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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니다, 숲
‘숲, 가게’ 전, 도만사에서 5월 30일까지
1kg에 960만원. 100g에 1,024만원. 500cc에 324만원. 성수동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어느 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이다. 가격대만 보면 보석이라도 박힌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이곳은 사람이 만든 물건은 취급하지 않는다. 진열대에 놓인 제품은 명품 가방, 시계, 귀금속 따위가 아닌 어디에나 있는 것들. 잘게 바스러진 돌, 콩알만한 잡초가 난 축축한 흙, 메마른 나무 껍질과 같은 숲의 잔해다.
숲을 셈하다
숲의 값어치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짧은 질문에서 출발한 ‘숲, 가게’는 독특한 역발상이 돋보이는 전시다. 이 가게는 철저히 시장의 셈법을 따라 자연물에 가격을 매겼다. 원리는 간단하다. 상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새로 덧붙여진 가치, 즉 부가 가치를 판매 가격에 포함하는 것. 숲을 이루는 부산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부터 생태계에서의 역할, 심지어 사람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감성을 전달하는 점까지 부가 가치로 매겨 가격을 산정했다. 모든 상품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기에 기본 가격이 1원으로 같지만, 여러 항목이 곱해져 최종 가격이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상식 밖의 가격에 의문을 갖는 손님들을 위해 전시장에는 친절하게 제품 안내서를 구비해 놓았다. 팸플릿에 적힌 상품별 부가 가치 내역을 읽다 보면 막연하게만 알던 숲의 가치가 차차 이해된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7호(2021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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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월간테라
회사 앞에서 대표님을 만났을 때 자동으로 굽는 나의 허리와, 집에 온 아빠를 향해 누워서 손을 흔드는 나를 한데 떠올리다 생각했다.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자아가 있기 마련이라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만들어진다면 그중 하나는 ‘쓰는 자아’가 아닐까. 글을 쓰다 스스로가 낯설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내게 쓰는 자아는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격이다. 한 쪽짜리 글을 쓰는 데도 온종일을 징징댈 정도로 엄살이 심하고, 시도때도 없이 진지해져서 부담스럽다. 하지만 직업이 이렇다 보니 종종 꺼내 살살 달랠 수밖에. 물론 도움을 받기도 한다. 때때로 애매한 생각을 또렷하게 갈무리해주고, 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나의 어떤 면면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주르륵 늘어놓은 글자들을 눈으로 짚다보면, 글 너머 누군가의 내밀한 생각과 복잡한 사정을 알게 되니까. 수면 위로 잠시 떠올랐다 사라질 뻔한 생각을 박제한 게 글이라고 한다면 읽는 행위가 꽤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거창한 이유로 남의 글 읽기를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내 것이 아닌’ 이야기, 나로선 쓸 수 없는 글 앞에서는 기꺼이 독자가 되곤 한다.
조경을 콘텐츠로써 다루기 때문일까. 조경 잡지를 만들고 있지만 가끔 (어쩌면 자주) ‘진짜’ 조경에서는 멀찍이 떨어진 기분이 든다. 문학 편집자와 소설가 사이의 간극 정도, 어쩌면 더 클지도. 어쨌든 이 간극을 메우고자 하는 의지 반, 호기심 반으로 종종 ‘월간테라’에 기웃거린다. 스튜디오 테라 홈페이지1에 달마다 업로드되는 에세이로, 조경설계 연구실을 거쳐 실무에 뛰어든 이들의 단상을 엿볼 수 있다. 조경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사람, 살짝 빗겨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멀찍이 떨어져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 등 필자 유형은 다양하다. 자발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약간의 강제성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필자에게 “월간테라를 쓰세요”라는 하달이 떨어진다고), 대부분의 필자는 글 도입부터 쓰는 일의 부담감을 호소한다. 뭐, 사정은 딱하다만(?) 보는 사람은 유익하다. 쓰이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상황, 문장이기에 더 흥미롭게 와닿는 표현을 읽는 재미가 있다. 여러 가지의 설계 프로그램을 수족처럼 다뤄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농담이라던지, 학교에서 배운 조경과 실무 사이의 서늘한 간극처럼.
