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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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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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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82년생 환경과조경, 마흔 살이 되다
『환경과조경』이 만 나이 마흔 살을 맞았다. 1982년 7월, 국내 최초의 조경 전문지 계간 『조경』이 창간되었다. 1985년 6월(통권 9호),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잠시 바꿨고, 10호부터는 『환경&조경』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1992년 1월(통권 45호)부터 월간지 『환경과조경』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 번의 결호도 없이 40년간 간행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사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해왔을 뿐 아니라 조경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며 그 경계를 확장해왔다. 2013년 10월호(통권 306호)부터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에 빠진 역설적 환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재설정했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글로벌 정신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 이 세 가지 좌표를 매달 지면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원칙으로 삼았다. 2021년 8월, 400호를 펴내며 쓴 에디토리얼에 500호 시대를 향하는 『환경과조경』이 묻고 답해야 할 과제를 이렇게 적었다. 첫째, 한국 조경의 전문성과 수월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둘째, 조경 저널리즘의 역할을 기록과 비평을 넘어 이슈 생산과 소통으로 확장한다. 셋째, 다음 세대 조경가와 미래 세대 비평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한국 조경의 2030년대를 기획한다. 『환경과조경』의 지난 40년 여정에 변함없이 동승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 세 가지 과제를 풀어갈 도전적 노정에도 늘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층 더 풍성한 지면으로 꾸릴 40주년 기념호는 오는 12월로 잠시 미루지만, 우선 이번 호에는 한국 조경의 기반을 질문하는 기획 특집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올린다. 1970년대 초, 한국 조경의 태동과 함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과 대상, 그 영역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며 조경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의 범주를 제한하는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것은 번역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트)에 적확한 번역어로 조경(가)이 아닌 다른 말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 조경(학)의 실천 영역과 학문 범주를 포괄할 수 있는 개명이 필요한가? 올해 2월 22일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의 발표 원고들을 다듬어 수록하는 이번 특집이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명칭을 둘러싼 신중한 토론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달에는 40주년 특집의 두 번째 순서로 가칭 ‘조경사’ 자격제 신설의 배경과 필요성을 논의하는 특집이 예정되어 있다. 창간 40년 기념 ‘2022 조경비평상’에는 예년보다 글쓰기의 수준과 글의 완성도가 높은 네 편의 평문이 제출되었으며, 정평진의 응모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글은 도시 공공성의 매개 수단인 공개공지의 한국적 현실과 과제를 선명한 문제의식과 단단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추적하고 발견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한국 조경의 최전선을 이끄는 비평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번 달에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파리공원 리노베이션’이다. 1987년에 문을 연 파리공원은 한국 조경 설계를 변화시킨 기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목과 넓은 잔디밭, 판에 박힌 정자와 퍼걸러, 몇 가지 운동 시설과 놀이 시설을 적절히 섞으면 곧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파리공원은 공원도 ‘디자인’해야 하는 대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틀에 박힌 공원 패러다임을 ‘설계’라는 도구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 파리공원의 실험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들어 20세기 후반에 만든 도시공원을 고쳐 쓰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 기념과 이용의 충돌이라는 난제를 풀어낸 방식에 대해 다양한 토론과 비평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email protected]
[풍경 감각]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길을 걷다 보면 낯선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내달리는 차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건만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세요”라고. 그저 지나는 길인데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며 기계들이, 나를 나무란다. 평소엔 신경조차 쓰이지 않던 기계의 목소리를 피곤하고 지친 날에 들으면 괜히 짜증이 나곤 한다. 한 독립서점이 일상에서 쓰일 만한 따뜻한 문장 몇 개를 스티커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고마워, 사랑해, 응원해, 괜찮아, 힘내 같은 너무 뻔한 말들이라 제작하면서도 재고로 쌓이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예상과 달리 금방 동났다고 한다. 때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마디가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 아닐까.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줘야 할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뻔하고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말 아닐까? 물론 길가에 고마워, 사랑해, 힘내 같은 말을 읊조리는 기계가 있다고 상상하면 굉장히 이상한 그림이 그려지긴 하지만……. 대신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얕은 말을 전해볼까 한다. 괜찮아요. 모두 다 잘될 거예요.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과거라는 구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속편을 쓰는 것과 같다. 전작이 시원치 않다면 어떻게 쓰더라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작이 명작일 경우 고민은 많아진다. 전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가자니 속편을 쓰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속편이 아니게 된다. 1987년의 파리공원을 새롭게 만드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그러했다. 파리공원은 한국 현대 조경의 담론에서 처음으로 조경 설계가 작품으로 인정받은 프로젝트로 회자되곤 한다. 명작 앞에서 작가는 존경과 비판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줄타기는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고, 존경 두 스푼에 비판 한 스푼 같이 비율을 결정하는 문제도 아니다. 태도의 결정, 이것이 줄타기의 본질이다. 우리는 현재의 과오를 다가올 미래가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모든 책임을 과거에 전가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죽은 시간이며, 미래는 희망의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달리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늘 과거를 비판하며 새로운 시간에 희망을 품는 사실이 미래는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은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던 과거로 돌아가 버려진 가능성을 다시 찾아내 복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벤야민에게 과거는 미래의 유일한 구원자다. 1987년의 파리공원은 완벽할 수 없었다. 근린공원이 갑자기 기념공원이 되어야 했고, 시간과 재원 모두 넉넉하지 못했으며, 설계를 구현할 기술과 재료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에서 구원해야 할 대상은 원 설계자들이 품었던, 그러나 이루지 못했던 조경가로서의 꿈만은 아니었다. 옛 도면, 보고서, 인터뷰 기사, 비평, 사진을 수없이 헤아리다 보니 구원해야 할 과거의 꿈을 외진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근린공원의 꿈이었다. 파리공원이 명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사실 근린공원이 아니라 기념공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성을 현대적 조경의 언어로 해석하고 이를 프랑스적인 그 무엇인가와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이 1987년 파리공원 설계의 과제였다. 지금의 파리공원은 최선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답이었다. 그래서 파리공원의 기념성은 지워진 곳을 다시 그려주고 놓친 부분을 채워주면 됐다. 제안서를 준비하기 위한 답사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는 그동안 이 공원이 한불수교 100주년을 상징하는 기념공원인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산책로가 만들어져서 좋은데 계단이 불편하다고, 농구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청년들이 그늘이 없어 땡볕에 앉아 있는 것이 안쓰럽다고 했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나는 비로소 태도를 정할 수 있었다. 상징 1987년 파리공원 설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남쪽에는 손님인 프랑스의 공간, 북쪽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인 한국의 공간으로 공원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파리공원에서 서울광장과 영지는 한국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삼태극 포장 패턴,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조각 타일로 마감된 장식 벽, 전통 식재와 같은 한국적 언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 서울광장의 한국성은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알아보기 어려운 흔적 정도만 남아 있게 됐다. 주인의 자리인 만큼 누가 보더라도 한국적이어야 했고, 동시에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라는 시간에 어울려야 했다. 지금의 낮은 담을 전통담 쌓기 방식으로 높여 벽을 통해 공간이 확실히 인지되게 했다. 흑색 전벽돌을 사용하고 절제된 마감 처리를 통해 과거의 차용이 아닌 현대적 감각의 전통으로 느껴지게 했다. 삼태극 역시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고자 흑과 백의 화강석을 사용했다. 사라진 일월오봉도는 화강석에 레이저로 정교하게 다시 그려내고, 그 앞에는 정갈한 한국식 정원을 만들었다. 서울광장은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담하고 작다. 큰 벽천 뒤에 가려져 숨겨진 느낌의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와야 하고 공원의 주 동선과는 상관없이 북측에 홀로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찾을 이유가 그다지 없는 곳이다. 공원이 늘 북적이는 주말에도 여기를 찾는 이들은 드물다. 처음에는 소심한 주인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범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바꿀까도 했지만, 공원 한 군데 정도는 아는 사람들만 찾는 조용 한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가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은 시끌벅적하게 주최자를 치켜세우며 손님을 맞는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다. 있는 듯 없는 듯 약간은 말수가 없고 수줍은 주인이 오히려 한국적 공간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와 텀블러에 담은 냉녹차를 마시며 새소리와 함께 수필집을 읽다가 햇살이 뜨거워지고 아이들의 소리가 높아질 무렵 다시 돌아가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설계했다. 물 설명서를 보면 원 설계자들은 영지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 같진 않다. 용상(龍床)과 돈대(墩臺)를 추상화한 벽천이 주인공이고, 영지는 ‘그림자 연못’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벽천을 받쳐주기 위한 배경이었다. 애초에 바라 보는 수경 시설로 계획됐기 때문에 사람의 이용을 전제로 하지는 않은 영지였다. 하지만 1987년 개장하자마자 영지는 물놀이를 하려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용상을 상징하는 근엄한 벽천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러다 보니 벽천 주변에는 볼썽사나운 안전 펜스가 쳐졌고, 영지에는 결국 화강석 스탠드가 덧대어졌다. 어떻게 해도 결국 아이들이 차지할 공간이 된다면 아예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과감하게 벽천을 없애자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벽천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낡아버린 화강석 옷을 바꿔 입혔다. 그리고 펜스가 없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압적인 벽천의 경계를 낮추고 계단식으로 완만하게 바꾸기로 했다. 부담스럽게 갑자기 떨어지는 영지의 경계도 손볼 필요가 있었다. 경계의 단을 늘려 물의 면적을 줄이기보다 영지의 바닥 높이를 들어 올려 공원에서 영지의 바닥까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아예 물놀이가 가능한 바닥분수도 가운데에 만들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려면 보호자가 편해야 한다. 동측의 스탠드도 정비해 부모들이 영지에 풀어놓은 아이들을 보면서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늘과 앉을 곳을 최대한 많이 조성했다. 양천구청이 보수 수준이 아닌 전면적 재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영지 바닥에 생긴 균열 때문이다. 매년 구청은 파리공원 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영지를 재설계하면서 최대한 유지 관리가 편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었다. 수조 역할을 하는 구체와 바닥면이 분리될 수 있는 페데스탈 건식 공법을 제안했다. 이러면 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구체와 상관없이 쉽게 교체가 가능하며, 반대로 구체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장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물이 없으면 자전거나 킥보드를 탈 수 있는 광장이 되고, 물이 있더라도 얕은 수면 위에 주변 풍경이 비치는 이름 그대로의 영지(影池)를 만들었다. 잔디와 나무 사람들은 대개 공원 하면 잔디와 나무가 있는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공원의 본질은 잔디밭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일 수도 있다. 원 설계 계획안을 보면 동측에 잔디광장과 총림이 계획됐다. 계획안대로 시공이 안 된 것인지 이후 잔디에 나무를 심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파리공원에는 계획된 넓은 잔디밭이 없다. 요새 외국에서는 잔디밭이 욕을 먹는 추세다. 생태적으로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외국에서 잔디밭의 대안을 찾은 이유는 너무나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으니까 많이 만든 것이다. 한때 공원의 잔디밭을 보호하기 위해 펜스를 쳤던 우리에게 잔디밭은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이며 문화다. 이 공원에 제대로 된 잔디밭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잔디밭은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도시의 광장처럼 오픈스페이스로서 역할하려면 주변이 잘 구성되어야 한다. 주변에 할 것이 없으면 빈 공간은 버려진 공간이 된다. 그래서 북동측 입구 쪽에 새로운 작은 건물을 배치하고 그 앞에 잔디가 펼쳐지게 했다. 잔디밭 뒤로 운동 공간을 조성했다. 잔디밭 전면은 넓은 물의 공간인 영지로 시원하게 열리게 했다. 잔디밭을 다시 만들기 위해 무성해진 나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무를 정리한다는 계획에 어떤 주민들은 심하게 반대했다. 많은 나무가 반드시 건강한 숲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득해야 했다. 너무 밀식되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을 제대로 솎아주어야 더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어떤 이는 수긍했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한편 나무가 적은 곳에 새롭게 나무를 심어 줄 필요도 있었다. 한불마당은 아이들이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인데, 부모들이 앉아 있을 곳이 없었다. 한 가족이 벤치와 그늘이 없어 경계석에 모여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한불마당 경계에 큰 나무들을 새로 심고 그늘과 함께 많은 벤치와 의자를 놓기로 했다. 이 설계가 과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나무 그늘 아래 연두색 의자가 가득 놓여 있는 파리 튈르리 정원 사진을 보여줬다. 이게 파리의 공원이라고. 파리에서는 나무 그늘과 의자가 있는 곳이 공원이 된다고. 그러자 그가 파리공원에 만드는 이 공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프롬나드(promenade)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라고 덧붙였다. 포장 요즘 조경가들은 포장에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좋아지다 보니 재료 생산과 디자인이 일체화되어 패키지로 제공된다. 오히려 손수 설계하는 것보다 패키지의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 1987년에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재료의 품질도 형편없었고 디자인적으로 활용할 대안도 별로 없었다. 파리공원의 설계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개념을 구현할 포장의 패턴을 생각해야 했다. 그 고민이 담긴 공간이 중앙가로와 한불마당이다. 원 설계의 모든 공간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확장되고 변주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앙 가로는 파리공원 설계의 개념적 뼈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원에 가보면 계획도에서는 그렇게 강력해 보이던 축이 보이지 않는다. 원 설계에서는 축이 세 개로 분절되고 각각 다른 포장 패턴으로 나뉘었다. 그러면서 존재감이 약화됐다. 그리고 중간에 건물이 들어가고 조형물이 놓이면서 시각적으로도 하나의 축이 사라졌다. 원 설계의 개념을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중심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닳아서 보이지도 않게 된 바닥의 전통 문양을 새롭게 해석하여 상징성을 복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한국적이라고 느낄 태극기의 건곤감리(乾坤坎離) 64쇄를 응용했다. 흑백 패턴으로 이루어진 바닥은 의심할 여지없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란 강점이 있었다. 시공성을 위해 흑백의 조합을 수없이 테스트하고 64괘 중 여덟 개 괘를 골라 화강석 포장 패턴을 구성했다. 새로운 패턴을 공원의 가장 넓은 공간인 한불마당에도 적용하고 싶었다. 한불마당은 한국과 프랑스를 동시에 상징하는 광장이다. 원 설계자들은 프랑스와 한국의 두 국기에 있는 적, 청, 백의 세 가지 색으로 두 나라의 화합을 상징하고자 했다. 문제는 실제로 적용된 패턴은 프랑스의 삼색기를 떠올리기에도, 태극기를 생각하기에도 애매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값싼 시멘트 블록에 염료를 섞어 새로 블록을 만들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고급스럽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중심축에 사용된 괘 패턴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화강석으로 한불마당 전체를 재포장하기에 단가가 꽤 비쌌다. 둘째, 보수한 지 얼마 안 돼 폐기하기에는 상태가 양호했다. 셋째, 원형광장에 직선의 괘 패턴을 적용하기 위해 알고리즘 디자인까지 동원해 여러 대안을 마련했으나 현실적 시공 과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원 설계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담당 소장님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적, 청, 백의 색으로 상징을 구현하는 방식이 직설적일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시대의 반영이니 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었다. 그래서 원래 포장 재료를 일부 활용하고 그에 맞추어 지금의 블록에 그때의 안료를 배합해 비슷한 느낌의 새 재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원래 포장 시공의 방식 그대로 적과 청의 괘를 곡선 형태로 담아냈다. 사람 원 설계안을 보면 현재 파리공원의 모습과 원 설계자들이 생각했던 이미지는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기념공원의 의미가 더 강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원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불마당을 제외하면 원 설계의 공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크닉, 휴식, 명상, 산책, 전시 정도로 고상하고 세련된 프로그램뿐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람들은 조경가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저마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공간을 고쳐 쓴다. 기념 조형 공간 으로 설정한 야외 전시장은 농구장으로 바뀌었고, 명상과 감상을 할 수 있는 영지와 벽천은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됐다. 공원을 도시와 어느 정도 분리하기 위해 만든 경계부의 지형과 녹지대에는 순환 산책로를 만들었다. 조용한 숲속은 생활 체육 시설로 가득 찼고 어르신들을 위한 지압로가 생겼다. 이번 재설계에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담는 일에 제일 고민이 적었다. 이미 사람들이 정답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인기가 좋아 여러 팀이 대기하는 농구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두 개로 만들었다. 조금씩 늘어나 공원 한편을 차지한 운동 시설을 정리하고 두 개의 운동 공간을 조성했다. 그리고 생활 체육 시설뿐 아니라 제대로 된 근력 운동도 할 수 있고, 유튜브에서 인기인 타바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도 만들었다. 