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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의 조건 Conditions For Survival』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노융희 교수가 제안하는‘태양에너지사회’를 제창하는『생존의 조건 Conditions For Survival』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지구는 앞으로 어떻게 미래 사회를 열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노융희 명예교수는『생명의 조건-생명력 넘치는 태양에너지사회로-Condition For Survival-Toward “Solar Energy-Based Society”Full of Vibrant�Life-』을 제안하고 있다. 친지구환경적인 사회 구성을 제창하고 있는 이 책은 현재 노 교수가 많은 통계 자료와 사진, 도면과 함께 국문 번역본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번역본이 출판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노융희 명예교수는 본지를 통해『생명의 조건-생명력 넘치는 태양에너지사회로-』영문번역판 소개를 전해왔다. _ 편집자주
    • / 2011년06월 / 278
  • 부산 서면 동천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설계현상공모
    순환, 뫼비우스의 길(주)두인디앤씨 +(주)선일이엔씨(교통) +동아대학교 +(주)아고라(그래픽)설계참여자차욱진 대표이사, 김봉준, 박수정, 김성기, 양선희, 권민정, 이윤지(이상 (주)두인디앤씨)주동환 대표이사, 이상수, 여운태, 박재훈, 안상하, 강경래, 정민규, 이명표(이상 (주)선일이엔씨), 양건석 교수, 박문숙 연구원(이상 동아대학교), 김석훈 대표이사((주)아고라)
  • 2011 iF Product Design Award
    그린 바이크 스테이션2011 iF Product Design Award 수상 그린 에너지 자전거 보관소는 단지 내 입주민들의 공용 자전거 보관소이다. 공용 자전거는 입주자 카드RFID card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 세종시 정부청사 2-1구역 건립공사
    조달청은 지난 5월 9일 행정안전부의 요청에 따라 조달청이 기획부터 시공 및 사후 관리까지 일괄처리 하는 세종시 정부청사 2-1구역 건립공사의 실시 설계 적격자로 “Welcome CITY”를 제안한 GS건설(주) 컨소시엄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GS건설(주) 컨소시엄에 조경 부문 파트너로 참여한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가 제안한 조경 계획 “웰컴 투 행복청사”를 중점 소개한다. 웰컴 투 행복청사 _ 행복을 담은 4가지 청사이야기GS건설+(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주)그리드 E&C 설계참여자 _ GS건설(주)(조영철 부장)+(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이민우, 안세헌 대표, 김지현 이사, 김영식, 채권병, 김성호, 이근행, 정명규, 박선영, 김재영, 오현석, 장민, 김지영)+(주)그리드 E&C(임청규 소장, 김재필)
  • 한국조경봉사회
    나누는 기쁨, 나누는 삶, 봉사활동 하던 날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등, 5월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달인 것 같다. 너무도 화창했던 지난 5월 5일, 작업복 차림의 조경인들이 성북구 북정마을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엔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부터 업체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조경인들이 있었고, 1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하버드 디자인스쿨(GSD) 커크우드(Niall G. Kirkwood) 교수도 눈에 띄였다. 고추 모종을 잔뜩 싣고 있는 차가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자, 집결 시간인 오후 2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던 한 여대생이 까르르 달려와 묻는다. “지금 시작하면 안되나요? 봉사활동 빨리 하고 싶어요.” 그렇게 시작된 한국조경봉사회 2011년 첫 번째 활동의 소소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볼까 한다. 한국조경봉사회는 언제 창립되었나요?한국조경봉사회(Korea Free Landscaping Service for the Poor: KOFLASPO)는 조경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한 각계의 조경인 50여 명이 소외 계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9년 1월 17일 창립되었다. 마침 그날은 우겨 심우경 교수님의 회갑일이기도 했고, 들어온 회갑 축의금의 상당 부분을 조경봉사회의 창립기금으로 쾌척하기도 하셨다. 한국조경봉사회는 창립 이후 성북구 북정마을을 지속적으로 찾아 일곱 차례에 걸쳐 봉사활동을 실시해 왔다. 보통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한 가로수 식재와 공동 경작지나 주민들의 주거지 앞 텃밭에 고추 모종을 식재하는 일을 했지만, 2009년에는 지역 주민의 요청으로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공터의 낭떠러지 앞에 휠스탑을 설치했고,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이 앉아 쉬는 낡은 평상 자리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쉘터를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성북구 북정마을과의 인연은?한국조경봉사회가 창립된 직후 처음에는 봉사 대상지를 선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봉사의 취지에 적합한 장소가 분명 많이 있을 테지만 막상 활동을 시작하려니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선 전국적인 규모로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봉사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자원봉사 실천마당에서 조경분야를 맡아 참가하게 되었다. 그 장소가 바로 북정마을이었다.2009년 4월 22일의 행사는 끝났지만, 심우경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이곳이 바로 한국조경봉사회에서 찾던 적소임을 동감하게 되었고 주민들과 지속적인 교류와 활동을 약속하게 되었다. 이후로 일 년에 두세 번씩 북정마을에 모여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묻고, 조경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 / 2011년06월 / 278
