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민간은 공공보다 대체로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디자인 방식이나 재료와 마감 선정에 있어 훨씬 더 자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시도가 질 좋은 공공 공간 탄생 가능성을 더 높인다. 하나둘 마치 점조직처럼 이곳저곳에 발생하는 성수동의 다양한 공공 공간이 성수동 일대 외부 공간의 전반적 완성도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도시민이 점심 식사 후 가볍게 커피 한 잔 사서 들러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서울 시내에 많이 필요하다. 조경가가 그 선두에서 큰 역할을 해 나갔으면 한다. 정욱주·원종호 인터뷰 도심 속자연을 설계하다 위치가 떨어져 있는 세 건물을 연동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독특한 프로젝트다.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욱주(이하 정) 우란문화재단(2016)에서 시작된 인연이 성수동 코너(이하 코너)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우란문화재단을 설계한 더시스템랩 건축사사무소와는 2014년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미팅 차 더시스템랩에 방문했는데, 사무소 한편에서 장난감 레고로 만든 것 같은 건물 모형을 발견했다. 격자창과 벽돌을 활용해 건물 외형 디자인을 실험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게 됐고 우리에게 조경설계를 제안하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세 건물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읽히게 하는 전략이 있다면? 원종호(이하 원) 클라이언트는 공통의 조형 언어를 갖추되 각각의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요구했다. 건축가는 벽돌과 격자창을 공통 재료로 선정했지만 세 건물 색은 다르게 했다. 우리도 콘크리트와 통석을 공통 요소로 활용하면서 대청마루의 패턴으로 조형을 통일했다. 그리고 건물과 조경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힐 수 있게 건물 색감과 조화로운 조경설계를 했다. 코너 25 정원에는 노란색 계열의 건물 분위기에 맞추고자 사비석 통석 벤치를 배치했다. 코너 19는 전체적으로 흰색 계통인데, 같은 색을 쓰기보다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색을 활용한 설계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진회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정 코너 50의 경우 법으로 정해진 생태면적률을 지켜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벽돌을 쓰지 않고 인조 화강석 블록을 사용해야 했다. 코너 50은 붉은색이 특징인데, 붉은 계열의 인조 화강석 블록으로 설계안을 만들어보니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테스트를 해보고 클라이언트와의 상의를 통해 회색 계열의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존 녹지의 녹색과 건물의 붉은색 그리고 회색 포장이 건물과 외부 공간의 조화를 이뤄낸 것 같다. 세 곳 모두 옥상정원이 있다. 오피스의 특성에 따라 옥상정원을 달리 설계한 부분이 있다면? 정 옥상정원에서 최대한 다양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세 옥상정원 중 가장 특색 있는 곳은 코너 25 옥상정원이다. 다른 옥상정원과 달리 이곳에는 유리 온실이 있어 이 온실을 공유 주방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직장인에게 옥상에 올라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회식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를 키우는 텃밭정원을 콘셉트로 제안했다. 코너 19는 공유 오피스로 다양한 유형의 오피스가 입주할 예정이었다.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많은데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상정원을 광장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긴 벤치를 배치하고 빈 공간을 확보해 크고 작은 행사를 옥상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벤치 앞에 여러 테이블이 놓여 있어 이곳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코너 50은 남측(12층)과 북측(13층) 두 곳에 옥상정원이 있다. 한 곳은 개별적으로 휴식을 취할 공간으로, 다른 한 곳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특히 클라이언트가 옥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중요시 여겼다. 남측 옥상정원은 전망이 좋아 이곳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바닥을 0.9m 들어 올려 계단을 만들고 스탠드를 조성해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 곳을 우리는 ‘멍석(멍 때리기+石)’이라 부른다. 코너 25 옥상정원의 화단 모양과 코너 19 옥상정원의 벤치 디테일이 독특하다. 원 코너 25 옥상정원 화단을 처음 계획할 때 여러 계획안을 그리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정 교수님이 악어 등껍질 모양처럼 선을 그렸고 그 선형을 발전시켜 W모양의 화단 배치안이 완성됐다. 코너 25 옥상정원은 공유 주방이 있어 삼삼오오 모여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포켓 공간을 만들고자 했는데, W 모양 덕에 화단 앞 틈새 공간이 생겼다 이 틈새에 벤치를 두고 테이블을 놓아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정 코너 25 옥상이 ㄷ자 모양이어서 화단을 배치하기가 어려웠다. 처음 설계한 화단 위치는 지금과는 반대였다. 클라이언트가 도면을 보더니 배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한강 앞 아파트에 살지 않는 이상 한강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어려운데, 코너 25 옥상에서는 한강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는 한강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지금 위치로 화단을 옮겼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벤치 모양도 많이 고민했다. 코너 19 옥상정원에는 세 개의 벤치가 있는데, 그중 두 벤치는 편히 누워 쉴 수 있도록 계획했다. 목업 작업을 통해 1대1 스케일로 곡선형 벤치 도면을 출력해봤다. 출력한 벤치에 직원들이 누워보면서 편안한 모양을 찾아갔다. 최대한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그리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절하며 설치했다. 다른 하나는 평상 모양의 벤치로, 널브러져 누워 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코너 19 지상 1층에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맞닿아 있던 현대테라스타워의 펜스를 철거하고 생울타리 식재를 제안한 점이 인상 깊다. 코너 50 옥상정원에 꽤 큰 화살나무를 심었는데 토심 확보가 어렵지는 않았나. 정 코너 19는 현대테라스타워 옆에 위치해 있어 두 건물의 지상 1층 공간이 맞닿아 있다. 두 공간을 구분하는 형광 녹색 펜스가 놓여 있었다. 다른 건물의 공간이지만 하나의 공간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 최연욱 이사(스타프라퍼티코리아)와 함께 현대테라스타워에 찾아가 펜스 철거를 제안했다. 현대테라스타워 지상 1층에 수생 비오톱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데 펜스가 풀의 성장을 억제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펜스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 관계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고 펜스를 철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인연이 되어 현대테라스타워 앞 공개공지 리모델링 조경설계를 담당하게 되었다. 원 코너 50 옥상정원을 처음 설계할 때 층층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로 식재 계획을 세웠다. 계획안대로 시공을 하기 위해 적절한 나무를 찾아다녔는데, 우리가 원하는 수형의 나무가 없을 뿐더러 하자 발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님과 함께 대안 수종을 고민했다. 그러다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 심었던 화살나무가 떠올랐다. 정 2010년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의뢰로 만든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 정원의 수목들은 우리가 관리하고 있다. 그곳에 심겨진 화살나무 20여 그루가 재건축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10년 동안 자란 화살나무는 수고가 4~5m이며 잎이 무성하다. 우리가 찾던 수형이었고, 폐기하기보다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복지관측 동의를 얻어 10여 그루를 코너 50 옥상정원으로 옮겨 심었다. 복지관 재건축이 끝나면 새로운 공간에 맞는 수목을 기증할 예정이다. 원 화살나무는 느티나무, 소나무처럼 대형 교목은 아니지만 키가 높게 자란다는 걸 잘 모르고, 옥상정원 생육에도 적절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화살나무는 잔뿌리가 많아 활착이 잘되고 하자가 거의 없는 장점이 있어 옥상이란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 그래서 코너 50 옥상정원의 주요 수목으로 선정했다. 복지관에서 가지고 온 화살나무들은 현재 코너 50 옥상정원에서 잘 자라는 중이다. DWP 하늘정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 등 옥상정원 조경설계를 많이 했다. 옥상정원 설계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 옥상은 많은 잠재력을 품고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위치하니 전망이 좋고, 공공 공간이 될 수도, 건물 주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조경설계 의뢰가 오면 지상 1층 공간에만 설계를 요구했고 옥상은 설계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공간에 조경설계를 하게 되고 지상 1층에서 실내 정원, 옥상정원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2014)과 DWP 하늘정원(2017)은 옥상의 활용성을 알린 계기가 된 프로젝트다. DWP 하늘정원을 조성할 때 건축주가 옥상에 정원을 만든다는 것을 의아해했는데, 막상 완공된 정원을 보니 공간 활용 가치가 높아진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전국의 옥상정원 개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옥상이 지닌 환경과 옥상의 활용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건축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원 옥상 조경설계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다. 옥상은 인공 지반이므로 식물을 식재하기 위해 토심을 확보해야 한다. 토심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는 데, 이것이 옥상정원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정 옥상정원을 조성할 때 주로 지면을 일정 높이로 띄워 토심을 확보한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을 조성할 때 1.3m 정도 지면을 높여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계단, 스탠드 등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코너 50 옥상정원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어떻게 보면 서울대학교 옥상정원의 미니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옥상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흔히 완공된 직후보다는 세월이 흐른 뒤 모습이 진정한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지·관리 계획이 중요하다. 정 유지·관리는 또 다른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클라이언트와 처음 상의할 때 완공 후 2~3년 동안 우리가 직접 관리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2~3년을 제안하는 이유는 지주목 때문이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활착해 잘 정착하기 위해선 2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고 지주목이 이 과정을 도와준다. 2년이 지나 지주목을 제거하면 설계 당시 기대했던 모습이 구현되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고, 이 시기에 이르면 정원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클라이언트가 관리하기에 큰 무리가 없기도 하다. 원 도심에 위치한 정원을 잘 유지·관리하려면 관수가 중요하다. 예전에는 관수 시설이 선택 사항이었지만 이제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물을 주는 빈도, 물의 양, 스프링클러 사용법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으므로 클라이언트와 관리자에게 자세히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관리자가 바뀌게 되고 관리가 잘 안 되는 일이 다반사다.유지·관리는 도심 속 정원뿐 아니라 다른 공원, 정원에도 해당되는 문제이므로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우리도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글 원종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사진 유청오 조경설계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조경시공 성수동 코너 19, 25: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광합성, 쌔즈믄 성수동 코너 50: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조경시공서화, 쌔즈믄 건축설계 더시스템랩 건축사사무소 발주 스타프라퍼티코리아 위치 성수동 코너 19: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314-19 성수동 코너 25: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656-25 성수동 코너 50: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273-50 대지면적 성수동 코너 19: 418m2 성수동 코너 25: 480m2 성수동 코너 50: 1,500m2 완공 2022. 6.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는 2014년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도시 규모의 마스터플랜부터 작은 주택 정원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한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디자인보다 대상지가 적절하게 작동할 정도의 적정 조경을 원칙으로 설계에 임하고 있다.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WRT, Olin Partnership, Field Operations 등 국내외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가량 실무 경력을 쌓은 뒤,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부터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디자인 디렉터 활동을 겸하고 있다.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소장으로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캠퍼스 톡담, 배움을 설계하다
