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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회 환경조경대전] 비 어라운드 인 애월 은상
    꿀벌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꿀벌 피해와 폐사가 가장 심각한 제주도 애월읍에 꿀벌이 다시 서식할 수 있게 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어디에서든 꿀벌이 머물 수 있고 활동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꿀벌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해답을 제안한다. 꿀벌 폐사 꿀벌을 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상지인 제주도 애월읍의 꿀벌 폐사 원인을 파악했다. 꽃이 작은 초화류 군집으로 인해 채밀 양이 감소하고, 꿀벌의 단일 수종 꽃가루 섭취로 인해 폐사 위기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주요 밀원 수종이 특정 계절에 분포되어 있어 꿀벌이 지속적으로 밀원을 섭취하기 어렵고, 대규모 벌채 및 벌목으로 인해 녹지와 수목이 감소하면서 꿀벌 집 조성과 먹이 활동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배민주·마서연·문정윤·정선화 / 2024년10월 / 438
  • [제21회 환경조경대전] 허니 벨트 은상
    대상지 분석 전라남도는 한국에서 꿀벌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다. 이에 주목해 전라남도 양봉 산업 지역 중 꿀벌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농약 영향이 가장 적은 시가지 내 브라운필드를 대상지로 선정했다. 과거 시멘트 공장 부지였던 대상지는 토양 중금속 오염, 채광 작업으로 인한 알칼리성 호수 생성 등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꿀벌 서식지 조성 전 대상지 회복 전략을 정립해야 한다. 대상지의 자연을 충분히 회복시킨 뒤 밀원 식물 식재 등을 통해 꿀벌을 위한 서식지를 조성한다. 이후 주변 환경도 함께 살리는 상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꿀벌이 월동 가능한 서식지를 제공하고 밀원 식물 네트워크를 조성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회복 전략 토양 회복: 세 가지 공법을 이용한다. 첫째, 심토 반전 공법이다. 상부 오염층과 하부 비오염층의 위치를 바꿔 지표면에 비오염 토양이 형성되도록 하는 공법으로, 오염 정도가 비교적 낮은 토양 복원에 적용된다. 둘째, 석회 안정화제 공법이다. 석회석과 제강 슬러그를 이용해 중금속 오염 물질의 이동성을 저감해 생물학적 유효도를 감소시킨다.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정화가 가능하다. 셋째, 식물 정화 공법이다. 식물 조직이 중금속을 체내 축적하는 식물 추출 공법과 오염 물질을 식물 효소에 의해 비활성 상태로 만드는 식물 안정화 공법이 있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가장 친환경적인 토양 복원 방법이다. 절개지 회복: 경사각 60도 이상의 암석 비탈면이 주는 시각적 위압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비탈면의 경사 각도를 완만하게 조정한다. 이를 통해 산사태를 방지하고 안정성을 높인다. 절개지에는 안정된 생육 활착과 지속적인 생장을 도모하기 위해 식생 구멍 공법을 활용해 식물을 식재한다. 폐석 적치장 호수 회복: 기존 오염수를 폐수 처리한 후 토양 안정화 작업과 호수 정화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자연을 회복시키고 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키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홍유진·박다현·오효린·오병웅 / 2024년10월 / 438
  • [제21회 환경조경대전] 리질리언트 제주 코스트: 포밍 버내큘러 랜드스케이프 동상
    대상지 선정과 콘셉트 제주도 읍·면 행정 구역 중 축산 폐기물 배출 시설과 농경지 비율, 지하수 질산성 농도가 가장 높은 한림읍 연안을 대상지로 선정했다. ‘환경적 특이성에 기반을 둔 적응형 생활 방식’을 의미하는 ‘버내큘러(vernacular)’를 콘셉트로 정했다. 제주 특유의 물 순환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과거 제주 도민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남긴 토속 문화를 본받아, 현대적 삶이 선조들의 삶의 흔적 위에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바다로 유입되는 용천수의 흐름에 따라 해안가~조간대~조하대로 공간을 구분해 세 단계의 전략을 도입한다. 전략 1. 용천수, 해안가 용천수는 과거 제주 어촌 형성의 중심이었던 만큼 접근이 쉽고 인근으로 마을과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에 이용자를 관광객, 노동자, 지역 주민으로 구분해 용도별로 차별화되는 수질 정화 전략과 공간 구성을 적용했다. 용천수를 사용하는 단계적 문화에서 착안해 단계적 정화 설계를 적용했다. 관광객 구역에 흐르는 용천수 주변에는 관광객의 이목을 끌 경관 조성을 위한 식재를 하고, 이를 통한 정화 장치를 도입한다. 지채, 퉁퉁마디, 잘피, 칠면초 등의 염생 식물을 물통 형태의 장치 안에 식재해 질산성 질소를 흡착한다. 노동자 구역의 용천수는 해녀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에 경관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 다층 시트 구조 장치를 도입한다. 이는 작은 면적에서 탄산칼슘과 질산성 질소를 흡착해 해녀들을 위한 목욕과 휴식 공간을 확보해준다. 지역 주민 구역의 용천수가 지나는 작은 통로에 정화 장치를 더해 기존 용천수의 기능을 유지하고 정화 효과를 갖도록 한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허해찬·김유민 / 2024년10월 / 438
  • [제21회 환경조경대전] 1858-땅의 기억을 읽다 동상
    최초로 기업 주도의 채석이 시작된 곳인 황등석산에서는 166년 동안 황등석이라 불리는 화강암이 채굴돼 왔다. 지금도 채굴로 인한 절벽과 채석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국내 채석장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황등석산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보고 이곳의 잠재력을 활용해 방치된 채석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166년간 채석장에 새겨진 땅의 기억을 보여주고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것을 콘셉트로 정했다. 전략 기억하다, 되돌리다, 불어넣다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설계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과거 산업 발전의 산물인 채석장의 산업 유산의 가치를 살리고, 166년간 채석장이 쌓아온 역사를 경험하고 상기시킨다. 둘째, 산업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산을 깎아내면서 파괴된 자연을 다시 되돌린다. 셋째,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쇠퇴하는 지역에 활기를 더한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강준성·김채영 / 2024년10월 / 438
