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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각을 자극하는 다층적 공간 경험 MMCA 과천프로젝트 2023: 연결
    ‘자연과 가까운’, ‘도시와 떨어진’, ‘산에 둘러싸인’ 등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과천관)을 소개할 때 종종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대공원역(4호선)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20분 정도 달려야 만날 수 있으며, 청계산과 관악산을 배경으로 둔 지리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조성된 과천관 내 공간도 자연 속 미술관이란 특징을 두드러지게 한다. 과천관은 이런 자연 친화적 장소성을 기반으로 ‘MMCA 과천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2020년, 야외 조각 공원을 배경으로 한 ‘MMCA 과천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21년에는 과천관 버스 정류장을 재편한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로 새로운 기다림의 여정을 모색했다. 새롭게 변모한 버스 정류장을 통해 생태적 실천에 대한 환대, 미술관으로 향하는 숲길의 여정, 미술관에서 자연과 예술을 즐기고 그 여운을 누리는 장소적 경험을 제공했다. 2022년에는 미술관 옥상 공간을 재생하고 조망하는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을 진행했다. 옥상 공간을 예술·생태적으로 재생해 주변 자연을 즐기고, 미술관에서의 미적 경험을 야외 공간의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2020년과 2021년이 미술관 밖의 야외 공간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였다면, 2022년에는 물리적으로 미술관의 안과 밖에 공존하는 정원 일대를 재조명했다. 2023년 MMCA 프로젝트는 ‘연결’이란 키워드로 지난 프로젝트의 조성 공간과 흔적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조성하고자 한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3: 연결’의 대상지는 2층 야외 원형정원과 내부에서 그 풍광을 관조할 수 있는 동그라미 쉼터, 두 공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층 옥상정원이다. 세 공간에 연결성을 부여하고 관객들이 다층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활성화를 시도했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겨울마다 꺼내 쓰는 스킬
    한 번 배우면 오랜 시간 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 타는 법, 악기 다루는 법, 운동 동작 등. 배울 때 반복해서 익혀서 그런지,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다시 해보면 처음엔 조금의 버벅거림이 있지만 어제 해본 것 마냥 금방 몸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이와 엮인 추억도 함께 소환해준다. 손과 발이 시리고, 눈이 오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이맘때만 즐길 수 있는 스키다. 스키 타는 법은 초등학생 때 처음 배웠다.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이 되면 스키 캠프를 떠났다.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3학년부터. 언니가 먼저 스키 캠프에 가는 걸 보며 나도 따라 가고 싶었지만 아직 어려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3학년이 되자마자 바로 스키 캠프에 참가했다. 처음 온 학생들은 스키를 배워야 했고 소정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자유롭게 슬로프를 즐길 수 있었다. 스키 배우는 조에서 스키 플레이트와 부츠, 폴 드는 법부터 넘어지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롤러스케이트와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았고 나름 운동 신경이 좋다고 생각해서 스키도 금방 배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만한 자신감이었다는 걸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캠프 첫 날, 스키 플레이트를 A 모양으로 만드는 법과 슬로프에 S자를 그리며 내려오는 법을 하루종일 배우고 익혔지만 넘어지기 일쑤였다. 다음 날도 반복해서 연습했고 그러던 중 잘 타는 사람들은 자유 스키 조로 승격됐다. 하지만 나는 매번 테스트에서 탈락해 캠프 마지막 날까지 리프트도 못 타본 채 첫 번째 스키 캠프는 끝났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는지 다음해 스키 캠프에도 참가했다. 이때도 스키를 못 탈 줄 알았는데, 몸이 원리를 터득했는지 넘어지지 않고 슬로프를 잘 내려왔다. 초등학생 때는 스키 캠프로 매년 스키를 탔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학업 이유로 스키를 잠시 멀리했다. 그러다 대학생 때 오랜만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다행히 실력이 녹슬지 않고 오히려 초급 슬로프를 벗어나 중급 슬로프로 레벨 업 됐다. 이때부터 겨울이 되면 종종 스키를 타러 스키장으로 떠난다. 가본 여러 스키장 중 가장 좋아하는 스키장은 모나 용평이다. 모나 용평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 위치한 스키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해발 약 1,450m인 발왕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수준의 슬로프가 펼쳐져 있는데, 특히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정상인 평화봉에서 시작되는 레인보우 파라다이스 슬로프는 용평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 국내 최장 길이로 약 6km에 달하는 슬로프는 발왕산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온다. 눈 덮인 산자락을 보며 스키를 타는 순간만큼은 눈꽃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들게 해준다. 영화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가 다녀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새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꽤 가파른 경사도 있어 스릴도 즐길 수 있다.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추운 날씨도 잊고 온전히 스키에 빠져들게 된다. 