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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 적응성을 향하여 Cities of Visionaries, Cities of Reality: Multifaceted City - Toward an Adaptability
    연재를 마무리하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한 본 연재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1년은 도시설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앞선 설렘과는 다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연 좋은 도시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적 특수성의 차이도 큰데, 좋은 도시의 공통분모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진작 처리했어야 할 과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다가 최종 연재에 이르러서야 황망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으름을 피우고야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초조해 하지 말고 도시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 중 하나는 도시는 항상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환경 변화라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한된 도시 면적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거시적인 지역 환경과 녹지 분포, 도시 블록과 가로 패턴, 건축물의 유형과 필지의 종류, 도로와 오픈스페이스, 옥상정원과 공용 주차장 등―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하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공간에 차곡차곡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완전한 변화의 파편과 흔적으로 공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미시적인 도시 환경과 거시적인 도시 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그림1).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특성을 공유하는 연속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도시 안에 형성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는 이를 “영역territor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쳐 보스턴 도심부 남측에 금융 관련 초고층 업무 시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형성된 ‘파이낸셜 지구’나, 1950년대 독일의 기술 원조를 받아서 각종 전자제품과 이후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국영 산업단지이자 최근 중국 최대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베이징의 ‘다산쯔 798지구’가 이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그림2). 공통의 성격을 갖는 영역뿐만 아니라 차이와 특이성이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을 통해서도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단일 도심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도시 영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에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확산되고 단핵 중심의 도시가 다핵 도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그 예다. 여기에 다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도시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면서 개발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필지 합병을 통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도시 쇠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정 건축 유형에 대한 자발적 고급화와 타율적 잉여가 반복되면서 넓게 확산된 도시 조직은 미시적인 분화를 겪는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와 차이성의 발현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각종 영역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역성을 짧은 시간에 붕괴시킬 때도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2015년12월 / 332
  • [그들이 설계하는] 경계자는 조바심을 관리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경계자로 지칭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지 자신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자’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가 하면, 함민복의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긍정적 뉘앙스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말할 때는 부정적·긍정적 뉘앙스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을 거야, 내 길을 갈 거야”같은 치기, 혹은 “나는 당신들과 달라” 같은 자기 허영.그럼에도 나는 이 마지막 글에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칭하려 한다. 현재의 나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지향점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첫 번째 글의 ‘어.