  • [제21회 환경조경대전] 반지하(反䛗罅): 상실과 포용, 그 틈 사이로 동상
    강우량 급증으로 피해 받는 도시 속의 틈, 반지하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반지하 거주민의 삶의 질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창으로 난입하는 유해 물질과 장마철에 넘쳐 들어오는 빗물은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일상을 침범하는 시선과 범죄의 그림자가 반지하라는 도시의 틈에 들어차고 있다. 반지하는 본래 방공호로 역할하며 시민을 지키고 보호하며 안정감을 제공하던 곳이다. 하지만 반지하가 거주 공간으로 변화하며 그 본질을 잃고 불안이 가득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시는 반지하 용도 전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매입과 함께 거주자의 이주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남겨진 반지하는 여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도심 속 휴식 공간, 빗물을 수용하는 공간, 나아가 사람과 자연, 도시 문제를 포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반지하의 본질에 주목해 그 속에 쌓인 불안감을 들어내고 사람, 자연, 도시를 포용해 안정감으로 채운 새로운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제점과 목표 대상지의 문제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치안이다.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시야각인 10도는 반지하 주택 밀집 지역에서 피해와 불편을 초래한다. 이 시야각을 역으로 활용해 자연적인 감시를 증대해 치안을 높인다. 둘째는 침수다. 도로 아래에 위치한 반지하 구조 특성상 창이나 문을 통해 빗물이 쉽게 들어오게 된다. 이 특성을 활용해 반지하 공간을 빗물 저류 공간으로 만들어 도시 침수 피해를 줄인다. 셋째는 공기 질이다. 반지하는 환기가 어려워 유입된 유해 물질이 실내 안에 고이는 구조다. 구조와 식재를 활용해 반지하를 도심 속 필터로 재탄생시킨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박서영·양은애·지수연·정지원 / 2024년10월 / 438
  • [잠수하는 풍경] 해륙순환 도시주의
    해녀는 바다와 땅을 하나로 일군다. 그들은 물 아래 바당밭에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을 보살피고 수확한다. 땅 위 우영팟에서는 쌈 채소, 당근, 마늘, 호박 등을 키워 자신과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거나 판매한다. 물때와 날씨에 따라 바당밭이나 우영팟에 나가며 해녀들은 각 환경에 필요한 영양분을 물에서 뭍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시켜 여러 생물에 이로운 먹이 연쇄를 조성했다. 나는 이 글에서 일 년간 해녀들과 지내며 배운 그들의 고유한 풍경 감각을 묘사하고, 이에 기반을 둔 ‘해륙순환 도시주의(Submersible Urbanism)’를 제안한다. 해녀가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듯, 건축과 조경이 수면 위아래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부가) 생산물들을 호혜 교환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지역 공동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와 땅의 리듬을 따라 에너지를 순환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연재에서 해륙순환 도시주의를 세 편의 에피소드와 함께 도시, 풍경, 건축의 스케일로 상상해보겠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마비시켰던 2020년 초 나는 대학원에서 건축 전공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모든 수업이 화상으로 전환되던 시기, 교수님에게 졸업 연구를 제주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지도 교수 중 한 명이었던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는 현지 조사에 기반을 둔 디자인 인류학을 가르쳤다(“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북서부 풍경: 경계에서 백터로”, 『환경과조경』 2024년 6월호 참조). 그는 풍경과 공동체를 깊이 알려면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학교 폐쇄가 그 방법을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고향이었지만 중학교 졸업 후 떠나 제주의 건축과 풍경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해 궁금했고, 육지의 목조 한옥으로만 한국 전통 건축이 대표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졸업 작품을 통해 제주의 고유한 건축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격리를 마치고 5월부터는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해녀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제주의 지역성이 근대 건축적으로 표현된 예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답사는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와 데니즈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의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MIT Press, 1972)이나 엘리슨 스미스슨(Alison Smithson)의 『차를 탄 엘리스: 도로 위의 관찰자(AS in DS: An Eye on the Road)』(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2001)처럼 근대 건축이 만들어낸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다만 앞선 연구자들이 자동차를 택한 반면 나는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 중요한 차이였다. 자전거는 나를 오래된 마을의 골목골목으로 안내했고, 작은 오르막이나 내리막, 바람까지도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다. 