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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토리얼] 1982년생 이야기
- 1982년에 태어나 21세기의 문을 열며 조경학과에 입학했던 그들이 마흔의 문턱을 넘었다. 이번 호에는 국내외 조경설계사무소, 조경시공사, 엔지니어링사, 건설회사, 지방자치단체, 대학 강단에서 다채로운 삶을 꾸려온 ‘82년생 김조경’ 열두 명을 초대했다. 1982년생이 친숙한 건 10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350만 관객을 모은 영화인 ‘82년생 김지영’ 덕이겠지만, 사실 그들이 탄생한 해는 한국 현대 조경사와도 인연이 깊다. 1982년은 『환경과조경』이 창간한 해다.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조경의 10주년이며, 한국조경연합회가 세계조경가협회IFLA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같은 해에 개장한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고, 김재박의 동점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홈런으로 한국 대표팀은 우승을 하고야 말았다. 한국 야구의 황금세대로 불리는 82년생 선수로는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 김태균이 있다. 내 머릿속 82년은 온통 야구뿐이지만, 사실 이 해는 정치 환경이 요동치고 사회와 문화가 급변하던 시기의 한복판이었다. 서슬 퍼런 5공화국 초기인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를 통제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반포대교 개통,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교대역 구간 개통도 82년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에서 해방되고 두발 자율화가 전격 시행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야간통행금지 폐지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가 출시되어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1982년을 대표하는 대중가요로는 윤수일의 ‘아파트’를 꼽아야 한다. 물론 이용의 ‘잊혀진 계절’, 전영록의 '종이학’, 윤시내의 ‘DJ에게’,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등 수많은 히트곡도 82년생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해에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는 ‘애마부인’이지만, ‘록키3’, ‘람보’, ‘사관과 신사’, ‘ET’ 같은 외화에 몰려든 인파에는 비할 바 아니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82년생 조경인 고은진, 김정화, 김정훈, 김현정, 박진구, 송동근, 윤호준, 이한희, 채장원, 최동원, 최영준, 최효욱과 동갑인 연예인 중에는 김민희, 손예진, 한가인, 정지훈, 이준기, 현빈 등 지금도 맹활약하고 있는 스타가 유달리 많다. 해외 셀럽을 한 명만 꼽자면 단연코 앤 헤서웨이다. 뉴욕타임스가 정의한 밀레니얼 세대가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니,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MZ 세대의 문을 연 큰언니, 큰형인 셈이다. ‘82년생 김조경’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졌다. 이들이 중학생이 된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세계화 원년’을 선언했다. 첫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민선 지자체장 시대가 열렸다. 케이블 다채널 시대가 개막했고, PC통신이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드디어 인터넷이 대중화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95를 발매해 IT계의 대혁명이 일어난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이들이 고등학생이 된 1998년은 전년 말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대다수 국민이 구조조정과 실업난의 고난을 겪은 흑역사의 절정기였다. 이 해를 전후로 H.O.T., S.E.S., god, 젝스키스, 신화, 베이비복스,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데뷔해 대중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대학 조경학과 신입생이 된 2001년,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됐지만 뉴욕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마침내 IMF 시대를 졸업했고,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해 한국은 동아시아의 항공과 물류 허브로 도약했다. 사용자 1천만 명을 넘어서며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었고, 이른바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 2001년 연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대학 생활을 하거나 사회 초년생이던 시기,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경의 지형과 판도가 꿈틀거렸다. 21세기의 문을 열며 진행된 다운스뷰파크, 프레시킬스, 하이라인 등의 국제 설계공모가 조경 이론과 실천의 변화를 재촉했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선유도공원, 서울숲, 한강르네상스를 횡단하며 한국 조경의 변신 프로젝트가 펼쳐진 것도 이 무렵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2기 신도시가 촉발한 대형 사업은 ‘조경의 시대’라는 표현을 낳기도 했다. ‘82년생 김조경’들은 역동적인 조경의 시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성장했지만 정작 그들이 30대에 접어든 때부터는 한국 조경의 외적 환경이 위축되는 역설을 마주하기도 했다.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조경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군에서 조경의 길을 걸어온 열두 명의 이야기는 한국 조경 50년사의 근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이다.
- [풍경 감각] 적당한 거리
- 자주 다니던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복수초 같았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진노랑상사화, 흰 꽃을 피우는 희귀한 진달래, 종을 정의할 때 기준으로 삼는 기준표본목문배나무 등 특별한 사연과 가치를 가진 식물들이 많지만, 몰려든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구경하는 건 복수초가 유일했다. 복수초 주변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있다. 꽃 필 무렵의 복수초는 키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닥에 뒹구는 낙엽 틈에 꽃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을 보기 위해 쪼그려 앉은 채 울타리 창살 틈으로 팔을 뻗고, 카메라 배율을 최대한 높여 사진을 찍는다. 꽃이 작고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휴대폰 카메라에 자세히 담기지 않는다. 괜히 이 울타리가 답답하고 성가시다. 울타리는 복수초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초는 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겨우내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앞다퉈 찾는다. 그런데 복수초는 크기가 작아 꽃이 노랗게 피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해가 없으면 꽃잎을 닫아버리기에 꽃을 보러온 이들의 발길에 꺾이고 밟힌 꽃봉오리가 여럿이었을 것이다. 울타리 속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복수초가 피어난다. 가까이 보고 싶고 울타리는 답답하지만, 멀리서 복수초를 본다. 노란 꽃잎이 햇빛에 반짝인다.
- 82년생 김조경
- 고은진 서울시 노원구 푸른도시과 주무관 김정화 네바다주립대학교 라스베이거스 캠퍼스 건축대학 교수 김정훈 동림종합조경 현장소장 김현정 HEA 부소장 박진구 크랙넬 어소시에이트 디자이너 송동근 부영주택 조경부 팀장 윤호준 조경하다열음 소장 이한희 현대건설 익스테리어팀 매니저 채장원 조경, 디자인 진심 소장 최동원 한국수자원공사 공간경관처 경관계획부 과장 최영준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최효욱 유신 레저조경부 차장 막 조경학과에 입학한 신입생이 선배에게 하는 단골 질문은 필시 이것일 것이다. “조경학과 졸업하면 무슨 일 하나요?” 모두가 궁금해할 법한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답변하기는 쉽지 않다. 조경설계사무소, 엔지니어링, 조경시공사, 건설사, 공무원, 공기업, 연구소와 같은 답안을 내놓을 수도 있고, 조경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조금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좀 더 심화된 질문에는 답하기 더욱 어렵다. “그 직업은 무슨 일을 하나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답하고자 1982년에 창간한 환경과조경과 동갑인 “82년생 김조경”의 현재를 추적했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삶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다채롭게 삶을 꾸리고 있는 김조경들의 이야기가 졸업 후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지, 어떤 길을 택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하면서.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82년생 김조경에게 던진 공통 질문 1 어제 하루(혹은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했나요. 2 조경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 그 과정을 알려주세요. 4 일을 하며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5 지금의 일을 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6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무엇을, 왜 해보고 싶나요.
- [82년생 김조경] 고은진
- 1 현재 몸담고 있는 노원구청에서 내가 맡은 일은 공원 리모델링 사업과 재건축 등으로 새로 만드는 공원의 방향을 협의하는 일이다. 오래되고 낡은 공원을 직접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들어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계획부터 설계, 시공,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을 아우를 수 있다. 물론 각 과정의 전문가는 따로 있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성과물을 창출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게 재조성된 공원에 이용자들이 “좋아요”라고 반응할 때 느끼는 감동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럴 때면 얼른 아이 손을 잡고 가서 엄마가 만든 공원이라고 마음껏 자랑하고 싶어진다. 2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대학과 전공을 정한다는 게 어린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필통 만들기를 하며 재미를 붙였던지라 실용 디자인 분야가 눈에 들어왔고 그중 눈에 띈 건 건축학과였다. 당시 서울시립대학교는 건축과 조경이 학부로 묶여 있었다. 별 뜻 없이 여러 수업을 듣던 중 이름도 생소했던 조경이라는 학문을 접했을 때 새로 눈이 떠지는 듯했다. 자연을 담아 디자인을 하다니! 그렇게 운명처럼 조경학을 선택하게 됐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고은진은 노원구청 푸른도시과에서 일하고 있는 7급 공무원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9급 공무원으로 입사했다. 보통 조경이나 산림을 전공한 이들이 선택하는 녹지직은 산과 공원, 녹지를 관리하고, 주민을 위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또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직업이다. 물론 불법 행위 단속을 해야 하는 고달픔도 있다.
- [82년생 김조경] 김정화
- 1 2022년 8월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살고 있다. 사막 도시, 카지노 도시인 이곳에도 조경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네바다주립대학교 라스베이거스 캠퍼스 건축대학에 조경 이론 및 역사 전공 조교수로 합류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지내고 있다. 학기 중에는 수업으로 바쁘다. 지난 학기에는 1학년 조경사 수업과 3학년 조경 스튜디오를 담당했고, 이번 학기에는 3학년 조경 스튜디오 하나만 가르친다. 스튜디오가 매주 11시간씩 편성되어 있어 이틀에 한번씩 학생들을 만난다. 학생들을 자주 만나는 덕에 영어 귀가 뚫리는 긍정적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스튜디오 시간에는 9명의 학생들과 세미나도 하고 디자인도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계속 팽창 중이고, 기능을 못하는 잔디를 모두 제거할 정도로 물 부족 문제를 심하게 겪고 있어 조경 이슈가 꽤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대상으로 스튜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수업 외 학교 일로는 건축대학 교수 회의와 조경 전공 교수 회의, 인테리어 전공 교수 채용 심사, 대학원 입학 심사, 교수 연말 평가, 학장 미팅 등이 있다. 모두 다 처음 (그것도 영어로) 해보는 일이라 매번 우왕좌왕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K-교수다. 수업 사이에 덩어리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4년 후에 정년 심사도 있고 연구 기반도 닦아야 해서 이 시간에 연구 제안서나 논문을 쓴다. 얼마 전에는 2022년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알게 된 아티스트들과 함께 서해안 갯벌 경관을 연구하는 다학제 연구 제안서를 썼고, 지금은 환경공학과 교수와 함께 학교 내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에 낼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는 족족 다 되면 좋을 텐데, 올해는 벌써 퇴짜 맞았다. 어제는 2018년에 시작한 연구를 끝냈다. 봄 방학이라 인적 없는 학교 연구실에서 집중 모드로 논문을 썼다. 아주 후련하다. 이제 이 원고까지 다 끝내고 나면 텍사스에 갈 것이다. 샌안토니오에서 미국 조경교육자협의회CELA 연례 학 술대회가 열린다. 이번에 처음 참석하는데, 분위기 파악을 해볼 참이다. 마침 지금 텍사스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함께 석사 과정을 했던 후배도 온다고 해 기대 중이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정화는 미국 네바다주립대학교 라스베이거스 캠퍼스 건축대학 조교수다. 2022년 가을 학기부터 조경 이론과 역사 수업을 담당하고 스튜디오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이전에는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내 식물을 테마로 한 다학제 연구 팀인 4A_Lab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지냈다. 19~20세기 한국과 주변국의 관계 속의 조경사가 주 관심사다.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고, 2017년 “우리나라 식물원의 기원과 진화”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 멤버로 활동하며 조경 아카이브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2022년에는 현대자동차 제로원 크리에이터로서 아티스트 마르코 바로티, 큐레이터 김금화와 함께 설치물과 다큐멘터리 ‘MOSS-이끼’를 제작하고 전시했다.