  • 덕수궁
    Deoksugung造營_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었으나,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난을 갔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대부분의 궁이 모두 불타버려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리었다. 선조가 죽은 후 광해군이 이 행궁의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하고, 1611년 행궁을 궁궐로 높이며, 경운궁慶運宮이라는 궁호를 붙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창덕궁이 모두 중건된 1615년 4월 창덕궁으로 다시 옮겨갔고,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1584~1632)를 한 때 이곳에 유폐시켰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인조 역시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옮겨갔다. 그 후 270여 년 동안 경운궁은 궁궐로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왕실에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영조가 선조의 환도 삼주갑三周甲을 맞아 이곳에 찾아와 배례를 행한 일 정도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덕수궁이 다시 왕궁으로 부각된 것은 고종 때이며, 재위 말년에 약 10여 년 동안 정치적 혼란의 주 무대였다. 고종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이듬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면서(아관파천俄館播遷) 러시아 공관 옆에 있던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를 전후하여 궁 안에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고, 그제야 덕수궁은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을 갖추게 되었다.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신 진전眞殿과 궁의 정전인 중화전中和殿등이 이때 세워졌으며, 정관헌靜觀軒, 돈덕전 등 서양식 건물도 일부 들어섰다. 고종이 경운궁에 머무르고 있던 1904년 궁에 큰 불이 나, 전각이 대부분 타버렸으며, 곧 복구에 착수하여 이듬해인 1905년에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등을 중건하고, 중화문 등을 세웠다. 1906년에는 정전인 중화전을 완성하고 대안문大安門도 수리했는데, 이 문은 그때부터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고 궁의 정문으로 사용했다.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5)
    유비가 한을 품고 병사한 장강삼협 봉절 백제성동오의 육손은 유비의 촉군을 효정 이릉 땅에서 크게 무찔렀다. 유비는 백제성으로 몸을 피하고, 무슨 면목으로 성도로 돌아가겠냐며 백제성에 머물기로 하고 거처를 영안궁이라 했다.�유비는 병들어 앓고 있는데 점점 심해질 뿐 낫지 않았다. 더욱이 관우와 장비 두 아우를 잊지 못해 통곡하다가 병세가 더욱 위중해졌다. 승상 제갈량을 급히 오라고 해서 유명을 남기려 한다. 마침 마량의 동생 마속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말이 앞서니 크게 쓸 인재가 아니라고 한다.공명의 손을 잡으며 “그대의 재주가 조비보다 열 배는 나으니 반드시 천하를 안정시키고 대사를 이룰 것이오. 태자를 도울만하면 돕되, 그만한 그릇이 못되거든 그대 스스로 성도의 주인이 되시오.”라고 말한다. 공명은 유비의 간곡한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땀이 흐르고 손발이 떨려왔다. 그대로 땅에 엎드려 고하며 머리를 땅에 짓찧으니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선주는 유영 유리 아들 형제에게 공명에게 절을 올리게 하면서 승상 대하기를 아버지 섬기듯 하라고 분부한다.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니(223) 그의 나이 63세였다.�황석영『삼국지』8권에서 요약
  • 고정희의 식물이야기(13): 사람과 같이한 식물의 긴 역사 6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감자의 길감자의 원산지는 미대륙의 안데스 산맥이다. 잉카인들은 감자를 잔인한 표범의 신과 짝을 지어주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감자는 18세기에 유럽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곧 유럽의 주식이 된다. 유럽의 주식은 빵이 아니라 감자다. 19세기 중반, 유럽에 커다란 기근이 온 적이 있다. 전 유럽의 절반가량이 굶었던 엄청난 재앙이었는데 이때 수백만의 농부와 노동자들이 감자의 원산지인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썩음병이 심하게 번져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었다. 그 당시의 아일랜드 농민들에겐 감자가 거의 유일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다.지금 미국인의 대부분이 이때 감자를 찾아 이민 간 유럽인들의 후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유럽 이민사를 감자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인간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디언들이 몰살당해 미대륙이 텅 비자 다시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감자의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감자의 신이 유럽의 감자를 썩게 해서 굶주린 사람들을 미대륙으로 불러들인 거라는 거다. 이런 식으로 작은 식물 하나가 역사를 움직인 사례가 적지 않다. 온 세상 사람들의 옷을 만들어 입힌 목화가 그렇고 비단이 되어 중국과 유럽의 문화 교류에 앞장선 뽕나무가 그렇다.
