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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두 개의 공원, 독립공원과 탑골공원
대한제국기를 거치며 탑골공원과 독립공원, 두 개의 공원이 계획되었다. 자주적 시도였지만 미완에 그쳤고 공원을 매개로 근대화를 실천하려 했다는 점이 닮았다. 그런데 접근 방식이나 구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뭇 달라서 이 두 공원을 비교하듯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알 수 있다.
탑골공원보다 앞서 조성된 독립공원은 서재필, 윤치호 등 급진개화파 계열의 독립협회 회원들이 계획한 것으로, 1896년 7월에 발족하여 1898년 12월에 해산한 독립협회만큼이나 짧고 강렬하게 등장했던 공원이다. 공원은 돈의문 밖 무악재 너머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 자리에 독립문, 독립관과 함께 계획되었는데, 그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영은문과 모화관은 조선이 중국 사신에 예를 갖추기 위해 만든 숙박 시설과 기념물로 건국 초기에 일찌감치 건설된 사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년간 유지된 시설을 하루아침에 폐기 또는 용도 변경하겠다고 선포했으니 독립협회는 그들의 급진적(진보적) 성향만큼이나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1896년 7월 2일자 「독립신문」 영문판에 실린 사설은 독립공원의 풍경과 쓰임을 다음과 같이 상상하고 있다. “…천변(무악천)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바로 아래에 멋진 길이 있어 마차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실개천 옆 땅은 뒤편 언덕과 부드럽게 이어지고 여기저기에 심겨있는 관목과 낙엽수, 구불구불 나 있는 산책길과 도로는 우리에게 흡사 공원과 같은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이다. …… 이곳에는 반드시 한국군의 군악대를 위한 연주대(band-stand)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곳은 여가의 한 형태로 외국인이 선택한 몇 안 되는 목록에 추가될 수도 있겠다. 한국인에게는 정말 훌륭한 교화의 장이 될 것이다. 순수하게 미적인(aesthetic) 목적으로 마련한 땅을 보는 것,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밋밋한 공리주의의 삶에 참으로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하시모토 세리, 『한국 근대공원의 형성』,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6.
이나미, “개화파의 공공성의 논의: 공치(共治)와 공심(公心)을 중심으로”, 『공공사회연구』 3(1), 2013, pp.151~181.
우연주·배정한, “개항기 한국인의 공원관 형성”, 『한국조경학회지』 39(6), 2011, pp.76~85.
이동수, “「독립신문」과 공론장”, 『정신문화연구』 29(1), 2006, pp.3~28.
「독립신문」 영문판
*환경과조경407호(2022년 3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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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 ) 펑션
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 대표 인터뷰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있다. 자연 속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관문인 ‘버스 정류장’을 하나의 전이 공간으로 설정하고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부여한 ‘쉼터’로 만든다면 그 여정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MMCA(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의 ‘MMCA 과천프로젝트’는 과천관의 특화 및 야외 공간 활성화를 목표로 2020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는 미술관 방문 및 관람 경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공간 재생 프로젝트로 확장해 진행하는데, 공간 재생의 첫 번째 대상으로 과천관의 도입부이자 관람객을 맞이하는 얼굴이 되는 ‘버스 정류장’을 선정했다. 새롭게 변모한 버스 정류장를 통해 순환버스를 이용하는 관람객에게 생태적 실천에 대한 환대, 자연 속 미술관으로 향하는 즐거운 숲길의 여정, 미술관에서 자연과 예술을 즐기고 그 여운을 누리는 장소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에 최종 선정된 건축가 김사라(다이아거날 써츠 대표)는 과천관 순환버스 정류장 세 곳에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 ) 펑션function’을 제안했다.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김사라 대표와 이메일 인터뷰
를 진행했다.
버스 정류장은 버스를 타기 위해 잠깐 머무는 공간이다. 자칫 스쳐지나갈 수 있는 공간인데,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풀어냈는가.
보통 도시의 버스 배차 간격이 5~7분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순환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20분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님을 감안해 사용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머무는 모습을 상상했다. 3개 순환버스 정류장(대공원역, 미술관 정문과 후문)에는 미술관 관람객뿐 아니라 미술관 직원, 지역 주민, 등산객, 서울대공원을 비롯한 근처 여러 시설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간다. 이러한 점이 도시 한복판의 정류장과 달리 여러 층위의 공간을 보다 기능적이고 예술적으로 생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심의 숲 속에 위치한 미술관 내 시설물이기에 평범한 일상과 또 다른 일상을 연결하는 입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구조물 자체가 예술의 형태로 자립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했다.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모습과 기다림의 장소라는 특성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는가.