문화공원에는 어린이 놀이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는 이상한 법 때문에 휴게 시설인 그물 네트로 된 아이들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는데, 예상대로 아이들은 이 공간을 놀이터로 변화시켰다. 시공이 들어가기 직전 어르신들이 단체로 민원을 넣었다고 해서 추운 겨울날 공원에 갔다. 어르신들의 불만은 민원이라기보다 하소연에 가까웠다. 공원 건물이 재단장해 북카페가 된 이후 어르신들이 건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공원에서 친구들과 만나 바둑과 장기를 두는 것이 낙인데 그럴 공간이 없어졌다고. 총림에 밀식된 나무를 정리하고 그 아래에 둘이 마주 앉아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을 놓았다. 원래는 체스판이 부착된 시설물이었는데 바둑판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나는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새로 지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경가는 공간을 결정하는 자가 아니다. 이렇게 사용되기 바라는 상상을 하며 설계를 하지만, 어떻게 쓸지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람들의 바람과 의지에 따라 공원은 언젠가 다시 바뀔 것이다. 도시공원을 고쳐 쓰는 일 김영민·이남진 인터뷰 공모 프로젝트에서 이남진과 김영민의 조합을 자주 보고 있다. 어떻게 팀을 꾸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남진(이하 남)2020년 3월 바이런을 개소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파리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 소식을 접했는데, 워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팀원도 적어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김영민 교수가 먼저 함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김영민(이하 영)이남진 소장과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이남진 소장이 동심원조경에 근무할 당시 ‘서남권 활성화를 위한 국회대로 상부공원 설계공모’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2019년 말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를 마무리하고 긴밀한 파트너십을 찾고 있었는데, 여러 회사와 협업해보았지만 나와 잘 맞는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시 이남진 소장과 함께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를 진행하게 됐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바이런과 김영민의 컨소시엄이라기보다 내가 바이런의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파리공원은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공원이자, 조경 설계가 최초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사례다.공원에서 보존할 것, 고쳐 써야 할 것,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의 목록을 어떻게 도출했나. 영 보통 해외의 공원은 쓰이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하지만 파리공원은 전혀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너무 잘 이용되고 있었고, 오히려 지나치게 잘 쓰여서 시설물이 노후된 점이 문제였다. 주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데다 파리공원이 한국 현대 조경사의 분기점을 마련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어서, 이를 잘 고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다. 우선 파리공원에 관한 보고서와 논문, 사진, 자료를 보며 공원을 스터디했다. 연구 끝에 원 설계의 큰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 양천구청이 파리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위한 밑작업을 많이 해놓은 상태였다. 별도의 운영위원회가 꾸려져 있었고, 파리공원의 기본 및 실시설계를 담당한 조경설계 서안에 공모 기본구상 용역을 맡겨 재정비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가이드라인에 공원에서 보존해야 하는 부분, 기본 틀은 유지하되 소극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 적극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를 준수하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 설계를 했다. 영 구청이 요구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지 콘크리트 바닥은 균열이 생겨 더 이상 물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고, 균열을 메우는 정도의 보수가 아닌 전면적 재조성이 필요한 상태였다. 계획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발걸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산책로도 정비가 필요했다. 지역 주민을 관찰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 또한 중요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주민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기도 하고, 공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바뀌었으면 하는지 묻기도 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주민들의 요구, 도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세심한 부분을 관찰하며 보존할 것, 고쳐 써야 할 것,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공원의 특성상 작은 공간에 프랑스성과 한국성이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현대적 감각까지 더해야 했는데, 프랑스성, 한국성, 현대적 감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는가. 영 원작자의 개념과 의도를 따르되 약간의 변주를 주었다. 일단 파리공원의 공간 구조가 굉장히 독특하다. 공간이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설계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성과 프랑스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두 나라의 관계를 어떻게 공간으로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를 바꾸고 한국성과 프랑스성을 새롭게 해석할 경우, 리모델링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공원이 될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원작의 개념을 따르되,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나 본래의 의도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부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고쳤다. 예를 들어 한불마당은 프랑스와 한국의 국기에서 영감을 받아 적, 청, 백의 포장 재료를 쓴 공간이다. 너무 직설적인 데다가 완성도에 아쉬운 면이 있어 기존 재료와 새 재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재조성했다. 이전의 공원과 가장 달라진 점을 체험형 수경 시설, 살롱 드 파리, 미세먼지 안심 쉼터, 체육 시설 확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간인가. 남 리모델링의 시작은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데서 출발한다. 공모 단계에서 학생들과 함께 설문조사를 하고, 양천구청에 제기된 민원을 살펴보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들었다. 공원에 찾아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이들의 말은 어떻게 보면 비전문적 의견일 수 있다. 당장 눈앞의 불편함만을 이야기하는 민원성 의견일 수 있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지 판단하는 게 전문가의 몫이기도 하다. 기존 주민 이용 시설을 어디로 옮기는지, 그 대로 유지하되 어떤 부분을 새로 교체할지 등을 최대한 자세히 주민들에게 설명해주려 했다. 다행히 큰 반박이 없었고 대부분 좋아했다. 소수의 편익을 위한 공간에 대한 요청은 가능한 배제했다. 영 본래 설계할 때 개념을 잡고 시작하는 편인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개념보다는 직관적, 경험적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하루는 공원에 방문했다가 한 가족을 봤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있고 부모가 김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비어 있는 벤치가 없어 결국 경계석에 앉아 김밥을 먹더라. 그걸 보며 광장을 둘러싼 앉을 공간을 충분히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공원에는 생각보다 청소년이 많다. 왜 공원에 오냐고 물어보니 학원에 가기 전 남는 시간에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카페에 가자니 돈이 들고, 앉을 벤치가 부족해 공원을 서성이거나 자판기 주변에서 수다를 떨다가 떠나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기존 운동 시설과는 달리 재미있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어르신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처럼 쓰던 건물이 북카페로 바뀌면서 머물 공간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들을 위해 밀식된 나무를 정리하고, 바둑과 장기를 둘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이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을 위한 공간인 걸 아는지 벤치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과 장기를 즐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6월호 ‘공원, 고쳐 쓰기’ 특집에서 파리공원를 보여주는 이미지 중 하나로 모네의 화풍으로 그린 서울광장을 보내주었다. 어떤 용도로 만든 이미지인가. 영 직접 그린 건 아니고 실시설계를 담당한 바이런 김영찬 소장이 필터 효과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인데, 파리공원의 이미지를 일반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보여줄 때 사용했다. 사실 파리공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공원에 에펠탑, 개선문 같은 직설적 오브제들이 놓여 있는데도 말이다. 주민설명회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장에 이 이미지를 넣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키기 어려운 공원의 프랑스성을 한 장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었다. 공원 조성 후 살롱 드 파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샹송을 틀어놓았다. 1차원적 표현이지만 주민 입장을 생각했을 때는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양천구청의 지원을 받은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남 양천구청은 행정적,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전부 지원해줬다. 이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구청이 조경가를 전적으로 믿고 의견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조경가들을 끝까지 믿고 그들이 현장에 관여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가 잘된다. 현장에서 임의로 수정되어 시공되는 부분 없이 모두 우리의 검토를 받아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남은 후반 작업에 필요한 인건비, 경비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공모 진행 당시보다 공사비가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설계비는 증액되지 않았다. 박윤진·김정윤 소장(오피스박김)이 “서울에서 공공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서울공예박물관’, 『환경과조경』 2021년 10월호)라고 말한 적 있는데, 공감한다. 대부분 설계가 끝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설계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제대로 된 금액을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나쁜 선례를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영 공무원의 역할이 컸다. 파리공원은 구청장의 공약인 프로젝트였고, 그만큼 여러 이해관계와 요구 사항이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무리한 요구에 대응하지 않을 수 있게 양천구청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막바지에 추가된 음악분수는 사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만든 공간이다. 공사 기간이 짧아 고생했지만 주민들은 좋아하고 있다. 최근의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이 도시공원의 보존·재생 등에 대한 충분한 학술적·이론적 연구 또는 사회적 동의·공감대 없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 리모델링의 정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벽체 하나만 남기고 모두 고치는 것,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기고 마감만 새로 하는 것 모두 리모델링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원 리모델링을 공모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의 계약 범위에서 설계가 가능한 회사에게 리모델링을 맡기면, 공무원과 주민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수동적 설계가 이루어질 확률이 크다. 파리공원의 경우, 공모 기본구상 용역과 별도의 운영위원회가 있어 큰 도움이 됐다. 공모가 열리고 오래된 도시공원을 어떻게 리모델링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영 도시공원의 리모델링은 아카이브 이슈와도 관련된 문제다. 리모델링에 앞서 당연히 충분한 학술적 이론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재는 아카이브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연구를 하려면 자료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공원 리모델링은 아카이브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지금 당장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으니 마냥 미뤄두어야 하는 것인가. 10년 뒤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아카이브가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리모델링에 바람직한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참고가 될 뿐이다. 외국의 경우, 설계자가 리서치를 함께 진행한다. 이처럼 아카이브와 설계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파리공원 리모델링을 주제로 웨비나가 열리기도 했는데, 이처럼 학계와 업계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언젠가는 선유도공원, 서울숲 같은 대형 공원을 고쳐 써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공원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남 비슷한 측면에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아카이브가 부족하다보니 설계하는 사람들이 리서치를 하면서 리모델링에 접근해야 한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새로운 공원을 만드는 일과 비교하면 인력, 시간 등 소모되는 부분이 3배 정도 많다. 하지만 설계비와 기간은 일반 프로젝트와 똑같이 잡는다. 그래서 결국 계속 과업을 연장해 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만약 다른 지자체가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면, 기간을 넉넉히 잡아 급하지 않게 설계와 시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시기적 이유로 일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공원을 재개장했다. 앞으로 이 공간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언제쯤 완성될 예정인가. 남 아마 7월호가 발간될 쯤에는 그 공간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추가된 음악분수도 완공되어 시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지금 재개장한 공원은 1차 완성 단계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다. 예상보다 더 많은 주민이 찾아와 발생한 문제도 차츰차츰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목마·신트리공원도 파리공원과 비슷한 단계를 밟고 있다. 지방선거로 인해 구청장이 바뀌었으므로 새로운 의사결정권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파리공원의 경험을 토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목마·신트리공원은 완전히 공사가 끝난 뒤 개장하고 싶고, 파리공원처럼 현장에서 완공 때까지 계속 관여하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영 설계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공간을 완성하지 못한 채 공원이 개방되니까 오히려 더 많은 주민의 요구가 가시화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것이 도시가 살아있는 증거다. 많은 사람이 센트럴파크가 옴스테드의 설계안 그대로 완성된 줄 아는데, 사실 옴스테드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운동하는 걸 반기지 않았다. 고상하게 자연을 감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지금 센트럴파크에는 많은 야구장과 소프트볼 구장이 있다. 공원은 이처럼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바뀌고 진화해나간다. 언젠가는 지금 고친 파리공원을 다시 고쳐 써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의 설계안을 비판하는 이도 있을 것인데, 당연한 일이다. 2022년의 공원을 2040년에도 잘 쓰고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세대가 바뀌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파리공원의 좋은 점과 우리가 놓친 다른 가능성을 후배들이 잘 포착해 더 좋은 공원으로 고쳐 쓰길 바란다. 글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사진 유청오 설계 총괄 김영민, 바이런 조경 설계 바이런(이남진, 김영찬, 강아람, 조희연, 우희준, 송지희), 서울시립대학교(이학송, 임지원, 김도훈, 이영현, 정혜율, 한지우) 건축 설계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경관 조명 설계 이온에스엘디 발주 양천구청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동 906 면적 29,619.3m2 완공 2022. 5. 원 설계 기본설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설 환경계획연구소(유병림, 황기원, 양윤재) 기본 및 실시설계 조경설계 서안 시공 대능종합조경 발주 서울시 완공 1987. 7.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은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이 함께 이끄는 디자인 회사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디자인하는 일상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좋은 설계 환경을 만들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세종상징광장,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재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주요 설계자로 참여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이름은 대상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본질을 따르지 못하는 이름은 대상의 성질을 왜곡하거나 한계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 제도권 조경의 개념이 들어선 건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한국 제도권 조경의 창립자들은 미국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전문 분야를 들여왔고, 이 개념의 번역어로 조경造景(지을 조, 경치 경)을 택했다. 하지만 이미 ‘조경’은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다듬는 일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어온 상황이었다. 대중의 인식 속 조경과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의 간극이 점차 커졌고, 그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 대상, 영역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 『환경과조경』은 ‘이달의 질문’이라는 꼭지를 통해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 등 다양한 의견이 도착했다. 답변 중 일부를 인용해 이 특집의 의도를 설명한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 조경이 곧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특집 원고는 2022년 2월 22일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을 통해 먼저 발표된 바 있다. 진행 배정한,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조경, 그 이름을 묻다] 다시, 조경의 이름을 묻는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호수공원, 용산공원 등 대규모 국제 조경설계 공모 운영과 진행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며 공모전 결과와 당선작에 대한 보도자료를 작성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보도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유독 ‘조경’이나 ‘조경가’는 다른 용어로 고쳐 표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조경가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의 작품이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릴 설계안으로 당선되었다”는 문장에서 ‘조경가’는 예외 없이 다른 단어로 수정됐다. 조경전문가, 조경디자이너, 조경건축가는 그나마 조경을 남겨준 몇 안 되는 경우다. 거의 모든 언론이 안드리안 회저의 직명을 공원전문가, 공원설계가, 공원디자이너, 도시공원계획가 등으로 바꿔 적었다.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조경에 무지한 탓이라고 분노할, 조경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이 정도라고 낙담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조경가로는 의미 전달이 안 된다고 판단해 머리를 쥐어짜 새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이미 익숙해서 둔감해졌지만, 여러 지자체의 조경 담당 부서명들은 조경이라는 이름의 난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조경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은 푸른도시국이다. 이 낭만적인 이름을 단 부서 밑에 공원조성과, 공원녹지정책과, 자연생태과, 산지방재과, 그리고 ‘조경과’가 있다. 조경과의 담당 업무를 찾아보면 수목 식재 사후 관리, 시설물 관리, 가로수와 녹지대, 가로변 꽃 가꾸기 정도다. ‘한국조경헌장’(2013)이 정의하듯 조경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면, 푸른도시국은 ‘조경국’이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조경계 안에서만 유통된다. 