설.자.’는 고백이었고, 두 번째 글의 ‘경관편집자’는 경관을 다루는 나의 관점과 방식에 대한 소개였고, 이번 마지막 글의 ‘경계자’는 나의 바람이다. 경계에 서 있는 점들이 시스템이 만든 영역을 가로질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지평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책상 vs 현장 20~30대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물론 정확한 시간에 퇴근한 적은 없지만) 직장 생활은 고작 3년이었다. 석사 졸업하고 2년, 영국에서의 박사 후 연구원(post-doc) 후 1년. 나머지는 거의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20대는 학부와 석사 과정, 30대는 박사 과정과 영국에 가기 위한 준비, 그리고 영국에서의 1년간의 연구 과정.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대 막바지에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고작 3년이 설계라는 작업을 집중해서 고민하고 배우던 실무기간이었다. 20대부터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웠던 동년배들에 비해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대신 동기, 선·후배들에게 틈틈이 배웠고, 특히 한 후배는 몸으로 익힌 실무를 ‘속성’으로 내게 전해 주었다. 이렇게 내 이력을 나열한 이유는 책상과 현장에서 서성이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2002년 그 ‘유명한’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연대의 구성원들과 주민 참여, 참여 디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더불어 관련된 여러 이론을 공부했고 외국 사례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박사 학위 논문이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조바심이 났다. 책을 보고 있으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스러웠고, 현장에 있으면 책 속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 이후의 몇 년 동안은 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졌던 질문에 답하고 되새김하는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알던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알아가기, 어떤 책에서 보거나논문에 인용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이래야한다고 주장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실천해보기. 되새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박사 논문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의 기간도 길었다. 그런데 주어진 현장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 실천의 방향과 내용이 논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몇 년 더 현장에 파묻혀 있다 보면…. 아니 지금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는데, 조바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어떤 언어와 논리로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할 수 있을까’로. 전문가 vs 활동가 내 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페이스북 친구이지 않을까 싶은데, 1/4이 ‘조경’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사람들이고 3/4이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그들이 최근에 올리는 글은 주로 도시재생, 공유공간,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준 네트워크 속의 전문가들이다. 조경이라는 키워드 속에 있는 사람들 중 지속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조경작업소 울’의 구성원 정도다. 시민단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치’가 활동의 중심이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사회나 단체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적자가 나더라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판단을 떠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활동가들의 일하는 방식도 행정이나 기업, 학교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올해 도시연대의 일원으로 한 대학교의 연구실과 도시연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 초기, 학교 연구실과 시민단체 간의 차이로 인해 통역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구자들의 언어와 일의 방식을 활동가들에게 전달하고 활동가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언어를 연구자들에게 전달했다.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 여겨진 탓인지, 조경작업소 울의 클라이언트는 주로 시민단체다. 올해만 해도 세이브더칠드런,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 생명의숲이 주요클라이언트였다.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일하다보니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 일반적 전문가들이 하는 역할의 경계를 벗어날 때가 있다. 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올해 몇 번인가 “너는 전문가니? 활동가니”라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통역자의 역할을 할 때 그랬고,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어린이공원 작업에 대한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 김연금 / 2015년12월 / 332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인터뷰 연재를 마무리하며 Beyond the Limits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into the Heart of Landscape Architecture: Epilogue of Interview Series