조경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미래의 조경가를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한국에 조경학과가 신설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1973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석사 과정이, 학부 과정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영남대학교 공학대학에 조경학과가 신설됐다. 한국에 조경학이 도입된 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조경학과는 조경 산업 전 분야의 전문가를 배출하는 요람으로 성장했다.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의 조경 교육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조경학과 학생들은 조경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고, 현재 대학은 어떤 방향의 조경 교육을 하고 있을까. 강의, 토론, 스튜디오, 실험, 실습 수업은 적절히 안배되어 있을까. 조경학과의 특성에 맞게 운영되는 독특한 형식의 수업은 없을까. 교육 내용과 방식에 걸맞게 교육 환경도 바뀌어가고 있을까. 조경 교육의 실질적 수요자인 학부생 여섯 명을 지면으로 초대했다. 수업, 과제, 캠퍼스 일상, 관심사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이메일 답변을 바탕으로 카카오톡 좌담회 ‘캠퍼스 톡담’을 진행했다. 솔직하게 오간 대화를 통해 교육인증제 등 조경 교육이 마주한 현실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여섯 명의 조경학부생에게 던진 질문 1. 가장 흥미로웠던 강의나 과제는? 2. 수업 외에 유익했던 외부 활동은? 3. 조경 학부생으로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 이슈는? 4. 조경학 교육인증제에 대한 의견은? 5. 대학 커리큘럼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6. 조경학과 학생의 하루, 일주일, 혹은 한 달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강다연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 자영조경과를 졸업한 후,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 21학번으로 입학했다. 조경설계와 정원에 관심이 많아 관련 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공 심화 동아리인 ‘밝바치’의 회장이다. 현재 자신만의 디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권효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조경학과를 복수전공 중인 5학년이다. 미학이 현실 공간에 적용된다는 점이 인문학도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와 조경학에 발을 담그게 됐다. 사람을 중점에 두는 설계를 계속하고자 한다. 특히 노인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어, 노년층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 김은주 학창시절 ‘자연과 생태와 생명력을 다루는 분야는 조경이 유일하다’는 말에 매료되어 조경을 꿈꾸게 되었다. 계명대학교에서 생태조경학을 전공하면서 학부연구생 활동을 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경험이든 도전해보는 적극적인 성격. 신진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19학번 재학생으로 융합환경계획 학부연구생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열정적 중재자’로서 풍경을 관찰하고 분석해 직접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안태경 한경국립대학교 조경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졸업작품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조경기사 시험과 여러 공모전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1학년 때는 과대표, 2학년 때는 학생회, 3학년 때는 학생회장, 4학년 때는 졸업작품위원회 활동을 하며 교내 활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정세영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등학생 시절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했지만, 조경이라는 학문을 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보다 좋은 외부 공간이 사람과 복합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꾸었다. 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
[캠퍼스 톡담] 여섯 가지 질문
1. 흥미로운 강의와 과제 조경기초디자인 2학년 2학기에 수강한 전공 선택 수업 ‘조경기초디자인’의 기말 과제가 기억에 남는다. 첫 스튜디오 과목인 데다 넓은 부지를 설계하고 패널을 만들며 재미를 느꼈다. 대상지는 경기도 용인의 ‘이영미술관’으로 선정했다. 대상지 규모가 큰 편이라 설계를 진행하고 프로그램을 쓰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첫 설계를 진행하며 고생한 덕분에 이후 설계 작업은 오히려 수월하게 느껴졌다. 과제 중 기억에 남았던 일은 ‘다연이 설계는 좋게 말하면 정돈되어 있어서 좋은데, 안 좋게 보면 너무 일률적이야’라는 교수님의 피드백이었다. 평소 자취방이나 작업 환경 등 주변 환경을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정리하는데, 이러한 습관이 작업할 때도 드러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내 습관이 설계할 때는 안 좋게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설계를 할 수 있을지, 공간을 부드럽고 재밌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지 늘 고민하면서 작업한다. 첫 설계이자 설계 방향성을 잡게 해준 유익한 수업이었다. 강다연 식물도감 만들기 가장 흥미로웠던 과제는 ‘조경식물재료학’ 수업에서 진행한 ‘식물도감 만들기’였다. 식물의 사진과 이름을 외우는 것에 치우치기보단, 공원 식재가 어떤 공간 구조와 배치로 이루어지는지 탐구하는 과제였다. 팀원과 함께 올림픽공원 내 15개 부지를 선정해 해당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그 공간에 있는 식물의 이름을 직접 찾아 보며 공간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공간은 왜 이렇게 식재를 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내게 부족했던 설계 근거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잘 조성된 공원의 식재를 공부하는 것이 좋은 공간 혹은 공간 구조를 도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과제로 만든 식물도감은 앞으로 진행할 식재설계에 유용한 표본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공간과 식물을 결합한 도감뿐만 아니라 식재의 계절감을 비교할 수 있도록 같은 구도의 사진을 2주 간격으로 찍었다. 조경은 살아있는 식물을 다루므로 지속적인 변화에 대한 관찰을 요구한다. 실제로 찍은 세 장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식물의 개화 시기에 따라 확연히 다른 공간감을 자아낸다. 식물에 대해 잘 알아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권효진 첫 설계스튜디오 첫 스튜디오 수업의 대상지는 경산 평산동의 ‘폐코발트 광산’이었다. 과제의 주제는 추모공원 디자인이었다. 두번째 시간에 교수님과 학생들이 직접 대상지를 방문했는데, 버스로 깊은 산길을 올라가다 길이 끊기는 곳에 2.5m 높이의 위령탑과 컨테이너 창고가 있었다. 그곳은 3D 모형과 유해 사진을 전시해 순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이었다. 천천히 컨테이너 안을 둘러보며 유가족으로부터 이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폐코발트광산’은 일제가 도굴했던 광산으로 한국전쟁 직후 대구, 청도, 경산, 기타 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무고한 민간인 3,5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현장이었다. 1960년 6월, 유가족들은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탑을 세웠지만 당시 정권은 유족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사회로부터 외면받았던 이 사건은 2006년 정식 조사가 시작되면서 주목받았고 유해 발굴이 진행됐다. 현재까지도 많은 유해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근거로 운영된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에 해산되면서 추가로 유골을 발굴할 수 있는 주체가 사라졌다.1 코발트광산을 역사평화공원으로 조성하려 하지만 사유지 문제 등으로 인해 진척이 어려운 상태다. 유가족들은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학생들이 학교 과제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함께 추모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조경을 단순히 공간 디자인 분야라 생각했던 내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긴 이야기 끝에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여러모로 서툴렀던 탓에 교수님의 질문 하나에 대답하는 것도 어려워 매주 허우적거렸다. 그래도 교수님의 지도를 따라 차근차근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다. 우리 팀은 ‘노을’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노을이 지는 오후 6시는 황혼의 시간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빛이 드리우는 순간이다. 이 찰나의 시간에 집중해 추모의 뜻을 담은 공원을 디자인했다. 이 스튜디오 과제를 통해 조경의 의미와 지향점을 새롭게 정립하게 됐고, 전공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김은주 조경캡스톤디자인과 조경학개론 가장 기억에 남는 과제를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조경캡스톤디자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약 5개월간 대상지 선정부터 설계까지 2인 1조로 진행하니 프로젝트의 완전한 주인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강의를 소개하자면 조경학개론을 빼놓을 수 없다. 신입생 시절 처음 개론을 접하면서, 매우 어려운 이론을 배우게 될 것 같아 긴장했다. 하지만 조경학개론 수업을 듣고 조경학과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교수법이 독특하거나 내용이 신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조경학과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특성들이 잘 담겨 있었다. 수업은 주로 강의식이 아닌 여러 특강, 3개의 팀플과 발표로 이루어졌다. 과제로 조경인 인터뷰와 내가 사는 지역의 공간 분석, 국내 조경 공간 자율 답사 등이 주어졌다. 이러한 과제는 ‘주체가 되어’, ‘팀원들과’, ‘자율적으로’, ‘탐구하라’라는 메시지로 다가왔고, 이 메시지는 나의 대학생활 길잡이가 됐다. 서로 다른 도시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느껴보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오는 과제 덕분에 조경이 무엇인지 몰랐던 우리는 가볍게라도 전공을 맛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1부는 수업, 2부는 주제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통합환경설계론’ 수업이나 매주 누가 발표할지 모르는 조경사 수업에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수업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신진호 식재설계와 조경역사문화론 가장 재미있는 수업은 ‘식재설계’였다. 『식재 디자인 핸드북』을 교재로 한 수업으로 책의 목차 중 하나를 선택해 팀별 발표로 진행됐다. 교재의 내용뿐만 아니라 발표 자세, 피피티 구성, 표현 방식 등도 배웠다. 매주 스스로 대상지를 찾아 식재 도면을 그리는 과제를 하며 큰 흥미를 느꼈다. 실제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도면을 그리는 과제를 하면서 도면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를 느꼈고, 식재 선정 및 배치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작성해 나눠주었는데, 그 피드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과제는 ‘조경역사문화론’의 기말 최종 발표였다. 주제는 한국의 일곱 개 궁을 기준으로 조경 역사를 담은 프로그램 또는 아이템을 제한 없이 구상하는 것이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책자, 궁이 아닌 정원을 조립하는 장난감, VR로 정원을 체험할 수 있는 3D 가상 공간 구현, 어린이들을 위한 웹툰 등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를 응용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린이를 위한 웹툰을 아이디어로 제안했다. 특이하고 기억에 남은 수업은 ‘스마트 기술과 조경 실습’이다. 이 수업에서는 최신 기술을 조경에 활용하는 것을 배우는데, 주로 드론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먼저 3D 스캔을 할 수 있는 ‘라이다’로 공원을 스캔하는데, 이때 드론을 조종해 공원을 스캔한다.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그램 클라우드컴페어(Cloud Compare)를 통해 3D 설계한다. 덕분에 이때 처음 드론을 조종해 봤다. 또한 실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인 디지털 트윈 등에 관한 이론도 배운다. 안태경 조경미학과 경관디자인 실습 3학년 1학기에 들은 ‘조경미학과 경관디자인 실습’에서 ○○의 미학이라는 주제의 발표 과제가 주어졌다. 조경과 관련이 없어도 각자 평소 관심 있는 주제의 미적 속성을 탐구하는 과제였다. 평소 관심 있던 서양미술로 할까 고민하다 다른 주제를 정했다. 관심은 늘 있지만 남들에게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문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문신의 미학을 발표 주제로 삼았다. 교수님도 흔쾌히 허락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문신하는 이유와 그것이 가지는 미적 속성과 매력에 대해 발표했다. 문신한 걸 후회한 적은 없지만, 불편한 시선을 종종 느낀다. 하지만 발표를 준비하며 왜 문신을 했었는 지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나의 문신도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발표를 들은 학생들도 문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해 더욱 뜻깊은 발표가 됐다. 정세영 2. 수업 외 외부 활동 밝바치와 정원드림프로젝트 전공 심화 동아리 ‘밝바치’와 공모전 ‘정원드림프로젝트’.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졸업한 선배들이 ‘산하지기’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밝바치에 도움을 주고 있다. 작년 부회장으로 시작해 현재 회장직을 맡으면서 산하지기 선배들을 만나고 연락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일과 학교생활, 혹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방향성, 오랫동안 설계하며 느낀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선배들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들과는 쉽게 할 수 없는 심도 있는 생각과 경험을 나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또한 특강을 준비하며 선배들과 자주 연락을 나누면서 한층 더 가까워졌고, 선배들의 조언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정원드림프로젝트는 1학년 때부터 선배들이 참가하는 걸 보며 나도 꼭 나가겠다고 다짐했던 공모전이다. 계획부터 시공, 관리까지 경험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특히 멘토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감사한 경험이자 성장할 기회라고 봤다. 이 공모전의 가장 큰 장점은 워크숍을 통해 여러 멘토의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고, 완성된 설계안을 수정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에서 진행하는 설계나 다른 공모전은 학생이라 창의적이지만 현실적이진 않은 설계를 진행해도 말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고, 종강하면 대부분의 설계는 끝난다. 그러나 이 공모전은 실제로 시공도 하고 오랫동안 존치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나 유지·관리의 용이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이에 대한 피드백을 솔직하게 들을 수 있어 성장의 기회로 다가왔다. 여러 워크숍과 피드백을 거치며 수정안을 발전시키는 시간이 있고, 발전하는 설계안과 성장하는 팀원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크게 느꼈다. 1차 합격까지, 그리고 현재까지 오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다. 설계안을 변경하고 작업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처럼 길게 한 경험이 없다 보니 갈수록 지쳐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현재는 1학기도 종강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러한 점들을 극복하고 시공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강다연 학생 공모전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들끼리 학생 공모전에 나간 일이다. 