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리스트
- [에디토리얼]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 1822년 4월 26일,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 조경의 창립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옴스테드의 도시 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들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되어 이제 클릭 몇 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은 이미 2년 전부터 2022년 4월호를 옴스테드 특집호로 엮는 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조경학회와 연계한 옴스테드 세미나, 해외 기관과 공동 주관하는 전시회,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옴스테드 세션 등 초기의 여러 계획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2022년 봄을 맞고 말았다.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특집 ‘옴스테드 200’을 다시 기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그나마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옴스테드 관련 한국어 논문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을 급히 섭외했는데, 마감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모두 흔쾌히 집필을 수락해주었다. 오랜 기간 옴스테드 공원 철학의 형성 배경을 연구해온 조경진(서울대 교수)은 이번 원고를 통해 그의 책과 글에 담긴 공원관을 재해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되짚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복지 개념을 주제로 논문을 출판한 바 있는 김민주(환경과조경 출판‧기획팀)는 이번 특집에서 옴스테드가 남긴 글과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꼼꼼히 목록화했다. 옴스테드의 파크웨이와 19세기 북미의 어바니즘을 다룬 여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해온 신명진(서울대 박사과정)은 옴스테드가 계획한 일련의 선형 공원을 도시 그린 인프라의 선례로 재평가하고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조경사 연구자 두 명도 기꺼이 특집에 참여해주었다. 임한솔(ULC 에디터)은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 두 번의 여행과 작가·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센트럴파크 감독관 시절과 공모전 당선, 위생위원회 사무국장 경력, 전업 조경가로서의 다각적 실천 등 생애 전반과 업적을 살폈다. 김정화(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 4A_Lab 연구원)는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와 ‘옴스테드 어소시에이츠 레코드’, 페어스테드의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 관련 아카이브를 면밀하게 소개하면서 각 아카이브의 배경과 구조적 특징,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까지 개괄했다.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옴스테드 재단,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관련 기관과 계속 접촉하며 다양한 문건을 협조받았고 특히 많은 시각 자료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조금 더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어로 정리된 옴스테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호 특집이 여러 독자들에게, 나아가 향후의 국내 옴스테드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입문 가이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자평해 본다. 1903년 8월 28일,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매사추세츠 주 웨이벌리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특집을 꾸리며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주히 들추다 당시의 부고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부고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트 공원뿐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의 뛰어난 공간들을 디자인한 위대한 조경가”로 시작하는 부고 기사는, 그를 다룬 후대의 그 어떤 전기들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옴스테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담고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 도시 위생과 시민 건강을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 녹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비전을 지향하는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명을 창안하고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직능을 창설한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2년,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조경가들에게 도시와 공원, 사회와 공공 공간이 맺는 함수 관계를 다시 조회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행군과 식물
- 군인 시절 가장 힘든 훈련은 행군이었다. 20년간 끼니와 운동에 소홀히 했던 내 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버티지 못했다. 훈련 중 다친 무릎이 때때로 아팠지만, 부대의 모든 병사는 행군을 해야만 했다.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행렬. 짧은 휴식 시간을 기다리는 긴 발걸음. 그 곁에 있었던 식물을 기억한다. 농지 사이 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개울 옆 풀밭에서 하늘거리던 금꿩의다리, 도로변에 줄지어 피었던 좁쌀풀과 개망초, 그리고 검은 숲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은사시나무. 행군은 힘들었지만 식물은 아름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행군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해도 일은 일.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일도 공평하게 무겁고 기나긴 여정이다. 다만 나는 그 행렬 속에서 식물을 헤아리는 중이라고, 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 글로 대신한다.
- 전주 야호 맘껏숲놀이터
- 어쩌다,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이하 놀이터)와 관련된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놀이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것이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간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어린이였던 시절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적 거리감에 늘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고백하자면 놀이터는 우선순위의 논문 주제가 아니었다. 당시 조경학과에는 여학생 수가 적었고, 소수자의 눈으로 조경학의 틈새를 찾겠다는 무모함이 어쩌다 놀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어린이와 놀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이 놀이터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고 무턱대고 결심했을 땐 지도 한 장 없이 낯선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무작정 연세대학교 아동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드렸다. 다른 과 학생이 놀이터에 관심을 가졌다는 기특함이었는지 길 잃은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모르나 교수님은 낯선 학생에게 첫걸음 떼는 법을 알려주셨다. 연세대학교 부속 교육 기관인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을 소개받아 교사와 대화하고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비로소 어린이의 놀이와 놀이 환경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의 놀이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위험했다. 서울시 어린이집의 실외 놀이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무모한 논문을 쓴 이후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놀이 기구는 화려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각종 인증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바깥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가로서 그 더딘 변화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껴온 터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어떻게든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놀이터는 어느덧 전문가로서, 또 세상의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가 되었다. 맘껏, 놀이를 기획하다 유니세프(Unicef)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동친화도시 사업에는 도시를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아동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 위원회의 매칭펀드로 조성한 아동 친화 공간이다. 어른 혹은 미리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자유롭게 맘껏 스스로 즐기자는 의미로 시작한 ‘맘껏’ 공간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2019)에 이어 전주의 맘껏숲이 세 번째다. 전주시는 놀이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놀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며 야호아이놀이과를 신설해 여러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놀이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덕진공원 어귀에 위치한 맘껏숲은 옛 야외 수영장 부지에 만든 놀이 복합 공간으로 전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놀았던, 놀이의 기억이 두껍게 쌓여있는 장소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놀이터 사업이 주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터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놀이터의 주 이용자에 청소년을 포함하자는 설계팀의 생각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우범화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다양한 발언과 참여의 기회를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율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환경 교육가, 놀이 전문가, 생태학자, 조경가로 구성된 설계팀을 꾸렸다. 설계팀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전주시 아동자문단과의 놀이 워크숍, 숲에서 놀아보는 팝업 놀이터,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하는 맘껏아지트 만들기, 도토리의 새싹을 틔워 만드는 도토리 텃밭 만들기 등 맘껏숲에서 진행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테스트하며 콘텐츠를 만들어갔다. 경험을 통해 놀이터가 적절한 실내 공간과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맘껏숲에도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날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터,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할 수 있는 건축물이 절실했다. 야외 놀이터 사업으로 발주됐지만, 기본 계획에 상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려 넣어 시장에게 놀이터와 연계된 실내 공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그 제안에 공감한 전주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렇게 맘껏숲에 들어설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전주와 덕진공원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지역 건축가가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되어 지금의 맘껏 하우스 풍경으로 이어졌다. 놀이터로서의 건축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덕진공원에 놀러가던 건축가 김헌(일상건축사사무소)은 어느새 세 딸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매주 이곳을 찾는다. 대상지는 약 30년간(1973~2001년) 야외 수영장이 운영되어 전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곳이고, 김헌 역시 그들 중 하나다. 놀이터로 시작한 맘껏숲 프로젝트에 합류한 건축팀은 건축물이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의 일부가 되길 원했고 놀이터의 중심이 아닌 놀이터의 연장으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더듬어 비석치기, 땅따먹기, 두꺼비 집짓기 등 흙,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연이라는 놀이의 재료가 건축물을 구성하는 마감 요소들로 이어졌고 목재(글루램), 노출 콘크리트, 석재로 마감된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맘껏하우스의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다.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실내 공간만 확보해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그와는 반대로 외부 공간과 사이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틈은 이동에 쓰이는 공간, 머물 수 있는 부피가 있는 공간, 시선과 소리가 통과하는 공간이 된다. 틈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규정된 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틈은 놀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박공 글루램 프레임으로 건축물의 형태를 규정짓고 공간감을 갖게 했다. 프레임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 역할을 하며, 각종 놀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가 된다. 그네, 집라인 등 놀이 기구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맘껏하우스의 목표다. 자연에서 놀기 맘껏숲이라는 이름은 덕진공원의 아름드리 개잎갈나무와 대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와 숲, 그리고 연꽃호수라는 풍성한 자연이 놀이를 담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도시의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될 수 있으니, 맘껏 놀 수 있는 숲이 생긴다는 건 더 풍부한 상상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업 초기에 답사한 일본의 플레이파크(Play Park)에서 충격에 가까운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기성 제품 하나 없이 흙과 물, 불과 목재 등 자연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며 도전과 놀이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놀라웠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을 형성한다.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나는 자연에 대한 기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놀이 시설물의 디자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연과 만나는 방식, 그 안에서 펼칠 놀이와 배움의 체험을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숲에서 논다는 것은 자연과의 일상적인 접촉 속에 자연의 변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도토리의 싹을 틔워 도토리 텃밭을 만들었다. 그들이 심은 참나무 묘목이 맘껏숲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지만 공사 기간을 버티지 못해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숲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그들 마음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숲은 아이들 마음에서 이미 태어났기 때문이다. 맘껏숲의 공간 덕진공원의 맘껏숲은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어느 정도의 영역성이 필요하다. 원형 언덕의 능선을 기준으로 맘껏하우스가 있는 놀이터는 주로 어린이 놀이 영역, 호수 쪽이 청소년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계획했지만,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구조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 자발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놀이터가 이어져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 순환 동선과 작은 샛길이 선택의 다양성을 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 구분과 규칙을 허물고 넘나들며 놀이를 발명할 것이다. 