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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올해의 광장
지난 9월, 그러니까 거리를 점령한 야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인 계절이었다. 그날도 회사 근처 단골 곱창집 간이 테이블에서 여름 내내 지겹게 쐰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광주에 함께 가자는 한 건축 잡지 편집장의 전화였다. 저녁 공기(?)에 취해있던 나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본래 취재 예정일보다 빨리 광주행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년 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국제공모가 치러졌을 때가 가물가물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요즘 나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빛의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 정도가 기억 저 아래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로 넣는 바람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을 원했던 광주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었던 듯 했다. 그만큼 광주가 나의(우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도 있다. 과연 당선안대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계획안이 좋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면이라도 파악하고 답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은 이미 감기고 있었다.
광주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으로 몇 블록을 차지한 ACC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건물 내부의 아시아문화정보원 지붕에서 ACC를 처음 보았다면, 아니면 충장로 쪽에서 5.18민주광장을 바라보면서 들어 갔다면 동선이나 첫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이문화원 쪽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이었다. 9월 개관인 줄 알았는데, 공식 개관은 11월이었고 일부 공사가 남았던 것이다. 사진작가까지 동행했는데 촬영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메인 출입구 앞 광장은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아시아문화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내려섰다. 들어가는 길에 광장 중앙의 1980년대 스타일의 파란색 분수대를 흘깃 보면서 아마 이곳은 대상지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이곳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모두 이 공간의 목격자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남겼다는 것 등.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1980년 광주는 가슴을 채우는 기억은 아니어서 무심결에 넘겼노라고 잠시 변명해보지만 무언가 부채감이 남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1980년 광장의 모습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여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13일 충격적인 파리 테러 이후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의 참상과 추모 물결, 그리고 그 가운데 빛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배경은 모두 ‘공화국 광장’, 그러니까 내가 지난 여름 답사했고 『환경과조경』 10월호에 소개되었던 그 광장 말이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한 청년이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라고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하며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 눈물의 현장도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이런 광장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을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 콧등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오후 스케이트 보더들이 활보하는 광장과 추모와 집회의 현장 모두 레퓌블리크 광장의 일면이리라. 5월의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떠올린 것은 그런 광장의 역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의 천득염 교수는 이제 광주 사람들은 ACC를 굳이 5월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유산만큼 미래도 중요할 테니. 5.18민주광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광장과 함께 일상과 축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동범 교수가 특집 원고에서 “2015년 가을은 이제 막 시민 광장의 역사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썼듯이 상처를 간직한 광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문화광장은 ACC의 모든 시설로 연결되는 중심의 빈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서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걷다보니 예술극장이었다. 마침 개관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공연을 준비 중인극장 앞에서는 그루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막 저물기 시작한 해는 흰색 노출콘크리트 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난 무장 해제되었다. 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리니, 그 풍경 또한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7가지 다른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프레임이 교차하면서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틀어서 앉혀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정원이 그리고 저 멀리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곳에서 5.18민주광장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건축가 피터 줌토르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좋은 건축적 체험은 ‘분위기atmosphere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 색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감각이 화학작용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토르는 이를 ‘실제의 마법Magic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12월이다. 한해를 돌아보고 그 공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다. 그래서 나도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올해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두둥!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다. 천득염 교수의 특집 원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CC 앞에는 난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시아문화광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채워지리라. 아시아문화광장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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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빌딩블로그
언제나처럼 역시 표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이미 오케이가 난 상태였다.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기에, 작업하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종 오케이를 눈앞에 둔 표지 시안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모든 점이 동일했지만, 오직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앞표지 상단에 깨알 같은 크기로 실려 있었던 “경고문: 이 책에는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담당 편집자였던 나는 ‘삘딩’이라는 비표준어를 과감히(?) 앞표지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빌딩(건물)’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빌딩build+ing’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띠지를 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띠지 문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 처음부터 띠지는 계획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고문‘의 앞표지 삽입을 전격 취소하는 대신, 친절한 ‘역자의 글’을 앞쪽에 배치하고,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 ‘빌딩build+ing’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도대체 ‘삘딩’과 ‘빌딩’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 번역자가 ‘역자 서문’을 통해 잘 소개해주고 있듯이, 『빌딩블로그』에서 ‘빌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빌딩’이다. “건축architecture에는 건물building 이상의 것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딩’은 건축보다 하위 개념인 즉물적인 구조체일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삘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건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인공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1이라고 답한다. 바로 ‘빌딩’의 두 번째 의미이자 진정한 의미인 ‘build+ing’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단위 평면을 가지고도 각각의 집들이 사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만 봐도 우리는 언제나 ‘빌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이란 삶의 방식이자 결과다. 또한 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것이 빌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의미하는 빌딩의 진정한 의미다. 이 ‘빌딩’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빌딩블로그』의 관심사는 단순한 건물(삘딩)에 그치지 않고 지구 깊숙한 지질 단층, 도시의 지상과 지하 세계, 바다, 하천과 각종 인공 수 체계, 폐허, 미생물, 소리, 대기 등 지구의 곳곳을 입체적 스케일로 해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빌딩 < 건축 < 빌딩’이라는 새로운 부등식이 성립한다. 이 부등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의 ‘빌딩’ 과정의 매체이자 결과물들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쳐나간다. 추천사를 써준 저스틴 맥거크가 지적했듯이 “생전 가본 적 없는 여러 방들을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은밀하게 때로는 기발하게.
편집자의 작업은 대개 보도 자료용 ‘출판사 서평’ 쓰기로 마무리된다.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이니, 그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출판사 서평쯤이야 뚝딱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쇄소에 최종 편집본을 송고할 때쯤이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원고를 거들떠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책의 구절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느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대목을 강조해야 할지 애매할 때다. 또 출판사 서평 작성이 책 편집못지않게 부담스러워서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할 때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2013년 봄에 『빌딩블로그』의 출판사 서평을 작성하며 끼적였던 글이다.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살린 부분도 있고, 날린 대목도 있다.