보통 짧은 시간 버스를 기다릴 때 사람들은 앉거나 서게 된다. 하지만 과천관 순환버스는 길면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넣고자 했다.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나와서 하늘을 보며 사색을 하고, 누군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어떤 학생은 구조물의 한 기둥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는 등 여러 자세가 보다 자연스럽게 구조물 안에 담길 수 있도록 했다. 각 동작의 형태와 크기를 고려해 직선, 사선, 반원, 타원 등의 조형들을 활용하여 버스 정류장을 설계했다. 조형들은 앉거나 기대어 쉴 수 있고 잠시 짐을 둘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된다.
*환경과조경407호(2022년 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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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조경은
‘제4회 젊은 조경가’ 조용준 온라인 토크쇼
지난 2월 15일, 그룹한빌딩 2층 환경과조경 세미나실에서 ‘제4회 젊은 조경가’ 조용준(CA조경 소장)의 토크쇼 ‘그해 조경은’이 개최됐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유튜브 생중계 형식으로 열린 토크쇼는 1부 강연, 2부 토크쇼 순으로 진행됐다.
강연은 토크쇼 제목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됐다. 조용준은 “최근 드라마 ‘그해 우리는’을 보며 청춘을 되돌아 보았다. 20여 년 전 전공으로 조경을 선택하고 공부를 했던 그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진양교 교수(홍익대학교, CA조경 대표)의 ‘채우기와 비우기’ 이론,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오랜 시간 경계, 표면, 깊이에 대해 탐구하고 재해석해 생성적 경계, 반응하는 표면, 보이지 않는 깊이라는 자신만의 설계 언어를 만들어왔다. 이 독특한 설계 언어가 투영된 작품을 CA조경의 프로젝트와 그의 ‘부캐’(부 캐릭터의 준말)인 ‘조제(@Design_joje)’가 펼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제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더스트 캡처Dust Capture’(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를 소개하며 조용준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을 시설에 접목하는 것에 그치면 안된다. 기술로 인해 새롭게 생겨날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설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07호(2022년 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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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조경, 왓츠 유어 네임?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합쳐진 형태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부모가 자식을 찾기 위해 입을 빌려 애타게 소리 내는 것이 이름이다.”1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이름을 만들어준다. 가족 모두가 신중을 기해 짓는다. 내 이름은 빼어날 ‘수秀’와 옥돌 ‘민珉’으로 ‘옥돌(투명하여 아름답게 빛나고 광택이 나는 돌) 같이 빼어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칭에 불과한 이 몇 글자에는 누군가의 마음이 녹아들기도 한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정조(이준호)가 성덕임(이세영)에게 정1품 빈으로 승품을 하기 위한 이름을 하사하는 장면이 있다. 정조가 마땅할 ‘의宜’라는 호를 적어주며 ‘의가의실(宜家宜室)과 의가지락(宜家之樂)’을 아느냐고 물었다. 덕임이 “부부가 되어 화목하게 지낸다는 의미와 부부 사이의 화목한 즐거움”이지 않으냐고 되묻자 정조는 “난 너와 가족이 되고 싶다고” 답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단 한 글자만으로 정조가 덕임을 얼마나 아끼는지 엿볼 수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에는 각기 뜻이 있으며 그 속에 담긴 본질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조경’, 이 이름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전공이 조경이라 하면 십중팔구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 이름이 뭐예요?” 또는 “정원하고 공원 만드는 일인 거죠?”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온다. 1970년대 초반 한국 제도권 조경(학)의 창설자들이 미국식 개념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를 수입해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미 1960년대부터 조경이라는 단어는 나무와 꽃을 심고 돌 놓는 일, 관상수 재배, 가드닝 정도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탓일까 조경이라는 단어가 조경이 하는 모든 일을 포괄하고 있는지 종종 의문이 든다.