슬라이딩 가벽에는 청소년들이 커버 댄스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거울과 낙서벽을 설치했고, 이는 덕진공원의 호수를 조망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대나무숲 터널은 이미 있던 대나무숲 안에 작은 길을 낸 것이다. 맘껏아지트는 청소년들이 디자인하여 직접 제작까지 한 구조물을 존치한 것이고, 트리하우스는 별도의 예산으로 솜씨 좋은 목수들이 만들었다. 놀이 워크숍 때 시도한 밧줄 놀이 시설이 준공 이후 추가 설치됐는데, 좋은 공간은 이렇게 실험을 허락하고 나이 들며 진화한다. 맘껏숲은 운영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공 놀이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전주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야호 프로젝트'의 하나로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터다.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의 숙제 통계청의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2019)에 의하면 전 세계 유소년(0~14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6%인 반면 한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다. 더욱 충격적인 건 2067년에는 유소년 인구가 8.1%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는 점이다. 초저출생 상황에서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에 핵심 요소다. 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중요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이터 환경 역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피해가지 못한다. 작년 말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놀러 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도둑 취급해 경찰에 신고한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어린이가 나이, 지역, 주거 형태, 계층, 성, 장애와 상관없이 충분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한국의 놀이터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한 안전인증제도다. 놀이와 도전의 가치를 상실하고 안전만 강조하는 제도적 구속은 조합놀이대 중심의 틀에 박힌 놀이터를 양산하고 있다. 안전인증은 경직되어 운영되고 있고, 시설물 설치 후에 시행되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디자이너를 위축시킨다. 맘껏숲의 경우, 건축물과 놀이터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초기에는 건축물에서 튀어나온 무지개 다리 끝이 바로 미끄럼틀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그러나 어린이놀이시설로 규정된 미끄럼틀과 건축물이 연결되면 건축물 전체가 안전인증 대상이 된다는 황당한 이유로 디자인이 수정됐다. 안전인증으로 설계안이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네와 흔들놀이 같은 기성품 대신 매달려 놀 수 있는 밧줄과 트리하우스를 도입했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정해진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맘껏숲에는 대신 언덕, 개울과 물웅덩이, 나무, 나무토막, 흙, 놀이집, 낙서벽, 거울 등 놀이 시설뿐 아니라 놀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놀이 시설이 많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긴 시간을 보낸다. 성급한 부모는 주저하는 아이를 보고 이곳은 재미없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른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는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어른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좋은 공간을 제공해줘야 한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안전은 놀이의 가치, 안전과 도전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전주시의 경우,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작년 말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이들이 놀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우려와 놀면서 만드는 소음을 못 견디는 어른들의 불편함이 조례 제정을 지연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충분히, 그리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하니 어린이 놀이터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 본 원고는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에서 발간한 『건축과 도시공간』 제44호 장소탐방에 필자가 김현민, 김헌, 최정인과 함께 작성한 '맘껏숲&하우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놀이의 다양성을 위한 조건들 김아연·김현민 인터뷰 서울의 맘껏놀이터,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에 이어 전주의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가 완성됐다. 하나의 연작처럼 느껴지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아연(이하 아)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어린이 놀이터였고, 그 이후 어린이 놀이터 관련 연구를 몇 개 더 했다. 연구에서 그친 점이 늘 아쉬웠는데, 놀이 관련 이력을 발견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맘껏’은 맘껏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는데,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사교육과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동 권리의 지향점을 잘 담았다고 여기는 단어다. 처음에는 맘껏숲까지 사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출발은 아이들의 놀 권리 증진과 바깥에서 놀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한 아동 친화 공간 사업이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고민하다보니 여러 유형의 공공 공간을 시도하게 됐다. 맘껏놀이터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맘껏광장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맘껏숲은 같은 놀이 공간이지만 맘껏놀이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전주 덕진공원 안에 숲과 호수가 있는 대상지라 자연을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었다. 김현민 소장은 내 꼬드김에 넘어와 맘껏광장 프로젝트부터 합류하게 됐다. 김현민(이하 현) 협업 제안을 받은 시점이 사무실을 연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해보지 못한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만난 게 맘껏광장 프로젝트다. 사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처음부터 크게 와닿은 건 아닌데, 김아연 교수가 제안했다는 점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참 낯설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설계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아 우선 아동에 대한 정의가 나라와 법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떠올리는데, 한국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사람을 뜻한다. 아동에 대한 제한된 인식이 청소년들을 놀 권리 소외 계층으로 만들고 있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의 경우,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했는데 반대가 심했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탈선 장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청소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인식이 커 그들을 설득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다. 청소년 역시 사회의 중요 주체이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도시의 일부분을 청소년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에서 맘껏광장과 맘껏숲이 청소년 놀이 공간의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현 청소년들을 지켜볼 수 있는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맘껏숲의 경우 나무와 트리하우스, 공간을 분할하는 언덕이 시야를 가릴 수밖에 없어 반대가 컸다. 작품을 전시하거나 게시판으로 쓸 수 있는 아트펜스도 설계했는데,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청소년은 참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혼자서 깊은 고민을 하고, 학교가 끝난 늦은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없다. 청소년을 위한 여가 공간이나 놀이에 대한 토론 자체가 부족하다. 아 워크숍을 하며 청소년들이 원하는 공간에 대해 조사했는데, 다양한 의견을 관통한 공통점이 어른들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학업과 진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지만, 어른들에게 늘 관리되고 통제되는 터라 쉴 때만큼은 오롯이 또래들끼리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맘껏놀이터와 달리 맘껏광장과 맘껏숲은 인근에 실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아 놀이 공간은 그릇 같아야 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도록 비어있어야 하는데, 비워놓기만 하면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장치가 필요하다. 맘껏놀이터를 통해 배운 게 많다. 놀이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않아 여러 차례 방문해 그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맘껏놀이터는 동네 놀이터가 아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 있어 동네 아이들보다는 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한번 들러 놀고 떠나는 곳이다. 이 경우 비워놓은 놀이터의 특색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조합놀이대에서 노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다. 조합놀이대가 없는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데, 맘껏놀이터를 방문하는 아이들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주 동선에서 벗어나 있고, 주변에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편하게 앉거나 날씨와 상관없이 놀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다. 카페 같은 실내 시설이 있으면 보호자가 편하게 아이를 지켜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된다. 맘껏놀이터의 경우, 주변에 편의점이 있지만 놀이터와 등을 지고 있고 법적인 문제로 인해 한동안 문을 열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놀이터 쪽으로 유입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놀이터 디자인만큼이나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의 콘텍스트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민 소장과 맘껏광장을 설계하며 아이들이 점유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실내 공간,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는 항상성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맘껏광장에는 구조물 형식의 맘껏카페를 만들었다. 맘껏숲에도 실내 공간을 두고 싶었는데 주어진 예산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작정 전주시장에게 기본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 건물을 그린 도면을 들고 갔는데, 뜻밖에도 공감해주어 맘껏하우스를 추가로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전주시가 생태도시, 놀이터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시의 비전과 맞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다. 현 처음에는 사실 컨테이너 박스를 쌓은 정도의 제안이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예산이 확보되어 맘껏하우스를 짓게 됐다. 아 맘껏하우스를 설계할 건축가를 선정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늘 프로젝트를 하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작업을 하고 떠나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전주에서 활동하는 김헌 소장(일상건축사사무소)을 섭외하게 되어 기뻤다. 김헌 소장이 어렸을 때 덕진공원에 자주 들러 논 경험이 있어 그 의미가 더 컸다. 맘껏하우스는 맘껏숲과 같은 디자인 언어를 쓰는가. 아 디자인 언어가 같다기보다 놀이터와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계를 했다. 건물 자체가 놀이 공간의 일부처럼 녹아들기를 바랐다. 맘껏하우스 2층의 경우 반 이상이 외부 공간이다. 도로변에서도 진입할 수 있도록 1층에 큼직한 입구를 많이 두었고, 가장자리에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게 했다. 현 맘껏하우스와 맘껏숲의 프로그램이 촘촘히 잘 엮여있다. 건축가는 건물 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과 안과 밖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 다양한 아이들이 협업할 때 새로운 놀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건물과 놀이 공간을 친구처럼 만들었다. 건축가는 관리 문제로 인해 건물 내부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점을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맘껏하우스 2층에 들어서고 나선형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식의 놀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건물이 끼어 있기를 바랐는데, 신발을 벗어야 하니 그 흐름이 끊기게 됐다. 맘껏놀이터, 맘껏광장, 맘껏숲의 공통점 중 하나가 벽, 거울, 언덕, 미끄럼틀이다. 네 요소를 즐겨 쓰는 이유가 있을까. 아 벽은 공간을 정의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천장이 있건 없건 아지트라고 느껴지는 공간감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벽은 낙서를 하거나 액자를 걸 수 있고, 거울도 설치할 수 있어 여러모로 훌륭하다. 거울은 아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일이 아동 발달에 중요하고,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커버 댄스 연습 등 취미 활동에 활용되기도 한다. 더 자주 사용하고 싶은데 깨지거나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를 촉진하는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높낮이다. 높낮이를 즐기기에 언덕만큼 좋은 것이 없고, 오르내리는 지형을 이용한 놀이 기구의 대표가 미끄럼틀이라 자주 쓴다. 사실 가장 설치하고 싶은 건 그네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 기준에 따라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부지가 작은 경우가 많아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그 점이 아쉬워 맘껏숲에는 건물과 놀이터를 잇는 무지개다리 하부에 밧줄을 주렁주렁 달아 그 밧줄을 엮어 그네처럼 타고 놀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맘껏숲에는 트리하우스를 제안했고, 별도의 예산으로 설치했다. 기존 숲의 큰 나무들을 활용한 기획인데, 아이들이 나무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던 로망의 공간이지 않나. 현 트리하우스는 친구와 속닥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동시에 고지의 역할을 한다. 개인 공간이자 모험을 위한 놀이 시설이다. 아 아이들이 일상에서 오르기 힘든 높이를 트리하우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 아이는 도전하면서 성장한다.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연 속에서 나무와 공존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좋은 구조다. 트리하우스를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놀이 공간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 기구가 필요하다. 난이도가 높으면 당연히 위험하고, 난이도가 너무 낮은 공간은 아이들이 위험을 찾아 이상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게 해 사고 발생률을 높인다. 좋은 놀이터는 놀이의 종류와 난이도가 다양한 곳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겁이 나는 놀이 기구를 보면서 내년에는 올라야지 생각하고 언니, 형을 따라하며 큰다. 오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며 또래 그룹끼리 교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한 교류와 상호 보살핌의 기회를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해주고 싶었다. 