- [82년생 김조경] 김정훈
- 1현재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 현장에서 조경 식재와 시설물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준공일이 임박해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다. 공동주택이라 복합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 타 공정과도 얽혀 있다 보니 계획한 일정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조경은 건축과 토목 공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선 공정이 진행되어야 마감 공정이 뒤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 시멘트, 레미콘, 철근 등 자재값 상승과 운송업 파업 등 여러 이슈가 뒤섞여 현장에서 고충이 컸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선행 공정이 늦춰지고, 강추위로 인해 공사 구간의 결빙이 생겨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소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준공일은 정해져 있고 남은 시간은 촉박한 상황이라 여러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경 식재 공사로 대형목 및 기타 교목과 관목을 식재하고, 암석원을 조성하는 중이다. 곧 지피류와 잔디 식재도 진행할 예정이다. 구조물 공사는 작년에 어느 정도 마무리해놓은 상태라 잔여 경계석 설치와 보도블록 포장이 한창이다. 티하우스와 퍼걸러 마감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일정 상 이미 끝났어야 할 공정도 같이 진행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 조경은 내게 참 생소한 단어였다. 수능이 끝난 어느날 저녁,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의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 광고 한 장을 발견했다. 평소 아버지가 조경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때마침 신문에서 조경학과 신입생 모집 공고를 보고 스크랩을 했던 것 같다. 그 광고를 내게 보여주며 앞으로의 조경 산업이 비전이 있을 것 같다며 전공으로 추천했다. 이후 고심 끝에 조경학과 진학을 결정했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정훈은 연암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후 새로운 배움의 길을 찾아 한경대학교 지역자원시스템공학과에 진학해 시설의 입지 선정과 공간 및 자원 활용에 대해 연구했다. 이후 동림종합조경 시공 부문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김현정
- 1 인터뷰 요청 연락을 받은 시점은 육아휴직 후 회사로 복귀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복귀 첫날 간단한 프로그램 단축키가 생각나지 않아 적응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나 오산이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지금, 한 달 하고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그 사이 기본 및 실시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다. 공간 디자인을 하고, 법적 사항을 확인하고, 보고 자료를 만들고, 디테일을 고민하고, 도면을 작성하고, 공사비를 산출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어릴 적 배운 자전거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듯 자연스럽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다만 똑같은 페달을 밟아도 장소에 따라 새로운 경험이 되듯, 매번 반복적인 설계 과정이어도 대상지에 따라 흥미로움은 언제나 변한다. 간혹 금요일에 끝내지 못한 고민들의 답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지난 주말엔 한 프로젝트에서 고민하던 포장재 색상을 주말에 놀러간 장소에서 영감을 얻고 결정하기도 했다. 2 아이들이 쓰는 말 중에 가장 모호한 답변이 ‘그냥’이다. 정말 어쩌다 하게 됐다. 쳇바퀴 돌 듯 정해진 틀에 맞춘 일상에 현기증을 느낀 고등학생의 패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다. 그냥 해보고 싶다는 그런 얄팍한 마음 정도. 재미있을 것 같고, 유망해 보이고, 무엇보다 ‘자유분방한 정신’이 느껴졌다고 할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먹고 사는 ‘업’이든, 마음을 빼앗기는 데는 비단 논리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비이성적 결심이 한참 지나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합리적 나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초현실적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면 어쩌다 조경학이었을까. 한때 두루뭉술하게 국어 교사나 광고 기획자를 꿈꾸던 문과생은 수능 참사라는 핑계로 공대까지 기웃거리게 된다. 조경학과는 공과대, 농업생명과학대, 미술대, 자연과학대 등 소속이 참 다양하다. 공대 중 가장 공대답지 않아 보이고 몽글몽글 글 쓰듯 ‘대지 위에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조경이라는 학문에 이끌렸던 건 운명이었을까. 적분도 공부하지 않은 문과생이 대학 수학과 대학 물리학을 기호 암기하듯 패스하고 그렇게 조경가가 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사를 공유하는 것은 조경이라는 학문과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명확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스스로 자신 없는 단정 지음뿐이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현정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오래된 광고 카피처럼 설계의 품격은 리얼리티에 기반한 섬세한 고민들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다년간 기초 실무를 쌓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진학해 만학도 생활을 즐기고 다시 설계로 복귀했다. 현재는 HEA 일원으로 지내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박진구
- 1 최근 한 달 동안 사우디 리야드 호텔, 사우디 마디나 호텔, 사우디 제다 코니시 오픈스페이스 프로젝트 공모,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주거단지 프로젝트를 맡아 하고 있다. 어소시에이트의 주요 역할은 맡은 프로젝트를 높은 완성도로 약속된 시간에 제출하고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를 멘토링 해주는 것이다. 현재 함께 일하는 조경 디자이너, 그래픽 스페셜리스트에게 디자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멘토링을 해주며 담당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매주 클라이언트와 미팅하면서 디자인 제안을 하거나 발전된 디자인의 상황을 프레젠테이션한다. 때로는 직접 스케치, 3D 작업, 캐드 드로잉을 하기도 한다. 좀 더 생생한 일상을 전하기 위해 어느 하루를 간략히 되돌아봤다. 7:30 am 차를 몰아 오피스가 있는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향한다. 운전하며 오늘 할 일을 머릿속에 정리한다. 8:00 am 우리 회사에는 바리스타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라테 한 잔을 부탁하고 자리에 앉는다. 운전하며 생각한 사항을 노트에 적고, 이메일을 체크한다. 디자인 디렉터에게 시간이 있냐고 물어본다. 디자인 디렉터와 전날 있었던 상황 혹은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토론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짧은 대화 뒤 자리에 다시 앉아 분배할 일들을 정리한다. 대부분은 스케치 마크업이다. 9시면 팀원들이 슬슬 도착한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일을 나눠주고 내 할일을 시작한다. 11:00 am 너덧 개 프로젝트를 관리하다보니 거의 매일 미팅이 있다. 클라이언트 혹은 건축, 인테리어, MEP 등 관련 공종과의 코디네이션 미팅이다. 그날 미팅에서 논의할 내용들을 스케치, 사례 사진, 간단한 3D 등 가급적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준비한다. 4:00 pm 여러 미팅에 참여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테니스 코치에게 문자를 보내 코트를 예약한다. 기분이 좀 좋아진다. 팀원들의 진행 사항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빠른 스케치를 해주며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준다. 가끔 빨리 안 풀리는 경우가 있으면 내 자리로 가져와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본다. 5:00 pm 다시 한번 팀원들의 진행 사항을 체크하고 미비한 게 있으면 도와준다. 캐드, 3D, 스케치, 인디자인 등 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7:00 pm 일을 마무리하고 놓친 게 없는지 이메일을 체크한다. 2 서울시립대학교 화학공학과에 01학번으로 입학했다. 화학공학도 매력이 있었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조경이 그 목표에 적합한 학문이라 생각해 전과를 했다. 지금 돌아보니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덕분에 꽤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게 됐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박진구는 조경 디자인 내러티브를 형태로 연결시키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 조경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질을 높일 수 있고 자신의 삶의 가치 또한 높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2년, 스튜디오테라에서 3년 실무를 했다. 외국에서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2012년 영국 에식스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정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뒤 런던 마사 슈워츠 파트너스에서 디자이너로 2년간 일하며 중동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중동에서 커리어를 쌓기로 결심하고 두바이 파슨스 조경 팀에서 4년간 일한 뒤 현재 두바이 크랙넬에서 어소시에이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송동근
- 1 전국 아파트 조경 답사를 진행했고, 아파트 조경 성공 및 실패 사례를 살펴보며 아파트 조경 트렌드를 분석했다. 해당 내용을 토대로 회사의 조경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조경 식재 하자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며 해당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오픈 채팅방에 공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답사를 통해 신품종 수종과 중부지방에서 활용 가능한 수목을 공부하며 수집 중이다. 2 과수원을 운영한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자연 경관이 부족해서 팍팍하게 느껴지는 도시에 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으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과제하느라 자주 밤을 새우고 취업한 선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군대 전역 후 나름대로 인생을 계획함에 있어서 비싼 등록금 내고 배운 조경이기에 전공을 살리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송동근은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후 조경설계, 조경 시공, 조경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15년차 조경인이다. 현재는 부영주택 조경 담당자로서 전국 분양 및 임대 아파트 조경 및 안성 마에스트로CC 골프장 외 8개 골프장을 관리 감독 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조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다방’의 운영자로 현재 1,000명의 회원과 소통하며 조경 분야 발전을 위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윤호준
- 1 요즘 일상은 설계와 학업 그리고 박람회(컨벤션) 준비로 요약된다.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회사 업무와 정원학 박사 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주중에는 현장 업무와 각종 회의, 전화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면, 주말에는 부족한 지식을 더하기 위한 학업에 몰두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학교가 위치한 고양시에 농가와 정원 용품 상점이 많아 자주 들르는 편이다. 꽃의 개화를 보며 계절과 날짜를 확인하고, 새로운 품종과 비워지는 매대를 보며 트렌드와 인기 품종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중부대학교에는 2021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조성한 생활 정원이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잠시라도 이곳에 머물며 정원을 둘러보고 식물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전공과 직업이 조경이다 보니 이동하다가 실무와 직접적으로 맞물리는 장소를 발견하면 더욱 의미 있고 즐거운 기억이 된다. 현재 서울식물원 해봄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얼마 전 2023 서울정원박람회 운영 제안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조경 전공자가 행사를 왜 하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공간을 계획하고 실제 조성해 본 경험이 박람회를 준비하는 데 큰 기반이 됐다. 조경 전공 학생이라면 서울식물원이나 올해 서울정원박람회가 개최되는 하늘공원에 한두 번 방문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방문객으로 공간을 즐기는 것과 프로젝트 담당 실무자로서 현장을 바라보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전문가의 시선으로만 공간을 바라보면 때로는 보편적 다수의 행태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대상지를 전문가적 시선과 일반인의 관점 모두로 살피고자 노력한다. 특히 업무 시간 외에도 가족 혹은 동료와 자주 대상지를 방문하곤 한다. 이때 이용자 행태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이용 계층마다 어떻게 공간을 즐기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체감할 수 있다. 매년 전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정원박람회에 계획가나 설계가, 운영자, 작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왔다. 준비 기간이나 예산 등의 한계로 해외의 박람회와 차별화된 특색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이 부분을 언제나 많이 고민하고, 종종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열리는 타 분야 박람회를 찾아가 접목할 점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올해 상반기에는 독일연방정원박람회BUGA도 다녀올 계획이다. 가장 주력하고 있는 설계 프로젝트는 캄보디아에 조성하는 한·아세안 국가정원 기본계획이다. 국외에 조성되는 첫 번째 한·아세안 국가정원이기에 한국과 상이한 캄보디아의 인문‧자연 환경을 존중하고 한국성을 잘 담을 수 있는 정원을 고민하고 있다. 조성 이후 현지에서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는 방안도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윤호준은 조경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뒤 제도권을 넘어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포부로 2017년 조민영과 함께 조경하다 열음을 열었다. 주민과 소통하고 공간의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 박람회까지 아우르는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연의 모습을도시에 재현하는 편집자로서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직관보다 경험, 발주처보다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예비 조경가를 발굴·육성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조경설계사무소를 키우고자 한다.