바람이 거센 날이나 오르막이 많은 날에는 편의점이나 마을 정자에서 쉬어가며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균 속도 시속 15km, 6시간의 주행이 내 평균이었기에 집에서 멀리 갈 때는 숙소를 구해 머물면서 여러 마을의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경험했다. 그렇게 답사를 다니던 중 해안가에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고 낮고 둥근 지붕을 올린 단층 건물이 해녀 탈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해녀의 건축과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12월부터는 삼양3동 해녀들과 알게 되면서 삼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는 일곱 명이 활동하고 있었다. 톳이나 소라를 옮기는 것 등을 도우며 그들의 일상이나, 분위기, 풍경을 답사 노트, 스케치, 사진, 소리 등으로 기록했다. 게럿은 내게 현장에서 한 시간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네 시간을 할애하는 ‘1대4 규칙’을 지키길 요구했다. 그는 가치 판단 없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패턴을 찾아보기를 강조했다. 나는 답사 노트를 쓰고, 현장 스케치를 도면으로 다시 그리고, 녹음한 소리들을 들으며 공간의 성격과 관계를 살폈다. 특히 녹음한 소리는 내가 무의식중에 걸러낸 ‘소음’들을 들려주었고, 이는 바람과 건축, 풍경의 관계를 체감하게 했다. 게럿은 현지의 삶에 몰입하고 기록하고 상상하는 방법을 디자인 인류학 혹은 풍경 현지 조사(landscape fieldwork)라고 불렀다.1 사람마다 정도와 접근법은 달라도, 땅과 사람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땅에 귀를 기울이는 언뜻 당연한 일은 오늘날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라는 자본주의적 명령에 맞서야만 가능하다. 이 명령에 맞서 사용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거나 대지를 살펴도 그 답이 시원하게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직 끈질기게 물어야만 답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땅에 쓰는 시’(2024)에서 정영선 조경가가 풀과 나무, 바위에게 말을 걸고 호미질을 하며 만지고 쓰다듬는 것을 보라.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이 쌓여 영감이 되는 순간을. 또는 정기용 건축가의 안성면사무소 목욕탕을 생각해보자. 그가 주민에게 “돈 처들여 가며 그런 건물을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정기용이 수많은 이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들었기에 설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2 이런 좋은 선례를 따라 나도 해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속에서 만난 기후 변화와 오염, 위험한 작업 환경, 그리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해녀들이 당면한 과제와 그 해결 방안을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다뤄보겠다. “바당에 물건이 어따” 해녀들은 바다에서 채취해서 현금화가 가능한 모든 생물을 ‘물건’이라고 부른다. 물건을 잠수해서 수확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한다. 삼양 해녀들은 예전에는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 같은 물건이 바당에 많았으나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탄했다. 그들은 도시의 생활 폐수, 양식장 방출수, 화학 비료가 섞인 유거수, 인근 발전소 냉각수 등을 물건을 사라지게 한 주범으로 지적했다. 특히 발전소 건설 이전, 밀물에는 서로, 썰물에는 동으로 흘렀던 바다가 1980년대 발전소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항상 동에서 서로만 흐른다고 해녀들은 말했다. 해녀들은 이것을 강처럼 흐르는 바다라는 뜻에서 ‘강바당’이라고 불렀다. 강바당에서 해조류가 먼저 사라지더니, 다른 물건들도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 생활 하수의 경우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관광객의 증가 이후, 하수 처리 시설이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부터 심각해졌다.3 넘치는하수는 완전히 정화되기 전에 바다로 방류되었다. 많은 해녀 공동체가 이런 하수가 그들의 건강과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월정리 해녀들은 하수 처리 시설에서 나온 하수가 그들의 바당밭을 오염했으며, 피부 병변까지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4 또한 일부는 제주 해안에 걸친 380여 개의 양식장에서 나오는 배출수에 포함된 항생제나 사료가 오염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오염과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바다숲이 사막이 되고, 흰 석회 조류가 그 자리를 채우는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5 바다숲이 사라지는 것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한국수자원자원공단은 이미 2015년 연근해의 35%가 이미 백화 현상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6 이를 뒷받침하듯 2000년대 중반 이후 모든 해조류의 생산량은 감소해왔다.7 해녀들은 이런 바다의 변화를 “바당에 풀이 어따(바다에 풀이 없다)”라든지 “물 아래가 다 희양하다(하얗다)“고 묘사했다. 이처럼 해녀는 색깔을 통해 바다의 오염이나 상태를 인식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삼양 해녀 한 명은 바다가 겉으로는 파랗지만 물 아래는 다 갈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날엔 주변 밭에서 흘러 온 흙이 섞여 앞을 볼 수 없다고. 그녀는 밭에 뿌린 비료나 제초제 등이 바다로 흘러 들어온다며 걱정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찾을 수 없었지만, 한 연구는 돼지 농장이 밀집되어 있고 그 분뇨로 만든 액체 비료(액비)가 살포되는 서부 지역 지하수에서 수질 오염의 한 지표인 질산성 질소 수치가 훨씬 높게 나온다는 점을 밝혀냈다.8 만약 지하수가 오염되는 정도라면 인근 해의 바다 또한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깨끗한 물을 가져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오염시켜 방류하는 선형적 착취가 바로 바당밭에 물건이 사라진 이유다. 