도서출판 한숲에서 곧 출간(2016년 1월 1일 출간 예정)될 김영민 교수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이 떠올랐다. 뭐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에 맞춰, 나름 색다른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서다. 『빌딩블로그』 출간 즈음에는 번역자들을 꼬셔 책에 실리지 않은 ‘역자 소회’라는 것도 쓰게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또 표지 날개에 수록된 역자 소개글에도 잔뜩 힘을 줬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고등학교 때도 사지 않았던 독서대를, 이 책을 번역하며 두 개나 샀다.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집에 두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프 마노와 그 독서대 위에서 만났다. 그러다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고원에서 기나긴 도피 생활에 지친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모래 바람을 이용해 폭풍 전쟁을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제프 마노를 너무 오랫동안 만난 탓이다.” 당시에는 책 내용과 묘하게 어울려 보여 신통했는데,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제 잡지 마감도 끝나가니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왜 스튜디오 101이 아니고, 스튜디오 201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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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
‘솜씨 창고’와 ‘징게맹갱외에밋들’ 국토부장관상 수상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란 주제로 개최된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이하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지난 11월 23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과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총 63점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그중 28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성균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인사말을 통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조경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 대한 의의를 밝혔다. 제1회 환경조경대전부터 10여 년 넘게 공모전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 늘푸른의 노연상 이사장은 “수상작들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조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펼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올해부터 환경조경대전을 공동 주최하게 된 본지의 박명권 발행인은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한 후인상 깊었던 수상 소감을 소개했는데, “15년 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재기발랄한 소감에 장내에 웃음꽃이 번지기도 했다.10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 과정과 총평을 소개한 최원만 심사위원장(신화컨설팅 대표)은 “장소성의 가치와 선택한 대상지의 장소적 기억을 조경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풀었는가에 심사의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힌 후, “디자인 위주로 대상지에 접근한 응모작들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며 디자인 부문이 별도로 기획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시상식에서 영예의 국토교통부장관상은 송아라·홍진아(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솜씨창고, 틈에서 피어나다’와 이수현·박래림·김의솔(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징게맹갱외에밋들’이 차지했고, 한국조경학회장상 2팀, 늘푸른재단상 4팀, 환경과조경상 6팀, 입선 14팀 등 총 28개 팀이 수상하였다(수상작은 이번호 12~45쪽에 수록).
시상식 직후 전시장의 테이프 커팅식과 함께 전시회가 개막되었고, 국토부장관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은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징게맹갱외에밋들’, ‘Park Greaves’,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수상작 전시회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 환경조경포럼’과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하자는 한국조경학회의 의견에 따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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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 제주 2015.11.3.~11.6.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협력하여 1970년 설립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 tee on Cultural Landscapes(이하 ISCCL)는 문화 경관의 유산 가치 정립과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연구 및 학술 활동을 총괄하는 단체로 매년 연례 회의를 진행한다. 또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는 문화 경관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의 정보 교환 및 교류의 장으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2년에 한 번씩 연례회의와 함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에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연례 회의에 이어 3일부터 6일까지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두행사는 각각 해녀박물관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문화 경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 경관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는 장으로서 활용되었다. 또한 연례 회의와 국제 심포지엄은 회의와 연구 발표를 통한 지식 교류와 함께 3번의 문화 경관 답사가 포함된다. 참석자들은 올레길, 별방진, 불턱, 돌하르방공원, 성읍민속마을,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비자림, 만장굴 등 제주도가 가진 독특한 경관을 직접 둘러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상과 연계된 경관
26개국에서 약 1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 일상과 연계된 경관Re-thinking Lifescape: Linking Landscape to Everyday Life’이라는 주제 아래 총 4개의 세부 주제(문화경관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론, 보존과 관리 전략 및 계획, 사례와 경험, 섬 경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매기 로Maggie Roe(영국 뉴캐슬대학교 건축계획조경학부 부교수)는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변화와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에 대해 설명하며 경관과 우리 삶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시했다. ‘경관의 계획, 관리, 디자인 및 보호 측면에서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경관 여행에서 지나치는 장소에 대한 의미의 이해에 경관의 묘사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인간과 자연 프로세스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어떻게 ‘무형 경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근거와 일상적 경관이 제공하는 문화적 의미 및 연상에 대한 지각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경관 의식’의 개념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어서 두 번째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제주대학교 부총장)은 심포지엄이 개최된 제주도의 특별한 일상 문화 경관에 대해 설명했으며, 이후 심포지엄은 네 가지 세부 주제별로 각각의 연구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을 아우르는 주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번 심포지엄이 주목한 경관은 우리의 평소 생활상을 담은 일상 경관이다. 주제에 맞춰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가 심포지엄에서 다수 발표되었다. 세계조경가협회 전 회장이 었던 마사 세실리아Martha Cecilia Fajardo는 유럽경관협약에 이어 일상 경관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기위해 도입된 두 번째 국제적 협력의 결과라 할 수 있는 LALILatin American Landscape Initiative를 소개하며 문화 경관의 보존에서 해당 지역의 일상 경관이 가지는 독자적인 성격에 기반한 보존과 활용이 모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LALI는 경관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다양성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LALI는 이에 참여하는 각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밀라노공대 건축건설환경시공학과의 리오넬라 스카조시LionellaScazzosi는 시골 경관Rural Landscape의 유산적 가치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어 다른 발표자들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그밖의 많은 나라의 다양한 문화 경관 사례에 대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중국 칭화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후 유안Xu Yuan이 발표한 ‘티베트의 일상 경관 형성에 있어 불교가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 등은 그간 우리가 알 수 없는 해외의 독특한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섬 경관과 제주
