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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연대와 논의를 위한 첫걸음
6월 2일,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 개최
공원을 만드는 일은 백년지대계다.
하나, 용산공원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여야 하고,
둘, 시민과 함께 계획하고, 만들고, 운영해야 하며,
셋,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
_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지난 6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용산공원 시민포럼(이하 시민포럼)’이 발족했다.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가 조직된 지 1년만의 일이다. 이들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관심 조성, 공원 민간 파트너십 체결, 공원 거버넌스 구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열린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는 용산공원의 계획 과정과 활용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마련되었다. 행사의 1부는 시민포럼 공동대표인 김성훈 국장(천주교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의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2부에서는 최혜영 팀장(West 8)의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조명래 교수의 ‘용산공원계획의 바람직한 방향’, 조경진 교수의 ‘용산공원계획, 시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토론회의 좌장은 이영범 교수가 맡았으며 김성홍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김제리 의원(서울특별시),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학교),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강오 원장(어린이대공원), 이세걸 사무처장(서울환경운동연합), 이승민 부국장(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우미경 의원(서울특별시), 최정한 대표(공간문화센터), 홍서희 대표(Gate 22)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시민포럼 운영위원과 토론자로 새롭게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승민 부국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을 조성할 때, 청소년의 의견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성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에 대한 접근이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래 교수도 앞선 주제 발표에서 “우리 세대에서 용산공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가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시민사이의 소통 단절 문제와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국토부는 2015년 6월 용산공원에 적합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10월 한 달간 공원 내 선호 콘텐츠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관계기관 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말, 9개의 기관에서 제시한 18개의 콘텐츠 중 설문 조사 결과와 10차례의 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선정된 8개의 콘텐츠를 발표했다. 선정된 콘텐츠는 국립어린이 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국립여성사박물관(여성가족부), 아리랑무형유산센터(문화재청),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용산공원 스포테인먼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아지타트나무상상놀이터(산림청),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국가보훈처)인데, 공원 조성 목적과의 부합성, 콘텐츠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최정한 대표는 “현재 대상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설계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긴 호흡으로 용산공원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을 배제한 국가 공원 조성은 불가능하다. 라운드테이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토부에게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부탁했다. 이원재 소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시민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과 관련된 전문위원들도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토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공원에 들어설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지만 규칙과 원칙은 있어야 한다. 용산공원에 국립 시설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우미경 의원도 이에 대해 “용산공원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비판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은실 교수는 “현재 발표된 콘텐츠는 용산공원의 극히 작은 부분이며, 보존하기로 정해진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배정한 교수는 “센트럴 파크 역시 수많은 건물과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곳이다. 공원에 콘텐츠가 없다면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그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계획의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국회가 용산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비합리적 일이다”라는 의견을 펼쳤다.
조경진 대표는 “앞으로도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이 같은 토론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을 정리했다. 또한 “앞으로 시민포럼은 다양한 시민 사회와 연대해 논의의 장을 열어가고, 용산공원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는 자리로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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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으로 탐구하는 공원의 ‘마이크로코스모스'
프라미스 파크, 미래 공원의 제안
건축가, 바이오 전문가, 도시공학도, 큐레이터,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시 공원의 풀숲을 뒤지고 흙을 파헤쳤다. 그들이 찾아 나선 것은 고대 유물도, 잊혀진 궁터도 아닌 공원의 ‘향’, 냄새다. 미래의 공원, ‘프라미스 파크’를 주제로 뉴미디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 작가가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도시, 예술, 역사, 건축, 디자인,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학생들과 함께 문화역서울284에서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향’을 테마로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공원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새롭게 접근하는 데 목표를 두었으며 현장 답사와 발표·토론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함께해 온 일본 야마구치 미디어 아트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YCAM)의 바이오랩 연구원과 큐레이터도 한국을 방문해 이번 워크숍에 함께했다.