공모전 경험 자체가 설계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설계에 대한 흥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학생 공모전과 기존 수업의 차이는 교수님의 지도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때론 팀원들끼리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채 콘셉트 아이디어를 짜는 데서 막히기도 했다. 수업은 교수님의 피드백을 통해 작업이 진행되지만, 공모전에서는 팀원 간의 피드백밖에 없기에 우리는 각자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제안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설계 논리로 팀원들을 설득하면서 조경에 대한 열정과 관심도 함께 나눌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설계가 재미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완성된 설계안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공모 과정과 경험을 통해 조경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 개인적으로 설계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권효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현장 실습 작년 이맘때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대학생 현장 실습에 참여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15명 대학생이 모여 한 달간 수목원에서 생활하며 실습을 진행했다. 학생들의 전공은 조경학, 원예학 등 다양했고, 각자의 적성에 맞게 전시원관리실, 전시기획운영실, 식물양묘연구실, 야생식물종자연구실에 배치됐다. 난 수목원 내 전시원관리실에 배치돼 전시원 식물 관리 전반(전정, 멀칭, 병해충 등), 알파인하우스 및 연구 온실 관리, 도입 식물 이력 및 표찰 관리, 전시원 운영 계획 및 식재 그리고 조성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일을 하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항상 옆에 있다는 점이었다. 전시원관리실 직원으로부터 조언과 정보를 많이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조경 분야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전시원관리실은 8명이라는 많은 학생이 배정되어 더욱 활기 넘치던 부서였고, 그들은 같은 분야에서 함께 걸어갈 소중한 동료로 남았다. 또한 미리 개척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멘토도 만났다. 학생 신분으로 직장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사회생활을 잠깐이나마 미리 배울 수 있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성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오랜 기간 함께 머물며 생활하는 경험은 참 드문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경험은 지금까지도 문득 생각난다. 무더운 7월 햇빛 아래서 멀칭 하면서 흘리던 땀도, 기숙사 생활하면서 친구들과 빚은 사소한 마찰도, 현장 실습을 마치고 함께 바다로 놀러 간 기억도 모두 나를 성장시킨 경험이자 대학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김은주 디딤돌 프로젝트 조경과 관련된 유익한 활동이 정말 많아지고 있다. 못 해본 활동이 훨씬 많지만 경험한 것 중 가장 유익했던 활동은 디딤돌 프로젝트(구 72시간 프로젝트)다. 교내에서 조경학과 학생들이 정원설계 수업 실습을 하던 시대텃밭도 사라지고, 외부 중학교 정원 멘토링 봉사활동도 코로나19로 축소되며 직접 흙을 만지고 공간을 만들고 식물 심는 경험을 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디딤돌 프로젝트가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이 프로젝트는 현업의 소장님과 10여 명의 학생들이 팀이 되어 상상으로 그리던 정원을 지자체와 협력해 반영구적으로 실체화시킨다. 10여 명과 팀플레이를 하고, 소장님과 자주 소통하고, 발표해 심사받고, 수정을 반복하고, 직접 시공하고, 다시 돌아와 회계 일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지레짐작하던 일들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땀 흘리며 만든 공간이 서울시에 생긴다는 게 매우 뿌듯했다. 조경이라는 분야를 더 사랑하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작가정원 식재의 의도를 엿보고 장기간 직접 관리하고 평가까지 할 수 있었던 서울식물원 그린썸 자원봉사단과 도시공학과와 협업해 시민들의 요구를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가졌던 마을재생 테마 공공 기관·기업체 연계 현장체험 프로그램(면목동 대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진로를 정하는 데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신진호 지역활성화센터 현장 실습 특강, 공모전 등을 해보았지만 가장 유익했던 활동은 인턴 현장 실습이었다. 이 현장 실습은 3, 4학년 중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방학 기간에 진행한다. 시공, 설계, 관리 중 희망 분야를 선택하는데, 나는 작년 여름방학 때 지역활성화센터로 인턴 현장 실습을 나갔다. 가장 먼저 받은 업무는 자료 조사였다. 자료 조사를 할 때 꼭 필요한 내용은 무엇이며 조사한 내용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그리고 이 조사한 자료를 보고할 때 인쇄해야 하는지 파일로 보내야 되는지, 누구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는지 등을 배웠다. 이외에도 보고서 작성 보조, 이미지 편집, 설문 조사 및 인터뷰(출장)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현장 실습은 분야와 상관없이 실제 회사의 분위기, 조직 또는 단체 생활에 대해 배울 수 있어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각 회사의 기초 업무를 배우면서 분야별 회사의 주요 업무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실무를 옆에서 직관할 수 있다. 대학 생활 동안 스스로 준비하고 진로를 뚜렷하게 그려 볼 수 있는 경험이기에 후배들과 타 학교 친구들에게도 인턴 경험은 강력 추천한다. 1학년 때 과대표, 2학년 때 학생회 부원, 3학년 때 학생회장, 4학년 때 졸업작품위원장을 맡았다.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점점 단계적으로 책임이 무거운 직책을 맡으면서 많이 배웠다. 업무에 대한 관점과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높은 직책은 편하고 멋있는 게 아닌 높은 만큼 책임이 커지고, 그만큼 체계와 질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덕분에 인턴 실습하는 회사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안태경 학생회와 정원드림프로젝트 3학년 시절, 학과 학생회장을 맡았다. 평소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학생회장이라고 하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학생회장을 하면서 평생 해보지 않은 일, 해보지 않을 일을 많이 경험했다. 즐거운 일도 많았고 혼자 맘고생 하면서 책임감과 솔선수범을 배웠다. 많은 것을 잃고 얻었던 1년 중 가장 큰 수확은 조경학과를 위해 힘쓰면서 ‘조경’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진행한 정원드림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팀원들과 함께 정원을 설계하고, 한여름에 땀을 흘려가며 직접 시공했다. 스스로 부족한 점도 많이 깨달았고 조성한 정원을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조경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수업과 연계한 외부 활동으로 조동범 교수님이 진행하는 교양 수업 ‘대학과 사회봉사’에 참여했다. 한 학기 동안 주말이나 남는 시간을 통해 자발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수업이었다. 푸른길공원 가드닝, 마르쉐 장터와 한새봉 개굴장 운영 스태프 등 도시를 재생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다.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과 간단한 일이라도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도시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세영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2023년 3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폐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이 다시 재개됐다.
[캠퍼스 톡담] 요즘 조경학과 이야기
지난 7월 11일 ‘캠퍼스 톡담’ 카카오톡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 전 참여자에게 던진 여섯 가지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그 질문과 답을 키워드 별로 정리했다. _편집자 주 조경캡스톤디자인 권효진 서울시립대에서 진행하는 ‘조경캡스톤디자인’(이하 캡스톤)이라는 수업이 생소했어요. 신진호 캡스톤은 조경설계의 전체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상지 선정부터 세부 설계까지 학생들이 직접 진행하며 경험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강다연 캡스톤 과목에서 만든 최종 결과물을 보통 공모전에 제출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세영 전남대에도 캡스톤 수업이 있는데, 진호씨 수업 방식과 비슷합니다. 편집부 캡스톤 수업과 다른 설계 수업의 차이점이 있나요? 신진호 아무래도 주제와 대상지 선정이 중요해서 수업 초반에는 대상지와 이슈 찾는 작업을 주로 해요. 교수님의 개입이 다른 수업에 비해 적다는 점도 큰 차이예요. 학생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들어간다고 할 수도 있어요. 매주 크리틱이 진행되고 한 학기에 서너 번 정도 발표를 해요. 정세영 설계를 중점적으로 하는 수업인 만큼 이론 수업 비중이 적고요. 강다연 경희대 캡스톤 수업은 학생이 직접 참여할 공모전을 고르기 때문에 설계 주제가 다양해지고 그만큼 더 다양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김은주 계명대는 대구경북연구원과 연계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연구원에서 조경설계로 다룰 만한 주제와 자료를 보내주면 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듭니다. 후에 시상식을 열어 우수 작품에 상장도 수여하고 있어요. 식물학, 수목학, 식재설계 편집부 식물, 식재를 다루는 방식이 학교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 권효진 서울대에는 2학년 때 ‘조경식물재료학’, 4학년 때 ‘식재설계’ 수업이 편성되어 있어요. 강다연 ‘조경수목 및 관리학’이란 수업이 있지만 경희대 커리큘럼이 디자인에 집중되어 있어 식재설계를 중점적으로 배우는 과목이 없어요. 신진호 서울시립대는 1학년 때 ‘조경수목의 이해’ 수업에서 주로 수종과 생태를 배우고, 2학년 때 정원설계와 공모전을 하면서 각자 식재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3학년 때 ‘식재계획 및 기법’을 통해 식재설계 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편집부 식재설계 수업 방식은 어떤가요? 정세영 수목과 식재설계에 대해 배운 후 디자인 실습을 합니다. 저는 아파트를 대상지로 삼아 식재설계를 하는 과제를 했습니다. 식재만으로도 다양한 콘셉트가 도출되고 공간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죠. 김은주 계명대에는 ‘조경수목 및 지피식물학’ 과목이 있어요. 이 수업에서 조경설계에 자주 사용하는 지피 식물을 배워요. 생육을 고려한 식재 방식을 포함해 어떤 공간에 어떤 식물을 식재해야 좋을지, 잎이 마르면 어떤 느낌을 내는지, 지피식물이 지닌 분위기 등을 배워요. 이 과정이 끝나면 습득한 지식을 활용한 공간 스케치를 최종 과제물로 제출해요. 정세영 지피식물을 상세히 배우는 점이 독특하네요. 정원 조성 프로젝트 편집부 의미 있는 외부 활동으로 정원드림프로젝트, 디딤돌 프로젝트(구 72시간 도시재생 프로젝트) 같은 정원 조성 프로젝트를 추천했어요. 학생들에게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다가가나요? 정세영 실제 공간 조성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공간을 실제로 잘 구현하기 위해 시공자, 관리자, 지자체와 같이 협업하는 게 어려웠어요. 대상지 상황이 예상과 달라 현장에서 수정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그리고 내가 만든 정원에서 사람들이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조경설계에 자부심이 생겼어요. 강다연 스튜디오 설계와 달리 실현을 위해 지자체랑 협의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이용자 행태 분석 작업 등을 통해 디자인을 수정하는 과정이 많아요. 편집부 두 프로젝트 모두 멘토와 함께 팀을 이뤄 설계를 진행하죠. 정세영 팀별로 배정되는 멘토들이 현재 조경업에 있는 전문가라 현장 상황에 맞게 설계하도록 도와줍니다. 한번은 보기 좋은 식물들 위주로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멘토가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물과 현장에 더 적합한 식물의 차이를 알려줬어요. 설명을 들어보니 우리가 터무니없는 설계를 했다는 걸 깨달았고, 실제 시공하거나 존치될 경우 신경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그리고 설계한 공간이 때론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현실적인 설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강다연 저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식재 계획을 많이 변경했어요. 원하는 크기의 수목이 없거나 수목을 구하기 어려워서 바꾸기도 하고, 기존 구상안대로 실현이 안 되는 경우가 생겨 수정 사항이 많았어요. 권효진 멘토의 코멘트가 설계 스튜디오 수업의 교수님 코멘트와 다른가요? 신진호 디딤돌 프로젝트는 소규모 정원을 다루다보니 식재, 재료, 마감 등 상세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요. 강다연 교수님은 디자인 콘셉트와 설계의 일관성에 초점을 둔다면, 멘토는 현실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피드백을 해주는 점이 다릅니다. 수업에서 해주는 피드백은 시공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설계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코멘트라면, 멘토는 실제 시공을 해야 하니 현실적인 면을 더 강조하고 실현성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차이를 느꼈어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멘토의 말이 있어요. 나비를 콘셉트로 잡아 초기 평면도에 표현했는데, 최종 구상안에서는 나비를 아예 빼버렸거든요. 비용 문제도 있었고 계획안대로 표현하기 어려워 수정했어요. 아쉬워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계획안을 수정하고 변경하는 데 용기를 가지라는 멘토의 조언 덕에 과감히 수정할 수 있었어요. 취미 또는 조경의 연장선, 동아리 활동 김은주 조경학과 동아리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강다연 학과 특성 및 커리큘럼을 후배들에게 설명하고, 프로젝트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답사도 가고, 공모전에 나가는 등 다양합니다. 권효진 저는 라뷰(LAView)는 동아리에서 한 학기동안 활동했습니다. 옥상에 있는 작은 정원을 가꾸고, 공원 답사를 통해 조경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경학과 내 담론이나 동아리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정리해 잡지로 출간했어요. 잡지 발간을 위해 타 대학 조경학과 동아리를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그때 다연씨가 활동하고 있는 밝바치를 인터뷰 했었어요. 강다연 그런 우연이 있었다니 너무 반갑네요. 편집부 환경과조경 사무실 책꽂이에도 『라뷰』 한 권이 꽂혀 있어요. 안태경 라프(LAF)라는 학과 동아리가 있는데, 동아리원끼리 팀을 구성해 공모전에 나가고, 조경 회사 견학, 자체 공모전 개최 등을 하고 있습니다. 신진호 틔움이라는 식물 멘토링 학과 동아리를 했었어요. 서울시립대와 가까운 중학교에 주기적으로 가서 식물 관련 수업을 해주고 교내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활동을 했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매주 갔고, 2020~2021년에는 한 학기에 두세 번 정도 갔어요. 권효진 중학교에서 식물 관련 수업을 하다니, 뜻깊은 활동인 것 같아요. 신진호 수업 준비가 쉽지 않지만 학생들을 만나고 오면 충전도 되고 재미있었어요. 정세영 저는 중앙동아리 SF에서 종종 풋살을 해요. 강다연 슈퍼풋살(Super Futsal)이란 뜻일까요? 정세영 안전제일Safty First인데요. 학교에 풋살장이 생기기 전 선배들이 학교 뒤편 공터에서 공사장 안전제일 표지판을 골대 삼아서 공을 차던 것에서 유래했어요. 이를 시작으로 동아리를 만들었고 SF로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그리고 운동할 때도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죠. 