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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환경조경대전의 발자취
눈을 떠보니 경복궁역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탄 게 분명한데, 아직 열차가 출발하지 않은 걸까. 다시 잠에 빠졌다. 온몸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다시 눈을 떴다. 또 경복궁역이었다. 시계를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깊은 잠에 빠져 3호선 구간을 세 번이나 왕복한 것. 닷새 밤 꼬박 새워 겨우 마무리한 졸업 작품 패널을 경복궁역 지하 전시장에서 열린 ‘한국조경작품전’에 걸었던 1990년 가을 어느 날의 고단한 기억. 요즘도 영화의 플래시백 장면처럼 꿈에 출몰한다.
이번 호에는 제2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수상작들을 싣는다. 대상을 수상한 강현지‧박시연‧송재영(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의 작업은 댐을 개방해 하천 생태계를 회복하고 댐 해체 잔해를 재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실험적 경관을 제안한 수작이다. 대상뿐 아니라 여러 수상작 모두 인류세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설계의 창의적 지혜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을 만하다. 수상자를 비롯해 119팀의 출품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2004년부터 계속 개최되며 예비 조경가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전신이라 할 전국 규모 학생 공모전의 시점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한국조경학회 주최로 제1회 ‘전국대학생조경작품전’이 개최됐다. 4년간 열리지 못한 2회 공모전은 ‘전국조경작품전’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 부활했다. 이듬해에 3회 공모전이 열렸지만 다시 중단됐고, 1987년에 4회 공모전이 개최됐다. 1988년 5회 때부터는 ‘한국조경작품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1991년의 8회까지 이어졌다.
1992년부터 8년간은 작품전의 명맥이 끊겼다. 오랜 공백 끝에 2000년 늘푸른 재단이 학생 대상 설계공모전을 주최했다. 2001년부터는 늘푸른 재단과 한국조경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방식으로 ‘늘푸른 환경조경설계공모전’이 3년간 개최됐다. 이때부터 공모전은 해마다 특정 주제를 내걸었는데, 2001년 주제는 ‘자연으로의 회귀, 인간적 환경으로의 환원’, 2002년은 ‘네트워킹을 통한 쾌적한 도시환경의 전개’, 2003년은 ‘물과 도시 환경’이었다.
2004년부터는 늘푸른 재단과 한국조경학회이 공동 주최하는 전국 공모전 이름이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으로 변경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2004년)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회고와 전망: 우리 시대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였다. 2회(2005년) ‘다이내믹 랜드스케이프: 역동하는 경관, 생산하는 경관’, 3회(2006년) ‘도시+재생’, 4회(2007년) ‘도시 인프라—조경을 만나다’, 5회(2008년) ‘작동하는 경관’, 6회(2009년) ‘길’, 7회(2010년) ‘공원도시’, 8회(2011년) ‘그린 인프라, 그린 시티’, 9회(2012년) ‘경계의 풍경, 그 경계’로 이어진 주제만 보더라도 이른바 “조경의 시대”를 맞은 당시 한국 조경계의 지향점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열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절 환경조경대전은 신진 조경가들의 화려한 등단 무대이기도 했다. 초기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현재 국내외 설계사무소와 대학에서 맹활약 중인 40대 조경가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박경탁과 이상수(1회 대상), 이진욱(1회 최우수상), 박유선(2회 최우수상), 박경의와 이윤주(2회 우수상), 백종현(3회 대상), 안동혁(3회 최우수상), 이상훈과 이성민(3회 우수상), 최영준‧박태형‧강한솔(4회 대상), 최혜영(4회 특선)을 비롯한 여러 이름이 눈에 띈다.