평지에 새로운 언덕을 만들 때 겪는 어려움은 없나. 현 지형 스터디를 위한 모형을 크게 만들어 다각도로 검토했다. 언덕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2.7m다. 생각보다 높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능선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공간의 핵심 요소이기에 충실히 스터디했다. 아 지반 침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토를 해 지형을 만드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걱정은 있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안 된다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다. 맘껏아지트가 눈길을 끈다. 단순히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넘어 시공까지 함께했다. 아 나 역시 그렇지만 유니세프는 놀이 공간 계획에 아이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을 만들 때는 청소년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이재영 교수(공주대 및 한국환경교육연구소) 팀을 섭외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맘껏아지트로 해소해주고자 했다. 전주 야호학교 청소년과 함께 디자인하고 지역 목수와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 청소년 주체의 프로그램 운영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 맘껏숲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놀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앵커가 없으면 공간의 주인이 사라진다. 맘껏숲에는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계절과 시간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아 놀이 활동가가 있는 놀이터는 정말 다채로워진다. 그동안 분실과 사고의 위험으로 금기시됐던 블록 놀이를 맘껏숲에서 시도해봤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블록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놀이 활동가가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다. 세 사업을 모두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했는데 도움을 받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있나. 현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 프로그램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고 전부였다. 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으려면 우선 아동권리 전담조직을 만들고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담 조직이 있어도 놀이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마저 없다면 프로젝트가 더욱 복잡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좋은 담당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맘껏광장의 경우 최초 예산이 5천만 원이었다. 기존 광장에 아동권리헌장을 출력해 붙이는 정도의 간략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적어도 6억은 필요하다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던 담당자의 당황 가득한 침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달 정도 연락이 두절되어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구나 하고 체념할 무렵, 담당 공무원이 시의원과 여러 사람을 설득해 일정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갈등을 조정하고, 추가 예산이 필요해지면 여러 단체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맘껏광장 벽에 설치한 거울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출력해 넣었는데, 이는 실시설계 단계밖에서 담당자들의 애정과 의지 덕분에 실현되었다. 현 전주에서는 뜻밖의 일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대상지인 덕진공원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리노베이션되고 있어 맘껏숲에도 전통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말이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설치된 밧줄 윗부분에는 전통 노리개에서 볼 수 있는 매듭을 사용했고, 평상이나 팻말, 벽에 전통 요소을 넣었다. 심의를 통과해야 하니 과도하게 드러나지는 않되 군데군데 전통을 숨겨놓는 방식을 썼다. 아 아이들의 놀이는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보편적 특성을 갖는다. 놀이터에는 놀이만 담으면 되지 성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투영하는 게 불편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상적인 놀이 공간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앞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현 아이디어를 얻고자 일본의 플레이파크에 답사를 갔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진흙탕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부수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맘껏하우스에서 놀이 활동가, 야호학교 교사, 청소년이 모여 매주 목공 체험을 통해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 자체가 놀이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좀 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아 물놀이 공간이라 하면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시설이나 계류, 발을 담글 수 있는 연못을 떠올린다. 하루는 비 온 다음날 맘껏숲에 간 적이 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닥 일부가 진흙탕처럼 변해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은 하자 보수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물이 고인 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 놀이터나 진흙 놀이터가 된다. 놀이터를 설계할 때 늘 성인의 눈으로 공간을 보지 않으려 경계한다.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기회를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실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100퍼센트가 아닌, 덜 디자인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플레이파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많은데 상당히 지저분하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시설이 깨끗하게 관리될 수 없다. 사진이 잘 나오는 깔끔한 공간보다는 아이들이 놀며 망가뜨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현 놀이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참 많다. 놀이터는 아이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놀이터는 아이들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한다. 플레이파크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스스로 놀이거리를 찾아 논다. 고정관념과 정해진 놀이, 법규와 심의가 많다보니 놀이터의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다. 맘껏숲놀이터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아연 맘껏숲놀이터 기본계획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윤승렬, 이현정),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조찬희), 스튜디오일공일 조경 설계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이슬기, 최담희) 조경 시공 호원건설 맘껏아지트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심규태, 조찬희), 야호학교 청소년 및 틔움교사 트리하우스 미즈노 마사유키 + 가사골 교육놀이공동체 목재시설물 시공 쌔즈믄 미끄럼틀 시공 자인 외부 전기 시공 대아전력공사 맘껏하우스 건축 설계 일상건축사사무소(김헌, 최정인) 구조 설계 시너지구조 조경 시공 호원건설 건축 시공 태왕종합건설 건축기계·전기 설계 대화 건축 면적 146.73m2 연면적 178.52m2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316-11(덕진공원 내) 대지면적 4,684.18m2 건축주 전주시청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완공 2021. 5. 사진 김아연, 노경, 일상건축사사무소, 한국환경교육연구소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김현민은 서울시립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미국 SWA 그룹에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 지드앤파트너스에서 폭넓은 실무를 경험한 뒤 2015년 스튜디오일공일을 설립했다.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으로 과정을 강조하는 실천적 디자인을 중시하며, 작은 정원에서부터 주거 단지, 오피스, 공원, 리조트, 골프장 등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한다. 마이크로경관이 살아 있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경관 체험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 옴스테드 200
- 현대 조경의 선구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_ 임한솔 옴스테드의 공원관 _ 조경진 공원으로 만든 도시, 옴스테드의 선형 공원 _ 신명진 옴스테드 아카이브, 기억의 집 또는 아스날 _ 김정화 옴스테드가 남긴 것들 _ 김민주 옴스테드 200, 더 읽을거리 _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지금 이곳에 공 원을 만 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 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1850년대 센트럴파크의 필요성을 역설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1822~1903)의 말을 21세기에 되돌아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공원을 재발견했다. 잔디밭에, 물가에, 작은 벤치에 거리를 두고 앉은 사람들을 보며 도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으로의 최단 시간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옴스테드의 말을 실감했다. 아직 팬데믹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2022년,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1822년 4월 26일 생)을 맞이했다. 옴스테드는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장을 연 선구자다. 현대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했을 뿐 아니라 현대적 개념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기틀을 세웠다. 미국 조경계는 이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본지도 이에 발맞추어 옴스테드의 생애, 주요 저작과 프로젝트, 공원관과 조경론,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을 살펴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격변을 겪고 있는 동시대 도시에 대한 시사점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진행 배정한, 남기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옴스테드 200] 현대 조경의 선구자,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 조경의 아버지 조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첫손에 꼽힐 인물이 있다. 조경의 원어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를 전문업의 명칭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인공이자 도시공원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진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Olmsted, 1822~1903, 이하 옴스테드)다. 옴스테드는 설계가로서 정규 교육이나 도제식 수련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조경가 외에 작가, 저널리스트, 사회 비평가, 행정 관료로도 불리는 등 다양한 일을 수행했다. 심지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조어를 최초로 발명하지도 않았으며, 그 명칭을 오랫동안 공유한 파트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진정한 아버지는 유전자의 원천 그 이상이다. 아버지는 불완전한 개체의 성장과 자립을 지지하는 존재이며 때로는 존경의 대상으로, 때로는 반면교사로 떠오르는 규율 그 자체다. 옴스테드는 여러 직업을 두루 경험하고 설계와 글쓰기, 조직 운영을 종횡무진하며 조경업의 안팎을 살펴보고 그 정체성을 구축해냈다. 옴스테드의 남다른 삶의 궤적은 유동적인 경계를 지닌 직능의 미래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옴스테드가 강조한 픽처레스크(picturesque) 자연미는 조경 직능의 전통이자 한계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로 기리고 추고하게 되는 것은 그의 업적 못지않은 흔적 때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는 미국 전역에 걸쳐 500여 건의 작업을 수행했고 조경가로 일하는 동안 6,000여 건의 보고서와 서신을 남겼다. 옴스테드의 두 아들이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와 하버드 대학교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말하자면 옴스테드는 후대의 조경 종사자들에게 전범과 원리, 인력 체계까지 물려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옴스테드의 후예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기까지: 현장의 배움들 옴스테드는 코네티컷(Connecticut) 주의 하트포드(Hartford)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가문은 하트포드에서 여덟 세대에 걸쳐 살았다. 성공한 포목상인 그의 아버지는 풍경 애호가였다. 유년 시절의 옴스테드는 가족을 따라 뉴잉글랜드와 뉴욕 북부 등지의 경치 좋은 곳으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과 영향을 강조하는 옴스테드의 미감은 이때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풍경을 체험하며 남다른 시간을 보낸 반면,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은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옴스테드는 주로 목사들로부터 교육 받았는데, 예일 대학교 진학에 거의 근접하기도 했지만 옻독이 오르는 바람에 시력 문제가 생겨 학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대학에 다니는 대신 옴스테드는 다양한 현실 경험을 쌓았다. 뉴욕의 포목점에서 일하고 중국으로 무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측량과 화학, 과학적 농법과 농장 운영 등을 익혔다. 옴스테드의 아버지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20대 후반의 아들에게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농장을 마련해주었다. 옴스테드는 이곳에서 농업과 관리 운영의 이론을 실천으로 구현해보았다.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옴스테드의 삶은 조경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미학적, 실무적 측면에서 차근차근 조경 자산을 쌓아가고 있었다. 두 번의 여행과 작가 옴스테드 농장을 경영하던 1850년대 초,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와 만나기에 앞서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을 두 차례 다녀온다. 첫 번째는 1850년에 6개월간 떠난 유럽 여행이다. 이때 옴스테드는 영국 리버풀의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을 방문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옴스테드는 “민주주의 미국에는 이와 같은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공원의 접근성이 모든 미국인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여행에 함께한 친구의 추천으로 옴스테드는 1852년 「뉴욕 타임스」의 전신 「뉴욕 데일리 타임스(New York Daily Times)」로부터 취재 여행을 의뢰받는다.타임스는 옴스테드에게 남부 지방을 여행하며 노예제를 포함한 농업 방식과 경제에 대해 써줄 것을 요청한다. 옴스테드는 1854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부 여행을 다녀왔고 타임스에 일련의 글을 출판하며 이름을 알린다. 옴스테드는 글을 통해 노예제의 서부 확장에 반대하고 남부 지방의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다. 이 무렵 옴스테드는 작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뒤 신생 출판사의 파트너와 유명 월간지의 에디터를 맡기 시작한다. 단행본 출간에도 힘을 기울여 첫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1852)를 출간하고, 두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세 권의 연작을 출판한다(1856, 1857, 1860). 그러나 작가의 운명 대신 조경가의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1856년 출판사 일로 영국 런던을 방문하며 여러 공원을 경험했고, 이듬해인 1857년 센트럴파크의 감독관(superintendent)으로 취업한다. 