코로나19와 학과 생활 편집부 코로나19 시기 수업 방식은 어땠나요? 강다연 대부분 수업을 줌(Zoom)으로 진행했어요. 영상으로 수업을 하니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돌려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하지만 모르는 점이 생기면 질문을 할 수 없었어요. 신진호맞아요. 프로그램 툴을 배우는 수업 같은 경우 영상으로 배우는 게 더 좋았어요. 정세영 코로나19 시기에 대부분의 이론 수업은 줌으로 했어요. 근데 실습이나 설계 수업이 많은 조경학과의 특성상 다른 과와 달리 대면 수업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어요. 거리두기로 인해 두 강의실에 학생들을 나눠 수업을 해서 교수님이 두 강의실을 왔다갔다한 기억이 있어요. 편집부 조별 과제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권효진 코로나19가 심할 땐 줌을 활용해 발표하고, 크리틱은 따로 교수님을 찾아가 받았어요. 크리틱을 따로하니 다른 학생의 작업물에 대한 크리틱 내용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어요. 강다연 코로나19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줌으로 조별 과제를 했지만, 요즘도 굳이 만날 필요 없는 회의는 비대면으로 하고 있어요. 줌으로 진행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있어요. 편집부 수업과 과제를 줌으로 해서 동기, 선후배, 교수님과 유대감을 형성할 계기가 많이 없었을 것 같아요. 정세영 전 군대에 있을 때 코로나19가 발생했어요. 전역 후 복학하니 선후배간 사이가 더 서먹해진 느낌이 있었어요. 2학년이었던 20학번들이 서로 얼굴을 처음 본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요. 그래도 동아리 활동은 멈추지 않으려 했고, 학생끼리도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강다연 저도 2학년이 되면서 동기들과 더 친해졌어요. 선배들이 교수님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신기했는데, 올해부터 교수님을 대면으로 만나면서 조금은 가까워졌어요. 서먹함이 학업에 걸림돌이 되진 않지만 진로나 취업 정보를 얻기 힘든 요소로 작용하기는 합니다. 권효진 수업은 비대면으로 했지만, 작업실이란 공간이 따로 있어 이곳에 모이는 학생끼리는 밥도 같이 먹고 지내 유대감은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바로 물어볼 선배가 가까이에 없다는 건 좀 아쉬웠어요. 사회 이슈를 다루는 조경 편집부 최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도시 쇠퇴, 인구 감소 등 많은 사회 이슈가 대두되고 있어요. 답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회 이슈가 ‘지구 온난화’와 ‘인구 감소’입니다. 두 가지 사회 이슈 중 현 시점에서 더 심각한 사회 이슈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영 지방에서 살며 인구 감소를 체감하고 있어 지구 온난화보다 인구 감소가 더 심각한 문제로 와닿아요. 인구 감소의 본질은 출생율 감소인데, 이는 고령화와도 연결돼요. 인구 감소는 지방 도시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활기를 감소시키는 문제입니다. 권효진 조경의 본질은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미래 사회 구성원에 대한 대비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구 감소가 더 심각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강다연 지구 온난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구 감소는 조경 트렌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는 조경이 해결 방안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조경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고 생각해요. 안태경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 이상 현상, 질병, 재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크게는 사망까지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단기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장기적 문제이므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은주 인구 감소는 사회 구조적 문제라서 해결하기 어렵지만, 조경이 지구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더 많이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편집부 사회 이슈를 다루는 수업이 있나요? 신진호 설계 스튜디오나 계획 관련 수업에서는 늘 사회적 이슈를 분석하고 이를 주제나 목표로 연결해요. 4학년 때 들었던 ‘환경생태계획’ 수업에서 사회 이슈를 많이 언급했어요. 권효진 설계 수업에서 대상지를 분석하면서 대상지와 얽힌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의 사회 이슈(지구 온난화, 도시 소멸 등)를 중심에 두고 설계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수업에서는 대상지의 맥락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강다연 사회 이슈를 직접 다루고 이야기하는 과목은 없지만, 스튜디오 수업의 경우 항상 인문 환경 분석이나 대상지 주변 사회 이슈를 콘셉트에 녹여냅니다. 스튜디오 수업 외에도 사회 이슈에 대해 학우들과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세영 전남대에 이와 관련한 토론 수업이 있어요. 최근에 들었던 수업에서 미국과 한국의 도시계획 역사를 배우면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어떤 계획이 수립됐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신진호 서울시립대 ‘통합환경설계론’ 수업에서 조경과 관련된 사회 이슈에 대해 매주 토론하고 있어요. 서로 마주보며 의견을 공유하는 원탁 토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요. 아직은 생소한 ‘조경학 교육인증제’ 권효진 여섯 가지 질문 중 ‘조경학 교육인증제에 대한 의견은?’에 답하기 어려웠어요. 교육인증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대부분 잘 모른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정세영 저도 교육인증제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어요. 동기들도 건축학과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조경학과에 잘 적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요. 설계와 이론 위주의 아쉬운 커리큘럼 정세영 조경학과 커리큘럼이 설계 위주로 수업이 구성된다는 점과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어 신기했습니다. 권효진 조경은 다양한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커리큘럼이 지엽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강다연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실습 시간이 많았어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이론 수업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정세영 최근 조경과 인접한 분야에 대한 수업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상부에 있는 주차장을 지하화하는 계획안을 만들고 싶었는데, 지하주차장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몰라서 도면을 그리지 못해 아쉬웠어요. 공학과 시공학을 배우지만 기본적인 시공 원리를 모른다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신진호 맞아요. 그래서 인접 분야 지식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공부하고 있어요. 안태경 한경국립대는 야외 수업, 현장 학습이 많은 편입니다. 여름방학 때는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인턴 실습도 가고 있어요. 학교 측에서 현장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가상 강의계획서 편집부 만약 강의를 직접 개설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운영해보고 싶나요? 강다연 답사 위주로 진행하고 싶어요. 자발적으로 답사하는 학생이 많지 않으니 수업 도중 많은 답사를 가서 경험과 발전의 기회를 주고 싶어요. 김은주 저도 현장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단순 견학보단 대상지를 배정하고 직접 시공하면서 배우도록 하거나 한 학기 동안 조경 관리를 해보는 식으로요. 현장 실습으로 간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러한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안태경 설계 수업을 한다면, 모든 학생이 같은 대상지를 설계하도록 유도하고 싶습니다. 경쟁 심리를 자극해 더 노력하고 발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론 수업은 야외 수업 위주로 진행해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할 것 같아요. 정원, 회사 등을 가서 정원 디자이너나 소장님을 인터뷰 하는 과제를 주고 싶어요. 권효진 실습 기회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서 학교 내 조그마한 공간을 이용해 학생들이 직접 식재설계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세영 학생들이 평소엔 떠올리기 어려운 주제를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어요. 경제나 도시재생 등 학생 스스로 사회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감성 공감’ 프로젝트처럼 학생들과 함께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이 도시의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수업을 만들고 싶어요. 신진호 요즘 다른 분야와의 통합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교통공학과, 도시사회학과, 건축학과 등 관련 학과와 협업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경학과 내 과목과 연계한 수업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다시 되돌아본 나의 대학 생활 신진호 학교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다른 학교 조경학과 학생들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정세영 추억 한편에 있던 저의 대학 생활을 꺼내볼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조경을 공부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한다는 점과 서로 다른데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강다연 평소에는 같은 대학과 학과에 속한 사람들과 대화를 주로 나누었다면,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다른 학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색다른 관점으로 조경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김은주 타 대학 학생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번 기회를 통해 대화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4년의 대학 생활을 돌아봤네요. 권효진 다른 대학에 속한 조경인의 삶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는 조경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안태경 재미있는 이야기 해줘 감사했습니다. 오늘 나온이야기를 토대로 학우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리농업기술대 사클레 캠퍼스
프랑스 그랑제콜(Grandes écoles) 파리농업기술대(Agro-ParisTech)와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가 함께 이용할 새 캠퍼스는 에콜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지역에 위치하며, 사클레 고원 과학 단지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됐다. 도시와 자연을 조화롭게 융합한 캠퍼스는 도시와 건축이 만드는 경관에 둘러싸여 있다. 이 경관은 고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21세기 캠퍼스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정원의 원칙 프로젝트의 핵심은 정원으로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대상지는 이용자의 관점과 생물학적 접근으로 보면 살아있는 토양에 비유할 수 있다. 다양한 이용 목적을 수용하거나 조절하면서 공간을 계획했다.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평지 안에 자유로운 활동을 수용하되 생태 환경과 이용 빈도를 고려한 녹지 공간을 조성해 공간의 다양성을 꾀했다. 또한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각기 다른 생태적 환경을 가진 섬 형태의 녹지를 마련했다. 일부는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기후 안정성을 꾀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Agence Ter Landscape Architect Agence Ter Consultant Team GTM lead consultant, Engie Cofely, Marc MIMRAM Architecture, Lacoudre Architectures, WSP, TEM, Artelia, Frank Boutte, Cider, DAL Alternative, Topager Client Campus Agro SAS Location Saclay, France Area 2.5ha Design 2018~2022 Completion 2022 Photograph Aldo Jimenez 아장스 테르(Agence Ter)는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세 명의 조경가 장 루이 니델(Jean-LouIs Knidel), 질 오투(Gilles Ottou), 위베르 기샤르(Hubert Guichard)가 1997년 공동으로 설립했다. 변화하는 거대한 경관과 토지, 자연, 도시, 혹은 대규모 상징적 공간, 공공 공간은 아장스의 관점과 사고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영역이다. 그들의 작업은 맥락적, 시적, 감각적 전개를 중시한다. 생태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용과 사회적 실천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원더 우드
유틀란트(Jutland) 북쪽, 스쾨르핑 초등학교(Skørping Skole)에 위치한 원더 우드(Wonder Wood)는 전통적인 학교 운동장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프로젝트다. 원더 우드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학교 인근의 숲속으로 탐험과 여행을 떠나도록 유도한다. 탐험가가 된 아이들은 원더우드에서 뛰어 놀며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자연에 대해 배우게 된다. 스쾨르핑과 개발회사는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학생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만큼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12~16세의 아이들이 활발한 신체 활동을 즐기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이 운동장을 학생뿐 아니라 스쾨르핑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주말에도 사용되는 장소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 학교 교직원과 학생, 다수의 지역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협의를 진행해 그들의 관심사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다섯 가지 원칙 협의 내용과 스쾨르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사들의 경험과 관찰 내용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설계 원칙을 세웠다. 첫째, 하나에서 여럿으로. 각 공간의 규모를 축소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놀이터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장소로 만든다. 둘째, 높은 경계선에서 낮은 가장자리로. 운동 경기장에 높은 벽 대신 낮은 울타리나 가장자리를 만든다. 이로써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놀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더 기술적인 운동과 덜 까다로운 운동 모두를 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활동 공간 가까이에 거리 시설물을 배치하거나 활동 공간 자체에 좌석을 배치함으로써 관찰자가 참여자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넷째, 벽에서 구역으로. 숲과 학교 사이에 큰 전환 구역을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자유 놀이 구역을 형성한다. 다섯째, 직선에서 순환고리로. 활동으로 가득 찬 루프를 생성한다. 이로써 놀이터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경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요소로 채워진 체험적 여정이 된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VEGA landskab Landscape Architect VEGA landskab Client Realdania, LOA, Rebild Municipality Location Skørping, Rebild, Denmark Area 20,000m2 Completion Phase 1: 2013~2016, Phase 2: 2022 Photograph Simon Jeppesen, Leif Tuxen, VEGA landskab 베가 랜스게브(VEGA landskab)는 2009년 앤 갈마르(Anne Galmar)와앤 도르테 베스테르고르(Anne Dorthe Vestergaard)가 설립했으며, 덴마크 코펜하겐과 오르후스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베가는 연결과 커뮤니티에 중점을 두고 모든 사람을 위한 야외 공간을 만든다. 경관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동시에 일 년 내내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신반포 르엘