이처럼 조경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가 불일치한 이유를 찾는 웨비나가 지난 2월 22일 진행됐다. 한국조경학회가 기획한 ‘조경, 왓츠 유어 네임?’에 배정한(서울대 교수), 박승진(디자인스튜디오 loci 대표), 최정민(순천대 교수), 김정윤(하버드대 GSD 교수, 오피스박김 대표), 김영민(서울시립대 교수), 김정은(월간 SPACE 편집장), 이유직(부산대 교수)이 모여 전문 직능(profession)과 학문 분과(discipline)의 조경 명칭에 대한 신중한 토론의 첫걸음을 뗐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그대로 직역하면 ‘경관을 만들다’다. 김정윤 교수의 의견처럼 어쩌면 “조경은 오히려 ‘건축’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보다 더 포괄적이고 이 시대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포괄적이라는 것은 그 분야의 색이 뚜렷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경 명칭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오간다는 건, 이미 조경으로 이루어져온 작업이 식물, 정원이란 단어의 테두리를 뛰어넘는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조경의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와 열등감이 있는건 아닌지 묻는 김영민 교수의 질문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했다. 김영민 교수는 옴스테드가 조경이 건축처럼 되기를 바라며 지은 영어 이름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이며, 이로써 조경에서 건축을 떼어낼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름을 부정하자니 근본을 부정해야 하고, 건축을 롤 모델로 삼아온 과거도 부정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알렉산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더 매그너스로 개명해도 조경의 열등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제 이 상황을 인정하고 열등감을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에서 하하가 키가 작은 만큼 이름은 길었으면 좋겠다면서 ‘하이브리드 샘이솟아 리오레이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회자되는 걸 보며 이름에 곁들어졌던 기쁨의 가치를 되새겨봤다. 조경의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 대상, 영역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경이 사람들에게 어떤 기쁨을줄 수 있는지 고민하면 어떨까.
뜬금없이 던진 이 이름에 대한 화두는 『환경과조경』 특집 예고이기도 하다. 편집부는 2019년 12월호 ‘이달의 질문’으로 던진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에 대한 갈무리를 언젠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시기를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곧 다가올 특집을 예습하듯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을 훑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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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이기주, 『한 때 소중했던 것들』, 출판사 달, 2018,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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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살아서 떠다니는 평범한 말이 더 값지다
가을보다는 봄의 문턱이 좀 더 쓸쓸하다. 계절이 희미해지는 이 시기는 이상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세며 내가 얼마나 게을렀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도 세웠는데, 여전히 정체된 나를 보게 한다. 새삼스러운 자기반성에 빠지는 이유는 해의 숫자가 바뀔 때보다 사계절의 처음을 맞이할 때 더 큰 변화를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일 테다.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나뭇가지와 눈이 마주치면 미세먼지보다 가치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 몸의 반 이상은 뻔뻔함으로 만들어졌는지, 결론은 무언가를 바꾸어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천이 아닌 위로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사진전(『환경과조경』 2022년 2월호, 124쪽 참고)에 또 가야지.
취재차 들린 전시장에 다시 가는 일은 드물다. 한 두 쪽에 불과한 기사를 쓴다 해도 자료를 찾고,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곱씹고, 사진 들여다보기를 반복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지난달 사진에 대해서는 통 아는 게 없는 나는 취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화 ‘캐롤’이 레이터의 사진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는데, 어딘가 흐릿해서 옛 기억을 소환하게 되는 감성적인 사진을 찍는구나 추측했을 뿐 내가 그의 사진에 마음을 빼앗겨 값비싼 도록까지 결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눈길을 끈 건 반 이상을 거대한 장막이 차지한 사진이었다. 아래 틈으로 눈길을 걷는 사람들이 찔끔 보였다. 구도를 이용해 저 풍경을 강조하려는 의도인가 싶었는데 웬걸 사진 제목이 캐노피였다. 레이터의 세계에는 사진 찍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없었다. 내 휴대폰 사진첩에 있을 법한 버스의 진동에 이리저리 흔들린 사진, 습기나 불빛에 피사체가 모호하게 번진 사진이 곳곳에 크게 걸려 있었다. 그게 꼭 내보이기는 쑥스럽지만 혼자서 아름답다고 중얼거릴만한 내 일상의 풍경 같았다. 전시장을 거니는 내내 레이터가 들려주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레이터가 ‘스니펫(snippets)’이라 부른 사진들을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작은 명함 사이즈로 찢어 곁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았다는 사진 묶음, 대충 찢어 모서리가 거칠고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이곳저곳이 해진 모양에서 그가 사진을 그저 자신이 아끼는 것들을 잡아두는 매개체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어느 조경사무소 벽에 너덜너덜해지도록 붙어 있는 스케치 드로잉이나 엄마가 꾸린 못난 화분들의 나열을 떠올리게 했다.