- [82년생 김조경] 이한희
- 1 오는 6월 준공하는 아파트 현장의 조경 공사를 바쁘게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목 식재 패턴, 주요 초화류 식재 구간 현장 협의, 조경 시설물(석가산, 퍼걸러, 놀이 시설물) 마감 공정 품질 등에 대해 협력사와 지속적인 협의를 하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준공 인허가 관련 사항도 사전에 점검하며 준공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 2처음에는 조경학과를 졸업해 건설사에 다니고 있던 지인의 추천으로 조경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비전이 있고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 생각해 조경학과를 선택했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이한희는 공주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현대건설 익스테리어팀에서 조경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주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현장에서 일한다. 아파트 건설 현장의 업무는 조경 시설물을 설치하고 전반적인 아파트의 조경을 만드는 일이다. 아파트 조경이란 잘 지어진 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포장지라 생각하고, 아파트 조경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도전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채장원
- 1 최근 한 달은 업무에서나 일상에서나 변화가 많은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팀 단위로 진행한 업무들, 디자인 스케치부터 마스터플랜, 공간 CG, 설계도서 작성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하려니 쉬운 것이 하나도 없고 동료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정신없이 흘러간 한 달을 되돌아봤다. DAY 1 아침부터 전화가 온다. 발주처 현장 담당자다. 뭔가 작업이 잘못됐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는다. 현재 조경 시공 회사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제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시공 현장은 목표 준공일이 분명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으로 진행된다. 전화는 보고 일정 때문에 걸려온 것이었다. 일주일 뒤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설계안을 보고하고 확정 지었으면 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일주일은 보고 준비와 설계 내용 검토로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다. DAY 2~6 하필 다른 현장의 설계 변경 업무가 겹쳤다. 시공 회사의 설계 부서는 새로운 설계 제안만큼이나 현장의 설계 변경 업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보통 설계 회사는 설계 용역 그 자체로 대가를 인정받지만, 시공사의 경우 공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현장 상황(관련 공종의 간섭, 배수 및 토심 문제 등) 때문에 설계 변경이 시행되지만, 회사 수익에도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공사 여건과 금액 등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이번 제안은 새로 공사를 수주해 매출을 내야 하는 설계 영업의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공 완성도를 높이고 더불어 회사의 수익을 증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결국 설계 협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책상 한쪽에 트레이싱지를 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도면을 계속 그려본다. 시공 회사의 설계 업무 대부분이 그렇지만, 주어진 시공 기간이 길지 않아 구조 검토, 재료 수급이 너무 오래 소요되는 디자인은 지양하며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발주처와 명확한 이미지를 공유 해두었기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디자인을 확정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보고만 잘 마치면 한 고비는 넘긴다. DAY 7 6시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7시 반에 기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니 9시 반이다. 보고 전 간단하게 대상지를 둘러보며 일주일 간 떠올린 그림이 공간에 구현되었을 때 어떨지 상상해본다. 10시, 보고 장소로 이동한다. 이동하며 머릿속으로 공간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다행히 좋은 분위기에서 보고를 마무리했다. 전체 공간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일부 수정 의견이 있었지만 큰 그림을 흔드는 정도는 아니라 내심 안도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향후 일정을 정리해본다. 이제 공사용 도면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공사 현장 여건을 확인하고 시공 협력사와 협업을 진행해야 한다. DAY 8~20 평면 디자인이 확정됐으니 실제 공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도면 작업을 진행한다. 발주처 현장 담당자와 클라이언트에게 보고를 진행하며 받은 의견을 바탕으로 철거 계획부터 식재, 시설, 포장 도면을 그린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약속한 날까지 설계도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야 한다. 1차 설계도서를 기준으로 전문 협력사와 미팅을 진행한다. 시설물과수경 설비, 전기 등 실제 공사를 수행할 협력사들과의 미팅은 설계도서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각 분야의 공사에 문제가 없을 지 판단하고 공종 간의 간섭이 생기는 부분을 검토하며 의견을 공유한다. 나는 이 내용을 취합해 디자인에 영향이 가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며 설계도서를 정리해간다. DAY 21~25 실제 시공을 위한 설계도서 변경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처음 설계도면 작업을 하며 놓쳤던 부분을 찾아내고, 공사에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받아 도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완성된 설계도면은 때로는 아주 단순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디테일하기도 하다. 실제 도면을 보는 당사자가 꼭 필요로 하는 부분은 자세하게 표현하고, 도면에서 확인하기 어려워 현장을 보며 진행해야 하는 부분은 다소 러프하게 그리게 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검토를 거쳐 완성된 도면이지만 아마 공사가 시작되고 나면 도면과 맞지 않는 부분이 계속 나올 것이고, 설계변경이라는 또다른 업무로 이어질 것이다. DAY 30 최종 검토한 도면을 발주처에 납품한다. 약 한 달에 걸친 제안부터 실시도서 납품까지의 과정은 설계자뿐 아니라 시공자, 발주처 등 공사에 관계된 모두의 머릿속에 전체적인 그림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처음 생각했던 그림이 예상보다 별로일지, 더 나은 결과물이 될지 곧 알게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채장원은 디자인과 시공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다 이제야 목적지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영엔지니어링에서 조경설계 영역에 첫발을 들였다. 시공과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농업회사 법인 명림원에서 시공 관리와 수목 유통 일을 배우면서 오히려 디자이너로 성장한 듯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 건설 회사인 미담과 고려조경의 디자인팀에서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조경설계사무소 ‘조경, 디자인 진심’을 꾸려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진심이다.
- [82년생 김조경] 최동원
- 1 현재 일하고 있는 공간경관처 경관계획부는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조경 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곳이다. 수자원, 수도, 수변 도시 사업의 조경 계획‧설계 업무뿐 아니라 사내 조경‧경관 제도 및 기술 관리, 대내외 협력 지원, 신규 사업 발굴 업무도 한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조경 관련 제도와 회사 전략과 연계된 신규 사업 발굴이다. 요즘은 탄소흡수원 사업 확대 방안, 강과 하천의 생태 문화 가치를 향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탄소흡수원 사업을 원활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탄소흡수원 사업은 ESG 경영에 기여하고 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되는 기후위기 대응 사업이다. 탄소중립이 사회적 화두인 만큼 K-water도 자체적인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해 다양한 분야의 탄소저감과 흡수원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산림탄소상쇄림으로 등록된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중이고, 나아가 배출권거래제와 연동되는 산림 분야 외부 사업을 등록해 관리하는 업무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은 여러 사업과 사례를 조사해 알아가는 단계다. 하지만 탄소흡수원은 수목을 다루는 조경에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 분야다. 흡수량 인증 시스템 등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 또 다른 주요 업무는 강 문화 활성화다. 강의 생태와 문화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해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K-water는 물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물 복지를 실현하고 ESG를 실현하는 여러 활동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 문화 활성화도 그 일환이다. 하천 고유의 장소성을 발굴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개발이 아닌 문화를 활용한 현명한 쓰임을 도모한다. 작년에는 금강의 갑천 유역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갑천 유역의 생태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으뜸천 빛과 삶이 흐르다’라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올해는 이 사업을 금강 전 유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사업 추진을 위한 계획을 수립 중이다. 사업 진행이 잘 된다면 기존에 몰랐던 강에 대한 이야기와 가치 높은 생태 문화 자원이 널리 홍보될 것이다. 시민들이 강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최동원은 단국대학교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해 생태관광 활성화 방안을 해설사 양성 교육 과정 중심으로 연구했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에 입사해 한강유역본부 아라뱃길지사 문화관광팀에서 하천관리 및 관광문화 사업을, 시화사업본부 송산사업단 도시경관부에서 송산그린시티공원녹지 조성 공사를 담당했다. 현재 그린인프라부문 공간경관처 경관계획부에서 일하며 조경 업무와 더불어 경관 제도와 기술 관리, 탄소중립을 위한 산림탄소상쇄림 관리, 강 문화 활성화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 [82년생 김조경] 최영준
- 1『모음』 발간 『모음Mo'eum』(@snula_moeum)은 학교에 처음 와서 기획하고 학생들과 함께 만든 스튜디오 작업 모음집이다. 최근 최종 편집을 마쳤다. 조경설계를 가르치게 되면서 스튜디오 작업을 강요(?)해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됐다. 아마 학생들은 스튜디오 수업 하면 프로젝트를 완수함으로써 사회를 들여다보고 문제 의식을 발견하고 해결책과 의미를 종합하며 통합적 디자인 사고를 하게 된다는 교육적 효과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밤샘과 힘듦을 더 앞서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과 서로의 결과물을 돌아볼 수 있는 모음집을 만든다면 완성된 작업의 뿌듯함을 함께 나누고 상호 학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밤샘이든 강요든 최선이든, 그 노력의 기록 속에 우리의 자존감을 동시에 담는다고 믿는다. 부디 오래 지속되는 학과의 역사 일부가 되어 쌓여가기를 기대해본다. 노들 예술섬 디자인 기본구상 공모를 위한 학생들과의 협업 노들섬 국제설계공모 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몇몇 학생과 함께 스터디하며 공모안을 만들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실무 감각을 기를 수 있는 기회이고, 나에게도 더 많은 팀원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감사히 임하고 있다. 마감이 코앞이다. 『진리는 나의 빛』 원고 마감 전공과 학업 외 다른 활동도 지원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시간 여유가 없다. 영적 방향성을 함께하는 기독학생동아리에 약간의 마음이라도 보태고자 함께하고 있다. 겨울방학 동안 동아리 소식지인 『진리는 나의 빛』 전면 원고를 요청받아 큰 부담이 되었지만, 좋은 뜻을 따르는 마음으로 조경을 통해 느꼈던 바를 적어보았다. 새 학기 수업 준비 봄 학기에 처음 담당하는 수업 준비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세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보니 수업 한시간 전까지도 고민하다가 결정하곤 한다. 이번 학기는 스튜디오 작업이 아닌 기술과 감각을 배양하는 수업을 맡았는데, 그저 학원이나 유튜브의 튜토리얼이 아닌 좋은 조경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학생 라운지 인테리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가 학교에 드물어서 학교 건물 내 학생들을 위한 공용 공간 인테리어를 담당했었다. 3D로 만든 스크린 숏과 의도를 담은 글을 간략히 전달했는데, 실행력 좋은 서무과 담당자가 겨울 방학 끝나기 전에 실현해주었다. 수원캠퍼스 종합관에 있던 학교의 동판 소재 정장이 활용되지 못하고 창고에 보관 중이었는데, 새로 개방하는 공간 중앙에 놓을 수 있게 되어 공간의 부족함을 시원하게 채워주고 있다. 새 학기가 되어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운 부분도 보인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최영준은 미동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 조경 석사(MLA) 학위를 받았고, 미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조경사(PLA)가 되어 조경 실무를 경험한 뒤,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했다. 태평양을 나이 숫자만큼 왕복하며 한국과 중국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2018년부터 서울 스튜디오를 열고 민간과 공공에게 의미 있는 작업을 추구했다. 조경설계를 땅에 그리고 짓는 15년 남짓한 시간에 이어서, 2022년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조경학전공 학생들을 가르치는 조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좋은 조경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규명하는 ‘조경디자인성능연구실’을 열었다.