신반포 르엘은 330세대로 규모가 작은 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분절된 작은 공간들을 확장해 하나의 큰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파티오 리미티드(Patio Limited)라는 콘셉트로 단지 내 안뜰에 작은 리조트와 같은 감성을 더하고자 했다. 워터 파티오 주민 공동 시설 주변은 이용성이 높은 공간으로 입주민의 요구를 반영해 수경 시설과 산책로 및 휴게 공간이 통합된 장소로 계획했다. 서리서리 물이 흘러 서릿개로 불렸던 반포지구의 지역 특성을 녹여내기 위해 하천의 흐름에 초점을 맞춰, 직선을 최대한 배제하고 물결의 곡선 형태로 전체 공간을 구성했다. 단조로울 수 있는 형태에 다양한 단차를 이용해 입체감을 더해 시선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경관을 조성했고, 동선의 흐름 또한 물길의 흐름처럼 유연하게 유도했다. 수경 시설과 티하우스를 중심으로 산책로와 휴게 공간을 조성해 다양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장동혁 라모디자인그룹 설계팀장 김승태 롯데건설 조경토목팀장 사진 유청오 특화설계 라모디자인그룹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식재 및 시설 다원 휴게 시설 스페이스톡, 데오스웍스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52-2 외 1필지 규모 330세대 대지 면적 12,053.8m2 조경 면적 4,839.83m2 준공 2023. 6. 라모디자인그룹의 ‘라모’는 랜드스케이프와 모자이크의 합성어(landscape+mosaics)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많은 경관과 조각의 조합을 뜻한다. 2003년에 설립되어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주거 등 다양한 규모와 유형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지가 들려주는 소소한 속삭임, 사회적 요구, 변화하는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설계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청량리 롯데캐슬 스카이-L65
청량리 롯데캐슬 스카이-L65는 동대문구 청량리4 재정비촉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축 공사로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로, 청량리역으로 바로 접근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최근 청량리역이 서울 동북부 철도의 중심지로 변화함에 따라, 동대문구 재정비사업이 꾸준히 이슈로 떠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주상복합단지인 대상지는 지상부에는 공공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했다. 또한 약 6,000m2에 달하는 옥상 공간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동주택 조경과 차별화된 설계를진행했다. 지상층_클라우드 플라자 65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에 걸린 청량한 바람 따라 구름이 흘러내린 정원이라는 콘셉트를 설정했다. 입구에 서면 한눈에 보이는 곳에 폰드를 단단이 쌓아 올려 유선형 구름 모양의 수반을 만들었다. 폰드 마감에 사용한 검은 석재는 반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주변 풍경을 수반 안에 담는다. 본래 평평했던 녹지에는 언덕을 만들어 볼륨감을 형성하고, 주변에 큰 규격의 소나무를 교차 식재해 도심 한가운데 호수 안에 구름이 걸린 숲속을 연상케 하는 경관을 만들었다. 지상층_소나무숲 스탠드 정문 우측에 조성된 소나무 군락지 안의 느티나무는 아파트 단지의 랜드마크로 손꼽힌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형상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충청지방에서 굴취해온 이 수목은 수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 3일간의 훼손 방지 작업을 거쳐 단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주변에는 소나무 등 상록 교목을 배식해 겨울에도 황량하지 않은 풍경을 연출하고자 했다. 여름 느티나무의 청량한 녹음을 입주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그늘이 드리우는 곳에 앉음벽을 조성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노용연 우리엔디자인펌 설계팀장 문상용 롯데건설 조경토목팀장 사진 유청오 조경 기본설계 아텍플러스 조경 특화설계 우리엔디자인펌 건축 설계 해안건축, 건원건축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다원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로 27 대지 면적 26,330.2m2 조경 면적 6,477.94m2 준공 2023. 7. 우리엔디자인펌의 ‘우리엔’은 우리(Uri)와 환경(Environment)의 약자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우리엔이 꿈꾸는 세상은 삶이 빚어내는 정겨운 이야기를 담은 따스한 소통의 장이다.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나아가 무절제한 훼손으로부터 되살아나는 자연, 그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꿈꾼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듀송플레이스
우리의 디자인 서울에서 제주로 듀송플레이스는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조경 디자인 회사다. 조경설계뿐 아니라 시공 및 유지·관리를 한다. 시공과 유지·관리는 듀송플레이스에서 설계한 조경에 한해서 진행하고 있다. 두 소장은 각각 성균관대학교와 경희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사무소와 건축회사 내 조경설계 부문에서 일했다. 2015년 제주로 이주했고, 제주의 로컬 엔지니어링과 시공 회사에서 일하며 제주의 문화를 익힌 뒤 2017년 듀송플레이스를 개소했다. 설계사무소로 처음 시작했으나, 설계안이 시공사로 전달된 뒤 시공사 수익 등의 이유로 계획안이 변화하는 사례를 겪다 직접 시공을 하게 됐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는 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자재와 인력 수급 등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차근차근 알아가며 새로운 영역으로 입문하는 점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 공사 규모가 작다 보니 세세하게 신경 쓸 일도 많았으나, 그만큼 이윤이 남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설계만 하다가 시공을 하게 되니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현장감이 좋았고, 현장에서 생기는 돌발요소를 바로바로 수정했는데 때론 설계안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등 시공에서 받을 수 있는 기쁨이 많았다. 사무실 너머 현장까지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우리가 디자인 회사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소 이 점에 대해서 늘 고민하지만, 조경이라는 영역이 설계와 시공으로만 이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계획부터 실시설계까지 도면화 작업은 인 오피스 디자인(in office design)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비욘드 오피스 디자인(beyond office design)이 아닐까 싶다. 송이슬 소장은 사무실 내부 업무를 책임지고, 김민호 소장은 사무실 외부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공대의 조경학과를 졸업한 송 소장은 꼼꼼하게 정리하는 업무를 더 선호하고, 미대의 조경학과를 졸업한 김 소장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만들어 내는 것을 더 즐겨하기에 그런 것 같다. 업무의 책임을 나누었지만 사실상 두 소장 업무에는 교집합이 더 많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현장 방문을 시작으로 모든 걸 같이 하는 편이다. 현장을 처음 마주할 때의 느낌을 믿는 편이고, 현장에서 나누는 대화와 영감이 디자인에 가장 많이 반영되기에 현장에 가서 느낀 것을 토대로 채우고 비울 곳을 의논해 정한다. 채워야 할 소재도 함께 결정한다. 직접 농장에 가서 가장 어울리는 수형의 나무, 그것과 어울리는 질감의 재료를 같이 고른다. 콘셉트에 따라 배치하는 것을 정리하는 건 송 소장 역할이고, 실제로 구현하는 건 김 소장 역할이다. 디자인의 현실화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완성도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송 소장은 현장에서 머릿속에 그린 풍경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상상한 것보다 더 멋진 나무가 심기거나 식물, 재료 등이 배치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설계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느낀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배치들은 몇 날 며칠 동안 고심해 탄생한 계획안 안에서 발전하고 변경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설계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안전주의인 송 소장과 다르게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김 소장이다. 김 소장은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수종과 재료, 새로운 시공 방식을 제안한다. 시공 초창기에는 이 때문에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창조물이 생기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본 뒤 송 소장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김 소장을 믿고 따르는 편이다. 조경 공사가 시작되면 두 소장은 함께 현장에 머문다. 김 소장은 현장 소장 역할을 하고 송 소장은 현장 감리 역할을 하며 설계와 시공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 토목 공사부터 마무리까지 두 소장의 손을 꼭 거쳐야 한다는 고집으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러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지 않는다. 특히 식재는 위치 선정과 심는 것을 직접 하고자 한다. 현장에서 돌발적인 사태나 환경, 기후에 따라 수종이나 위치를 변경하기도 하고 직접 흙을 만지며 상태를 살핀다. 흙이 질거나 답압이 심하거나 암반이 나타나면 흙을 치환하거나 식재 위치를 변경할 때도 많다. 공사를 마치면 조경 유지·관리 매뉴얼을 건네고 건축주, 관리 주체와 함께 현장을 둘러본다. 대개 정원을 처음 소유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아서 기본적인 설명을 하는 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초기 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준공 뒤에도 많이 소통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관리하는 일인 만큼 조성 후 유지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나가며 보는 풍경, 자료 조사하다 보는 이미지, 농장에서 보는 나무 수형 등에서 두 소장은 서로 추구하는 이미지가 매번 다르다는 걸 느끼지만 서로 거침없이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한다. 이유가 있든 없든 의견이 다르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런 의견을 거침없이 얘기할 수 있는 서로가 있어서 지금의 듀송플레이스가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공간 손 안의 작은 정원, 식물집 듀송플레이스 사무실 맞은편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카페 ‘식물집’이 나온다. 식물집은 우리가 만든 브랜드로 제주 내 다양한 화분과 식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한동안 사무실 내에 식물과 화분 편집숍을 운영하다가, 더 많은 사람이 좋은 공간에서 식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부부가 살던 주택을 리모델링해 카페 겸 플랜트숍 식물집을 만들었다. 처음 식물집을 열었을 때는 수제 토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사무실의 조그만 공간에 수제토분을 하나둘 모아 비치했고, 업무 시간 동안 그 공간을 오픈했다. 처음 예상 고객은 동네 산책을 하다가 들어오는 동네 주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공간이 협소한 탓에 옮겨갈 공간을 숱하게 찾았지만 마땅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주택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식물집과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던 곳을 옮기고 그곳을 지금의 식물집으로 만들었다. 기존보다 공간이 넓어지다 보니 카페도 함께 운영하게 됐다. 뭐 하나 대충하는 걸 싫어하는 둘이라서 커피도 함께 배우고 베이킹도 배우며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갔다. 브랜딩과 공간 디자인은 건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매뉴얼, 레시피 등은 둘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나갔다. 조경 작업이 외부 공간을 조성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님을 플랜트숍을 운영하며 느꼈다. 야외 정원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화분에 식물 하나하나를 심어 키우며 실내에 자신만의 정원을 소유한다. 식물집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식물과 화분을 제안해 이를 심어주는 일 또한 조경의 한 영역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표 프로젝트 외부의 자연을 들이다 제주에 있다 보니 제주 프로젝트의 비율이 더 많지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디자인을 한다. 제주 프로젝트는 서울 프로젝트보다 대상지 규모가 크고 주변 시야가 트인 경우가 더 많다. 대상지 내부의 콘셉트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환경도 함께 고려한다. 공간에 들어 갔을 때 받는 느낌은 외부의 환경이 크게 좌지우지한다. 내부의 콘셉트가 따로 있더라도 그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 조경의 역할이다. 트믐 스테이와 카페 오른이 바로 그런 경우다. 트믐 스테이 트믐 스테이는 광활한 밭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대지 바깥의 드넓은 들판의 자연이 건물 내부로 스며드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거대한 지붕의 중압감을 외부의 초록 식물들이 중화시킨다. 건물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면 시선과 같은 높이에 바람과 함께 너울거리는 그라스를 감상할 수 있다. 거대한 지붕의 하부 공간 식재를 위해 사계절별 그림자를 분석해 영구양지 구간과 영구 음지 구간을 나누고, 각 면에 서로 다른 수종을 심었다. 건물 주변에 산책로를 조성했는데, 산책로를 거닐며 식재들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게 자연스러운 식재 연출을 했다. 카페 오른 카페 오른은 바닷가 앞에 위치해서 바람과 염분을 고려해야 했다. 