대학에서 조경 교육이 시작된 1973년도에도, 내가 조경학과에 입학한 1987년도에도, 다시 35년이 지난 2022년에도 조경은 조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애증의 이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공이 조경이라고 말하면 대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반응한다. “아, 나무랑 꽃 심고 정원 만드는 거죠? 나무 많이 아시겠어요. 부러워요.” 당대의 지성을 이끄는 어느 철학과 교수가 내 방에 불쑥 방문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처가에 땅이 좀 있는데, 무슨 나무를 심으면 유망할까요?” 한국조경학회 이름으로 용산공원 일을 맡아 진행할 때마다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를 동반한 질문을 받곤 한다. “조경학회가 이런 복합적인 도시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어요?” 어느 경우든 막상 대답이 궁하다. 한국조경헌장의 정의를 암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뇨, 조경은 나무 심고 돌 놓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공원도 설계하고 단지도 계획하고 도시 경관의 큰 골격도 짜고 그래요.” 영어 단어를 조금 섞어 써도 재수 없이 하지 않거나 불편해 하지 않는 상대라면, “조경,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요”라고 덧붙인다. 그러면 내 기분은 좋지 않지만 상대의 반응은 좀 낫다. 뭔가 알아듣는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그런데 조경에 해당하는 영어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일까? 그렇지 않다.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한국어로 번역한 게 조경이다. 이 번역어 ‘조경’이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한국 제도권 조경(학)의 창설자들은 미국식 개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수입해 고심 끝에 조경이라는 말로 옮겼다. 하지만 이 전문 분야의 역할과 가치는 새로웠던 데 반해, 분야 명칭으로 선택된 조경은 이미 다른 뜻으로 통용되던 말이었다. 1920년 이후 일간지 전문을 제공해주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1962년부터 조경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한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관계없이 1960년대에 쓰인 조경이라는 말의 뜻, 말할 필요도 없다. 나무와 꽃 심고 돌 놓는 것, 관상수 재배, 가드닝 정도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 언어에서 조경은 바로 그 조경이다. 조경을 하나의 학제(discipline)이자 전문 직능(profession)인 출발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도착어로 삼기에는 조경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져 있었다. 1970년대 이후 제도권 조경은 늘 목놓아 소리치며 조경은 그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강변하고 주장해왔지만, 조경은 결국 조경이다. 조경은 조경이라는 말에 갇힌 셈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 나는 이 단어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가 어긋나는 현상이 한국 조경의 50년 역사를 뒤엉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한국 조경(학) 50주년을 맞은 2022년,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첫걸음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이름 ‘조경’에 대한 긴 호흡의 연구와 토론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공감과 우려가 공존할 것이다. 반세기 지켜온 이름을 이제 와 버릴 수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조경의 사회·문화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공감은 하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시 번역한다면 결국 대만처럼 경관건축(景觀建築)인가. 중국처럼 원림건축(園林建築)으로 옮길 이유는 없다. 일본의 조원(造園)은 조경보다 협소한 느낌이다. 일부 건축가나 조경가처럼 ‘조경 건축’이라고 쓰는 방법도 있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과 박윤진 소장(오피스박김)은 고심 끝에 명함에 ‘조경건축가’를 넣자 적어도 ‘인식’면에서는 모든 게 해결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건축에 치이는 다수 조경인들은 건축이라는 두 글자에 바로 공분하며 경관‘건축’이나 조경‘건축’에 강하게 반발할 게 분명하다. 이미 몇몇 대학의 학과명에서 볼 수 있듯 조경 앞에 환경이나 생태나 도시를 덧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조경보다 더 옹색하다. 스마트 도시, 그린 인프라 같은 유행어를 섞어보자는 의견도 있을 텐데, 그건 10년도 못 갈 궁여지책,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출발어를 도착어로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참에 조경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도 넘어 업역을 넓혀야 한다고, 그런 확장을 만방에 선언할 새 이름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을 넓히고 싶다 고백한다고 그런 땅이 우리에게 다가올까. 여러 쟁점이 뒤얽힌 어려운 문제지만, 우선은 적확한 진단과 다각적 토론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1 보론: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 『환경과조경』은 2019년에 ‘이달의 질문’ 지면을 꾸린 적이 있다. 그해 12월의 질문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에 보내온 독자들의 답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몇 가지 답을 조금 줄여서 아래에 붙인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룬 책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 질문 역시 어쩌면 번역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경(造景)’이라는 한자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번역되어 쓰였을까. 요즘 정원, 가드닝이 뜨면서 조경이라는 말과 뒤섞여 사용되다 보니 그 뜻이 더욱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덩달아 조경가, 조경 설계 같은 말들로도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제법 긴 설명이 필요하다. 명함이나 프로필에 ‘조경건축가’라고 쓴 적이 있다. 딱히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은 좀 뜸해졌다. 번역의 문제인지 용례의 문제인지, 아무튼 이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영국 사례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조경협회에 상응하는 영국 단체명은 ‘Landscape Institute’다. 학과 단위로 독립된 조경학과는 셰필드 대학(University of Sheffield)이 유일한데, 학과명은 ‘Department of Landscape’다. 모두 우리의 조경협회, 조경학과는 동일한 의미와 범위를 갖는다. 물론 이들이 ‘우리 업역을 명확하게’, ‘학과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쉽게 인지하도록’ 등의 이유로 ‘Architecture’를 더한 ‘Landscape Architecture Institute’,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결과는 압도적 반대로 무산. 왜일까? 결국 우리 업역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학제간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조경만 가르치라는 말인가 등이 다수 의견이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정해준, 계명대 교수) “조경의 이름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비루했기 때문일 것이며, 조경의 이름이 자랑스럽다면 그것 역시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찬란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조경이 스스로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이름은 내가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부끄러운 일들과 자랑스러운 일들이 담기에는 충분했다.”(김영민, 서울시립대 교수)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조용준, CA조경 소장)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조경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누군가 그런 것도 박사가 있냐고 되묻길래 당황한 기억이 있다. 1970년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조경’이라는 말을 가져다 썼고, 이 용어가 더 넓은 범위의 토지, 도시, 경관 디자인을 포함하지는 않으니 완벽한 번역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 푸념하기엔 한국 조경이 태동한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간 우리 분야의 전문성을 제대로 대중에게 인식시키지 못한 건 아닐까. 조경이란 말이 현재 근사하게 통용되고 있다면, 과연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이명준, 한경대 교수) “조경이란 단어가 쓰인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의미는 건설의 조경, 훼손된 경관을 꾸미는 분야로 특정 지어졌다. 조경이란 이름으로 생태 복원에 참여하려 하면 생물, 생태, 환경공학 분야로부터 배척당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조경은 생태계 기본 원리에 따르기보다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환경 복원 분야에 조경이란 이름으로 참여하면 전문성을 내세우기 곤란하다.”(홍태식, 당시 한국생태복원협회장) “명명이란 행위는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저 있기만 할 뿐 인지되지 않았던 대상을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선택하고 분리하여 특정한 존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그의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며, 파악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적확한 개념어를 찾는 일이 이어져야만 한다. 조경이라는 명칭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이 용어가 지칭하는 행위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은 본래부터 조경이란 용어가 실재하는 행위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40여 년간 조경이란 분야가 다루는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조경이란 이름이 적확한 명칭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적절한 이름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경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 조경이 곧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김진환, 당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과장) “유튜브를 실행한다. ‘조경’을 검색하고, 조회순 정렬을 클릭한다. 가장 위에 위치한 영상의 제목은 ‘최상의 조경! 강원도 횡성군 별장 전원주택 연수원 매매.’ 조회수는 무려 33만이다. 영상은 6분 정도 진행되며, 말없이 5천평 고급 별장의 외부 공간을 살핀다. 뒤로 돌아가 스크롤을 내린다. ‘래미안의 클래스를 경험하라’라는 제목으로 아파트 조경을 홍보하는 여섯 번째 영상과 미국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의 책 『공간 혁명』을 소개하는 여덟 번째 영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상 제목에 ‘주택’과 ‘조경’이 함께 놓인다. 전공자가 기대하는 영상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찾기 어려운 걸 보니, 유튜브 세계와 전공자의 머릿속 간극은 꽤 넓어 보인다. 이제 질문에 답해보자.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름이다. 유튜브 안에서도.”(이형관, 당시 앤더스엔지니어링 차장) 각주 1. 이 글의 많은 부분은 2021년 6월,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칼럼 시리즈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통해 발표된 바 있다. 더 읽을거리 ·오휘영, “우리나라 근대 조경 태동기의 숨은 이야기(1)~(2)”, 『환경과조경』 2000년 1월호, pp.48~51, 2월호, pp.30~33. ·우성백,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우성백·배정한, “조경은 Landscape Architecture인가”,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논문집』, 2016, pp.11~12. ·Brian Davis & Thomas Oles, “From Architecture to Landscape: The Case for a New Landscape Science”, Places October 2014, placesjournal.org/article/from-architecture-to-landscape/?cn-reloaded=1 ·Charles Waldheim, 배정한·심지수 역, “건축으로서 경관 Landscape as Architecture”, 『경관이 만 드는 도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론과 실천』, 9장, 2018, pp.196~217. ·Joseph Disponzio, “Landscape architect(ure): A Brief Acccount of Org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and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92~200. 배정한은 2014년 1월호부터 『환경과조경』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과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를 지었고, 『라지 파크』와 『경관이 만드는 도시』를 번역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우리의 조경과 그들의 조경은 다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조경 50년 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신문물이 이 땅에 들어왔다. 신문물은 현대성(modernity)의 상징이다.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는 시대가 지향한 가치를 보여준다. 근대화의 길을 가기 위해 이 땅의 오랜 역사와 문화는 지워지고, 국토와 자연은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가 필요했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그것이었다. 이 신문물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조경(造景)’이었다. ‘경관을 조성한다’는 의미이니,1 뜻으로 보면 이보다 더 나은 말이 있을까 싶다. 50년을 써 왔으니 아주 익숙하고 친근하다. 그래서 애정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조경이 뭐 하는 거냐? 흔히 조경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조경이 뭐 하는 거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질문자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자신은 없었는지 되물었다. 고래 잡는 건가? 포경과 조경의 어감이 비슷해서였는지, 지금은 금지된 포경업이 당시엔 인기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우리는 설명해야 했다. 쉽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지만, 상황은 반복되곤 했다. 시대는 변하고, 조경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농담이거나 자신이 무지에 대한 자백인 시대가 되었다. 이젠 묻지 않는다 2021년 가을, 광주 '아시아 예술정원' 설계 공모안 심사가 있었다. 한 심사위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왜 조경기술사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이죠? 그는 그 예술정원이 조성될 자리 한가운데 위치한 시립미술관의 장이었다. 조경이 이런 걸 해요? 도시재생이나 단지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조경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질문이다. 그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거냐고 묻지 않는다. 그들은 조경이 뭐 하는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아는 조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조경과 다르다. 우리의 조경을 열심히 설명해도 설득당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의 조경과 그들의 조경이 다르다 한국에서 조경 공간의 정책을 다루는 기초자치단체는 226개다. 이 가운데 조경을 국局 단위로 편제하여 조경 정책을 집행하는 지방정부는 한 곳도 없다. 푸른도시국에 조경과가 조직된 특별한 서울시를 제외하고는과 단위 조직을 갖춘 지자체도 없다. 대부분 조경은 공원녹지과 또는 공원과, 녹지과, 산림환경과 등에 팀 단위로 명맥을 유지한다. 정원운영과에 조경팀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조경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경을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한국조경헌장)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글자 그대로 조경이 경관을 조성하는 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공원과, 녹지과, 정원과 등에 조경팀이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지? 언어학자에게 기대어 이해를 구해본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_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의미 작용(signification)은 자의적이라고 한다. 조경이라는 기표(signifiant)와 조경의 기의(signifié) 사이에는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 조경의 정의와 사람들이 갖는 조경에 대한 이미지나 의미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와 의미는 사회 속에서 필연화된다. 그렇게 필연화된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한정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조경(造景)이라는 한자는 동사와 명사로 구성된 단어 구조 자체가 예스럽고, 조(造)라는 범용적인 동사가 개성이 없어서 오히려 예술적인 창작보다는 기술적 제작이나 시공에 가깝다고 한다. 김영민, “조경(造景)이라는 말,” 「라펜트」 2021년 8월 12일. 최정민은 한때 LH에서 정붙일 만한 아파트 단지, 좋은 공원, 살 만한 신도시에 대해 고민했었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 다니던 시절에는 설계 공모전에 열심히 도전했다.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은 과잉 의식도 있었다. 지금은 순천대학교 산림자원조경학부 조경전공 교수로 학생들에게 설계하는 방법을 안내하면서 조경의 미래에 대해 생각 중이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잘 모르는 사람 M과의 대화
M은 수락산 자락에서 가까운 동네에 10년째 살고 있다. 지방 소도시 출신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 이후로 40년 가까이 쭉 서울에 살았으니 이제 서울 사람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사회단체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산도 가깝고 단지에 나무도 많아 산책하기에 좋다고 한다. 그를 둘러싼 ‘조경’의 흔적은 이것이 다다. 지인 중에 조경에 관련된 사람이 없고, 조경을 잘 알지도 못한다. 나도 그를 모른다. 그래서 M은 이 인터뷰에 초대됐다. 건축은 구조잖아요 건축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M은 5초쯤 망설이다가 ‘구조’라는 답을 내놓았다. 의외다. 아마도 최근 화제가 된 광주 아파트 공사 현장 붕괴 사고를 떠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는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는 대뜸 A와 B를 말했다. A는 잘 알려진 건축가인데, 책과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B 역시 그의 책을 읽어서 안다고 한다. 아는 조경가가 있는지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름답게 꾸미는 거 아닌가요? M은 내가 조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건축은 그렇고, 그런데 조경은 뭘까요? 아름답게 꾸미는 거요. 5초가 걸리지 않았다. 나쁜 대답이 아니다. 조경 행위의 핵심을 간결하게 설명한 셈이다. 정답에 가까우려면 유용, 건강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하고 끝맺음에서 인문, 과학, 계획, 설계, 예술 같은 용어들이 이어져야 하는데, 핵심은 놓치지 않은 셈이다. ‘아름답게’는 조경 행위가 지향하는 가치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으뜸일 듯하다. ‘아름답지 않으면 조경이 아니다’라는 명제도 성립 가능하다. ‘꾸민다’는 행위도 반드시 장식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을 듯하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창의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연구와 기획, 설계와 시공이 모두 ‘꾸민다’는 행위에 속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M은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를 아주 긍정적으로 보았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처음 들어 보는데, 좀 의외네요. ‘조경’은 친숙한데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심히 낯설다는 M.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요? 우선 랜드스케이프에는 다정한 느낌이 없어요. 좀 높은 곳에서 어떤 도시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경관이라고 번역하면 자연보다는 도시적 풍경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뒤에 아키텍처를 붙여서 생각해 보면,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에 대해서 큰 스케일의 어떤 건축적 행위를 하는, 예를 들면 도시계획 같은 행위가 연상돼요. 우리말 조경에서 느껴지는 예술적이고, 자연, 식물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요. 어떤 게 맞는 거예요? 아, 다 맞는 거예요. 정원은 조경인가요? 조경이라고 하면 우선 정원 스케일의 구체적인 공간이 연상된다고 했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에는 반드시 조경이 필요하다고 했고, 아직 멀었다고 했다. 거꾸로 정원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단어이며, 정원을 연상하면 집, 가족, 행복 같은 좋은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조경이 연상되지는 않는다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원도 조경입니다. 아, 그렇겠네요. 광장도 조경입니다. 아, 네. 가로수 심는 것도 조경입니다. 그렇지요. 산림을 가꾸고, 하천을 살리는 것도 조경입니다. 그래야겠지요.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박승진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설계를 공부했다. 