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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인류세의 조경, 작은 실천을 향한 첫걸음 12
겨울이 매년 더 추워지고 있다. 추워도 너무 춥다. 한반도의 겨울에 한파가 찾아오는 건 계절 변화에 따른 일반적 현상이지만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여파로 겨울 추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녹은 해빙과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북극 한파가 남하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물 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 서로 연결된 복합적 난제가 지구와 인류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20년 여름, 역사상 최고를 기록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상 기온은 한국 면적의 20퍼센트에 달하는 땅을 불태웠다. 2021년 중국 허난성에는 1,000년 만에 최대량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후 재난과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은 과도하게 커진 인류의 힘과 감당할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되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드러내고 있는 지구 환경의 다층적 변화와 균열은 지난 1만 년의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이른바 ‘인류세’라고 지칭되는 새로운 지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린다.
‘인류(anthropos)’와 지질학의 시대 구분 ‘세(-cene)’를 합친 말 ‘인류세(Anthropocene)’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제안한 이후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다시 말해 지구 역사에서 과거 어떤 시대보다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시대 상황을 뜻한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에서 제기된 인류세 논의는 생태주의 환경 운동, 탄소 저감을 위한 지구공학, 환경 정책과 정치학, 탈탄소 경제학, 포스트휴머니즘과 탈인간중심주의, 신유물론, 마르크스 생태학, 인류세 페미니즘, 생태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의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이룬 문명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상찬이 아니라, 지표면 형태의 변화, 종 다양성 감소, 기후변화 등 동시다발적 위기 상태가 낳은 지구 행성과 인간 삶의 절멸 상황에 대한 경고다.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속속 나온다. 하지만 인류세가 인류의 종말을 목도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가 이어지는데도 우리는 구체적인 행동과실천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인류세 위기의 규모가 인간의 지각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에 인식과 실감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내가 죽고 난 뒤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여긴다. 인류세의 위험은 치명적이지만 비가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과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사이에 큰 인지적 부조화가 있는 것이다. 행동과 실천을 가로막는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과 회의에 있다. 마치 타조가 평야에서 맹수나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곤 한다.
이러한 인지 부조화와 회피의 문제를 넘어서려면 인류세 위기에 대한 일상적 관심을 촉발하고 공감하게 할 이야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해법, 정책적 수단만으로는 행동과 실천을 끌어내기 힘들다.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와 계산, 과학적 관찰과 모델링을 통한 사실 확인과 예측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체적인 공감의 서사로 번역할 수 있어야 피부에 와닿는다. 바로 이 지점에 인류세를 사는 조경가의 작은 역할이 자리한다.
이번 호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대표 김아연) 편에서 인류세와 조경을 연결하는 소중한 접점을,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의 첫걸음을 만날 수 있다. 본문에서 따와 다시 싣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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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도 될까?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밀양’이나 ‘올드보이’, ‘이터널 선샤인’ 같은 명작을 나열하지만, 사실 가장 즐겨 보는 건 아무래도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러브 액츄얼리’는 물론, 왓챠 평점 기준 2점대(왓챠는 5점이 만점이다) 작품까지도 로코라면 무조건 챙겨보는 시절이 있었다.
단지 연애를 하고 싶어서 보았던 건 아니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훨씬 더 구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코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오해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위기에 봉착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결말에 이르면 문제는 풀리고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웃는다. 대략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뻔한 스토리와 허술한 대본, 어색한 연기는 모두 선물과도 같았다.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서론에서 이야기한다.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데에 잘못된 이유란 없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을 즐기게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라고. 영화도, 그리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해피엔딩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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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멀가든
Informal Garden
인포멀가든, 카페
울주군 두서면은 지리적으로 울산광역시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동서남북으로 두동면, 상북면, 언양읍, 경주시 내남면과 접한다. 농공단지가 입주해 일부 산업 시설이 있으나 주민 다수는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울산시의 광역화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울주군도 도시화를 겪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두서면은 여전히 농촌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인포멀가든은 이 농촌 지역에 카페, 베이커리, 어린이 야외 놀이 학습터(숲놀이터), 고 심수구 작가(건축주의 외삼촌) 작품 수장고 및 전시장 등 여러 시설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 첫 순서로 진행한 카페의 외부 공간 조경을 의뢰받아 설계와 공사를 진행했고, 2022년 9월 완공되어 카페만 시범 운영 중이다. 현재는 심수구 작가―싸리나무 가지를 한데 모으고 깎아 패널 위에 하나하나 손으로 붙이는 작업을 해서 ‘싸리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의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와 전시관을 짓기 위한 허가 작업이 진행 중이다.
드러내지 않게 드러냄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농업과 축산업을 겸해 온 두서면에서는 곡물 저장 창고와 축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축사의 특징, 즉 채광과 환기에 유리한 긴 덩어리 형태, 값싼 재료로 신속하게 짓기 위해 같은 모듈이 반복되는 산업 시설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차용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농민들의 삶의 터전과 이질적인 상업 시설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고민했다. 즉,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 즉 ‘격’을 갖추고자 한 것이다.
“인포멀가든 카페는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사나 창고를 그 원형으로 한다. 특별한 것이 없는 단순한 형태, 대수롭지 않게 사용되는 금속 파이프, 경사 지붕과 선홈통까지. 이곳은 주변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존재들의 집합체다. 세 채의 건물이 만드는 개방적 외부 공간을 통해 이 장소는 주변과 조우한다. 소리 없이 그곳에 오래 있고자 한다”(이세웅 아파랏체 건축사사
무소 소장).
상업 공간의 조경
대상지에 가보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커피로, 공간의 힘으로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기획력이 부족해 보였다. 사업성에 공감하지 못했다. 과연 조경으로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상업 공간에서 흥행은 어떠한 디자인적 가치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상업 영화의 흥행성과 같은 것 아닐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최고의 흥행을 꾀하자는 것이 아니라, 투자 대비 수익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흥행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제와 각본이 흥미로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 캐스팅이 설득력 있고 장면 연출이 지루하지 않아야 하며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기도 해야 하며, 유쾌하면서 긴장감도 유발해야 한다. 의도된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장치와 기법을 동원하는 매우 전문적이고 섬세한 작업, 어느 정도의 기승전결이 필요한 작업이 분명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대상지의 높이 차를 이용해 흥미를 갖게 하는 공간을 계획했으나, 건축의 설계 방향과 배치를 흔드는 설계안이었다. 설득과 대립 과정을 반복하다 우리의 제안이 흥행성은 보장할 수는 있어도 건축의 방향성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다
바위틈에 자라는 야생화, 추운 겨울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화의 모습에서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보이지 않는 생명력과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어떤 기업이 브랜드 철학을 갖춰 이미지를 넘은 정체성을 갖게 될 때 품위가 만들어진다. 그런 기업에게 소비자들은 좀 더 관대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빗물을 빌리고 되돌려주고 활용하는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것을 비의 건축술이라 한다. “비의 건축술의 목표는 본래 자연의 토지가 가진 빗물을 머무르게 하고, 하늘과 땅으로 되돌리는 힘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일본건축학회, 『비의 건축술』, 기문당, 2012).