- [82년생 김조경] 최효욱
- 1 엔지니어링 소개 먼저 엔지니어링 분야를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학생과 후배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과거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도로,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의 수요 증가로 토목설계‧감리업을 통해 성장했다. 이후 공공에서 조경 수요가 늘어나면서 도시계획부에 ‘조경팀’이 생겨났고, 2000년대 이후 조경 부서로 바뀌어 30~40명으로 구성된 현재 수준까지 성장하게 됐다. 주요 업무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도시공원, 정원, 수목원, 휴양림 등의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부터 공원‧녹지 기본계획 등의 도시계획적 업무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민간이 시행하는 관광단지, 리조트 등의 인허가에서 실시설계까지 대규모 사업도 주요 업무다. 주로 하는 일 적게는 3~4개, 많게는 6~7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한 프로젝트에 오랜 시간 몰입하기보다 체계적인 일정 계획을 세우고 업무의 강약을 조절해 여러 개 프로젝트에 적정 시간을 분배해야 한다. 지난주에는 유독 보고회가 많았다. A 프로젝트 전문가 자문, B 프로젝트 설계안 보고, C 프로젝트 심의 등. 보고와 심의는 설계 진행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발주처에서 따로 보고를 요청하지 않는다면, 실무 PM으로서 직접 설명하고 협의하는 것이 주 업무다. 사무실에서는 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꽤 소모된다. 행정 업무는 프로젝트 관리(계약, 공정 관리, 예산 등)에 관한 행정, 발주처가 떠넘긴(?) 각종 보고서, 법규 및 인허가 검토 등 매우 광범위하다. 이러한 행정 사항들을 제 시기에 빠뜨리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엔지니어링 업무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이다. 물론 설계 도면과 내역을 작성하거나 계획(안)을 그리는 등 ‘모름지기 조경가가 반드시 잘해야 된다고 여기는 일’도 해야 하지만, 설계사무소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설계 성과를 만드는 데 투입하기는 어렵다. 엔지니어링에서의 조경 업무는 디자인의 스페셜리스트이기보다는 관련 법령에 의해 사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인허가를 진행하고, 설계 시에는 토목, 건축, 전기 등 다양한 분야를 총괄하는 제너럴리스트로서 정해진 공기 내 최선의 성과를 이끌어내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최효욱은 경북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유신 레저조경부에서 조경계획 및 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순신대교 해변관광 테마거리 조성사업(2019), 인천 검단 택지개발지구(2020), 아시아예술정원 조성사업(2022) 등의 실시설계에 참여했으며, 2021년 조경기술사를 취득했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경계에서 줄다리기하며 조경의 궁극적 목적을 탐구하고 있다.
- 충혼탑 추모공원 조성사업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 1955년 청주의 옛 사직단 터에 조성한 충혼탑은 한국 전쟁 희생자를 기리며 만든 석탑이다. 충혼탑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원은 현충일, 위령제 등 호국보훈 행사 장소로 활용되며 도심의 상징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보수와 리모델링을 통해 꾸준히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낮은 접근성, 편의 시설 부족과 노후화, 보행에 적합한 그늘과 부지를 둘러싼 공간의 부재 등으로 충혼탑 공원의 이용률은 인접한 청주시립미술관, 충청북도교육도서관(이하 충북교육도서관)과 비교해 낮았다. 도심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녹지 공간과 주변 문화 인프라와 연계를 통해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청주시는 ‘충혼탑 추모공원 조성사업 마스터플랜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대상지 남북의 직선거리는 약 400m, 동서의 직선거리는 150m에 달한다. 중심지에는 충혼탑이 있고, 북쪽과 남쪽에 청주시립미술관과 충북교육도서관이 있다. 공모의 목표는 충혼탑 추모공원이 가진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추모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청주시립미술관과 충북교육도서관 등 주변 공공 공간과 추모공원을 결합해 변화하는 주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를 조성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고 역사적 가치를 높여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도시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참가자는 도시적 맥락 안에서 시민과 공존할 수 있는 추모공원을 계획해야 했다.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추모 대상에 대한 정서적 교감을 끌어내며 주변 문화 인프라와 연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예술·문화 체험, 휴식을 위한 공원이 요구됐다. 또한 청주시의 도시재생사업 및 인접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고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추모의 경험을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공원을 꾀해야 했다. 이를 통해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며 희생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추모, 사색과 휴식을 제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며, 나아가 시민들과 공존할 수 있는 공원을 제안해야 했다. 대상지는 크게 충혼탑, 청주시립미술관, 충북교육도서관으로 구성된다. 충혼탑은 대상지의 중심이 되는 현대식 석조 조형물이다. 참가자는 충혼탑의 유지와 보수를 통해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거나, 조형물을 이전해 새로운 방식의 추모를 유도해야 했다. 기존 충혼탑에서 시행되는 참배 등 행사가 가능하도록 200~300여 명을 수용하는 광장 형태의 공간이 필요했다. 사운로, 사직대로와 인접한 청주시립미술관은 도시와 공원을 연결한다. 따라서 사직대로에서 청주시립미술관, 추모공원 내부로 이어지는 보행 환경을 개선해 접근성을 높이고, 동선 상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와 프로그램이 요구됐다. 대중교통 통행량이 많은 사직대로의 인지성을 높여 잠재적 이용객의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해야 했다. 충북교육도서관은 충혼탑과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단절되어 있어 보행 환경 개선으로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충북교육도서관의 오픈스페이스를 적절히 활용해 이동식 도서관, 가변적 문화 교류 스테이션 등을 설치하고, 스테이션 간의 보행로 계획을 고려하도록 했다. 대상지의 오픈스페이스는 건축물의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호 간 통합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의 보훈 및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는 광장형 오픈스페이스나 적절한 차폐를 이용해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녹지형 오픈스페이스가 요구됐다. 마스터플랜 수립과 조경·건축이 결합된 공모에 12개 작품이 접수됐다. 심사위원회는 1차, 2차 심사를 거쳐 최종 당선작과 수상작을 선정했다. 1차 서면 심사를 통해 4개 작품을 선정하고, 2차 발표 심사 후 최종적으로 조경설계호원+민앤동 건축사사무소의 ‘청주 360’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2등작은 스튜디오이공일+건축사사무소 소솔+이진욱의 ‘기억의 터, 환유 언덕’이 차지했다. 3등작은 HLD+제이에이치피 건축사사무소+건화의 ‘더블메모리얼’과 경남종합조경+스튜디오테라+건축사사무소 신의 ‘가림단원’이 공동 수상했다. 당선작은 사직단과 추모 공간이 가지는 오랜 정체성을 살리고 도시 중심에 위치한 추모공원이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 시민의 일상적 공간, 친숙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사업비에 맞는 현실적인 공원 구현, 미술관·추모 공간·도서관을 하나의 공원 개념으로 엮은 설계, 보행 동선축과 시각축의 교차, 개방 공간의 적절한 조합 등의 요소가 높이 평가됐다. 2등작은 기존의 충혼탑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추모 공간을 지하화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수공간의 관리 및 지속가능성, 파빌리온 디자인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3등작인 더블메모리얼은 수공간을 중심으로 추모성을 구현하고 충혼탑 재설계를 통해 상징성을 확보했지만 경제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평가였다. 공동 3등작인 가림단원은 윗광장과 아랫광장으로 분리해 공간의 수직적 분할을 꾀하며 차별화된 추모 공간을 선보인 점은 높이 평가됐지만 이로 인해 광장 공간이 축소되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제기됐다. 청주시는 당선 팀과 충혼탑 추모공원 조성사업 실시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8개월간의 실시설계 기간을 거쳐, 2024년 상반기에 공원을 착공할 예정이다. 당선작 청주 360 조경설계호원+민앤동 건축사사무소 2등작 기억의 터, 환유 언덕 스튜디오이공일+건축사사무소 소솔+이진욱(한경대학교) 3등작 더블메모리얼(Double Memorial) HLD+제이에이치피 건축사사무소+건화 3등작 가림단원(佳林壇園) 주최 청주시 복지정책과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604-87번지 일원 면적 마스터플랜: 38,768m2 조경 면적: 24,615m2 건축 면적: 480m2(부지범위 15,481m2) 방식 일반 설계공모 예정 설계비 5억2천867만원(공원조성계획 변경 비용 포함, 부가세 포함) 예정 공사비 60억원(부가세 포함) 시상 당선작: 충혼탑 추모공원 조경 및 건축 기본·실시설계 계약 체결의 우선협상권 2등작: 2천만원 3등작: 1천500만원(2팀) 운영위원 변문수(무운건축사사무소 대표, 운영위원장) 박재민(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교수) 송영일(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신철우(충북예총 사무처장) 전원식(서원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정우영(S.I.E.건축사사무소 대표) 최은희(센건축사사무소 대표) 심사위원 변문수(무운건축사사무소 대표, 심사위원장) 김준현(가원조경설계사무소) 김영환(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교수) 박재민(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교수) 이용환(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송상환(건축사사무소 공유 대표) 진행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청주시 복지정책과 경남종합조경+스튜디오테라+건축사사무소 신
-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청주 360
- 대상지는 과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성한 대제 의식의 공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참전용사를 기리며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도시 경관 관점에서 보면 지대가 높아서 도심에서 경관이 가장 먼저 읽히며, 도심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주거 공간, 상업 공간, 도로의 확장 등 도시의 변화로 인해 공간적으로 고립됐다. 대상지를 둘러싼 숲은 경관의 조망을 어렵게 했고, 단차가 높은 지형, 도서관과 충혼탑 사이 도로는 이용자의 접근성을 떨어뜨렸다. 더불어 추모와 같은 특정 행사를 할 때만 사용되고, 주차 공간 등 외부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해 도심으로부터 공간적 고립과 단절이 발생했다. 네 개의 아카이브 추모 공간의 오랜 정체성을 보존하고, 도심에 남겨진 오픈스페이스로서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난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청주 360은 대상지를 추모 공간 중심으로 360도 열린 경관으로 재구성하며, 시민 친화적 일상 공간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한다. 남겨진 자연과 추모의 기억을 담으며 일상 속 친숙한 메모리얼 공간을 만드는 것이 설계 목표였다. 공간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구성했다. 청주시의 과거, 현재, 미래의 기억과 모습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각 구역의 이름에 아카이브를 붙였다. 퍼블릭 아카이브를 통해서 미술관에서부터 문화공원(예정)으로 이어지는 동선에 열린 공공 보행광장을 조성해 대상지 서측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라운드 아카이브는 미술관, 충혼탑, 도서관을 긴 축으로 연결하는 오픈스페이스로 추모공원의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메모리얼 아카이브는 충혼탑 부지에 건축물과 연계한 360도 열린 경관을 제공하는 메모리얼 공간이다. 내추럴 아카이브는 기존의 보존 숲을 활용해 자연을 감상하며 대상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동선이다. 열린 경관과 열린 공간 공원 접근 레벨을 낮추고 미술관과 공원을 잇는 동선을 확충해 누구나 쉽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용자들은 미술관의 입구에서부터 낮아진 추모 공간을 인지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충혼탑 주변에 조성한 열린 스탠드 공간은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며, 추모 행사 시 엄숙한 제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구조적 프레임과 더불어 공간의 정면성을 드러낸다. 대상지 밖에서도 보일 수 있게 충혼탑의 위치를 재배치해 일종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했으며, 주변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데크를 설치했다. 시민 친화적인 공간으로 공공성 회복 단차로 접근이 어려운 공원의 접근성을 높이고 입체적 연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선형의 공공 보행광장을 조성했다. 광장은 대상지의 중심 보행축으로 사직대로와 접한 미술관, 흥덕문화의 집에서부터 공원 진입 편의성을 높인 커뮤니티 스탠드, 도서관 문화정원으로 이어지며 청주 360을 거점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디서나 공원으로 접근이 가능해 다양한 여가 및 커뮤니티 활동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통합된 프로그램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공간과 무장애 보행로 등 동선을 조성해 도서관과 미술관의 이용 편의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공공 오픈스페이스의 메모리얼 충혼탑을 중심으로 한 초록의 공공 오픈스페이스는 한국전쟁 참전 호국영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일뿐 아니라, 미술관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큰 축으로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이다. 입구에서 충혼탑에 이르기까지 단차를 두어 일상의 공간에서 추모 공간으로의 전환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했다. 입구에서 인지가 가능하도록 충혼탑의 위치를 이전했고,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데크 유리 난간 상부에 호국영령의 이름을 타공한 위패를 설치해 새로운방식의 추모를 유도했다. 옛 사직단의 대제 공간을 모티브로 한 360도 구조적 프레임 계획은 과거 사직단이었던 대상지의 장소성을 기억하고 제단 공간이 가지는 경관적 이미지를 부여해 청주 360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명확한 구조적 프레임의 공간은 추모 행사 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 보존과 저밀도 식재 대상지를 둘러싼 기존의 숲을 최대한 보존하고자 했다. 숲속 산책로에는 양호한 기존 수림을 바탕으로 하부 식생을 보완해 건강한 숲으로의 성장을 도모했다. 또한 공간별, 계절별 다채로운 경관 연출을 위한 다양한 수종을 도입했다. 충혼탑 주변의 기존 수림을 적절히 솎아내고 지하고가 높은 소나무를 식재해 조망 경관을 확보했다. 공공 보행광장은 저밀도 가로 녹음 식재로 미술관, 충혼탑, 도서관을 연결성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지되도록 했다. 수평적인 공원 시설물과 대비되는 원추형 수종을 활용했으며, 공원의 입구부와 시선이 모이는 주요 결절점의 초점 식재로 입구성과 상징성을 제고했다.