도착 지점에 있는 매표소를 보면 겨울왕국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이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강원도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하루 혹은 이틀 뒤에 이곳으로 떠나는 걸 추천한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추운 몸을 녹여줬던 어묵 국물과 허기진 배를 달래줬던 핫도그와 추로스는 스키 여정에 행복함을 더해줬다. 20여 년 전에 배웠던 기술을 몸이 잘 기억해줘서 이런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종종 타는 자전거도 첫 페달만 잘 돌리면 씽씽 내달릴 수 있고, 더운 여름에 즐기는 수영도 동작을 기억해내면 물살을 가를 수 있다. 스키를 습득했던 그맘때 배운 악기가 떠올랐다. 콩쿠르까지 준비했던 플루트다. 꽤 오랜 기간 배웠는데, 성인이 되고는 한 번도 연주해 보지 않았다. 과연, 그때처럼 잘 불 수 있을까, 한 곡은 완주할 수 있을까. 버벅거림이 있을지언정 매번 입력값을 잘 출력해준 나의 몸과 머리를 믿는다. 중구난방으로 다양한 기술과 행동들을 몸과 머리에 구겨 넣었는데, 오랜 시간 외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기억에서 휘발시키지 않고 잘 꺼내주는 나의 몸과 머리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무쟁이. 친구가 조경학과에 입학한 나를 핸드폰에 저렇게 저장해 두었었다. 대학생이 됐다는 사실 그 자체에 기뻤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꼬인 구석 없던 신입생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싹튼 열등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조경학이 조리경영학의 준말이냐고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장난스럽게 길에 선 모든 나무의 이름을 물어볼 때, 친척이 요새는 무슨 나무를 심어야 비싸게 팔 수 있냐고 추천을 해달라 할 때마다. 특히 화분에 심은 식물이 왜 죽는지 물어올 때면 짜증이 났다. 내가 다루는 세계가 광활한 도시 시스템과 공원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마침내는 화분에 심긴 작은 식물로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찌됐건 좋아하는 식물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계수나무를 예뻐하게 됐다. 학생회관 앞 가로수로 심긴 계수나무는 쭉쭉 뻗은 수형과 달리 아기자기한 구석이 있다. 그 귀여운 면모를 보려면 가지에서 막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동전만 한 작은 잎은 한 쪽이 조금 뾰족한 동그라미인데, 하트보다는 심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 모양 그대로 점점 커져 손바닥만치 자란다. 노랗게 단풍이 들면 잎에서 향기가 난다. 꽃을 보는 재미는 덜하다. 꽃이 다 피어도 꼭 꽃봉오리를 다 열지 못한 모양이라 가지 끝에 보얗고 말간 분홍 물감을 흐리게 발라놓은 것 같다. 형태보다 색으로 느껴지는 신기한 꽃이었다. 조경학과 학생이라면 무릇 (졸업을 하고 싶다면) 수목학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학생 대부분이 나무를 모르는 초짜라 그에 걸맞은 과제가 주어졌다. 나무 열 그루를 정해서 수목 관찰 일기 쓰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성실하기가 가장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밀린 방학 숙제를 울며 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또 다시 만났다. 수목학 시험은 우리를 다른 학과생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는데, 독특한 시험 방식 때문이었다. 조교가 교내의 나무 중 스무 그루를 선정해 번호표를 붙여놓으면, 줄지어 서 답안지에 1번부터 20번까지의 나무 이름, 학명, 음수와 양수를 구분해 적었다.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 조교들은 학생끼리 일정 간격을 두도록 관리했다. 30여 명이 개미처럼 느리게 한 줄로 움직이니 꽤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거다. 잔혹한 점은 이 시험이 겨울(잎이 없다!)에 치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치 수목학’과 ‘잎 줍기’ 스킬을 개발했다. 위치 수목학은 말 그대로 나무의 특징 대신 위치를 기억하는 거다. “제1공학관 모퉁이에는 병꽃나무 다섯 그루, 그 옆에 큰 나무는 수수꽃다리” 같은 식으로. 이렇게 시험을 쳐서 뭐가 남나 싶었지만 돌아보니 어떤 나무를 무슨 용도로 심는지, 어디에서 자라나는지, 어떤 나무와 이웃해야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잎 줍기는 잎 없이 맨둥맨둥한 나무 앞에 섰을 때 당황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잎을 줍는 기술이다. 잎만으로 나무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수피나 가지가 자라난 모양 만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나는 잎이 없는 참나무 앞에서 잣나무 잎을 주웠고, 활엽수랑 침엽수도 구분 못하는 바보가 됐다. 입학할 당시만 해도 식물에 별 관심 없던 동기들은 어느 날부터 회양목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화를 냈다. 골프를 치러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면, 죽으면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골프 즐기는 제자의 머리에 번개를 꽂아주겠다던 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식물을 좋아(사랑까진 아닌 것 같다)하게 되며 옅어지는가 싶던 열등감은 도시과학대학 공동작품전에서 건물 외부에 거대한 공원을 설계한 건축학과의 작품을 보고 불안감으로 변했다. 그래서 식물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설계 스튜디오에서 식물 없이 설계를 해보고 싶다는 동기의 말에 교수는 이곳에 식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납득시킬 수 있다면 해도 좋다고 했다. 교수를 설득하라니, 당시에는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 공간을 조경가가 설계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라는이야기로 느껴진다. 식물이 필요한 이유를 알아야 식물이 없어도 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이성복 시인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42쪽)고 말했지만, 주어진 대상지에 식물이 필요한지 아닌지 고민하는 조경가의 고통은 분명 지구 어딘가를 푸르게 만들 것이다.