‘향’이 말해주는 공원의 정보현장 답사는 선유도 공원과 청계천에서 진행됐다. 문경원 작가는 “한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과거를 지닌 도심 속 공간의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이들의 향에서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25일에 선유도 공원에서 풀, 열매, 흙, 곤충 등 효모가 서식할 만한 것을 채집하고 문화역서울284에 꾸려진 간이 실험실에서 채집물의 효모를 배양했다. 이튿날은 전날 채집한 효모와 YCAM 팀이 따로 청계천에서 채집한 효모가 어떤 유형이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배양된 효모가 어떤 향을 풍기는지 관찰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평소 공원에서 맡는 향이 어떤 물질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했다.
YCAM 바이오랩 카즈토시 츄타 연구원은 “효모는 대개 곤충들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에 효모를 분석하면 그 지역에 어떤 벌레가 많이 서식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는지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워크숍 일정이 짧아 결과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효모가 많이배양되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은 과거에 매립되었던 곳이라 초파리와 같은 곤충이 많이 서식했고 효모를 분석하니 아직도 뚜껑으로 덮여 있는 매립된 공간에서 나올 법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홍렬 씨는 “처음에는 ‘향과 공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공원을 이야기할 때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만 접근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공원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워크숍에 참가한 소감을 전했다.
‘향’이 이끄는 또 다른 세계
언뜻 보기에는 마이너한 방법으로 ‘공원’에 접근하는 것 같지만, 문경원 작가는 공원의 역사와 미래, 현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결과를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선보여 왔다(본지 2016년 4월호 ‘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참고). 문경원 작가는 “냄새는 각자 다양하게 경험하는 감각이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향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경험하는 향을 가시화해서 빅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내재된 향의 기억을 공감하고 연대 의식을 나눔으로써 공원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YCAM의 카즈오 아베 부관장은 “냄새는 아직 표현의 수단으로 쓰기에는 어려운 소재지만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후각은 대뇌에 직접 전달되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각이다. 이번 워크숍은 ‘냄새는 예술적인 소재가 될 수 있는가’, ‘냄새로 공간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워크숍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으며 유소년기를 떠올리는 장면을 인용하며 냄새를 통해 기억을 환기하는 ‘프루스트 효과’를 이용해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래의 공원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향으로 공원을 구현하려는 아이디어는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일까? 향은 시각이 환기할 수 없는 무의식 속 과거의 경험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열어준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향의 기억과 체험을 통해 거대한 공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문경원 작가의 시도는 시각이 주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현대인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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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없는 형태’ 전
아트클럽 삼덕, 6. 6. ~ 6. 12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대구에 위치한 아트클럽 삼덕에서 ‘Formless Forms형태 없는 형태’라는 타이틀의 최이규 개인전이 열렸다. 최이규는 계명대학교의 도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오브제를 선보이며, PLAPoly Lactic Acid 소재의 기하학적 형태와 액체, 빛, 그림자 등 형태가 없는 각종 물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와 의미를 다뤘다.
최이규는 “이 전시는 뚜렷한 형태가 없는 인공 건조물, 즉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물리적 환경에 대한 스터디”라고 밝혔다. 그는 평소 눈에 띄지 않지만, 품위 있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공간에 감동을 느껴왔다.또한 “알맞은 비례와 크기를 가지며,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창작의 산물들은 마치 수십억 년을 단련해 온 자연에 필적할 만큼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에는 정적이지만 가볍고 날렵함을 갈구하는 인공물에 대한 기하학적 추론이 담겨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수학적으로 정제되고 응축되어 장광설로 힘겹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기하학은 매력적인 학문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기하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됐다. ‘돈탑’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50원짜리 동전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타워에 삽입한 오브제다. 작가가 태어난 1976년 이후 제작된 동전들은 반짝임, 긁힌 자국, 변색, 뒤틀림, 그을림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사를 은유한다. 또한 동전이 모여서 이루는 낡았지만 찬란한 탑은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로 비춰진다.
‘물, 소금, 빛, 재, 피, 암석, 파동’은 우리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요소를 담는 그릇들로 구성된다. 거친 콘크리트 블록 제단祭壇에 놓인 고대 토기를 연상시키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릇은 복잡한 형태form 위주의 디자인 시류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를 내포한다.