전시를 본 후에야 ‘캐롤’ 포스터 상단에 적힌 문장을 이해하게 됐다. “인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누구의 일상에나 있을 법한 평범함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모든 이들이 SNS에 자신의 삶을 전시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사진을 선별해 올리는 시대에 평범한 내 삶에서 예쁜 구석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하는 사진과 레이터의 말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의 사진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내 삶에도 영화 같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콘크리트 바닥과 그 위로 번쩍이는 차량 전조등의 불빛, 축축한 공기에 섞인 매연 냄새, 늦은 밤 라디오 소리와 그 너머로 들려오는 거리 연인들의 웃음소리. 그런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찰나가 감상에 젖어 생긴 착각이 아니라고 믿게 한다.
고백하자면 사실 세상에는 좋은 문장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다. 뉴스레터 ‘문장줍기’는 매주 다양한 주제별로 큐레이션한 서너 개의 문장을 소개하고, 함안군의 칠원도서관은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책 속 문장을 기록하는 ‘책 읽고 문장수집’이라는 게시판을 운영한다. 지면을 채우기 힘들 때면 종종 나처럼 문장을 포착하러 다니는 이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때 발견한 『나를 움직인 문장들』(오하림, 자그마치북스, 2020)의 한 구절을 꼭 써먹겠다고 담아두었었다. “나에겐 명대사보다, 살아서 떠다니는평범한 말이 더 값지다. 우리는 가끔 평범하거나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잊고 살기도 하니까. 평범한 문장들은 그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잊고 산다는 이야기는 “차별화된 조경을 경계하고 싶다. 놀러 가는 공간이라면 화려할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집에 쉬러 간다”(32쪽)는 이호영 소장과의 말과도 맥을 같이할 것이다. 혹 나같이 이 계절을 타는 사람이 있다면 자책하기보다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보면 어떨까. 아직 봄이 찾아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끔은 늘 당신을 찾아가는 이 책이 평범하지만 작은 기쁨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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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초록에서
식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수직 정원 코디네이터
온실 시공 회사에서 초록에서까지
2007년 설립된 ‘초록에서’는 수직 정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식물 병원이다.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증 연구를 통해 도시에서 사람과 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전태평 대표는 본래 10여 년 정도 온실 시공 회사를 운영했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시공 대금 대신 식물 온실을 받게 되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식물 도소매 사업을 시작해 초록에서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사업 초기에는 생계를 잇는 것조차 어려웠다. 돌파구를 찾던 그는 뜻밖에도 분갈이를 하러 온 손님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스티로폼, 나무껍질 등 온통 쓰레기로 가득한 화분이 도시에서 식물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만든 인공 생육 환경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그 순간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식물을 판매하는 중개인이 아닌, 이러한 인공 생육 환경에서도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식물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물 병원 개념을 도입하기로 마음먹은 후, 사람들의 식물 소비 패턴을 살피기 시작했다. 늘 현장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쌓였고, 이는 식물과 생육 환경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화분 안에 적절하게 배합한 토양을 채워주는 것에서 출발했다. 죽어가는 식물이 살아나자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식물을 함께 키우고 싶어 했고, 자동으로 관수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이에 주목해 저면 관수 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했다.
관수 시스템을 공부하며 수직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당시는 관리 문제로 수직 정원이 침체기에 접어든 지 10여 년 쯤 된 때였다. 서울시청에 수직 정원이 조성되면서 일었던 관심이 사라진 후였다. 참고할 수 있는 최신 자료가 부족해 스스로 여러 재료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듭된 실패와 도전 끝에 탄생한 제품이 바로 벌집 구조 종이 월(wall)을 이용한 ‘바이오월 허니(Biowall Honey)’다.
2018년 ‘수직 정원 바이오월’ 특허를 취득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같은 해 농촌진흥청과의 협업으로 바이오월 허니의 공기 정화 능력을 향상시키고, 농진청 그린스쿨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두 개 학교에 수직 정원을 설치했다. 2019년에는 ‘서민갑부’(채널A)라는 TV 프로그램에 미세먼지를 줄이며 수익을 내는 사업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산림청 스마트가든볼, 농진청·교육청 그린스쿨 보급 사업, 전북교육청 그린스쿨그린오피스, 산림청 생활밀착형숲 강릉아트센터 수직 정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직 정원을 조성할 때는 공간의 채광, 통풍, 습도에 맞는 식물을 선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초록에서는 30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식물 큐레이팅 서비스를 통해 공간에 최적화된 정원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식물 공장에서 직접 식물을 기를 뿐 아니라, 다른 농장에서 구입한 식물이라도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적응 기간을 거친 후 사용한다. 벽면 녹화용 화분 장치, 식물을 활용한 공기 정화 장치 등 여러 제품을 개발하며, 수직 정원과 관련한 5개의 기술 특허를 취득하고 ISO 14000, ISO 9001 인증을 받았다.