넓고 긴 카페 지붕으로 떨어진 빗물은 건축의 루프 드레인(roof drain)을 통해 모인다. 루프 드레인 끝에서 시작해 돌담 위에서 끝나는 7개의 콘크리트 수로는 빗물을 사면 아래로 이동시킨다. 이때 돌담의 높이로 인해 수로 끝에서 낙수하는 물을 감상할 수 있다. 떨어진 빗물은 계획된 물길의 지형을 따라서 가장 낮은 쪽에 위치한 웅덩이에 모인다. 이 웅덩이는 대상지의 거대한 집수정이다. 웅덩이에 채워진 빗물은 서서히 흙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거나 증발되어 수증기로 되돌아간다. 가둬진 물은 대상지의 미기후를 조절하고 수생 식물과 수변 식물,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키워낸다. 수면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자연의 순환 과정을 느낄 것이다.
수직적, 병렬적 공간 구조
인포멀가든의 외부 공간은 건축 계획에 의해 카페 후면부, 카페 전면부, 퍼걸러(차양 시설) 구간으로 나뉜다. 세 개 영역은 수직적인 벽이나 담장이 아닌 높이 차이로 인해 구분된다. 영역 간의 높이 차이로 인해 경사면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평지는 이용 구간이 되고 사면은 식재 구간이 되었다. 각 영역은 철제 계단이나 자연석 계단으로 연결된다. 영역 간의 이동은 수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영역 안에서의 이동은 수평적이다. 건축의 방향과 평행으로 놓인 세 개 영역의 포장면은 머름의 공간과 길의 역할을 병행한다. 머무는 공간과 이동하는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포장을 달리했다. 이동 중심의 구간은 보행의 불편함이 없도록 화강석 판석으로, 머무는 공간은 천천히 걷도록 유도하는 사고석으로 포장했다.
식재 계획, 메시지를 담은 공간
남향인 대상지는 대부분 그늘이 없는 양지고 경사면이 있다. 이 조건을 고려해 직사광선과 건조한 환경의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식물들을 선정했다. 습기가 많은 물가, 웅덩이 주변과 빛이 들지 않는 건물 하부에 맞는 식물을 별도로 선정했다. 느릅나무, 무궁화, 대나무, 귀룽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참빗살나무, 보리수나무, 병꽃나무, 사철나무, 등골나무 러시안세이지, 솔정향풀, 수크령, 알케밀라, 터리풀, 코만스사초, 큰꿩의비름, 털수염풀, 땅채송화, 섬기린초, 순비기나무, 일당귀, 큰바늘꽃, 타래붓꽃, 제비동자꽃, 무늬해국, 몰리니아, 바이텍스, 실목련, 물싸리, 산오이풀, 꼬랑사초 외 약 90종 15,000본의 식물을 심었다.
이솝 성수점을 시작으로 강릉의 호지 스테이, 인포멀가든까지 빗물 활용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프로젝트에 담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서 벌인 설계 행위는 공원 같은 큰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실질적으로 매우 미미한 효과를 낼 것이다. 다만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업 공간이기에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만 있어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상업 공간으로서 인포멀가든의 흥행 성공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답을 내리기 이른 시점이다. 시간이 지나고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 몇 해가 흐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람들이 알아보리라 믿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분야와 대립하기보다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다른 가치관을 수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할 때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새로운 디자인은 다양성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오현주·이범수 인터뷰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일상의 조경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마당더랩이 전국 방방곳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울산이다.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오현주(이하 주) 인포멀가든의 카페 건물을 지은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에서 의뢰가 왔다. 현재는 카페만 있지만, 추후 뒤편으로 숲유치원, 양옆으로 베이커리, 미술 작품 수장고 및 전시장 등이 들어서 복합문화단지로 거듭날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현재 카페 외 다른 공간의 조경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범수(이하 수)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보통 건축 공간을 짓다 조경의 필요성을 느낀 건축설계사무소가 연락을 해오는 식이다. 충북 단양의 카페산도 그런 경우였다. 수도권 외의 공간을 설계하겠다는 포부가 있다기보다 안마당더랩이 주로 진행하는 성격의 프로젝트 수가 수도권 외의 지역에 더 많을 뿐이다.
보통 건축사사무소는 어떤 경로를 통해 연락해오나.
수 이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한 건축사사무소가 우리를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연락을 주기도 한다.
주 인스타그램이 상상 이상으로 큰 창구 역할을 한다. 작품 사진을 보고 서로 팔로우하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연락해오는 식이다. 프로젝트 수주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업로드도 신경을 쓰고 있다.
건축 계획이 선행된 상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다. 대상지 한가운데에 카페 건물과 퍼걸러가 들어서 있어 조경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부지 크기 자체가 작아 보인다.
수 그 점이 아쉬워 퍼걸러를 빼거나 축소해 전면을 모두 조경 공간으로 쓰는 안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단순히 조경 공간을 많이 확보하려는 게 아니라 퍼걸러와 사면이 크게 공간을 차지한 배치가 방문자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 사업성이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상업 공간인 만큼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어떻게 앉게 하고 어떻게 쉬게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사면이 대부분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사면에 나무를 심기 힘
들어 그늘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퍼걸러의 규모가 작아지면 가파른 사면의 경사를 조정할 수 있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건축에서 퍼걸러가 가진 역할과 의미가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컸다.
주 카페가 높은 곳에 지어지다 보니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자칫 권위적인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 퍼걸러가 중간에서 시선을 한 번 끊어주어 위압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차례의 논의 끝에 건축의 배치를 따르기로 결정했고 두 번째 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설명처럼 카페 레벨과 퍼걸러 레벨을 연결하는 경사가 꽤 가파르다. 지반 안정화와 식재 작업이 쉽지 않았겠다.
수 식물의 뿌리 활착으로 결국 잡힐 거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비가 오면 조금은 쓸려내려 가는 구간이 있지만 곧 해결될 것이다. 사면에 심으면 뿌리분이 흙 밖으로 노출되어 분이 큰 교목은 식재할 수 없었다. 한 해 두 해가 흘러 관목이 뿌리를 내려 안정화가 될 때까지 쓸려 내려간 흙을 다시 올려주는 식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건축이 제안한 동선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경사면을 따라 하나의 동선으로 통합되어 있던 계단이 위쪽은 자연스러운 형태의 언덕과 디딤돌, 아래쪽은 경사 위를 지나는 가벼운 느낌의 철재 계단으로 변했다.
수 건축 배치를 보면 외부 공간이 카페 후면부와 전면부, 퍼걸러 구간으로 나뉜다. 동선이 굉장히 수직적이 될 수밖에 없어서 지루하지 않은 동선을 짜는 데 집중했다. 카페 건물의 위압감을 완화할 수 있는 지역성을 고려한 부드러운 포장재를 택하고 싶어 위쪽에 녹지와 어우러진 디딤돌을 두었다. 건축의 붉은 색이 강렬하기 때문에 눈에 띄기보다는 주변과 잘 어우러지고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형태와 질감을 가진 화강석 판석을 택했다. 사면보다는 카페 전면부와 퍼걸러 구간의 판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판이 두드러지고 두 판 사이에 계단이 가설물처럼 얹혀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축사를 모티브로 한 카페 건물과도 어우러지게 경량화한 철재 계단을 구상했다. 소재보다는 계단의 개수를 고민했다.
주 처음에는 퍼걸러 구간부터 카페까지 한 번에 올라오게 할 계획이었다. 중간에 참을 만들면 사면도 그만큼 깎아내야 하고, 그러면 경사가 더 가팔라지니까. 그런데 쉬지 않고 계단을 한 번에 올라오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 결국 계단 중간 참을 만들되 사면은 깎지 않았다. 사면과 계단이 조금 엇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용 측면을 더 고민한 결과다. 이미 건축주의 주택과 주차장이 대상지 주변에 들어서 있고, 복합문화단지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로와의 차폐뿐 아니라 확장 가능성을 고려한 계획이 필요했겠다.