이 외에도 로댕의 글귀를 볼 수 있는 정육면체의 조명 ‘텍스트 라이팅‘, 세제가 마르면서 나타나는 패턴과 투명함의 우연성을 관찰한 ‘세제회화’ 등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됐다. 최이규는 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지된 물체에도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중력을 잊은 듯한 자갈의 물수제비처럼, 소년의 경쾌한 발걸음처럼, 문지방을 타고 넘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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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
디뮤지엄, 6. 16. ~ 10. 23.
지난 6월 16일,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그의 스튜디오를 다룬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New British Inventors: Inside Heatherwick Studio’ 전이 막을 열었다. 디뮤지엄D museum이 주최하고 영국문화원이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는 영국의 국가 홍보 사업인 ‘그레이트 브리튼 캠페인the GREAT Britain campaign’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부터 도시설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현해 왔다. 영국 디자인계의 거장인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은 토마스 헤더윅에게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 중 26개의 핵심프로젝트를 다뤘다. 작품과 더불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 프로토타입, 테스트 모형, 1:1 사이즈의 구조물, 사진과 영상물 등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객은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디자인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인 ‘사고’에서는 디자인의 핵심 개념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소개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디자인 과정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해 그들의 비평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질문과 재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런던 시의 의뢰로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 된 ‘런던 버스New Bus for London’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고’ 과정을 통해 승객들의 편의성과 에너지 효율성 등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도 향상시켜 런던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 패딩턴 유역Paddington Basin에 설치된 ‘롤링 브리지Rolling Bridge’도 같은 과정을 통해 부드럽고 세련된 메커니즘을 도출해냈다. 다리의 양 끝이 올라가며 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않고, 한쪽으로 둥글게 말리도록 설계해 런던 브리지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했다.
‘제작’에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창조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을 담았다.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본사의 아트리움에 설치된 ‘블라이기센Bleigiessen’은 이질적인 소재인 물과 금속을 결합한 작품이다. 물이 떨어지며 변화하는 형태를 형상화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 액체상태의 금속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수백 번 반복했다.
‘소통storytelling’에서는 작품에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놀라움, 즐거움,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엑스포 2010 상하이’에서 선보인 영국관은 단순히 한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넘어 독특한 구조로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다. 건축물을 관통하는 6만 개의 투명 막대 끝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담겨 있어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막대는 낮에는 햇빛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내부의 빛을 외부로 발산해 관객에게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또한 전시를 위해 헤더윅 스튜디오가 특별히 제작한 ‘스펀-훌라!Spun-Hula!’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품은 2008년에 제작된 ‘스펀 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회전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지는 못했다. 2016년 디뮤지엄과의 협업으로 현실화된 ‘스펀-훌라!’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과 빛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반응하고 회전한다. 주변 환경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설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토마스 헤더윅의 대학 재학 시절의 작품과 초기 작업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발전해 온 스튜디오 철학을 보여준다. 작은 디테일과 큰 구조를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실험적인 도전들은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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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진행 중인 붕괴에 대한 접근
컬랩스, 6. 3 ~ 6. 25, 합정지구
최근 세상은 더 흉흉한 분위기다. 시대의 불안은 동시대 여러 예술가들의 작업에서도 예민하게 감지된다. 필자가 얼마 전 기획한 전시 ‘컬랩스Collapse’는 ‘무방비적인 붕괴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을 시각적 구조로 다뤄보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전시 소개와 더불어 참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붕괴에 접근하는 동시대 예술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붕괴를 공모하는 사회 구조