-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기억의 터, 환유 언덕
- 대상지의 언덕은 다층의 기억이 중첩된 역사의 터이자 기억이 단절된 공간이다. 원래는 사직단 터였는데, 일제 식민지기에 일본군 위령 시설로 쓰이면서 훼손됐다. 한국전쟁 이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공간으로 활용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전통적 추모의 상징이었던 충혼탑은 위압적 구조물이 됐다. 도시의 확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과 토목 공사로 인근 숲은 훼손되고 접근이 어려운 서로 다른 높이의 공간과 유기적 프로그램의 부족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따라서 잊혀 가는 역사와 추모의 기억을 일상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접근법이 요구됐다. 참전 용사를 애도하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터의 기억을 환유(換喩)하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환유(歡遊)의 언덕을 만들고자 했다. 터의 온전한 기억 다층의 기억을 가진 터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잊힌 기억을 되살려 공간에 담고자 했다. 사직단의 공간적 형태를 차용해 땅을 상징하는 사각 형태의 프레임을 구현했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의 기억을 하늘이 비치는 수공간으로 담아냈다. 충혼탑이 가진 장소의 기억을 추모 공간의 상징성으로 보존하고자 했다. 기존 충혼탑 터의 지하 공간에는 성소 공간을 조성해 일상 속에서도 추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안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지하의 성소 공간에서 위패를 걸어둔 벽을 둘러보며 차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도시의 역사를 기억의 파빌리온 기둥에 새겨 시민과 함께 장소와 도시의 기억을 나누고자 했다. 전망대에 조성한 희망의 벽은 매년 청주 시민들이 선정한 지역의 사건을 기록하고 공원 방문자들의 소망을 모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망대를 통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축을 보존해 도시의 기억을 미래까지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더블메모리얼
- 충혼탑 일대는 청주 도심 생활권을 관통하는 문화벨트의 주요 지점에 있으며, 명심산과 운천공원을 연결하는 남서 녹지축과 무심천의 접점에 위치한다. 청주는 산과 강, 청남대 등 오픈스페이스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원 등 녹지 비율은 낮다. 도심 외곽은 산업화와 환경오염의 여파로 숲이 감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민의 여가를 위한 공간뿐 아니라 생태적으로 건강한 녹지가 필요하다. 설계 방향 충혼탑 일대는 도심 속에 숨어 있는 추모 공간으로만 존재하기보다는 도시민과 더불어 호흡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공원 기능을 함께 해야 한다. 추모 공간과 공원이 서로 분리된 형태는 일상의 공원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넓은 추모 공간 한편에 공원을 마련하거나 공원 한쪽에 추모 공간을 만드는 방식은 추모와 일상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상이다. 하나의 공간이 추모의 장소인 동시에 일상적 공원으로 기능할 수 있는 ‘더블메모리얼’을 제안한다. 콘셉트 이 공간에서 추모 대상과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대상은 위패로 모신 희생자 개개인과 한국 전쟁 등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이다. 방식은 특정한 날에 진행되는 공식적 추모와 시민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상적 추모다. 공식적 추모는 충혼탑과 파크 센터를 중심으로 추진되도록, 일상적 추모는 공원 전반에서 물, 벽, 수로, 길 등을 통해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충혼탑이 일상 공원의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모든 순간을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공원 경계부에 열린 공간을 배치했다. 풍치가 단정하고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열린 공간은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잔디밭,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얕은 물, 홀로 앉아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잔디 언덕, 천천히 산책하며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책로로 구성했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가림단원
- 청주 우암산과 부모산 사이 남북 방향으로 무심천이 흐른다. 부모산의 얕은 자락은 대부분 도시화되었고 무심천과 몇몇 녹지만 남아있다. 청주시청사 건립 국제 설계공모 등을 통해 원도심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충혼탑~종합운동장~청주 예술의전당을 연결하는 문화·여가활동거점 권역, 사직대로 보행 중심화 도로사업 등 도심의 흩어진 자원을 연결하는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부모산 자락 끝에 위치한 대상지에서는 우암산을 배경으로 청주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충혼탑 추모공원은 다양한 역사 자원을 잇는 중심 오픈스페이스로 도시민을 위한 녹지와 도시의 역사를 함께한 대상지가 가진 상징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숲과 단이 있는 공원 곡식과 토지의 신을 모시는 두 개의 단, 사직단 터로 추정되는 대상지는 생명의 존엄과 일상의 풍요로움을 기리는 소망과 염원이 충만한 곳이다. 과거 땅과 하늘을 매개하던 두 개의 단(altar)은 추모와 일상을 담은 두 겹의 단(square)으로 거듭나고, 아름다운 구릉 경관 속에서 펼쳐지는 숲과 길은 도시와 자연을 이어준다. 아랫광장은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과 레벨을 낮추고, 윗광장은 시원한 나무 그늘이 되어주고 경건하되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린 카펫을 깔았다. 나무가 호위하는 듯한 두 개의 단은 푸른 담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고, 끊겨 있던 도시의 장소들을 숲 길로 연결한다. 숲과 두 겹의 단으로 만든 공원, 가림단원(佳林壇園)은 과거와 미래, 하늘과 땅, 도시와 자연 그리고 추모와 일상을 이어준다. 단, 담, 숲 기존 대상지는 미술관, 충혼탑, 도서관 세 개 단으로 나뉜다. 각각의 단은 소통하지 못한 채 개별 공간으로 작동되고 있다. 세 공간을 연결하기 위해 담을 만들고 본래의 지형으로 회복한다. 담은 앉음벽, 공간을 구분하는 담장, 토사를 막는 구조물로서 활용된다. 숲과 정원은 개별적 공간을 하나로 묶어준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당신의 동네에도 충혼탑이 있습니다
- 충혼탑. 다소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같지만 나와 크게 상관없는 시설이 아닐까 싶은 이 탑은, 사실 당신의 동네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훈처가 제공하는 ‘현충시설정보서비스’에서 현재 검색되는 현충시설 2,260건 중 ‘충혼탑’은 186건, 유사한 명칭인 ‘충혼비’는 90건으로 총 276건에 달한다. 전국 기초지자체 수가 229개인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기초지자체마다 하나 이상의 충혼탑 또는 충혼비가 있는 셈이다. 비슷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현충탑(63건), 현충비(8건), 위령탑(30건), 위령비(35건)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충혼탑은 대체 무엇이기에 동네마다 있는 걸까. 충혼탑은 법적으로 ‘현충시설’에 속하며, ‘현충시설의 지정·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보훈처가 지정해 관리하는 시설을 말한다. 현충시설은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는 시설인 경우 법적 지정 요건을 갖추며, 이 ‘공훈’에는 일제 식민지기의 독립운동, 6.25 전쟁(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군인·경찰·소방 공무원 등의 국가 수호 활동이 들어간다. 특히 충혼탑의 경우 6.25 전쟁 당시 각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산화한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이든 6.25 전쟁의 참화가 휩쓸지 않은 곳이 없으니, 어찌 보면 어느 지역이든 충혼탑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충혼탑 추모공원 조성사업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이하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의 충혼탑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에서 산화한 청주, 청원 출신 등 3,203위의 호국전몰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건립됐다.1 문제는 충혼탑이 의미 있고 중요한 시설임은 분명한데 우리 일상에서 전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우리 동네의 충혼탑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게다가 보통 공원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산책길에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어 모양이 다소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져도, 그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시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의 충혼탑은 이런 점이 특별하다고 내세울 만한 경우도 드물다. 심지어 공원 안에 각종 조형물도 많다 보니, 이 조형물이 국가에서 지정·관리하는 현충시설인지 일반 조형물 인지 구분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차적인 답은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 지침서와 수상작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몇몇 표현을 발췌해 본다. 익숙하지 않고 무겁게 느껴지는 ‘충혼탑’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낮은 접근성 및 편의 시설 부족과 노후화, 산책과 휴식을 위한 그늘 및 공간의 부재, 일방적으로 현충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전달하는 위압적인 구조물, 정해진 날에만 관련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제한적인 추모 행사, 엄숙하고 신성한 공간으로만 제한된 기능, 젊은 세대에게 거리감을 주는 수직으로 높이 솟은 탑의 모습. 설계공모의 방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혼탑이 중심이 되는 기억의 공간을 친숙하고 일상적인 공원의 공간 안에 함께 녹여내고, 추모의 공간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체험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한편 역사적 맥락에서 좀 더 복잡하게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시대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충혼탑과 같은 현충시설은 상징물, 곧 기념비(모뉴먼트)로 분류할 수 있는데,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체제와 권력, 사상을 표현하는 거대한 상징물인 기념비는 점차 그 성격을 잃어갔고 기능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와 맞닥 뜨리게 되었다. 전통적인 기념비는 국가 또는 권력 집단이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세워졌기에, 기념비의 존재는 곧 이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과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통합된 의식과 문화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만 가능”2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이러한 기념비와 상징물의 성격을 얼마나 잘 이용했는지 보면, 기념비가 통합된 정신과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단일화되지 않는 현대에는, 단일한 의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수직으로 높은 조형물을 올리고 광장 중앙에 대칭 구조로 배치해 어디서나 잘 보일 수 있게 만든 전통적인 기념비의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졌다.3 이런 점에서, 설계공모 지침서에 충혼탑의 위치를 옮겨도 무방하며 기존 충혼탑을 대체하는 새로운 추모 조형물을 제안하거나 잠긴 봉안실 안에 안치된 국가유공자 위패도 개방해 활용할 수 있도록 창의적 제안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현충시설에서 특히 충혼탑처럼 어느 지역에나 있는, 대체로 2000년대 이전에 조성된 오래된 기념물은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구조물의 형태라는 문제뿐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먼저 우리 지역에도 현충의 정신을 보여준 국민이 있었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 지역마다 비슷한 형태의 충혼탑이 세워졌는데, 결과적으로 충혼탑처럼 어느 지역에나 있는 시설이 우리 지역만의 특별한 기념물 혹은 랜드마크가 되기 어려워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사건이 현 세대와 점점 시간적으로 멀어지는 현 시점에서, 기존의 추모 행위에 새롭게 참여할 이들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충혼탑의 경우 6.25 참전용사와 유족, 정치인 등 일부 관계자만 제한적으로 추모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이 굳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방식을 이어받는 추모의 주체로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다시 설계공모를 살펴보자. 변화한 시대에 적합한 충혼탑 추모공원의 방향이란, 추모와 일상을 결합하고 한데 녹여 사람들이 공원에서 휴식과 일상 활동을 하면서도 추모를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상징’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한국에 이러한 선례가 많지 않고, 우리는 추모 공간은 물론 추모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충혼탑과 추모공원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계공모의 수상작을 살펴보며 조경과 건축이 함께 어떤 고민을 했고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지 살펴보는 일은 꽤 유의미한 일이다. 추모와 일상의 접속 전략 당선작 ‘청주 360’은 지형과 경관에 주목했고, 역설적으로 충혼탑 자체에는 거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대상지는 임금이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 터이기도 했는데, ‘청주 360’은 흥미롭게도 사직단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제단의 입지에 주목했다(71쪽 상단 이미지). 기존의 높은 지대가 도시화로 인해 경사면과 옹벽으로 단절됐고 식물이 자라 숲을 이루면서 높은 지대가 가진 경관 조망의 장점도 사라져 공간의 이용 가능성이 낮아진 상태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청주 360’이라는 이름은 추모 공간에서 바라보는 청주 시가지의 경관을 360도로 열린 경관으로 재구성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열린 공간, 열린 경관이라는 키워드는 고립된 추모 공간에 일상성을, 즉 시민들을 유입시키는 방향으로도 연결된다. 공간의 성격을 열린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자주 방문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기억의 주체가 충혼탑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접근법이다. 반대로 2등작 ‘기억의 터, 환유 언덕’은 충혼탑이라는 오래된 상징물을 바꾸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충혼탑이라는 같은 대상을 향한 두 팀의 접근법이 반대된다는 점이 상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은 충혼탑의 기억을 시민들이 체험하는 방식으로 보전해 나갈 수 있도록 수직적이고 위압적인 오브제 상징물을 땅 아래로 끌어내리고 형태를 바꾸었다(76쪽 상단 이미지). 