주 앞으로의 과제다. 지도로만 보면 주변 자연을 카페 내부로 끌어들이기 좋아 보이지만 실제 대상지에 가보면 차경을 할 만한 좋은 경관을 찾기 힘들다. 남서쪽은 고운산이 보여서 전망이 좋지만, 다른 부분은 축사가 차지하고 있다. 베이커리와 어린이 야외 놀이 학습터 등이 들어올 부지와 카페 부지가 도로로 다 끊겨 있어서 이 공간을 어떻게 한 단지로 읽히게 할지 고민 중이다.
카페 건물 앞에 놓인 긴 벤치가 인상적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더 많은 테이블과 벤치를 놓고 싶어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했나.
주 건물의 긴 형태와 결을 맞춰 디자인한 벤치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해당 판의 폭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기에는 조금 좁았고, 머물기보다는 이동하는 곳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외부 공간이 있는데 앉을 곳이 없는 건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긴 벤치를 설계했다. 루프 드레인이 시작되는 곳에서 벤치 역시 시작하게 해, 사람들이 빗물이 웅덩이로 흐르는 과정을 더 가까이에서 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테이블을 놓지 못한 게 마음이 쓰여 간이 테이블도 디자인했는데, 카페 운영 사정을 보아 설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 벤치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의문을 많이 던졌다. 이 판에 파라솔과 테이블, 벤치가 들어서면 선형의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깨지게 된다. 하지만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앉을 공간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주 건축주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다. 운영하면서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당연히 파라솔이 들어서야 한다. 그래서 고정적인 시설물을 만들기보다 최소한의 벤치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로 배치하고, 가변성 있는 가구를 통해 건축주가 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았다.
벤치가 사면과 상당히 가까이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사면을 등지고 앉기를 의도한 것인가.
주 사면과 가까운 쪽을 보면 어느 정도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발을 두고 앉으면 고운산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벤치 형태가 이용하기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중간 중간 벤치를 끊어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면 조금 편했을 테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깨지게 된다. 경사면의 계단과 달리 여러 가지를 감수하고 디자인 측면을 택한 것이다.
수 이 벤치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다.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가져다 놓으면 선반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 공간을 경계 짓는 울타리 역할도 한다. 벤치가 없으면 아이들이 사면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도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카페 건물이 바닥에서 띄워진 형태고 그 아래에 다양한 음지 식물이 심겨 있다. 사면을 등지고 앉으면 건물 아래에 식재된 이 식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루프 드레인과 선홈통을 타고 흐른 빗물이 모여 만들어지는 연못이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수 빗물 홈통을 밖으로 노출시킨 루프 드레인은 건축의 계획이다. 본래는 이 루프 드레인을 타고 내려온 빗물을 집수정으로 모아 대상지 밖으로 배수시킬 계획이었으나, 우리는 루프 드레인에서 나오는 빗물을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시대적 화두인 지속가능성을 프로젝트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솝 성수점과 강릉의 호지 스테이에서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참이었다. 레인가든이라는 시스템을 상업 공간에 담아 어떤 효과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들이 선홈통이 왜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수직적으로 드러난 루프 드레인의 선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빗물 홈통을 타고 들어온 물, 그냥 경사를 따라 흐른물, 주변 도로에서 유입된 물이 모두 최하단의 연못에 모인다. 일부 집수정에 모인 빗물도 이 연못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연결시켰다. 연못에 일정 수위 이상 물이 차오르면 인근 하천으로 빗물이 빠져나가게 된다. 오염된 빗물이 바로 하천으로 흘러들지 않으니 수질 오염 방지의 효과도 있다. 그 과정에서 땅으로 스며든 빗물은 지하수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증발한 빗물은 미기후 조절 효과를 낼 것이다.
이솝 성수점과 호지 스테이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우배수 시스템을 만드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주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근래 계속 물과 관련된 작업을 해왔다. 어쩌면 시리즈처럼 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작업이 이솝 성수점인데, 이곳도 지면보다 땅을 꺼트려서 비가 오면 물을 고이게 했다. 이후 작업한 호지 스테이는 비가 오면 비의 양에 따라서 지형이 낮은 곳부터 잠기는 구조의 정원이다. 여름철 우기에는 땅이 완전히 잠기기도 하고, 물이 스며들어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짝 말라있다. 완공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인포멀가든을 포함해 설계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수 비가 많이 오는 날 걱정이 되서 잠을 못 잔 적이 있기는 한데, 현재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조성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법적으로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배수 처리 시설이 있기 때문에 자연 배수를 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집수정이 모든 대지에 꼭 필요한 시설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연못의 방수 처리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들었다.
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 기획인데 인위적으로 방수 처리를 하는 것 자체가 맞는지부터 고민했다.
수 물은 고이면 썩는다. 수생 식물이 정화한다 하더라도 여름이면 녹조가 생긴다. 결국 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하지만 이곳이 상업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정 기간 동안은 물이 차 있는 경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어느 정도 물이 새는 방수가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쉬운 시공법은 콘크리트 방수 패드를 치는 것이지만, 너무 완벽한 방수라 물이 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트 방수를 했다. 처음에는 빗물이 담긴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물이 전부 빠져버려 걱정했는데, 침전물이 공극을 막으며 물이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비 가 오랫동안 오지 않는 시기도 고려해 산의 실개천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조금 흘러들 수 있도록 보완하는 작업도 해놓았다.
식생은 어떤 식으로 구성했나. 대상지 주변에 산이 많은데 이런 곳에 정원을 만들 때 주변 식생을 고려하는지, 오히려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식물을 택하는지 궁금하다.
주 대부분 전자다. 주변 식생을 조사하고, 주변의 식생과 대상지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대상지 북서측에 대나무가 굉장히 많이 자라는데, 거기에 착안해 카페 뒤에 대나무를 심었다. 식물을 선택하는 기준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변 식생이다. 그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니 그 환경에서 잘 살 것이라 생각하고 수목들을 선정한다. 두 번째는 경비다. 수목과 식물의 가격 자체도 중요하지만 운반비 역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다.
수 인포멀가든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청산식물원에 방문해 식생을 조사했다. 자생 식물은 무엇이 있는지 인근 산에는 어떤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지 봤다. 본격적인 식재를 위해 울산과 부산에 있는 농장을 다녔는데 크기가 큰 무궁화와 사철나무가 엄청 많았다. 알아보니 한때 유행해 잔뜩 심었지만 유행이 끝나며 팔리지 않은 나무들이었다. 마침 관목이 많이 필요했는 데,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주 대상지 주변 도로의 경관을 가려줄 수목이 필요했다. 보통은 교목을 쓰면 차폐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교목은 하부에 가지가 아닌 목대만 노출된다. 사람 눈높이는 지하고에 머물러 있으니 차폐 효과가 없다. 필요한 건 긴 세월 동안 크게 자란 관목이다. 보통은 규모가 큰 관목을 구하기 쉽지 않은데, 운 좋게도 울산과 부산의 농장에 팔리지 않고 재고처럼 쌓여 있는 사철나무와 무궁화 대형목이 가득했다.