이번 심포지엄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세부 주제는 개최지의 특성을 고려한 섬 경관이었다. 섬 경관이라는 주제 아래 제주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섬이 가지고 있는 내륙과는 다른 독특한 일상 경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심포지엄 개최지인 제주도의 경관에 대한 다양한 논의 이외에도 한국의 다도해와 터키 쿤다섬Cunda Island, 크로아티아 흐바르섬Hvar Island, 오스트레일리아 로트네스트섬Rottnest Island 등의 문화 경관이 소개되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최혜경은 제주의 해녀 문화에 대해 해석하고 제주의 독특한 바다 경관인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이 ‘해녀 경관’이라 표현한 제주도의 독특한 해녀 문화는 불턱 등 다양한 형태로 제주도의 물리적 경관 형성에도 그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고령화가 심화되어 해녀 경관의 보존이 절실한 상태다. 섬 경관과 같은 작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 경관에 대한 사례 연구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본 심포지엄에서 여러 국가의 섬 경관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보다 많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섬 경관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격년제로 운영되는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은 2016년 터키의 이스탄불 연례 회의에서는 개최되지 않으며, 2017년 인도의 델리에서 연례 회의와 함께 ‘유산과 민주주의Heritage & Democracy’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순기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역사 보전을 공부하고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지정이 마을주민과 관광객에게 가져온 인식 변화와 마을 문화 경관 보존 방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세계유산과 문화 경관, 그리고 그 변화과정의 기록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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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으로 본 질곡의 현대사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을 의미하는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광복 이후 70년간 국가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한국인의 주택은 절박한 희망에서 출발해 개발에 대한 욕망을, 핵가족화의 단면을, 고도성장의 명암을 투영해왔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세찬 파고 속에서 세워지고 부서졌던 우리의 주택은 어떤 지형도를 그려왔을까? 또 그 지형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건축학회(회장 김광우)와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재영)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주택·도시의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광복 이후 70년간의 주택·도시 변천 과정을 그린 ‘타임캡슐70’, 1945년부터 지속되어 온 건축학자들의 주택 도시 연구 보고서 아카이브 ‘아키피디아 2015’, 국가 주도의 공공 개발 자료를 모은 ‘신도시 개발 변천사’, 주택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브랜드 아파트를 조명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건축가들의 우수 주택 작품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 주택선’,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주택 실험을 소개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 어린이 건축 교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건축 모형을 전시한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 등으로 구성된다. 과거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주택에서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까지 우리의삶을 지배하는 주택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미래의 주택문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는 11월 5일부터 15일까지는 서울 대치동 푸르지오 밸리(대우건설 주택문화관)에서,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옥에서 진행된다. 특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오늘, 주택을 말하다’, ‘건축 큐레이터 토크’, ‘건축가와의 만남’, ‘노후공동주택 맞춤형 리모델링’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및 프로그램이 함께 기획되었다.
한국의 주택과 도시의 흐름
주택 건설과 도시 개발은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현대사의 주요 이슈였다. 그동안 한국의 주택이 흙벽 돌 집에서 판잣집, 외인주택, 농촌표준주택, 새마을운동 개량 주택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동안 우리의 도시에는 개인과 사회의 모든 욕망과 고뇌가 펼쳐졌다.
‘타임캡슐70’, ‘아키피디아 2015’, ‘신도시 개발 변천사’등의 전시실에서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주택과 도시가 밟아온 도정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와 과제를 반추한다.
특히 ‘타임캡슐70’은 가로 22m, 세로 12m, 높이 3.3m 크기의 전시실 한 칸을 꽉 채워 주택 문화사를 캡슐 형태로 전시해 근현대 한국 주택 문화사와 당시의 문화, 경제, 정치, 기술, 사건 등을 한 눈에 비교·대조할 수 있게 했다. 시대 순으로 정렬한 연표와 사진, 영상이 주택·도시 역사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수도권 및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도시의 공간적 확산 과정을 그려낸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마당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중산층은 편리와 쾌적을 충족시켜주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열광했다. 신도시와 중산층의 끈끈한 관계이면에는 대단위 택지 확보를 가능하게 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이 있었다. 민간과 공공 주택 공급 기관이 더불어 주도한 신도시의 주택 상품인 아파트 단지는 한국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담아내는 보편적 재화로 자리하게 되었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중산층의 아파트 수요를 충족시켰던 ‘택지개발촉진법’은 지난해 9.1부동산정책에 의해 폐지될 예정이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재생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한국의 주택·도시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에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지난 시대의 개발 역사를 되짚어 본다.
주택이 그리는 미래의 삶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숨 가쁘게 변모해 온 우리의 주택과 도시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1층에 전시된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과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새로운 미래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은 개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작품을 사진과 모형으로 소개한다. 이정훈(조호건축), 조진만(조진만 아키텍츠), 오신욱(라움), 조성욱(조성욱건축사사무소) 등 신진건축사 대상과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24명의 젊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고 주택 분야의 미래 트렌드를 전망할 수 있게 했다.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대한건축학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어린이 건축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삭막하고 획일화 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익숙한 아이들의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래 주택에 대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집을 공중에 띄우기도 하고 집 내부에 나무와 벤치를 들여 놓아 공원처럼 꾸미기도 하는 등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은 우리나라 주택과 도시의 궤적을 추적하고 주택과 도시가 반영하는 시대상을 비춘다. 단순히 주택·도시 변천사의 단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둘러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흐름과 엮어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주요 아파트 브랜드의 특징을 소개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섹션은 특정 회사들의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그쳤고 한국건축문화대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주택선’ 섹션은 평면적 전시 구성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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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서 화합으로 ‘넘어가는 길’
제2회 예건 조경나눔공모전
지난 11월 5일 ‘통일기원 공간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제2회 예건 조경나눔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공모전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주최·주관하고 예건, 환경과조경, 한국조경학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후원했다. 통일의 ‘기원’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은 분단 시대를 기억하고 통일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 기념하는 공간을 설계할 것을 요구했다. 전국의 조경·건축·디자인 관련 대학과 대학원에서 총 53팀이 참가 신청해 35팀이 작품을 접수했으며 이 중 10팀의 작품이 수상했다. 올해는 최우수상(상금 2백만 원)에 ‘넘어가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최대운, 금성철, 윤병두), 우수상(상금 1백만 원)에 ‘내게 강 같은 평화’(울산대학교 실내공간디자인과 이혜나)와 ‘2+1=!’(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양인욱, 김세훈), 가작(상금 50만 원)에 ‘소막을 기억해’(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서홍석, 차다영, 허지은, 김다인), ‘서해5도’(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김영대, 옥성민, 황정아), ‘Flying to the Moon’(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조설희, 김나래, 권은송), 입선에 ‘마당을 통하다’(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김경민, 정윤조), ‘통하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임재원, 최영규, 김수진, 유지영), ‘바람 참 좋다’(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오수현, 박지은, 한태용, 이지수), ‘통일의 문을 두드리다’(가천대학교 조경학과 박지은, 성웅기, 이소연)가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에 대해 “DMZ의 서쪽 끝 한강 하구의 철책을 구간별로 개방, 유지, 재배치하는 독창적인 설계 개념을 통해 ‘분단 체제 극복’의 상징성을 담아내면서도 생태계 보전의 지혜를 담아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지막 단계까지 최우수작과 경합을 벌인 우수작 ‘내게 강 같은 평화’는 임진강 양편의 북한 개성과 남한 파주를 잇는 교량을 설계하여 통일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공감의 공간을 제시한 것으로평가받았으며 우수작 ‘2+1=!’는 한국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갈마읍의 폐교량인 승일교 양측에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근대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내려한 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최우수작을 포함한 모든 수상팀에게는 『환경과조경』 1년 정기구독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넘어가는 길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의 설계 개념은 DMZ와 관련해 현재 강원도에 이미 조성된 공원, 박물관 등의 다양한 시설물이 사전에 계획했던 관광지 및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과 방문객에게 통일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수상작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역대 정부들의 개발 위주의 DMZ 정책과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DMZ세계생태평화공원’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했다. 더불어 한반도의 생태축(횡축)을 담당하고 있는 DMZ를 생태적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무조건 보전하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검토했다.