  • [COMPANY] 도슨트퍼니처 아웃도어 라이프를 안내하는 야외 가구 플랫폼
    물건들이 칼같이 진열된 곳에 가면 몸이 긴장하고, 아늑한 곳에 들어서면 어딘가에 앉아 늘어지고 싶어진다. 사람의 태도나 행동은 공간의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공간의 중심에는 가구가 있다. 새해를 맞아 가구로 방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면 방법은 쉽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의자만 검색해도 수만 가지 물품이 길게 늘어지고, 상세 페이지의 다양한 연출 이미지는 인테리어 활용법까지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실내에 갇혀 있지 않다. 시선을 방안에서 창밖으로 돌리는 순간,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비에 젖어도 잘 마르고, 햇빛에 색이 잘 바래지 않으며, 내구성이 좋아 오래 쓸 수 있는 가구의 폭은 굉장히 좁다. 캠핑 생활이 각광받으며 선택지가 그나마 늘어나긴 했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기에는 다양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외부공간디자인 더숲(이하 더숲)의 이주호 대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구는 공간을 완성한 후 마지막 단계에서 배치되고, 프로젝트 초기부터 콘셉트에 맞추어 가구를 함께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어울리는 소재와 분위기의 가구를 배치하고 싶지만 선택의 폭은 늘 좁고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은 데다 급하게 진행되는 과정은 공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민 끝에 이주호 대표는 2018년 더 좋은 공간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도슨트퍼니처를 열었다. 도슨트퍼니처는 외부 공간 디자인 전문가가 전개하는 야외 가구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가구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도슨트퍼니처는 외부 공간을 하나의 전시장으로 여기며 야외 가구라는 작품을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제안하는 도슨트를 자처한다. 자세한 전략과 지향점을 들어보기 위해 김가영 브랜드 매니저와 신수현 디자인팀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수현 팀장은 “전시회에서 해설하는 사람을 도슨트라고 부른다. 그 도슨트처럼 가구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고 사명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다양한 야외 가구를 소개함으로써 더 좋은 야외 생활을 추구하고 야외 공간의 한계를 깨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좋은 가구를 소개하고 선별해 사람들에게 안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품군은 아웃도어 가구, 라운지, 파라솔, 시스템 퍼걸러, 기타 액세서리로 나뉜다. 김가영 매니저는 획일적이었던 야외 가구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국내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 업체와 소통하고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11월, 단순한 아웃도어 가구 브랜드를 넘어 고객에게 필요한 양질의 서비스와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플랫폼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도슨트퍼니처 디파트먼트’로 브랜드 리뉴얼을 마쳤다. 소재, 내구성, 색감 등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중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가구를 들여오며 도슨트퍼니처만의 특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가구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수입해서 들여오는데, 도슨트퍼니처에는 디자인 팀이 있어 ODM(제조 업체 개발 생산) 방식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을 하고 있다. DCT는 수년 간 카페, 리조트, 팝업 스토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만든 도슨트퍼니처의 자체 브랜드다.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해 오랜 시간 사용 가능하며, 화이트, 옐로, 그린, 파스텔 톤 등 화사하고 풍부한 색감이 특징이다. 신수현 팀장은 “기존 야외 가구의 색상 대부분이 자연스러운 목재나 무채색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소비자에게 좀 더 다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마그나니(Magnani)는 이탈리아 체세나 지역에 위치한 75년 역사의 비치파라솔 및 선베드 제조 브랜드다. 도슨트퍼니처는 2023년 4월 아시아 최초로 마그나니와 단독 라이선스를 체결해 이탈리아의 전통에 뿌리를 둔 여러 가구를 선보이고 있다. 신수현 팀장은 “마그나니는 해변과 수영장을 위한 다양한 가구를 갖춘 브랜드다. 해가 많이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기후 특성에 따라 견고하고 비바람에 잘 버티는 소재를 사용해 국내에 적용하기 좋다고 판단했다”며 “강렬한 태양빛과 어울리는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갖추고 있어, 공간에 이색적인 느낌을 더하기에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김가영 매니저와 신수현 팀장은 도슨트퍼니처는 이미 한차례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새로움을 찾아 혁신을 거듭하는 단계라 말한다. 김가영 매니저는 “늘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한다. 도슨트퍼니처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분들을 개선하고, 마케팅 및 감각적인 해외 소싱을 통해 타 브랜드와는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며 도슨트퍼니처만의 강점을 소개했다. 신수현 팀장은 “도슨트퍼니처는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외부 공간 디자인을 하는 더숲과의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고, 가구 판매를 넘어 공간에 맞게 제안하고 디렉팅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 김모아 사진 도슨트퍼니처 TEL. 02-431-0947 WEB. www.docentfurniture.com
  • [PRODUCT] DMZ로 떠나는 모험 모험놀이터 누리성 모험마을 모험심을 키우는 네 개의 성