수 예산이 빠듯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평지에 식재를 하면 줄기들이 중첩되어 보여 밀도를 조금만 높여도 풍성해 보이는데, 사면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위쪽 단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허전해 보인다. 웬만한 개수의 나무로는 풍성한 느낌을 낼 수 없고, 높은 밀도로 식물을 심어야 한다. 카페 건물 하부도 다 녹지다. 보행로인 몇 부분을 빼면 모두 녹지인 셈이다. 예상보다 예산이 많이 투입된 프로젝트다.
도면을 보니 마운딩에 필요한 토량을 산출한 그림이 있더라. 정확한 시공을 위해 도면을 그리는 노하우가 따로 있나.
주 언덕을 만들며 시행착오를 통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보통은 건축에서 제공한 도면을 믿고 그에 따라 토량을 산출하는데, 현장 상황과 다른 경우가 많다. 반드시 직접 찾아가 레벨이 어떤지 확인해야 한다.
수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조경 도면을 만드는 이유는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고 공사비를 책정하기 위해서다. 인포멀가든 같이 개인 클라이언트인 경우의 장점은 여백이다. 어느 정도의 공사비를 잡아놓고 현장에서 얼마든지 설계안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좀 더 규모가 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설계와 시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설계자가 현장에 계속해서 있을 수 없으니 변수가 발생했을 때 시공과의 긴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면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현장에서 시공까지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목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쓰는 원형 심벌을 그리지 않는다. 나무를 기울어지게 심고 싶다면, 기울어진 나무를 위에서 본 모양을 그린다. 원하는 사항을 도면이 아닌 현장에서 그림과 말로 협의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납품하는 도면을 그릴 때는 이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카페에서 머무르며 바라볼 만한 풍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 경관 포인트로 삼은 지점이 있나.
주 인포멀가든은 예상보다 내부 지향적인 곳이다. 바깥 경관보다는 대상지의 안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도로에서 인포멀가든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인포멀가든 내부 공간이 한눈에 읽힌다는 점이다. 공간에 들어서 보이지 않던 곳을 천천히 경험하게 만드는 시퀀스도 중요한데 그 가치가 확 줄어 아쉽다. 하지만 이범수 소장과 그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이 땅이 조경 단독 프로젝트로 주어졌다면 이런 디자인 못했겠지.”
수 협업으로 끌어낸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인포멀가든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디자인이다. 조경가마다 결이 있기 마련이고, 그간 그린 도면을 살펴보면 비슷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건축가의 배치를 받아들이고 건축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자 마음먹으니,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선들이 나왔다. 평소에는 이렇게 수직적이고 강한 선을 권위적이라 생각해서 잘 쓰지 않는다.
클라이언트의 안목도 큰 역할을 했다. 장식으로서의 조경보다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4~5년이 지나면 이곳이 훨씬 좋은 공간이 될 거라고 믿어주었다. 이곳저곳에서 카페와 스테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데, 10년 넘게 살아남는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비슷비슷한 공간에 싫증내기 시작할 테니까.
만약 인포멀가든이 서울이나 수도권이 놓였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주목받았을 것이다. 울산에서 원하는 것은 좀 더 화려하고 즐길 거리가 많은 문화 공간인 것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명히 화려함과는 다른 가치가 점점 돋보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답을 듣다보니 안마당더랩의 결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주 예전에는 축을 비튼다든지 판을 쪼개는 디자인을 자주했는데 작년부터는 안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수 어쩌다보니 비슷한 결의 선이 그려지는 것이지 시그니처처럼 무언가를 남기진 않는다. 안마당더랩이 나와 오현주 소장의 사무실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공간 만들기는 나의 예술성과 작가 정신을 발휘하는 작업이라기보다 클라이언트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예술성도 좋지만 우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 둘이서 사무실을 운영할 땐 이 때문에 다투기도 했다. 지금은 이범수 소장의 의견에 동의한다.
카페 공간 같은 상업 공간을 다룰 때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나.
수 클라이언트의 생각과 주어진 공간이 어떠한 성격인지 정확히 파악하려 한다. 사실 사업주의 생각과 브랜드의 정체성이 또렷하다면, 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사업주가 가져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 이 소장이 잘한다. 나는 오히려 그런 면에서 무딘 편이다.
수 어떤 노하우가 있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만났을 때의 말투와 취향,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을 좋아할지 고민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첫 PT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그 PT에서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드는 것을 내놓게 되면 다음 과정이 큰 문제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주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조경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도 지양하는 편이 좋다. 상업 공간에는 수많은 가치가 공존하기 마련인데, 조경을 최우선의 가치로 이야기하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꽃 하나가 더 피어난다고 커피 한 잔이 더 팔리는 건 아니니까. 더불어 전문 용어보다는 클라이언트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경의 가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순간 클라이언트는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한 인터뷰에서 대중과 친숙한 조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조경이란 무엇인지 의견이 궁금하다.
주 친숙한 공간은 사람들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두는 공간에서는 치장 여부보다 주변과 얼마나 맥락이 잘 닿아 있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수 “대중에게 친숙한 조경”이라는 표현은 조경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적은 현실을 이야기하며 했던 말이다. 좋은 조경 작업이 대중들이 접근 가능한 지점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공간보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카페에서 좋은 조경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라고, 좋은 작업을 하는 조경가가 그런 공간을 설계했으면 한다. 클래식 음악이 훌륭하지만 대중음악도 클래식 음악과 구별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안마당더랩의 작품이 대중에게 조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글 오현주·이범수 안마당더랩 소장
조경 설계 안마당더랩
조경 시공
시설물 및 포장: 메이크더
식재: 안마당더랩
건축 설계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대지 면적 1,924m2
조경 면적 1,574m2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차리 292
완공 2022. 8.
사진 진효숙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상생의 가치 아래 균형, 단순, 조화, 대비, 스토리, 실용성, 합리성 등 다양한 디자인 철학을 담아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것에 관심이 많다. 좋은 공간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킨다고 믿는다.
오현주는 안마당더랩의 공동 소장이다.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기술사사무소 렛과 그람디자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6년부터 조경 지식을 기반으로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 안마당더랩을 이끌고 있다. 인간 중심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간을 삶의 배경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환경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다.
이범수는 안마당더랩의 공동 소장이다. 한경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비오이엔씨와 조경디자인 이레(현 디자인스튜디오 이레)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6년부터 안마당더랩을 이끌고 있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 격이 느껴지는 것들, 진정함 속의 우아함, 철학이 깃든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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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지난 50년간 한국 조경은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하며 발전을 거듭했지만, 자료의 저장과 성과의 기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 다음 50년,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고 창의적 해법을 마련해가기 위한 필요 조건은 지난 50년의 성과, 작품, 제도, 교육, 인물을 촘촘히 기록하고 면밀히 저장하는 체계적 아카이브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자료와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수집, 정리, 공유, 소통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환경과조경』의 편집도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아카이브에 비중을 둘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23년 1월호 ‘에디토리얼’을 통해 올해 『환경과조경』의 편집 방향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 이번 특집은 그 아카이브 작업의 시작입니다. 한국 조경이 태동한 지 50년이 된 2022년을 보내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50년을 맞이합니다. 다가올 50년을 위한 설계안을 그릴 때입니다.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관찰하며 자성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첫 작업으로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협회의 새 목표를 담은 글을 싣고, 2022년의 의미 있는 사건들을 기록합니다.