2013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열린 정원’이었고, 11회(2014년) 주제는 ‘공공복지’였다. 9회까지 엇비슷한 공통분모를 지녔던 주제가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을 주제로 내건 12회(2015년)부터 월간 환경과조경이 한국조경학회, 늘푸른 재단과 함께 공동 주최자로, 때로는 공동 주관 기관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16회(2019년)부터는 늘푸른 재단의 역할이 후원 기관으로 바뀌었다. 13회(2016년) 주제는 ‘기후변화와 조경의 역할’이었고, 14회(2017년)는 ‘광장의 재발견’이었다. 15회(2018년) ‘도시재생과 미래의 조경’, 16회(2019년) ‘도시공원의 안과 밖’, 17회(2020년) ‘포용도시’, 18회(2021년) ‘건강도시와 조경’, 19회(2022년)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20회(2023년)와 21회(2024년) ‘(The) Nature’로 이어진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서 조경계의 이슈 담론은 물론 한국 사회의 변화와 도시 환경의 쟁점을 읽을 수 있다.
이번 438호 환경조경대전 수상작 지면을 편집하다 출품 학생들의 노력과 분투에 감정이입(?) 되어 내친김에 여기저기 흩어진 옛 기록들을 모아 뒤적이다 보니 어느덧 마감 전야다. 오늘밤 꿈에도 지하철 경복궁역이 등장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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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양산을 든 남자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었으니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 여름에 양산을 쓰고 다녔다. 정확히는 몇 해 전부터고, 우산을 양산 용도로 써먹은 것이지만 나와 친밀한 이들도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30대 성인 남성이 양산(다시 말하지만 우산이다)을 쓴다는 걸 이상하게 여길까 봐, 약속 장소 3분 거리에 다다르면 우산을 가방에 쏙 넣고 시치미를 뗐으니까.
어린 시절에는 마스크를 숨겼다. 당시엔 드물어서 그랬을까.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날이면 유난스럽다는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까탈스러운 애가 되는 것보다는 조금 아픈 편이 대체로 나았다. 그러나 뜨거운 눈두덩이와 아린 콧속, 따가운 목덜미를 참아내기 어려운 순간은 금방 찾아왔고, 매번 서랍 속에 감춰둔 마스크를 아쉬워했다.
유년 시절의 여름과 요즘 더위는 다르다. 투명하게 끓어오르는 햇빛 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것보다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편이 나은 듯하다. 같은 생각인지 일본에서는 남자들도 양산을 쓰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거리에서 양산을 든 남자를 드물게 마주치곤 한다. 몇 년 후에는 거리 풍경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여름은 견딜만해지고, 양산은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있다면 좋을 텐데. 며칠 전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쓰는 걸 눈치 챈 짝꿍이 까만 양산 하나를 선물해주었다. 내년부터는 진짜 양산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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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하는 풍경] 해륙순환 도시주의
해녀는 바다와 땅을 하나로 일군다. 그들은 물 아래 바당밭에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을 보살피고 수확한다. 땅 위 우영팟에서는 쌈 채소, 당근, 마늘, 호박 등을 키워 자신과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거나 판매한다. 물때와 날씨에 따라 바당밭이나 우영팟에 나가며 해녀들은 각 환경에 필요한 영양분을 물에서 뭍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시켜 여러 생물에 이로운 먹이 연쇄를 조성했다. 나는 이 글에서 일 년간 해녀들과 지내며 배운 그들의 고유한 풍경 감각을 묘사하고, 이에 기반을 둔 ‘해륙순환 도시주의(Submersible Urbanism)’를 제안한다. 해녀가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듯, 건축과 조경이 수면 위아래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부가) 생산물들을 호혜 교환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지역 공동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와 땅의 리듬을 따라 에너지를 순환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연재에서 해륙순환 도시주의를 세 편의 에피소드와 함께 도시, 풍경, 건축의 스케일로 상상해보겠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마비시켰던 2020년 초 나는 대학원에서 건축 전공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모든 수업이 화상으로 전환되던 시기, 교수님에게 졸업 연구를 제주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지도 교수 중 한 명이었던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는 현지 조사에 기반을 둔 디자인 인류학을 가르쳤다(“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북서부 풍경: 경계에서 백터로”, 『환경과조경』 2024년 6월호 참조). 그는 풍경과 공동체를 깊이 알려면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학교 폐쇄가 그 방법을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고향이었지만 중학교 졸업 후 떠나 제주의 건축과 풍경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해 궁금했고, 육지의 목조 한옥으로만 한국 전통 건축이 대표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졸업 작품을 통해 제주의 고유한 건축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격리를 마치고 5월부터는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해녀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제주의 지역성이 근대 건축적으로 표현된 예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답사는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와 데니즈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의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MIT Press, 1972)이나 엘리슨 스미스슨(Alison Smithson)의 『차를 탄 엘리스: 도로 위의 관찰자(AS in DS: An Eye on the Road)』(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2001)처럼 근대 건축이 만들어낸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다만 앞선 연구자들이 자동차를 택한 반면 나는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 중요한 차이였다.