봉안실 안에 있던 위패를 꺼내 희생자를 드러내고 시민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했고, 참배 공간에 부족한 그늘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파빌리온을 기억의 공간으로 활용했으며, 시민들이 참여해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체험 방식도 구상했다. 이 추모 공간을 일상적 공원과 섞는 전략으로 레벨 차이를 통해 공간을 구분하고 조정하는 수평적 공간 사용을 제안했다. 3등작에 선정된 두 작업은 각각 ‘두 개의 메모리얼’, ‘두 개의 단’이라는 설계 개념을 사용했다. ‘상징’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각각 다른 공간 또는 요소에 놓은 뒤, 이를 조화롭게 섞는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블메모리얼’의 경우, 기본 개념을 ‘추모’에 놓고 이를 공식적이고 연례적으로 행해지는 ‘공식적 추모’와 일상생활에서 매일 시민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상적 추모’로 구분했다. 건축물과 탑이 공식적 추모의 공간이라면 공원과 물은 일상적 추모의 공간이며, 이 네 개 요소를 전체 대상지 안에 공간적으로 중첩하고 연결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기존 메모리얼에서 많이 쓰는 추모 매개체인 물을 사용했다. 메모리얼에서 보통 기념물의 형태가 비치는 거울연못(reflecting pool)이라는 기념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더블메모리얼’의 물은 잔잔한 파동이 일고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며 겨울철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일상적 공간을 만든다(83, 84쪽 이미지). 한편 새롭게 제시한 충혼탑은 더 거대한 수직 구조물이 되었는데, 충혼탑을 외부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건축물로 바꾸어 제시했다. ‘가림단원’은 충혼탑, 미술관, 도서관 부지가 서로 단절된 판이자 단壇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형과 단차를 조정해 끊어져 있던 부지를 연결하고, 장기적으로 숲의 형성을 통해 공간의 통합을 꾀했다(88쪽 하단 이미지). 우선 동일한 공원 부지에 묶인 공간들이 경사면과 옹벽 등 지형과 단차에 의해 분리된 문제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대상지의 역사적 배경인 사직단에서 착안한 단의 개념을 분리된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충혼탑을 중심으로 한 추모 공간을 재구성하는 판의 개념으로 사용했다. 충혼탑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이설했는데, 수직적이고 위압적인 구조물 자체를 땅 아래로 일부 숨겨 높이를 낮추는 전략을 취했다. 충혼탑 앞쪽의 레벨이 높은 윗광장은 참배 공간으로 기능하는 잔디밭으로, 충혼탑 뒤편의 침잠된 아랫광장은 일상 공간으로 구분해 구성했다(89쪽 마스터플랜). 하지만 아랫광장을 통해 접근하는 충혼탑 하부에 공간을 ㄷ자로 둘러싸는 추모 전시관이 위치하고 추모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울연못 조성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아랫광장 또한 추모와 일상이 혼합되어 일상적으로 추모를 체험하는 공간임을 읽을 수 있다.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의 의의 사실 설계안의 아이디어만큼 중요한 것이 공모 운영팀이 제시하는 공모 지침이다.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조경과 건축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점에서 의미 있는 공모라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현충시설 측면에서 보아도 공간 전문가인 조경과 건축 전문가가 함께 추모 공간을 일상적 체험 공간으로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현충시설이란 문화재와 달리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시설이 아니다. 문화재와 구별되는 현충시설의 특수성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공헌 또는 희생의 행위, 즉 공훈을 기념/추모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러한 공훈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 이러한 행위를 다소 어려운 표현으로 선양이라 부르는데, 결과적으로 국가의 보훈 정책에서 현충시설이 지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공훈 선양과 보훈 문화의 확산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거리감이 느껴지던 기념과 추모 행위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국가유공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국민들도 자주 현충시설과 접촉하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려면, 결국 일상의 공간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공원은 이런 해법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도시 공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특히 추모 공간의 예술적 가치와 질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공모 지침과 설계안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듯, 오늘날의 추모 행위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압적 방식으로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최근 물리적·내용적으로 추모 문화를 바꾸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경·건축·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를 통해 공간의 질적 가치 향상을 꾀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의 인식과 활용성 증진을 위해 조성 및 이용 과정에서 시민 참여 방식을 함께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4 특히 한국의 현충시설에서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글을 시작하며, 당신의 동네에도 충혼탑이 있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다른 지자체 또한 청주시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하게 될 수 있으며, 이번 공모와 유사한 설계공모나 프로젝트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충혼탑 또는 충혼비가 전국에 276개소나 있으니, 앞으로도 이번 공모처럼 오래된 현충시설에 새로운 일상적 해법을 요구하는 일이 적어도 200번 이상은 생기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번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는 국내 충혼탑 공원 사례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선례란 완벽한 정답의 사례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공모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시대의 변화 뒤편에 남겨진 오래된 현충시설, 충혼탑처럼 형식은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시설들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설계는 물론 조성 과정, 조성 이후의 관리와 운영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당신의 동네에는 여전히 어딘가 공원 한편에 우두커니 놓인 충혼탑 같은 오래된 현충시설이 있다. 퇴근길에 또는 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이런 현충시설을 만난다면, 공간 전문가로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각주 정리 1. 현충시설정보서비스, ‘충혼탑(흥덕구)’, mfis.mpva.go.kr 2. Josep L. Sert, Fernand Léger and Sigfried Giedion, “Nine Points on Monumentality”, Architecture Culture , 1968(originally published in 1943), p.29. 3. 이러한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났으며, 1980년대 경부터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가 반영된현대적 메모리얼의 사례들이 나타난다. James E. Young, The Stages of Memory: Reflectionson Memorial Art, Loss, and the Spaces Between ,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Press, 2016. 4. 공간적 측면에서 본 현충시설의 가치 향상 및 개선 방향과 관련하여 관심이 있다면 다음 보고서와글을 더 살펴볼 수 있다. 이상민·손은신·송윤정, 『현충시설의 가치향상을 위한 정책 및 제도 개선방향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2022; 손은신,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본 현충시설의 가치 향상 전략과 시사점”, 「아우리 브리프」 253호, 2022년 8월 22일.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기억 경관’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 근무하고 있으며, 조경과 건축, 도시의 경계에서 새로운 연구자들을 만나고 외연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캠펜스트라트 공원
- 부둣가를 따라 펼쳐진 녹색 가장자리 벨기에 캠펜스트라트(Kempens traat)와 노르데를란(Noorderlaan) 사이에 앤트워프 병원 네트워크(Hospital Network Antwerp)(ZNA)의 병원 ZNA 카딕스Cadix와 새로운 주거 타워 두 동이 건설되고 있다. 자전거도로와 북부 라인(north line) 철도가 연결되면, 이 지역은 도시와 항구의 경계에 있는 교통 요충지로 거듭날 것이다. 앤트워프 시는 새로운 병원과 부두 사이에 풍부한 녹지, 자전거 네트워크, 트램 정류장, 병원 방문자와 응급 서비스를 위한 출입구를 갖춘 공공 공간을 조성했다. 친환경 설계 부두와 ZNA 사이에 조성된 새로운 공공 공간은 스포르 노르트(Spoor Noord) 공원과 에일란디어(Eilandje) 지역을 연결한다. 인접한 공공 공간의 미학적 특성에 부합하는 식물과 소재를 사용해 녹지를 설계했다. 하르덴보르트(Hardenvoort) 다리 아래의 자전거 및 보행자 도로 주변 녹지에는 와디wadi(평소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강)를 조성하고, 스포르 노르트 공원에 심은 것과 비슷한 야생화와 수목을 선정해 식재했다. 병원 앞 중앙 공간은 5,000m2 규모의 다년생 식물이 심긴 정원이다. 정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넓은 길을 조성하고, 정원 사이를 통과하는 좁은 오솔길을 만들어 동선을 보완했다. 병원 방문자들은 이 고요한 정원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다. 정원 식재 디자인은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는 어린이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식물이 자라나면, 병원에서 차츰차츰 완성되는 초상화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숨겨진 초상화는 MAS 미술관에 설치됐던 석재 모자이크 ‘데드 스컬Dead Skull’(2010)을 향한 헌사이기도 하다. 정원에 약 38,000주의 다년생 식물과 37,000개의 구근을 심었다. 정원 일부는 지하 주차장과 응급실 바로 위에 위치해, 지하 건축물로 떨어지는 빗물을 흡수하고 저류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모인 빗물은 최대 100㎥의 우수를 담을 수 있는 6개의 지하 콘크리트 수조에 저류되어 건기에 관개용수로 사용된다. 다년생 식물과 야생화는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스포르 노르트 공원과 에일란디어를 잇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된다. 부두를 따라 자라는 플라타너스 주변으로 더 넓은 녹지를 마련하고 투과성 석재 블록으로 포장해 토양을 개선함으로써 수목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부두 가장자리에는 켐피스(Kempisch) 부두를 조망할 수 있는 좌석을 설치했다. 높은 접근성 ZNA 입구에는 새로운 트램 및 버스 정류장이 있다. 트램 1호선과 600번대, 700번대 버스가 이곳에서 정차한다. ZNA는 대중교통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특히 트램 1호선은 뤼흐트발(Luchtbal)에서 출발해 자위트(Zuid) 종점까지 운행해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노선이며, 여러 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오페라 메트로 역도 지난다. 하르덴보르트 다리 아래에는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양방향 자전거도로와 자전거 터널을 조성했다. 자전거 터널은 스포르 노르트 공원, AP 응용과학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캠퍼스, 병원을 위한 실용적이고 새로운 연결로이며, 복잡한 교차로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ZNA와 부두 사이에 공공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병원으로 향하는 차량 통행은 가능한 지하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노르데를란에서 오는 방문자는 첫 번째 출입구를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된다. 응급실도 지하 2층에 위치하며, 두 번째 출입구를 통해 바로 접근할 수 있다. 글 OMGEVING Landscape Architect OMGEVING Main Contractor Aertssen Infra Stability VK Architects & Engineers Client AG VESPA + City of Antwerp Location Antwerpen, Belgium Area 3ha Completion 2022 Photograph Lucid 옴헤빙(OMGEVING)은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으며, 건축가, 조경가, 도시계획 및 환경 계획 전문가로 구성된 디자인 그룹이다. 주변을 뜻하는 플라망어 ‘omgeving’를 사명으로 삼아, 우리를 둘러싼 주변 공간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힘쓰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중첩을 모색하면서 문화·사회·환경적 차원에서 공간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 알버트 파크
- 벨기에 할레(Halle) 중심부에 위치한 알버트 파크(Albert Park)는 유기적인 산책로 동선, 풍부한 수목 경관, 기념비, 그리고 다채로운 경관축이 특징이다. 우리는 랜드 스케이프 파크 할레(Landscape Park Halle) 연구를 통해서 도시 경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낙후된 알버트 파크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할레 시는 동선 재설계, 완성도 높은 공원 시설물 설치 등을 위한 알버트 파크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설계 과정에서 후원과 실현성 높은 계획안을 위해 시 정부 및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 조율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글 OMGEVING Landscape Architect OMGEVING Client City Council of Halle Location Halle, Belgium Area 1.2ha Completion 2022 Photograph Tim Delmoitie
- [어떤 디자인 오피스] HEA