2013년 제정된 ‘한국조경헌장’이 새로운 조경의 좌표를 제시할 수 있도록 현재 사회의 요구에 맞춰 개정됐습니다. 변화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개정 전후의 헌장 전문을 수록했습니다. 박승진의 글에서 유럽,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카 지역 조경 헌장의 형식 및 내용과 개정 과정에서 오간 논의 사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은 새로운 50년을 모색하기 위한 선언입니다. 조경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은 제25회 올해의 조경인 인터뷰를 통해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은 미국의 자연과 공원을 관리·보존하기 위해 10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며, 싱가포르, 중국, 미국 디트로이트의 여러 기관과 지자체는 50년 계획을 설정하기도 한다. 한국도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환경과조경』 2022년 12월호)며 긴 시간을 내다보는 비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수립 과정을 담은 이유직의 글을 통해 조경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전문 분야이자 미래 환경 변화에 대비하는 기술 분야로서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연말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에서 열린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을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IFLA 한국 개최 성과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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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다시 도약하는 조경
올해의 1월도 작년의 1월과 다름없는데 무게감에서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2022년 초에 있었던 한국조경학회장 선거가 온라인으로 치러졌기에 모든 것을 글로만 준비해서 그런가, 올해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한국조경학회 공식 홈페이지 인사말에 ‘다시 도약하는 조경, 조경의 심장이 되겠다’고 적었다. 한국 조경 50주년 기념 행사장을 나오면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지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학회는 항상 조경 분야의 핵심적 존재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심장이 되겠다는 것이 뭐 그리 새로운 약속이고 결심인가. 다섯 번의 10년, 한 세기의 중간 지점 등 50년의 의미를 찾자면 끝이 없다. 상징적인 시간을 통과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1789년에 취임했다. 환호 속에서 내딘 첫 발이었지만 대립과 갈등은 외화내빈의 극치였다. 특단의 조치로 새 수도 건설을 계획했고, 대통령 관저 기공식은 야심찬 통합의 출발 신호였다. 공사가 늦어져 자신은 입주도 못하고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가 첫 주인이 되었으나 수도, 난방, 램프, 방수 등의 문제로 건물은 엉망이었다. 영국과의 전쟁, 남북전쟁을 거치며 몇 차례 훼손도 발생했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대대적 보수 공사를 했으나 물이 차고 벽에 금이 가는 등의 구조적 문제는 계속 노출됐다. 이에 따라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골조만 남기고 해체 수준의 대공사를 시행했다. 아름다운 모습의 백악관과 그 앞뜰은 250여 년이 지나고서야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50년의 시간은 우리를 성숙시켰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어쩔 수 없는 노화를 가져왔다.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심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26대 한국조경학회 회장단은 젊어지는 것을 우선으로 선택했고 사무실도 바꿨다. 몸을 바꿔야 심장도 활기차게 기능을 할 수 있다.
녹색자원부의 필요성을 학회에서 논의한 적 있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 환경부, 산림청, 국토교통부의 기능을 하나로 집약시킨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미 세계는 방향을 정했고 변속 기어를 올리고 있다. 브렉시트는 EU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기후변화에 기반한 경제 구조 개편은 이것의 또 다른 양상이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얻은 ‘해가 지지 않은 나라’에서 해가 없어졌다.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음으로써 해의 주인이 되었던 영국에 더 이상 해가 뜨지 않게 된 것이다. 해를 끌어내야 했기에 영국은 환경 문제를 거론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몇몇 경제 강대국이 외면해버림으로써 다시 해가 뜨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오염시킨다는 세계의 손가락질에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한국도 세계와 약속했고 더디긴 하지만 발을 내딛고 있다.
조경의 세상은 어떠한가. 녹색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조경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2022년 말 조경계 원로와 차 한 잔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산림청의 가치에 대하여 오랜 세월의 경험을 말해줬다. 도시에서의 쓰임새에 대한 노선배의 혜안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산림청과 함께했던 도시숲 입법화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출발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조경계의 무원칙, 무지, 무례한모습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어둠의 세상을 봤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던 전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이제라도 반성하지 않으면 그 어둠의 터널은 돌아오지 못할 수직 갱도가 될 수도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긴다.
코로나19는 세계인에게, 코로나19와 인구 성장 마이너스는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안겨진 생소한 장벽이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약제를 개발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인구 절벽에는 특효약이 없다. 신의 한수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더라도 최소한 20년 이상 대학과 사회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학과 업은 지금까지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인구 절벽 앞에 서 있는 지금,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는 극복이 안 되기에 지금까지 취한 자세와는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대에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았기에 문제의 초점은 다음 단계 진출을 위한 경쟁이었다. 이제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공급선을 뚫어야 하고 자원을 찾아야 한다.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을 만드는 동안 업계는 취업 자원을, 대학은 입시 자원을 발견해야 한다. 학회는 학계와 업계의 중간에서 이를 찾는 매개 역할을 하려 한다. 인턴제의 활성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졸업자, 퇴직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운용, 퇴직 교수들의 자원화 등 조경을 사회적 교육 차원으로 바꾼다면 이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광역단체장들의 공약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정원 조성이다. 산림청을 중심으로 정원 조성 사업에 많은 투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원사 양성을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공원까지는 몰라도 정원은 모든 이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조경의 영역이다. 초등학생부터 퇴직자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도구가 손 안에 있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들에 대한 교육은 조경이라는 세상을 넓힐 수 있는 미래 산업이 될 것이고,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확실한 방안이 될 것이다. 소량 다품종이라는 조경 분야의 특성이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고 IT나 AI, 가상 공간 등 첨단화가 조경의 입지를 약화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정원과의 적절한 접목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조경 산업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학회는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업계와 함께 하는 장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 50년간 해왔던 학회의 사업을 업계와 함께하는 사업으로 문을 열고자 한다. 최종 사용자이며 본체인 업계와 CPU로서 학계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스마트한 조경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의 공간인 학회를 업계와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 열려 한다. 방향은 명확하다. 한국조경학회 홈페이지 인사말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멀리 가야 합니다. 빨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발굴하고 함께 교육하고 함께 세상을 넓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우리의 자산인 훌륭한 두뇌 자원을 하나로 응집해 ‘함께’라는 조경호의 컨트롤 타워가 됨으로써 한국조경학회는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김태경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강릉원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경 계획과 설계, 조경 미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지역 재생의 수단으로 정원의 가치를 인식하고 홍천에서 정원 마을 만들기를 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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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한국 조경 100년의 초석을 쌓다
올해로 창립 43년을 맞는 한국조경협회는 조경 산업 분야를 대표하는 조경인 단체다. 2000년에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으며 2018년에 사단법인 한국조경사회에서 사단법인 한국조경협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조경협회는 그동안 공무원 조경직제 신설, 조경진흥법, 도시숲법, 산림자원법, 산림기술진흥법 등의 제정과 조경진흥기본계획 수립, 조경지원센터 설립 추진 등 조경계 발전을 위해 지속적이고 적극적인활동과 실천을 해왔다.
2022년 한국조경협회는 한국 조경 5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환경조경발전재단과 긴밀히 협조해 성황리에 끝냈으며,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를 한국조경학회와 혼연일체가 돼 잘 치러냈다. 특히 그동안 위축됐던 조경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공공 기관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광주컨벤션센터에서 대회 기간 선보인 조경산업전K-Landscape Expo은 세계적으로 돋보인 대국민 행사였다. 한국조경협회가 성공적으로 행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낌없는 성원과 적극적 후원을 보내준 조경인 여러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경인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탄소중립 시대를 맞이하며 생태계 보전, 재해 예방 및 국민 건강 복지, 지속가능하고 회복탄력적인 환경 창출을 위해 조경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환경 복지 차원에서 공공 조경을 대표하는 공원과 정원 문화의 확산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는 조경인의 노력과 엄중한 자세도 요구되는 시기다.