작년 영국 신문 「가디언guardian」에서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건물을 50개 선정해, 50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시리아의 시타델 등 도시 역사에서 주요한 건물들이 등장한 가운데 한국의 한 건물도 선정되었다. 놀랍게도 최대의 붕괴 참사로 전 세계인을 경악시킨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는 한국의 개발 중심 성장이 불러일으킨 연쇄적 붕괴를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안전 불감증을 전 세계인에게 경고한다. 위기 속에서도 개개인이 견디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시스템의 오작동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붕괴의 이미지는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준파리 총기 난사 사건, 우리 사회의 부패된 시스템을 보여준 세월호, 중국의 고도성장을 증명하는 도시 심천에서 쓰레기더미에 매몰되어 죽은 사람들, 그리고 증시 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 공황… 무너지고 전복되고 좌초되고 휘감기고 난장판으로 흩어지고 쓰나미처럼 몰아쳐 파괴되고 싱크홀처럼 순식간에 매몰되는 참혹한 사건, 사고, 재해는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며 충격과 혼란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화려하게 시선을 장악하던 파국 이미지는 더 이상 스펙터클하지 않다. 순식간에 배가 침몰하고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도로가 함몰되고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급작스런 재난에 떠밀린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자아 붕괴, 공황 상태는 극한의 살인이나 범죄로 이어진다. 최근 더 빈번해진 가족 간의 살인 사건, 더 잔혹하고 극악해진 범죄의 이미지. 일상 속에서 시체가 유기되는 비인류적 사건은 비단 한 개인의 인간성, 윤리적 붕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사회적 윤리, 도덕 안에서 개개인의 인간성은 그 충격을 더 병리적, 더 파괴적으로 감지한다. 컬랩스된 사회ㆍ정치적 구조, 전 지구적 재난 등 그 힘에 밀려 세상은 마치 끝을 향해가고 있는 듯하다. 개인을 무력화하는 이 급작스런 붕괴로부터, 그리고 붕괴의 충격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온 붕괴 이미지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 붕괴를 시각적으로 다루고 있는 6명의 참여 작가는 오늘날 붕괴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대해 각각 신문 매체, 슬럼 이미지, 자연재해, 버섯구름, 가족 제도를 통해 접근한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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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브루클린
공간은 어떻게 장소가 되는가
소설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다리를 불태우다”라는 말로 비유한다.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면 다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그게 다리였는지 모르고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그게 다리였음을, 그것도 자기 인생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중요한 갈림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통적인 이야기 작법에서 플롯은 3막으로 구성되는데 1막의 끝에 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건넜을 다리, 그때가 언제였을까. 그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브루클린’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주인공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분)가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미지의 땅 브루클린에 적응하는 이야기다.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으로 가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손을 흔들 때, 관객은 그녀가 다시는 이전의 그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낯선 브루클린에 도착한 후 한동안 지독한 향수병을 앓는다. 하숙집의 딱딱한 저녁 식사 자리도, 고향과는 다른 번잡한 출근길도, 화려한 백화점의 점원 생활도 모든 것이 낯설다. 잔뜩 주눅이 들어 누가 건드리면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 그러던 그녀가 먼 훗날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이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로 변한다. “힘들지만 향수병으로 죽지는 않아요. 곧 지나가죠.” 영화는 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변화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 그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매우 디테일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영화에서 짧은 슬로우 모션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그녀가 입국 심사장을 통과한 후 파란색 문을 열고 환한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고, 또 한 번은 타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날 밤에 눈이 오는 장면이다. 아일랜드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앞 장면이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라면, 두 번째는 어떤 인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다.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슬픈 고향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모여 술에 취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비로소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지점이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고,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까다롭기만 하던 하숙집 주인과 백화점 상관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배관 일을 하는 다정한 남자친구도 생긴다. 어리숙하던 그녀의 표정은 모두 놀랄 정도로 당당해지고 활기에 넘친다. 코니아일랜드에 놀러 가기 위해 최신 유행의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이탈리아 이민자인 남자친구네 집에 초대받고는 하숙집 친구들에게 스파게티 먹는 방법도 배운다.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고향에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던 그녀가 이제 브루클린이 마치 집같이 느껴진다고 답장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녀를 인정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이 쌓여 새로운 정서와 의미가 생기면서 공간은 장소가 된다. 브루클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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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색맹의 섬