자전거는 나를 오래된 마을의 골목골목으로 안내했고, 작은 오르막이나 내리막, 바람까지도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다. 바람이 거센 날이나 오르막이 많은 날에는 편의점이나 마을 정자에서 쉬어가며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균 속도 시속 15km, 6시간의 주행이 내 평균이었기에 집에서 멀리 갈 때는 숙소를 구해 머물면서 여러 마을의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경험했다. 그렇게 답사를 다니던 중 해안가에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고 낮고 둥근 지붕을 올린 단층 건물이 해녀 탈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해녀의 건축과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12월부터는 삼양3동 해녀들과 알게 되면서 삼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는 일곱 명이 활동하고 있었다. 톳이나 소라를 옮기는 것 등을 도우며 그들의 일상이나, 분위기, 풍경을 답사 노트, 스케치, 사진, 소리 등으로 기록했다. 게럿은 내게 현장에서 한 시간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네 시간을 할애하는 ‘1대4 규칙’을 지키길 요구했다. 그는 가치 판단 없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패턴을 찾아보기를 강조했다. 나는 답사 노트를 쓰고, 현장 스케치를 도면으로 다시 그리고, 녹음한 소리들을 들으며 공간의 성격과 관계를 살폈다. 특히 녹음한 소리는 내가 무의식중에 걸러낸 ‘소음’들을 들려주었고, 이는 바람과 건축, 풍경의 관계를 체감하게 했다. 게럿은 현지의 삶에 몰입하고 기록하고 상상하는 방법을 디자인 인류학 혹은 풍경 현지 조사(landscape fieldwork)라고 불렀다.1
사람마다 정도와 접근법은 달라도, 땅과 사람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땅에 귀를 기울이는 언뜻 당연한 일은 오늘날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라는 자본주의적 명령에 맞서야만 가능하다. 이 명령에 맞서 사용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거나 대지를 살펴도 그 답이 시원하게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직 끈질기게 물어야만 답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땅에 쓰는 시’(2024)에서 정영선 조경가가 풀과 나무, 바위에게 말을 걸고 호미질을 하며 만지고 쓰다듬는 것을 보라.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이 쌓여 영감이 되는 순간을. 또는 정기용 건축가의 안성면사무소 목욕탕을 생각해보자. 그가 주민에게 “돈 처들여 가며 그런 건물을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정기용이 수많은 이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들었기에 설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2 이런 좋은 선례를 따라 나도 해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속에서 만난 기후 변화와 오염, 위험한 작업 환경, 그리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해녀들이 당면한 과제와 그 해결 방안을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다뤄보겠다.
