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그게 뭐 하는 건데
조경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자주 듣던 말은 “나무 심는 일 아니야?” 혹은 “이 나무 이름이 뭐야?” 였다. 여러 공종이 늘 협업하는 건설사에서 조경직으로 근무하니 이제 조경이 나무 심는 일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안다. 하지만 여전히 건축 외 남은 공간을 담당하는 업무로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늘 하는 고민은 1) 다른 공종과 협업하면서도 조경이 돋보이는 디자인과 구현 방법, 2) 조경이 건축 외관을 더욱 풍부해 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되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건물과 상생하게 하는 방법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이하 아모레퍼시픽)에서 찾았다.
대청마루에서 보는 풍경
아모레퍼시픽 지상층 조경은 밖에선 건축을 보고 안에선 조경을 보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만든다. 독특한 루버 디자인의 백색 건물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조경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이끌려 걸어가면 바깥과 건물을 연결하며 자연스러운 전이 공간 역할을 하는 지상층 숲을 만나게 된다. 숲을 지나 필로티 하부에 서면 방금까지 봤던 도시 풍경이 잊히고 전혀 다른 공간에 온 듯하다.
이 풍경은 선조들이 휴식을 즐겼던 대청마루와 닮았다. 기둥들은 대들보가 되고 넓은 필로티 하부는 대청마루가 된다. 건물 하부에서 차가 달리는 도로가 바로 보였다면 이런 경험을 전혀 할 수 없고 그저 현대적 회랑으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건물 내부에서도 할 수 있다. 건물의 모든 창에서 외부 조경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통 조경의 개념인 차경을 떠올리게 한다. 창의 위치와 크기, 건물 내부에서 보이는 풍경과의 거리를 고려한 식재 디자인이 건물 안으로 조경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조경은 이용자와 건축물의 관계를 맺어주며 이 공간을 지속해서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외부에서 본 숲이 건물과 외부를 분리시키며 자연 속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면, 내부의 창을 통해 보이는 조경은 나만을 위한 정원이 되며 이용자를 머무르게 하고 건축과 더 소통하게 하는 연결사 역할을 한다.
* 환경과조경 436호(2024년 8월호) 수록본 일부
백규리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졸업 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설계를 배웠다. 현재는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는 디자인지니어(design+engineer)다. 조경인에게 감동과 경험을 주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추구한다. 조경이 발길 닿는 모든 공간을 만진다는 점을 돋보이게 하는 데 관심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