Editor’s Library: The Island of the Colorblind
포스터의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경고를 일종의 선전포고로 읽었어야 했다. 영화 ‘곡성’은 상징과 메타포, 블랙유머로 뭉친 ‘떡밥’을 관객들 앞에 던진다. 이미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증언에도 코웃음 치며 나는 절대 감독의 의도에 홀리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의를 하고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그렇지만 선로를 이탈한 기차처럼 폭주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당해내랴. 영화 초반부,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가 밥 먹고 나가라는 장모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아침밥을 배불리 먹고 사건 현장에 지각할 때, 이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데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종구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그가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방식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종구는 허술하고 친근한,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관객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관객들의 예상과 기대를 비껴가며 ‘들었다, 놨다’하는 영화의 장치는 대부분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피해자들의 집마다 걸려 있는 해골을 닮은 금어초, 속을 알 수 없는 무당 일광(황정민 분)이 미끄러지듯 차를 몰며 등장할 때 배경으로 보이는 구렁이 같은 능선과 도로, 일본에서는 길조로 보지만 한국에서는 흉조를 뜻하는 까마귀 등의 상징적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관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입시킨다. 주인공 종구 또한 ‘보는 것’에 집착한다. 일본인을 조심하라고 충고하는 무명에게 “직접 봤냐”고 추궁하다가 급기야는 “내 눈깔로 직접 봐야 쓰겄다”며 나선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어떤가. 종구와 관객이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시각적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최근에 읽은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은 태평양 한가운데 미크로네시아 제도의 조그만 섬핀지랩에 살고 있는 색맹 원주민의 삶, 풍습, 역사, 섬의 생태 등을 관찰한 여행기다. “완전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어떨까? 그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할까? 그들도 우리가 보는 세계 못지않게 강렬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갖고 있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등 뇌와 정신 활동에 관한 서적을 10여 권 저술한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인 작가는 단순한 의학적 호기심을 넘어 색맹의 ‘삶’에 관심을 갖고 색맹의 섬을 찾아 떠난다.
그가 도착한 핀지랩에서는 색맹을 ‘마스쿤’(‘안보인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 섬 인구의3분의 1이 마스쿤 유전자 보유자이며, 전체 인구 약 700명 가운데 57명이 색을 완전히 구별할 수 없는 전색맹이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 색맹의 발생률은 30,000분의 1 미만이지만, 핀지랩에서는 12분의 1에 달한다. 이 섬에서 색맹은 불쌍한 장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인 흔한 질병이다. 올리버 색스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뭔가를 검사할 때, 대개 상당히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핀지랩의 색맹 검사는 “마을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즐겁고 경쾌한 분위기”였다고 묘사한다.1
올리버 색스의 가장 큰 미덕은 환자를 ‘치료 대상자’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치료방법을 연구하지만, 환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가 넘친다. 그는 색맹 원주민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일반인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고 기술한다. 색맹원주민은 밝기만으로 색을 구분하기 때문에 색채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은 색깔들을 쉽게 구분해 아름다운 무늬의 깔개를 만들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도 명암을 잘 구분할 수 있어서 밤낚시를 할 때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번은 올리버 색스의 일행 중 한 명이 노란색과 녹색을 구분할 수 없는 색맹 원주민에게 바나나가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 원주민은 대답 대신 연두색 바나나를 내민다. 아직 푸른 기가 돌지만 껍질을 벗겨보니 속은 완전히 익은 바나나다. 놀라워하는 색스의 일행에게 원주민은 말한다. “색깔만 보는 건 아니에요. 우린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또 알아요. 여러분들은 그냥 색깔만 보겠지만 우린 모든 걸 따지는 거지요!”2
지난 5월, 문경원 작가의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이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려 취재를 다녀왔다. ‘향’으로 공원을 탐구한다는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땐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구체적인 개념을 만들어가는 시도와 과정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문경원 작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시각이 지배하는 현대인의 얕은 사유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기대했던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연구 방식은 ‘공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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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살아남지 못한 구절
가다듬고 지우고 살리고 없애고 되살리고 줄인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좌담회 녹취록 정리 이야기다.