수종 선택 시 주변의 식생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를 관찰했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수종을 선택했다. 옆 부지의 억새밭이 대상지 내부로 들어오고 정원의 그라스들이 이를 중화해 푸른 잔디가 펼쳐진 오픈스페이스를 형성한다. 지형의 단차를 둬 건물 내부에서 입체감 있는 녹지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건물 뒤편 주차장 겸 드넓은 벌판에 일년초를 파종하는 것을 제안해 매년 다양한 꽃이 피고 지는 경관이 펼쳐진다. 이국적 경관 제주에서 조경할 때 육지와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노지 월동을 할 수 있는 식물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수종들을 선택해 육지의 조경과는 조금 다른 경관을 조성한다. 소규모식탁과 오라동 단독주택을 예로 들 수 있다. 제주 오라동 단독주택 오라동 단독주택은 양지바른 전면 언덕에 금잔디를 깔고 언덕 주변은 그라스와 호주아카시아를 심었다. 건물과 높은 나무로 인해 그늘이 드리워진 후정은 제주 곶자왈을 형상화한 이끼, 고사리 정원으로 조성했다. 대문을 열면 제주 자생종인 솔비나무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우측으로 호주아카시아와 그라스가 만드는 이국적 경관이 펼쳐진다. 소규모식탁 소규모식탁은 기존 귤밭의 일부 공간에 건물을 지어 가족들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귤밭 옆에 어떤 경관이 있으면 좋을까. 밝은 아이보리톤 건물에 영감을 얻어 귤밭과 대비되는 호주아카시아와 그라스를 주요 수종으로 정했고 건물 외부의 색감과 동일한 바닥 포장재를 선택했다. 가게 내부에서 전면 창을 통해 보이는 경관은 호주아카시아와 그라스로 인해 이국적으로 보이는 반면, 후면 창으로 제주의 고사리와 귤나무가 보여 건물 내에서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더 넓은 지역으로 제주의 프로젝트만 소개했지만 육지의 프로젝트도 매년 하고 있다. 서울 프로젝트는 제주 프로젝트와 다르게 작은 공간에 집약해야 하고 좀 더 큰 효과를 줘야 해서 손이 더 많이 간다. 서울에서 첫 프로젝트는 스테이 데이오프였다. 스테이 데이오프 스테이 데이오프는 서촌 체부동에 있는 한옥을 리모델링한 스테이로 가운데에 3평 남짓한 중정이 있다. 한옥 분위기에 맞춰 바닥 포장석은 아이보리 톤의 잔다듬 석재를 사용했고, 그와 대비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녹지에는 검은 돌 소재를 사용했다. 입구의 문을 열면 좌측으로 라일락 계열 낙엽수가 보이도록 심어 봄에는 향이 좋은 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의 녹을 제공하는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한옥에세이 한옥에세이는 서촌 누하동에 있는 한옥 스테이로 기역자 건물 형태로 건물 내부 어느 곳에서나 외부 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정원의 배경은 기단석을 기초로 한 와편담장이다. 정성스러운 담장을 가리지 않으면서 한옥 고유의 색을 담고자 했다. 수형이 아름다운 배롱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화살나무로 너무 예스럽지 않으면서 세련된 한옥 정원의 큰 틀을 잡아 주었고, 라일락, 치자나무, 맥문동을 심어 사계절 다른 정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봄에는 대문 옆 라일락의 보라색 꽃의 진한 향, 여름에는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 가을에는 화살나무의 붉은 단풍, 겨울에는 맥문동의 푸른 잎이 사계절 동안 다양한 경관을 자아낸다. 듀송플레이스는 자연 소재를 활용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조경 디자인 설계, 시공 회사다. 현장을 마주하고 콘셉트와 기능, 미적인 것을 고려하여 오롯이 그곳만의 분위기를 설계해 시공하고 유지하는 것을 추구한다.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그 다음의 조경 김수린
처음 만난 때를 언제라 말해야 할지 어렵다. 조경가 김공일의 정체가 김수린인지 모른 채 오대오 가르마의 안경을 쓴 캐릭터와 먼저 인사했었다. 얼마 뒤에는 매끈하고 현대적인 광장에 동양화풍의 산과 수목을 조화시킨 광화문광장 조감도를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전공한 김수린이 그렸다는 어느 인터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일까. 김수린은 궁금증이 사라질 즈음이면 공모전 당선이나 정원작가 선정 소식으로 다시 이름 세 글자를 내밀곤 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여러 힌트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든 관념적 김수린이 생겨났다.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김수린을 만난 건, KT 디지코 가든(2022년 10월호)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오대오 가르마를 타지도 않고, 안경을 쓰지도 않은 모습을 확인하고는 괜히 자리에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벽에 수묵화가 걸려 있지는 않을까 그런 걸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인터뷰 날에는 비가 내렸다. 신발을 적시는 빗물은 성가셨지만, 인터뷰 장소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자료실에서 듣는 빗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환경과조경 편집위원으로 좀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지만, 늘 묻고 싶던 질문은 이번에야 할 수 있었다. “김공일 캐릭터는 일부러 본인과 다르게 디자인한 건가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종종 그런 질문을 듣는데, 김공일 캐릭터 사실 저랑 똑같아요. 평소에 후줄근하게 입고 안경 쓰고 다니거든요. 제 진짜 모습을 본 친구들은 저랑 김공일이랑 똑같다고 말해요.” 진짜 김수린이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제는 뭐했나요? 최근 산림청 주최로 진행되는 ‘정원드림프로젝트’에서 정원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나성진 소장님(서브디비전)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계명대 학생과 매칭되어 즐겁게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그려온 디자인을 어떻게 발전시키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지, 정해진 예산 내에서 시공할 수 있는지 조언하고 있어요. 어젯밤까지만 해도 멘토 역할을 하느라 구미에 있었어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공부했죠. 두 전공이 설계하는 점 외에 접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용을 염두에 둔 디자인을 한다는 점에서 닮아 보여요. 맞아요. 사실 산업디자인, 조경뿐 아니라 디자인 관련 학과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프로세스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단지 속한 분야에 따라 결과물이 다를 뿐이죠. 예술은 자기만족에서 그칠 수 있지만,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이 디자인을 도출했는지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 방법이 논리든, 스토리텔링이든 설득하는 법을 고민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닮았어요. 조경을 복수전공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산업디자인학과 3학년 시절에 공공디자인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조경을 접했어요. 당시 산업디자인의 뿌리가 산업혁명이고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기업 이윤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좀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죠. 디자인으로 더 좋은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공공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조경이라는 학문을 만난 거죠. 조경을 공부하면 더 넓은 세계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복수전공을 하게 됐어요. 두 전공이 서로 영향을 주기도 했나요? 산업디자인학과와 조경학과 모두 과제가 많은 전공인데 학창시절 이야기도 궁금해요. 두 전공 모두 스튜디오 수업을 진행하고, 과제와 팀 프로젝트가 많아 쉽지 않았어요. 대충 졸업 요건만 채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휴학 없이 학교를 6년이나 다녔어요. 조교님이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제적이라고 경고했고, 친구들은 네가 무슨 초등학생이냐고 놀렸죠. 이래저래 고생은 많이 했지만 돌이켜보니 조경을 복수전공하길 꽤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업디자인학과에서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요. 1, 2학년 때는 수업 시간에 목재, 철재, 석고,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를 직접 가공하는 방법을 배워요. 목업실에 전기톱, 드릴, 샌딩기 같은 각종 목공 장비가 구비되어 있고, 용접실에 아르곤가스와 용접봉이 있어서 그 사용 방법을 배우고 과제에 활용할 수 있었죠. 3, 4학년 때는 종로, 을지로,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재료를 탐구했어요. 절곡, 벤딩, 빠우(버핑), 샌딩, 레이저커팅, CNC, 분체도장 등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가공을 숙련된 기술자에게 맡기고 직접 그 과정을 관찰했어요. 5, 6학년 때는 조경학과 커리큘럼에 집중했는데, 제품에 한정되어 있던 시야를 넓히고 도시적 차원으로 땅의 맥락을 읽고 조경학적으로 설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제 강점이자 특징이 된 거 같아요. 대상지를 넓게 보고 설계하는 건 조경가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지만, 실제 사용자가 공간을 거닐면서 받는 인상은 공간에 설치된 시설물, 포장 재료의 작은 디테일에서 비롯되잖아요. 이 모든 걸 섬세하게 챙겼을 때 공간에 완성도가 생기고 사용자에게 감동이 전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경험 덕분인지 광화문광장 실시설계 단계에서 시설물 도면을 맡게 되었는데, 기존에 잘 쓰이지 않은 디테일을 해외도서와 인터넷을 참고해 시설물에 풀어나갔어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시설물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이런 기회를 준 CA조경에 늘 감사해요. 졸업 후, 조경 전공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졸업할 당시에는 오직 취업만이 목표였어요. 그리고 조경설계사무소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야근이 많고 박봉이라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빤히 보이는 고생길을 걷고 싶지 않았어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죠. 남들이 적당히 부러워할 만한 기업에 취직해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목표였습니다. 닥치는 대로 자기소개서를 썼죠. 첫 직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속한 소마미술관이었는데, 3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하면서 조각공원 관리를 했어요. 올림픽공원 내 있는 조각공원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작품 소개를 하는 일종의 도슨트 역할을 했죠. 아이들이 공원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데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순간 ‘아, 이런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직업이 조경가였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공원, 리조트, 한강변 모두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는 공간이잖아요. 예전에도 조경이라는 학문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조경이 만든 공간 안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니 벅찬 마음이 들었습니다. CA조경에서 처음 맡았던 일이 기억나나요? 2017년 겨울에 CA조경 신입사원 공개채용 공고를 봤고, 다음 해에 입사했어요. 제 자랑이라 좀 쑥스럽지만, 회사 내 평가에서 포트폴리오 1등을 차지하기도 했고 면접도 잘 봐서 두 소장님이 서로 저를 데려가려고 골프 내기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는 ‘고덕국제화지구 2단계 설계공모’였어요. 입사하자마자 현상 팀에 투입됐고 한 달 반 동안 평일과 주말을 포함해 집에 일찍 들어가 본 적이 없었어요.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힘들어서 ‘내가 설계에 이만큼의 열정은 없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도 결국 당선이 되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고생한 팀원들과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이 맛에 설계하는구나’ 했어요. 김공일 시리즈를 통해 본 바로는, 연차에 비해 굉장히 다양한 프로젝트와 상황을 경험한 것 같아요.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없을 것처럼 최선을 다해 일했고, 정말 일밖에 모르던 성실한 일꾼이었다고 생각해요. 5년 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나열하면 A4 용지 한 장을 꽉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어느 일 년도 쉽게 흘러간 적이 없어요.2년 차에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했고, 3년차에는 ‘종로구청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PM을 맡게 됐어요. 아직 PM을 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다는 의견이 있어,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싶어서 밤낮없이 일했던 것 같아요. 4년 차에 진행한 ‘판교 제2테크노밸리 도시첨단산업단지 1구역 내 E2-1블록 실시설계’도 기억에 남아요. 2018년 회사에 입사한 뒤 기본계획에서부터 참여한 프로젝트였고, 설계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조용준 소장님(CA조경)에게 처음으로 디자이너로서 가능성을 검증받았던 프로젝트였어요.5년 차에 PM을 맡아 진행한 ‘KT 디지코 가든’은 설계, 시공, 감리를 거쳐 완공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본 첫 프로젝트였어요. 여름 폭염과 장마에 대응하느라 야간에도 공사를 진행해 체력적 한계를 맛보기도 했는데, 고생 끝에 서울시 조경상 대상이라는 선물을 받아 뿌듯했습니다. 김수린 하면 새로운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제출한 조감도가 생각나요. 입체적 건물과 광장 뒤편으로 보이는 회화 느낌이 강한 남산이 인상 깊었어요. 설계 작업에서 실제와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걸 경계하기도 하잖아요. 이 조감도가 어떤 의미가 되길 바랐나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전에 김영민 교수님을 포함해 공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했어요. 그 회의에서 나온 키워드 가 ‘표면’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한국까지 이어 져온 천여 년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땅이잖아요. 과거와 미래는 현재라 는 하나의 평면으로 압축되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깊은 표면(deep surface)’이라는 개념을 도출했어요. 그 개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고 조감도에도 담기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 하면서도 평면적인 느낌이 나는 조감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분위기를 잡아볼 겸 저해상도로 시험 삼아 작업을 했어요. 고풍스러운 산자락을 배경에 놓고 미래적인 느낌의 평면도를 바닥에 깔았는데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고해상도로 다시 작업을 했는데 이전 작업만큼의 느낌이 나지 않았어요. 이유를 찾으려 출력도 해보고 조감도를 멀리에 서 봤다가 가까이에서 봤다가, 수정을 거듭하다 제출 전날이 됐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진양교 대표님 (CA조경)이 지나가며 전 작업물의 산 느낌이 더 좋다고 코멘트를 해주었죠. 산이 문제였다는 걸 깨닫고, 점심시간 직전까지 완성한다면 조감도를 교체할 수 있다는 조용준 소장님의 허락을 받아 다시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점심을 삼각김밥으로 대충 때우며 작업해 겨우 마감 시간에 맞 출 수 있었어요. 