    분단의 역사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DMZ 일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이자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은 만큼 다양한 연령대가 휴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가이아글로벌이 임진각 관광지에 조성한 ‘누리성 모험마을’은 어린이가 모험을 떠나며 성장하는 여정을 주제로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모험놀이터다. 누리성 모험마을은 ‘누리탐험대와 함께 떠나는 신나는 모험’을 콘셉트로 자연을 감상하고 온 가족이 함께 쉬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구름, 평화, 별빛, 희망의 의미가 담긴 성 형태의 조합 놀이대는 어린이의 다양한 연령대와 발달 유형을 고려한 시설물 배치와 놀이 난이도 조절 등을 통해 다채로운 모험을 어린이에게 제공한다. 기존 소나무 군락지를 활용한 트리하우스와 셸터 등을 조성해 제방 너머 임진강의 경관을 감상하며 쉴 수 있게 했다. 친환경 소재의 놀이 기구가 넓은 공간에서 자연과 어우러지고 기존의 놀이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동선을 배치했다. 진입광장에 바닥분수를 배치해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놀 수 있게 했다. 서로 다른 테마가 있는 네 개의 성을 오가는 여정은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키우고 정서적, 신체적 발달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TEL. 02-521-3875 WEB. gaiaglobal.co.kr
  • [에디토리얼] 열한 번째 1월호
    제가 쓰는 121번째 에디토리얼입니다. 편집주간이라는 과분한 역할을 맡은 지 작년 연말 호로 10년을 넘어선 것이죠. 이번 『환경과조경』이 2014년 리뉴얼 이후 열한 번째 1월호인 셈입니다. 매년 1월호를 마감하는 시점이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새해의 편집 방향을 세우고 새 콘텐츠를 기획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안개 자욱한 풍경 속을 걷는 막막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늘 샛노란 표지의 309호(2014년 1월호)를 펼칩니다.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고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309호. 2024년을 열며 혁신의 열망 가득한 10년 전 잡지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에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인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부유하는 한국 조경을 교정해야 한다”는 10년 전 다짐을 다시 불러냅니다. 새 발행인과 편집진, 리뉴얼 T/F팀이 4개월간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 그때 그 지향과 좌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가 되기 위해 매호,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설 것이다.” 309호 에디토리얼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10년이 흘렀지만, 2024년의 모든 호 모두 그런 내용과 형식을 갖춘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매달 힘써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풍성한 피드백을 초대합니다. 2024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본지가 주최한 ‘제6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특집호입니다. 한국 조경계에서는 매우 드물게 교수와 실무 조경가를 겸업하고 있는 김영민은 설계와 이론을 병행해온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특집에는 그의 에세이 ‘모순지도’와 작품들,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동료 김아연 교수와 이남진 소장의 글을 담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김영민의 조경 작업과 조경에 대한 생각을 그러모아 한눈에 조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또 그의 작업을 더 조밀한 비평의 장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부터 새 연재물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환경과조경 주최 ‘2016 조경비평상’ 수상자이자 본지 지면의 번역자로 활동해온 신명진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가 매달 다채로운 공원 담론을 펼쳐갈 것입니다.
  • [풍경 감각] 새해 목표
    새로운 해가 돌아왔다. 달력을 걸고 올해 목표를 꾸린다. 우선 반쯤 써 둔 신간 원고를 완성할 것이다. 생각해 둔 차기작도 투고해야지. 재미있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좋겠고, 늘 미뤄두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도 완독하고 싶다. 수영은 연수반으로 올라갈 정도로 실력이 늘었으면 하고, 멍하니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일 년이라는 시간이 두둑한 지갑처럼 든든해서, 정말 해낼 수 있는 목표와 실패할 게 뻔하지만 어쩐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희망사항의 경계가 흐려진다. 무엇이든 정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얼었던 땅이 풀리고 젖은 흙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지갑을 채웠던 이 기분도 모두 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또다시 같은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며 조금씩 낡아갈 것이다. 여태까지 보내온 수많은 새해들처럼. 희망에 부풀어 적었던 올해 목표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한 줄을 적는다. 비슷하게 좋고 나빴던 여러 해 동안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을 닮아보자고. 지겹도록 같은 돌부리에 또다시 넘어진 친구를 울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빨리 일어나라고 잡아서 끌지 않기로. 대신 그저 같은 자리에 털썩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볼 것. 친구들이 여러 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또한 신년 기분에 취해 적은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다르길 바란다.
  • 조경가 김영민