‘넘어가는 길’은 지금처럼 남과 북이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이 조성(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통일의 기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상징성을 가진 동시에 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다.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연을 보전하는 길을 모색하던 중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 구역에 주목했다. ‘넘어가는 길’의 대상지인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은 육지의 DMZ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보전 가치가 높다는 점, 육지·강·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점, 대상지에 풍부한 물의 속성이 남과 북의 화합을 상징한다는 점등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넘어가는 길’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을 부분적으로 철거, 개방,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정전 협정 당시 철책은 일시적으로 설치된 것이었으며 우리 민족에게 통일과 철책 제거는 반드시 단시간 내에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현재 철책은 한강 하구의 동식물을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 야생 생태계를 보전하는 생태적 역할을 하는동시에 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수상작은 철책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 철책 일대를 개방하되 모든 구간의 철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개방함으로써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계획했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서로 경계를 유지하되 신뢰를 회복하면서 통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 자연과 인간의 경계 역할을 하여 한반도의 생태축 역할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다.
먼저 수상작은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 구간을 그 곳에 살고 있는 생물의 특성, 지형, 인간의 영향을 받은 정도 등을 평가하여 구간 A와 구간 B로 나누었다.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구간 A는 자연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개방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책을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손이 덜 미친 구간 B는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반영해 철책을 허물되 보이지 않은 경계를 유지한다.
현재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은 산지와 한강 하구가 직접적으로 접해있는 유형(유형1)과 산지와 철책 사이에 도로가 있는 유형(유형2)으로 구분된다. 수상작은 ‘산지-철책-한강하구’로 이어지는 유형1의 경우에는 기존의 철책을 제거하고, ‘산지-도로-철책-한강 하구’로 이어지는 유형2에는 도로 위로 생태 통로를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철책의 활용 계획으로는 남과 북을 단절시키고 있는 철책을 넘어뜨리고 그 높이만큼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간의 상부는 인간이 이용하고 공간의 하부는 자연에게 내어줌으로써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즉, 남과 북의 거리를 좁히되 경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특히 수상작은 분단의 상징물인 철책을 버리지 않고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매개체로써 활용해 아픈 역사의 상흔을 지우고 감추기보다는 기억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통일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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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아버지의 꿈의 초상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아버지의 정원’에 부치는 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두 번째 정원 전시인 ‘아버지의 정원 - 어떤 정원에 대한 현고학現古學적 사색’이 186일간의 전시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 달 전인 11월 1일 막을 내렸다. 개막 전에 도록을 제작해 배포하는 여타의 전시회와 달리, ‘아버지의 정원’은 계절에 따라다른 느낌과 감성을 전달하는 야외 전시인 점을 고려하여 4월, 6월, 8월, 11월에 작품 사진을 촬영하여 전시 종료 후 도록을 제작했다. 본지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협조로, 이 도록에 수록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작품 해설 ‘우리 시대 아버지의 꿈의초상’을 전재한다. _ 편집자 주
전시 개요
•전시명: 아버지의 정원 - 어떤 정원에 대한 현고학적 사색
•장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아티스트 가든
•작가: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정상철(jsc archi-tects 대표)
•면적: 약 100m2
•주최: 김해시
•주관: 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그들은 전쟁, 유신과 독재, 경제 성장, 민주화의 격동기를 어떤 식으로든 몸소 치러낸 세대다. 우리 사회가 빚을 지고 있는 그들의 뼈 마디마디에 대한민국의 성장통이 스며 있다. 누구나 아버지가 있다. 그는 큰 산같이 엄하되 든든한 사람일 수도, 다정한 친구 같을 수도, 혹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 같은 존재이기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갈망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있다. 그렇게 제각각인 아버지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작은 땅덩어리에, 그것도 정원이라는 매체로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박하게 표현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김해로 향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이걸 보러 멀리까지 왔는데 참 운도 없다 생각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를 털어내는 자동차 와이퍼 사이로 들어온하얀 지붕과 담벼락을 보았다. 나는 그렇게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하나의 빛바랜 엽서 속 풍경처럼 아버지 의 정원을 처음 만났다.