“(포토샵은) 윈도우에 그림판을 탑재한 빌 게이츠를 멋쩍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조경 작업에서 생산되는 스틸컷의 마침표를 찍어준다. 경쟁 프로그램이 없으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꿈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다만 한 번 이 판에 빠지면,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없어진다. 팽이를 돌려도 알 수가 없다. 시간은 쫓아오고 마감은 남지 않았다면 집착하지 말고, 포토샵을 켜라. … (루미온은) 너무나 직관적이고, 쉽다. 마스터가 되기까지 24시간이면 충분하다. 결과물을 뽑아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타 프로그램 대비 압도적이다. 가히 효율성의 끝판왕이다. 다만 결과물이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 사람과 같을 뿐….”(최진호, “도구”)
“설계의 이론적 의미는 대상지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파악하여 실용적이면서 미적인 공간을 형태화하는 과정이지만, 실무를 겪으며 느낀 설계는 여러 가지 제약 조건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 타 분야의 계산 실수로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 예산에 맞춰 수많은 고민의 결과물들을 들어내야 하기도 하고, 공사 입찰 직전 하달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디자인을 근본부터 흔들어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생태면적률 40% 이상’과 같은 무심히 정해졌을 지침의 수치만으로 허탈감을 맛보기도 한다.”(이세희, “2020년을 마감하며”)
사실 모두가 안다. 글 같은 건 안 읽어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는 걸. 글쓰기는 좀체 쉬워지지 않고, 대가 없는 공력이 너무 많이 든다. 소설가 한강도 이런 말을 했더랬지. “저에게 지금도 숙제는 그거에요.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이 뭔지? 그러므로도 아니고, 그리고도 아니고.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데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2 비슷한 물음을 곱씹게 된다. 쓰는 일에 무슨 유익함이 있을까. 어떤 동력이 되어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답은 결국 각자의 쓰는 자아들만이 어렴풋하게 알겠지.
**각주 정리
1.www.studiosterra.com
2.안선정, “소설가 한강, ‘글을 쓴다는 것’의 원동력, 결국글을 읽는 것”, 「독서신문」 2016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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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제대로 말 걸고 싶으니까
종이책을 만드는 편집자지만 요즘은 작업 영역이 지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달이 시작될 무렵 잘 마름질된 잡지가 손에 쥐어지면 또 다른 소소한 편집이 시작된다. 도구는 포토샵과 학창 시절 익힌 얄팍한 디자인 기술. 서투른 솜씨로 인스타그램을 채울 콘텐츠를 다듬기 시작한다. “디자인 전문 월간지의 편집”이 “기획, 조사, 취재, 인터뷰, 작품 섭외, 필자 섭외, 교정과 교열, 사진 촬영, 편집 디자인, 마케팅이 한 번에 뒤섞여 돌아가는 도전적인 작업”(이번 호 ‘에디토리얼’)이라면, 잡지의 내용을 각종 SNS에 올릴 콘텐츠로 매만지는 일은 마케팅 정도로 분류될 것이다.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공간을 채우는 일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 편집과는 한참 다르고, 얕보고 뛰어들었다가 한나절을 몽땅 빼앗긴 적도 있다. 인터넷 속 세상은 한계를 알 수 없는 넓은 세계라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기 위해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작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니, 되도록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사진을 골라 올린다. 이 과정에서 ‘매력적’이라는 형용사를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사진이 좋을지, 조경 전공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독특한 디테일을 담는 것이 좋을지. “요즘 시대가 자연을 소비하기만 하잖아요.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 매체를 통해 자연이 그냥 사진 찍기 좋은 배경 이미지로만 소비되죠.”(배정한, “조경가 김아연 인터뷰: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 2019년 5월호) 지금처럼 봄바람이 불던 날 나눈 대화에서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던 김아연 교수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머뭇거리다가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경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설정한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진은 화살표를 누르면 넘겨볼 수 있도록 함께 올린다. 아주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도록.
