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
Editorial: Is ‘Jogyeong’ Landscape Architecture?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이마에 떨어진다. 봄이다. 새봄이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왔다. 이 지면 메울 일만 없다면 내 마음도 봄일 텐데. 대강 생각만 하면 알파고가 알아서 글 써줄 그날이 어서 오길 염원하는 오후,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유학 준비 중인 제자 S다. 수다거리가 떨어질 즈음, 그의 시선이 핑크색 표지의 신간에 멈췄다.
“요즘도 책 많이 사시나 봐요”
“여전히 책값과 술값은 안 아끼는데, 알다시피 사기만 하고 거의 읽지는 않아.”
“찰스 왈드하임이 쓴 새 책이네요.”
“2월 말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야, 『Landscapeas Urbanism』. 왈드하임이 자신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련 글과 논문들을 다시 구성해 엮은 책이야.”
“이제 한 20년 됐죠? 아직도 실체를 잘 모르겠지만, 참 희망을 많이 걸었던 개념이에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그래도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우리 시대의 조경 담론인 건 분명한데, 그 이론적 체계와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물음표가 공존하지.”
“이제 한때의 유행이라고 평가하고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글쎄, 난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이면의 역사적, 이론적, 문화적 조건을 광범위하게 탐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동시대 도시의 쟁점을 조경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번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번역하시게요”
“출판사 편집장님 설득할 겸 우선 서문과 서론 번역을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이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의 번역이 제일 문제야.”
“선생님은 계속 그렇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오셨잖아요.”
“내 책임이 커. 2000년쯤인가 『환경과조경』 지면에 처음 소개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확한 번역어를 짜냈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발음 그대로 표기해버렸어. 그대로 통용되면서 가뜩이나 모호한 개념이 더 혼란스러워졌어.”
“잘 알려진 언어학 이론을 살짝 대입해 보면, 활자화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기표signifiant를 보고 어떤 기의signifié를 일치시킬 수 있는 독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긴 해요.”
“게다가 한글로 된 책 곳곳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말로 반복해서 도배하면 아무리 유려하게 번역을 해도 읽는 게 거의 불가능해져. ‘보그병신체’가 따로 없는 우스꽝스러운 글.”
“저는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함께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황당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번역한 말인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어색함을 넘어서 이상해요.”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사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핵심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아키텍처 자리를 어바니즘으로 대치한 데 있어. 가치, 지향점, 태도, 방법 모두를 아키텍처에서 어바니즘으로 돌리고자 한 거지. 마치 랜드스케이프 가드닝landscape gardening 이라는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19세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탄생한 것처럼.”
“그런데 랜드스케이프 가드닝은 풍경(화)식 정원술(이나 조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조경,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그냥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으로 쓰니, 그 관계와 함수를 읽어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너무나 아쉬운 일이지만 ‘조경’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학부생 때였던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공이 조경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잘 이해하질 못해. 기표와 기의가 불일치하는 거지. 아, 나무랑 꽃 심고 정원 만드는 거, 그럼, 나무 잘 알고 좋아하시겠네요, 정도로 반응해. 그러면 말문이 막혀서, 아뇨, 공원을 설계하고 단지도 계획하고… 정도로 얼버무리게 돼.”
“저는 조경이라고 말한 다음에 꼭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요’, 이렇게 덧붙여요. 그러면 사람들이 뭔가 알아듣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런데 조경에 해당하는 영어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가 아니고,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조경으로 번역한 거지. 이 번역어 ‘조경’이 문제의 핵심이야. 1970년대 초반 우리의 제도권 조경(학) 창립자들은 미국식 개념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수입해 고심 끝에 조경이라는 말로 옮겼어. 그런데 이 전문 분야의 역할과 가치는 새로웠던 데 반해, 분야 명칭으로 선택된 조경은 이미 다른 뜻으로 통용되던 말이었어. 1920년 일간지부터 원문을 제공해주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검색해 보면 1962년부터 조경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해. 1960년대에 쓰인 조경이라는 말의 뜻은 대략…”
“말할 필요도 없겠죠. 나무랑 꽃 심고 돌 놓는 것, 관상수 재배, 가드닝…”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언어 속에서 조경은 바로 그 조경이야. 조경을 하나의 학제discipline이자 전문 직능profession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번역어로 삼기에는 조경이라는 말의 뜻이 너무 굳어져 있었어. 1970년대 이후의 새로운 한국 조경은 늘 목 놓아 소리치며 조경은 그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강변하고 주장해왔지만,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조경은 조경이라는 말에 갇힌 셈이야.”
“흔히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진단하죠.”
“그럴까? 그렇다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스타 조경가가 탄생하면? 법 만들고 제도 고치고 공무원 직제 만들면? 물론 당면 과제인 건분명한데, 다 해결하고 나도 조경은 결국 조경이야. 2013년에 제정한 ‘한국조경헌장’에서 조경을 정의한 부분 좀 검색해 주겠니.”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다.”
“한국 조경이 마흔 살을 넘어서며 세상에 던진 다짐이야. 가치와 목표, 대상과 수단, 그리고 의의를 담은, 손색없는 정의야. 그런데 역으로 이 정의를 보고 조경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이름을 고쳐야 하는 거 아닐까? 늦었지만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른 말로 번역해내면 실타래처럼 뒤엉킨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