    2013년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인터뷰 지면은 2014년부터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란 제목으로 지난달까지 총 35명의 조경 관련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며 3년을 달려왔다. 뉴욕의 대표적조경가인 시그니 닐슨과의 인터뷰로 시작해 지난 호에 소개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무나 안드라오스와의 인터뷰까지, 다양한 인물과 대화를 이어온 소감을 여기에 정리한다. 『환경과조경』의 해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 2013년 1월은 개인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조경 설계라는 직업적 자긍심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느끼던 무렵이었다.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쩡”하는 소리를 울리는 작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온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배움에 목이 말랐다. 바쁜 설계사무소 일을 소화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빡빡한 생활에서 주어진 시간을 쪼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곤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충족보다는 대개 한숨이 앞섰다. 어디선가 이미 봤던, 독창성을 찾기 어려운 설계안들이 미디어와 공모전을 도배했고 패션은 단추 구멍의 위치만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어디에 갖다 놔도 상관없는 ‘맥락 결여’의 장식적 작품들이 마치 문화의 최전선에 나선 듯 우쭐댔고 허공에 메아리치듯 공허한 미사여구의 독백이 이론이라는 투구를 쓰고 그렇지 않아도 지친 안구에 피로감만을 더했다. 진정한 새로움을 향한 여행길에서 보이는 풍경이란 봐도 안 봐도 그만인 딱그 정도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월간·주간·일간지들을 멀리하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동시대 설계자들의 작업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모두의 두뇌에 평준화를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조경이라는 동네는 기웃거릴만한 꺼리가 도무지 없는,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단체 관광 상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달래려면 대신 곰팡내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서가를 뒤져야 했다. 1960~1970년대 미국의 사회적 혼란기, 20세기 초반의 시티 뷰티풀, 그리고 19세기의 옴스테드와 17세기의 르 노트르로 빠져 들어갔다. 한 세기 전 조경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 그 부근에 자리 잡은 귀퉁이 골방에 머물며 나는 스스로 외부와 담을 쌓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박명권(현 『환경과조경』 발행인)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가 이 코너의 공동 작업을 제안했을 때 무언가 자그마한 창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현 시대 조경에 대한 나의 우울증이 진정한 고수들에 대한 무식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미디어 정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이해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는 데 신이 났고 아랫배 한 구석에서 의욕이 솟았다. 그해 겨울 휴가를 떠난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윙윙대는모기에 뜯겨가며 첫 번째 원고를 썼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간단히 두 가지였다. 첫째, 우선 금붕어 같이 눈은 커지고 머리는 작아진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다. 작금의 우리 일에 지성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 아직 지적인 디자인이라는 전통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옴스테드 시대와 같이 환하게 드러내 복원하고 싶었다. 기본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고상한 언어의 도움 없이도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디자인,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디자인, 쉽고도 좋은 디자인을 현학의 덫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와 5.18민주광장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이하 ACC)의 5.18민주광장 일대에서 ‘정원으로 부활하는 도시, 가드닝으로 만나는 시민’을 주제로 한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Gwangju Garden Omnibus Fiesta가 개최되었다.1 이 이벤트는 당초 광주광역시 주최의 공모 사업 ‘시민이 함께 하는 게릴라 정원 사업’의 공동 주관자로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조경설계연구실이 선정된 후 당초의 범위와 목적2을 자체적으로 수정·기획해 이루어진 것이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나 서울정원박람회처럼 정원을 테마로 한 도시 규모의 행사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ACC의 개관을 시민들과 자축(?)