바다와 땅을 연결하기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왔던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제주에는 땅과 바다 사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선순환시키는 사례가 있었다. 제주 화산토는 배수가 잘됐지만 지력이 약해서 연속적으로 농사를하려면 유기물과 질소를 포함한 영양분을 보충해주어야 했다. 1975년 제주에서 화학 비료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민은 두 가지 비료를 만들어 썼는데 그중 하나가 듬북이었다.9 듬북은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고지기, 지청, 그리고 실갱이를 포함한 갈조류 모자반과의 해조류를 지칭한다. 이러한 바다풀은 질산과 인산을 함유하기에 해녀들은 이를 잘라 건져내서 건조한 뒤 밭에 비료로 쓰거나 돼지 분뇨와 섞어 사용했다. 이렇게 바다풀을 베어낸 자리에서는 미역이나 톳과 같이 식용 가능하고 현금화할 수 있는 해조류가 자랄 수 있었다 두 번째 비료는 발효된 돼지 분뇨인 돗거름이다. 제주 초가는 통시라는 공간을 분리해두어 화장실과 돼지우리를 겸하게 했다. 통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화장실로 쓰는 지들팡이라는 돌단과 인분을 먹는 돼지, 그리고 돼지를 가두어두는 돌담이었다. 사람의 부가 생산물이 돼지를 먹였고, 듬북이나 건초와 섞어 발효한 돼지 분뇨는 돗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했다. 그 땅에서 자란 마늘, 고구마, 당근, 보리 등이 다시 제주 사람들의 식사가 되었다. 돗거름과 듬북은 해륙순환의 좋은 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급격한 도시화와 농업의 산업화가 이러한 원형 자원 순환 구조를 선형적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거주와 농업의 부산물들은 순환되지 않으며, 값싼 화학 비료가 친환경 비료를 대체하게 되었다.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땅과 바다 사이의 호혜적 자원 교환을 복원하기를 제안한다. 육상 양식장 대신 인공 해초로 둘러싸인 인근해 양식장은 어떤가. 인공 해초는 양식장에서 나온 과도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자라 해삼이나 성게, 전복 등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양식장에 먹이로 공급되는 지렁이들은 돼지 분뇨를 먹으며 자라고, 지렁이똥(분변토)은 다시 농가에 비료로 공급될 것이다. 은퇴 해녀가 소득이 필요하다면 지렁이를 키워 낚시꾼들에게 미끼로 팔거나 지렁이와 분변토를 자신의 우영팟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현역 해녀들은 인공 해초들을 돌보며 미역이나 톳을 키우고, 물건을 수확하며 바다 속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해녀들은 그들의 바당밭을 확장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도, 도시도, 풍경도, 땅과 바다의 순환 속 일부로 설계한다면, 더 이상 쓰고 버리는 무분별한 착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효율과 편의를 쫓아 잠시 잊었을 뿐 방법은 있어왔으니까.10 각주 1.Gareth Doherty, Landscape Fieldwork: How Engaging theWorld Can Change Design , University of Virginia, 2024. 2.최선희, “건축가 정기용이 지난 10년간 전북 무주군 곳곳에 31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으나 관리 부재로 문제점 속출”, 『월간조선』2009년 11월호. 3.강민정·권상철, “제주시 도시화의 공간적 특성: 인구와 지가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0(3), 2007, pp.55~67. 4.이석형, “월정리 해녀들 “오폐수 방류로 구토와 피부트러블 생겼다”“, 「뉴스1제주」 2008년 12월 17일. 5.윤지희, “바닷속 석회조류 다닥다닥…마을어장 3분의 1황폐”, 「세계일보」 2014년 7월 23일. 6.형민우, “바다사막화 1. 온 바다가 ‘시름’…여의도 65배 면적 황폐화”, 「연합뉴스」 2017년 7월 17일. 7.녹색연합, “그 많던 제주의 ‘구쟁기’는 누가 다 먹었을까?”, 녹색연합 홈페이지, 2022년 6월 5일. 8.김정호, “제주 가축분뇨 살포 땅 시추해보니 ‘지하수 오염 위협적’”, 「제주의소리」 2021년 11월 30일. 9.고광민, 『제주도의 생산 기술과 민속』, 대원사, 2004. 10.이 글은 중국 『Landscape Architecture』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을 번역해 수정, 보완한 것이다. Kang Jun Ho·Gareth Doherty·XIAO Su Feng, “Submersible Urbanism and Its Commons: Jamsu (Haenyeo) Living Across Land and Seaon Jeju Island”, 『Landscape Architecture』 29(11), 2022, pp.131~144.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 강준호 / 2024년10월 / 438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우리엔디자인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우리 환경을 더 풍요롭게 창작을 업으로 하는 조경가로서 처음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공간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리다 보면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힌다. 예산, 공간, 환경 등 여러 제약은 그 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크게 만들며, 때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그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우리의 의도가 실패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창작을 이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우리의 작업 공간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화폭이며, 창의성의 정수를 담아내는 캔버스가 된다. 