    설계 철학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영민은 조경설계에 앞서 설계를 하는 이유와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왔다. 그 고민의 뿌리는 교수라는 직업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사회는 교수에게 설계를 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설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 겸직이 금지된 교수가 설계를 하려면 타인의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실체적이든, 교수 조경가는 설계 과정의 부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학의 영역에서 교수가 설계를 한다면, 업에 있는 조경가들과는 달라야 하며, 그것이 무엇이냐는 답을 제시하기를 원한다.” 김영민은 그 답으로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를 내놓고, “이는 당위라기보다 일종의 자발적 결단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특집의 초점은 김영민의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인 ‘모순지도’에 맞춰져 있다. 모순지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에세이, 그가 설계하며 발견한 다섯 가지의 모순, 비슷한 길을 걷어온 동지와 함께 설계하고 있는 동료가 바라본 그의 모습과 인터뷰를 담았다. 김영민이 설계하는 법이 더 궁금하다면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한숲, 2016) 탐독을 추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김영민 -- 모순지도 _ 김영민 다섯 가지 모순 _ 김영민 이론이 죽은 시대의 설계 _ 김모아 젊은 그대에게 _ 김아연 뜨거운 심장을 가진 육각형 조경가 _ 이남진
  • [조경가 김영민] 모순지도(矛盾之道)
    케 보이(Che vuoi), 무엇을 원하는가 몇 해 전 나의 설계 작업을 주제로 한 강연의 제목을 정해야 했다. 나의 설계를 관통하는 개념이 필요했는데, 사실 그때까지 나의 설계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모든 프로젝트의 조건은 모두 달랐으며, 설계는 대개 나의 순수한 의지를 구현한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내부와 외부의 욕망을 수용한 일종의 타협적 결과물이었다. 일종의 선언이 필요했던 나는 모순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는데, 모순은 강연을 준비했을 무렵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새로운 광화문광장과 춘천 시민공원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관된 지향점을 갖고 이뤄지지 않았던 나의 설계를 하나의 자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작업을 소급적으로 재구축해 나아가야 했다. 이는 현재 시점의 불완전한 설계적 주체를 상정하고 모순이라는 기호를 관통하는 과거의 누빔점들을 찾아가며 새로운 주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주체는 욕망의 목적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의 설계적 자아가 모순이라는 개념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i(a) 이상적 자아 결여된 주체가 소급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은 이상적 자아다. 쉬운 말로 하면, 롤 모델이다. 별 볼 일 없던 시절 누구나 되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존재한다. 미숙한 주체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내 설계적 주체의 이상적 자아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타푸리(Manfredo Tafuri)였다. 20대에 내가 이 둘에게 열광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때부터 그들처럼 되기로 결심하고 설계해왔다는 뜻은 아니다. 마흔 살 넘어 내가 소급적으로 찾아낸 이상적 자아가 아이젠만과 타푸리인 것이고, 이들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항은 너무 거창한 말 같고 삐딱한 시비 걸기라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가 시비를 걸고 싶은 대상은 ‘짓는 조경’이었다. 모두가 디테일의 완성도, 장소의 실체적 경험, 사람들이 잘 쓰는 공간, 아름다운 식재, 이런 것을 설계적 지향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이는 설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조건이지 설계의 지향이 될 수 없다. 짓는 조경은 쓸데없는 이론적 강박과 난해한 개념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본질에 충실한 조경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조경은 자칫 어떠한 비판 의식도, 지향점도 상실한 채 도구적 가치만 남은 종속적인 조경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예쁘게 잘 지어지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조경은 자본에 예속되든, 정치적 선전으로 전락하든, 도시와 환경의 구조를 왜곡시키든, 아무래도 상관 없는가. 물론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소몰(Robert Somol)과 와이팅(Sarah Whiting)이 ‘쿨’한 시대라고 정의한 오늘날 그런 질문 자체가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뜨거웠던’ 시대의 영웅인 아이젠만과 타푸리를 내 설계의 상상적 자아로 소환한 것은 조경 신(scene)에서 한 명 정도는 시대 착오적으로 이론과 설계의 관계를 떠들고 다닐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I(A) 자아이상 롤 모델은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통과 지점일 뿐, 자신이 결국 롤 모델 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주체가 욕망하는 궁극 적 목표는 상상적 대상에 투영되었던 상징적 자아가 된다. 지제크Slavoj Žižek는 정확히 우리가 타인을 모방할 수 없는, 유사성을 벗어나는 지점 의 동일시가 자아이상이라고 설명한다. 모순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된 설계적 자아는 단순히 그 누군가의 사유와 방식을 따라하거나 특정 현상 에 대한 비판에 머물 수 없다. 모방과 비판을 통해 도달하려는 지점은 보다 구조적인 것이다. 모순을 통해 나의 설계적 자아가 도달하려는 곳은 정확히 내가 짓는 조경을 비판하는 지점인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짓는 조경에 시비를 걸었다고 해서 짓는 조경이 패배해 다른 형식의 조경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비판하는 지점은 둘 중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추구하는 조경은 ‘짓는 조경’과 함께 그와 반대되는 ‘개념의 조경’이나 ‘이론의 조경’도 공존할 수 있는 조경이다. 우리는 상반되는 지향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 양립 불가 능한 상황을 모순이라고 한다. 인간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변증법이라는 보편적 원리를 발명했다. 헤겔에 의해 정교화되고 마르크스에 의해 교조화된 변증법은 현대 사회 체계를 구축한 가장 효과적이며 명증한 작동 기제가 됐다. 그러나 정과 반의 모순을 종합해 새로운 합으로 나아간다는 변증법은 모순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차이를 소거했다. 