조경설계 서안에서 오랫동안 설계 실무를 했고,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겸임 교수로 조경학 관련 수업을 맡고 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조경’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조경', 왜 자꾸 의심받는가? 여러 국내외 조경 전문인들의 저작을 통해 알 수 있듯이,1 이름에 대한 불만과 의심은 한국 조경 전문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건축가 찰스 왈드 하임(Charles Waldheim)은 하버드 GSD의 조경학과 학과장 시절 쓴 논문의 결론에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가 두 단어의 조합에서 비롯되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프랑스어의 페이자지스트(paysagiste)에 가장 근접하는 랜드스케이피스트(landscapist)로 바꾸는 것을 제안했다.2 스스로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로 칭하고, 맨해튼 북부 리뉴얼 등 큰 규모의 도시 프로젝트를 주도하기 시작했던 옴스테드조차 “랜드스케이프라는 말도 별로, 아키텍처라는 말도 별로, 그 두 개의 합성어도 별로”3라고 했다니, 대체 문제가 뭘까. 아마도 우리가 다루고 싶은 일의 ‘스케일’ 그 자체가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큰 규모의 프로젝트일수록 협업하는 전문가 모두가 자기 전문성을 주도해야 한다. 항상 같이 일하는 건축, 도시계획, 도시 설계, 토목 등에 비해 연식이 짧고 규모도 작은 조경 분야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려면 더 많은 난관을 뚫어야 한다. 아마 옴스테드도 그랬을 것이고, 오피스박김도 그렇다. 하지만 옴스테드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이것을 내 직업의 공식 이름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조경의 아버지’께서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 준이 명칭에는 문제가 없다. 직군(profession)과 전문인(professional)은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알렉스 크리거(Alex Krieger)는 미국의 이상주의가 어떻게 도시 공간에 구현되었는지를 다룬 책 『언덕 위 도시(City on a Hill)』를 통해 미국의 도시화에서 1세대 조경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19세기 중반 이후 옴스테드를 비롯한 미국 조경가들을 “행동에서는 사회개혁가, 정신에서는 로맨티스트, 그리고 야망에서는 유토피안(social reformers in action, romantics in spirit, and utopians in ambition)”4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들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도시인의 일상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의 여러 문제를 예측하고, ‘자연의 도시화Making Nature Urbane’(크리거가 조경에 대해 서술한 장의 제목)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전문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그렇다면 수목학과 도시를 배웠고, 1:10 스케일과 1:5,000 스케일의 평면/단면을 모두 그릴 줄 알고, 토목 엔지니어와 수리 엔지니어를 어떤 경우에 부를지 알고, 간단한 건축 구조도 배웠고, 생태학의 기본을 알고, 경관을 대하는 인간의 행태를 배운 우리 전문 직군에 대한 현 사회의 요구와 기대는 무엇인가? 현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소양을 가진다면 우리를 뭐라 부르던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어떤 이름을 가진 어떤 직업인도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의해야 하는가? “서로들 조경이 ‘이것’이라고 정의하지만, 사실 조경의 매력은 정의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과 정의로운 도전 의식에서 비롯되지요. 당신에게 조경은 무엇입니까?”라는 박윤진(오피스박김 대표)의 질문에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는 “첫 번째는 정원 예술(garden art), 두 번째는 조경 엔지니어링(landscape engineering 물, 토양, 식물상 등을 다루는 자연공학), 세 번째는 공공 공간 데코레이션(public space decoration)입니다”라고 대답한다.5 회저가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지 다시 질문해 보고 싶지만, 현재 오피스박김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과 내가 GSD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 내용의 대부분을 이 세 카테고리 중 하나, 혹은 두세 개의 합으로 설명할 수 있고, 굳이 하나로 정의하거나 부르려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뭐라고 불리는 것 자체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2001년의 박윤진이 조경의 ‘매력’이라고 말했지만, 현 시점 한국의 조경 전문인에게는 이 애매함을 걷어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성의 결여를 예술성 혹은 유연성이라고 포장하다 보면, 지금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일들마저 힘들게 쟁취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설득하고 만족시켜야 할 발주처가 있고 그 결과물이 사회적 요구와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후변화 시대인 만큼 오히려 예술보다는 엔지니어링에 가까워져야 한다. 물론 여전히 결과물의 공간 경험과 아름다움은 우리 전문성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관을 만든다’는 의미의 ‘조경’은 오히려 ‘건축’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보다 더 포괄적이고, 이 시대에 적합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예를 들어, 우성백·배정한, “조경은 Landscape Architecture인가”,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2016, pp.11~12. Charles Waldheim, “Introduction: Landscape as Architecture”,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87~191. 2. Charles Waldheim, 위의 논문. 3. Victoria Post Ranney, ed.,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5. The California Frontier 1863–1865 ,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p.422. 4. Alex Krieger, City on a Hill ,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p.153. 5. 박윤진·김정윤, “Personality: Conversation with Adriaan Geuze (1)~(2)”, 『환경과조경』 2001년 7월호~8월호. 김정윤은 박윤진과 함께 2004년 로테르담에서 오피스박김을 설립, 2006년 서울에 사무실을 개소한 이래 민간과 공공 분야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2019년 가을, 하버드 GSD 교수(Assistant Professor in Practice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임용되어 교육과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내 이름은 알렉산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더 매그너스
어 그래, 조경아. 이름 때문에 고민이라고? 네가 못났으니깐 네 이름도 못난 거지. 왜 이름 탓을 해. 알았어. 잠깐, 농담이야. 이제부터 진지하게 상담해줄게. 네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이유가 있지. 너 원래 미국 출생이잖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네 이름을 너희 할아버지인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가 지어준 건 알지? 그런데 너희 할아버지도 지어놓고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진 않았대. 일단 아키텍처가 붙는 게 무슨 아키텍처의 유사품 같잖아. 친구들이 자꾸 물어봤대. 아파트 건축, 목조 건축, 서양 건축, 빨간 건축처럼 건축의 한 종류냐고. 그런데, 너 원래 이름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었던 건 알고 있니? 원래 네 이름은 랜드스케이프 가드닝(landscape gardening)이었어. 근데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이름이 너무 싫었던 거야. 물론 멋있는 정원사도 있었지. 그러면 뭐해. 정원사라고 하면, 다들 진딧물 잡아주고 잔가지 쳐주는 밥 아저씨를 떠올리는데, 그래서 개명한 거야. 친척들이 난리가 났지. 왜 이름을 멋대로 바꾸냐고. 일설에 의하면 너희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인 복스(Calvert Vaux)가 그랬다는 설도 있는데, 일단 할아버지인 옴스테드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한 거지. 어쨌든 친척 할머니 중 반 렌셀러(Mariana Griswold Van Rensselaer)라고 목소리 큰 분이 있었는데, 새 이름을 엄청 싫어하셨대. 그래서 지금 이름이 낫다고 할아버지가 엄청 설득했다고 하더라고. 이름이 가드닝이면 평생 놀림 받는다고, 차라리 이름에 아키텍처가 들어가는 게 낫다고. 여기서 하나 궁금해질 거야. 왜 하필 남의 이름인 아키텍처를 가져다 썼을까? 그래 너랑 친한 건축이. 걔 이름이 아키텍처야. 걔가 원래 너희 할아버지 친구 손자였거든. 원래 그 집안도 별 볼일 없었어. 할아버지는 석공에, 아버지는 목수였거든. 그런데 얘가 커서 엄청 잘 나가는 거야. 부잣집 애들하고 같이 놀고 잘 나가는 예술가들도 인정해주고. 그래서 옴스테드 할아버지도 네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거지. 네가 어릴 때 맨날 형, 형 하면서 건축이 쫓아다녔잖아. 맨날 걔 말투도 따라 하고, 똑같아지고 싶거든. 그 사람의 자리, 위치까지 말이지. 이런 걸 상징적 동일시라고 해. 하지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아질 수는 없지. 넌 건축이가 아니니까. 그런데 건축이가 진짜 무서운 애거든. 얘가 뜨니까 석공이었던 걔네 할아버지, 목수였던 아버지까지 무시하고 모르는 사람 취급했거든. 그게 근사한 직업은 아니니까 좀 창피했던 거야. 그러다 보니 걔네 할아버지랑 친했던 너희 집도 완전히 무시했어. 정원사나, 목수나, 석공이나 고상해 보이진 않았거든. 그런데 막상 너로서는 그게 안 되지. 건축이랑 똑같아지려니깐 너의 근본을 부정해야 하고, 그렇다고 따라 하려는 걸 이제 그만두려니까 이름도 바꿔가면서 건축이를 롤 모델로 살아온 너의 과거도 부정해야 하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게 된 거지. 너는 지금까지 건축이의 욕망을 네 욕망인 줄 알고 살아왔단 말이야. 그런데 막상 그 욕망이 네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는 이미 너의 고유한 욕망은 없는 거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게 히스테리야. 네 이름이 싫은 건 바로 전형적인 히스테리의 증상인 거지. 재미있는 건 네 한국 이름 조경은 엄밀히 말해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번역어가 아니야. 뜻은 통하긴 하지만 사실은 다른 말이지. 번역하자면 경관 건축이 되어야 하잖아. 영어는 두 단어인데, 네 한국 이름이 한 단어인 것을 봐도 이건 완전히 다른 거지. 더 재미있는 건 뭔지 알아? 조경은 한국 전문 분야 이름 중에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쓰는 이름이야. 일본에선 조원, 중국에서는 원림이라고 하거든. 한국 사람 대부분은 일본도 싫어하고 일본 이름은 더더욱 싫어하는 거 잘 알 거야. 그런데 지금 우리가 쓰는 전문 분야의 이름들은 100년 전에 만든 새로운 일본어거든. 도시, 공간, 윤리, 사회, 민주. 지금 우리가 쓰는 전문 용어는 전부 서양어를 번역한 일본어인거지. 건축만 하더라도 원래 일본에서는 조가(造家)라고 했어. 그런데 바꿨어, 건축으로. 왜냐하면 제대로 된 서양 번역어가 아니었으니까. 일종의 콤플렉스였거든, 일본이 한번 서양이랑 붙었는데 도저히 이길 수 없단 걸 깨달아. 그래서 일본은 철저히 동양은 열등하고 서양은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돼. 아예 일본을 서양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지. 그러니깐 원래 자신들이 쓰던 말은 열등한 것이고 서양의 말은 우월하게 되어버려. 그래서 요즘의 일본 조경가들은 원래 자신들이 쓰던 조원이란 이름 대신 서양 그대로의 란도스케푸(ランドスケープ)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때 나타나는 증세가 뭐라고 했지? 맞아, 이것도 일종의 히스테리야. 그런데 히스테리라고 해서 너무 걱정할 것은 없어.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대부분의 한국 전문 분야의 이름들은 죄다 히스테리 증세를 수반하거든. 그것도 이중의 콤플렉스로 인한 히스테리 증세가 나타난 거지. 첫째는 서양의 이름을 욕망해야 하는 히스테리. 둘째는 서양의 것을 욕망해야 하는 일본의 이름을 욕망하는 히스테리. 그런데 조경은 영어 이름의 번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니야. 완벽히 너의 고유한 이름이야. 그런데 웃긴 건 뭔지 알아? 너는 너 혼자 콤플렉스가 없는 것이 또 콤플렉스가 되는 거야. 남들은 콤플렉스가 두 개나 있는데, 나는 왜 없지? 나도 서양 이름 제대로 따라 하고 싶고, 멋있는 일본어 이름이면 좋겠는 데 나만 내 이름이야. 그런데 막상 그 서양 이름을 보면 남의 이름을 따라 한 거야. 따라 해도 콤플렉스, 안 따라 해도 콤플렉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냐고? 지젝Slavoj Žižek 형이 한 말이 있어.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그냥 살아. 정 이름이 짜증나서 못 살겠다면, 알렉산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더 매그너스로 이름을 바꾸든가. 너는 지금 네 이름이 진짜 너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너는 호랑이인데 이름이 야옹이인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게 이름과 본질의 문제가 아니거든. 저기 꼬리를 흔들고 있는 동물이 뭐지? 그래, 멍멍이야. 여기 노랗고 두툼하게 생긴 건 뭐지? 명란 계란말이지. 그런데 넌 뭐지? 이 질문을 던지는 너는 멍멍이, 명란 계란말이랑은 달라. 쟤네는 그거라고 부르는 이름이 기표고, 그 대상이 기의야. 그런데 넌 그렇게 기호화가 되지 않아. 너는 이름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지. 넌 주체야. 네 가 주체라는 점이 개, 계란말이랑 다른 점이야. 그런데 주체가 뭐냐고? 위대하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형이 “주체는 세상과 본질 사이의 거리다”라고 말씀하셨지. 거리가 뭐지? 그치,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서 주체는 빈자리의 형식에 불과해. 이 비어 있는 주체의 자리가 바로 너야. 보통 사람들은 대상이 있으면 이름이 있고 대상과 이름이 합쳐지면 기호가 된다고 생각해. 아니거든.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면 왜 히스테리 증세가 나타나고 강박증이라는 게 있겠냐. 의미는 소급적으로 발생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게 그런 의미였다고 알게 되는 거라고.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첫사랑은 나중에 보니까 그게 첫사랑인 거야. 더 쉽게 이야기해줄게. 엄마를 한 번 생각해봐. 떠오르는 엄마의 의미가 있지? 5살 나 혼내던 우리 엄마, 19살 수험생 뒷바라지하던 우리 엄마, 22살 군대 갔을 때 울었던 우리 엄마. 지금 네가 생각하는 엄마의 의미는 지금의 네가 예전의 기표를 관통하면서 생기는 거야. 과거 기억의 산물인 거지. 결국 모든 의미는 사후에 만들어질 수 밖에 없어. 라캉Jacques Lacan 형님이 『에크리Ecrits』(1966)에 그렸던 그래프를 그대로 그려볼게. 가로지르는 S는 이름이야, 이게 기표지. 이름은 그냥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런데 어떤 상징을 거치기 전의 주체 △가 기표를 관통해. 소급적으로 말이야. △가 기표 S를 관통하는 그 지점에서 의미가 발생해. △가 관통한 기표는 뭔가 달라져. 동일한 S인데, 의미가 만들어지고 다른 S'가 되어버리는 거야. 이 과정을 거쳐서 규정되지 않았던 주체 이전의 주체인 △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서 비로소 주체 S'가 되는 거지. 그런데 그 주체는 빗금이 쳐져 있어. 뭔가 결여된 주체라는 뜻이야. 빗금이 지워진 완벽한 주체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가 없어. 그래서 주체인 이상 결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결여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잃어 버려야 할 무언가야.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은 반드시 증상을 수반해. 그러니까 네 이름이 변변찮아서 너의 진짜 의미가 가려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오히려 네가 과거의 이름 S를 소급하면서, 지금의 너 때문에 멀쩡한 이름 S'가 후져지는 거야. 어떻게 이름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냐고? 불가능하지. 그건 주체의 조건이기 때문이야. 완벽한 주체는 애초부터 있을 수도 없어. 무엇인가를 결여해야 주체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살아가라는 거야. 네 이름이 알렉산더 라인하르트 폰로엔그람 더 매그너스가 되어도 결국 넌 열등감 덩어리일 수밖에 없어. 네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건축이라고 자기 이름이 다 완벽하게 마음에드는 줄 알어? 걔도 정신적으로 고민이 많아. 너랑은 좀 다른 문제이지만, 이제 유일하게 남은 길은 열등감을 너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거지. 다시 한 번 더 말해 줄게. 그냥 즐겨, 너의 열등감을. 그 징후를.1 각주 1. 이 글과 관련한 상세한 이론적 분석과 참고 문헌들은 다음 글에서 참조하기 바란다. 김영민, “건축의 얼굴”, 『건축평단』 12호, 2017, pp.12~36.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세종상징광장,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재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주요 설계자로 참여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건축의 경계에서 조경을 묻다
학부에서 건축을, 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건축 매체와 조경 매체 모두에서 일을 했다. 분야를 오고가다 보니 조경 매체에 있을 때는 건축 출신으로, 건축 매체에 다시 오니 조경 출신으로 불린다. 그리하여 양분야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타자의 시선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환경과조경』에서 일하던 초기에 조금 의아했던 건 의외로 ‘조경가’라는 단어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중 매체에서도 잘 쓰이지 않았다. 물론 건축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일간지 등의 대중 매체에서 건축전문가, 건축설계사 같은 단어를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경가 스스로도 조경가라 칭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건축인의 시선 회사의 동료들에게 ‘조경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가볍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기자들은 ‘규모는 다양하겠지만, 식물을 다루는’ 또는 ‘기후 환경/친환경 등’ 시스템적 접근을 하는 업역이라고 답했다. 작게는 화분부터 마당/정원, 오픈스페이스, 공원, (대규모) 놀이터, 워터프런트 등의 작업이 떠오른다고 했다. 막내 기자는 건축학과 학생 때는 조경이 공원처럼 도시적 작업이라고 생각했으나, 요즘에는 ‘플랜테리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실내에서 식물이 많이 보여서 ‘그럼 저것도 조경에 속하는 걸까’ 궁금하다고 이야기했다. 역시 트렌드에 민감한 세대구나 싶으면서도, 학계와 업계의 괴리를 드러내는 현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가 아닌 직원들은 (예상대로) 조경을 가드닝/식재 혹은 정원과 동일시 하는 편이었고, 조경가라는 단어를 낯설게 느끼기도 했다. 건축 전문지를 만들며 결국 자주 접하게 되는 조경은 건축물의 외부 공간이다. 종종 건축가들은 조경가가 화룡점정처럼 적재적소에 식재를 해 건축가가 의도한 혹은 의도치 않았던 장면을 완성하게 되는 데 감탄을 표하기도 한다. 혹은 새로 완공된 건축물의 사진 촬영 시점을 정할 때, 수목이 어느 정도 잎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는데, 소위 ‘사진발’을 위 한 것이지만 건축의 완성의 의미 역시 조경이 부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건축가들에게 조경가의 콘셉트를 듣는 일은 흔하지 않다. 모두 잘 알다시피 조경은 건축물 시공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계획이 시작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조경가가 주도적으로 개념을 펼치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건축물의 외부 공간까지 직접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축가도 있으니, 업역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인접 분야 전문가들 혹은 대중들이 조경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정도는 다르지만 인접 분야 모두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전적 의미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전제 하에, ‘건축(가)’, ‘조경(가)’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조경’의 사전적 의미는 “경치를 아름답게 꾸밈”(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이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말에 따르면 핵심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전에 함께 제시된 용례 “이번에 새로 만든 공원은 조경에 유달리 신경을 썼다”를 보면, 인식이 식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건축은 상황이 다른가? 국어사전은 ‘건축’을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이나 나무, 돌, 벽돌, 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건축가’는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건축 계획, 건축 설계, 구조 계획, 공사 감리 따위의 일을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건축가들 역시 이 사전적 의미가 건축의 문화적 의미를 충분히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계와 시공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건축 자재비가 드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도 설계비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건축 설계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은 조경이나 건축이나 마찬가지로 겪는 일일 것이다. 얼마 전 『SPACE』가 진행한 도시 설계에 관한 좌담에서 한 참여자는 “(도시 설계에 관해) 관리형 지식 생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좋게 보면 도시설계 외연의 확장이고 지식 생산자의 다변화다. 안 좋게 보자면 아무도 전통적 의미의 도시 설계를 하고 있지 않은데 모두가 도시 설계를 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씁쓸한 양면성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쩐지 ‘누구나 조경(에 해당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는 말과 닮아 있지 않은가. 한 건축가는 이러한 현상이 도시, 건축, 조경 등을 아우르는 산업 자체가 불안정한 탓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 영역을 정의하는 데 고심하는 만큼 산업 생태계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김정은은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 『건축인(POAR)』, 『SPACE(공간)』, 『건축리포트 와이드(WIDE AR)』, 『환경과조경(laK)』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SPACE』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건축과 도시,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 여기’의 건축 문화를 기록하고 있다.