“바당에 물건이 어따”
해녀들은 바다에서 채취해서 현금화가 가능한 모든 생물을 ‘물건’이라고 부른다. 물건을 잠수해서 수확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한다. 삼양 해녀들은 예전에는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 같은 물건이 바당에 많았으나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탄했다. 그들은 도시의 생활 폐수, 양식장 방출수, 화학 비료가 섞인 유거수, 인근 발전소 냉각수 등을 물건을 사라지게 한 주범으로 지적했다. 특히 발전소 건설 이전, 밀물에는 서로, 썰물에는 동으로 흘렀던 바다가 1980년대 발전소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항상 동에서 서로만 흐른다고 해녀들은 말했다. 해녀들은 이것을 강처럼 흐르는 바다라는 뜻에서 ‘강바당’이라고 불렀다. 강바당에서 해조류가 먼저 사라지더니, 다른 물건들도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
생활 하수의 경우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관광객의 증가 이후, 하수 처리 시설이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부터 심각해졌다.3 넘치는하수는 완전히 정화되기 전에 바다로 방류되었다. 많은 해녀 공동체가 이런 하수가 그들의 건강과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월정리 해녀들은 하수 처리 시설에서 나온 하수가 그들의 바당밭을 오염했으며, 피부 병변까지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4 또한 일부는 제주 해안에 걸친 380여 개의 양식장에서 나오는 배출수에 포함된 항생제나 사료가 오염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오염과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바다숲이 사막이 되고, 흰 석회 조류가 그 자리를 채우는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5 바다숲이 사라지는 것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한국수자원자원공단은 이미 2015년 연근해의 35%가 이미 백화 현상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6 이를 뒷받침하듯 2000년대 중반 이후 모든 해조류의 생산량은 감소해왔다.7 해녀들은 이런 바다의 변화를 “바당에 풀이 어따(바다에 풀이 없다)”라든지 “물 아래가 다 희양하다(하얗다)“고 묘사했다.
이처럼 해녀는 색깔을 통해 바다의 오염이나 상태를 인식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삼양 해녀 한 명은 바다가 겉으로는 파랗지만 물 아래는 다 갈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날엔 주변 밭에서 흘러 온 흙이 섞여 앞을 볼 수 없다고. 그녀는 밭에 뿌린 비료나 제초제 등이 바다로 흘러 들어온다며 걱정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찾을 수 없었지만, 한 연구는 돼지 농장이 밀집되어 있고 그 분뇨로 만든 액체 비료(액비)가 살포되는 서부 지역 지하수에서 수질 오염의 한 지표인 질산성 질소 수치가 훨씬 높게 나온다는 점을 밝혀냈다.8 만약 지하수가 오염되는 정도라면 인근 해의 바다 또한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깨끗한 물을 가져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오염시켜 방류하는 선형적 착취가 바로 바당밭에 물건이 사라진 이유다.
바다와 땅을 연결하기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왔던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제주에는 땅과 바다 사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선순환시키는 사례가 있었다. 제주 화산토는 배수가 잘됐지만 지력이 약해서 연속적으로 농사를하려면 유기물과 질소를 포함한 영양분을 보충해주어야 했다. 1975년 제주에서 화학 비료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민은 두 가지 비료를 만들어 썼는데 그중 하나가 듬북이었다.9 듬북은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고지기, 지청, 그리고 실갱이를 포함한 갈조류 모자반과의 해조류를 지칭한다. 이러한 바다풀은 질산과 인산을 함유하기에 해녀들은 이를 잘라 건져내서 건조한 뒤 밭에 비료로 쓰거나 돼지 분뇨와 섞어 사용했다. 이렇게 바다풀을 베어낸 자리에서는 미역이나 톳과 같이 식용 가능하고 현금화할 수 있는 해조류가 자랄 수 있었다
두 번째 비료는 발효된 돼지 분뇨인 돗거름이다. 제주 초가는 통시라는 공간을 분리해두어 화장실과 돼지우리를 겸하게 했다. 통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화장실로 쓰는 지들팡이라는 돌단과 인분을 먹는 돼지, 그리고 돼지를 가두어두는 돌담이었다. 사람의 부가 생산물이 돼지를 먹였고, 듬북이나 건초와 섞어 발효한 돼지 분뇨는 돗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했다. 그 땅에서 자란 마늘, 고구마, 당근, 보리 등이 다시 제주 사람들의 식사가 되었다. 돗거름과 듬북은 해륙순환의 좋은 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급격한 도시화와 농업의 산업화가 이러한 원형 자원 순환 구조를 선형적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거주와 농업의 부산물들은 순환되지 않으며, 값싼 화학 비료가 친환경 비료를 대체하게 되었다.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땅과 바다 사이의 호혜적 자원 교환을 복원하기를 제안한다. 육상 양식장 대신 인공 해초로 둘러싸인 인근해 양식장은 어떤가. 인공 해초는 양식장에서 나온 과도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자라 해삼이나 성게, 전복 등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양식장에 먹이로 공급되는 지렁이들은 돼지 분뇨를 먹으며 자라고, 지렁이똥(분변토)은 다시 농가에 비료로 공급될 것이다. 은퇴 해녀가 소득이 필요하다면 지렁이를 키워 낚시꾼들에게 미끼로 팔거나 지렁이와 분변토를 자신의 우영팟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현역 해녀들은 인공 해초들을 돌보며 미역이나 톳을 키우고, 물건을 수확하며 바다 속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해녀들은 그들의 바당밭을 확장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도, 도시도, 풍경도, 땅과 바다의 순환 속 일부로 설계한다면, 더 이상 쓰고 버리는 무분별한 착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효율과 편의를 쫓아 잠시 잊었을 뿐 방법은 있어왔으니까.10
각주
1.Gareth Doherty, Landscape Fieldwork: How Engaging theWorld Can Change Design , University of Virginia, 2024.