변증법에서 모순의 해결은 실상 모순을 없애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정과 반의 종합이 아닌 정과 반 하나의 선택이며, 결과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다른 하나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래서 변증법의 시스템이 작동하면 할수록 차이는 제거되고 지향은 균질해진다. 균질해진 지향은 사유를 정지시키고 이는 교조화된 폭력이 된다. 이론이 설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짓는 설계를 지향했지만, 다시 이론을 죽인 시대에 짓는 설계는 또다른 구속이 된다. 그래서 나의 설계적 자아가 궁극적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대상은 변증법적 설계이며, 반대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차이의 설계다. 모순의 길 내가 지향하는 모순지도는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설계다. 서로 상충하는 두 개념, 혹은 두 요소의 차이를 존속시키는 방식의 설계다. 사실 모순은 설계에서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모든 설계는 모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제와 모순은 다르다. 문제는 기능적 해결을 요구한다. 모순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배수가 잘 안 되는 땅을 물이 잘 빠지도록 바꾸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모순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마른 땅과 젖은 땅의 모순이 있다. 젖은 땅을 없애면 문제와 함께 마른 땅과 젖은 땅의 차이도 제거된다.하지만 물이 안 빠지는 땅에 연못과 정원을 만들면 차이를 없애지 않고도 모순을 공존시 킬 수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설계 행위다. 그러나 같은 설계는 아니다. 설계를 통해 전자는 가능성이 제거된 땅이 되고, 후자는 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미 잠재하고 있었던 새로운 공간이 된다. 모순지도의 원칙이나 방법을 물어본다면, 아마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방식이 아니라 태도이며 지향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증법의 문제를 비판해온 여러 사상가에게서 얻은 한 가지 가르침이 있다면 새로운 사유의 길은 늘 과거의 사유에 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로움이란 없던 것에서 창조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들이 알려준 진리였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얻은 교훈이라는 점이다. 모든 땅의 문제와 일의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설계의 보편적 규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된다. 모순을 공존시키는 설계는 결국 차이의 설계이며, 그 길의 반대편은 획일성과 동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다. 미국에서 도시설계와 조경설계 실무를 하고,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대표 프로젝트로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상징광장’, ‘새로운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등이 있다.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등 십여 권의 책을 썼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과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조경가 김영민] 다섯 가지 모순
    조경가 김영민의 작품과 설계 철학을 살펴본다. 그가 지향하는 설계와 과정에서의 고민, 설계 개념의 중심축인 모순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이야기를 구성했다. 언어의 모순, 광장의 모순, 건축의 모순, 공원의 모순, 정원의 모순 순으로 소개한다. 01. 언어의 모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은 다음과 같이 건축을 정의했다. “진짜 건축은 오직 드로잉에서만 존재한다(The real architecture only exists in the drawings)”. 이처럼 설계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계획과 방법을 도면에 명시하는 행위다. 조경설계가 단순히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나 대상을 만드는 행위에 그친다면 개념은 필요 없다. 그런데 조경설계의 대상이 기능적 공간 외의 속성, 즉 미, 예술성, 상징성, 장소성 등의 의미를 수반할 때 개념이 개입한다. 개념이 개입하는 순간 설계에서는 말과 사물의 모순이 생긴다. 페터춤토르(Peter Zumthor)에게 설계는 사물에 대한 것이다.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는 사유의 영역에 있다. 모든 조경가는 말과 사물 사이의 어떤 지점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어떠한 지점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모순의 길이다. 정온(靜穩)과 역동(逆動) 설계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갓 졸업한 제자와 함께 모란미술관이 주최하는 설계 공모 모란 폴리 2016에 참가했다. 모란미술관에 폴리를 설계하는 공모전으로, 일반적 공모와는 달리 피스풀 다이내믹스(peaceful dynamics)라는 모순적 주제가 주어졌다. 나는 생명이 막 탄생하는 순간, 태초의 감각을 폴리로 구현하고자 했다. 고요한 역동성,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을 통해 끌어내고자 하는 건 공간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시간적 개념에 더 잘 부합한다. 시작은 균질한 평형이 깨지고 새로운 양태로 나아가려는 시간적 경계다. 생명의 발생은 모든 시작의 순간 중에서 가장 고요하면서 역동적인 사건의 기점이다. 그리고 수정체는 시작의 시간적 개념이 공간적으로 결정화된 대상이다. 생명체는 외부의 환경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응을 해야 하고, 그 반응의 기작은 생명이 진화하며 감각이 된다. 그렇다면 원생의 감각은 어떠한 감각인가. 감각 기관이 분화되기 이전, 원생의 감각은 현실과 실재, 가능성과 잠재성의 경계에서 존재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가능하지 않지만 잠재하는. 그렇기 때문에 원생의 감각은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이제 개념적으로 실재하나 현실의 직관으로는 부재하는 모순의 영역을 현실의 감각 세계로 소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바보 같은 건물. 현실에 있으면서 비현실적인. 모순적 폴리가 그 매개체다. 폴리의 8m 지름 원형 내부에 2m 지름의 작은 잔디 정원이 있다. 정원 위의 천장은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인다. 내부는 끈들의 밀도에 따라 공간이 형성된다. 끈의 배치에 따라 경험되는 감각의 유형과 강도가 달라진다. 배치의 밀도에 따라 시각이 차단되며 개방된다. 반대로 촉각이 개방되며 차단된다. 폴리는 원생의 감각을 담는 매개체다. 인간은 감각을 다섯 개로 분류해 편의상 인식의 체계에 맞추었다. 