[조경, 그 이름을 묻다] 조경이라는 이름의 학과 업의 이인삼각 경기
영어의 랜드스케이프 플래닝(landscape planning)을 우리는 흔히 조경 계획으로 번역한다. 물론 경관 계획도 랜드스케이프 플래닝이라 한다. 랜드스케이프 플래닝의 독일어에 해당되는 란트샤프츠플라눙(landschaftsplanung)은 환경 생태 계획으로 번역한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조경학을 더 공부하려면 생태조경학과와 환경조경학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논문 검색을 해보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랜드스케이프 건축이라 칭하는 논문이 적지 않다. 랜드스케이프가 어원적으로 여러 의미를 지녀서 생기는 불가피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경이 스스로 혼란을 자초한 면도 있어 보인다. 대학의 조경 관련 프로그램의 명칭과 그 커리큘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초반 조경 분야의 공분을 낳은 랜드스케이프 건축이라는 표현은 조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유발된 것인지 의도된 도발인지 혹은 대안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건축 분야조차 조경이라는 용어를 선뜻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중의 인식 속 조경과 전문 직능이나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조경계 안팎에서 제기되어온 문제다. 조경이라는 명칭이 주는 사회적 선입견이 조경 분야의 동향이나 지향점과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소하게는 번역, 나아가 제도, 우리 사회의 변화, 조경 분야의 발전 같은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조경가들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프로젝트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기존 학문이나 업역 분류의 관점에서 조경의 정체성을 단정하기 더욱 어려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올해는 한국 조경이 시작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조경학회는 지난 50년의 성과를 되짚고 다가올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선언’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몇 가지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살펴보면 조경이라는 명칭과 관련된 논의에 약간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경의 정의에 대해 묻자 ‘도시의 숨구멍을 만드는 것’, ‘자연 카페’, ‘힐링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어 주는 일’, ‘내 삶의 배경’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조경 전문가들이 종합과학예술, 외부 환경 조성, 휴식처라고 말한 것과 비교했을 때 일반인들이 조경을 더 감성적이고 현대 도시에서 필수불가결한 분야로 인식한다고 해석된다. 조경의 미래에 관해서도 일반인(82%)과 학생(76%)이 조경 전문가(47%)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업계의 현실에 주목하기보다는 사회적 이슈와 변화 속에서 조경의 미래 가능성을 밝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현대 조경의 활동 영역은 크게 확장되고 있다. 많은 교육 영역이 조경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조경의 범용성과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근 신임 교수진을 중심으로 연구 주제가 세분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개별 연구실의 명칭 또한 상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산/관/학/연’, ‘계획, 설계, 시공, 관리’ 등의 전통적 접근보다는 벽면 녹화 시스템, 생태계 복원, 경관 및 조경 관리 등 사회적 필요에 맞춘 세분된 활동이 나타났다. 그러나 의사 결정이나 정책 수립 과정에 조경의 정체성이나 전문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녹색 인프라 등 대규모 사업에 대한 시대적 필요성은 높으나 실행 사업으로 연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담론보다는 현장에 집중하는 활동이 더욱 필요하며, 세분된 조경 영역과 산업을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미래에는 자연 재해 및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회복탄력성 전략 수립에서 조경의 역할과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탄소 중립, 도시민의 보건과 안전, 코로나19로 인한 문명 위기와 같은 시대적 아젠다를 조경에 통합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조경은 환경, 사회, 경제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과 함께 윤리, 공정, 평등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이유직은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농촌 조경과 지역 개발의 현장에서 활동하며, 국가중요농업유산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조경학회 비전플랜위원장으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선 언’을 준비 중이다.
제3회 LH가든쇼
지난 6월 1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최한 제3회 LH가든쇼가 개막했다. 2018년 세종, 2020년 평택에 이어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열린 이번 가든쇼는 갯벌이었던 검단의 과거 이야기에 주목했다. 광활한 갯벌과 숲이 있는 검단은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산 곳이다. 갯벌은 아무것도 없는 검붉은 벌판처럼 보인다. 하지만 갯벌 주름 속에는 조개와 고둥, 게, 갯지렁이 같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그들을 먹이로 삼는 물고기와 새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사람 역시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이러한 자연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검단의 땅의 기억을 존중하며 쉼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물결을 새롭게 그려보고자 ‘대지의 주름, 자연의 물결’을 주제로 22개 정원을 조성했다. 초청작가정원에는 첼시플라워쇼에서 골드메달을 9번 수상한 영국의 앤디 스터전과 최원만(신화컨설팅), 이주은(팀펄리 L&G), 최재혁(오픈니스 스튜디오)이 초대됐다. 이주은은 제2회 LH가든쇼 작가정원 부문 대상 수상자다. 시그니처가든(1개소)과 작가정원(7개소) 공모는 2021년 9월 15일 공고되어 10월 13일까지 진행됐다. 인접 정원과 공원 시설을 고려한 내부 동선 계획, 공공 정원으로 역할 수행이 가능한 창의적 디자인, 주민 밀착형 커뮤니티 거점 공간이 될 수 있는 실용적 디자인, 지속적 유지·관리가 용이하고 구조적으로 안전한 디자인이 요구됐다. 시그니처가든의 경우 국내 1인, 해외 1인으로 팀을 구성해 검단 제2호 근린공원의 진입부에 공원을 대표할 정원 디자인을 제안해야 했다. 대상지 내 느티나무를 존치하는 방식도 중요 평가 요소였다. 심사 결과 조개껍데기와 서해 연흔을 표현한 이호영(HLD)+앤드류 재크(더플레이밍비컨) 팀의 ‘물의 기억’이 선정됐다. 작가정원에는 김단비(수풀리안), 김수린(CA조경), 박성준(MMM 디자인 스튜디오), 류광하(기로디자인), 오태현(오스케이프 스튜디오), 이양희(스튜디오 천변만화), 최지은(라이브스케이프)의 작품이 선정됐다. 6월 10일 현장에서 진행된 심사 결과 김단비의 ‘그럼에도 대지에는’이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2023년 영국왕립원예협회RHS가 주관하는 가든쇼에 참가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제3회 LH가든쇼] 밸런싱 네이처
‘밸런싱 네이처(Balancing Nature)’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 공존을 꾀하려는 낙관적 노력에서 비롯했다. 인간이 경관에 개입하는 방식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만드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대상지는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높이 차가 2m에 달하는 경사지다. 이 레벨 차를 이용해 공간 전체를 여러 단으로 구성된 테라스로 만들었다. 높이가 높지 않은 작은 단과 계단들은 정원에 들어설수록 점점 자연에 다가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테라스에는 얕은 깊이의 수반을 놓고 식물을 심었다. 대상지의 기존 수목을 보존하되, 그 사이에 새로운 수목을 원래 이곳에서 자라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심었다. 이러한 설계 전략 또한 자연과의 공존을 상징한다. 정원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기하학적 수형의 수목을 선정해 식재했다. 유기적 형태로 정원을 굽어보는 나무는 자연의 중요성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에 반드시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앤디 스터전 시공 팀펄리 L&G 앤디 스터전(Andy Sturgeon)은 1988년 영국에 앤디 스터전 가든 디자인(Andy Sturgeon Garden Design)을 설립했다. 전통적 재료와 시대를 초월한 건축적 특성, 혁신적 식재, 조각적 디자인을 융합해 현대적 정원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첼시플라워쇼에서 골드메달을 아홉 차례 수상한 바 있다.
[제3회 LH가든쇼] 경외원
과거에는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하는 경외의 대상이 하늘이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물순환 시스템이 무너져 이상 기후, 생태계 파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물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검단에서 경외의 새로운 대상이 된 물을 정원에 담고자 했다. 진회색 도장 콘크리트로 담을 세워 경외의 정원, 자연의 정원,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만들었다. 대상지 한가운데의 경외의 정원은 단순하고 현대적인 구조물과 경외의 연못으로 이루어진다. 구조물은 인간의 과욕과 자연에 대한 자만심을 보여주는 요소다. 현대 과학의 산물인 유리섬유 보강 콘크리트를 소재로 사용하고, 인간의 욕심의 결정체를 구조물의 패턴으로 나타냈다. 경외의 연못은 검은색 계열의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연못에 담긴 물은 검단의 검은 갯벌을 상징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잔잔한 물소리는 물을 부드럽지만 두려워해야 하고 더불어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존재로 느끼게 한다.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이 연못에서 넘친 물이 지면으로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는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주은 시공 팀펄리 L&G 이주은은 팀펄리 L&G의 대표다. 정원은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이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으며 다양한 정원을 만들고 가꾸고 있다. 서울여자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를 받았다. 제2회 LH가든쇼에서 ‘청초: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하는 정원’으로 대상을 받았다.
[제3회 LH가든쇼] 자연의 물결
능선에 위치한 대상지에는 크지 않은 레벨차가 있다. 근처에는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본래 숲이었을 이 곳의 능선을 되살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물결을 볼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바닥을 검단의 검은 갯벌을 상징하는 검은 포장재로 마감하고, 그 위에 녹지를 배치해 갯벌의 생명력을 표현했다. 외곽에는 식물을 모아 심어 자연스러운 경계를 만들었다. 공간을 분리하는 요소이자 물을 연상시키는 돌밭과 징검다리를 설치하고, 사이사이에 좁은 철재 다리를 놓아 재미를 느끼게 했다. 레벨이 낮은 공간에는 대나무를 심고 샘을 만들어 물소리를 즐길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했다. 정원의 핵심 요소인 종이배 프레임에는 다양한 자연의 변화가 담긴다. 맑은 날, 폭우가 쏟아지는 날, 흐린 날의 하늘과 노을이 지는 하늘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밤에는 별자리를 담는 화폭이 된다.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다 보면 이들을 흔드는 바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최원만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최원만은 신화컨설팅 대표다. ‘존재만으로 가치를 갖는다’는 디자인 철학 아래 일산호수공원, 청계천, 여의도한강공원, 광교호수공원 등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설계해왔다. 2021 꽃심, 전주정원문화박람회에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정원이 조경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 촉매라고 믿는다.
[제3회 LH가든쇼] 검단선원
신을 모시던 땅, 검단에 대한 의미와 참선의 의미를 모두 갖는 선원(禪園)을 지었다. 검단선원은 바쁜 도시 일상 속에서 잠시 사색을 하며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정원이다. 정원을 회유하고 머무르면서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고 자연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경외를 느낄 수 있다. 초지, 돌담길, 샘, 회랑, 바위와 야생화 언덕, 귀로로 구성된 여섯 개의 소공간이 명확한 시퀀스로 이어진다. 정원은 완만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점진적으로 하강한 뒤 다시 상승하는 동선으로 구성된다. 동선은 부드러운 왕마사로 포장했다. 초지는 탄생을 은유하는 작은 오솔길이다. 생명력이 움트는 고요한 언덕을 지나면 돌담이 안내자처럼 사람들을 다음 공간으로 인도한다. 돌담은 밖으로는 방문객을 인도하고 안으로는 중심 공간을 만들어주는 정원 요소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최재혁 시공 오픈니스 스튜디오 최재혁은 오픈니스 스튜디오 대표로 조경과 공공 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론부터 실제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이고 실천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2016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 부문 금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3회 LH가든쇼] 물의 기억
검단은 생명의 땅이다. 광활한 갯벌과 신성한 숲을 터전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다. 검단이라는 지명도 검붉은 갯벌에서 유래했다는 설, 신이나 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마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갯벌은 아무것도 없는 검붉은 벌판처럼 보이지만, 질퍽한 갯벌의 주름 속에는 조개와 고둥, 게,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고, 갯벌 생물을 먹이로 삼는 물고기와 새들까지 어우러져 살았다. 사람 역시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이러한 자연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한다. 검단이 품고 있는 땅의 기억을 존중하며, 쉼 없이 변화하며 움직이는 자연의 물결을 새롭게 그려보고자 했다. 디자인 모티브 해안 매립 전 검단은 리아스식 해안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골이었고 주변에는 구릉성 산지가 많았다. 간척 후 공업 단지와 주택 지역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수많은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변화하는 경관을 가진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곳이었다. 서해의 갯골, 수많은 바다 생물과 기이한 해안 절경이 다양한 영감을 선사했다. 세 가지 풍경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았다. 첫째는 물결치는 땅과 흔들리는 풀잎이다. 해안의 지형과 식생은 바다와 물결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부드러운 초지 사이에 자리한 단단한 관목과 광엽초화류는 해안 경관의 특징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둘째는 생명과 그 흔적들이다. 미세한 아름다움을 가진 조개껍데기, 고둥으로 인해 생긴 구멍, 진흙 표면의 숨구멍과 모래공은 작은 생명들로 이루어진 큰 생태계를 상상하게 한다. 셋째는 연흔이다. 서해의 얕은 바다의 표면은 잔잔하지만 그 바닥은 역동적이다. 물이 빚은 땅의 주름은 자연의 무상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정원 정원을 대표하는 큰 조개와 갯벌 바닥을 표현한 연흔 정원으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자 했다. 느티나무 구릉과 숲 산책로는 이 정원을 도심 공원 내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기능하게 한다. 조개를 연상시키는 조형적 지형은 방문자를 갯벌의 경험으로 이끌고, 비현실적 스케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면부의 그라스는 도심 속 한적하고 바람이 느껴지는 열린 경관으로 방문자를 서서히 이끈다. 모래가 담긴 중앙부에는 다양한 해안 식물을 혼합 식재했다. 큰 조개는 뻘에 박힌 빈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동선과 그 내부의 갯정원으로 구성된다. 점차 높아졌다 낮아지는 유기적 형태의 지형은 방문자들이 모래 위를 걸어 동굴을 지나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만나도록 안내한다. 연흔 정원은 발을 담그고 걸어볼 수 있는 폰드다. 갯벌의 연흔을 콘셉트로 한 이 폰드의 바닥 포장은 바람에 물결치는 얕은 물 위에 빛의 산란 작용을 이용해 흥미로운 표면을 만들어낸다. 폰드 한편에 앉을 수 있는 시설을 두었다. 기하학적인 바닥 패턴은 겨울철 물이 담겨 있지 않을 때에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명 정원의 낮과 밤을 갯벌의 조류에 빗댔다. 밀물에 비유한 낮은 자연광이 정원 내 조경 요소와 구조물을 어떻게 조각하는지에 집중한다. 썰물에 비유한 밤이 되면 갯벌의 생태계가 바닷물이 빠진 펄에 그대로 드러나듯, 낮과는 또 다른 정원의 모습들이 역동적인 조명 연출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갯벌을 불러내기 위해 조명은 정원의 유기적 형태를 강조하고, 자연의 힘이 만드는 규칙적 입체 패턴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며, 공간을 점유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조명은 정원 곳곳의 인공물, 자연을 강조하는 악센트 조명과 함께 방문자들이 길을 찾기 쉽도록 돕는다. 주요 동선과 경사지, 계단에는 독립형 볼라드 조명과 난간 조명을 두었다. 정원 한쪽에 보존한 큰 나무에는 투사등을 설치하고 나무 아래 앉음벽에 선형 LED를 삽입해, 수목의 존재를 강조했다. 조명은 수경 시설을 강조하기도 한다. 큰 조개의 다리 옆으로 떨어지는 물을 부각하기 위해 폭포수 뒤의 벽을 밝혔으며, 연흔 정원 바닥의 울렁이는 주름에 비춰지는 조명은 해질녘 강렬한 빛과 긴 그림자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효과를 낸다. 또한 염생 식물이 햇빛, 염분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에 견디며 발생하는 극적인 변화와 바다 조류의 패턴을 추상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모래가 깔린 곳에는 벤치로 쓸 수 있는 맞춤형 조명 기구를 설치했다. 이 조명은 조류의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빛 패턴을 모래 바닥에 표현하고, 낮에 흡수한 태양광의 데이터를 분석해 그 결과에 따라 다른 색상의 불빛을 내뿜는다. 브리지 벽에 설치한 발광 다이오드는 갯주름을 형상화한다. 밤이 되면 이 빛나는 폴리카보네이트 모듈은 특별한 이벤트나 축제의 배경이 되어준다. 설계 이호영·앤드류 재크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 오피스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과 함께 HLD를 설립해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으로 대상지의 공간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해법을 제공하고 있다. 앤드류 재크(Andrew Jaques)는 멜버린 대학교에서 건축 디자인과 계획을, 대학원에서 조명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더플레이밍비컨(The Flaming Beacon)에 합류해 주거, 부티크 호텔, 대규모 상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파주 라이트 페스티벌에 조명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제3회 LH가든쇼] 그럼에도 대지에는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가꾸는 것이다.”(박준, ‘광장’)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가꾸는 대신 울타리에 가둘 생각에 빠져있다. 대지는 생명의 기원이자 수많은 생명체가 어울려 사는 곳이지만, 인간은 홀로 대지의 주인인 ㅡ것처럼 행세한다.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가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식물 한 포기, 풀벌레 한 마리에게 양보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대지의 주름은 ‘연결’로, 자연의 물결은 ‘원’으로 해석했다. 펼침과 접힘의 반복된 형태를 가진 주름은 구역을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관계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길과 같다. 접힙과 펼침으로 생긴 물결은 반복된 시간을 선형 공간에서 원으로 그려낸다. 각 원은 분리된 영역을 가졌지만, 모여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원형 구멍이 뚫린 디딤판으로 동선을 만들고, 유럽 미장 특유의 색감이 돋보이는 벽으로 공간을 둘러쌌다. 좌우 대칭을 이룬 동선은 출입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벤치와 그늘막을 설치해, 구멍 안에서 자라는 식물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수의 단단한 나무줄기를 통해 내면의 단단함을 표현하고, 풀줄기로 불안정하지만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이벤트성에 그치는 단일 수종의 식재 패턴에서 벗어나 봄부터 겨울에도 감상할 수 있는 지피·초본류를 식재해 계절감을 더했다. 설계 김단비 시공 수풀리안, 숲을위한주식회사 김단비는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수풀리안에서 숲에 대해 배우고 있다.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다.