센트럴파크, 감독관에서 설계자로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 감독관 자리를 얻은 지 몇 달 뒤, 영국 출신 신진 건축가인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1824~1895)가 감독관인 옴스테드에게 센트럴파크 설계공모에 함께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복스는 원래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 1815~1852)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왔지만, 다우닝이 1852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상황이었다. 다우닝은 건축, 경관, 원예 등에서 선구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는 전문가였다. 옴스테드는 복스와 뜻을 함께하며 다우닝이 남긴 생각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전까지 설계 경험이 전무했지만 복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낮에는 감독관, 저녁에는 설계가로서 공모전 준비 작업에 참여한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설계공모에 ‘그린스워드(Greensward)’ 계획을 제출해 다른 32팀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당선된다. 이 제안은 탁 트인 잔디밭을 중심으로 풍부한 식재와 목가적 풍경을 갖춘 동시에 도시와 이용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지면 아래로 꺼진 횡단 도로를 제안함으로써 도시 교통을 고려하면서도 공원의 감상을 저해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공원 내에 분리된 동선 체계를 적용해 이용 행태에 따른 간섭을 줄이고 이용자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정하도록 했다. 센트럴파크는 옴스테드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며 그의 후기 작업에서 구체화되는 설계 원칙들의 시험장이었다 센트럴파크 조성은 19세기 뉴욕의 공공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으로 꼽힌다. 미국인 엔지니어, 아일랜드인 인부, 독일인 정원사, 아메리카 원주민 석공 등 2만여 명의 노동자가 공사에 참여했으며, 암반을 부수기 위해 게티즈버그(Gettysburg) 전투보다 더 많은 화약을 터뜨렸다. 3천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약 3,800만㎥에 해당하는 돌과 흙을 옮겼고 36개의 다리와 아치를 지었으며 11개의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50만 그루의 교목, 관목, 덩굴이 식재됐다. 설계공모 당선 이후 옴스테드는 총괄건축가(architect-in-chief)직함을 갖고 전방위로 활동했다.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미국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옴스테드는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로 간다. 그곳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적십자의 전신이자 북부 연합군의 의료 지원을 담당하는 미국 위생위원회(US Sanitary Commission)의 첫 번째 사무국장이 된다.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 현장에서 갈고닦은 조직 운영 기술을 발휘하여 병영의 위생을 감독하고 의료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실무를 총괄한다. 위생위원회에서 2년가량 일한 옴스테드는 1863년,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금광 사업지인 마리포사 이스테이트(Mariposa Estate)에 관리자로 취직한다. 옴스테드는 요세미티(Yosemite)계곡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코네티컷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풍경에 익숙해진 한편, 민간의 상업적 이해관계로 인해 자연이 위협받는 것을 목격한다.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경력은 옴스테드가 조직 운영 기술로 상당히 인정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위생위원회 경력은 옴스테드가 자신의 조경 설계 필수 원칙 중 하나로 위생 공학을 강조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마리포사 이스테이트에서 일하던 당시, 옴스테드는 요세미티 보호구역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책임자로 임명됨으로써 환경 보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1865년 제출한 요세미티 보고서에서 옴스테드는 사익으로부터 공익을 보호하는 것을 정부의 의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국립공원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업 조경가로서의 활동과 이어지는 실천 1865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옴스테드는 이후 30년 동안 전업 조경가로 활동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캘버트 복스와 센트럴파크 작업을 마무리 짓고 프로스펙트 공원(Prospect Park)을 설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옴스테드, 복스 앤드 컴퍼니(Olmsted, Vaux & Co.)라는 사명으로 1872년까지 함께 활동한다. 그 뒤 옴스테드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조경가(Frederick Law Olmsted, Landscape Architect)라는 직함으로 1884년까지 활동하다가 이후 회사의 이름을 몇 차례 바꾸게 된다. 옴스테드는 1895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그를 도와 일하던 두 아들인 존 찰스 옴스테드(John Charles Olmsted, 1852~1920)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주니어(Frederick Law Olmsted Jr., 1870~1957)는 1898년부터 옴스테드 브라더스(Olmsted Brothers)라는 사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회사 이름은 1961년까지 존속했다. 옴스테드가 세운 회사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원 설계, 공원 시스템 설계, 주거 단지 설계, 대학 캠퍼스 설계, 국립공원 계획, 도시계획 등 6천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옴스테드의 회사는 조경업의 전문성을 발전시키고 다음 세대 전문가를 교육하는 일을 거의 홀로 감당했다. 찰스 엘리엇(Charles Eliot)과 워런 매닝(Warren Manning), 윌리엄 라이먼 필립스(William Lyman Phillips) 등 그와 관련된 전문가 다수는 훗날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무엇보다도 두 아들은 미국조경가협회의 창립 멤버이며, 특히 옴스테드 주니어는 하버드의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조경재단(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은 옴스테드의 이름으로 매년 장학생을 선정함으로써 그 역사와 유산을 기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유산 픽처레스크 자연미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담아내고 대지의 구체적 맥락과 공간의 실용적 기능을 고려하는 옴스테드식 설계는 그가 떠난 지 거의 12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조경 설계의 기본으로 유효하다. 세간에는 센트럴파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옴스테드의 작업은 대형 공원 외에도 도시 규모의 녹지 계획과 자연환경 보존, 주거 단지와 캠퍼스 설계를 아우른다. 옴스테드는 미국 국회의사당과 시카고만국박람회를 위한 조경가로 지명되는 등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우리가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동인은 옴스테드의 시작보다는 이후의 과정에 있을 것이다. 현대 조경이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사회적 불평등, 질병과 오염의 문제를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세기의 옴스테드도 고민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이상과 현실을 이어붙이고 미학과 공학을 접목시키려던 옴스테드의 염원은 지금 여기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 예나지금이나 설계는 보이는 것만을 바꾸지 않는다. 참고 자료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About the Olmsted Legacy”(www.olmsted.org/the-olmsted-legacy/about-the-olmsted-legacy)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Olmsted 200, Meet Mr. Olmsted-LIFE”(olmsted200.org/frederick-law-olmsted/life/) ·Library of Congress,Collection: Frederick Law Olmsted Papers”(www.loc.gov/collections/frederick-law-olmsted-papers/) ·Library of Congress,“Today in History-April 26”(www.loc.gov/item/today-in-history/april-26/) ·Greensward Group,“Central Park History” (www.centralpark.com/visitor-info/park-history) 임한솔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감영 원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경, 건축, 역사에 관심을 두고 설계와 이론,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다르게 보고자 한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온오프라인 매거진 유엘씨(ULC)를 만들고 있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의 공원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미국 지성사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작가, 사회 비평가, 공공 행정가로서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국 답사기, 남부 노예 제도 취재기, 공원과 도시에 관한 에세이, 서간문 등 그가 남긴 글은 실로 분량이 엄청나다. 전기만 해도 10종이 넘고, 그를 다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도 여러 편이다. 옴스테드가 남긴 물적 유산만큼 그가 지성사에 남긴 유산은 찬란하다. 옴스테드의 글과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 사상가들을 살펴보면서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살펴본다. 옴스테드가 처음 접한 공원은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이었다. 옴스테드가 1850년 뉴욕에서 출발해 리버풀에 도착한 후 처음 찾은 버컨헤드는 당시 리버풀 인근의 신도시였다. 배낭을 메고 동네 빵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버컨헤드 공원을 꼭 가보라는 권유로 찾게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옴스테드와 공원의 인연이 시작됐다.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미국 사회가 꿈꾸는 평등과 민주주의의 공간이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사유하는 암체어(armchair)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센트럴파크 감독관 직책을 맡고, 공모전 당선 후에는 설계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답사를 통해 쌓은 경험과 독학으로 축적한 지식을 결합해 자신의 공원관을 형성했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의 공원을 계획하면서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공원에 관한 옴스테드의 글 옴스테드의 대표적인 글에서 공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852년 출간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에서 그는 버컨헤드 공원을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지칭한다. 옴스테드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러한 풍경은 미국 도시에서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가난한 농부도 여왕처럼 공원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이 공원이 시민이 소유하는 공간이었던 점을 높이 평가했다. 빵집 주인도 자기 동네 공원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원: 백과사전적 관점(Parks: An Encyclopedic View)”(1861)이라는 글은 유럽 도시공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룬다. 당시는 센트럴파크 설계 공모 당선 후 실시설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례 연구 기록물을 살펴보면 옴스테드가 유럽 공원의 역사와 여건을 잘 숙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설계가가 궁금해할 주제인 공원의 상대적 크기와 면적당 수용 인원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옴스테드가 공원에 대한 연구를 심도있게 수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870년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사회과학협회 총회에서 발표한 글 “공공 공원과 도시의 확장(Public Parks and the Enlargement of Towns)”에서 옴스테드는 공원에 관한 생각을 보다 선명하게 밝힌다. 도시가 급속하게 확장할 때 맑은 공기, 밝은 햇빛, 푸르름을 제공하는 자연 공간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광활함은 공원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밀집된 도시와 차단된 곳에서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고요함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먼 미래를 보고 도시의 확장을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공원 계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원의 역할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문화인이 되기 위한 시민 교육의 장이고, 둘째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력 공간이며, 셋째 시민에게 자긍심을 주며 도시를 매력적으로 하는 공유 자산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원론이다. 옴스테드는 1886년 글 “마음 상태의 건강한 변화(A Healthy Change in the Tone of the Human Heart)”에서 존 러스킨(John Ruskin)을 인용하면서 문명화된 사람은 질서, 정교함, 깔끔함 같은 특성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품격 있는 도시는 섬세한 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교회, 도서관, 갤러리, 온실, 정원, 기념물, 공원 등 공공 공간의 수준이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도시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보편적 시민의 예술 감각에 따른다고 주장한다. 왜 옴스테드가 좋은 공원을 만들고자 했는지, 왜 공원을 통해 시민 교육을 하고자 했는지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 몇 편의 글을 통해 살펴본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원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곳이다. 둘째, 계층 갈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 해결의 장이다. 셋째, 시민 교육의 공간이다. 넷째,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다. 이러한 공원관 형성에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영국의 낭만주의 사상가인 존 러스킨과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러스킨은 『건축의 일곱 등불(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1849)에서 “건축은 사용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모습이 인간 정신의 건강, 힘, 그리고 즐거움에 기여하도록 하는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칼라일은 『의상철학(Sartor Resartus)』(1836)에서 “육체, 자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영혼, 신 등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상징하는 의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는 공원과 같은 공공 건축이 도시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옴스테드가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제이컵 레이 몰드(Jacob Wrey Mould)와 함께 작업한 센트럴파크의 베데스다(Bethesda) 테라스에는 러스킨의 영향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로 제작된 테라스 장식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낮과 밤의 서사가 세련되게 표현됐다. 옴스테드는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와 같은 당시 초월주의자들의 자연관에도 영향을 받았다. 초월주의자들에게 도시는 악이고 자연은 지고의 존재로 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도시에 공원을 만드는 것은 인간 회복의 한 방편이었다. 에머슨은 『자연(Nature)』(1836)에서 “자연은 몸과 마음에 치료 효과를 주어 심신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소로는 야생 자연인 월든에서 한동안 생활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월든(Walden, Life in the Woods)』(1854)을 저술했다. 