하며 도심에서 정원을 매개로 가을 한때를 즐기는 로컬 이벤트를 벌이는 정도가 이번행사의 취지였다. 증폭되고 있는 정원에 대한 관심을 조경 분야가 어떻게 수용하고 키워갈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의 논의와 심층적 진단이 이미 있어 왔기에 이 글에서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만들고 돌보는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정원만이 아니라 즐기고 나누는 문화로서 정원 현상에도 주목한다면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의 대상으로도 정원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원 붐에 휩쓸리거나 다른 도시의 정원 이벤트를 따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정원은 조경이 사회와 만나는 부드러운 방식의 통로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나간 작은 행사이지만 그 프로덕션의 성과를 보고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는 닷새 동안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시민참가정원(한평×5일 정원)이 전 기간 전시되면서 이와 연계되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같은 장소에서 또는 주변 도시 공간을 넘나들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한평×5일 정원 ‘한평×5일 정원’은 시민 참가로 조성된 한평 정원을 5일 동안 전시하는 프로그램이다. 8월 10일부터 9월 10일까지 한 달간 생활 정원과 게릴라 정원 부문의 참가자를 공모하여 다시 한 달 간 준비 기간을 거친 후 개막 전 2일에 걸쳐 행사 광장에 모여 개별 정원을 조성했다. 이 기간 동안 2회에 걸쳐 디자인 워크숍을 개최하여 팀별로 어떤 주제를 정했는지, 정원을 어떻게 조성할지 서로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정원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중에는 나름대로의 목표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전공 학생들도 참여하는 터라 예상 못한 문제에 대한 조언이 필요한 경우 외에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밀어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장 광장 위에 설치해야 하는 불리한 여건이나 제작 비용의 한계에 비하면 시민들이 만든 정원의 결과물은 감동적이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문화도시 광주의 미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
    문화도시, 끝나지 않은 논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은 물리적 공간으로는 광주에 머물지만 과업의 범위는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아시아와 전 세계를 포괄하는 거대 사업이다. 시간적으로는 일차적으로 2004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질 장기 프로젝트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광주 문화수도’, ‘충청도 행정수도’란 선거 공약을 내놓았다. 이때 건국 이래 국가가 주도하는 가장 큰 문화 프로젝트로 광주사회에 던져진 소위 ‘문화도시’라는 거대 담론은 다양한 형태로 논란을 야기했다. 그동안 중앙이냐 지방이냐, 순수(문예)냐 현실(산업)이냐, 운동적 선명성이냐 관제 기관이냐, 포섭/편승이냐 배제냐, 부처 현안 사업이냐 국가 균형 발전 사업이냐, 외부적으로 주어진 것이냐 자생적인 것이냐, 지상이냐 지하냐, 랜드마크가 되는가, 문화 향유 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래도 기대해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등 정말 말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은 국정의 총책임자로서 광주의 아픔과 도시가 지닌 문제점들을 총괄한 조성 사업의 종합계획을 대국민보고회를 통해서 확정함으로써 이 논란은 일단은 종결된 듯했다.1 그러나 이후에도 도시적 랜드마크에 대한 기대, 공연장의 필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re(이하 ACC)의 운영 체계, ACC 설계 당선작, 주차장, 정권 교체에 따른 관심의 향배, 구 도청 건물의 존치, 주차장문제, 콘텐츠의 미비, 정부 예산의 삭감과 집행 지연, 특별법과 법인화, 계획의 축소와 지연 등 끊임없는 이슈를 낳고 있다. 특히 ‘5월 현장 보존’이라는 명제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의 수행 방식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선택과 집중인가, 지역 사업인가 문화도시는 참여정부의 정책 목표였던 국가 균형 발전차원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질적으로 비약한다. 수도권 집중의 비정상적인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기고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산업을 선택해 발전 방향을 집중 모색한다는 국가적 차원의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21세기형 지식기반 산업인 문화를 매개로 미래 활로를 찾는다는 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주 문화수도는 호남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즉 전국 유일의 문화수도, 일종의 ‘only one' 정책이었다. 