글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도 있는데, 확장된 선택지 앞에서 더 긴 고뇌에 빠진다. 짧지만 강렬한 보물 같은 문장은 기왕이면 독자들이 스스로 찾게 하고픈 욕심이 생기고, 길고 유려한 문장을 꼽았다가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아 망설인다. 2020년 리뉴얼과 함께 사라진 꼭지 ‘이달의 텍스트’를 꾸릴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까스로 사용할 구절을 정한 후에도 디자인이라는 한 가지 고비가 더 남아 있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보기에 예쁘지 않으면 다른 콘텐츠에 쓸려나가기 일쑤다.
갖은 노력 끝에 정돈된 피드를 보고 있으면, 『잡스 1. 에디터』의 인터뷰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구든지 플랫폼에 글과 이미지를 올려 전파할 수 있는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시대”.1 ‘○○○님이 회원님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알림이 울리기 시작하면, 독자와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즐겁다가도 조금 씁쓸해진다. 싸이월드 시대에는 ‘퍼가요~♡’라도 남았는데, 좋아요 버튼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해버린다. 고백하자면 한때 인스타그램의 댓글창에서 여러 의견이 오가는 모습을 꿈꾼 적이 있다. 플랫폼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 헛된 기대였다. 정신을 차리고 요새는 잡지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문정 작가의 말처럼 “냉면은 놋그릇에 담고 설렁탕은 뚝배기에 담아야 먹음직”2스러운 법이니까.
『잡스 1. 에디터』의 에세이 꼭지를 통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2018)을 펴낸 정문정이 본래 잡지를 만들던 에디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잡지 에디터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의 에디터로, 유튜브와 페이스북용 콘텐츠를 만드는 디지털 콘텐츠의 총괄 에디터로,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일을 하며 겪은 일화들이 나를 자꾸만 불안감에 빠트렸다. 포기하지 않고 읽어가다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에디터로서 내가 익힌 기술 중에는 세계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타인을 설득하는 최적의 방식과 시기를 찾아내는 일도 있었다. 제대로 말 걸고 싶으니까.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에서 꿋꿋하게.”3 잡지가 다른 인쇄 매체와 구분되는 지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찾아간다는 약속일 테다. 보통 정기 구독이 끝나는 시점은 연말, 아직 일곱 번이나 대화의 기회가 남아 있다.
**각주 정리
1. 『잡스 1. 에디터』, 레퍼런스 바이 비, 2019, p.28. 잡스는 매호 하나의 브랜드를 다루는 잡지 『매거진 B』가 새롭게 선보이는 단행본 시리즈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직업인과 나눈 대화를 인터뷰집 형식으로 전달한다.
2. 같은 책, 정문정,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p.176.
3. 같은 책, 정문정,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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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나무에 둘러싸인 아늑한 쉼터 ‘우드세움’
친환경 규화제를 사용해 원목의 보존 수명 향상
남양주시 청솔공원 수변에 독특한 형태의 원목 구조물이 들어섰다. ‘우드세움Woodseum’은 친환경 건축 자재 전문 기업 케이디우드테크가 출시한 휴게 시설물로, 움막의 형태에서 착안한 원통형 디자인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드세움의 가장 큰 특징은 목재 시설물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유지 관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재 시설물은 일반적으로 매년 오일 스테인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케이디우드테크의 목재는 친환경 성분의 오르가노우드 규화제가 도포되어 보존 성능이 최대 40년에 달한다. 인체에 무해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한다는 장점도 있다. 특수 처리된 목재는 햇빛과 빗물이 닿아도 부패하지 않고 더 단단해지며, 점차 회색빛으로 변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콘크리트 혹은 플라스틱 같은 인공 자재보다 열섬 현상의 영향을 적게 받고 나아가 이산화탄소 흡수에도 기여한다.
구조물 바닥에 모래를 깔아 아이들을 위한 모래 놀이 아지트로 만들거나, 내부에 의자를 비치해 그늘 쉼터로도 쓸 수 있다. 강가 혹은 습지에서는 조류 관찰대로도 사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