그는 월든 호수에서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신의 내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저작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에 주목해야 한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가가진 선진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문화적 소양의 부재를 지적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드 토크빌의 생각은 옴스테드에게 영향을 미쳤고, 공원이라는 유럽의 민주적 공간과 제도를 미국 사회가 빨리 수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에게 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계층 갈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문화적 소양을 습득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장으로서 공원은 유용한 도구였다. 옴스테드는 이를 잘 수용했다.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의 『고독(Solitude)』(1791)은 당대에 잘 알려진 저작이었다. 그는 『고독』에서 풍경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으며, 건강한 고독은 자기 회복을 위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경향이라고도 말했다. 옴스테드도 어릴적부터 자연 풍경이 주는 치유 효과를 체감하고 있었다. 옴스테드 연구자들은 치머만의 사상이 옴스테드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공원에서 우리는 자연 경치의 명상을 통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상태를 경험한다. 치머만은 건강한 상태의 고독을 자기 시간에 대한 몰입과 지나친 은둔으로 사회생활에서 격리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 했다. 당시 새로 등장한 공원은 치머만이 말하는 건강한 고독을 경험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의미와 한계 옴스테드 공원관이 갖는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옴스테드식 공원은 이후 수없이 복제되고 확대 및 재생산됐다. 어쩌면 아직도 전 세계의 공원은 옴스테드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옴스테드의 공원관과 실천 행위는 이후 전문가들의 공원 계획, 설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옴스테드는 당대의 사상을 자신의 공원 만들기라는 실천 행위를 통해 구현했다. 도시의 자연인 공원은 쓰임새 있는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바람 직한 미래상이 담긴 공간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옴스테드의 공원은 그 가치와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탄탄한 철학이 있는 공원, 확고한 비전이 담긴 공원이기에 생명력이 길다. 이러한 점은 옴스테드의 개인적 역량에서 기인한 것이기 하다. 그는 인문적 소양을 갖추었고 사회적 발언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공원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높여 주었다. 물론 그와 함께 일한 캘버트 복스와 제이컵 레이 몰드의 디자인 역량이 옴스테드의 추상적 차원의 이상을 뛰어난 디테일 디자인으로 구체화시키는 데 힘이 되기도 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한계는 무엇인가. J. B. 잭슨(J. B. Jackson)은 “과거의 공원과 미래의 공원(The Past and Future Park)”(1994)이라는 글에서 옴스테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조경가이자 도시설계가로서 그의 작품은 통상적으로 숭배되지만, 그의 사회 철학에 나타나는 엘리트주의, 반도시적 논조, 자연환경에 대한 강조 등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의 공원 개념은 사회 계층의 단편화, 고독한 경험과 가족적 경험의 지향, 개인과 환경의 수동적 관계를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비판이다.센트럴파크는 초기에 산책 등 수동적 레크리에이션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계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여러 계층의 화학적 결합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원을 계속 리모델링하면서 여러 계층이 공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후 많은 비평가는 옴스테드의 공원이 도시에 담을 쌓았다고 비판하면서 도시와 소통하는 공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견 타당한 의견이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변화하는 도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는 만병통치의 해법을 주문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옴스테드의 공원은 지금도 여전히 잘 이용된다. 잭슨이 지적하는 계층별 이용 분리, 공원 경험 방식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사회학적인 문제다. 오늘날에도 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은 ‘따로 또 같이’다. 즉 개인적 방식과 때로는 집합적 방식이 혼용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더 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뉴노멀의 공원 이용법’일 것이다. 공원은 시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하나의 가능태다. 옴스테드는 공원의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한 것이며, 이후 다른 형식과 내용의 공원을 창출하는 것은 후대 공원 설계가의 역할일 것이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한국조경학회장, IFLA 2022 조직위원장, 정원도시포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옴스테드 200] 공원으로 만든 도시, 옴스테드의 선형 공원
- 공원의 시작, 그리고 옴스테드 공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하늘이 보이는 넓은 공간, 녹음이 짙은 수목과 수풀, 잔디밭과 구석구석 연결하는 소로, 혹은 긴 수변을 따라 녹음과 수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한강공원을 떠올릴 수도 있다. 작년에 진행된 용산공원 국민참여단 정기 워크숍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용산공원을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세계적인 공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원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근현대 공원의 발전에 기여한 내용을 다 훑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도시 발전에 공헌한 옴스테드의 업적을 두 가지만 꼽아야 한다면, 나는 센트럴파크로 대변되는 그린 오픈스페이스와 보스턴 도시 그린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선형 공원을 선택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된 선형 공원은 아마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일 것이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에도 불구하고 맨해튼이 녹음 가득한 장소로 느껴지는 데에는 센트럴파크만큼이나 하이라인의 시각적 효과가 큰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선형 공원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서울만 해도 한강공원이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있고, 삼각지에서 연남동까지 이어지는 경의선숲길은 세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양재천이나 탄천 같은 수변 선형 공원은 대규모 주거 단지 조성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국회대로 지하차도 및 상부 공원화로 7.6km에 달하는 선형 공원이 예정되는 등 선형 공원 조성 뉴스가 끊임없이 조경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듯하다. 그러나 하이라인이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라도, 그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선형 공원의 시작도 19세기의 도시 팽창과 그 궤를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의 팽창과 확산, 끝없이 높아지는 인구 밀집도, 뒤바뀌는 사회 구조, 민주주의 기반의 다양한 철학과 개념은 도시와 전원의 균형과 사회 복지에 대한 옴스테드의 고민과 만나 선형 공원이라는 도시 조직을 빚어냈다. 옴스테드의 도시 인프라, 파크웨이 19세기 중반, 뉴욕과 보스턴을 비롯한 북미 북동부 주요 도시들에서는 민주주의 도시의 미래상에 대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북미 전반의 도시화와 기존 도시 조직의 팽창, 인구 과밀을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보았으며,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화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1 이로 인해 벌어질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해법이 바로 센트럴파크로 대변되는 목가적 초원을 갖춘 공원과 주요 교통 인프라로서 공원, 즉 옴스테드가 ‘파크웨이(parkway)’라고 지칭한 공간이었다. 1870년대, 옴스테드와 그의 파트너 캘버트 복스(Calvert Vaux)가 시도한 첫 번째 파크웨이는 뉴욕 주 버팔로의 공원 시스템이었다. 조경사학자 프랜시스 코우스키(Francis R. Kowsky)는 이 설계안이 “공원과 도시의 통합적 확장”으로 요약된다고 말했다.2 공원과 공원을 파크웨이로 이어 도시계획의 기반을 만든 이 시도는 옴스테드의 어바니즘을 극명하게 반영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 옴스테드와 복스만이 도시공원의 시스템화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조경가 로버트 모리스 코플랜드(Robert Morris Copeland)는 1869년 한 일간지 지면을 통해 보스턴을 아우르는 광역 공원 계획을 제안한 바 있다.3 유럽에서도 프롬나드(promenade) 등 대도시의 조직과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다학제간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옴스테드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설계와 문헌에서 드러나는 도시관 혹은 어바니즘을 파크웨이와 공원 시스템 설계에서 명확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옴스테드는 유럽에서 북미로 건너온 기존의 보행 중심 대로가 19세기 미국의 산업 도시에서 요구되는 공공 공간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주거 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도시 구조에 알맞은 새로운 도로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4 옴스테드의 파크웨이는 일과 주거의 분리, 레크리에이션 수요의 증가, 교통수단의 발달, 녹지 접근성 등을 근거로 공원과 도로를 결합한 공간적 도시 인프라였다. 특히 뉴욕 프로스펙트 공원(Prospect Park)과 함께 제시한 파크웨이 설계를 살펴보면, 파크웨이를 통해 녹지 비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향유하는 공공 녹지 공간, 즉 공원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고속 차도를 별도로 지정해 교통망 기능을 놓치지 않으려 한 점이 눈에 띈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에서 미술건축사학을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현대 조경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 아카이브, 기억의 집 또는 아스날
- 옴스테드 르네상스와 아카이브 클릭 몇 번만으로 모니터 위에 옴스테드가 남긴 메모나 스케치를 띄울 수 있는 날이 도래했다. 이제 더 이상 아카이브의 복잡한 카탈로그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거나, 고요함과 고독이 짓누르는 분위기에 위축되거나, 데카르트적 공간처럼 똑같이 생긴 책꽂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된다. 단 1mm라도 더 찢어질까 해진 종이를 조심스레 넘기지 않아도, 문서를 뒤적이다 언제부터 존재했을지 모르는 먼지를 들이마시지 않아도 된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조경계 사람들이 솔깃할 만한 디지털 아카이브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26일 미국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은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리소스 역할을 하기 위해” 옴스테드의 글과 기록물을 디지털화하여 온라인으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1 뉴욕시는 이보다 앞서 2017년 겨울, 시 아카이브(NYC Municipal Archives)가 소장하고 있는 옴스테드의 1857년 센트럴파크 공모전 제출작 ‘그린스워드(Greensward)’를 디지털화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2 최근에는 1998년 설립 이후 경관과 조경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써온 미국의 문화경관재단(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도 이러한 움직임에 합류했다. 지난 1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조경 유산(What's Out There: Landscape Architecture Legacy of Frederick Law Olmsted)’이라는 이름의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 기념 이니셔티브를 마련하면서, 옴스테드와 그의 조경 유산 2 백여 곳에 대한 포괄적인 온라인 가이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3 열병과도 같은 옴스테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현상은 일면 빅데이터 시대 또는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씨앗은 이미 20세기 말 옴스테드 르네상스의 부상이라는 토대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4 1960년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의 ‘인간과 자연: 옴스테드 전(Man and Nature: The Olmsted Exhibition)’에서 촉발된 옴스테드 다시 보기는, 1979년 옴스테드의 집이자 사무실이었던 페어스테드(Fairsted)의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 지정, 그리고 옴스테드 유산의 보존과 인식 증대를 목표로 한 두 조직의 설립으로 이어졌다.5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페어스테드에 위치한 ‘옴스테드 아카이브(Olmsted Archives)’다. 이 지면에서는 옴스테드 관련 아카이브를 소개한다. 물리적 실체이자 공간으로 존재하는 기록 보관소뿐 아니라 최근의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아우르며 각 아카이브의 설립 배경과 구조적 특징, 더 나아가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을 짚어보려 한다.6 옴스테드 아카이브(들)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 미국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옴스테드 컬렉션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Frederick Law Olmsted Papers)’다.7 앞에서 언급한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된 것은 2018년으로 최근 일이다. 그러나 컬렉션 자체가 탄생한 시점은 옴스테드 가문이 도서관에 자료를 기증한 1947~1948년과 1968~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옴스테드 전기 작가인 로라 우드 로퍼(Laura Wood Roper)가 자료 3천 점을 기증하고 1981년 도서관이 추가 자료를 구매하면서 1996년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 체계가 마련되었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를 구성하는 자료는 1777년과 1952년 사이에 생산된 약 2만4천 개 항목으로, 옴스테드의 조경 작업뿐 아니라 가족사, 친구와 동료 관계, 협업, 개인 생활에 관한 자료가 74개 상자에 담겨 있다. 그중 미국의회도서관이 강조하는 기록물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보호의 단초가 된 1864년 요세미티 지역과 숲에 대한 예비 보고서, 남북전쟁 중 아내에게 보낸 군인들의 고통에 관한 편지, 1865년 파트너십 갱신과 새로운 프로젝트 수행에 관한 옴스테드와 캘버트 복스 간의 서신, 1877년 미국 국회의사당 부지 식재에 관한 연필 스케치, 센트럴파크 설계에 영향을 미친 영국 버컨헤드 공원에 대한 노트 등이 있다. 자료는 트리(tree) 구조로 정리되어 있다. 기록물 유형에 따라 저널, 서신, 주제 파일, 연설문 및 글,기타 문서, 추가 문서, 특대형 문서 등 8개 시리즈로 나뉘어 있다. 각 시리즈는 생산 연대에 따라 다시 세분되어 있다. 기록물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회도서관이 제공하는 전자 파일 형태의 검색 도구(finding aid8)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2018년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가 디지털 아카이브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용자와 아카이브 사이의 심리적·물리적 거리감이 줄었다. 42쪽에 달하는 검색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검색 필터를 갖춘 인터페이스와 여러 가지 메타데이터9 항목을 활용해 찾고자 하는 기록물을 그물망web에 건져 올릴 수 있다. 각주 1.Library of Congress, “Famed Landscape Architect Frederick Law Olmsted's Papers Now Online”, 2018. 6. 26. 각주 2.Quinn Bolewicki, Matthew Minor, “Digitizing the Greensward”, 2017. 