박승진의 정원은 늘 얄미울 정도로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스스로 정원을 ‘시’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듯 그가 만들어내는 공간 역시 읽는 사람에게 많은 역할을 떠넘긴다. 그의 정원은 이야기를 좇아가다 보면 나를 잊고 글에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 아니다. 나의 어떤 부분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도무지 읽히지 않는 한 편의 시에 가깝다. 정원을 거닐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낯선 아픔을 느꼈다. 그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의도치 않게 이 정원에서 마주쳤기 때문이다. 예상치도 않게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나의 아버지를 끄집어낸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꿈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왜곡된 주거 문화의 단면‘아버지의 정원’은 주택 정원을 묘사한다. 작가는 여느 서울 사람들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살았다. 작가가 묘사한 이 집은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대 판박이처럼 찍어내어 분양한 서울 변두리의 ‘국민주택’으로 불리던 어느 단독주택을 묘사한다. 박공지붕과 콘크리트 블록 담장은 보급형 단독주택을 담백하게 재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70% 이상의 대한민국 사람이 아파트, 연립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불과 1970년대 초반만 해도 95%가 단독주택에 살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 힘든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정원’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을 소박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아파트라는 현대의 지배적 주거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집에 대한 따듯한 시선의 이면에는 정원을 빼앗아버린 물량 공급 중심의 주택 정책에 대한 날선 아쉬움이 배어 있다. 사고파는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가 상실한 집의 가치는 정원에 투영된다. 아버지의 정원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아버지의 정원’은 오래된 흑백 텔레비전의 영상처럼 탈색된 기억의 소품들을 담고 있다. 고유의 색을 빼앗긴 사물들은 그래서 누구나의 기억을 투영할 수 있는 도화지가 된다. 작가의 어린 시절 강아지인 로미는 나의 뽀삐이자 이웃집의 바둑이, 누군가의 누렁이가 된다. 작가는 자신만의 은밀한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호출해온 사물들의 색을 제거하여 모두의 기억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의 기억들은 ‘보급된’ 집과 사물들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정원, 땅과 공간을 정의하는 일
그의 정원 작업은 땅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넓은 미술관 부지에서 하필이면 잘 보이지도 않는 주차장 옆 한 편이라니. 여느 작가라면 눈에 잘 띄고 주변이 정돈된 반듯한 부지를 탐냈을 테지만 박승진과 정상철은 후미진 전시관 뒤편을 선택했다. 거대한 건물을 배경으로 세든 듯 들어선 ‘아버지의 정원’은 대형 아파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오래된 집 한 채를 보는 것 같다. 두 건축물의 스케일적 대비는 정원에 또 다른 콘텍스트를 제공해 준다. 정원은 멀리서 볼 때 하나의 순백색 오브젝트로 보이다가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각에 의존했던 단편적 감각이 4차원으로 팽창한다. 정원은 더 이상 볼거리가 아닌, 나의 지금을 정의하는, 나를 둘러싼 공간이 된다. 화려한 초화류의 꽃들에 시선을 뺏길 우려가 없으니 훨씬 더 편안하게 정원을 장소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원이 적절한 위요를 필요조건으로 한다면, 그건 주변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한다는 것이다.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창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정원은 주변을 기웃거린다. 동네의 담벼락은 아파트의 벽체와 같이 완벽한 단절과 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담장은 골목을 지나다니는 이웃의 섣부른 참견을 걸러내지 못하며, 동네 아이들의 월담을 눈감아주는, 칸막이 정도의 존재다. 정원의 사다리는 나무의 열매를 딸 때보다 옆 집에 건너갈 때 더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심지어 이 담장은 구멍투성이다. 동네 똥개들도 버젓이 제 집처럼 다녀가는 이 허술한 담장이 만들어내는 위요감은 나만을 바라보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족들을 위한 내부지향적인 공간이자 이웃과 사회를 만나는 마당이 된다. 아름다운 볼거리보다 공간의 ‘쓸모’에 관심을 갖는 이곳은 그래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정원이다. 어머니가 예쁘게 가꾸는 것에 마음을 쓴다면 아버지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잔디밭을 관리하고, 함께 공을 차고, 과일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일을 중시했을 것이다. 작가들은 ‘아버지의 정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닌 미술관의 풍경을 만들었다. 보여주는 것보다 기능하는 것이 중요한 아버지의 정원은 그래서 ‘예쁘다’는피상적인 시각적 감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정원은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가족들이 채워줄 빈 그릇 같은 공간인 것이다.
동네 아버지들이 만드는 정원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오리연, 팽이, 새총, 개집을 기억하는가. 아버지는 무언가를 뚝딱뚝딱 잘 만들어주셨지만, 사실 아이들은 썩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부잣집 친구가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온 멋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터에 등장하는 순간 우리 아버지가 만든 어설픈 수제 장난감들은 부끄러움의 상징이 된다. 저런 근사한 장난감을 사줄 능력 없는 야속한 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사물의 정체성은 완벽하지 못함에 있다. 그러나 어설퍼서 생긴 그 틈새를 사랑이 메우고 있다. 건담, 미니카, 바비 인형, 레고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장난감만큼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지 못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만드는 사물은 엉성하지만 단단하다. 작가들은 정원 만드는 일의 상당 부분을 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에서 해결했다. 아버지의 정원은 동네 아저씨들, 즉 진례의 아버지들이 함께 만든 곳이다.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허름한 짐자전거를 사고, 벽돌 쌓는 아저씨, 용접하는 아저씨, 목수 아저씨, 철물점 사장님을 모아 ‘마을 잔치하듯’ 만들었다. 정원을 만들며 벌어지는 아버지들의 시끌벅적 야단법석 잔치 한 판이 ‘아버지의 정원’으로 완성되었다.
80%의 미학
아버지의 정원은 모자란다. 난 그 모자람을 사랑한다. 정원은 누군가가 꽉 채워주길 바라는 채우다 만 그릇 같은 곳이다. 작은 일화가 있다. 정원에 심은 수수꽃다리에 슬쩍 무궁화 한 뿌리가 묻어왔다. 이 녀석이 여름에 꽃을 피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밀항을 알아채지 못했다. 담당 큐레이터가 발견하여 작가에게 묻자 “원래 정원에는 좀 부실한 놈들이 자라는 법이니 측은지심도 정원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정원박람회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경쟁’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기획되고 조성되는 것이 서글프고, 짧은 기간의 전시를 겨냥해 모든 것을 화려한 클라이 맥스로 연출하는 상황에 숨 막히기 때문이다. 개별 정원 하나 하나의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진 ‘박람회’이니만큼 전체로서의 경관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원의 본질이 기다리고, 변하고, 기르고, 가꾸는 것이라고 할 때, 완성품으로 정원을 소비하는 문화가 정원을 사유하고 가꾸는 것에 앞설까 걱정이다. 정원의 본질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이 부분을 간과한다면, 잡지 화보나 SNS를 점령한 예쁜 사람, 예쁜 물건, 예쁜 장소 사진들처럼, 정원은 예쁘게 포장된 자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정원 박람회는 너무나 빽빽이 자기만을 바라보길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나로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니라 자기만의 완결성과 우월성을 중시하는 모자이크식 공간 체험은 결국 정원에 대한 피로감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버지의 정원’은 최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장식적 정원에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100%를 향한 완벽과 통제의 패러노이아가 아닌, 몰래 묻어온 ‘부실한 녀석들’을 품을 수 있는, 동네 똥개가 당당하게 똥을 싸고 갈 수 있는 구멍을 내주는 여백같이 너그러운 존재가 아버지라면 박승진과 정상철의 ‘아버지의 정원’은 그 모자람과 비어있음을 성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리 시대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시
결국 작가는 이 정원을 모두의 아버지의 정원으로 만든다. 작은 땅덩어리 딸린 집 하나 마련해서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고 싶어 자신의 몸뚱이 돌보지 않고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누구나 꿈꾸던 작은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통하여 지독히 보편적인 감성을 만드는 그들의 작업. 결국 우리는 같은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결핍을 공유하던 세대의 자식들로 태어났다. 자식들 역시 그들의 자식을 위해 정원이 있는 행복한 집 한 칸을 욕망한다. 그렇게 우리 세대는 꿈을 물려받았다. 희망보다는 결핍을 상속받은 것이다.
