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지의 언덕은 다층의 기억이 중첩된 역사의 터이자 기억이 단절된 공간이다. 원래는 사직단 터였는데, 일제 식민지기에 일본군 위령 시설로 쓰이면서 훼손됐다. 한국전쟁 이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공간으로 활용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전통적 추모의 상징이었던 충혼탑은 위압적 구조물이 됐다. 도시의 확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과 토목 공사로 인근 숲은 훼손되고 접근이 어려운 서로 다른 높이의 공간과 유기적 프로그램의 부족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따라서 잊혀 가는 역사와 추모의 기억을 일상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접근법이 요구됐다. 참전 용사를 애도하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터의 기억을 환유(換喩)하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환유(歡遊)의 언덕을 만들고자 했다.
터의 온전한 기억
다층의 기억을 가진 터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잊힌 기억을 되살려 공간에 담고자 했다. 사직단의 공간적 형태를 차용해 땅을 상징하는 사각 형태의 프레임을 구현했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의 기억을 하늘이 비치는 수공간으로 담아냈다. 충혼탑이 가진 장소의 기억을 추모 공간의 상징성으로 보존하고자 했다. 기존 충혼탑 터의 지하 공간에는 성소 공간을 조성해 일상 속에서도 추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안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지하의 성소 공간에서 위패를 걸어둔 벽을 둘러보며 차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도시의 역사를 기억의 파빌리온 기둥에 새겨 시민과 함께 장소와 도시의 기억을 나누고자 했다. 전망대에 조성한 희망의 벽은 매년 청주 시민들이 선정한 지역의 사건을 기록하고 공원 방문자들의 소망을 모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망대를 통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축을 보존해 도시의 기억을 미래까지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 환경과조경 420호(2023년 4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