협업이라는 무대에서 서로 다른 의견과 꿈을 조율하는 일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닮아 있어서 협업의 멜로디가 설계 도서 위에 펼쳐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 멜로디가 이용자들의 삶에 영감을 줄 때 세상의 흩어진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 자체도 일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워라밸이 삶의 질에 중요한 척도가 된 오늘날 재미라는 단어로 야근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회사는 디자인의 완성도 이외에도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목표와 기대를 조정하고 정기적인 휴식을 제공하며 창의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세미나와 답사를 기획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율적인 자기 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언제나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균형을 동시에 맞추는 작업은 도전적일 수 있지만, 설계가에게 도전이란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일 뿐이다.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나는 난관들은 결국 내면의 우리 환경(uri environment)을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프로젝트 다락의 꿈 다락은 어두운 천장 아래 감춰진 비밀 정원 같은 공간으로, 좁고 조금은 가파른 계단에 올라서면 외부 세계와는 다른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에서 꽃이 자라듯, 다락방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라난다. 마치 푸른 식물들이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꿈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꿈꾸는 다락방’(2015 코리아가든쇼)에서는 그대로 드러난 건축 부재, 낡은 고벽돌,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들이 옛것의 향수가 있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엮여 새로운 꽃을 피우듯, 정원 속에 사유하며 다채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정원의 각 구석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의 구석구석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묻혀 있어 방문객에게 감정의 씨앗을 심어준다. 햇볕이 잘 드는 정원의 한 부분이 특별히 더 풍성한 식물들로 가득차듯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통해 아늑한 다락방 분위기를 연출하는 창살 가벽과 긴 그림자와 함께 추억으로 이끄는 몽환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 다락방 내부로 들어서면 낮은 천장에 맞춰진 낮은 책장과 집 앞 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창 너머로 어릴 적 추억이 꿈처럼 펼쳐진다. 다락의 물건에는 그 집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낙서로 가득한 책상, 오래된 서랍장 등 기억을 품은 것들이 모여 잘 삭은 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시김의 미를 자아낸다. 결국 꿈꾸는 다락방은 건물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시간과 경계를 초월하며 과거의 추억과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뒤섞인 누구에겐 특별한 새로운 낡은 정원이 된다. 이는 무한한 상상과 휴식의 공간이며, 고요한 자연 속에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러나 현대 주거 공간에서 다락이라는 기능이 상실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연과의 연결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조경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 공간이 옥상 정원과 테라스 공간이 아닐까. 이 공간들은 도시의 고층 건물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기능함과 동시에 도시에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늑한 가구를 배치해 편안한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기존의 추억과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공간의 기능과 사용 방식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땡큐, 썰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거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시작점, 군대. 특히 논산 육군훈련소는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에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곳은 단순히 군사 훈련을 받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훈련소에서의 시간은 자아를 성찰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이곳에서의 경험은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는다.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군사훈련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군복무를 수행할 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상지는 매주 약 3,000명의 입·퇴소 장병을 포함해 함께하는 12,000명의 가족들이 이용하는 곳으로서 일 년 중 단 한 계절의 정원만 즐길 수 있는 이용자들의 특징을 고려하여 설계됐다. 봄에는 기(起)(시작, 일어나다), 여름에는 승(承)(진행, 받아들이다), 가을에는 전(轉)(회전, 변화하다), 겨울에는 결(結)(마무리, 완성하다)의 단계로 정원을 순환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공간이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안정감을 제공하고, 군 생활 동안 한 단계 더 성장한 자신을 대면하는 만남과 쉼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정원에서 특별한 아이템이라고 한다면 군화를 소품으로 활용하여 만든 화분일 것이다. 행군이 끝난 군인들의 군화를 본 적 있는가. 군인에게 군화는 단순한 신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장시간 행군이나 험한 지형에서도 발을 보호해 주는 편안함, 모든 군인이 동일한 군화를 착용함으로써 일체감과 조직적 단결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행군이 끝난 군화에 남겨진 열기처럼, 군화에 담긴 흙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그 흙에서 피어난 보랏빛 꽃은 청화 쑥부쟁이로 인내,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설계자로서 모든 군인 장병에게 바치는 작은 보답이다. 