감각의 유와 종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무한하며, 어떠한 면에서는 단 하나다. 촉각. 모든 감각은 촉각의 일종이며 분화다. 원생의 감각은 분화되기 이전의 감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이 모두 촉각으로 융해되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폴리의 내부는 촉각의 공간이다. 이때 촉각은 감각이 모두 분화되고 남은 찌꺼기로서의 촉각이 아니라 분화되기 이전의 촉각이다. 무수히 많은 끈이 만드는 공간을 경험하려면 끈의 장막으로 들어가야 한다. 끈은 밀도가 다르게 배치된다. 밀도에 따라 감각의 강도가 달라진다. 폴리 안에는 촉각만이 존재하는 영역이 있으며 다른 감각을 열어주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개념적 설정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이다. 이미 인간의 감각은 분화되었기 때문에 원생의 감각은 실제로 허구의 감각이다. 인간은 진화의 궤도에서 시각에게 모든 감각의 지배권을 내어주었다. 시각의 지배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인이 경험의 주체인 이상 원생의 감각은 시각을 통해서 유도된다. 감각의 끈들은 강렬하다. 폴리의 형태는 시각적으로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원형이다. 가장 찬란한 시각적 감각이 사라질 때, 원경이 아닌 극도의 근경이 솟아오를 때 순간순간 원생 감각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바보의 건축 폴리에서. 폴리가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관을 찾았는데 단체로 견학 온 유치원생들이 까르르 대며 폴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매우 앳되어 보이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다가 셀카도 찍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공모에 제출했던 현학적 수사와 개념 풀이는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인 지 자문해 보았다. 표상(表相)과 내재(內在) 실행을 전제로 하지 않는 아이디어 공모는 현실의 제약이 없어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의 대상지가 주어질 때 그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과 같은 대상지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경성의 중심지였다. 경성의 최대 번화가였던 혼마치와 메이지마치의 입구였고, 은행 본점들과 함께 경성을 대표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자리 잡은 서울의 중심지 중 하나다. 1970년대 이후 이곳은 분수대로 기억되어 왔다. 그런데 이 광장의 문제도 바로 이 분수대에 있었다. 1930년대부터 광장에 원형 분수대를 설치했는데, 1978년에는 이일영의 조각 15점으로 이루어진 조각 분수상으로 바뀐다. 분수대 가운데 설치된 8층탑은 서울의 여덟 문과 여덟 산을 상징한다. 그리고 탑신 주변의 대형 군상은 가족, 예술, 건설을, 입상은 애국, 번영, 충효, 평화, 총화, 풍화를 상징한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지향을 보여주는 이 분수대는 산업화 시대 근대화 이념을 직설적으로 외치고 있다. 이 분수대 앞에서 노년층은 본인의 젊은 시설을 회상하며 향수에 잠길 수도 있겠지만, 이곳을 바쁘게 스쳐 가는 대부분 이들에게 이 분수대의 메시지는 시대착오적이거나 공허한 과거의 흔적이다. 대상지에서 한참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 분수대를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 분수대와 주변의 녹지는 길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로만 느껴졌다. 대상지는 이 분수대 때문에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중심부를 거대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 새로운 활동이 일어나기도 어려웠으며, 휴식을 취하려 해도 마땅히 앉을 장소가 없었다. 굳이 머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은 분수대로 향하는데, 조각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어서 한참 보기에는 불편했다. 사실 저 분수대는 사라지는 것이 맞았다. 육중하고 직설적인, 저 불편한 남근적 분수대가 사라지면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아마도 이 공모 주최 측의 의도는 분수의 제거일 것이며, 대부분의 공모 참가자는 저 분수를 없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분수를 없애기로 하면 또 다른 모순적 지점에 부딪힌다. 이미 30년 가까이 저 분수는 이곳의 장소성을 규정해 왔다. 지금은 의미를 상실한 1970년대의 가치와 이념도 분명 우리의 일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1970년대를 딛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 효용이 다했다고 사라져야 한다면 많은 것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그래서 분수대를 존속시키면서 없애는 모순적인 설계를 제안했다. 분수대를 반전시켰다. 말 그대로 지면을 기준으로 분수대를 뒤집었다. 분수대의 형상은 주형을 떠 유리로 제작한다. 과거의 상징인 청동의 조각과 돌의 탑은 가장 가볍고 투명한 유리의 형태로 역전된다. 지하의 뒤집힌 조각은 과거가 여전히 우리의 일부로 남아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현재의 가치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지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근적 분수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분수대의 상징성은 자궁과도 같은 공간으로 내화된다. 숨겨진 역동적 지하의 세계에 마련된 신전은 과거를 새로운 상징으로 치환하고 지상은 살아 있는 잠재성을 위한 표면이 된다. 역전된 분수대는 물을 담는 수반이 된다. 수평의 수반은 사람들의 시선을 외부로 열어준다. 번잡한 도로와 광장을 막는 나무나 시설을 들여놓지 않으려 했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그리고 변화의 풍경을 담고 있는 도시적 경관을 바라볼 때 멈추어 바라보는 자리가 머무는 자리가 된다. 이미 가장 역동적인 무대가 있었음을 발견할 때 사람을 위한 객석이 마련된다. 수반의 주변에는 잔디광장을 만든다. 사람은 잔디를 밟을 수 있다. 맨발로 거닐 수 있고 누울 수 있다면 다른 일도 하게 된다. 이곳에는 사람이 모이게 된다. 사람이 거닐 수 있는 반경의 도심 일대에 유일하게 열린 녹색이기 때문이다. 물이 담긴 수반은 지하에서는 투명한 천창이자 조형물이다. 투명하기에 빛은 지하로 들어온다. 그러나 물이 있기에 빛은 강하지 않고 여과된 투영이 된다. 유리 수반의 아래에는 작은 정원을 만든다. 회현 지하상가와 신세계 백화점 지하의 결절점에 놓이는 이 지하의 공간은 비밀의 정원이다. 이곳은 도시의 분주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적 공간이 된다. 그 시는 가장 강렬했고 희망에 넘쳤고 동시에 가장 어두웠던 1970년대의 메시지가 역전된 오늘날을 위한 위로의 시다. 이 안은 1등 없는 공동 2등 안으로 뽑혔다. 