- 우리의 오피스 문화 HEA에이치이에이는 디자인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지향한다. HEA에서 좌충우돌 성장하고 있는 네 명의 팀장이 네 개의 주제로 회사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소개한다. 최고 수준의 복지와 자유로운 분위기 HEA는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고 최고 수준의 복지를 보장한다. 회사 측이 연차 사용을 적극 장려해 개인 일정에 맞게 자유롭게 휴가를 붙여 쓰는 건 물론이고, 급한 일이 없는 경우 눈치 보지 않고 반차를 내고 퇴근할 수 있다. 또한 1시간 단위로 유연 근무제를 적용해 각자의 생활 패턴과 일정에 맞춰 자신만의 근무 시간을 정할 수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의견을 건의하는 것도 매우 자유롭다. 개진된 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할 준비가 된 수평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러한 여러 복지 혜택뿐만 아니라 격주 금요일마다 1시간씩 일찍 퇴근하는 패밀리데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하는 문화데이, 그리고 직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비 지원 등이 있다. 사무실에 오면 들리는 최신 음악과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HEA의 창의적이고 편안한 업무 공간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라운지에서 부드러운 분위기의 재즈와 팝송을 들으며 격의 없는 일상 대화부터 시작해, 업무 시간에도 좀 더 수평적인 분위기의 회의를 이어갈 수 있다. 원하는 노래가 있다면 누구든 스피커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한지수 팀장) 답사의 즐거움, 문화데이 좋은 설계를 하려면 두 눈으로 직접 좋은 공간들을 보고 체험해보면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설계사무소 직원들은 평일에 햇빛이 있을 때 좋은 공간, 요새 뜨는 ‘핫플’을 방문하는 게 쉽지 않다. 주말에도 갈 수 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유롭게 한 공간을 보고 오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가는 날인 문화데이를 만들어 실천 중이다. 아파트, 상업 시설, 리조트, 카페, 아울렛, 미술관, 특색 있는 동네 등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에 방문했다. 각 동네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식, 디저트를 먹으며 근황이나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예쁜 공간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 특히 혼자 방문하거나 조경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가면 충분히 공간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조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여유롭게 공간을 익히고 디테일한 부분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문화데이 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공간을 주변 지인에게 성향과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데, 그 공간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때 즐겁다. 이번 달에도 어떤 지역으로 갈지, 어떤 사례를 보아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기대감에 부풀어 장소를 검색하고 있다. (염혜리 팀장) 머물고 싶은 오피스 최근 논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서초동 사무실에 이어 HEA의 네 번째 공간이다. 논현역 도보 3분 거리, 초역세권에 아담한 소공원이 인접해 숲세권, 팍세권(파크+세권)까지 갖추었다. 무려 6개월간 발품을 팔아 물색한 공간으로 커다란 통창으로 들어오는 주변 풍경마저 완벽하다. 사무실 인테리어는 강지호 건축가(아틀리에 오)가 맡았다. 강지호 건축가의 열정과 노력으로 기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사무실이 완성됐다. 사무실은 크게 업무 공간과 회의 공간, 휴게 공간으로 구분된다. 채광이 가장 좋은 위치에 업무 공간이 있다. 직원들의 편의를 우선으로 고려한 두 대표의 배려다. 대표실은 일명 골방이라 불리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다. 직원들에게 내어준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이곳 역시 채광이 좋다. 업무 공간에는 6인 체제인 3개의 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흰색을 기본으로 잡고 모노톤을 가미해 화사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개의 문을 통해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때때로 리프레시 시간을 갖기에도 좋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실은 글라스월과 시크한 블랙 가구를 배치해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회의실 맞은편으로는 일명 ‘H바’라고 불리는 우드톤의 라운지가 자리한다. 긴 바 테이블과 널찍한 소파, 여기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더해져 멋진 카페를 연상케 한다. 이번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장소로 다양한 어메니티가 갖춰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사무실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영감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어야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온전한 휴식을 만끽하는 근사한 오피스를 만들어준 아뜰리에 오와 경영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라희 팀장) 한 달의 꿈같은 휴식 HEA에는 3년간 근무를 하면 한 달간의 유급 휴가와 이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한 달간의 무급 휴가가 주어진다. 장기간 휴식을 갖기 쉽지 않은 직장인으로서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에 가서 버킷리스트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연차와는 별개로 주어진 한 달의 휴가를 받고 떠나는 날, 웃으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오세아니아 대자연의 품으로 떠났다. 돌이켜보면, 첫 일주일 정도는 평소 휴가를 떠난 기분으로 주어진 휴식 시간에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이, 더 잘 쉬고 싶다는 생각에 쉬는 것도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전투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2주차에 접어들면서 일을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생기는 몸의 리듬감이 점차 사라졌다. 그때부터 조금 더 편안한 기분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었고, 마지막 4주차가 되니 연예인이 활동을 하지 않는 비수기에 느낄 법한 적당한 게으른 일상 속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장기 휴가만이 줄 수 있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넘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기간 동안의 사진들을 차근차근 넘겨봤다. 휴가를 가기 전후로 많은 지인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다른 업계에서도 이렇게 한 달씩 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회사에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특히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하던 업무를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맡아준 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백충석 팀장)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 HEA는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HEA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으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고리타분한 회식을 거부하고 용산 미군기지 내 드래곤호텔 회식, 한강 요트파티 등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회식 문화와 인공지능 프로그램 챗GPT, 달리2DALL·E 2와 같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즐기는 행위는 HEA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백종현 대표) 우리의 프로젝트 HEA에서 하루하루 누적되어 쌓이는 새로운 시도와 경험은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디자인과 설계 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HEA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조치원문화정원 첫 준공작(2019)으로 EMA건축사사무소와 함께 협업해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기능을 잃은 기존 정수장을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로, 기존 숲과 방치된 정수장의 건물들을 존중하는 세심한 복원과 재생의 설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HEA 초기 멤버 이수 소장(현 한화건설 과장)이 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 2019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유평공원 우리의 최장기 프로젝트다. KT&G의 오래된 연초제조창 공장 부지를 복합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대형 쇼핑몰(스타필드 수원), 공동주택(화서역 파크푸르지오, 화서역 푸르지오브리시엘)이 새롭게 들어서게 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원의 설계를 6년째 진행하고 있다. 주변의 학교, 교회, 주거단지, 먹자골목으로부터의 수많은 민원과 발주처, 수원시로부터의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해결하며 2021년 11월, 1단계가 준공되어 시민에게 개방됐다. 2022년 제12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성문안 컨트리클럽 성문안 컨트리클럽(이하 성문안 CC)은 국내 최대 규모의 오크밸리 리조트 내 새롭게 조성된 전장 6,662m의 18홀 프리미엄 퍼블릭 골프 코스로, 웅장한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홀마다 매력적인 경관을 구현한 프로젝트다. 우리는 코스 전반의 조경 특화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를 수행했다. 2021년 5월부터 2022년 7월 개장 전까지 1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해 돌 하나, 나무 하나의 모양과 위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HEA 구성원 대부분이 한 번씩은 현장을 경험했고 대자연과 새로 만들어지는 자연의 과정을 만끽하며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가든랩스의 이안숙 소장(@garden_traveler)과 협업해 현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으며 배웠다. 제주 스타빌 천혜의 자연 제주도 한라산 600고지 근방에 위치한 프리미엄 글램핑 리조트 스타빌의 조경 리뉴얼 설계를 오픈니스 스튜디오와 협업해 진행했다. 미리내길을 콘셉트로 하는 스타빌 자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역의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보고 자료를 매주 만들어내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HEA 심재연 소장의 감각적 설계가 큰 역할을 한 스타빌 프로젝트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리조트가 잠시 휴장하는 사이 공사가 진행되어 2022년 4월 리뉴얼 오픈했다. 글빛누리공원 HEA의 첫 공원 프로젝트로 2020년 준공됐다. 당시 인턴이었던 김지학(현 오픈니스 스튜디오 팀장), 염혜리(현 HEA 팀장)와의 밤샘 작업 끝에 만든 보고용 모델은 결국 쓰이지 못했지만, 방치된 논밭의 경관을 재해석한 중앙의 초지 경관과 도서관의 공원으로의 확장 등 초기 콘셉트가 대부분 그대로 시공까지 이어지게 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HEA가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다.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HEA(에이치이에이)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조화를 꿈꾸고, 자연의 가치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영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효창공원 단상
- 유네스코(UNESCO)는 2011년 제36차 총회에서 ‘역사도시경관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안(UNESCO Recommendation on the Historic Urban Landscape)’을 채택하고 사회와 문화의 가치가 도시 경관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을 공론화했다. 경관을 다루는 조경 분야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할 유산(heritage)의 범주에 ‘도시 경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산에 내재한 무형의 가치, 즉 시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환경의 맥락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도시 유산은 생성과 변화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이를 속성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한 이 권고안은 도시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중첩된 경관’에 주목하게 한다. 서울 효창공원(이하 효창공원)은 이러한 동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별한 사례다. 우리의 오래된 공원 대부분이 그렇듯 효창공원도 처음부터 공원은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효창공원의 시작은 원묘(園墓)다. 효창孝昌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원자인 문효세자 묘소의 명칭이며, 효창묘는 1870년(고종 7년) 12월에 원(園)으로 승격됐다. 무덤은 1944년 10월 9일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 경내로 이장되기 전까지 당시 경기도 고양군 율목동(현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 일대)에 있었다. 식민지기에 들어서면서 묘역 일대는 근대의 성격이 간섭되기 시작했고 다른 곳과 달리 여러 시설의 층위가 중첩되어 진화했다. 첫 번째는 식민지기에 지정된 공원으로서의 층위다. 효창원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원유회(園遊會)를 시작으로, 1921년부터 1924년까지 골프장으로 사용됐다. 한국 묘역의 특징인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과 상대적으로 양호한 산림, 열린 경관 등의 환경은 코스 설계에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곳은 도성으로의 진입과 외부로의 진출입이 편하고 당시 개발로 인해 급부상하는 용산, 영등포 지역과도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골프장이 아닌 무엇이 들어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였다. 참고문헌 노형석, “왕실묘 → 골프장 → 유원지 → 독립투사 묘지 ‘영욕의 232년’”, 「한겨레」 2018년 5월 31일. 박희성,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의 비판적 고찰”, 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특별세션, 2019. 이연경, 『효창공원의 연혁과 공간적 변화』, 서울특별시, 2018. 『조선총독부관보』 제3945호, 1940년 3월 12일.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www.hyochangpark.com 서울역사아카이브 museum.seoul.go.kr 서울기록원 archives.seoul.go.kr 그림 출처 그림 1. 『朝鮮』, 朝鮮總督府, 1925 그림 2. 「한겨례」 2018년 5월 31일. 그림 3. 구글 지도 www.google.co.kr/maps/?hl=ko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동대문의 장소성을 담다