그들의 희생이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 의해, 아이들을 위한 청주 센트럴자이에 조성한 놀이 공간은 굉장히 특이한 테마로 계획했는데,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대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네 개 챕터(토끼 굴 속으로,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애벌레의 충고,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를 소재로 놀이터와 놀이 정원을 연결하는 약 0.5km의 놀이 길을 구성하고 단계별 모험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공동 주택이라는 주거 공간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중요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서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촉진하고,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 주택의 특성상 놀이터는 형평성을 고려해 배치되기 때문에 다수의 놀이터가 있는 단지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만 상호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키즈길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개별 놀이터가 한정된 범위 내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유도하는 반면 공통된 테마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키즈길은 주거 단지 내에서 서로 다른 놀이터를 연결한다.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연 요소를 통합하여, 자연과 교감하며 놀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모험을 어린이에게 선사한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하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공동 주택 내 커뮤니티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놀이 공간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이용하는 아이들의 색다른 행태를 목격하게 됐다. 원래 놀이 가벽은 가벽의 구멍 사이를 통과하거나 미끄럼틀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설계됐는데, 의도와는 달리 가벽 위로 올라가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주는 것 같았다. 일부 가벽은 안전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쉽게 올라설 수 없는 높이로 계획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기어코 올라가 노는 모습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설계자가 바라봐야 하는 시선이 단순히 설계 의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동과 반응에도 닿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예기치 않은 활용 방식은 놀이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공간 구성과 시설 설계에 있어 사용자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고 반영될 필요성을 시사한다. 도예와 자연의 조화 이천시는 한국 도자 문화의 심장부이자 공예와 민속 예술 분야에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인정받은 특별한 도시다. 이천시 사음동의 사기막골 도예촌은 1950년대 조선 관요의 폐쇄로 한때 사라졌던 전통 도자기의 숨결을 다시 되살린 성지로 전통 도예 장인들이 수광리 칠기가마에 모여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각종 도자기를 재현하며 한국 도자 예술의 혼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설봉산의 부드러운 산자락에 자리한 사기막골 도예촌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 시장의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연 경관과, 상점들마다의 개성 넘치는 도자기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이 특별한 장소의 우수한 자연 경관과 도예 조형물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거리의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한 공간을 구상했다. 도화광장에는 세 그루의 아름드리 정자목이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은 도예촌에서 가장 넓은 공간으로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입구 정원이다. 사기막의 형태를 형상화한 유려한 퍼걸러와 무대, 그리고 마당 뒤쪽에 펼쳐진 도자 조형물과 초화가 가득한 포토존은 예술 작품처럼 그 자체로 감동을 선사한다. 화란원은 상가에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아늑한 공간으로 잔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적인 휴게 공간이다. 상춘원은 울창한 숲과 매화나무 군식이 어우러지며 자연의 밝은 배경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안한 쉼터로 조성되었다. 앞으로 이곳이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도예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감성적이고 특별한 공간으로서 방문객에게 장인의 혼이 담긴 도자기와 아름다운 정원의 조화를 통해 색다른 인상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보고, 걷고, 웃자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외부 활동이 제약을 받고, 직원들 역시 폐쇄된 환경 속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몇 년간 지속되었던 무기력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일부 프로젝트 참여 인원들만 경험했던 준공 답사를 모든 직원과 함께 하기로 했다. 외부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공기의 사무실에서 벗어나 외부의 자연으로 향하는 것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신선한 공기와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설계와 시공의 괴리를 각자의 방법으로 비교할 기회가 된다. 