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창업을 결심하게 된 시점은 경력은 오래 되지 않았지만 회사 생활에서 어색함보다 익숙함(혹은 능숙함)이 몸에 배기 시작한 때인 것 같다. 어이없게도 창업 동지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직장 상사 뒷담화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바람―이 1, 2년 사이에 창업 이야기로 구체화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오고간 것 같은데, 조경 설계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주로 기억에 남는다. 한 프로젝트의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직접 체득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무엇보다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의 사업을 꿈꿨다. 근무와 작업 환경도 다른 방식을 추구하고 싶었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보다 더 좋은 수입을 기대한 측면도 있었다. 근데 이건 아직까지는 실패 상태다.
‘사업 준비는 치밀하게’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어서 책을 찾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많은 선배들을 만나서 묻고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사실 설계사무소 개업 자체는 사업자등록증 하나면 되더라(고향 친구가 보습학원 하나 차리는데 옆에서 보니 그게 더 복잡했다). 그래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에 수주될 프로젝트는 제로 상태인데도 법인설립, 사무실 위치, 기자재, 세무사 계약, 협회 등록, 조달청 입찰 참가 등록 등 이것저것 알아보며 일반적인 회사의 모습을 먼저 갖추고자 했다.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사실 속으로는 주저하고 있었다. 일거리 수주에 대한 걱정, 어쩌면 현 직장에서 더 나은 커리어를 쌓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갈등, 불안정한 수입에 대한 두려움 역시 존재했다. 전반적인 준비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조경 바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던 아버지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당신은 이십대 때 장사를 시작했다며 “시작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시작하고 망할 사업이라면 빨리 망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시 시작해라(취업이든 뭐든). 갑을관계로 보자면 원래 또래의 갑들은 은퇴하고 지금 내 나이에 젊은 갑들 맞춰주려니 정말 힘들다”고 조언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당시 막 결혼했을 때여서 ‘망할 거면 애가 태어나기 전에 빨리 망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비슷한 연령대의 갑과 을실무자들끼리 세대 공감할 수 있는 교류도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다(근데 이 부분은 착각이었다. 당시엔 우리가 너무 어렸다). 회사 규모가 작으니 당연히 동업을 시작한 창업주들이 실무자이자 사장이자 경리이자 청소부인 1인 다역을 맡아 출발했다.
최윤석은 1977년생으로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했고 선진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조경레저부에서 근무하다 2008년 경정환 대표와 그람디자인을 설립했다. 2012년부터 ‘정원사친구들(gardening friends)’을 결성하여 다양한 정원 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09년 대구 신천 공룡문화놀마당 디자인 공모 1등, 2011년 한글 글자마당 아이디어 현상공모 당선, 2012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실내정원 설계공모 대상, 2012년 한강 여주저류지 및 강천섬 활용 아이디어 공모 대상, 2013년 시흥시 100년 타임캡슐 설치 공간 디자인 아이디어 현상 공모 대상,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참여정원 대상, 2014년 코리아가든쇼 우수상, 2014년 노들섬 활용 아이디어 공모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