박승진과 정상철의 정원은, 고단했던 삶, 맘 한 편에 묻어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가졌던 ‘우리 집’이라는 꿈의 초상이다.
작가가 부제로 쓰고 있는 ‘현고학現古學’은 동시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까운 과거를 고고학적 시선으로 탐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정원을 마주치기 전까지 나는 우리 시대가 이토록 무서리우리만큼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처음 끼적거리기 시작할 때 그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로 좀처럼 글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박승진의 아버지는 직접 김해에 오지 못하셨지만 어린 아들이 뛰어놀던 이 작은 정원을 사진으로 보고 잠드셨다. 정원이 작게는 작가의 가족들을, 크게는 이곳을 찾은 많은 가족들을 기억과 꿈이라는 끈으로 다시 한 번 엮어주었으리라. 이 작은 땅덩어리의 위대한 힘, 정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미국Stephen Stimson Landscape Architects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디자인 로직에서 실장으로 일했으며, 국내외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설계를 진행해왔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과 커뮤니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느슨한 설계 집단 스튜디오 테라의 대표로서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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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화 축제, 릴 3000
2015.9.26.~2016.1.17.
파리 북역에서 TGV로 한 시간, 릴 유럽역에 내리자마자 습하고 차가운 바람 덕에 북부 도시의 우울한 가을이 물씬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릴Lille은 브뤼셀, 런던, 암스테르담 등 북유럽 주요 도시를 이으며 중세시대부터 군사 요충지와 상업 도시로발달했고, 산업혁명 후에는 탄광과 섬유 산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시아시장에 주도권을 뺏기며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버려진 공장, 더 이상 연기를 뿜지 않는 굴뚝, 배가 다니지 않는 운하,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들, 그리고 구름이 짙게 깔린 먹먹한 하늘. 도시는 활력을 잃고 자연은 그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릴은 과거의 영광이 폐허로 남아 있는 슬픈 도시로,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살기 싫은 도시로 손꼽히기도 했다.
1990년대, 렘 콜하스, 장 누벨,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 등 내로라하는 건축가를 초대해 TGV역과 유로스타역을 포함한 교통 및 사업 지구인 유라일을 건설하며 미래지향적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인근도시를 아우르는 릴만의 지역적 정체성을 찾지 못한채 살기보다는 거쳐가는 도시 이상의 매력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도시 변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려졌던 과거의 산업 유산이 릴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릴 핵심 대안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것을 집어넣기보다 기존의 폐건물을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되살려 지역 주민의 참여와 소통을 유도하는 도시재생 실험을 시작한다.
‘릴 3000’ , 도시 여행을 시작하다
2004년, 유럽인들에게 릴이라는 도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며, 이듬해 도시 문화 축제 ‘릴 3000’이 제정되었다. 3년에 한번씩, 4개월간 한 주제를 가지고 도시곳곳에서 벌어지는 이 행사는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과 다양한 문화 행사 및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사회와 문명에 대해 고찰하고 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6년 인도의 ‘뭄바이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2009년 동유럽과 이스탄불까지 연결하는 ‘유럽 XXL’, 2012년 골목부터 집문 앞까지 도시 곳곳에 공공 작품을 설치해 일상을 뒤집어엎는 ‘판타스틱’이란 주제로 2백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2015년, 심각한 유럽 경제 위기로 인한 재정긴축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라는 주제를 걸고 지난 9월 26일 리우의 화려한 카니발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800여개의 이벤트와 문화 행사 그리고 35개의 전시회를 통해 도시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릴,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그 예외적 영감과 정신을 회복하라
불어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르네상스는 중세의 억압적인 종교의 그늘 속에서 피어난, 유럽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시기였다.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험이 세계 곳곳의 도시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릴은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조금은 낯선 다섯 도시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덴마크의 에인트호번, 미국의 디트로이트, 캄보디아의 프놈펜, 한국의 서울을 초청해 ‘릴 3000’ 축제를 열었다. 특히 이 도시들은 전쟁, 경제적 쇠퇴, 독재의 잔재 등 역사적인 고통을 극복해가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도시로, 그 모순과 갈등의 목격자이자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창조자로 존재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했다. 각 도시의 전시는 릴 각지에서 열렸는데, 무엇보다 전시가 열린 장소와 초청된 나라 간의 고려가 매우 흥미로웠다.
폐허, 잠재된 생명의 장, 디트로이트, 그리고 생 소뵈르역
짐 자무쉬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에는 한밤중에 디트로이트Detroit의 버려진 건물들 사이를 자동차로 배회하는 뱀파이어 연인이 나온다. 시간을 거스르는 그들의 차가운 아름다움과 깨지 못할 꿈을 꾸는 듯한 우울한 폐허의 도시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100년 가까이 모터 시티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끌던 도시는 쇠퇴와 회복을 반복했고, 2008년 이후 40만 명의 실업자를 내며 범죄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꿈의 도시는 테크노, 블루스, 힙합, 그라피티, 도시 농장, 젊은 도시 예술가들의 은신처가 되면서 또 다른 문화적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가 되고 있다.
디트로이트 전은 19세기 산업 부흥과 함께 지은 화물전용 철도역이지만 산업 침체로 버려졌던 생 소뵈르역Gare Saint Sauveur에서 열렸다. 버려졌던 모습으로 최대한 보존된 이 전시장은 묘하게 산업 도시의 황금기를 맞이하다 유령 도시가 된 디트로이트와 닮아 있었다. 작품을 설치했다기보다 디트로이트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는 작품 전체가 어울려 도시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로 하여금 릴이 아닌 디트로이트를 여행하게 한다.