[제3회 LH가든쇼] 심연풍경
다양한 생명이 모여 사는 갯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정화 작용이 숱하게 일어난다. 흔히 깊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한 심연을 정화 능력을 갖춘 갯벌처럼 치유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숲, 갯벌, 고인돌 등 검단의 대표적 풍경 위에서 생명력 넘치는 식물과 빛, 바람 등 자연 요소에 의해 생동하는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내면을 위로하는 심연의 풍경을 선사하고자 했다. 조형 가벽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가벽의 중첩을 통해 위요감과 더불어 깊이감을 불어넣었다. 메탈 체인으로 만든 투과성 높은 가벽은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과 동시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역동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메탈 체인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일렁이는 바람의 소리는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오태현 시공 오스케이프 스튜디오, 마이조경, 쌔즈믄 오태현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비오이엔씨와 스튜디오일공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오스케이프 스튜디오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2017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구)진주역 복합문화공원 설계공모에 참여했으며, 2017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 작가정원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제3회 LH가든쇼] 비포 선셋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 방향에는 강릉이, 정서 방향에는 인천이 있다. 인천은 매년 해넘이 축제가 열릴 만큼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갯벌의 주름 사이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이 붉은 노을빛을 반사시키며 낭만적인 경관을 만든다.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과거 검단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대대적 간척 사업으로 인해 과거의 지형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잠시 1860년대로 돌아가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던 갯벌과 검단의 풍경을 정원을 통해 떠올려 보고자 했다.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자연의 지형을 구현하기 위해 콜라주 기법으로 평면을 구상했다. 갯벌은 녹지로, 바닷물은 포장으로 표현했다. 바닥은 선형의 화강석 판석으로 구성되는데, 각 판석의 한쪽 면은 비스듬히 깎여 있는 형태다. 이로써 정원에서 서쪽 방향을 바라볼 때만 경사면에 닿는 햇빛이 반사되어 석양빛이 바다와 만났을 때의 풍경을 만들게 된다. 경사면은 윤광마감으로, 다른 면은 버너마감으로 처리해 반사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을 구분했다. 윤광마감으로 된 바닥을 밟으면 기러기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나 잠시 바다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원 끝에 설치된 기울어진 벽은 검단의 하늘을 담은 장치다. 벽의 바닥을 따라 조명을 설치하고, 스폿 조명이 벽 가운데를 비추도록 두어 밤이면 해질녘 석양의 모습을 연출하게 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김수린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와이엠 일렉트로닉스, 채움 김수린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정량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종로구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판교 창조경제밸리 도시첨단산업단지 기본 및 실시설계’, ‘DIGICO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실험적 조경 프로젝트를 즐기며, ‘GIF 드론해커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을 수상했다.
[제3회 LH가든쇼] 자연으로 돌아오는 시간, 회원
개발로 인해 사라진 검단의 흔적을 되살렸다. 사라진 검단의 옛 흔적을 되새기며, 갯골과 구릉에서 찾은 해안선과 대지의 주름을 정원으로 담아냈다. 굴곡진 지형은 작은 구릉과 물길, 웅덩이가 되고 다양한 미기후와 생명을 불러온다. 돌릴 때 ‘딸깍’ 하는 소리가 나는 회전문을 통해 진입 시 극적 전환을 연출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골과 구릉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레 건너며 풀과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빗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소생물의 삶을 마주할 수 있다. 목재 루버로 만든 퍼걸러 안쪽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배치하고, 밖에서도 정원 내부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퍼걸러 상단에 창을 냈다. 목재 특유의 색은 정원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최지은 시공 초신성, 탐라는 정원, 디자인공감대 최지은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라이브스케이프에서 일하고 있다. 2021년 제2회 서울식물원 식재설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안성민, 신영재와 함께 디자인 그룹 ‘초신성’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제3회 LH가든쇼] 뫼비우스, 순환의 땅
갯벌은 해와 달의 인력, 지구의 자전과 같이 자연의 순환 에너지로 발생하는 대지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것들은 우주적 생태계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순환의 의미를 잊곤 한다. 검붉은 갯벌의 기억을 순환의 고리를 의미하는 뫼비우스 띠와 생생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세 개 레이어를 통해 자연에 감싸져 있는 인간을 표현했다. 맨 아래층 자연에 해당하는 지면에는 이끼, 고사리 등의 음지 식물과 숙근초를 식재해 야생의 자연이 가진 생동감을 표현했다. 지하고가 높은 자작나무는 맨 위층의 자연을 의미한다. 시야 확장을 위해 관목 식재를 지양하고, 자작나무의 흰색 수피를 통해 내후성 강판과의 색감 대비를 연출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류광하 시공 기로디자인, 공간시공 에이원, 성산기업, 더그린 류광하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기로디자인을 설립해 활동 중이다. 2012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제9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작가정원을 조성했다.
[제3회 LH가든쇼] 지렁이의 대지 바느질
자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지나친 향과 색은 얼마나 짙고 푸를까? 밤낮으로 변화하는 풍광을 사람이 아닌 지렁이의 눈높이에서 보고자 했다. 지렁이가 흙과 돌, 풀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만든 길, 대지의 숨구멍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공간을 공유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과 자연의 짙은 향, 생명의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지렁이는 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는 콘셉트다. 지렁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정원으로 표현했다. 자연의 변화를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보행로 높이를 지면보다 낮게 조성하고, 가장자리를 따라 서서히 높아지는 플랜터 벽을 만들어 깊이감을 더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박성준 시공 그린부라더 박성준은 MMM 디자인 스튜디오 소장으로,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와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을 거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잇는 디자인을 추구하며, 생각하고 구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탐닉하길 좋아한다. 2018 태화강 정원박람회 쇼가든 부분 공동참여작가로 금상을 수상했다.
[제3회 LH가든쇼] 기화요초, 신성한 숲의 물결
조선시대 검단을 처음 밟은 외국인이 보았을 갯벌의 너그러움과 신성한 숲 자락에 자생하는 초목의 풍경을 구현했다. 굴곡진 갯벌을 형상화한 지형 위에 한반도 자생종 식물군의 조합으로 이뤄진 기화(구슬같이 아름다운 꽃)와 요초(옥같이 고운 풀)가 서식하는 신성한 두 개의 숲을 조성했다. 갯벌과 숲을 은유하는 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도시적 풍경이 된다. 전체적인 지형은 약 0.75m부터 약 1.1m까지 높이가 다양하다. 완만한 경사를 통해서 빗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게 했으며, 마치 갯벌을 걷듯이 익숙지 않은 보행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언덕 주변을 청고벽돌로 포장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양희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채움, 와이엠 일렉트로닉스, 카미가든웍스 이양희는 가천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조경그룹 이작과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21년 스튜디오 천변만화를 설립했고, 다양한 분야 간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도시 공간 내 지속가능한 여러해살이풀 식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설계에 적용하는 이론의 실무화를 추구한다.
율량 금호어울림 센트로
율량 금호어울림 센트로는 청주시 율량동 신라타운을 6개동, 748세대 규모로 재건축한 단지다. 인근에 초, 중, 고등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있고, 단지 앞으로는 청주시 청원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널찍한 율량천이 흐른다. 봄이면 벚꽃이 피어나는 무심천과 수변공원, 내덕생활체육공원, 운천공원을 비롯해 청주 백제유물전시관 등 역사·문화 시설도 가까이 있다. 이러한 지역 고유의 풍경과 자연을 매개체로 삼아 율량의 도시와 역사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시간유적 최근 곳곳에 들어서는 아파트와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 개발로 인해 지역 특성과 그 땅이 가진 기억과 역사가 흐릿해지고 있다. 이에 주목해 율량의 풍부한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유적(time henge)을 콘셉트로 설정했다. 시간유적은 영속적인 시간 속의 경관을 뜻한다. 단지를 거닐며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율량이라는 지역과 땅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자 했다. 각기 다른 테마의 공간을 분산 배치하기보다, 시간유적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담은 공간들이 일련의 거대한 녹지로 인지되게 만드는 전략을 세웠다. 타임리스 그린 율량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중앙광장 ‘타임리스 그린’에는 녹음이 가득하다. 생태계류, 생태연못, 미러폰드를 조성해 인접한 율량천이 단지 안으로 흘러든 것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크고 작은 수목과 어우러진 다양한 수경 시설은 더운 여름에도 청량감을 느끼게 하고 탁 트인 열린 자연 경관을 선사한다. 수경 시설과 함께 놓인 커다란 돌은 율량의 유적과 선돌을 상징한다. 주변으로 누운 형태의 소나무와 수형이 독특한 소나무를 심어 자연의 풍경을 담은 독특한 수 경관을 완성했다. 예술이 펼쳐지는 갤러리 단지 중앙광장을 감싼 기다란 생태계류를 이용해 과거 율량에 있었던 역참(말을 바꾸어 타던 곳)의 풍경을 담았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원과 다양한 예술 작품을 담은 갤러리 정원을 단지 곳곳에 배치했다. 티하우스와 부대시설, 중앙광장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은 실외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박윤경 사람과나무 사진 유청오 조경 기본설계 선엔지니어링 조경 특화설계 사람과나무 시공 금호건설 조경 시공 영림산업 놀이, 휴게, 운동 시설 스페이스톡, 그린프리즘, 청우펀스테이션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봉로 94번길 61 대지 면적 29,640m2 조경 면적 11,098m2 완공 2022. 3.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는 1999년 설립된 조경설계사무소다. 자연의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을 모토로, 20년간의 노하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로운 풍경을 빚어내며 조경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설계 디원
설계 철학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꽃 사이를 벌이 드나들고. 아기들 공원에서 뛰놀 때. 가슴 두근거린다. 모든 것 공경스러워 눈 가늘어진다”. 얼마 전 작고한 김지하 시인의 연작시 중 ‘새봄’의 여섯 번째 시다. ‘꽃’과 ‘벌’ 그리고 ‘아기들’을 시적 언어로 삼아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시인의 소망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의 궁극적인 설계 지향점과 많이 닮았다. 자연의 생태계가 작동되게 하고 그곳에서 사람이 어우러지고 또 그저 바라보며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울림이 생기는 장소를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가치를 두고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에 안도해도 될 것 같다. 우리 설계의 이상향은 마지막 시구처럼 공경스러워 눈이 가늘어질 정도의 감동이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그 추억을 만날 기대 또는 경험하고 싶은 분위기,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다시 발걸음하고 싶은 곳을 남기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욕심이 큰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소박한 꿈이다. 그렇다면 그런 장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첫째, 땅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잠재된 물리적 특징과 무형의 흔적들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세심하게 설계로 풀어가는 단초로써 그 땅의 기억과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한다. 둘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대상지를 이용할 다수의 객관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며, 소수 또는 개인의 니즈와 취향,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에 근거한 프로그램, 기능, 심미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시간의 감각을 읽어야 한다. 이 감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시점으로서의 시간이다. 시류에 맞는 삶의 패턴과 사람들의 욕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양, 기간이 만드는 변화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예측해 설계하고, 시간의 변화에도 설계의 본질이 유지되도록 고민해야 한다. 물론 다년간의 설계 경험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시간의 예술로 의외의 효과를 얻거나 반대의 경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특히 살아있는 식물을 비중 있게 다루는 분야이기에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항상 부족하단 생각에 늘 진지하게 인식하고 담아내려 하고 있다. 흥미롭게 진행한 프로젝트, 공동 주택과 수목원 최근 가장 흥미롭게 진행한 프로젝트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잘 해오고 보람 있게 느끼는 점,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 작업의 대부분은 주거 프로젝트다. 도시의 일상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집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매일의 일상을 마주하는 곳이기에 그 가치와 무게를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특히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이용자의 욕구 충족을 위한 프로그램, 삶의 질을 높이고 커뮤니티 활성화를 유도하는 환경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빠른 발전으로 생활 환경이 첨단화됐더라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갈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 도심 외곽의 정원 있는 집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공동 주택의 조경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좀 더 비중 있고 규모 있게 다뤄져야 한다. 서초그랑자이: 강남의 하이엔드 단지지만 이웃에게 열려 있는 따뜻한 단지를 추구했다. 서초그랑자이는 서초 무지개 아파트를 재건축한 현장으로 2015년 건설사의 수주 경쟁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조경 디자인을 맡았고, 수주 성공 후 특화설계까지 진행하면서 완공까지 6년여 동안 함께했다. 수주를 위해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했고, 건설사가 과감하게 동 1개를 비우는 결정을 한 덕분에 도심에서 보기 힘든 넓은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조경, 건축, 외관, 인테리어 모든 공종이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다수의 공간을 모델링으로 완성해가며 짧은 시간 내에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각적인 디자인을 밀도 높게 스터디해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프로젝트 성격상 시간적 압박감은 있었지만 공종 간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함께 고민했다.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심미적인 디자인 능력을 키우는 기회가 됐다. 실시설계를 진행하면서 오픈스페이스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뮤니티 반대편에 외곽을 둘러싸는 구조의 스카이 워크를 계획했다. 이로써 단조로울 수 있는 평지의 대상지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이용자에게 보다 풍부한 경험을 선사했다. 비 오는 날은 회랑을 거닐고, 맑고 쾌적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지상 3m 높이의 스카이 워크에 걸어 올라가 푸른 오픈스페이스를 산책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으로 2021 서울 유니버설디자인 대상에서 광장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사적 공간의 공적 사용을 위한 디자인 해결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외부인 누구나 공공 보행 통로를 통해 중앙 오픈스페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 또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시선의 산책과 전망을 유모차를 탄 아이와 보호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인들도 부담 없이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결과물이라서 만족감이 컸던 프로젝트였다. 안산그랑시티자이: 안산그랑시티자이는 1, 2단지를 이어서 현상설계를 통해 특화설계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6,600세대의 대규모 단지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산업 중심의 구도심에서 벗어나 보다 쾌적한 생활을 위해 이주할 주민들의 욕구를 단지 자체에서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설계 방향이었다. 마침 사회 이슈였던 소확행과 삶의 질에 대한 욕구를 북유럽의 휘게(hygge)라이프의 지향점으로 녹여내 여유로운 삶이 일상이 되는 리조트 같은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거점 커뮤니티 개별 동들과 정원들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소단위 커뮤니티를 만들고, 단위 공간을 확장해 단지 전체에 소속감과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했다. 이웃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녹여내기 위해 조성한 생활 가로, 캠핑장, 텃밭 등이 형식적 구색 맞춤이 아니라 입주민이 실질적으로 이용하고 활발히 즐기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입주 몇 개월 뒤 현장을 답사했는데, 숲 속 휴게 공간에서 차를 나눠 마시던 몇몇의 주민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으며 차를 나눠줄 테니 마치고 들르라며 말을 건넸다. 잠깐 스치는 여유로움이 우리에게도 전이됐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는 여유와 담소가 있는 숲 속 작은 공간들이 참 아늑해 보였다. 청계 센트럴포레: 현장 일정과 발맞춰 완성도를 높인 단지다. 청계 센트럴포레는 DL이앤씨의 특화설계로 진행했으며, 프로젝트 시작 5개월 만에 조경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프로젝트라 첫 미팅을 현장에서 하며 숨 가쁘게 진행했다. 