빠르게 작업해서 아쉬운 점도 보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훨씬 좋아져서 여전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D와 3D를 어우러지게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3D 모델링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작한 작업이라, 입체적 느낌을 더 살릴 지 평면적 느낌을 더할지 고민했어요. 그림자를 넣은 버전, 그림자를 넣지 않은 버전을 모두 만들어 출력해 회의실에 붙여봤죠. 멀리서 보며 고 민하고 있는데 조용준 소장님이 그림자가 없는 버전이 더 좋다고 의견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림자 없는 버전을 선택해 발전시켰죠. 제가 참 귀가 얇은 편인 거 같아요. 이 팔랑귀 때문에 불필요한 고생을 한 적도 있 지만, 디자이너로서는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덕분에 많은 사람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고, 여러 작업물을 만들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화적 작업을 ‘비포 선셋’에서 다시 만났어요. “바다와 갯 벌이 만나는 자연의 지형을 구현하기 위한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이 기억나요. 산업디자인이라는 전공이 영향을 미친 걸까요? 도면이 자칫 그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콜라주는 제가 굉장히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에요. 그런데 이게 산업디자인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저 이미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고, 사고도 이미지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그림이 평면도처럼 보이고 평면도가 그림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 둘을 꼭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경 공간은 이용을 목적에 두기 때문에 인체 치수를 기준으로 동선 폭, 경사도, 계단 폭, 앉음벽 높이를 설정해 기본적으로 불편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비포 선셋’에서 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눈길을 끌었어요. 화 강석 판석의 각도와 마감 방식을 바꾸어 색다른 효과를 냈죠. 재료에 대한 탐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나온 작업이라 봐요. 재료의 물성은 제 디자인의 큰 원동력이에요.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거나 흔하게 쓰는 재료를 다르게 가공해 색다른 느낌을 낼 때, 생각지도 못한 조합으로 재료를 이용할 때, 큰 재미를 느껴요. 산업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학부 때 재료를 직접 가공하고 물성을 실험하며 자연스럽게 재료에 대한 관심과 이해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재료 연구를 많이 하고 가장 트렌드가 빠른 분야가 인테리어라고 생각 하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홍대나 을지로에 있는 인테리어 재료 상점을 틈틈히 방문해 탐구하며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비포 선셋’의 확장판, ‘LH 공공 정원’을 볼 수 있었어요. 비포 선셋과 같이 정원의 의미를 엿 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라 아쉬웠는데, 따로 붙여둔 이름은 없나요? 개인적으로 ‘Sustainable Future: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LH 공공정 원‘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갯벌은 생명의 땅이지만 과거에는 개발의 땅으로 여겨졌죠. 순천만 갯벌 또한 한때 훼손될 뻔했지만 다행히 보존되어 수많은 생명체가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가 됐고요. 대상지를 조사하면서 흥미로웠던 게 순천만국가정원이 갯벌과 도시 사이에 있어 개발과 보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국가정원이 ‘개발’과 ‘보존’ 사이 ‘공존’의 영역으로 의미가 있고, LH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자연과 인간,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존의 의 미를 담은 공원을 구상했습니다. 진입부는 개발로 인해 훼손된 자연으로, 뒷부분은 순천만 갯벌의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밀물과 썰물이 드나 드는 갯벌을 표현하기 위해 바닥 포장을 빗각을 치고 윤광 마감을 해 한 쪽에서 보면 물이 차 있는 듯한 모습을, 다른 쪽에서 보면 물이 빠져 있 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미디어월은 순천만 갯벌이 위치한 남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배치했어요. 정원에서 미디어월을 바라보는 방향과 실제 순천만 갯벌을 바라보는 방향을 일치하게끔 해 행위의 중첩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정원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날 법도 한데, 두 정원을 비슷한 방식으로 설계한 이유가 있나요? 닮은 것처 럼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요? LH에서 ‘비포 선셋’을 보고 연락을 주었기에 기본적인 틀을 비슷하게 가져갔어요. 하지만 대상지 조건이 달라 새로운 콘셉트가 필요했죠. 이번 기회에 기술과 조경을 접목해 새로운 유형의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LH가 이 도전을 받아들여줬어요. LH 공공정원에 사용한 기술은 크게 두 개예요. 첫 번째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입니다. 미디어월을 보면 만조와 간조의 실시간 데이터가 반영 된 순천만 갯벌이 보여요. 갯벌이 만조일 땐 미디어월 속 바다의 물이 차 오르고 간조일 땐 물이 빠지죠. 파도 소리도 그에 따라 변합니다. 두 번째 기술은 AI를 활용한 모션 캡처 기술입니다. 미디어월 하단부에 카메 라가 있는데, 이 카메라가 프레임 안에 사람이 들어왔다고 인식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화면 속에 나무가 자라나요.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나무 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정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풍성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원이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시대건 새로운 도전이 있었고 그 시도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나갔죠. 그런 의미에서 LH 공공정원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작은 시도라고 생각하며 보듬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중이 모르는 김수린의 작업이 또 있을까요? CA조경에 다닐 때, 조용준 소장님, 장서희 대리님과 함께 ‘서울형 저이 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서울시 내 방치 된 도시기반시설 12곳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공모전이 었어요. 우리 팀은 ‘더스트 캡처dust capture’라는 아이디어로 미세먼지에 대한 도시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하늘공원과 한강을 잇는 보행 공간을 만든 뒤, 보행로 주변 곳곳에 미세먼지 측정 상태, 공기 정화 상태, 오염 상태를 보여주는 타워를 설치하고 미세먼지를 포집하는 거미줄 형태의 시설물을 조성했습니다. 특히 저는 부품도를 만드는 작업에 집중했어요. 아이디어 공모전이라 상세 설계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더스트 캡처라는 아이디어가 독특한 만큼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랑니를 뺐던 터라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작업해서 결국 부품도를 완성했어요. 심사위원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아 1등을 차지해서 대상을 받았죠. 『LAM』에 이 결과물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고, 『환경과조경』 2019년 11월호에도 소개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김공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조경 이야기를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 만화라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봤어요. 초등학생 때는 만화를 보느라 학 원도 안 가고, 중학생 때도 시험이 끝나면 만화방에서 살았죠. 수학 공식이 가득해야 할 고등학교 수학 노트의 반은 제가 그린 캐릭터가 차지 하고 있어요. 수학 과외 선생님이 제 노트를 보고 혼내지 않고 재미있어 하며 다음 편을 궁금해 하기도 했는데, 그 시절 받은 긍정적 피드백이 좋은 원동력이 됐어요. 그래서 네이버 디자인프레스에 기자로 지원할 때도 자연스럽게 조경이라는 콘텐츠를 만화로 설명하는 샘플 콘텐츠를 그려 제출했죠.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아 네이버 메인에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김공일 1화의 주제가 ‘조경’은 무엇인가였죠. 당시 “내가 설계 한 조경 공간에서 산책하고, 힐링하고, 행복해 할 그 누군가 를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때로부터 벌써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조경에 대한 정의는 그대로인가요?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제가 내린 조경의 정의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좀 부끄럽긴 해요. 새벽에 쓴 글이었거든요. 새벽에는 누구 나 감성에 쉽게 젖어들잖아요. 그날도 감성에 취해서 적었던 터라 좀 쑥 스럽습니다(웃음). 김공일 시리즈에서 세계 조경가 소개 코너를 재밌게 봤어요. 학창시절 조경사를 배웠지만, 현대 조경가를 많이 다루진 않죠. 동시대의 조경가를 찾아보는 건 학생 자신의 몫이기도 하고요. 김공일 시리즈에서 소개한 조경가가 마사 슈워츠, 피터 워커, 로리 올린, 제임스 코너였어요. 평소 좋아하는 조경가 인가요? 롤모델로 삼은 조경가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도 회사에서 실무를 접하면서 동시대 조경가의 설계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학창시절에는 잘 몰랐죠. 제가 현대조경사를 관심 있게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조용준 소장님이 더 많은 정보를 접하도록 도와주었어요. 인생을 살며 감사를 전하고 싶은 세 분이 있어요. 학부시절 제 가능성을 처음 발견해준 김영민 교수님, 그 가능성을 실무 역량으로 키워준 조용준 소장님, 마지막으로 설계를 포기하고 싶을 때 잡 아준 안기수 소장님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아직 어리고 아직도 한창 성장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세 분 덕입니다. 마사 슈워츠, 피터 워커, 로리 올린, 제임스 코너를 선정한 이유는 이들의 작업이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롤모델로 삼은 조경가는 없지만, 로리 올린처럼 평범한 것 같지만 편안 하고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경의선숲길을 거닐 때면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데 사실 제가 잘하는 작업은 마사 슈워츠처럼 독특하고 회화적인 작업인 것 같긴 합니다. 유튜브 채널도 가지고 있던데, 원래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많았나요? 평소에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어느 정도 사유가 쌓이면 명확히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콘텐츠 만드는 일이 번거롭고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사람들이 잘 보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면 너무 뿌듯해서 멈출 수가 없어요. 조경가로서 설계에서 성과를 낼 때도 보람을 느끼지만, 정보를 전달하며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을 한다고 느낄 때 기뻐요 고백하자면, 저는 일하는 자아를 따로 두고 살아요. 그게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김수린에게는 저보다 더 많은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조경가 김수린의 얼굴, 김공 일의 얼굴, 대학원생 김수린의 얼굴. 셋 중에 어떤 얼굴이 진짜 김수린에 가깝나요? 더불어 일과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제 MBTI가 INFJ에요. INFJ가 16가지 성격 유형 중에서도 수많은 자아 를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제 수많은 자아 중 어떤 모습이 저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예전에는 이 때문에 정체성 혼란을 겪었는데,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전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냐에 따라 제 모습이 달라져요. 다행인 건 인복 이 많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거예요. 조경가, 만화가, 대학원생 중 저다운 자아를 굳이 꼽으라면 조경가를 선택하고 싶어요. 만화가는 정말 조경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을 담은 자아라서 때묻지 않게 아껴주고 싶은 존재에요. 조경가의 자아는 제 마음의 심해를 유영하며 바닥까지 찍고 올라올 때도 있고, 조용한 공간에서 생각 을 정리할 시간을 많이 갖기 때문에 실제 제 모습을 가장 많이 담았다 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 조경설계를 멈추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죠. 무엇을 연구 하고 있나요? 대학원에 다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만 5년을 경험했어요. 개인 일정보다 회사 일정이 우선이었고, 그렇게 일에만 푹 빠져 살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간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대표님, 소장님을 제외하고 제 근속년수가 가장 길더라고요. 5년을 성취지향적으로 밤낮없이 살다보니 몸도 조금씩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잠깐 멈추기로 결정했어요. 지금은 대학원에서 ‘조경식재배치 자동화 알고리즘’에 관련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실무를 하면서 ‘이런 도구가 개발되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어렴풋한 상상을 실현해보고 싶었어요. 김공일 마지막회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고 묻는 동기에게 잘 모르겠다고 답하셨다고 했 죠. 지금도 같나요?커리어적 목표가 아닌 김수린이라는 인간의 목표를 들려주셔도 좋아요. 전에는 헷갈렸는데 지금은 제 장점이 뭔지 알겠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제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조경과 기술을 접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전통적인 조경도 좋지만,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재료에 대한 경험도 쌓았고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이 많아 이를 조경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 제가 가진 가능성을 발전시키면서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죠. 10년 뒤의 조경, 20년 뒤의 조경은 어떻게 변할까요? 앞으로 조경의 경계에서 ‘넥스트next 조경’, 즉 다음의 조경을 이끌어나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수린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식재설계를 자동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종로구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판교 창조경제밸리 도시첨단산업단지 기본 및 실시설계’, '디지코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실무을 익혔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2016년 참가한 GIF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2년 ‘LH 작가정원’으로 정원설계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3년 LH의 초청을 받아 순천만국가정원에 ‘LH 공공정원’을 조성했다.