디자인으로 새로 태어난 하이테크 도시 에인트호번 그리고 메종 폴리 드 물랭
필립스의 도시로 호황을 누리던 에인트호번Eindhoven은 필립스가 암스테르담으로 본거지를 옮기며 쇠퇴기를 맞이한다. 2차 산업 쇠퇴와 함께 버려진 공장들은 1990년대 이후 창작 스튜디오로 바뀌며 컬처 메이커culture maker들을 만들어내는 인큐베이터 도시로 재탄생,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 도시로 꼽힌다. 에인트호번 전은 전통적인 전시에서 탈피하여 3D 프린팅과 목공 일을 할 수 있는 팹랩fab lab 형태의 공동 작업장을 제공했다. 참가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관객과 함께 교류하는 장소인 셈이다. 18세기의 양조장이었던 메종 폴리 드 물랭Maison Folie de Moulins에서 열린 이 전시는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라 이후 릴의 도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전초전 역할을 한다.
파벨라에서 2016 올림픽까지 리우데자네이루 그리고 메종 폴리 와제므
삼바와 카니발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산을 배경으로 한 긴 하얀 백사장과 강렬한 태양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춰 브라질 최고의 아름다운 관광지로 꼽힌다. 그러나 인구의 20% 이상이 가난과 마약, 폭력의 문제가 극심한 빈민촌인 파벨라favela에 살고 있다. 젊은 예술가 집단 ‘카리오카스Cariocas’는 도시 변화의 목격자로서 극단적인 도시 리우의 일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해변의 잡상인, 파벨라의 판잣집, 좁은 골목길, 혼재된 문화 등 리우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부정적이고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요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 전시가 열린 와제므 지구MaisonFolie Wazemmes는 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매일 오전 대규모 상설장이 열린다. 가장 싸고 인구 밀도가 높아 젊은 예술가와 아마추어가 모이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이라 도시 리우를 전시하기에 릴에서 가장 적절한 곳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프놈펜 그리고 빈민구제소 박물관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은 붉은 크메르에 의해 1975년 이후 4년간 빈 도시가 되었다. 이후 40년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 백만 여명의 캄보디아인이 사라져갔으며 도시는 그야말로 킬링 필드가 되었다. 1990년대에 되찾은 수도로서 프놈펜은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했다. 무질서한 도시 확장, 지옥 같은 교통난, 무작위적인 건설과 부패, 전통과 현대의 충돌, 세대 간의 갈등을 겪으며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도시적 혼란 속에서도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있는 것에 주목, 캄보디아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는 물론, 한번도 외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세대의 예술가들이 초청되었다. 프놈펜 전은 릴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고풍스러운 동네인 비유 릴Vieux Lille에 있는, 17세기에 지어진 빈민구제소 박물관Hospice Comtesse Museum에서 열렸다. 옛 병원의 작은 교회당에 설치된 대나무 부처는 역사와 종교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고귀함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과 하이퍼모더니티의 간극 서울 그리고 트리포스탈
급격한 현대화, 다이내믹, 나이트라이프, 하이퍼테크닉, 전통, 긴장감, 획일성, 다양성, 콘트라스트. 잠시 서울을 방문했거나 서울에 관심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지는 느낌이다. 전시 큐레이터 장 막스 콜라르Jean Max Colard가 대조적이고 복합적인 서울의 모습 때문에 작품을 추려내기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서울과 한국의 모습이 전시되었다. 복사한 듯 똑같은 아파트 주거 형식, 성형한 소녀들의 모습, DVD방, 줄 맞춰 걸려있는 교복 등 서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부터 찢어진 산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전통과현대의 간극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표현한 작품들이 섞여 서울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우람의 하이테크 설치미술, 일상 언어를 예술로 재탄생시킨 최정화와 이불의 작품들이 프랑스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서울 전은 신시가지인 유라일지구 옆에 있는 트리포스탈Tripostal에서 열렸다. 과거 우편물을 분류하는 곳이었던 이곳은 ‘빨리, 빨리’라는 주제에 맞게 깊이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또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주간을 맞이하여 릴 국립건축조경학교와 릴 3000 주관으로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를 초청, 서울의 르네상스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렸다. 조경진 교수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역학 관계를 중심에 두고 서울의 변천사를 소개하며 메타폴리스로서의 서울로 발돋움하기 위한 서울시의 최근 도시 정책과 계획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청중은 K-Pop이나 한국 영화 외에는 서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단기간에 급변한 서울의 역동적 모습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시민 참여를 통해 도시가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에는 큰 공감을 표시했다. 그 밖에 파리에서 이미 큰 성공을 이룬 안은미의 댄스 공연 ‘할머니들Grandmothers’을 비롯하여 K-Pop나이트, 길거리 DJ 공연, 한국 영화 상연 등 이채로운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릴 3000,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묻다
‘릴 3000’은 문화라는 주제로 낯선 얼굴들을 도시 속에 받아들이며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로 인해 도시는 예외적인 도약을 해왔으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고 릴 시장 마르틴 오브리는 평가한다. 어려운 시기가 올 때마다 문화와 예술은 희생되었고 물질적 가치에 그 자리를 쉽게 빼앗겨왔다. 그러나 마르틴 오브리는 그것은 큰 실수이며 예술과 문화만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제시한다며 유럽 경제 위기 속에서도 ‘릴 3000’에 대한 열정을 강하게 나타냈다.