대규모 단지는 아니었지만, 단지 순환 동선을 따라 만나는 각각의 정원을 다양한 시설물과 식재 패턴으로 디자인해 매번 새로운 정원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촉박한 일정 중 현장 상황의 이해, 미술 장식품을 공간 디자인으로 연계시키기 위한 협의 및 위치 조정, 입주 예정자 및 현장 의견을 조율하며 작업해 나갔다. 공간을 모델링하며 눈높이에서 보이는 공간감과 조형감을 고려해 수경 시설의 높이와 단의 조형, 티하우스의 방향과 위치, 가벽의 높이 등을 결정했다. 현장에 방문해서 문제의 소지는 없는지 확인하고 결정해 바로 도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거의 공사 시점과 맞물려 설계를 진행하다 보니 시설 및 구조물 등 하드웨어 부분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식재는 수급 상황과 현장 여건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했고, 대목들만 어느 정도 위치 시킨 상태에서 현장 검수 요청을 받아 현장에서 협의하며 대체와 보완 수종을 검토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좀 더 자세한 식재 보완 자료를 작성하기도 했다. 가능한 여건 내에서 설계 의도를 최대한 완성도 있게 구현한다는 시공사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촉박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까지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립세종수목원 수목원은 유전 자원 보존과 자원화를 촉진하며 학술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관람하고 휴식하는 위락지의 기능도 큰데, 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심의 공원형 수목원을 지향할뿐 아니라 도시의 그린 인프라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기본설계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각 테마에 맞는 정원별 특화설계를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각 테마 정원에 대한 주제, 이용성 및 도입할 전시 수종의 분류 의도 등을 고려해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시설, 구조물 디자인까지 발주처와 매주 협의해 상세 도면을 작성해 나갔다. 특히 어린이 정원은 일반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체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지형을 이용한 모험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 키 높이에 맞춰 하천의 흐름을 모사하여 물의 변화를 놀이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수목 울타리로 만든 미로 놀이 등 다양한 놀이 요소를 접목한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웰컴 공간인 방문자 센터는 수목원 얼굴에 해당하는 공간인 만큼 경관뿐 아니라 가치 있는 수목 선정이 중요했다. 적절한 수량 확보가 가능한 이색 수종 선정을 위해 식물 재배원에서 직접 수목을 조사하며 고민한 과정은 값진 경험이 되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 입구 상징 조형물 작업이 완료됐는데, 금속 선재의 작품이다 보니 존재감을 부각할 보완 작업이 필요했다. 조형 마운딩을 제안하여 작품의 콘셉트와 규모가 더 잘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거의 2년 동안 많은 피드백과 촉박한 일정에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노력한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중요시 여기는 것 설계사무소의 실체가 무엇일까? 디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그 결과물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디원이라는 설계사무소의 실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설계사무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디원이라는 실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생물과 같이 시간과 함께 진화하며 만들어온 우리만의 개체 특성으로 설계의 대상지와 시류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구성원들도 개인적 성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설계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구성원들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디원의 설계사무소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은 현장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때로는 페이퍼 워크에서 멈추기도 하고, 다양한 이유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면서 다른 색이 가미되고 명도와 채도가 조절되기도 하지만, 설계 의도가 반영된 색상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열정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고 다시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디자인을 구현하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상황을 조율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까지도 설계이기에, 그 과정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즐기는 문화가 존재하는 설계사무소가 되고자 한다. 앞으로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일 IT, 예술, 공연 등 다양한 전문 분야와 협업하여 새로운 조경 트렌드를 제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 이슈인 메타버스 개념을 공간에 접목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확장 및 가상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공간 창출 및 기능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다수의 특화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설물의 조형적 효과와 공간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식재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는데. 국립세종수목원 프로젝트에서 생소하고 다양한 식재 수종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식물, 그 자체를 주 프로그램으로 한 다양한 정원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다년간 디자인 경험이 농축된 감각적인 공공 치유 정원도 만들고 싶다. 도시의 건조한 일상 중 마치 카페에 들러 차 한잔하듯이 자연의 생명력을 밀도 높게 음미하며 일상의 치유를 감당하는 미니 정원을 거리의 중간에 배치하는 시리즈물로 생각해봤다. 확장되는 도시가 자연의 생명력으로 채워지고 사람에게 그 에너지가 전이되는 선순환을 희망해본다. [email protected] 조경설계 디원(D.ONE)은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한다. 단순한 설계를 뛰어넘어 재미있는 상상과 독창성이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며,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용하기에 편리한 실용적인 외부 공간을 설계한다. 화려함이나 세련된 기교, 상징적 가치만으로 치장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현하며, 일상의 모든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한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5년 1월 17일에 시작하여 17년이 지난 현재 17명이 함께 하고 있다.
[모던스케이프] 혼다 세이로쿠의 도시공원 계획
일찍이 근대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서구 사회에 대한 흠모와 동경이 유별났다. 많은 지식인이 유럽으로 건너가 선진 서구 사회를 경험하고 운영 노하우를 습득했으며 귀국해서는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근대화를 견인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 도시는 ‘진보한’ 근대 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도시부흥계획을 구상했다. 간토 대지진 이후 도쿄의 재건 사업을 이끈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오사카 시장을 역임하며 오사카를 오늘날의 상업 도시로 키운 세키 하지메(關一), 유럽 각지를 돌며 근대 도시계획의 법제와 정책을 공부해 자국의 도시계획 제도를 수립한 이케다 히로시(池田宏) 등은 근대 도시를 실천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 1세대 주역이다. 도쿄 역사 설계로 잘 알려진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와 오사카에서 주로 활동한 가타오카 야스시片岡安 등은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을 결합한 영국풍 건축물을 일본에 소개했다. 조경 분야의 주역으로는 혼다 세이로쿠本多靜六(1866~1952)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경제학과 임학을 기반으로 국토 전반의 녹지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 공원 전문가다. 혼다 세이로쿠(이하 혼다 박사)는 일본 최초의 근대 도시공원인 도쿄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 1903년 개장)을 설계하고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등 조경학과 임학에 큰 기틀을 마련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절, 일본 전역에 수많은 도시공원을 조성해 ‘공원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계발, 안정된 자산 관리와 퇴직 후 사회 환원 등 인생을 성실하고 계획적으로 운영해서, 일반인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한 자산가이자 처세에 모범이 되는 인물로 더 유명하다.1 혼다 박사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의 이력에 한반도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서울 남산의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경성부가 서울 남산을 대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혼다 박사에게 구체적인 안을 요청했다. 그는 191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자 다무라 쓰요시(田村剛)와 함께 남산을 현장 조사하고 1917년 3월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2을 발표했다. 혼다 박사의 남산공원 설계안에는 남산이 공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몇 가지 주요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산림 황폐로 훼손된 남산을 사방공사 등으로 안정화한 후 식재 등의 조경 설비를 적절히 진행할 것, 둘째, 공원 도로와 시설을 남산의 환경 조건에 맞게 배치해 고유한 남산의 풍경을 십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남산공원에 도입할 시설에 맞는 운영 방법을 취해 공원 관리에 힘쓸 것 등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京城府,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1917. 서울역사편찬원, 『국역 경성부사 제3권』, 2014. 渋谷克美, “国ソウル「南山公園」と本多静六-公園設計にみる本多静六の国際感覚”, 『本多静六 通信』 17, 2008, pp.5~9. 손용훈·서영애, “1917년 경성부 남산공원설계안의 삼림공원 개념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4), 2012, pp.23~31. 그림 출처 그림 1. newscast.jp/ 그림 2~3. 京城府, 1917,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조경이 콘텐츠인 미술전의 실험, 인공자연 전
우리가 마주하는 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미지다. 최적의 콘셉트를 꺼내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 하나의 선을 도출하기 위해 그린 곡선과 직선, 마우스와 키보드로 만든 수많은 도면. 이 같은 중간 작업물들은 최종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여정에서 쉽게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안동혁(HLD 소장)은 설계 과정에서 탄생한 이미지들에 주목했다. 그는 “원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설계에서 정말 과정이 중요하다. 이미지를 설계 최종 단계의 레프리젠테이션을 위해 만드는 방식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중간 과정으로서 이미지 작업의 효용 가치 또한 높다. 설계안이 좋은 공간으로 구현될 것인지 검토하기 위해, 또는 공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판단하고 보완하기 위해 이미지 작업을 하기도 한다. 실 제로 좋은 공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향해 도 좋은 사진이 나온다. 설계로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5일까지 삼청동 가모갤러리에서 열린 안동혁의 개인전 ‘인공자연: 그리고 그 무대의 뒷편’은 중간 작업물의 가치를 보여주는 전시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의 작업물은 안동혁이 디자인 행위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인공의 자연을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통념적 자연 또는 조경의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인공적 결과물, 완성된 현실의 공간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작업물,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중간 작업물과 예술적 영감을 현실화하기 위한 스터디 작업물까지 다양한 층위의 작품이 전시됐다. 그는 인공자연 전을 “조경이 콘텐츠인 미술전의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인공자연이란 무엇이고, 그의 실험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아직 한낮의 햇볕이 뜨겁지 않은 6월의 어느 날, 안동혁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인공자연 전의 초석은 오래 전부터 놓여 있었다. 안동혁은 조경 설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중간 과정물이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 전시의 콘텐츠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여러 사람과 논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운 좋게도 그 자리에 함께한 가모갤러리의 관장이 이전에 하지 않았던 독특한 전시가 될 것 같다며 초청 전시를 제안했다. 원대한 비전을 품고 기획한 전시는 아니었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안동혁은 “조경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대중과 조경의 접점이 생겼다는 점이 큰 의의다. 전시 중 일반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조경이 이런 것도 하는 줄 몰랐어요’였다”며 “이번 전시가 미약한 시작이지만 전문 조경인과 일반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 조경과 미술 두 영역의 연결고리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추모정원
고 민병갈(Carl Ferris Miller)이 설립한 천리포수목원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물종(2022년 5월 기준 16,840분류군)을 보유한 수목원이다.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민병갈은 1962년 우연히 천리포에 방문했다. 그 곳에서 만난 마을 주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땅을 매입한 일을 계기로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을 만들게 된다. 1979년에 한국으로 귀화했고 식물 보존과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쳐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라 불렸다. 그는 식물들의 피난처를 마련해 천리포수목원을 인간 중심이 아닌 공간, 식물들의 천국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2002년 민병갈이 별세한 후에도 천리포수목원은 그의 철학을 이어 받아 식물 중심의 수목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그를 기리는 민병갈 추모정원을 조성했다. 지난 2022년 4월은 민병갈 서거 20주기였다. 이를 맞아 KB금융그룹의 후원을 받아 민병갈 추모정원을 1,080m2의 면적으로 재조성했다. 2021년 12월부터 수목원 임직원 의견 수렴, 외부 전문가 자문을 진행하고 2022년 2월 중순 설계를 완료해 4월 6일 공사를 마쳤다. 민병갈 추모정원은 천리포수목원의 밀러가든(Miller Garden) 중심부에 위치한다. 주변 공간과 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얻어 ‘민병갈의 길, 설립자와의 동행’이라는 콘셉트의 정원을 조성했다. 민병갈의 나무 공간, 추모 공간, 휴게 공간을 거닐며 식물을 감상하고 때로는 쉬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식물이 행복한 공간’을 꿈꿨던 민병갈의 뜻을 잇기 위해 식물이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수목원을 만들고자 힘썼다. 대상지의 지형, 토양, 향 등을 분석해 추모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식물을 선정하고 시간이 지나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식재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월간 『환경과조경』 창간 40주년 기념 조경비평상 가작: 거리에 대한 권리
들어가며: 비非–건폐지라는 언어 거리는 대화의 수단이다. 어떤 간격으로부터 생산된 공간은 기호나 음성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발화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이 대화에 있어 상대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1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이 공간은 ‘침묵의 언어’로, 사람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 기관을 동원해 거리와 공간이 담고 있는 정보를 인지하며, 그것을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이는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인공적으로 생산된 사물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도 활용됐으며, 인간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는 도시 공간의 적정성을 분석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도시를 이루는 길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건폐지는 현대 도시가 지녀야 할 공공성에 대한 발화들이 전개되어온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다. 한국 도시가 이 같은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근래의 일로, 그 구사력의 수준은 도시를 구성하는 외부 공간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대상: 역삼동 231번지의 공개공지 2021년 1월, 테헤란로 한가운데 조성된 거대한 공개공지는 ‘한 세대를 거친 공개공지 제도가 현 시점에서 어떤 종류의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역삼 센터필드’(2021)가 들어선 테헤란로 231번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르네상스 호텔’(1988)이 있던 곳이다. 30여 년의 터울을 두고 다른 제도 조건 아래 세워진 두 건물의 대지 점유 방식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공개공지에 철거된 호텔의 외벽 일부와 그 경계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개공지 의무화 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은 고층으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형태로 설계되어 상하층의 면적 차이에 따른 몇 개의 옥외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비슷한 시기 서울역 앞에 세워진 ‘게이트웨이 타워’(1991)와 르네상스 호텔 맞은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상록회관’(1991)에도 나타난다. 승효상은 상록회관과 르네상스 호텔의 코어(승강기, 피난 계단 등으로 구성된 수직 동선)를 중심으로 저층부까지 여러 겹의 켜가 중첩되는 형식이 지닌 제스처가 당시 백지 상태였던 테헤란로 주변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테헤란로에 들어선 건물들은 공개공지의 설치 의무화라는 새로운 제도적 조건 아래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달라진 거리와 공간은 전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구현하게 됐는가, 아니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모종의 공공적 가치를 훼손했는가. 이 질문은 곧 각 건물이 생산한 도심 내 외부 공간을 보행자와 시민이 얼마나 자유롭게 전유할 수 있는지, 그로써 이루어지는 ‘침묵의 대화’가 얼마큼 풍요로울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은 공개공지 제도의 출처와 한국에 도입된 배경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공개공지 제도는 뉴욕의 ‘조닝 레볼루션’(1960)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도 입안자는 그로부터 이 년 전 완성된 미스 반 데 로에의 ‘시그램 빌딩’을 통해 국가 기관뿐 아니라 사적 소유의 대지와 건물 역시 공공 영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시그램이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다른 건물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지점은 완결된 입방체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미스는 전체 대지 중 건물 전면의 상당 면적을 비워둔 채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광장으로 계획했다. 