바이오월 허니
바이오월 허니는 토양 재배, 수경 재배, 공기 순환 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시스템이다. 벌집 구조의 친환경 종이 월, 식생 보드, 공기 순화용 삼각대, 수중 모터는 식물 뿌리 생육을 개선하고 공기 정화 능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벌집 구조 종이 월은 뿌리 활성화와 안정된 성장을 도와주는 바이오월 허니만의 특장점이다. 뿌리 서클링circling(식물 뿌리가 화분 바닥면 주위를 돌면서 자라는 현상)을 막아 토양 내로 산소를 충분히 끌어들이고 식물에 적절한 수분을 공급한다. 공기 순환용 삼각대는 오염된 공기를 흡입하는 역할을 한다. 특수 부직포에 싸인 식물은 토경과 수경의 장점만을 살리는 중간 매개체로 종이 월과 함께 뿌리의 서클링을 방지한다. 단순하지만 가벼움이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의 백색 스테인리스 덮개는 아름다울뿐 아니라 공간에 안정감을 만들어준다.
바이오월 허니의 품질은 사후 평가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조달청 계약이행실적평가는 제품을 구매한 공공 기관이 계약 단계에서부터 납품, 현장 사용 과정을 거쳐 제품과 만족도를 직접 평가하는 제도인데, 지난해 말 이 평가에서 바이오월 허니가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높은 점수를 받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이 사용자 중심의 편리한 식물 관리 시스템이었다. 바이오월 허니의 식물 전용 스펙트럼 LED 조명은 빛이 부족한 실내 환경에서도 식물이 문제없이 자라도록 돕는다. 자동 급수 및 관수 시스템, 팬을 이용한 공기 순환도 식물 유지·관리에 큰 몫을 한다. 핵심 부품이 종이로 제작되어 가볍기 때문에 재배치가 쉽기까지 하다.
전태평 대표는 “좋은 수직 정원은 구조물에 식물을 장착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식물의 시선으로 그들이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 만들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술력만을 이용해 수직 정원을 만들려 한다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과 식물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같이 살아갈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수직 정원 시장이 커지려면 기술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수직 정원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게 된다면 농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몇몇 나라가 수직 정원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 그 선두에 대한민국이 설 수 있다고 자신한다”며 수직 정원에 관심 있는 회사와 전문가의 협력 체계의 구축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이형주
TEL. 041-354-1148 WEB. www.chorok-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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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공원 설치 세트 ‘더 페블’
조약돌을 닮은 벤치와 화분으로 만드는 작은 쉼터
내가 원하는 곳에 꿈꾸는 형태로 공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스튜디오미콘의 ‘더 페블(The Pebble)’을 이용하면 누구나 나무 그늘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공원을 만들 수 있다. 더 페블은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로 만든 대형 화분과 벤치 세트다. 기존에 출시한 조약돌 벤치에 그와 잘 어울리는 대형 화분을 추가해 작은 쉼터를 만들 수 있는 세트를 구성한 것이다. 대형 화분을 중심에 두고 주변으로 작은 벤치를 배치하면 포켓 공원 못지않은 공간이 완성된다.
더 페블은 조약돌을 의미하는 ‘페블’이라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 조약돌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모난 곳 없이 동글동글한 형태와 자연스러운 색채는 공원이나 숲 등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고 도심지의 경직된 분위기를 완화하는 효과를 낸다. 한 사람이 가볍게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부터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벤치까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며, 모양이 각기 다른 제품을 모아 배치하면 이색적인 경관을 만들 수 있다.
초고성능 콘크리트로 제작된 더 페블의 또 다른 장점은 내구성이다. 외부 충격과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잘 견뎌 특별한 유지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단순한 제품을 넘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역의 상징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스튜디오미콘은 초고성능 콘크리트를 소재로 한 다양한 조경 제품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파사드, 공공 시설물, 인테리어 가구 등을 선보이며 콘크리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정 공간에 어울리는 맞춤 제작 제품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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