대부분의 좌담회는 2시간 남짓 진행된다. 예정된 주제들을 하나씩 소화하며 순조롭게 이야기가 풀리기도 하지만, 곁가지로 새는 일도 다반사다. 어떤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져 원래의 주제로 되돌아오기까지 한참이 걸리기도 한다. 그럴 때 녹음기를 바라보는 에디터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예상했던 분량이 안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한 가지 주제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논의가 빙빙 맴돌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도돌이표가 표시된 것 마냥 중언부언된 부분을 쳐내고 나면 지면에 옮길 텍스트가 몇 단락 안 될 때도 있다. 30분 넘게 이야기가 오고갔는데도 말이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패널들이 이야기에 심취해 예정했던 2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다. 게다가 주제에 대한 집중도까지 좋은 경우는 요즘 말로 웃픈 상황이다. 내색 할 순 없지만, 없던 다크서클이 절로 생기기도 한다.녹취 분량도 어마어마해지고 다른 지면을 줄여서 새로 지면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정은 웃고 있어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떨 땐 애꿎은 녹음기의 정지 버튼만 노려보다가 녹취를 풀기도 전에 그림 먼저 그리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통째로 들어내야지. 안 그랬다간 A4 30매도 넘기겠어.’ 물론 내용이 알차다면 지면을 더 할애하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그게 꼭 득인 것만은 아니다. 지면을 빽빽하게 채운 활자 더미에 독자들은 시선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의 질과는 무관하게….
지난 호 특집에 실린 좌담회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는 좀 독특했다. 평균 좌담회소요 시간인 딱 2시간 동안만 진행되었음에도 초벌 녹취 분량이 A4 26매에 달했다. 초벌 녹취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미리 배제하고 정리하기 때문에 보통 20매 이내에서 정리되는데, 이번 좌담회는 달랐다. 그만큼 곁가지도 잔뿌리도 없이, 굵직굵직한 메인 줄기를 따라 2시간 내내 주제에 부합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패널들이 준비해 온 자료도 순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텍스트가 너무 많아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반응도 있었고, “설계 환경의 가장 큰 이슈를 결국 ‘기-승-전-설계비’로 맺은 점 또한 아쉽다”(이번호 칼럼)는 지적도 있었지만, ‘기-승-전-설계비’에 대한 아쉬움은 특집의 전체적인 ‘기획’에 대한 것이고 텍스트의 양을 더 간결하게 구성하지 못한 것은 편집부 탓일 뿐, 좌담회 자체는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살아남지 못한 구절을 굳이 여기서 되살리려는 까닭이다(공식적인 좌담회의 기록은 아니기 때문에 이니셜로 표기한다).
A: 조경 업계를 거칠게 구분하자면 설계, 시공, 시설물로 나눌 수 있는데, 조경설계사무소의 대표는 대부분 조경학과 출신이다. 조경학과 학부 때부터 디자인의 매력에 끌려서 설계를 자신의 천직으로 여겨 이 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조경 시공이나 조경 시설물 회사의 대표는 조경학과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 회사 경영은 이들이 더 잘한다. / B: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C: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설계대학원에서도 경영을 가르친다. 회사의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야 원하는 설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적정 설계비를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 중의 하나는 조경학과 학생들이 설계 분야로의 진출을 꺼리는 점이다. 업무양도 많고 초봉도 낮다보니 설계를 기피한다. 예전에는 조경학과의 상위 그룹이 설계를 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 B: 조경설계사무소의 급여가 가장 낮다는 이야기인가? / A: 가장 적다. 대기업 연봉은 세배 이상인 경우까지 있다. / A: 조경 분야 내에서도 설계 분야가 가장 연봉이 적은 가? / C: 내가 알기로는 2000년대 중반에는 조경 분야 내에서 설계사무소의 연봉이 가장 높았다. 시공 회사 대표가 설계사무소에서 신입 직원에게 월급을 너무 많이 줘서 시공 회사로 취직하려는 졸업생이 없다고 항의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서 설계사무소가 제일 적고 자재 회사가 제일 많이 준다. / D: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프를 좀 다르게 봐야 한다. 출발선상에서 보면 대기업과 설계사무소의 연봉에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초봉이 4천만 원 혹은 5천만 원에서 시작되더라도 1억 원까지 빨리 가는 게 아니다. 대기업은 그래프가 완만하다. 게다가 몇 퍼센트만 살아남는 구조다. 반면 설계사무소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래프의 곡선이 얼마든지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 조경 분야끼리만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시공 회사가 설계사무소보다 그래프가 완만하다. 설계 분야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 A: 그런데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시공이나 시설물 분야는 10년 이상 계속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설계는 적은 연봉으로 10년 이상 버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10년차 경력자는 웃돈을 주고 스카우트해야 한다. / C: 상승 곡선을 가파르게 탈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설계 쪽이 많은데, 현재 취업을 목전에 둔 젊은 친구들은 초봉 비교를 조경업종 내에서 하지 않고 일반 대기업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학생들에게 대기업이 초봉은 많아도 10년 후를 생각하면 설계 분야가 더 비전이 있다고 설명을 하지만, 당장의 초봉에 연연해하는 경우가 많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말이다. / B: 요새는 설계사무소가 어렵다는 말들이 많아서 교수들도 설계사무소 취업을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히 비전이 있다. 설계자의 희소가치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양질의 설계를 할 수 있는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고, 단가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성공 확률은 확실히 과거보다 지금이 더 크다. / A: 설계사무소는 여성에게 유리한 측면도 많다. 경력 단절 이후에 재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다른 분야보다 월등히 높다.