2.최선희, “건축가 정기용이 지난 10년간 전북 무주군 곳곳에 31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으나 관리 부재로 문제점 속출”, 『월간조선』2009년 11월호.
3.강민정·권상철, “제주시 도시화의 공간적 특성: 인구와 지가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0(3), 2007, pp.55~67.
4.이석형, “월정리 해녀들 “오폐수 방류로 구토와 피부트러블 생겼다”“, 「뉴스1제주」 2008년 12월 17일.
5.윤지희, “바닷속 석회조류 다닥다닥…마을어장 3분의 1황폐”, 「세계일보」 2014년 7월 23일.
6.형민우, “바다사막화 1. 온 바다가 ‘시름’…여의도 65배 면적 황폐화”, 「연합뉴스」 2017년 7월 17일.
7.녹색연합, “그 많던 제주의 ‘구쟁기’는 누가 다 먹었을까?”, 녹색연합 홈페이지, 2022년 6월 5일.
8.김정호, “제주 가축분뇨 살포 땅 시추해보니 ‘지하수 오염 위협적’”, 「제주의소리」 2021년 11월 30일.
9.고광민, 『제주도의 생산 기술과 민속』, 대원사, 2004.
10.이 글은 중국 『Landscape Architecture』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을 번역해 수정, 보완한 것이다. Kang Jun Ho·Gareth Doherty·XIAO Su Feng, “Submersible Urbanism and Its Commons: Jamsu (Haenyeo) Living Across Land and Seaon Jeju Island”, 『Landscape Architecture』 29(11), 2022, pp.131~144.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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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우리엔디자인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우리 환경을 더 풍요롭게
창작을 업으로 하는 조경가로서 처음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공간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리다 보면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힌다. 예산, 공간, 환경 등 여러 제약은 그 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크게 만들며, 때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그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물론 우리의 의도가 실패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창작을 이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우리의 작업 공간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화폭이며, 창의성의 정수를 담아내는 캔버스가 된다. 협업이라는 무대에서 서로 다른 의견과 꿈을 조율하는 일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닮아 있어서 협업의 멜로디가 설계 도서 위에 펼쳐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 멜로디가 이용자들의 삶에 영감을 줄 때 세상의 흩어진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 자체도 일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워라밸이 삶의 질에 중요한 척도가 된 오늘날 재미라는 단어로 야근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회사는 디자인의 완성도 이외에도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목표와 기대를 조정하고 정기적인 휴식을 제공하며 창의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세미나와 답사를 기획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율적인 자기 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언제나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균형을 동시에 맞추는 작업은 도전적일 수 있지만, 설계가에게 도전이란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일 뿐이다.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나는 난관들은 결국 내면의 우리 환경(uri environment)을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프로젝트
다락의 꿈
다락은 어두운 천장 아래 감춰진 비밀 정원 같은 공간으로, 좁고 조금은 가파른 계단에 올라서면 외부 세계와는 다른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원에서 꽃이 자라듯, 다락방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라난다. 마치 푸른 식물들이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꿈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꿈꾸는 다락방’(2015 코리아가든쇼)에서는 그대로 드러난 건축 부재, 낡은 고벽돌,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들이 옛것의 향수가 있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엮여 새로운 꽃을 피우듯, 정원 속에 사유하며 다채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정원의 각 구석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다락방의 구석구석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묻혀 있어 방문객에게 감정의 씨앗을 심어준다. 햇볕이 잘 드는 정원의 한 부분이 특별히 더 풍성한 식물들로 가득차듯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통해 아늑한 다락방 분위기를 연출하는 창살 가벽과 긴 그림자와 함께 추억으로 이끄는 몽환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 다락방 내부로 들어서면 낮은 천장에 맞춰진 낮은 책장과 집 앞 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창 너머로 어릴 적 추억이 꿈처럼 펼쳐진다. 다락의 물건에는 그 집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낙서로 가득한 책상, 오래된 서랍장 등 기억을 품은 것들이 모여 잘 삭은 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시김의 미를 자아낸다.