때론 설계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때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자책하며 각자의 디자인 감각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조경설계에서 시공 후 답사는 정원에서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소중한 과정이 아닐까. 설계도가 땅 위에 실체화되고, 상상력이 현실로 드러나는 그 순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계획안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이 우리의 꿈과 노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내는지 경험하고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설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실제 사용자의 시각에서 기능성과 미적 요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설계와 시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꿈꾼다. 조경이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라면, 답사는 이러한 조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설계와 시공이 만들어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관찰이지 않을까. 마무리 작업을 통해 우리의 노력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정원에서 꽃이 활짝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에 깊은 만족과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얻으며, 공동체로서 더욱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엔디자인펌은 1997년에 설립된 후 27년간 우리의 행복을 찾기 위해, 그 행복을 공간으로서 창조하는 데 정성을 다해 온 공방이다. 단순한 작업장이 아닌 꿈의 실체가 되어가는 곳이며, 매일매일 우리의 손길과 마음이 닿은 모든 것들은 삶의 고요한 순간들과 따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 된다. 우리(URI)와 환경(Environment)의 합성어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사명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세상을 상상하고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B급의) 뉴욕 공원 문화 향유기
    에피소드 1. 싱클레어로부터의 탈피 얼마 전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여기 애들은 뭐 하고 놀아요?” 도시화율 80%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미국 중부로 떠났으니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인지 궁금한 게 당연하다. 이는 필자가 ‘자유’를 찾아 뉴욕 시로 간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은 아름다운 대자연이 숨 쉬는 캐나다 벤쿠버 섬. 운동을 장려하는 학교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뛰어다니고, 다람쥐와 토끼와 사슴이 뛰놀고, 연어도 뛰어오르고, 덩달아 불곰도 앞다리를 휘두르는 아름다운 경관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심심해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고, 필자 역시 심심함에 몸부림치다 지치면 숲길로 나가 정처 없는 산책을 하곤 했다. 봄이 되면 곰이 나올 수 있으니 숲에 들어가지 못해 책 한 권 들고 기숙사 앞 잔디밭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했고, 그마저도 신경이 쓰이면 방 안에서 공부했다. 데미안이 남겨두었던 메모를 읽고 세상이 흔들려버린 싱클레어에 몰입한 이유다.(각주 1) 유흥 거리가 없으니 자아의식이 강해지고 혼자서 또는 주변 친구들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으로 갔다. 세상의 기원에 대한 자기성찰적 질문으로부터 자유를 구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유흥 거리(각주 2)로 회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자연을 만났다. 여기가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 워싱턴 스퀘어 공원 곰과 사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인공 환경 속에서 한창 밤낮이 바뀌어 뉴욕을 쏘다니던 필자에게 어떤 신사가 말을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대형 버스가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어느 아시아계 지역에서 단체로 대학 투어를 다니고 있구나 싶었다. 작은 아시아 사람을 보고 반가웠는지 그가 물어보길, “이곳이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Is this the door to NYU?)” 순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맨해튼 그리니치 지역의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은 캠퍼스 없는 대학으로 잘 알려진 뉴욕대학교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캠퍼스의 중심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필자가 뉴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공 공간 중 하나다. 멍하니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최적의 공원이다. 거대한 개선문 형태의 워싱턴 스퀘어 기념비 앞으로 여름을 알리는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보낸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반려견 놀이터와 녹지가 있고 수목 천개가 잘 펼쳐져 있어 아주 작은 사이즈의 센트럴파크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공원이 조성된 건 1870년인데, 시기상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 영향을 크게 받았을 테다.(각주 3) 하지만 뉴욕대학교와의 연결 고리는 ‘지리적 가까움’에서 끝난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말 그대로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공원이다. 