12. 21. 각주 3.TCLF, “Olmsted 200 Digital Website and Book Launch”, 2022. 1. 7. 문화경관재단은 이와 동시에 옴스테드의 유산 중 덜 알려져 있거나 분실 또는 위협에 처한 경관을 조명하는 기록화 작업(Landslide 2022: The Olmsted Design Legacy)도 진행한다. 각주 4.옴스테드 르네상스에 대해서는 문화경관재단 대표 찰스 번바움(Charles A. Birnbaum)의 2022년 3월 1일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강연 ‘우리 안의 옴스테드(The Olmsted in All of Us)’를 참조할 수 있다. youtu.be/-yrj31C5OK8 각주 5.1980년 비영리 단체인 센트럴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와 국가 조직인 옴스테드 공원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가 설립됐다. 각주 6.오늘날 미국의 조경 아카이브 사례로는 다음을 참조. 이명준, 김정화, 서영애, “미국 조경 아카이브 구축 동향과 특성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47(6), 2019, pp.1~11. 공원 아카이브의 의미와 사례에 대해서는 『환경과조경』 2020년 3월호 특집 “공원 아카이브, 기억과 기록 사이”를 참조. 각주 7.미국의회도서관 웹사이트(hdl.loc.gov/loc.mss/collmss.ms000067)를 통해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각주 8.findingaids.loc.gov/exist_collections/ead3pdf/mss/2001/ms001019.pdf 각주 9.데이터를 설명해주는 데이터로, 속성 정보라고도 한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항목이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의 경우 문서 제목, 생산자, 주제어, 유형, 식별 번호, 소장 위치와 같은 메타데이터를 제공한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정화는 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Kunsthistorisches Institut in Florenz ‒ Max-Planck-Institut) 내 식물을 테마로 한 다학제 연구 집단 4A_Lab의 박사후 연구원이다. 일제 식민지기 임업 시험장을 중심으로 근대 국가의 과학적 숲 디자인을 연구 중이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멤버로 조경 아카이브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가 남긴 것들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현대 도시공원의 출발점이 된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적 의미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을 하나의 전문 직능으로 자리 잡게 한 사회 개혁가다. 옴스테드가 기존 정원 중심의 조원을 넘어 도시공원과 공원 시스템을 통해 도시 골격과 구조를 재편하는 조경을 주창한 데에는 도시민의 건강과 복지 증진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도시민의 건강 문제는 옴스테드의 시대 이후 더욱 심각하고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인구 과밀과 지역 불균형, 도시 환경과 복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공원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시민뿐 아니라 도시 자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공원은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작업을 되돌아보는 것은 현대 조경의 기원을 되짚는 의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도시를 위한 처방은 현재에도 필요하고 앞으로도 계속 요청될 미래 진행형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옴스테드의 프로젝트와 그가 남긴 글,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살펴본다. 범위가 방대하기 때문에 간략한 목록 형식으로 정리한다. 특히 옴스테드의 계획과 설계 작업과 관련된 전용 도면 검색엔진1이 따로 있을 정도로 아카이브가 체계화되어 있으므로, 공원의 이름과 지역, 완공 시기 정도만을 제시한다. 옴스테드에 대한 학술 연구 또한 이 지면에서 모두 소개하기에는 양이 많아서 주로 단행본 형식으로 출판된 책 위주로 기록한다. 옴스테드가 남긴 공간 옴스테드가 남긴 유산을 보존하는 기관인 옴스테드공원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는 옴스테드의 프로젝트를 도시공원(urban park)과 파크웨이(parkway), 공원 시스템(park system)으로 구분해 기록하고있다.2 우리가 옴스테드의 작업 중 거의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센트럴파크는 대표적이자 원조 격인 도시공원이다. 그의 도시공원 중 널리 알려진 것들은 대부분 대형 공원이지만, 주로 유원지와 유사한 기능을 한 대형 공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동 계층이 많다는 것을 인지한 뒤 옴스테드는 19세기 후반 빈민 지역의 틈새 공간에 작은 공원을 설계하기도 했다. 또한 파크웨이와 공원 시스템을 조성했다. 파크웨이는 사전적으로는 드라이브하기 좋게 잘 꾸며진 도로를 칭하지만, 옴스테드의 파크웨이는 대형 공원 형식의 대규모 녹지와 녹지 덩어리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에 녹지대를 조성해 시민들이 녹지를 더 자주 접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공원 시스템은 ‘그린 네트워크'와 일면 유사한 개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럿으로 나뉜 녹지를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하나의 체계처럼 작동하고 단일 공간일 때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옴스테드가 계획한 공원 시스템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보스턴 공원 시스템에는 ‘에메랄드 네클러스’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여러 공간이 엮여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이밖에도 주거 단지나 캠퍼스를 조성하기도 했다. 각주 1.ww3.rediscov.com/Olmsted에서 원하는 조건에 맞는 작품을 검색해 별도 페이지에서 당시의 도면을 보거나 미국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또는 옴스테드 연구 가이드 온라인(Olmsted Research Guide Online)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각주 2.www.olmsted.org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민주는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공원관에 나타난 복지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 200 더 읽을거리
- 1. 센트럴파크 Central Park Location Manhattan, New York, USA Area 3.41km2 2. 프로스펙트 공원 Prospect Park Location Brooklyn, New York, USA Area 2.13km2 3. 프랭클린 공원 Franklin Park Location Boston, Massachusetts, USA Area 2.13km2 4. 버팔로 공원 시스템 Buffalo Park System Location Buffalo, New York, USA Area 3.43km2 5. 에메랄드 네클러스 Emerald Necklace Location Boston, Massachusetts, USA Area 4.5km2 6. 백 베이 펜스 Back Bay Fens Location Boston, Massachusetts, USA Area 404,685m2 7. 아놀드 수목원 Arnold Arboretum Location Boston, Massachusetts, USA Area 1.07km2 8. 빌트모어 Biltmore Location Asheville, North Carolina, USA Area 32.4km2 9. 미국 국회의사당 그라운드 United States Capitol Grounds Location Washington D.C., USA Area 234,717m2 10. 나이아가라 폭포 주립공원 Niagara Falls State Park Location Niagara Falls, New York, USA Area 1.62km2 11. 시카고만국박람회장 The World’s Columbian Exposition Location Chicago, Illinois, USA Date 1893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양메이컹 해안가로
- 해안가 커뮤니티와 양메이컹 해안 2018년 태풍 망쿳(Mangkhut)은 중국 선전의 다펑(Dapeng) 반도 해안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2019년 해안 복원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펠릭스Felixx+KCAP 팀을 구성하고, 130km에 이르는 해안을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삼중 제방 전략(triple dike strategy)을 세웠다. 이 전략은 해안을 보호할 뿐 아니라 친환경적 발전과 자연 복원, 사회경제적 성장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어업에 종사하는 작은 마을이 다펑 반도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삼중 제방 전략은 이 해안가 커뮤니티의 특성을 보전하는 동시에 성장을 위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개발을 진행해 소규모 마을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채로운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조성해 다양성을 증폭시키고자 했다. 한적한 만에 있는 둥산(Dongshan) 마을은 제방을 산과 마을을 잇는 녹색 공원으로 활용한다. 관후(Guanhu) 마을은 창의적 문화가 가득한 곳이다. 제방을 생생한 녹색 해변가로이자 방파제 역할과 새로운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접합한 중추 인프라로 탈바꿈시킨다. 문베이(Moonbay)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지은 마을이다. 제방을 해안을 내려다보는 발코니, 마을과 떠다니는 낚시터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쓸 수 있다. 사위융(Shayuyong)은 바위와 견고한 제방으로 구성된 항구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해변과 관광 명소가 있는 펑청(Pengcheng)은 회복탄력성이 높은 매력적인 해변 공원으로 바뀔 것이다. 생태 및 해양 보호 구역에 있는 양메이컹(Yangmeikeng)은 해안을 따라 바다 환경에 노출된 마을이다. 여섯 개 구역 중 가장 먼저 완성된 양메이컹 해안가로는 18km 길이의 제방 중 일종의 시범 구역이다. 500m의 긴 거리를 따라 제안된 해양 방파제는 자연 기반 전략의 효용을 시험하고 전략을 더욱 구체화하고 개선하는 데 쓰인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and Supervision Felixx+KCAP Design and Construction Management China Resource Group Landscape and Construction Design Hope Landscape & Architecture Engineering China Water Transport Planning & Design Institute Research Institute in the Field of Water and SubsurfaceDeltares Client Water Resources Bureau of Shenzhen Municipality Location Shenzhen, China Area 42ha Completion 2020 Photographs DUO Architectural Photography_Hongduo Zhuo, Felixx+KCAP 펠릭스(Felixx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는 2014년 로테르담에 설립된 사무소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나은 환경 조성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역성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고, 공간 연구, 경관 변화 전략, 마스터플랜, 공공 공간 및 제품 설계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펠릭스는 상상 속 캐릭터에서 따온 이름이다. 평범한 영웅인 펠릭스는 세상을 여행하며 행복한 환경을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다. KCAP는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건축가, 도시설계가, 조경가와 함께 도시에 활기를 더하는 건물, 공공 공간, 경관을 만들어왔다.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공간보다는 사용하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복잡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스위스 취리히, 중국 상하이, 한국 서울, 호주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KCAP는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건축가, 도시설계가, 조경가와 함께 도시에 활기를 더하는 건물, 공공 공간, 경관을 만들어왔다.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공간보다는 사용하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복잡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스위스 취리히, 중국 상하이, 한국 서울, 호주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 하이퍼레인 어번 갤러리
- 하이퍼레인 어번 갤러리(The Urban Gallery at Hyperlane)는 2.4km 길이의 직선형 복층 공원으로, 청두 쓰촨 음악 대학(Chengdu Sichuan Conservatory of Music University)의 중심에 위치해 청년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거점 역할을 한다. 공원은 생동하는 젊음, 음악, 생활을 지향하는 직선적 공간을 구축하여 지역 교통과 대학 커뮤니티 및 캠퍼스를 연결한다. 공원의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고 표준성을 더하기 위해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제품을 60% 이상 사용하고, 장기적으로 상업적 가치를 창출할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어번 갤러리 어번 갤러리는 하이퍼레인 프로젝트의 1단계로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 사회 지향성 공간이다. ‘공동체와 연대’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갤러리는 과감하고 역동적인 청년 지향의 정체성을 가지며 이 지역이 지닌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보여준다. 여러 층으로 구성된 원형 구조가 유쾌하게 변화하면서 다채로운 기능과 경험을 제공한다. 거리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도심 산책로, 입구에서 문턱 역할을 하는 워터카펫, 퍼포먼스 갤러리와 커뮤니티 테라스, 그리고 식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소규모 유선형 벤치 등 이 어번 갤러리를 구성한다. 어번 갤러리는 지속가능한 영구적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갤러리는 사교적 공간인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창의적 예술과 음악 문화를 뒷받침하는 공동체와 연대의 중심을 이룬다. 코로나19 이전에 설계되어 락다운 직후 준공된 어번 갤러리는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공간으로 도심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도심 산책로 산책로를 연결하는 플랜터와 여러 방향으로 설치된 소규모 유선형 벤치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벤치는 나무 사이에서 도로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하는 완충 공간 역할을 한다. 공간 특성에 맞춰 계획한 조명은 낮에는 물론 밤에도 공간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특히 물속에서도 기능할 수 있도록 이중으로 조명을 감싸 적절한 조도를 만들되 빛이 그리는 선은 선명하게 유지하며 물가와 벤치의 가장자리를 밝힐 수 있도록 했다. 퍼포먼스 갤러리 퍼포먼스 갤러리는 즉석 공연, 미술 전시회, 문화적 모임, 야외 공연 등을 장려하기 위한 외부 공간이다. 내부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고 큐레이션이 가능한 도심 속 무대로 기획했다. 24시간 커뮤니티 테라스 동쪽에 있는 조각적인 테라스는 방문객이 나무 그늘에 모여 공연을 관람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구상했다. 워터카펫을 이룬 원의 중심과 물가와 벤치의 가장자리를 밝히는 불빛은 밤에도 독특하고 생생한 분위기의 야경을 연출해 24시간 내내 안전하고 밝은 공간을 선사한다. 북동쪽 경계에 놓인 흰 커튼은 물결 모양의 구불구불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공간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배경이 되는 동시에 동쪽에 있는 주차장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공간은 수목과 커튼의 형태에 따라 형성됐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한 업무를 볼 수 있으며, 소규모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메시지를 지닌 나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은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제품뿐 아니라 대상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상징 나무와 관련된다. 금사남목은 청두와 쓰촨 지역의 고유종으로 현재 서식지를 잃어 멸종 위기종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이 멸종 위기종을 하이퍼레인 어번 갤러리에 대량 식재해 금사남목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회를 마련했다. 금사남목은 잎이 아래로 처지는 독특한 특성 덕분에 물과 인접한 공간에 식재하기 좋다. 상록수인 데다 최대 30m까지 자랄 수 있어 사람들에게 한여름 고온을 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늘을 준다. Architecture Andy Wen (Global Design Principal of Aedas) Landscape Architecture Stephen Buckle (Studio Director of ASPECT Studios) Landscape Design Team Yan Luo, Sam Xu, Alex Cunanan de Dios, Morey Zhou, Iris Di Lighting Brandston Partnership LDI BW Landscape Design Contractor Chengdu First Construction Engineering of CDCEG Rendering ASPECT Studios, Aedas Client Chengdu Xinding Real Estate Location Chengdu, Sichuan, China Area 86,543m2 Landscape Area 1,930m2 Greenery Ratio 20.6% Completion 2019. 2. Photographs Lu Bing ASPECT 스튜디오(ASPECT Studios)는 조경가, 도시설계가, 전략가, 도시계획가로 구성된 팀으로, 25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조해왔다. 사람들이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핵심 전략을 세우고, 도시공학적 접근법을 통해 공공성을 가진 실용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호주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 브리즈번, 퍼스,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베트남 호치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오픈니스 스튜디오