  • 소통+장소, 조경(6): 촉진자로서의 조경가
    일반인들을 참여시킨다고 그들에게 연필을 쥐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상호 이해 도달이 목적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분석과 지식에 대한 사회적이고 윤리적 판단은 일반인과 함께 해야 하며 전문가는 이러한 판단을 촉구하는 역할, 즉 사회적 성찰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이는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대시키는 것이다. 저번 호는 소통과 조경이라는 키워드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을 위와 같이 선언적인 주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호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전문가인터넷이 제공하는 많은 정보는 전문가의 위상을 위협한다. 황우석 사태나 쇠고기 파동 때 일반인들은 생물학에 대해 대단한 식견을 보여주었다. 포털 사이트의 줄기세포 배양에 대 한 다이어그램이나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들은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고 덕분에 그들의 발언은 상당히 전문적이었다. 김연아가 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많은 이들은 또 피겨스케이팅의 전문가였다. 왜 김연아의 점프가 훌륭한지, 점수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그런데 그러한 인터넷상의 논쟁의 과정이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사항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의사 결정이 꼭 어떤 정보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객관적인 데이터에 의한 결정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은 경우 정치적이다. 우 리들의 김연아에 대한 평가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과 아무런 상 관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래서 벡은Ulrich�r�eck(1995)은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너무 복잡해 위험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 사회에서, 정책에 대한 의사 결정은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규범적인 질문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 또한 일반인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전문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렇게 정보의 양에서나 판단에 있어서나 한계가 있는 오늘날, 전문가의 역할이란? 피스쳐Frank�r�ischer(2000)라는 사회학자에게서 답을 찾아보자. 그는 전문가의 분석과 지식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시민의 역할이며 전문가는 이러한 판단을 촉구하는 역할, 즉 사회적 성찰을 촉진시키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촉진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촉진자로서의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개념을 부룩필드Stephen Brookfield(1986)에게서 도움 받고 있는데, 촉진facilitation은“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대안적 방법을 찾는 도전적인 학습자들”의 과정 그리고 학습자들에게“스스로 비판적으로 자신들의 가치와 행위의 방법, 삶의 법칙들을 검토하도록 하는 생각들과 태도들”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촉진자facilitator로서 전문가의 역할은 일반인들에게 질문을 해 스스로 자신들의 이익을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전문가들이 제시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구조로 보는 조경이야기(9): 마지막 이야기: 우리 모두의 설계를 위하여
    구조주의자의 변(辯), 다시 생성을 말하자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의 불확실성을 칭하는 또 하나의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모든 분야의 시대정신을 아우르는 패러다임이다. 조경 분야에선 그동안 플래닝씬(Planning Scene)에서 보여 온 액티비티로서의 그것을 전통적인 디자인과 혼합한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Landscape Urbanism)이 그 좋은 예가 되겠다. 그 덕에 조경은 생태‘로’ 디자인하는 것에서 생태‘를’ 디자인하는 것으로 업역을 넓혀가고 있다. 바쁜 진도를 따라 잡느라 우리 마음은 급하지만, 여기에서 잠시 플레이를 정지시키고 되감기 버튼을 눌러 역사를 거꾸로 올라가 보았으면 한다. 혼돈과 혼성의 시대 이전에는 해체의 시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탈구조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혼돈<해체<탈구조… 이것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상대적으로, 혹은 그 근원으로 기반을 두고 있는 이론적 토대는 거슬러 올라가면“구조”라는 인문학의 개념이다.디자인, 특히 건축이나 산업디자인의 분야에선 그다지 기여를 하지 못하였는데, 서양 건축사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이 시기에 인문학에서의 구조주의가 건축에서의 구조주의로 전달되는 과정에서의 실수가 발견된다. 건축계에서 근대 건축 운동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이전의 혼미한 상황에서 신 합리주의, 절충주의, 복고주의 등등의 제각각의 운동들이 함께 자리를 잡고 겨루고 있던 와중에 구조주의 건축이라 하여 그 인문학적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고 논리적 연결 고리조차 결여된, 단순히 일부 성급한 얼치기 건축가들의 형태를 설명하는데 성급하게 사용된다. 애당초 해석의 도구였던 이론은 이렇듯 잘못 오해되어 잊혀지다가 이후에 해체주의 건축을 통해서 다시 조명된다.다시 현재로 돌아와 본다. 라 빌레뜨 공원에서 구조는 과연 해체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혼돈과 혼성의 우주를 헤엄쳐 지나고 있다. 생성이 아닌 혼성의 시대라니 이제 형태를 만드는 논리 같은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이제는 디자인 자체보다는 조성의 전략이 더 개성 있는 설계를 만드는 시대라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하이라인(High Line)을 들 수 있다. 하이라인이야말로 여러 가지 생태적, 공간적, 시간적 인자가 어우러진 혼성의 전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21세기 도시형 공원의 대표적인 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성공한 오픈 스페이스요 명소가 되고 있는가? 과거에 물류를 실어나르던 철로를 이제 와서 단순히 쓸모없으므로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다시 새로운 미래형식의 공공 공간으로 재창조했기 때문이겠다. 우리는 그것이 바로 프렌즈 오브 하이라인(the Friends of Highline)이라는 민간단체가 오랜 역경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추진하여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애초부터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개발 방향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디자이너 제임스 코너가 받고 있는 크레딧은 이제 어디에 근거를 두어야 맞는 것일까? 의당 그것을 현실화한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평가와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지 “… 제임스 코너는 그러한 뉴요커들의 바람에 더하여 생태와 문화라는 양념을 가미하여 공원으로 부활시킨 것이다…”라는 식의 상황적, 작가적 층위의 비평만으로 둘레지어 버린다. 비평의 부재가 문제라 하지만, 오히려 그가 선물한 세기의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비평 담론은 넘쳐나고 있다. 정작 여기에서의 문제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계 담론의 부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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