이는 대지 대부분을 건물로 점유하고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면서 테라스를 형성하는, 소위 웨딩 케이크 형태의 건물과 시그램 빌딩의 가장 큰 차이였다. 이후 뉴욕에는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도 수많은 공개공지가 설치돼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그램과 웨딩 케이크의 차이는 곧 공개공지 제도가 도입되기 전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과 그 이후의 건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과 같은 것이다. 승효상의 말처럼 저층부의 더 많은 대지를 점유함으로써 만들어진 옥외 공간이 도시 가로에 기여하는 하나의 ‘켜’로 기능하려면, 그로부터 보행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충분한 접근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반대의 경우 이는 단지 내부 공간의 질을 제고하는 장치이며, 공공 보행로에 밀착된 거대한 담장으로 세워질 뿐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승강기와 계단 등 수직 동선이 건물 중심부에 위치해 테라스로의 직접적 접근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내부를 경유해야만 하는 르네상스 호텔이 주변의 도시 가로와 보행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은 특별히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사정 또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동안 한국 도시에서 건물 상부의 옥외 공간은 위험한 차도와 거대한 건물로 과밀해진 서울에서 공원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 장소로 여겨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도심 내 외부 공간에 대한 조경계의 논의 또한 ‘옥상 공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2 김수근 역시 1970년대 여의도 마스터플랜의 보차 레벨 분리 계획과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 등 도심지 대단위 개발 계획을 통해 입체화된 도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은 국가의 재정적 한계로 인해 번번이 계획안으로 머물렀다. 결국 도심지 외부 공간의 개편은 개별 필지 단위의 민간 개발을 통해 공개공지라는 전혀 다른 양상과 목적 하에 이루어졌으며, 그 배경에는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행사가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군부 정권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도시 미관을 국제적 수준으로 정비할 것을 지시했고, 당시 서울시가 발주한 ‘서울시 주요 간선도로변 도시설계안’은 한국 도시에 적용 된 공개공지 제도의 모태가 됐다.3 외부인에게 가장 노출이 많았던 길목인 을지로와 마포 일대에 집중적으로 각종 면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필지 단위의 재개발이 일어났다.4 이 시기 『환경과조경』은 ‘빌딩조경’5 섹션에서 도심 내 비–건폐지를 다뤘는데, 당시 공개공지 조경 설계는 대부분 기본 배치 계획 이후 사후적 개입에 머물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때 현대적 도시 경관이라는 외양은 사유지의 공유와 이를 누릴 시민의 권리보다 우선되는 가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성된 공개공지의 모습은 도시 공간의 주인으로서 시민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이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거대한 조형물 또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가 폐쇄되고 주차장과 영업장으로 점유된 공개공지에서 시민들이 머물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르네상스 호텔 철거 이후에 대한 기대는 이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분명한 건 압도적 규모의 공개공지에 의해 과거 호텔의 옥외 공간이 차지했던 대지의 상당 부분이 보행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 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 요원들에 의해 통제된 행동만이 허가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센터필드의 공개공지에서 자전거를 끌고 걷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다.6 서울은 또 하나의 그럴듯한 도시 경관을 얻게 됐지만,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건물이 얻는 용적이나 높이의 혜택에 비해 공개공지가 도시 가로에 기여 하는 바는 아직 미약하다. 사유지의 일부로 만들어진 이 장소에 대한 권리가 시민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홀, 최효선 역, 『침묵의 언어』, 한길사, 2013. 2. 민현식, “생활하는 장소로서의 옥상조경”, 『환경과조경』 1984년 10월호; 윤승중 외, “옥상조경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 3. 강병기, “이달의 건축환경문화 작품해설”,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2006년 9월. 4. 박정현, “올림픽 파사드: 체면, 가면, 입면”,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국립현대미술관, 2021. 5. 황기원, 이규목 외, ‘빌딩조경’, 『환경과조경』 1987년 5월호. 정영선의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6건의 빌딩조경 사례를 소개한 전후로 약 2년간 12개호에 걸쳐 빌딩 외부 공간을 다뤘다. 6. 건축비평가 이언 보든(Iain Borden)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비지배적 공간 전유의 한 예로 들었다. …… 지배 세력은 이윤지향적 이용의 논리, 동질화의 목표, 도시 공간의 통제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저항적인 이용을 특히 ‘스케이트 스토퍼(skatestopper)’라는 형태로 저지하려고 한다. 우베 레비츠키, 난나 최현주 역, 『모두를위한 예술?』, 두성북스, 2013. 정평진은 건축 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을 쓰며 설계경기 아카이브 ‘스코어러(scorer)’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2022 조경비평상 심사평
창간 40년을 기념해 월간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2022 조경비평상’에는 네 편의 평문이 제출됐다. 지난 6월 2일 본지 세미나실에서 남기준 편집장, 박승진 편집위원, 배정한 편집주간이 독회를 가지며 심사한 결과, 정평진의 응모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은 일상의 글이나 논문과 다르며 게다가 조경비평은 조경이라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공간 또는 현상을 예리하게 기술, 해석, 평가하는 작업이므로 꽤 어려운 글쓰기 장르다. 하나의 조경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덩그러니 놓인 중성의 물체가 아니다. 작품을 생산한 설계자와 설계 작업의 과정, 작품이 구현되는 장소의 성격과 맥락, 장소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환경, 장소에 쌓인 시간과 역사, 공간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 당대의 라이프스타일과 미감, 이 모든 것과 얽혀 있는 공간 정치 등이 뒤엉켜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 편의 글에서 이 모든 것을 다 포착해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구체적인 주제와 선명한 관점, 일관성 있는 논리 전개와 고유한 주장이 있어야 비평의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에 응모한 네 편의 원고는 예년에 비해 글쓰기의 수준과 글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지만 주장하고자 하는 논점을 명료하게 끌고 나가지는 못했다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럼에도 정평진의 응모작은 “가장 이야기다웠고”(박승진) “대상이 구체적이며 글 전체를 이끄는 구성력과 선명한 문제의식이 있었으며”(배정한) “비평의 목적 자체가 분명했다”(남기준)는 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글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듯, 거리는 도시의 대화 수단이다. 도시를 이루는 길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의 비–건폐지는 도시의 공공성에 대한 발화가 전개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다. 정평진의 평문은 비–건폐지를 대표하는 공개공지의 한국적 현실과 과제를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공개공지라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추적하고 발견한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한국 조경의 최전선을 이끌어갈 비평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가작 수상작과 경합을 벌인 응모작은 임한솔의 “과거로 짓는 내일의 공원”이었다. 이 글은 “공원 위에 공원을 그리는 일”, 즉 최근의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을 둘러싼 다각도의 이슈를 짚는다. 심사위원들은 보존과 활용을 가로지르는 미묘한 논제를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기술한 것이 이 글의 미덕이라고 보았으나 결론부의 주장이 약해 기사처럼 읽힌다는 점을 아쉽다고 평가했다. 전효정의 “랜드스케이프 없는 랜드스케이프아키텍처: 경관에 무관심한 조경 설계 태도”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다루고 있으나 그 연결고리가 충분치 않고 예증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삭의 “맵(map)과 신(scene) 사이: 생성적 평면을 넘어 관계적 입체를 향하여”는 글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튼튼하지 않아 논리의 비약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하지 못한 세 응모자 역시 예비 비평가로서 부족함없는 자질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 다음 ‘조경비평상’의 문을 꼭, 다시, 두드릴 것을 권한다. [email protected]
[기웃거리는 편집자] 리틀 포레스트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받는 질문이다. 가슴을 울린 명대사,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예상치 못한 반전, 여운을 주는 엔딩 등 좋아하는 이유를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영화도 있다. ‘리틀 포레스트’(2018)가 그렇다. 리틀 포레스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 집에 돌아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아버지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던 혜원은 어느 날 빈집에 놓인 편지를 발견한다. “혜원이가 힘들 때 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돌연 떠난 엄마가 남긴 글을 보며, 자신도 이 시골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며 집을 떠났지만, 서울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며 살아간다. 준비하던 임용고시는 떨어지고 함께 준비하던 남자친구는 시험에 합격한다. 지칠 대로 지친 혜원은 서울 생활을 뒤로한 채 고향으로 내려간다. 혜원은 고향에서 스스로 키운 작물들로 직접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간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는 보고 싶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8)이 막을 내려 엉겁결에 본 영화였다. 재미없진 않겠지라고 걱정한 게 무색하게, 암흑한 상영관의 조명이 켜지고 나서야 끝났다는 걸 깨달았을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TV에서 이 영화가 방영되고 있으면 시작 부분이 아니더라도 리모콘을 내려놓고 다시 보곤 한다. 재탕, 삼탕해도 여전히 지겹지 않다. 하지만 좋은 점을 설명할 길은 찾지 못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왜 나의 인생 영화 목록 1위를 차지하게 됐는지 말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답을 찾지 못해 커다란 벽 앞에 선 기분이었는데, 최근 숨겨져 있던 벽의 문을 찾았다. 얼마 전, 제3회 LH가든쇼가 진행된 인천 아라센트럴파크를 방문했다. 아파트 단지 틈새에 놓인 근린공원에 ‘대지의 주름, 자연의 물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 사이를 누비며 작가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정원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정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정원을 살펴봐야 설계자의 의도가 보인다고 했던가. 인터뷰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정원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특히 최원만 대표(신화컨설팅)의 ‘자연의 물결’에 설치된 하얀 의자에 앉아 종이배 프레임에 담긴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꽤 감격스러웠다. 잠깐이었지만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하늘을 보며 아무 걱정 없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말에 영화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켰다. 볼만한 콘텐츠를 한참 찾다가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봤다.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장면 속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혼자 있는 혜원을 위해 재하가 오구(개)를 데려와 준다. “조그마한 게 무슨 위로가 된다고……” 혜원은 중얼거리고 재하는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며 오구를 남겨둔 채 집을 나선다. 고민이 많을 때면 종종 집 근처 산, 공원에 찾아가 풀멍(풀을 바라보며 멍때리기)을 한다.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자연에 기대어 있다 보면 걱정에서 해방되곤 한다. 영화 속 장면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행복이 어디 숨었는지 알려주는 힌트 같았다. 이젠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소소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거든요, 그리고 저의 작은 숲이 되어주기도 해요. [email protected]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상을 번역하다
페이퍼 워크, 프랙티스, 보이드, 매스, 마운딩, 라이프스타일……. 매달 나를 괴롭히는 단어의 목록이 길어진다. 『환경과조경』의 편집 지향점 중 하나는 외래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것인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신기하게도 조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나열한 단어들을 한국어와 짝지어 보자면 페이퍼 워크-서류 작업, 프랙티스-실행/실천, 보이드-커다란 빈 공간, 매스-덩어리, 에지-가장자리, 마운딩-언덕 만들기, 라이프스타일-생활 양식 정도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뜻이 빗나가거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외래어+한국어 형태의 합성어가 등장하는 경우 더욱 곤란하다. 건물이나 공간의 규모에서 비롯한 감각을 흔히 ‘매스감’(매스+감각)이라 표현하곤 한다. 커다란 건물이 주는 느낌, 거대한 건물의 크기가 자아내는 분위기, 큰 건물이 주는 감각, 머릿속으로 몇몇 문장을 나열하다 죄 없는 교정지를 노려 보며 빨간 펜을 내려놓는다. 그대로 두자, 결정하고 다음 문장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마음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 건지 속이 껄끄럽다. 영어의 동사를 명사처럼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마운딩’이 딱 적절한 예인데, ‘마운딩을 만들었다’와 같은 오류는 ‘언덕을 만들었다’로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다면 ‘조형 마운딩을 제안했다’는 어떨까. 물론 ‘조형적 언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로 고쳐 쓸 수 있지만, 필자 고유의 문체와 본래 문장 길이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살리며 글을 다듬기 쉽지 않다. 결국 빈도수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언덕 만들기보다 마운딩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뜻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마운딩을 조경 동네에서 통용되는 보통명사로 삼기로 마음먹는 식이다. ‘세상을 번역하다’는 번역가 황석희가 명함 뒷면에 새긴 글이다. 이 감성적인 문장은 번역의 본질 을 꿰뚫는다. 과장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치환하는 걸 넘어 어떤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고 이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일에 가깝다. 대상에 대한 탐구 없이 진행한 번역은 세상을 왜곡한다. 영화 ‘데드풀’의 자막 작업을 하며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황석희에게 “엑스맨이라는 작품은 1960년대 인종차별을 메타포로 만들어졌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영화니 돌연변이 사이에선 괴물이란 말 사용하면 안 된다”는 메일이 도착한 것처럼.1 한창 이번호 특집을 점검하던 중, 오픈스페이스의 순화어 발표 소식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단어는 ‘열린 쉼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오픈스페이스는 “건물·구조물 등이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비건 폐지로 유지되는 토지를 총칭해서 말하며, 공원‧ 녹지를 포함한 녹지공간의 개념”이며 “공원‧녹지‧운동장‧유원지‧공동묘지 등 공지가 많은 시설과 농지‧산림‧하천‧호소 등 건축물로 건폐되어 있지 않은 비건폐지를 의미하는 광의의 녹지”이니 말이다.(토지이음 용어사전)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국민 2천여 명을 대상의 설문에서 93.1%의 응답자가 열린 쉼터가 적절한 순화어라는 데 동의한 점이었다. 오픈스페이스는 조경뿐 아니라 도시, 건축 분야에서도 널리 쓰는 말이다. 대중이 의미가 대폭 축소된 열린 쉼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우리가 만든 오픈스페이스가 그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했다는 뜻일 테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광장, 공원, 산림, 녹지축은 서로 상관없는 각개의 공간으로 읽힐 뿐이다. 사방으로 트여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의 카테고리는 슬프게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단어의 의미는 소급적으로 발생하고, 사후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48쪽). 그러므로 조경의 의미는 조경이 행한 일, 즉 조경이 만든 공간과 시스템에서 비롯할 것이다. 결국조경의 의미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조경의 이름으로 좋은 것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궁금하게만드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 해답이지만 모범적 해결책은 가장 명쾌하고 기초적이며 해냈을 때 큰 효과를 낸다. 움베르트 에코는 ‘번역이란 실패의 예술(translate is art of fail)’이라 말했다.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건 단어 주인의 몫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 각주 1.송길영, “[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번역가 황석희”, 포브스 코리아, 2018년 5월 23일.
[PRODUCT] 숲길에서 만나는 휴식, 조선왕릉 퍼걸러
조선왕릉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2020년부터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에 위치한 40기의 조선왕릉을 잇는 600km 순례길이 개방됐다. 태릉에 설치된 예건(YEKUN)의 퍼걸러는 이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조선왕릉의 숲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퍼걸러는 키 큰 소나무를 비롯해 왕릉을 둘러싼 풍성한 숲에 스며든 듯 놓여 있다.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퍼걸러의 절제된 형상은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디테일을 통해 왕릉이 가진 특유의 정취와 장소성을 돋보이게 했다. 개방감이 느껴지는 퍼걸러에 책장을 더해, 숲길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크기에 따라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되는데, 장소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제품을 선택해 활용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느낌을 그대로 살린 창호를 퍼걸러 내부에 설치해 장소성을 극대화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