몇 개월 뒤에 공모전을 주최한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이곳의 새로운 미디어 분수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조경가가 설계를 진행한 안이었다. 새로운 안에는 지금의 분수대보다 세배는 높아 보이는 거대한 미디어 기둥이 솟아 있었다. 인공(人工)과 자연(自然) “어떻게 녹색으로 처리할 수 없을까요?” 조경가로서 가장 많이 듣는 모순적 요청 중 하나는 인공물을 어떻게든 녹색으로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 인공물을 만들었단 말인가. 이런 요청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불가능한 요청으로 판명 난다. 첫째, 시기의 문제. 대부분 시기가 한여름인지 한겨울인지 상관없이 당장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둘째, 장소의 문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아닌데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셋째, 관리의 문제. 식물을 심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곧 죽어버리거나 엄청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무지 혹은 착각으로 귀결되는데, 자연의 식물이 인공물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자문도 그랬다. 서울로7017과 서울역 북측에 폐쇄된 주차 램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 자문을 해야 했다. 이미 서울역 롯데마트 야외주차장에 옥상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서울시는 공공건축가에게 연결 공간에 구조물 설계를 의뢰했다. 이미 있는 낡은 건물 위에 구조물을 올리는 일이라 건축가는 경량의 비계 구조물을 제안했다.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구조물은 누가 보더라도 임시 공사장을 연상시켰고 빨리 철거하라는 민원이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식재로 구조물을 가려 공사 시설 같은 느낌을 완화할 방법이 없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상지는 식물이 자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극악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자연 지반이 전혀 없었고 구조물이 낡아 새로 토심을 확보할 수도 없었다. 주변 건물로 인해 항상 강풍이 불어 웬만한 식물은 이번 생은 빨리 마감하겠다고 결심할 것 같았다. 폐쇄 램프 아래 공간이 있었으나 정화조배관과 공조 설비가 잔뜩 있어 난감했다. 나는 녹색으로 무엇을 시도하든 망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자문 의견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마음 편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이 다시 왔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그냥 내가 프로젝트를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어 라? 원래는 안 되는 것이지만 조경왕이 맡으면 달라질 수 있지. 덥석 미끼를 물어 버렸다. 일단 입체적 격자 형태의 구조물에 담쟁이 따위를 올려봤자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기존의 격자 단위를 분절해 입방체 안에 더 작은 입방체가 들어있는 마트료시카 같은 구조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구조를 녹색으로 덮어 떠있는 거대한 식물의 구름 같은 하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문제는 추가된 구조체와 식물의 무게를 기존 건물이 견딜 수 있냐는 점이었다. 구조기술사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학부 때 건축을 전공했는데 내가 한번 풀어보기로 했다. 램프 가장 아래층에 자연 기반처럼 보이는 조그만 땅에 전체 구조를 지탱할 수 있는 트러스 기둥을 제안해 전체 하중을 받는 안을 그렸다. 그 안을 보고 구조기술사는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알아봤는데 안을 보고 모두 자기들은 맡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OMA의 특수 입면을 풀었다는 회사를 소개받았고, 대표님은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환하게 웃었다. 물론 실무자들의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어쨌든 된다고 하니 서울시에도 해결될 것 같다고 보고를 했다. 팀장님은 내가 만든 거대한 신단수 같은 녹색의 인공 구조물을 무척 좋아했고 예산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한 주무관이 물었다. “그런데 저 식물은 진짜 식물이죠?” 물론 가능하다고 말하려다가 뒷감당이 두려워 요새 가짜 식물도 진짜 같다고 대답했다. 가짜 식물이라는 이야기에 좋아하던 팀장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겁을 주었다. 당장 가을에 완공해야 하고 겨울에 사람들이 볼 텐데 진짜 식물로는 다 죽어요. 관리도 절대 안 됩니다. 책임질 수 있겠어요? 마지못해 모두가 가짜 식물로 가는 데 동의했다. 일은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과장님도 오케이, 팀장님도 오케이, 부시장님이 문제였다. 그냥 한마디를 하셨다. 너무 과한데. 모든 것이 재검토에 들어갔다. 우선 30m 길이의 신단수 기둥이 날아갔다. 나는 예전의 구조기술사에게 읍소를 했다. 다시 어떻게 구조 해결이 안 될까요? 기술사는 마지못해 몇 개의 추가 입방체와 가짜 식물들을 허용해 주었다. 원안에 비하면 거의 탈모 수준의 엉성한 녹색 구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서울의 가장 큰 나무는 존재하지 않으니 프로젝트의 새로운 스토리를 짜야했다. 사람들이 진입하는 공간에는 진짜 식물이 심긴 정원을 만들었다. 가을에는 갈색이지만 봄에 다시 녹색으로 변하는 자연 그대로의 시간성을 담는 정원이다. 하늘에는 가짜 식물로 이루어진 인공의 정원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녹음이 우거진 하늘 정원은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램프 바닥에는 숨겨진 비밀의 정원이 있다. 간접광만으로 자랄 수 있는 음지 식물과 함께 흙 위에 자갈과 모래, 바크를 덮은 마른 정원으로 꾸몄다. 지하의 비밀 정원에는 자연스럽게 씨앗들이 날아와 잡초가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의도되지 않았던 식물들로 채워진 지하의 정원은 점차 색이 바래지는 하늘의 인공 정원과 대비를 이룬다. 가장 푸르렀던 인공의 자연과 가장 회색빛이 었던 야생의 자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전된다. 시공 팀의 피, 땀, 눈물로 프로젝트는 기간에 맞춰 완공됐고 원래 꿈꾸었던 그대로는 아니지만 꽤 멋진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철이 바뀌고 이듬해 늦은 봄에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공공 미술품을 폐쇄 램프에 설치해야 하는데 정원을 철거해도 되겠냐고. “어쩔 수 없죠”라고 대답했다. 사실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환경과조경429호(2024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