결국 꿈꾸는 다락방은 건물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시간과 경계를 초월하며 과거의 추억과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뒤섞인 누구에겐 특별한 새로운 낡은 정원이 된다. 이는 무한한 상상과 휴식의 공간이며, 고요한 자연 속에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러나 현대 주거 공간에서 다락이라는 기능이 상실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연과의 연결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조경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 공간이 옥상 정원과 테라스 공간이 아닐까. 이 공간들은 도시의 고층 건물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기능함과 동시에 도시에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늑한 가구를 배치해 편안한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기존의 추억과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공간의 기능과 사용 방식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땡큐, 썰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거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시작점, 군대. 특히 논산 육군훈련소는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에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곳은 단순히 군사 훈련을 받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훈련소에서의 시간은 자아를 성찰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이곳에서의 경험은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는다.
생활밀착형 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군사훈련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군복무를 수행할 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상지는 매주 약 3,000명의 입·퇴소 장병을 포함해 함께하는 12,000명의 가족들이 이용하는 곳으로서 일 년 중 단 한 계절의 정원만 즐길 수 있는 이용자들의 특징을 고려하여 설계됐다. 봄에는 기(起)(시작, 일어나다), 여름에는 승(承)(진행, 받아들이다), 가을에는 전(轉)(회전, 변화하다), 겨울에는 결(結)(마무리, 완성하다)의 단계로 정원을 순환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공간이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안정감을 제공하고, 군 생활 동안 한 단계 더 성장한 자신을 대면하는 만남과 쉼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정원에서 특별한 아이템이라고 한다면 군화를 소품으로 활용하여 만든 화분일 것이다. 행군이 끝난 군인들의 군화를 본 적 있는가. 군인에게 군화는 단순한 신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장시간 행군이나 험한 지형에서도 발을 보호해 주는 편안함, 모든 군인이 동일한 군화를 착용함으로써 일체감과 조직적 단결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행군이 끝난 군화에 남겨진 열기처럼, 군화에 담긴 흙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그 흙에서 피어난 보랏빛 꽃은 청화 쑥부쟁이로 인내,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설계자로서 모든 군인 장병에게 바치는 작은 보답이다. 그들의 희생이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 의해, 아이들을 위한
청주 센트럴자이에 조성한 놀이 공간은 굉장히 특이한 테마로 계획했는데,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대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네 개 챕터(토끼 굴 속으로,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애벌레의 충고,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를 소재로 놀이터와 놀이 정원을 연결하는 약 0.5km의 놀이 길을 구성하고 단계별 모험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공동 주택이라는 주거 공간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중요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서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촉진하고,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 주택의 특성상 놀이터는 형평성을 고려해 배치되기 때문에 다수의 놀이터가 있는 단지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만 상호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키즈길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개별 놀이터가 한정된 범위 내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유도하는 반면 공통된 테마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키즈길은 주거 단지 내에서 서로 다른 놀이터를 연결한다.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연 요소를 통합하여, 자연과 교감하며 놀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모험을 어린이에게 선사한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하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공동 주택 내 커뮤니티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놀이 공간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이용하는 아이들의 색다른 행태를 목격하게 됐다. 원래 놀이 가벽은 가벽의 구멍 사이를 통과하거나 미끄럼틀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설계됐는데, 의도와는 달리 가벽 위로 올라가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주는 것 같았다. 일부 가벽은 안전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쉽게 올라설 수 없는 높이로 계획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기어코 올라가 노는 모습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설계자가 바라봐야 하는 시선이 단순히 설계 의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동과 반응에도 닿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예기치 않은 활용 방식은 놀이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공간 구성과 시설 설계에 있어 사용자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고 반영될 필요성을 시사한다.