한국조경협회 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조경계가 당면한 많은 갈등과 도전을 치유하고 화합하며한국 조경 100년의 초석을 쌓기 위해 범 조경계에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지금까지 환경조경발전재단 중심으로 펼친 모든 정책적, 전략적 접근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로 나타났어도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면 당면한 조경계의 여러 이해관계와 대정부 창구 역할은 지금처럼 환경조경발전재단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경 단체별로 서로 다른 입장과 역할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국 조경 100년을 위해 화합이 필요하다.
둘째,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을 조경계가 뜻을 모아 만든 만큼 이제는 이 법정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특히 올해는 반드시 조경지원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국회,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내년 초에는 정부 예산을 확보, 조경계의 숙원 사업들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협회가 적극 앞장서서 나갈 것이다.
셋째, 조경설계 업계의 숙원 사업인 조경설계 자격제도와 관련하여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가협회,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조경기술인회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조경사’ 자격제도가 조경진흥법의 개정 후 조경사법의 제정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수많은 젊은 조경인은 현실적인 설계 대가의 지급과 공정한 설계 문화의 정착 그리고 설계 자격제도 신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젊은 조경인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넷째, 최근 ‘한국조경50 비전플랜’으로 발표된 내용은 시의적절하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담았다. 비전플랜을 기초로 앞으로 다가올 백년을 준비하는 전략과 실행 계획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 기초는 각 조경 단체가 서로 의견을 나누며 각자의 역할과 실천이 담보된 실행 계획을 세울 때 만들 수 있다.조경 산업계의 구체적 발전 계획이 담기지 않은 비전플랜은 사상누각이 될 확률이 높고 선언적 의미로만 그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조경협회는 전국 지회의 활성화와 확대를 통해서 전국 조경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앞장서고자 한다. 이번 2월부터 송파의 사무국을 강남의 과학기술회관으로 옮겨 한국조경학회와 함께 조경 세미나 정례화를 통해 조경인이 만나고 정보를 교류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올해부터는 조경인 체육대회를 부활시키고 조경인 건강한 공원 걷기 행사를 통해 젊은 조경인의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24년에는 협회 지회와 협력하여 전국의 조경인 모두가 모이는 전국 조경인 체육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 준비를 위해 추진위를 만들고 전국 지회 회장단의 정기 모임도 신설했다. 조경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안세헌은 가천대학교와 한양대학원에서 조경 계획과 설계를 익혔다. 1999년에 가원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마스터플랜, 인천청라호수공원, 부천대장 공공주택지구 마스터플랜 등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경가의 위상 강화와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고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초대회장과 한국조경가협회 추진위원장을 맡았으며, 2023년부터 한국조경협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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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한국조경헌장(2013)
한국조경학회는 조경의 정체성을 천명하고 미래 조경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국조경헌장’ 제정을 계획했다. 2013년 조경진 위원장(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과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한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배정한(서울대학교 교수), 최정민(순천대학교 교수)으로 조경헌장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다양한 의견을 담기 위해 여덟 차례에 걸친 내부 회의와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같은 해 10월 28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조경의 날 기념식’에서 한국조경헌장이 발표되었다. 한국조경헌장은 조경의 가치, 대상, 영역, 과제 등을 통해 한국조경학회 40년 역사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대사회적 홍보의 토대가 되었다. _ 편집자 주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조경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고 행복한 삶의 기반이다. 조경은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조경의 책임이자 과제이다.
한국조경학회는 이 헌장을 통해 조경을 재정의하고 고유한 가치를 공유하며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I. 조경의 가치
자연적 가치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다. 지구에는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조경은 이들의 건강한 공생을 중시한다. 자연은 현 세대를 위한 소비의 대상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자원이다. 조경은 자연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온 부조화를 해소하고 상처받은 자연을 건강하게 치유한다.
사회적 가치
삶의 터전은 유한한 공간이자 공공의 자원이다. 사회 구성원은 이 터전을 지혜롭게 공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조경은 시민의 공공적 행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조경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공 환경을 조성한다.
문화적 가치
인류가 축적해 온 인문적 자산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조경의 토대이다. 조경은 역사성, 지역성,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창의적 예술 정신을 지향한다.
II. 조경의 영역
정책
정책은 환경과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정치적·행정적 기반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조경 정책 수립은 조경의 다른 영역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다. 정책 입안과 결정에 조경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계획
조경 계획을 통해 관련 분야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방향을 제시하며, 설계의 합리적 체계와 틀을 제공한다. 조경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다양한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여 토지 이용과 관리 기준을 도출하는 계획과 그리고 설계의 선행 단계로서 구체적인 실행안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설계
조경 설계는 계획안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창작 행위이며,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 설계, 감리의 과정으로 나뉠 수 있다. 조경가는 설계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복합적인 요구와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한다.
시공
조경 시공은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건설하는 과정이다. 시공의 수준은 조경 공간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시공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장인 정신과 합리적인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
운영·관리
운영·관리는 조경 공간의 물리적 환경을 유지하고 사회문화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못지않게 이용 프로그램 운영도 조경의 중요한 영역이며, 이를 통해 공간의 가치가 제고된다.
연구
조경 연구는 조경의 고유한 영역뿐만 아니라 조경과 관련된 인문·사회적, 과학·기술적 학문 연구를 포괄한다. 보다 우수한 환경과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실천적 연구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요구되며, 다른 학문 분야와의 적극적인 학술 교류와 협력도 필요하다.
교육
조경 교육은 사회의 변화와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실천적 기술을 제공한다. 교육의 영역은 창의적 문제 해결 역량을 지닌 조경 전문가를 양성할 뿐만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전문가의 재교육까지 아우른다.
III. 조경의 대상
조경이 다루는 토지와 경관은 국토, 지역, 도시, 교외, 농·어촌을 포괄한다. 각 범위의 자연 생태계와 사회·문화적 맥락은 조경의 토대이자 대상이다. 조경의 대상은 정원과 공원을 근간으로, 도시 경관, 자연 환경과 문화 환경, 사회적 공간과 삶의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1. 정원은 단독 및 공동주택 정원, 비주거용 건물 정원(상업·의료·업무·문화 시설 등의 정원), 공공 정원(공개공지, 공공시설의 정원), 실내 정원, 옥상 정원, 식물원, 수목원 등을 포함한다.
2. 공원은 도시공원, 도시자연공원, 자연공원 등을 포함한다.
3. 녹색도시기반시설은 정원, 공원, 녹지, 보행 공간, 광장, 자전거도로, 도로 조경 공간, 가로 시설물, 주차 공간, 비오톱, 도시 숲, 학교 숲 등을 포괄한다.
4. 역사·문화 유산은 유·무형 문화재, 사적·명승 같은 기념물, 민속 자료, 문화재 자료, 향토 유적, 정원 유적, 근대 문화 유산, 비지정 문화재 등과 관련 공간을 포함한다.