- 스튜디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대학원에서 조경 설계를 전공한 뒤 현장 중심의 설계 경험을 쌓기 위해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 입사했다. 주로 장인처럼 정원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작은 설계 스튜디오에서 전통적인 도제 방식으로 디자인을 배웠다. 일상에서 스승의 작업을 보조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스승의 습작을 트레이싱하면서 감각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방법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방법, 현장에서 작업자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는 방법 등 모든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배울 수 있었다. 입사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는 서툴지만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그럭저럭해 내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6년 차가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던 무렵 우연히 한두 가지 개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됐다. 현재 스튜디오의 구성원은 몇 명이며, 최종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현재 대표 포함 8명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다. 최종적으로는 10명 정도의 규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대표 디자이너가 모든 디자인 결과물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고, 동시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 규모가 너무 커지면 대표 디자이너는 전업 매니저의 역할을 맡게 되기 쉽다. 반대로 규모가 너무 작으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제한되기 때문에 적정 규모가 중요하다. 작은 스튜디오의 장점은? 작은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운영 측면에서 간접비를 줄이고 일의 효율을 높여 원하는 일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질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클라이언트가 담당 팀장이 아닌 스튜디오의 대표와 직접 소통한다는 점에서 신뢰를 줄 수 있다. 한 프로젝트를 디자이너 여러 명이 지원하는 구도에서 만족을 얻는 클라이언트가 있는가 하면, 대표 디자이너 한 명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원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다. 후자의 경우 작은 스튜디오가 더 큰 강점을 갖는다. 내부적 관점에서 본다면 작은 조직은 큰 조직에 비해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유동적으로 개편하기 때문에 업무에 대응하기 쉽다. 촘촘한 직급 체계와 인사 구조를 가진 대형 사무실이라면 적용하기 어려운 대응 방식이다. 프로젝트마다 발 빠르게 팀을 재구성해 대응하는 방식은 때로는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해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픈니스 스튜디오의 팀원들을 소개해 달라 최재혁 대표 디자이너는 일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말하는 편이라 때로는 돌직구 상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뇌피셜’에 따르면) 속마음은 따듯하고 팀원들을 배려하고자 늘 노력한다. 김지학 디자인 매니저는 오픈니스 스튜디오에서 이제 5년째다. 프로젝트의 핵심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진행 계획 수립과 업무 분담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디자인 능력과 시공 기술 또한 훌륭해 정원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변인환 컨스트럭션 매니저는 나이는 많지 않지만 시공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고 여행과 사진을 즐긴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 촬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김제인 시니어 디자이너는 디자인 감수성이 뛰어나다. 시와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는 그녀가 만든 디자인 결과물에서는 특별한 온기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장찬희 시니어 디자이너는 타고난 설계가 기질이 있는 디자이너다. 누구보다 꼼꼼하고 정확한 편이고 빠른 손을 가졌다. 박수미 디자이너는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조경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디자인적 직관과 판단력이 좋고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팔방미인 디자이너다. 이우정 디자이너는 일러스트 작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2D 이미지 작업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박경자는 2021년부터 고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경기술사이자 문화재기술자다.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실험 정신과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디자인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다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고자 노력한다. 스튜디오를 개소한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지름 8m의 거대한 튜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지키기 위해 지방의 고무 보트 제작 업체를 수소문하고 다니면서 몇 차례 고비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 냈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즐거움이 여전히 오프니스 스튜디오의 설계 DNA에 각인되어 있다고 믿는다. 오픈니스 스튜디오의 디자인 스타일이 있다면? 어떤 대상이든 복잡하게 디자인하면서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쉽고 단순하게 만들면서 높은 품질을 내는 일은 어렵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더 나아가 감동을 주는 공간을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런 작품이 고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의 뜻에 휘둘리고 어쩔 수 없이 그 뜻을 따라갈 때가 많지만, 우리는 늘 이런 관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단순함과 모던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이제껏 오픈니스 스튜디오가 추구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렌드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트렌드를 좇아 가볍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담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건 지양하는 편이다. 그보다는 색과 질감, 스케일과 조형 등 기본적인 공간 요소를 균형감 있게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공간 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도록 하는 데 관심을 둔다. 공간에서 시각적 균형미가 한눈에 드러나게 만드는 것에도 늘 신경을 쓴다. 식재 디자인의 경우 대상지의 미묘한 환경적 변수들을 감지하여 지속가능한 공간을 구현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그 후에 미적·사용자적 관점을 고려한다. 시설물 디자인에서는 부피감과 무게감의 표현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너무 투박하게 디자인해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느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반대로 너무 가벼워서 공간에 안착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디자인한다. 복잡한 형태와 어려운 디테일에 큰 관심이 없고, 가장 기본적인 조형성을 가장 맵시 좋게 드러내기 위해 쉽고 확실한 디테일 디자인에 집중하는 편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게 자신의 스튜디오를 여는 일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되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디자인하는 게 즐겁고 그것에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일을 일로 대하는 순간 일은 떠나간다. 반대로 일을 친구 삼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걷는다는 생각으로 가까이 두고 친하게 지내고자 하면 어느새 자신이 기대하던 것보다 많은 일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단련한 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면 좋다. [email protected]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는 외부 공간의 디자인 빌드 분야에 강점을 가진 디자인 스튜디오다. 단순하고 모던한 조형, 자연스러운 내러티브와 편안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다수의 개인 정원 및 공공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했으며.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공공 예술과 전시 프로젝트에도 폭넓게 참여해왔다. 한강예술공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예술놀이마당 전시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외부 환경 개선 설계를 수행했다.
- [모던스케이프] 나무를 심자
- 예로부터 ‘나무를 심는 일’은 기념할 일이 있을 때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마당에 심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민간의 전통이다. 오동나무는 속성수에 목질도 가벼워서 딸이 시집갈 때 혼수로 가지고 갈 가구의 재목으로 사용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우리는 결혼. 회갑, 승진 등 경사가 있을 때도 나무를 심는 것으로 축하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종종 볼 수 있는 기념식수의 전통이 멀리 있었던 건 아닌 셈이다. 왕실에서도 나무를 심었을까 싶어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봤다. 왕실의 가족묘인 능소(陵所)와 원소園所에 보토補土하여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다. 검색어를 식목(植木)으로 걸러봤다. 왕릉 일대에 식재한 것을 제외하면, 영남 지방 여러 고을에는 민둥산 때문에 재해가 빈번하니 벌목을 금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 토양 유실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상소한 헌납(獻納)1 권엄의 의견이 유일하다. 나무 심기를 통해 상징과 기념을 넘어 실용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2 근대가 되면 동서를 막론하고 나무를 심는 일이 도시의 위생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한국에서는 독립협회 회원들이 식목의 기능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해외 도시를 경험한 바 있는 그들은 나무 심기가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종목일, 즉 식목일을 만들어 국민이 나무를 심게 할 것을 권장했다. “우리가 바라건대, 조선의 농상공부에서도 종목일을 작성하여 봄가을로 한 번씩 전국의 인민을 시켜 동네 빈터에 나무를 심게 하고 …… (그러면) 몇 해 지나지 않아 좋은 공원이 생길 것이고 그 나무들이 다 자라 쓸 만하게 되면 해마다 얼마씩 베어 팔아 그 돈을 가지고 공원을 정비하는 등 시민을 위해 쓸 일이 많을 것이다. …… 속성수인 백양목을 비롯하여 단풍나무, 전나무, 가죽나무 등을 일 년에 한 번씩만 심는다면 큰 수고로움 없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3 하였다. 그러고는 식목의 효과로 첫째는 산사태 방지로 산 아래 농가들이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점, 둘째는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셋째로는 나무로 공기가 깨끗해지면 전염병이 예방된다는 점, 넷째로는 그늘과 맑은 공기를 제공해 백성들의 휴식처가 마련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조선의 주요 도시는 산업화로 인해 망가지지는 않았으나,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한 도시 환경은 근대로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식목에 주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각주 1.헌납은 조선시대 사간원의 정4품 관직이다. 각주 2.『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0월 22일. 각주 3.「독립신문」 1896년 8월 11일.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 공예의 새로운 태도
- 지구는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땅과 바다가 오염됐고, 공기 속에서 퍼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는 ‘인류세’와 ‘자본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 사물, 자연의 수평적인 관계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공예에서도 생명 없는 재료로만 취급해온 다양한 사물과 생명체에 대한 존중, 천연 자원의 남획과 인공 재료의 남용으로 인한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인간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와 ‘자본세’에 맞설 공예의 윤리적·사회적 실천, ‘기계적 유기체(AI, 사물인터넷)’와 공존하는 공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시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현시대에 대응할 새로운 공예와 디자인을 모색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한 공예의 태도와 실천을 보여준다. 인간 중심의 공예에서 벗어나, 재료, 사물, 기계, 환경 등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인간을 위한 공예도 필요하지만,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들을 함께 존중하는 태도가 이 시대 공예의 새로운 윤리이며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류세와 자본세에 포위되어 소외되고 고립된 공예, 작가들의 존재와 가치를 복원하는 길이다. 대지, 생활 그리고 반려까지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2021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예를 통해 조망했던 전시로 현지에서 찬사를 받았다. 당시 전시를 개최했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동명의 주제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으며, 2021년 밀라노 한국공예전 출품 작품과 더불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공간에 재구성했다. 공예, 디자인, 사진, 영상 등 참여 작가 38팀의 290여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1층은 하늘과 땅,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대지의 사물들’, 2층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담은 공예 ‘생활의 자세들’, 인간과의 지속적인 삶을 이어가는 소중한 반려로서 공예를 바라보는 ‘반려 기물들’을 이야기한다. 공예는 인간, 사물, 자연이 상호 매개되고 결합된 광범위한 결과물의 총체다. 이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는 결합 과정에서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화되고 새롭게 생성된다. 공예는 단순히 고정된 물건이 아니라 인간, 사물, 재료, 기계 등과 결합과 배열을 통해 새로운 상징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대지의 사물들’을 통해 전통과 현대, 공예와 예술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공예의 사물성을 보여준다. 또한 코로나19와 관련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한선주 작가는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길 고대하며 화려한 색감의 대형 직물 ‘봄날은 온다’ 시리즈를 1층 중앙홀에서 선보였다.