도예와 자연의 조화
이천시는 한국 도자 문화의 심장부이자 공예와 민속 예술 분야에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인정받은 특별한 도시다. 이천시 사음동의 사기막골 도예촌은 1950년대 조선 관요의 폐쇄로 한때 사라졌던 전통 도자기의 숨결을 다시 되살린 성지로 전통 도예 장인들이 수광리 칠기가마에 모여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각종 도자기를 재현하며 한국 도자 예술의 혼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설봉산의 부드러운 산자락에 자리한 사기막골 도예촌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 시장의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연 경관과, 상점들마다의 개성 넘치는 도자기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이 특별한 장소의 우수한 자연 경관과 도예 조형물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거리의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한 공간을 구상했다. 도화광장에는 세 그루의 아름드리 정자목이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은 도예촌에서 가장 넓은 공간으로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입구 정원이다. 사기막의 형태를 형상화한 유려한 퍼걸러와 무대, 그리고 마당 뒤쪽에 펼쳐진 도자 조형물과 초화가 가득한 포토존은 예술 작품처럼 그 자체로 감동을 선사한다. 화란원은 상가에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아늑한 공간으로 잔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적인 휴게 공간이다. 상춘원은 울창한 숲과 매화나무 군식이 어우러지며 자연의 밝은 배경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안한 쉼터로 조성되었다. 앞으로 이곳이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도예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감성적이고 특별한 공간으로서 방문객에게 장인의 혼이 담긴 도자기와 아름다운 정원의 조화를 통해 색다른 인상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보고, 걷고, 웃자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외부 활동이 제약을 받고, 직원들 역시 폐쇄된 환경 속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몇 년간 지속되었던 무기력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일부 프로젝트 참여 인원들만 경험했던 준공 답사를 모든 직원과 함께 하기로 했다. 외부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공기의 사무실에서 벗어나 외부의 자연으로 향하는 것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신선한 공기와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설계와 시공의 괴리를 각자의 방법으로 비교할 기회가 된다. 때론 설계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때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자책하며 각자의 디자인 감각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조경설계에서 시공 후 답사는 정원에서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소중한 과정이 아닐까. 설계도가 땅 위에 실체화되고, 상상력이 현실로 드러나는 그 순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계획안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이 우리의 꿈과 노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내는지 경험하고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설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실제 사용자의 시각에서 기능성과 미적 요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설계와 시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꿈꾼다. 조경이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라면, 답사는 이러한 조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설계와 시공이 만들어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관찰이지 않을까.