5. 산업 유산은 산업 관련 사회적 행위를 위해 사용된 장소로 항만, 공장, 창고, 수운 시설, 철도·운송 시설, 발전 시설, 농업 시설, 광업 시설, 교통 시설, 종교 시설, 교육 시설, 주거 시설 등을 포함한다.
6. 재생 공간은 용도가 폐기된 항구·광산·채석장, 군사 시설 이전지, 산업 시설 이전지, 쓰레기 매립지, 오염 지역, 용도가 불확정한 공간 등을 포함한다.
7. 교육 공간은 학교 교정, 대학 캠퍼스, 연구 시설, 청소년 수련 시설, 체험 학습원 등을 포함한다.
8. 주거 단지는 단독 주택 단지, 연립 주택 단지, 아파트 단지 등을 포괄한다.
9. 건강과 공공 복지 공간은 범죄 예방(CPTED) 공간, 무장애 공간, 도시 농업 공간, 치유 공간 등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공간을 포괄한다.
10. 여가 관광 공간은 스포츠 시설, 골프장, 스키장, 온천, 캠핑장, 유원지, 워터파크, 놀이공원, 관광 숙박 시설, 관광 편의 시설 등을 포함한다.
11. 농어촌 환경은 농·어촌 경관 계획 및 마을 계획, 농어촌 휴양 단지, 관광 농원, 그린 투어리즘, 자연 휴양림 등을 포함한다.
12. 수자원 및 체계는 배수 체계, 지하수 함양, 홍수 조절, 생태 습지, 유수지, 빗물 정원, 친수 공간 등을 포함한다.
13. 생태 자원 보존 및 복원 공간은 생태 숲, 생태 통로, 연안 생태계, 하천, 습지, 서식처 등의 보존 및 복원이 필요한 공간, 기후·토양·동식물상의 조사 분석, 생물 다양성 증진이 필요한 공간을 포함한다.
IV. 조경의 과제
1. 세계화의 정신을 지향하는 동시에 지역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발견한다.
2. 대지, 경관, 삶의 의미와 역사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창의적 조경 작품을 생산하고,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이끄는 조경 문화를 형성한다.
3. 계획과 설계 행위를 통해 생물종 다양성을 제고하고, 전 지구적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첨단의 설계 해법과 전문 지식을 갖춘다.
4. 누구나 자유롭게 찾고 경험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하고 민주적인 공간을 구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 복지를 지향한다.
5. 시민과 협력하고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참여의 문화와 리더십을 실천한다.
6. 복합적 도시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축적한다.
7. 관련 분야와의 협력을 선도하고 조정하며 도시와 자연 환경의 문제를 융합적·통합적으로 계획·설계·관리한다.
8.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조경가의 직업 윤리를 확립하고 질 높은 조경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3년 10월 28일 제정
한국조경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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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한국조경헌장(개정, 2022))
2022년, 한국조경학회는 2013년 제정된 ‘한국조경헌장’을 현 사회의 요구에 맞춰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국조경헌장 작성에 참여한 연구팀과 관련 전문가로 개정위원회를 꾸렸다. 박승진 위원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을 주축으로,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민병욱(경희대학교 교수, 배정한(서울대학교 교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이유직(부산대학교 교수), 조경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교수), 최정민(순천대학교 교수)이 참여해 개정을 진행했다. _ 편집자 주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조경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고 행복한 삶의 기반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한다.
한국조경학회는 이 헌장을 통해 조경을 재정의하고 고유한 가치를 공유하며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I. 조경의 가치
자연적 가치
지구에는 인간과 더불어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조경은 이들의 건강한 공생을 존중한다. 자연은 현 세대를 위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자원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조경의 중요한 책무다.
사회적 가치
삶의 터전은 유한한 공간이자 공공의 자원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이 터전을 지혜롭게 공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조경은 시민의 공공적 행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조경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전 세대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문화적 가치
인류가 축적해 온 인문적 자산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조경의 토대이다. 조경은 우리의 역사성, 지역성의 바탕 위에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궁극적으로 창의적 예술 정신을 지향한다.
II. 조경의 영역
정책
조경 정책은 조경의 대상과 행위를 조정하고 유도하는 정부 및 공공 주도의 방침으로 조경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조경정책가는 조경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지자체, 전문가, 시민사회 등이 공유할 수 있는 조경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계획
조경 계획은 예측되는 미래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논리와 상상력을 포함한 지적 행동으로 법률과 정책에 의해 규제되고 유도된다. 조경계획가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대상지의 토지 이용이나 관리 기준을 장기적 관점에서 제시하거나, 설계의 선행 단계로서 전체적인 공간의 틀과 수행 체계를 제시한다.
설계
조경 설계는 예술과 디자인 전통에 기반하여 자연과 문화의 결합을 실천하는 전문 영역이다. 조경설계가는 전문적 지식과 실천적 숙련을 바탕으로 개념 단계부터 시공까지 대상지에 정교하게 부합하는 예술적 구성과 결과를 창출한다. 조경 설계는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감리 단계로 구분한다.
시공
조경 시공은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조경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조경시공자는 자연 재료와 인공 재료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비용과 안전, 기술적 문제를 고려하여 설계를 구현하기 위한 섬세한 작업을 수행한다. 시공은 조경 공간의 완성도와 질적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감리
조경 감리는 설계안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시공 품질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행위다. 조경감리자는 사업(시행)자와 시공자 사이의 중립적 위치에서 설계 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고, 품질 관리ㆍ공사 관리ㆍ안전 관리 등을 지도ㆍ감독한다. 감리는 설계 감리, 검측 감리, 시공 감리, 책임 감리로 구분되지만, 보다 충실한 디자인 의도 구현이 필요한 경우 설계자가 직접 참여하는 디자인 감리를 채택한다.
운영·관리
운영·관리는 이용자들의 체험과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조경 공간의 활용과 가치를 증진시키는 과정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조경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과 관리에 중점을 둔다. 조경운영·관리자는 대상지의 특성과 잠재력, 소유자 및 사용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개선하며, 해결안을 제시한다.
연구
조경 연구는 자연에서부터 인공 환경까지 모든 경관 유형과 이와 관련된 행위를 다룬다. 조경연구자는 조경의 고유한 영역뿐만 아니라 사람과 환경 간의 지속가능한 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
교육
조경 교육은 사회의 변화와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실천적 기술을 제공한다. 조경교육자는 조경 학위 과정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거나, 생애주기 프로그램이나 전문가 재교육 같은 비학위 과정을 통해 조경을 교육한다. 산업조경 산업은 조경 공간 구현을 위한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조경 산업 종사자는 관련법규에 따라 관련 조사·분석, 연구, 계획·설계, 시공, 감리, 운영,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거나 식물·비식물 소재의 생산과 판매, 유통업을 영위한다.
III. 조경의 대상
조경은 다음과 같은 공간 및 시설물을 대상으로 한다. 정원과 공원 이외에도 도시, 건축, 토목 등이 다루는 외부공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태 환경, 경관과 같은 광범위한 대상도 포함한다.