초벌 녹취 원고 A4 26매 중에서 지면에 담긴 분량은 A4 14매다. 절반 가까이가 살아남지 못했다. 그 중에서 아주 일부를 옮겨 보았다. 설계비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옅어서 딜리트 키를 피해가지 못했던 대목이다. 왜 옮기는지에 대한 부연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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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누가 중세를 두려워하는가?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Who is Afraid of the Middle Ages?
#87
빛을 담는 방법 - 중세의 고딕 성당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세 유럽 한복판에 쉴다라는 도시가 있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본래 너무 똑똑했다. 그러나 똑똑해봤자 사는 것만 복잡하지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모두 바보가 되어 살기로 했다. 이제 바보가 된 똑똑한 쉴다 시민들은 그 기념으로 시청사를 짓기로 결의했다. 곧 작업에 착수, 모두 힘을 합쳐 도운 끝에 건물이 완성되어 성대한 준공식을 열었다. 그런데 바보들답게 창문 내는 것을 잊은 까닭에 청사 안이 깜깜절벽이라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호프집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홧김에 맥주잔을 거푸 기울이던 어느 시민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외쳤다. “그렇지! 이거야. 맥주를 이렇게 잔에 담는 것처럼 햇빛을 양동이에 담아서 나르면 되지 않을까” 모두 갈채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시민들은 양동이며 부대자루 등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열심히 빛을 담아종일 청사 안으로 날랐다. 참으로 부지런히 나른 끝에 해 질 무렵 모두 녹초가 되었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고 쉴다 시민들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시청으로 향했다.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보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지붕을 들어냈다. 눈비가 내리면 지붕을 다시 덮고. 그러다가 우연히 벽의 갈라진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을 냈다고 한다.
교회 혹은 성당을 ‘빛의 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신은 곧 빛이므로 교회에 빛이 가득하면 이는 곧 신이 거하시는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을 때 되도록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대답이 창문에 있다는 사실은 쉴다 시의 현명한 바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들처럼 지붕을 걷어낼 수는 없으므로 천장을 매우 높게 지어서 지붕이 거의 하늘에 닿게 해야 더 많은 빛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창문도 매우 커야 한다. 문제는 ‘기술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였다. 창문을 많이 내면 벽의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거대한 지붕의 무게를 받아내지 못한다. 12세기 중반, 프랑스 중세 건축가들이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어 결국 빛이 가득한 성당을 만드는 데 성공하게 된다. 벽이 해체된 순간이라고도 말한다. 기존의 두꺼운 벽 대신에 창문과 기둥을 연속시켜 성당의 외관을 완성했다. 이런 구조로 인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짓는 것도 가능해졌다.
성당 건축은 대개 선박처럼 긴 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성당 내부 공간을 선체라고도 부른다. 이 홀은 다시 길이에 따라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그중 중앙의 홀을 신랑身廊이라고 하며 이를 좌우에서 좁은 복도와 같은 측랑이 보좌한다. 신랑과 측랑은 벽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열주에 의해 분리되며 열주의 기둥과 기둥 사이는 대부분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조를 ‘바실리카’라고 한다. 바실리카는 본래 고대의 공공건물이나 신전을 짓던 방식을 뜻했는데 기독교가 도입되면서 서서히 교회 건축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흔히 말하는 중세의 고딕 양식이란 바실리카의 기본 형태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성당은 대개 동서 방향으로 길게 짓는다. 신도들은 서쪽으로 입장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정석이다. 동쪽의 좁은 벽을 반원형으로 만들고 벽 전체를 창문으로 대체하면 해가 떠오르면서 빛이 곧 가득 차게 된다. 빛의 집을 짓는 첫 번째 원리다.