그러나 벌써 규모 축소와 독립법인화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균형 발전과 호남의 웅도 광주를 살리고자한 원래의 정책적 배려와 의도와는 달리 ‘잘하는지 두고 보자’, ‘돈 먹는 하마’, ‘예고된 재앙’이라는 비아냥이 고개를 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산에 ‘아시아문화원’을 개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광주 문화수도가 국가 사업이 아닌 지역의 사업으로 전락해 유일한 사업이 아닌 국가의 여러 문화 사업 중의 하나one of them로 의미가 축소되어 가고 있다. 천득염은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재위원과 한국건축역사학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의 명원 소쇄원』, 『백제계석탑 연구』, 『한국의 건축문화재』, 『광주건축사』, 『삶의 공간과 흔적우리의 건축문화』, 『인도 불탑의 의미와 형식』, 『전남의 석탑』 등이 있다.그간 대통령직속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 등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관련한 일을 많이 했으며, 10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 빛의 숲,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
    10년 만에 완성된 ‘빛의 숲’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11월 25일 공식 개관했다. 2005년 12월, 8개월간의 국제 공모를 거쳐 우규승의 설계안 ‘빛의 숲’이 선정된 이후 10년 만이다. 낮추고 비워 도시의 경관을 끌어안은 획기적인 설계 개념 때문에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지만, 지난10년간 광주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식은 랜드마크 논란이나 도청 별관 존치 여부, 읍성 유허 보존 등 그 개념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ACC를 둘러싼 내홍을 접할 때면 국내에서 진행되는 많은 설계공모 당선작의 운명이 그러하듯 ‘빛의 숲’이 온전히 구현될 수있을지 우려스럽기도 했다. ACC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본부로 사용한 옛 전남도청과 경찰청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2005년 국제 공모에서 가장 중요했던 요청은 이러한 역사적 현장의 중요성을 공간적으로 드러내고, 바로 그 희생의 자리에서 광주가 과거의 상처를 씻고 아시아의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당선작인 우규승의 ‘빛의 숲Forest of Light’은 광주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채우는 대신 비우는 전략을 취한다. 공간들(건물)은 지하로 들어가고 그 결과 비워진 땅과 건물의 지붕은 시민들의 공원이 되는 것이다. 우규승은 설계설명서에서 “기존의 보행자 가로체계가 연장되어 역사적인 현장과 만나면서 광주 도심에 대규모 시민공원이 조성된다”고 기술했다. ‘빛의 숲’이란 개념은빛고을 광주光州를 상징하면서 유리 파사드와 천창을 통해 빛을 품고 발산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우규승1은 우리에게는 88서울올림픽선수촌 아파트, 환기미술관의 설계자로 알려진 재미 건축가다. 그는 설계설명서 첫머리부터 시민공원을 ACC의 핵심으로 제시해 건축과 조경의 경계가 없음을 강조한 셈인데, ACC의 조경은 우규승이 평소 함께 작업해왔으며 공모 당시부터 깊게 관여했던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MVVA)가 기본설계를 진행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규승은 88서울올림픽선수촌 아파트에서 인연을 맺었던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에게 조경 설계의 로컬을 제의했다. 서안은 기본설계 단계에서 건축의 로컬인 삼우건축과 희림건축 컨소시엄에 합류했고, MVVA와 서안의 설계팀은 광주와 보스턴을 오가며 설계를 현실화했다. 공간 배치 광주역에서 차로 20여 분쯤 달리면 작은 건물들 사이에 낮지만 눈으로 더듬어 입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ACC가 모습을 드러낸다.2 옛 관청 일대 필지를 합쳐 조성된 이곳에는 금남로와 만나는 5.18민주광장과 보존 건물(민주평화교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표면 아래에는 중앙의 아시아문화광장을 중심으로 주요시설(어린이문화원, 아시아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아시아예술극장)이 부지의 생김새대로 자리를 잡았다.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은 1980년 5월 시민군이 최후의 항전을 준비한 곳이다. 광장 한가운데 남아있는 분수대는 당시 각종 집회의 연단이 되기도 했고 그 주변에서 많은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교통광장이었던 이곳은 5.18민주광장으로 탈바꿈하여 보행자들에게 열린 공간이자 ACC의 주 관문이 되었다. 우규승은 새로운 공간들은 땅 아래에 배치하고 역사의 증인들은 땅 위의 주인공으로 남겼다. 밝은 회색 석재가 깔린 이 광장에는 어찌 보면 촌스러운 파란색 페인트에 회양목으로 둘러싸인 분수대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반 발켄버그 역시 5월 당시 총격을 당했던 다섯 그루의 나무를 목격자 나무witness tree라고 부르며 광장과 이어지는 보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조경 요소로 삼았다. 이 살아있는 역사의 상징 외의 부차적인 요소들은 모두 제거하고 나무들이 잘 생장할 수 있도록 토양 조건을 개선했다.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상무관 주변에는 상록수를 많이 심어 차분한 기념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옛 전남도청은 광주의 역사적 기억을 민주와 인권, 평화의 가치로 승화시킨 콘텐츠를 담게 될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되었다. 도청 옆 별관 건물은 5.18민주광장과 아시아문화광장을 시각적으로 이어주고 ACC 안팎에서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설계공모 이후 5월 관련 단체 측의 요청으로 남게 되었다. 기념과 추념이 늘 엄숙한 것은 아닌 법. 평범한 일상에서 5.18민주광장은 크고 작은 행사가 펼쳐질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새로 설치된 바닥 분수는 더운 여름날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그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 공간을 미래를 향한 희망의 공간으로 만든다. 조경기본설계MVVA(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 + 조경설계 서안 조경실시설계조경설계 서안 + MVVA, 씨엔조경 건축설계KyuSungWoo Architects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발주문화체육관광부 위치광주광역시 동구 관산동 등 구 전남도청 일원 대지면적96,036m2 조경면적15,091.79m2 건축면적20,938.67m2 연면적139,178.87m2 건폐율21.80% 용적율11.11% 규모지하4층, 지상4층 최고높이20.3m