마무리 작업을 통해 우리의 노력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정원에서 꽃이 활짝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에 깊은 만족과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얻으며, 공동체로서 더욱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엔디자인펌은 1997년에 설립된 후 27년간 우리의 행복을 찾기 위해, 그 행복을 공간으로서 창조하는 데 정성을 다해 온 공방이다. 단순한 작업장이 아닌 꿈의 실체가 되어가는 곳이며, 매일매일 우리의 손길과 마음이 닿은 모든 것들은 삶의 고요한 순간들과 따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 된다. 우리(URI)와 환경(Environment)의 합성어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사명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세상을 상상하고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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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B급의) 뉴욕 공원 문화 향유기
에피소드 1. 싱클레어로부터의 탈피
얼마 전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여기 애들은 뭐 하고 놀아요?” 도시화율 80%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미국 중부로 떠났으니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인지 궁금한 게 당연하다. 이는 필자가 ‘자유’를 찾아 뉴욕 시로 간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은 아름다운 대자연이 숨 쉬는 캐나다 벤쿠버 섬. 운동을 장려하는 학교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뛰어다니고, 다람쥐와 토끼와 사슴이 뛰놀고, 연어도 뛰어오르고, 덩달아 불곰도 앞다리를 휘두르는 아름다운 경관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심심해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고, 필자 역시 심심함에 몸부림치다 지치면 숲길로 나가 정처 없는 산책을 하곤 했다. 봄이 되면 곰이 나올 수 있으니 숲에 들어가지 못해 책 한 권 들고 기숙사 앞 잔디밭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했고, 그마저도 신경이 쓰이면 방 안에서 공부했다. 데미안이 남겨두었던 메모를 읽고 세상이 흔들려버린 싱클레어에 몰입한 이유다.(각주 1) 유흥 거리가 없으니 자아의식이 강해지고 혼자서 또는 주변 친구들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으로 갔다. 세상의 기원에 대한 자기성찰적 질문으로부터 자유를 구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유흥 거리(각주 2)로 회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자연을 만났다.
여기가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 워싱턴 스퀘어 공원
곰과 사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인공 환경 속에서 한창 밤낮이 바뀌어 뉴욕을 쏘다니던 필자에게 어떤 신사가 말을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대형 버스가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어느 아시아계 지역에서 단체로 대학 투어를 다니고 있구나 싶었다. 작은 아시아 사람을 보고 반가웠는지 그가 물어보길, “이곳이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Is this the door to NYU?)” 순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맨해튼 그리니치 지역의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은 캠퍼스 없는 대학으로 잘 알려진 뉴욕대학교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캠퍼스의 중심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필자가 뉴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공 공간 중 하나다. 멍하니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최적의 공원이다. 거대한 개선문 형태의 워싱턴 스퀘어 기념비 앞으로 여름을 알리는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보낸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반려견 놀이터와 녹지가 있고 수목 천개가 잘 펼쳐져 있어 아주 작은 사이즈의 센트럴파크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공원이 조성된 건 1870년인데, 시기상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 영향을 크게 받았을 테다.(각주 3)
하지만 뉴욕대학교와의 연결 고리는 ‘지리적 가까움’에서 끝난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말 그대로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공원이다. 조지 워싱턴이 1789년 뉴욕 시에서 미국의 첫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1826년부터 군사 퍼레이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1827년이미 공원으로 지정되어 번잡한 뉴욕 다운타운을 피해 공원 주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공원 주변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이 그 당시의 산물이다.
조경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2007년의 재설계다. 2000년대 중후반에 뉴욕 시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조경가 조지 벨로나키스(George Vellonakis)의 설계로 2007년부터 재구조화가 진행됐는데, 녹지가 넓어지고 수목이 더 다양해졌다. 하지만 당시 공원 이용에 제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기억하는 건 단 한 가지다. “2년 동안 공사해서 분수대를 중앙으로 옮겼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헤르만 헤세의 1919년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말한다. 성장과 인간의 초월적 가능성을 다루었는데, 기숙사형 고등학교 출신들을 보면 대다수 싱클레어에 과몰입했던 경험이 있다.
2. 이 연재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났듯, 필자는 컴퓨터 게임과 애니메이션 문화에 푹 절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창밖으로 펼쳐진 숲과
3. 수석 엔지니어 M. A. 켈로그(Kellogg)와 수석 조경 정원사 I. A. 필라트(Pilat)가 1870년 워싱턴 스퀘어의 재설계를 수행했다. 뉴욕 시 공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공원의 분위기부터 마차 길을 연장하는 것까지 옴스테드가 큰 영향을 끼쳤다.새소리보다 2.5인치 화면 속 포켓몬 숲이 훨씬 더 친근하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