정원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 생활정원, 주제정원 옥상 정원, 실내 정원 등
공원과 녹지
자연공원, 국립공원, 도립공원, 광역시립공원, 시립공원, 군립공원, 지질공원
국가도시공원, 생활권공원(소공원,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주제공원(역사공원, 문화공원, 수변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 도시농업공원, 방재공원), 도시자연공원구역
완충녹지, 경관녹지, 연결녹지
도시숲, 생활숲, 경관숲, 학교숲
이전적지 공원(군부대, 학교, 쓰레기매립장, 철로, 하수처리장 등의 시설이 폐쇄 혹은 이전한 부지의 공원화)
광장과 가로
광장–대광장, 근린 광장, 경관 광장, 건축물 부설 광장
가로 공원, 가로 녹지, 도로, 보행자 전용도로, 자전거도로, 공공 공지, 주차장 등 건축 외부 공간
단독 주택, 공동 주택, 근린 및 업무 시설, 숙박 시설, 문화 및 종교 시설, 상업 시설, 교통 시설(철도, 공항, 터미널), 의료 시설, 교육 연구 시설, 산업 시설 등
공개공지
체육 공간
생활체육공간, 운동장, 육상장,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 배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기타구기장, 수영장, 스케이트장, 스키장, 롤러스케이트장, 승마장, 사격장, 궁도장, 골프장, 씨름장 등
관광과 여가 공간
동물원, 테마파크, 워터파크, 유원지, 온천, 서바이벌 게임장, 야외 음악당, 야외극장, 조각 공원, 야외 전시장, 전망대, 휴게소 등
식물원, 수목원,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야영장, 놀이터, 유아숲체험장, 청소년수련장, 노인휴양촌, 농어촌 관광 휴양 단지, 관광 농원 등
역사 공간과 문화재
전통 정원, 명승지, 유적지, 역사 경관 보존지, 근대 문화 유산 등
해안·하천·수공간
해안, 항구, 도서, 하천, 갯벌, 간척지, 유수지, 저류지, 저수지, 댐 등
마리나 항만, 수변 공간, 고수부지, 해수욕장, 수영장, 물놀이장, 호수, 연못, 습지 등
생태 환경
기후 환경, 생태계, 산림, 초지, 수계, 서식지, 생태통로, 비오톱, 자연 보호 구역, 생태
습지, 생태 통로, 빗물 정원, 저영향개발LID 시설 등
경관
국토 경관, 자연 경관, 도시 경관, 농어촌 경관, 마을 경관, 역사 경관, 산업 경관, 문화
경관 등
IV. 조경의 과제
1. 지구 전역의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계획·설계 해법을 마련하고,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실천적 자연기반해법을 제시한다.
2. 포스트–팬데믹 도시와 사회에 대처하는 건강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고, 지속가능한 환경 정의와 공간 복지를 실천한다.
3. 공원 네트워크와 그린 인프라 체계를 구축하여 도시 환경과 경관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한다.
4.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로 작동하는 공공 공간을 형성하고, 시민 참여와 커뮤니티 협력 문화를 실천한다.
5. 도시와 경관의 고유성과 지역성을 발굴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적 실험성을 존중한다.
6. 아름답고 안전하며 민주적인 장소를 만드는 조경의 전문성과 조경가의 직업 윤리를 재정립하여 질 높은 조경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3년 10월 28일 제정, 2022년 12월 9일 개정
한국조경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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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한국조경헌장의 제정과 개정
헌장?
헌장(憲章, charter)이라는 말은 사실 좀 낯설다. 대체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알고는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어린이헌장’이나 ‘국민교육헌장’처럼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회적, 정치적 선언이나 청원의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조경헌장’처럼 하나의 조직이나 전문 분야가 궁극적으로 표방하는 가치나 지향점 혹은 규범을 공적으로 표명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제정하고 공표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하다
한국조경헌장의 태동은 2013년 한국조경학회에 헌장 제정을 위한 별도의 TF 팀을 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조경 분야는 학계와 업계 모두에서 비약적으로 확장, 전문화되어가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분야의 특성상 업역 자체가 여러 분야와 관련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도 커지는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조경’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며, 조경이 어떤 대상을 다루고 있으며, 큰 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지 정리하고 담아낼 ‘헌장’이 필요했다. 조경 분야가 헌장을 제정하고 공유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 또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해당 지역에 따라 다양한 내용과 구성으로 조경헌장을 제정하고 있다.
다른 나라, 지역의 조경헌장은?
IFLA Europe(유럽)은 헌장을 통해 조경이라는 전문 영역을 규정하는 모든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조경에 대한 중요한 어휘들을 정의하고 있으며, 이어서 조직의 구성과 운영에 관련된 사항, 조경의 일반적인 원칙, 조경의 대상이 되는 공간 유형과 조경의 역할, 교육과 훈련, 조경 실무에 필요한 제반 사항까지 꼼꼼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매년 개최되는 세계조경가협회 이사회(IFLA World Council)에서 채택된 중요한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헌장에 업데이트하여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적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IFLA Europe이 한마디로 조경의 모든 것을 헌장에 충실히 담아낸 경우라면, 다른 지역은 해당 지역의 특별한 의제나 추구하는 원칙과 목표를 비교적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IFLA APR(아시아–태평양)의 경우, 이 지역에 소속된 국가들이 조경 행위에서 기반하고 추구해야 하는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헌장을 구성했다. 특히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지원, 모든 생명체에 대한 지속가능한 관리,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 장소 만들기, 포용성 등에 대한 중요한 원칙을 기술하고 있다.
IFLA Americas(아메리카)의 경우는 대륙 경관(특히 남미)의 특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원칙과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호주조경가협회Australi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s(AILA)는 간결한 구성의 헌장(The Australian Landscape Charter)을 가지고 있다. 조경 행위의 원칙과 역할별 전략, 중요한 키워드에 대한 정의로 이루어져 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우리나라 1세대 조경설계사무실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워커힐호텔, 서울아산병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7년에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사옥,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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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 조경 50, 기록과 비전] 한국조경50 비전플랜
한국조경학회는 반세기에 이른 한국 조경의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50년을 위한 비전을 모색하고자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발표했다. 2021년 이유직 위원장(부산대학교 교수), 김건우(한양대학교 교수), 박재민(청주대학교 교수), 서미경(해안건축 수석), 안명준(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 이상민(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진형(고려대학교 교수)이 비전플랜위원회를 결성하고, 세 개 분야(조경의 개념과 정체성, 조경의 영역과 전문성, 미래 환경의 변화와 조경의 대응)의 내용을 조사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완성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2022년 10월 28일 영남대학교에서 개최된 추계학술대회 특별행사에서 선언했다. _ 편집자 주
한국 조경은 지난 50년 국토 환경 보전과 공간 복지 향상을 실천하며,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자 행복한 삶의 기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경은 심화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의 질과 인간의 건강·웰빙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론과 실무의 균형, 기술 혁신과 사회적 책임, 개방적 자세와 문화적 기여, 그리고 인재 양성 등을 다하고자 다음과 같이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선언한다.
1. 조경은 현장 중심의 학문과 산업으로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위해 ‘분석·계획·설계·시공·운영·관리’의 전 분야를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2. 조경은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구현, 생태계 보전, 도시 불평등 해소, 재해 예방 및 국민 건강 증진, 지구적 협력에 힘쓰며 미래를 선도하는 지식 축적과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3. 조경은 경관 가치 향상과 지속가능하고 회복탄력적인 환경 창출을 목표로 협력하며,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사회적인 책임과 윤리를 다한다.
4. 조경은 개방적인 자세로 다양한 분야와 교류하고 사회와 소통함으로써 시대적 변화 요구에 대응하며 연구와 교육, 실무의 고도화를 통해 국가 정책 및 사회 공익에 기여한다.
5. 조경은 다양한 국토·도시·환경·사회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여 조경인의 위상을 높이고 조경의 지평을 넓히도록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