    • 김정은 / KyuSungWoo Architects, 삼우, 희림, MVVA, 조경설계 서안 / 2015년12월 / 332
  •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 Gwangju, Toward a Hub City of Asian Culture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지난 9월 4일 일반인에게 일부 공개된 이후, 11월 25일 공식 개관했다. 2002년 고노무현 전 대통령의 광주 문화수도 육성 공약에서 비롯된 ACC가 2005년 12월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안이 선정된 후,1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었던 만큼 소외의 상징이기도 했던 광주에 국립중앙박물관의규모와 맞먹는 번듯한 문화 공간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문화도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 지방 도시의 규모나 수요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공간이라는 우려, 아시아문화라는 테마의 모호함 때문에 이 큰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채우고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문을 열기도 전부터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숲,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문화도시 광주의 미래 _ 천득염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와 5.18민주광장 _ 조동범
    • 김정은·조한결 / 2015년12월 / 332
  • 특별상 이원영 제18회 올해의 조경인
    “조경이 왜 꽃이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서울시 조경과가 조경을 꽃이나 나무 심는 분야로 만들어 놨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다가가려면 이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한 것뿐이다. 조경 분야를 위해 한 일도 많지 않고 성과도 부족한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서울시청 이원영 과장은 소박한 수상 소감과는 달리 선정 과정에서 여러 사업에서의 뚜렷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특히 ‘서울, 꽃으로 피다’를 통해 시민 참여 사업을 도입했으며,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 서울정원박람회, 식재 유지관리비 지원 제도 등 새로운 사업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이다. 조경과 시민의 만남, ‘서울, 꽃으로 피다’ ‘서울, 꽃으로 피다’는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권주변 녹지를 직접 조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관 주도의 녹지 정책에서 탈피하고 궁극적으로 시민 주도의 도시 녹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처음엔 조경 업체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았다. 가뜩이나 지자체마다 조경 관련 예산이 줄어 발주 사업이 적어지고 있는데, 시민 참여를 통한 공모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니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꽃으로 피다’는 보조금을 확보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서울시 푸른도시국에서는 처음 도입된 주민 참여 사업이다. 주민 몇몇이 협의체를 이뤄 동네 자투리 공간에 ‘뭔가’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면, 이를 서울시가 심사해서 재료비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지난 2년간 서울 도심에 846만 그루의 나무와 2,120만 본의 꽃을 심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다른 지자체에서도 시민 녹화 운동의 우수 사례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의 가치는 무엇보다 개인화되고 각박해진 도시의 삶 속에서 서울 시민들이 이웃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원영과장은 지난 2013년부터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장을 맡아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간의 발주 사업의 관성을 깨고 ‘서울, 꽃으로 피다’와 같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사업들을 발굴 추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지난 2014년 한국조경사회와 함께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를 개최했으며, 올해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서울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생활 속 정원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식재 공사 완료 후2년간 유지관리비의 일부를 시공 업체에 지원해주는 제도를 서울시 최초로 도입한 점도 공적으로 인정받았다.