근 몇 년 전부터 프랑스는 경제적 위기로 공공 프로젝트 투자가 특히 줄고 있다. 그로 인해 공공 영역의 많은 조경 회사 및 건축 회사는 문을 닫거나 살생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인 불안감을 부추기고 자국민 보호 정책을 내세우며 반이민 정책을 펴는 극우파 수장마린 르 펜이 역사적으로 사회당이 주도하던 프랑스 북동부 지역에서조차 표몰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라는 논리는 보호되어야 할 대상과 해를 끼치는 대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적용하며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 3000’은 침제 분위기를 벗어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의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참여와 액션을 부추기며 축제를 즐기자 한다. 나아가 이번 도시 축제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민간 차원이나 로컬 중심의 실천을 독려하는 새로운 도시 정책을 위한 시민 동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스스로 닫은 도시가 영광을 누린 예를 알지 못한다. 반면 타자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도시만이 영광을 누려왔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위기를 말한다.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뿐이다. 안으로 숨던가, 밖으로 나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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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더 랍스터
기묘하거나 현실적이거나
“더 랍스터 한 장 주세요.” “네? 더 셰프 아닌가요” “아뇨, 랍스터요, 랍스터!” “다시 확인해주세요.” 셰프와 랍스터, 연관 단어이긴 하다. 어제 퇴근길, 며칠째 유난히 지치고 힘든 이유를 가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다른 처방이 필요할 것 같아 극장으로 향했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하는 순간 주변의 다른 극장과 헷갈린 것을 깨달았다. 나라 구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달려가 보니 관객석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너덧 명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고백건대 ‘더 랍스터’를 선택한 건 순전히 포스터 때문이다. 어떤 영화인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다. 황량한 갈대밭 사이로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랑에 관한 가장 기묘한 상상’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일까. 극장에서 그다지 오래 상영할 것 같지 않고 이 원고가 실린 후에도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될 것을 확신하므로 그 내용을 낱낱이 소개할까 한다. 혹시 나처럼 포스터에 순간적으로 영혼을 뺏겨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를 아홉 명은 여기서 멈추시기 바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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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신화 속으로
#66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1980년대, 독일고고학연구소에서 ‘그리스 폴리스의 주거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자유대학 고고학과 연구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한 국제 프로젝트였다. 그중 베를린에 살았던 팀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별도로 모여 그리스 고전 읽기 모임을 했다. 어느 날 팀을 이끌던 교수가 퓌클러 정원문화재단1의 초청을 받아 고대 그리스의 ‘정원’에 대해 특강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연을 들으러 팀원 모두 몰려갔는데 거기서 뜻 밖에도 ‘고대 폴리스의 주택에는 꽃밭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뭣이라고”, “그럴 리가”, “그리스에 가보라고.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대 문헌에 정원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데” 등의 반응을 보이며 흥분한 팀원들은 토론 끝에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화제의 특강 후 지도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수소문해보니 마침 “부조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의 풍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여류 고고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연구재단의 도움을 받아 연구비를 확보하고 그 여류 고고학자를 프로젝트 팀원으로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2 현재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린 캐롤Maureen Carroll 교수다. 이때부터 모린 캐롤은 고전 읽기 팀에 합류하여 옛 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발굴 현장을 탐색하고 발굴 보고서를 샅샅이 조사하여 정원의 증거들을 수색해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폴리스 주택에 꽃을 심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3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없는 것이 발견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전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케포스Κήος’, 즉 정원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한단 말인가. 고대에 꽃을 가꾼 정원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4 이런 질문이 팀원들을 괴롭혔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살았던 고고학자들에게 정원이란 ‘꽃이 가득 심겨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꽃이 가득한 정원은 ‘20세기적현상’이라는 것5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원하던 답은 찾지 못했으나 그 대신 다른 수확은 많았다. 우선 케포스라는 말이 언급된 모든 고대 문서를 샅샅이 찾아내어 목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케포스를 아무리 털어 봐도 꽃밭 대신 과일과 채소만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케포스가 정원이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20세기에 생각하는 정원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부엌과 주방의 차이와도 같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있지만, 주방에는 싱크대가 있다. 케포스에서 꽃밭을 찾는 것은 마치 조선 시대 부엌에 가서 싱크대를 찾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왜 폴리스 주택에 꽃이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아마도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폴리스라는 고대 그리스 특유의 도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꽃에 대한 고대인의 관점도 규명해야 한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리스의 주택들은 너무 협소하여 정원을 만들 자리가 없었다. 꽃은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 신성한 것이라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존재했다. 개인이 보고 즐거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폴리스는 대략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라고 널리 이해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성채를 두르고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공동 생활 구간을 말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에도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했으므로 성안에서 살아야 참정권 행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전쟁이 잦았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도 성안에 모여 사는 것이 유리했다.6 도시라고 해도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아테네의 인구가 한창 때에 약 4만 정도였으니 이 역시 지금과 달랐다. 특이했던 점은 도시가 팽창하면 도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분가’시켜 아주 먼 곳에 가서 신도시를 개척하게 했다는 점이다. 오십 명의 미혼 남성으로 구성된 신도시 개발팀을 내보냈다.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현지 여인들과 혼인하여 문화적 융합을 꾀했다.7 사실 인구가 너무 많으면 공동의 의사결정도 불가능하지만 ‘어떻게다 먹여 살릴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욱 시급했다. 기원전 8~6세기에 신도시 건설이 가장 활발했으며 6세기 말 소위 고전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서쪽으로 스페인 해안, 남으로 북아프리카, 동으로 지금의 터키, 사이프러스는 물론 흑해 연안까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가 분포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거의 집착했던 것 같다. 폴리스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열 명으로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지만, 인구가 십만 명이 넘으면 이미 도시라 할 수 없다.”8 플라톤은 5,040명을 적정 인구수로 보았다.9 이런 폴리스들은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똑같은 면적의 블록으로 도시를 나누었으며 이를 다시 균일한 크기의 필지로 나누었다. 한 필지의 규모는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평균적으로 250m2였다.10 세대 당 두 개의 필지를 배당받았는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도심에 주택지 하나, 외곽에 같은 평수의 텃밭을 하나씩 나눠받았다. 외곽의 텃밭이 바로 케포스, 즉 그들이 정원이라고 일컬었던 것이었다. 도시 내에는 지금의 연립주택과 다름없는 집이 밀집하여 지어졌고 디자인도 두세 개의 모델로 국한되어 있었다. 주택 구조를 보면 정원이 비집고 들어갈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이 있었으나 협소했고 이곳에 우물과 제단이 있었으며 바닥은 흙다짐되었거나 돌, 모자이크 등으로 포장되었다.
폴리스의 모습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기계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개인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굳이 주택가에서 꽃을 찾으려는 20세기적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는 그릇될 것이다. 신화와 문학이 그들의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그리스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평등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집 좀 크게 짓고 정원도 좀 꾸미지 그랬소” 그러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길을 가리킬 것이다. “저리로 한번 가보시게.” 그 길은 아마도 신화 속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