[모던스케이프] 해변의 풍경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가 관현악곡 ‘바다(La Mer)’에서 묘사한 바다는 직관적이어서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음악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에 바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오의 빛으로 반짝이며 바람을 만나 춤추는 듯 물결을 일으키다가 다시 거센 폭풍과 함께 파도가 휘몰아치듯 요란하다. 그리고 이내 파도는 어둠과 함께 고요히 잦아든다. 드뷔시는 음악을 통해 바다 이미지의 총체를 거대한 서사로 사실감 있게 풀어냈지만, 정작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실제의 바다가 아니라 일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추정 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의 파도’였다. 그럼에도, 드뷔시를 낭만주의를 극복한 인상파 음악가로 분류하는 것은 사물의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라는 작품에 관해 “바다의 일렁이는 물결과 하얗게 흩날리는 물보라는 물론, 빛과 구름, 바람, 냄새와 같은 움직이는 대상의 순간적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본래 서구 사회에서 바다는 산과 마찬가지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바다의 끝 모르는 예측 불가능함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증폭시켰고, 비이성적 광기로 날뛰는 듯한 파도와 폭풍은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의 소행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유럽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해적의 노략질이나 시시때때로 영토를 침략했던 이민족의 공격도 모두 바다와 무관하지 않아서, 바다는 여러 면에서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놓인 해변 또한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래 가득한 해변은 단조로운 데다 경계도 정확하지 않으며 바다도 육지도 아닌 모호함도 있었다. 해변은 분명함과 명료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대상이었다. 바다와 해변의 이미지가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사람들은 점차 바다를 심미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바다와 해안가에서 포착되는 숭고미는 예술가들의 창작에 좋은 주제가 되었고, 해변은 도시의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도피처를 선사했다. 또 바닷가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가 바닷물, 바다 공기,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 섭취 등에 기인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심신 건강에 관심 있는 이들을 바다로 이끌었다. 최초의 해변 휴양지로 알려진 잉글랜드 남부 해안 브라이튼(Brighton)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1812~1870)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소설을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841년 철도가 브라이튼까지 부설되고 방문객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유명 해변 리조트로 거듭나게 된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윤정, “일제강점기 해수욕장 문화의 시작과 새변 풍경의 변천”, 『역사연구』 29, 2015, pp.7~34. 배정희, “바다–치유와 향랑과 재난의 이미지”, 『유럽사회문화』 13, 2014, pp.31~53. 이한석 외 1인, “영국 해변리조트 발달에 관한 연구”,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7, 2004, pp.45~51. 姜宇源庸,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에 그려진 ‘여가’와 ‘근대일본’, 『比較日本學』 26, 2012, pp.81~98. 그림 출처 그림 1. Michaelasbest / Shutterstock.com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자연과의 연결
자연을 자연으로만 이야기하고, 자연과 자연이 아닌 것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블루메미술관은 아마 이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할 것이다. 2013년 개관 이래 블루메미술관은 줄곧 자연과 연결되는 미술관을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1년간의 연구 기간을 보내며 블루메미술관은 “지평을 넓혀 동시대 사람과 자연의 모습을 살피며 읽어”냈고, “여전히, 그리고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연과 연결되고자” 한다는 새로운 미션을 세웠다. 지난 5월 13일 시작된 ‘자연애호가들(Calling Nature Lovers)’ 전은 그 미션이 무엇인지 알리는 첫 발걸음이다. 영상설치, 회화, 조각, 사진, 사운드, 북큐레이션 작품 9점과 전시장과 자연 공간을 오가는 동선 안에서 자연을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해볼 수 있다. 미술관 안팎 자연의 경계가 불명확하듯 전시 역시 건물 입구를 경계로 나뉘지 않는다. ‘자연애호가들’ 전시는 미술관 앞마당의 잘 가꾸어진 정원을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블루메미술관 관장과 학예사는 정원이 자연을 향한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손수 정원을 가꾸고 있다. 색채와 높낮이가 다양한 식물을 스쳐 계단을 오르고, 주홍빛 능소화가 늘어진 콘크리트 담을 지나면 전시장의 입구가 나타난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을 막 피해 들어선 방문객을 향해 큐레이터가 묻는다. “전시 보러 오셨나요? 들어오는 길에 만난 정원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큐레이터의 물음은 방문객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전시에 몰입하게 만드는 실마리가 된다. 정원에서 본 것이 무엇이든 혹은 정원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들어왔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방문객 스스로 자연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어렴풋하게 깨닫게 한다. 아늑한 밤으로의 초대 뙤약볕 아래 생동하는 자연과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한 바깥과 달리 전시장은 어둑하고 차분하다. 전시에서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작품이 분위기를 더욱 배가한다. 베리띵즈는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현미경을 통해 본 미생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전시 포스터 뭉치를 올려놓았다. 별도 설명 없이 놓인 작품을 보며 관람객은 자신만의 해석을 펼치는 데 집중하게 되고, 밤과 잠을 연상하게 하는 매트리스는 좀 더 편안해진 몸과 정신으로 전시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이 매트리스는 베리띵즈의 영상설치 작업 ‘세상에 없던 식물원’에서도 발견되는데, 매트리스와 함께 설치된 화분들이 침실에 들어온 듯한 아늑함을 자아낸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지리산 산약초: 백만 년 전 온 편지
영국왕립원예협회(RHS)가 주관하는 첼시플라워쇼에서 황지해의 ‘지리산 산약초: 백만 년 전 온 편지’(이하 지리산 산약초)가 금메달을 받았다. ‘지리산 산약초’는 동남쪽 약초 군락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아침 햇살 속 약초들이 자라고 있는 산자락의 모습을 구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고유한 가치와 종의 보존을 이야기한다.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한국의 식물 300여 종과 총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바위로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땅에 지리산의 야성적 경관을 재현했다. 바위 사이에는 지리산의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중심에는 지리산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탑을 세웠다. 황지해는 2011년 첼시플라워쇼에 ‘해우소: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을 출품해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화원’으로 쇼가든부문 금메달을 받은 바 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코리아 LH 가든_정원과 땅
김단비의 ‘코리아 LH 가든_정원과 땅(Korea LH Garden_Garden with Land)’(이하 코리아 LH 가든)이 2023년 햄프턴코트 팰리스 가든 페스티벌 쇼가든부문 은메달을 수상했다. 김단비는 2022년 6월 인천검단지구에서 열린 제3회 LH가든쇼 작가정원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해, 영국 왕립원예협회RHS가 주최하는 가든쇼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코리아 LH 가든’은 LH가든쇼에 출품한 ‘그럼에도 대지에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햄프턴코트 팰리스 가든 페스티벌의 대상지에 알맞게 풀어낸 작품이다. 인천 검단이 품은 대지와 생명을 모티프로 ‘대지의 주인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산딸나무, 진달래, 쉬땅나무 등 한국의 고유 식물로 특색을 살렸으며, 자연과 사람의 공생 관계를 정원 속으로 끌어들였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조화, 서로 잘 어울림
잡지를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건 교정이다. 오타는 없는지, 글과 어울리는 사진이 배치됐는지 확인하며, 똑같은 내용을 너덧 번 정도 반복해 읽는다. 읽다보면 꽤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조화’다. 이번 호에도 조화가 등장한다. “건물과 조경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힐 수 있게 건물 색감과 조 화로운 조경설계를 했다. …… 지금 돌이켜보면 기존 녹지의 녹색과 건물의 붉은색 그리고 회색 포장이 건물과 외부 공간의 조화를 이뤄낸 것 같다.”(27쪽) 전자는 공간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위한 조화이고, 후자는 보색으로 서로 융화해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한 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후자의 조화를 느낀 영화 한 편을 봤다. 영화 엘리멘탈(2023)은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불 원소)가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물 원소)를 만나 우정을 쌓으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피터 손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욕 토박이지만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출발점은 자신의 부모님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민 1세대인 부모님이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미국에 정착하는 이야기와 다인종 사회인 뉴욕의 모습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1 영화 곳곳에는 다인종 사회 모습이 담겨있다. 엘리멘트 시티로 가는 지하철 안에는 네 원소가 있는데, 식물을 품은 흙 원소에 물 원소의 물이 닿으면 나뭇잎이 풍성하게 자라고, 구름으로 표현된 공기 원소는 천장에 붙어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지하철뿐 아니라 불에서 나는 연기를 내보내기 위해 환풍기를 설치한 앰버 집, 폭포수로 만든 웨이드가 사는 아파트 등 건물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서로 어우러진 하나의 도시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원소의 특징을 살린 장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화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잘 어울림’이다. 잘 어울리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요즘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는 성격 유형 검사 도구로, 네 가지의 상대적인 선호 지표를 조합해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한다.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아도 몇 가지 질문으로 MBTI를 유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사장님이 갑자기 귤을 준다면, 귤을 보고 드는 생각은?’이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대부분 두 분류로 나뉘는데, “맛있겠다” 혹은 “저 귤은 어디서 가지고 온 거지”다. 전자는 실제 경험을 중시하며 지금에 초점을 두는S(Sensing, 감각형)형에 속하고, 후자는 영감에 의존하며 상상과 혁신을 중시하는 N(iNtuition, 직관형)형인 사람이다. 나는 ESFJ로, 네 가지 유형에서 S와 F(Feeling, 감정형)에 해당하는 비율이 높다. N형 사람은 꼬리를 무는 상상력이 풍부한데, 나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그 이상의 상상은 하지 않는다(상상을 안 할 때가 더 많다). 갑자기 카페에서 귤을 주면, ‘맛있겠다. 그것도 공짜로 주다니 좋은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슬프거나 힘들 때 닥친 상황에 대해 공감해주는 말에서 위로를 많이 받는다. 같은 MBTI를 가진 작가가 그린 웹툰2을 보고 MBTI에 과몰입하게 됐다. 아직도 잘 모르는 나를 더 이해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를 이끌어가고 잘 들어주는 성격이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럴 에너지가 없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 힘듦을 극복한다는 내용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MBTI가 사람의 모든 면을 설명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나와 상대를 이해하는 데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공간도 똑같다. 대상지, 수목, 포장, 재료 등 조경설계에 들어가는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128쪽에 달하는 잡지 지면 중 한 페이지인 이 지면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에디터의 글맛을 볼 수 있어 한 자 한 자 신중히 적어 내려간다. 문단이 잘 배치됐는지, 글 속에 주제가 담겨 있는지, 마지막 문장이 다음 문단을 잘 연결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며 적는다. 이번 글도 잘 어우러진 맛집이길 바라며 마침표를 찍는다. **각주 정리 1.조진혁, “디즈니·픽사 최초의 한국계 감독 피터 손, ‘엘리멘탈’의 개봉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더 네이버(the NEIGHBOR)』 2023년 7월호 2.엣프제 메리(@esfj_merry)은 ESFJ인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 보이는 행동을 웹툰으로 만들어 업로드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간다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모호한 제목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경을 중심에 두되 그 경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끌어안을 수 있는 인터뷰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그래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고유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일지 고민했고, 그 끝에서 일상이라는 단어와 마주쳤다. 그냥 일상이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니까 시간이라는 기준을 세워 쪼개고 나름의 이유를 붙여주었다. 격월 인터뷰 ‘오늘의 대화, 어제의 재구성’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제를 들여다본다. 조경의 한복판에서, 혹은 조경의 언저리에서 독특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찾아간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물론, 관심사는 무엇이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지 살피고,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무엇인지 같은 내밀한 대화까지 나누는 것이 목표다. 첫 질문은 늘 “어제 뭐했어요?”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어제는 일상의 축소판이니까. 어제를 재구성한 오늘의 대화가 조경의 매력을 발굴하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레퍼런스를 주기를 기대한다. 김혜리는 1995년부터 『씨네21』에서 영화와 관련한 에세이, 리뷰 등 여러 글을 써왔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인터뷰를 특히 좋아한다. 적확하고 아름다운 단어로 쓴 질문들은 팔레트 위에 풀어놓은 물감 같다. 김혜리는 나긋하면서도 부담을 느끼지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좁혀 말을 건네며, 펼쳐놓은 물감 중 적당한 것을 붓에 묻혀 캔버스에 올린다. 김혜리의 인터뷰는 묻고 답하는 행위라기보다 그렇게 어떤 인물을 그려내는 작업처럼 보였다. 글 속에서 김혜리는 인터뷰이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랜 팬이 되기도 하고, 취향이 비슷해 동네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 되기도 한다. 나열된 문장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얼마나 공들여 오랜 시간 인터뷰 대상을 연구했는지 느껴졌다. 실제로 김혜리는 인터뷰이의 글과 작품, 다른 사람과의 인터뷰를 읽을 뿐 아니라 상대의 사진을 책상 한편에 붙여 자주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한다. 인터뷰를 할 때 꼭 지키려 한다는 작은 원칙이 참 좋았다. “그에 관해 전혀 몰랐던 독자도 인물의 실루엣을 더듬을 수 있게 하고, 그의 가장 열렬한 팬도 미처 몰랐던 면모를 하나쯤 발견하는 인터뷰가 되는 것.” 그래서 첫 인터뷰이로 김수린이 탐이 났다. 인터뷰를 여는 글(108쪽)에 썼듯, 김수린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는 여러 힌트를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해 사석에서는 날 선배라고 친근하게 부르지만, 사실 학창시절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사이라 조금 서먹한 기운이 감도는 게 좋았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모르는 상대를 향한 조각난 추측들을 물음과 답으로 얼기설기 이으면 진짜 김수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김혜리 기자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인터뷰 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으로 “‘덕분에 나를 알게 됐다’는 말 들을 때”를 골랐다. 그래서 “김수린에게는 저보다 더 많은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제 수많은 자아 중 어떤 모습이 저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라는 답이 돌아온 게 기뻤다. “전에는 헷갈렸는데 지금은 제 장점이 뭔지 알겠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제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라는 말은 더욱. 인터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혼자 쓰는 글과 달리 대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인터뷰이를 탐구해가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 내향성 95%라는 결과를 받는 내게 도움이 된다. 인터뷰이를 파헤치며 낯섦을 줄이고 남몰래 친근감을 쌓아올린다. 인터뷰는 이미 알고 있는 영화나 책, 노래만 즐기려하는 내 우주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날 밤, 김혜리의 트윗을 읽고 스스로 날 외딴 섬에 밀어 넣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이후부터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간다.”
[PRODUCT]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 스카이네스트
오늘날 퍼걸러는 단순한 쉼터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시 환경과 어우러진 휴게 및 편의 시설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토인디자인의 스카이네스트(TIP-950)는 2층 구조의 전망대형 퍼걸러로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휴식을 제공한다. 스카이네스트는 다양한 이동 동선과 효율적인 공간 배치에 중점을 두었다. 안정적인 스틸 구조물에 강화 유리와 하드우드 마감을 더했다. 1층에는 평상, 벤치 등을 배치해 시설물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나선계단 또는 슬로프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보통은 나선계단을 통해서 빠르게 2층 전망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노약자와 휠체어 이용자는 계단으로 오르기 어렵다. 이처럼 거동이 불편한 이용자를 위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슬로프를 마련했다. 슬로프의 경사나 난간 높이, 회전 구간 폭 등은 모두 BF인증 기준에 맞춰 디자인됐다. 야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밝기의 조명을 적용했다. 2층 전망 공간은 주변 경관을 360도 즐길 수 있도록 펜스를 전면 강화 유리로 처리했다. 펜스 및 유리 벽면 내측에 배치한 바 테이블에 앉아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다. TEL. 02-533-3720E-MAIL. www.toinp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