    • 박광윤 /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과장 / 2015년12월 / 332
  • 정책분야 백운해 제18회 올해의 조경인
    “뜻깊은 마무리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올해로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근무한 지 만 30년이 되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백운해 처장의 수상 소감이다. 지난 1월 도시경관처 처장으로 부임하면서 조경계의 크고 작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부심했던 그다. 또 올해는 한국조경학회 산학협력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조경 업계와 학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가운데 특히 ‘조경설계 현상공모 간소화’를 추진해 설계공모의 문턱을 낮추고, ‘업체 평가에 따른 조경자재·공법선정위원회 가감점 제도’를 도입해 시공사와 시설물 업체의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한점을 인정받아 정책분야의 ‘올해의 조경인’으로 선정되었다. “ 최근 대규모 개발은 줄어들고, 대신 재개발, 재생 사업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후배들은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 조경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새 길을 개척해주기를 바란다.” 업계에서 환영받는 제도 개선 백운해 처장이 몸담고 있는 도시경관처는 LH에서 조경을 총괄하는 부서다. 부서의 이름에 ‘경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음에도 ‘경관법’과 관련된 일에서 조경직은 기본적인 계획 단계에서만 협조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조경 분야 내에서도 경관과 관련된 일을 하면 ‘왜 조경 외의 일을 하느냐’고 의아해 한다니 더더욱 조경직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조경의 자리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도 백운해 처장은 2007년 ‘경관계획 수립 방향 설정 및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와 ‘개발대상지 도시경관 향상을 위한 경관계획 체계 수립 연구’ 등 경관 연구에 꾸준히 참여했다. 2010년에는 ‘낙동강 수변생태경관사업’ 정책 업무를 직접 수행해 치수 위주의 4대강 사업을 생태성을 고려한 녹색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경관법’ 개정에 따라 경관계획 수립이 의무화되자 ‘개발사업 경관계획 용역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해그 공적을 인정받았다. “경관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경설계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자는 취지의 개선안이다.” 평소 LH의 조경설계대가 요율이 다른 발주처에 비해 낮다는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설계비를 현실화하고자 한 노력이다. 올해 추진한 ‘조경설계 현상공모 간소화 방안’ 역시 설계사들이 반기는 일 중 하나다. 이미 건축과 같은 인접 분야에서는 설계공모의 제출물과 절차가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다. “조경은 멋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당선이 어렵다는 생각이 팽배해 조감도나 패널에 비용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설계공모 당선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과도한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계공모 간소화 방안은 제출물의 수량이나 크기 등을 간소화해 참여 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응모 자격이나 제한 조건을 완화해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이형주 /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경관처 처장 / 2015년12월 / 332
  • 산업분야 신경준 제18회 올해의 조경인
    “ 독일은 기능장이 있는 마을에 기旗를 하사해 치켜세워 준다. 그 정도로 유럽은 기능 인력을 대우해 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능 인력 시장으로 유입되려면 유럽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분야의 내부적인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하자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화 하는 것이다 조경 시공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하자 관리 문제다. 살아있는 자재를 다루다보니 세심한 관리가 요구되는 조경 시공에서는 하자 관리가 가장 큰 관건이다. 토양, 비배, 병충해 관리뿐만 아니라 가뭄, 홍수 등 자연 재해와도 맞서 수목을 지켜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기후변화와 저가 입찰로 인해 시공 하자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 그런데 관련 제도조차 관리의 책임 소재를 시공사에 전가하는 양상을 보여 업체들의 어깨가 무겁다. 신경준 대표는 이러한 제도적 불합리함을 바로잡기 위해 ‘조경공사의 하자 사례 연구 및 개선방안’, ‘조경공사 하자 이행기준 및 개선방안 연구’ 등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하자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하자 관리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해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SH공사 ‘조경매뉴얼’ 시공 부문 연구책임자로 나서 하자율을 줄일 수 있도록 시공 기준을 마련하는 데도 일조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조경식재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제정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수행했는데, 신 대표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가뭄과 병충해도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해로 규정하는 조항을 넣어 하자 판정에 대응할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하자보수보증금을 중간 정산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표준하도급계약서는 정부기관에서 관리하는 만큼 하자 문제에 대응하는 근거로 실효성이 있다. 이번 표준하도급계약서 제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경준대표는 20여 년 동안 장원조경을 경영해오면서 관련 기술 개발과 연구 활동을 통해 업계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직장 생활까지 시공 분야에서만 30여 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는 명실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조경 시공 장인이다. 특히 조경 하자 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다. 그리고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장을역임하면서 자연환경복원업 신설을 위해 분투하는 등 업역 확장을 위해서도 힘써 왔으며, 젊은 조경 기능인 육성을위해 꾸준히 신입 직원을 선발하고 시공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 왔다.
    • 이형주 / 장원조경 대표이사 / 2015년12월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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