- 서울 성곽은 중요한 국가 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이다. 흥인지문은 성곽 여덟 개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 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졌고, 지금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도성의 여덟 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해방 이후, 동대문 일대는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도성의 동쪽 끝에 놓여 있다 해서 동촌이라 불렀던 이 일대는 북촌, 서촌, 남촌에 비해 번화하거나 부유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한양의 간선 도로와 주된 물줄기를 따라 사람이 모이고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도성의 한 축이자 요충지였다.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이곳은 새로운 교통 체계가 생기고 8.15 해방과 6.25 전쟁 이후 기존의 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1980년대, 동대문 일대는 광장시장을 비롯해 동평화·제일평화·흥인·덕운·남평화·광희·청평화 시장 등이 들어서며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 도매시장으로 발돋움했다. 뿐만 아니라 의류, 직물 등의 해외 수출 기지로 자리 잡으며 거대 의류 시장으로 성장한다. 1990년대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규모 상가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기도 했다. 20세기 초 한양 도성의 동쪽 끝에 자리 잡았던 하도감 터에 동대문운동장이 들어섰지만, 2006년 운동장은 철거됐다. 그 자리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동대문의 장소성과 역사적 가치를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 전시 ‘장소의 순환’이 DDP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서울라이트 DDP’의 차세대 미디어 아티스트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다섯 명의 미디어 아티스트는 한양 도성부터 훈련도감, 동대문운동장, 패션 상권, DDP까지 동대문이라는 장소에 오랜 시간 층층이 쌓여온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 자연은 경계를 모른다
- 너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느슨한 V자 모양의 틈. 단단한 쇠붙이를 툭 찍어 생긴 상흔처럼 벌어진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이는 검은 화강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에서 시작해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까지 서서히 높아지다가 다시 지면으로 하강하는 검은 벽에는 베트남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흰색으로 새긴 이름을 보며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곳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다. 1982년 설계공모를 통해 만든 이 기념비의 계획안은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높은 기념물이 들어선 주변의 내셔널 몰과 달리 단순한 형태에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념비는 영웅적 디자인을 기대한 대중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당선자가 유명한 건축가가 아닌, 당시 나이 23세, 중국계 미국 여성이자 예일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마야 린(Maya Lin)이었다.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영향력 강한 정치가가 목소리를 더했지만, 기념비를 처음 계획한 얀 스트럭스(Jan C. Scruggs)가 강력히 밀고 나간 덕분에 설계안을 지켜낼 수 있었다. 논란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마야 린이 남긴 말은 줄곧 애국의 선전물로 여겨졌던 기념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상실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인식하게 될지라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차피 각 개인의 몫이다. 죽음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기념물의 내부 공간은 개인의 명상과 심판을 위해 마련된 조용한 장소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96년생 이조경
- 이번 호 특집을 준비하고 매만지면서 본 선배들의 이야기에 조경학과를 졸업한 나도 공감한 부분이 많다. 특히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무엇을, 왜 해보고 싶나요’에 대한 답을 읽으며 대학 시절의 내가 저런 조언을 들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조경 전문지 에디터인 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본 끝에, 전공에서 조금 빗겨났지만 그래도 조경 동네에 머물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몇 문항에 답을 해보았다. 1 『환경과조경』 4월호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에디터는 남들보다 한 달 일찍 산다. 월 초에는 자료 수집과 필자 발굴로 바쁘다. 4월호 편집과 동시에 5월호 기획을 점검한다. 그리고 잡지 콘텐츠를 웹에 업로드하기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 디자인한다. 환경과조경 공식 인스타그램(@lak_korea)에 업로드하는 잡지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데, 좋아요와 팔로워의 숫자에 예민해졌다. 특히 지금 가장 공 들이고 있는 콘텐츠는 유튜브1다. 영상 길이는 짧지만 기획과 제작에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는 게 ‘넘기다, 살짝’이다. 그달의 잡지를 예고편처럼 소개하는 영상인데,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인트로를 찍고, 제작에 필요한 이미지를 추리고, 콘티를 정리해 영상 편집자에게 편집계획서를 넘긴다. 3월부터 최신호와 과월호 특집과 연재의 한두 문장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30초 남짓의 ‘하루 한 문장’ 쇼츠 영상도 정성 들여 만들고 있으니 많은 구독 부탁드린다. 메일함에 도착한 원고를 읽으며 부족한 자료는 없는지 필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점검하고, 교정 및 교열을 하고, 디자이너에게 넘겨 함께 디자인 레이아웃을 고민한다. 교정지가 나오면 몇 차례 교정을 보며 오타와 비문을 찾고, 글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지 배치를 다시 고민해보고, 전반적으로 통일성 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에디터들과 의논하며 잡지를 완성해 나간다. 틈틈이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업로드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마감을 마치면 한 달이 끝난다. 다시 새로운 기획과 특집을 위한 자료 수집을 시작해야겠다. 2 “한때 두루뭉술하게 국어 교사나 광고 기획자를 꿈꾸던 문과생은 수능 참사라는 핑계로 공대까지 기웃거리게 된다.”(31쪽) 한 필자가 이렇게 답했다. 사실 나도 비슷했다. 수능 참사로 여러 학과를 기웃거리다 학과 홈페이지에 있던 식물이 가득한 곳에서 수업하는 사진에 끌려 조경학과에 입학했다. 그림엔 소질이 없는데, 도면 그리기와 스케치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조경학과를 다니며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캐드, 일러스트, 포토샵 등 디자인 프로그램을 잘 만지는 것이다. 디자인 툴이 조경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능력 덕에 나름 만족스러운 패널들을 만들면서 조경에 재미를 느끼고 정을 붙여나갈 수 있었다. 3 어렸을 때부터 꿈꾼 교사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 없어 교직이수를 했다.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뽑지 않아서 더 좁았던) 합격의 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대학 시절 즐거웠던 적이 언제인지 돌이켜보니 환경과조경 통신원 활동이 떠올랐다.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질문 준비부터 인터뷰이 섭외 등 풍성한 글을 구성하기 위한 기획에 꽤 열정적이었다. 특히 인터뷰이의 우물쭈물한 답변에 추가 질문과 호응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냈을 때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을 맛봤다. 과제 속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게 새로운 기분을 선물해준 이 기억에 푹 빠져 있었는데, 운명처럼 환경과조경 에디터 공고가 올라왔다. 타이밍과 운이 잘 맞물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5 필자들의 답변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이 72시간 프로젝트, 시민정원작가 디딤돌 프로젝트 등 대학생 때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를 추천하는 이야기다. 물론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 과제와 시험으로 바쁜 일상은 더욱 분주해지겠지만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능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대외활동 덕에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이끄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공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길 권한다. 이왕이면 대학생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많이 누려보기를 각주 1. 환경과조경 공식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c/환경과조경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 우리 동네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집에서 두 골목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의 사장이다. 원두 로스팅을 하며 소일거리로 커피를 파는 곳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테이크아웃 매장인 데다 주문할 수 있는 공간도 사람 서너 명이면 가득 찰 정도로 좁다. 카페는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야 문을 연다.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골목에 카페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면 얼른 달려간다. 각종 로스팅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실력으로 내린 커피 맛이 좋기도 하지만, 샷을 추출하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사장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가게 앞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수 만든 의자와 도장, 붓 그림과 캘리그라피로 완성한 메뉴판, 흑백 타일로 바닥에 새긴 카페 이름까지. 이토록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그가 언제 로스팅을 자신의 길로 삼았는지 궁금했는데, 한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가 로스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 이번 특집에도 과수원을 한 부모님 덕분에 일찍 나무와 자연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는 인터뷰이가 있었다(39쪽). 어린 시절부터 직업으로 삼을 분야를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지켜보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선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가는 길에 언제 확신이 생겼을까. 비슷한 이유로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의도치 않게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카메라, 건반, 잡다한 서적들까지 관심이 생긴 것들을 좁은 방에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외출 가방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다. 나가서 뭘 할지 모르니까. 변명하며 가득 채운 가방 속 물건을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나에 대해 아는 게 뭘까. 직업을 고민할 때면 맞닥뜨리는 아이러니가 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는 이가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양자택일 전에 직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멈칫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심비, 소확행 같은 단어가 쓰이는 세상은 사람들이 실패를 겪고 다시 일어날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8년차 에디터인 나도 “내가 나를 잘 모를 때 / 선택하기조차 어려울 때 / 어떻게 보면 호불호 강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1 죽겠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로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를 추천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돈은 없어도 그나마 시간 여유가 가장 많은 때가 대학 시절이니까. 대학 졸업반 시절, 동기는 크게 두 분류로 갈렸다. 일찌감치 공사, 공무원, 임용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건설사 취업을 위해 인적성 문제집을 사는 친구들. 업무 강도와 걸맞지 않은 연봉 문제로 조경설계사무소를 기피하던 때였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한 여집합의 원소였지만, 대세를 따라 괜히 두 그룹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산책하듯 시험장에 가고 면접을 봤으니 붙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어떤 목표 없이 방황하는 게 참 부끄러웠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늘 오와 열을 맞춰 나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며 나를 잃어버리는 중이었을 거다.2 연구소 행정 인턴, 언론고시생, 조경설계사무소 공무팀을 거쳐 환경과조경에 정착한 난 어쨌든 잘 살고 있다. 탈조경을 할 거라던 선배는 조경 동네 한복판에 머물고 있고, 식물이 좋다던 친구는 얼마 전 조경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 빠르게 적성을 찾은 동기들도 있지만, 적어도 10년은 헤매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가닥을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또 무위의 상태를 유지해보라는 82년생 김조경의 조언들은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조건만 더 갖춰지면 더 완벽해질 거다.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빙자한 무안 주는 말을 하지 않기. “휴학을 2년이나 하셨는데 (졸업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자격증도 별거 없네요. 그냥 놀기만 했나요?” **각주 정리 1. 우원재 ‘호불호’ 가사 2. 위의 노래 가사 변형. 기존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넌 오와 열을 맞춰 너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다가 또 잃어가 너를”
- [PRODUCT] 공원에서 즐기는 물놀이터, 원더풀
-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시원한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며 피서를 즐긴다. 하지만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 공원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디자인파크의 ‘원더풀’은 기존 조합 놀이대에 물놀이 기능을 결합해 만든 공원형 물놀이 시설로 도심 한복판에서 무료 바캉스를 즐기게 만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다른 계절에는 놀이 시설로 사용된다. 원더풀은 쾌적한 물놀이 환경을 제공하며 감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특허를 받은 살균 여과기를 통해 미생물 처리와 물리적 이물질 제거 공정의 효과를 높였다.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고밀도 펄프를 소재로 활용하고, 패널에 직접 프린팅을 해서 다양한 색상의 감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GRC 조각 등과 철재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조형성 및 기능성을 더했다. 최근 신축 아파트에서 물놀이 시설을 많이 볼 수 있고, 노후화된 어린이공원을 물놀이 시설 중심으로 리모델링하는 지자체도 늘어나고 있다. 디자인파크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국 지자체 500여 곳에 물놀이장을 설치 및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새로운 물놀이 문화를 제공하며 지역에 맞는 테마와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랜드마크로 제안하고 있다. TEL. 1577-0343 WEB. designpar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