바실리카는 신랑의 천장이 측랑의 천장보다 훨씬 높은 것이 특징이다. 측랑은 중앙의 신랑을 되도록 높게 지을 수 있도록 좌우에서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 홀을 크게 지었으므로 지붕 역시 매우 커서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 지붕의 무게를 벽체로 받치는 것이 아니라여러 개의 기둥에 분산시키는 것이 구조적 해법이었다.
그래야만 두껍고 투박한 벽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무게를 사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궁륭형의 독특한 천장 구조가 고안되었다. 돌로 만들었을 뿐 그 원리는 텐트와 같았다. 평평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구형도 아닌 텐트 구조의 궁륭을 여러 개 연결해 천장을 완성했다. 대개 네 개의 기둥이 궁륭 하나를 받친다. 그러므로 연결된 궁륭의 숫자에 따라 기둥의 수도 결정되며 당연히 성당 홀의 길이도 결정된다. 그다음으로 기둥 사이의 아치를 뾰족하게 변형시켰다. 기둥 사이의 간격이 같더라도 아치가 높아짐으로써 천장도 같이 들어 올려졌다. 창문의 형태를 아치의 형태에 맞추었으므로 좁고 길며 끝이 뾰족한 고딕 특유의 창문이 탄생했다. 외벽 바깥쪽에는 추가로 ‘ㄱ’자의 구조물(버트레스라고도 함)을 대어 측면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지탱했다. 물론 아무리 날렵하게 지었다고 하더라도 돌의 총 무게가 만만치 않았으므로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야 했다. 지하에 묻힌 돌의 무게와 지상에 쌓은 돌의 무게가 거의 같았다고 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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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읽기]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Reading the Resilience: Emergence and Expansion of Resilience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When the Levees Broke’는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뉴올리언스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들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접근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해안 제방이 이를 충분히 막아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앙은 카트리나 상륙 사흘 후 새벽에 일어났다. 뉴올리언스를 보호하고 있던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의 제방이 붕괴되어 멕시코 만의 검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뉴올리언스 지역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다. 2만 명 이상이 실종 혹은 사망했고 8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로써 화려했던 재즈의 도시가 종말을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서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던 뉴올리언스는 거대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다. 치한을 위해 ‘사살권’을 발효하는 등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약탈과 방화, 주민 간의 총격전, 성폭행, 구조대와 이재민의 마찰, 시체썩은 물과 토양 속의 오염 물질이 뒤섞인 식수…. 강력한 인공 구조물로 폭풍을 막으려고만 했지, 폭풍이 도시를 붕괴시킨 이후 사회와 환경을 재건하는 방법과 이전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완벽한 재난 대응법은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 오히려 재난을 받아들임으로써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입은 지역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응법이 더욱 중요했다. 이에 미국 사회는 회복력, 즉 리질리언스resilience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인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손을 잡고 1조 원 규모의 ‘국가 재해 리질리언스 대회National Disaster Resilience Competition’를 개최했다. 이는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하여 대형 재난 대응 계획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뉴욕, 뉴저지, 뉴멕시코, 시카고 등 많은 해안 도시가 이에 동참했다. 프로젝트는 조경계획과 도시계획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조경가협회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는 2014년 학술 대회 주요 테마로 ‘리질리언스’를 선정해 계획과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과 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리질리언스라는 실천적 개념을 미국 조경계에 환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조경 정책에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도시 조경에 집중되어 있던 미국 조경계가 방재, 해안 복원, 기후 변화, 사회 생태 시스템 등 거시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에도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리질리언스 개념은 지속가능한 사회 구현의 전략적 수단이자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어젠다로 급성장했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