조지 워싱턴이 1789년 뉴욕 시에서 미국의 첫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1826년부터 군사 퍼레이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1827년이미 공원으로 지정되어 번잡한 뉴욕 다운타운을 피해 공원 주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공원 주변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이 그 당시의 산물이다. 조경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2007년의 재설계다. 2000년대 중후반에 뉴욕 시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조경가 조지 벨로나키스(George Vellonakis)의 설계로 2007년부터 재구조화가 진행됐는데, 녹지가 넓어지고 수목이 더 다양해졌다. 하지만 당시 공원 이용에 제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기억하는 건 단 한 가지다. “2년 동안 공사해서 분수대를 중앙으로 옮겼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헤르만 헤세의 1919년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말한다. 성장과 인간의 초월적 가능성을 다루었는데, 기숙사형 고등학교 출신들을 보면 대다수 싱클레어에 과몰입했던 경험이 있다. 2. 이 연재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났듯, 필자는 컴퓨터 게임과 애니메이션 문화에 푹 절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창밖으로 펼쳐진 숲과 3. 수석 엔지니어 M. A. 켈로그(Kellogg)와 수석 조경 정원사 I. A. 필라트(Pilat)가 1870년 워싱턴 스퀘어의 재설계를 수행했다. 뉴욕 시 공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공원의 분위기부터 마차 길을 연장하는 것까지 옴스테드가 큰 영향을 끼쳤다.새소리보다 2.5인치 화면 속 포켓몬 숲이 훨씬 더 친근하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철새 네트워크와 도시 네트워크: 갈등에서 공존으로 박근수·김소은·이세연·김아영, ASLA 학생 어워드 우수상 수상
    지난 9월 박근수·김소은·이세연·김아영(가천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조경학전공, 지도교수 곽윤신)이 ‘철새 네트워크와 도시 네트워크: 갈등에서 공존으로(Migratory Bird Networks & Urban Networks: From Conflict to Coexistence)’로 2024년 ASLA 학생 어워드 분석 및 계획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ASLA 학생 어워드는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가 주관하는 공모전으로, 매년 조경 및 도시계획 분야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시상식은 2024년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ASLA 컨퍼런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수상작은 인천시 연수구의 철새 서식지와 도시 확장 문제를 해결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제안했다. 철새 이동 경로와 도시 네트워크의 갈등을 해결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혁신적 접근법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주제에 대한 논리적 접근 방식과 생태학에 대한 높은 이해를 우수한 점으로 꼽았다. 수상작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자연을 향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숲, 세컨포레스트 성수동, 8월 31일~9월 7일
    성수동의 생태가 바뀐 지 오래다. 전에는 지역 고유의 카페와 음식점, 공방이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 밀려나고 심지어는 주거지가 상업지로 변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했다면, 이제 성수동은 팝업 스토어의 격전지가 되었다. 길가 부동산에서 팝업 전용 공간을 임대한다는 문구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새로 들어서고 곧 사라지는 팝업 스토어로 인해 성수동 거리 풍경은 일주일 단위로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업 스토어는 이제 단순히 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이 아니다. 소비자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만족시키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고객과 브랜드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디지털로 만나는 자연 지난 8월 31일,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열린 ‘세컨포레스트’는 독특하게도 가상의 자연을 만나볼 수 있는 팝업 스토어다. 두나무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주최한 이 전시는 산림청의 한 사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22년부터 산림청과 두나무는 가상 나무 심기, 숲 가꾸기 및 멸종 위기 식물 보전을 위한 NFT 발행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숲과 정원을 가꿔왔다. 한 예로, 두나무는 메타버스 플랫폼인 세컨블록(2ndblock)에 가상의 숲을 마련했다. 이 숲에서 참가자들은 자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산림 복원 관련 미션을 수행하며 나무 심기 활동을 했고, 이곳에 심긴 나무는 산불 피해지인 경북 울진 지역에 실제로 식재됐다. 여러 감각이 제한되는 디지털 세상 속 자연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두나무는 이러한 숲과 정원은 시간, 장소, 장애 등 상황에 관계없이 누구나 휴식과 위로,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신체가 불편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도, 바쁜 일상에 쫓겨 자연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세컨포레스트는 이 같은 자연의 힘을 맛볼 수 있는 전시다. 디지털 자연에 푹 빠져들 수 있도록 미디어 파사드 형식의 가상 숲, 정원, 자연 요소 등이 마련됐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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