-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며
- 미래형 미술관을 꿈꾸는 울산시립미술관 조선 후기 울산도호부 관아의 흔적인 남은 울산 동헌, 그 옆으로 울산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1월 6일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미디어 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한다. 울산만의 지역 특색을 바탕으로 “시대적 변화에 맞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제시”하고 자연과 기술, 산업과 예술의 조화를 모색하는 전시와 사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개관을 기념해 ‘블랙 앤드 라이트: 알도 탐벨리니’, ‘대면_대면 2021’,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 ‘찬란한 날들’,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의 5개 전시를 마련했다. 17개국 70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를 통해 평면, 입체, 설치, 공연, 디지털 미디어 아트까지 최첨단 미술을 경험할 수 있다.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 개관 특별전으로 기획된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나누어 온 우리의 이분법적 시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후, 뒤, 다음을 뜻하는 포스트(post)와 자연을 뜻하는 네이처(nature)를 결합한 ‘포스트 네이처’는 먼 미래에 도래한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다. 단순히 인류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생태를 넘어 역사와 문화, 정치가 얽힌 복잡한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통해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다층적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프랑스, 미국, 루마니아,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16인의 영상, 설치, 퍼포먼스,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별 볼 일 있는 사람
- 잊을 수 없는 밤이 있다. 고향의 동네는 하루에 버스가 다섯 대밖에 오지 않는 시골이다. 산 아래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나름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5분이면 정상을 찍을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이 병풍처럼 서 있고, 실개천이 집 앞에 졸졸 흐른다. 명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하지만, 탁 트인 시야 덕분에 밤하늘을 감상하기엔 아주 좋다. 우리 가족은 여름날 은하수가 뜨는 밤이면 평상에 오순도순 누워 반짝이는 별들을 구경했다. 산 바로 아래 집이라서 여름밤이라도 공기가 차가웠던 탓에 우리는 크고 얇은 여름 이불을 다 같이 덮은 채로 누워서 밤하늘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엔 다 같이 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도 했다. 별이 유난히 빛났던 그 밤들은 한 이불을 덮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줬다. 먼 우주를 매일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천체물리학자를 꿈꿨다.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 자체가 어려워 보여서 뭔가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어릴 때 경찰, 소방관, 드라마 PD, 흉부외과 의사 등 장래희망 칸에 썼다 지운 직업이 수두룩했는데, 천체물리학자의 꿈은 오랫동안 간직했었다. 스티븐 호킹처럼 우주 분야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야심도 있었고, 호주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연구하고 있을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뼛속부터 문과생이었던 탓에 수학의 벽을 넘지 못했고, 꿈은 블랙홀에 빠져버린 인공위성처럼 사라졌다. 함수에게 꿈을 도둑맞았다.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린 것은 지난 3월호에 소개했던 단 로세하르더(Daan Roosegaarde)의 시잉스타(Seeing Star) 덕분이었다. 시잉스타는 도시의 모든 조명을 소등함으로써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별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프로젝트다. 로세하르더와 협업했던 네덜란드 유네스코 의장 카틀레인 페리르(Kathleen Ferrier)는 “모든 사람은 오염되지 않은 밤하늘을 통해 별을 볼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차가 있었다면 그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당장 고향집으로 달려가거나 근사한 천문대를 찾아갔겠지만, 무면허의 뚜벅이었고 코로나19는 조금 무서웠다. 멀리 갈 용기 대신, 약간의 오기를 발휘해 도시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궁리를 하다가 우연히 과학 동아 천문대를 알게 됐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천문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일일 관측 프로그램은 어른도 참여가 가능했다. 서울에 천문대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위치가 용산 전자상가 부근으로 나와서 더 흥미로웠다. 전자상가 인근의 천문대는 국회의사당 지붕에 산다는 태권V 전설처럼 낯설고 신기했다. 가족 단위로 온 이들이 많았는데, 프로그램 가이드 앞에서 각자의 별자리 지식을 뽐내는 혈기왕성한 꼬맹이 틈바구니에서 같이 별을 구경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으리으리한 천문대는 아니지만 건물 옥상에서 소박하게 별을 구경할 수 있는 천체 망원경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야광별이 달린 돌림판을 보면서 별자리를 손으로 그려보고, 한쪽 눈을 찔끔 감고 천체 망원경을 통해 별을 구경했다. 아득하게 멀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좋지만, 망원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별도 좋았다. 오랜만에 목이 뻐근할 정도로 올려다보면서 별자리를 찾아보고, 아이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끼며 소소한 밤하늘의 추억을 하나 쌓고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시잉스타의 서울 버전을 한번 꿈꿔봤다. 불 꺼진 거리에서 뭇별을 오롯이 볼 수 있을까? 아니면 항의로 인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서버가 폭발할까? 둘 중 어느 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가끔은 별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 별 볼 일 없을 만큼 시시하더라도 종종 땅 대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을 세고, 별자리를 이어 보는 것이다. 카틀레인 의장의 말처럼 별을 보는 건 우주라는 한 이불을 덮고 있는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지도 모른다. 별 볼 일이 있는 사람. 잃어버렸던 꿈을 새롭게 다시 써본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 과천에 사는 K는 평생 그 동네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걷기 좋은 천변과 길고양이도 넉넉하게 품는 공원이 가까이 있어 좋다는 이유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전시와 공연을 사랑하는 K를 단번에 과천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전당으로 데려다주는 버스가 오간다. 중학생 시절 성악을 배운 K는 여전히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먼 훗날 그의 오빠(?)인 슈베르트 묘가 있는 젠트랄프리드호프(Zentralfriedhof)를 방문하고, 겸사겸사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는 것이 꿈. 어느 순간 내가 그 여행의 동반인으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슈베르트와 나란히 베토벤이 묻혀 있고(베토벤의 팬인 슈베르트는 그와 가까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멀지 않은 곳에 K의 또 다른 오빠인 모차르트의 가묘가 있어 꽤 오랜 시간 둘러볼 계획인 것 같았다. 아는 것도 많고 그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낼 줄 아는 K 덕분에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을 공짜로 얻어듣곤 한다. 가끔은 꼬드김에 넘어가 공연을 본다. 봄을 앞두고 느닷없이 눈이 내리던 날에 함께 예술의전당에 갔다. 1부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 2부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e 단조 Op.95 ‘신세계로부터’. 입문자를 위한 공연이라 연주에 앞서 지휘자가 간단히 곡 설명을 해주었는데, 2부 전에 들려준 드보르자크의 말이 너무 괘씸했다.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 그런데 지휘자의 설명에 따르면 드보르자크는 엄청난 기차 마니아였다고 한다. 아홉 살이 되었던 해, 그가 살던 프라하 교외의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 기차역이 들어섰다.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거대한 기관차에 온 마음을 빼앗긴 그는 매일 아침 기차역에 찾아가 열차 번호와 특징을 수첩에 기록했다. 새로 개발된 기차를 관찰할 시간이 부족하자 제자인 요세프 수크(Josef Suk)를 보내 기관차 제조 번호를 적어 오게 한 일화를 듣고 나니, 그에게는 기차 마니아보다는 기차광이라는 수식어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향한 애정은 그의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화 ‘죠스’에서 긴장감을 돋웠던 신세계로부터 4악장의 도입부를 다시 떠올려보자. 점층적으로 커지는 오케스트라는 명백히 점점 속력이 붙는 육중한 기차의 바퀴 소리와 웅장한 경적을 연상시킨다.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피아노 소품 7번 ‘유모레스크’ 역시 레일 위를 구르는 기차 바퀴의 리듬에서 힌트를 얻은 곡이다. 연주를 듣는 내내 그가 처음 마주친 기차의 모습이 궁금했다. 한적한 강가의 작은 마을, 푸줏간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드보르자크에게 철도 위를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는 넓은 세계의 상징 같았을 것이다. “다양한 부품이 수많은 부분을 구성하는데 그 모두가 제각기 중요하잖아. 부품 모두가 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작은 레버를 움직이면 큰 지렛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크고 육중한데도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잖아.”1 그가 기차를 사랑하는 까닭은 꼭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여러 악기를 떠오르게 한다.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days4tripper/twitter) 드 보르자크가 음악을 선택한 이유와 결국 만들고자 했던 것 모두가 기차는 아니었을까. 자꾸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에게 한때의 기억은 유년시절 가족을 따라 여행했던 뉴잉글랜드와 뉴욕 북부 등지의 풍경일 테다. 특집을 매만지는 내내, 드보르자크의 기차를 상상하듯 어린 옴스테드의 눈 앞에 펼쳐졌을 전원 풍경을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도시 한복판에 구현한 “옴스테드식 공원은 이후 수없이 복제되고 확대 및 재생산됐다. 어쩌면 아직도 전 세계의 공원은 옴스테드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조경진, 46쪽) 유진 하그로브(Eugen C. Hargrove)는 이러한 도시공원을 저급한 자연의 모조품이고 상상을 통해 인간의 결함을 감추는 설계된 자연이라고 비판했지만, 신세계로부터를 떠올리면 자연을 모사한 공원들을 잠시 변호해주고 싶어진다. 물론 새로운 형식과 가능성을 가진 도시공원이 필요하지만, 옴스테드를 답습하고 있는 도시공원의 풍경은 공원 설계가가 어딘가에서 맞닥뜨린 ‘한때의 기억’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조경의 재료 대부분은 자연이다. 본래 같은 재료로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어려운 법이다. [email protected] 각주 1. 유윤종, 드보르작 “내가 쓴 교향곡 모두 포기하겠다” 말한 이유는?, 동아일보 2020년 9월 7일.
- [PRODUCT] 나노 탄소 면상발열 온열의자
- 추운 겨울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따뜻하게 보낼 수는 없을까. 겨울철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승객을 위해 넥스트원은 나노 탄소 면상발열 온열의자를 만들었다. 탄소 나노 튜브Carbon Nano Tube(이하 CNT)는 탄소 원자로 구성된 매우 작고 얇은 물질로 벌집 모양이 특징이며, 다양한 복합 소재 분야에서 활용된다. 넥스트원의 온열의자는 CNT 신소재와 강화 유리를 접목했으며, 전통의 구들장을 재해석하여 전통 발열 방식으로 재연한 제품이다. 최소 전력으로 열을 내는 방식으로 기존 발열 제품의 20~30% 정도 전력만 소비해도 벤치가 따뜻해진다. 보일러 방식을 사용한 제품은 데우는 데 보통 1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이 벤치는 30분 이내에 넓은 면 전체에 열이 쉽게 전달된다. 영하 30도 환경에서도 40도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대리석의 8배 강도를 가진 강화 유리를 이중으로 사용해서 내구성이 좋다. 와이파이 기능을 탑재하고 있어 원격 제어를 통해 전원이나 시간 및 온도 설정을 할 수 있다. 현재는 서울 서초구, 노원구 등 전국 20여 개 이상 지자체에서 활용 중이다. 로고, 패턴을 입혀 앉음부를 디자인할 수 있어 광고면으로 쓸 수 있다. 세라믹 인쇄 공정을 택해 디자인이 탈색되거나 변색되는 현상을 예방했다. TEL. 055-293-8411~2 WEB. www.nextvie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