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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가보지 않고 실은 프로젝트 격파하기
5월호 에디토리얼 원고를 서둘러 쓰고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딱 한 달 뒤 암스테르담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표만 예약한 채 떠난 긴 여행. 두 가지 큰 원칙만 정하고 모든 걸 열어뒀다. 첫 번째 원칙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기. 어느 도시를 다음 행선지로 할지, 내일은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하지 않았다. 두 번째 원칙은 모든 종류의 활자로부터 멀어지기. 여행 중반부에 신문 칼럼 마감이 겹쳐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켰지만, 적어도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
지인의 거처가 있는 베를린에서 예정에 없던 ‘보름 살기’를 하고 다음 도시로 택한 곳은 코펜하겐. 11년 만에 코펜하겐을 다시 방문한 건 『환경과조경』 지면에 담았던 여러 근작을 내 눈과 발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잡지에 해외 신작을 실을 때면 그 작품의 수준이 높고 메시지가 강하더라도 마음이 무겁고 뭔가 개운하지 않다. 책으로 연애를 배운 느낌이랄까. 여행은 작품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채 지면에 편집하는 부담감 혹은 아쉬움을 뒤늦게나마 덜어낼 기회다.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지난해 완공된 ‘오페라 공원’(Cobe 설계). 지난 4월호(432호) 표지에 올렸던 작품이다. 코펜하겐 내항의 탈산업 부지에 만든 이 공원은 왕립 오페라 극장의 정원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도시 중심부에서 낭만적인 자연 경관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뜨거운 햇살 아래 바닷바람 맞으며 공원 구석구석을 걸었다. 교정용 편집본에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엑설런트 프로젝트’라고 썼던 메모,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다.
오페라 공원에 가기 위해 탄 여객선은 수상 버스 역할을 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다시 배에 올라 운하 곳곳을 다닐 수 있었는데, 어디서 본 듯 익숙한 다리 옆을 지날 때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졌다. 2016년 2월호(334호) 특집 ‘다리, 연결 그 이상’에 실은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이었다. 영어로 바꾸면 서클 브리지. 원판 다섯 개를 이어붙인 형태의 이 다리는 아모레퍼시픽 사옥 외부 공간의 설치 조형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이다. 코펜하겐의 작지만 강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시르켈브로엔은 잡지 지면이 담아내지 못하는 기능미와 도시적 매력을 뿜어내며 보행자와 자전거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배는 곧 ‘시켈슬랑엔(Cykelslangen)’(Dissing+Weitling 설계) 밑을 지났다. 2015년 4월호(324호) 특집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와 함께 엮어 실었던 자전거 전용 공중 다리다. 출퇴근시 자전거 이용률을 50%로 높이는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로 만든 이 다리는 도심과 항구를 도보와 자전거로 연결해준다. 잡지 지면에 넣었던 인상적인 사진들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자전거 탄 풍경’이 뱀 모양 오렌지색 다리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코펜하겐의 자전거는 이미 교통수단 그 이상이다. 『사이클 시크』(북노마드, 2014)의 저자 마카엘 콜빌레-안데르센이 말하듯, 코펜하겐에서는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자전거로 도심을 유유히 누비는 여자, 더블 재킷에 로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자”가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다.
가보지 않고 실은 프로젝트 격파하기(?)는 다음 도시들에서도 계속되었고, 2021년 2월호(394호)에 담았던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수장고(Depot Boijmans Van Beuningen)’(MVRDV 설계)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미술관은 전시장과 수장고 기능을 통합한 파격으로 유명하지만, 대형 거울 화분 형태의 외벽 하나로 온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며 도시의 일상에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었다. 나 같은 여행객뿐 아니라 동네 사람, 미술관 관람객 모두 이곳을 지날 때면 사진을 찍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울에 비친 도시와 그 속의 자기 발견하기 놀이, 재미있지 않을 수 없다.
편집주간이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운 사이, 편집부 식구들은 격동의 5월을 보냈다. 본지가 주관하는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렸다. 박람회 수상작들을 이번 호 지면에 옮긴다. 6월호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시공원 리노베이션의 새 장을 연 ‘오목공원’이다. “공원은 편하게 앉아 오래 머무르며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라운지”(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라는 설계자의 생각이 어떻게 공간으로 구현되었는지 직접 방문해 눈과 발로 경험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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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늦은 밤, 지하철 4호선 노선도 앞에서
이번 역은 길음, 길음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길음역이 마음에 들어. 짧아서 불만인 게 많았거든. 봐, 나는 키가 작고, 손가락도 짧아. 근데 이 역에서는 딴청을 부릴 수 있지. 키? 길음. 손가락? 길음. 무엇을 물어도 ‘나는 길음이야’ 한다고. 꽃비 날리는 봄도, 손 살랑 흔들고 돌아서는 가을도. 짧아서 아쉬운 것 모두가 여기서는 길음이야.”
“뭐야, 취했어?”
“어쩐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마장역에서는 네가 그냥 ‘마장’하고 맞장구를 쳐줬으면 해. 가능역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 방학은 언제나 방학이니 좋겠다. 미아에 가면 경찰서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내가 있을 것 같아. 수유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피면 좋겠다. 길동은 고길동과 홍길동 중 누구일까. 고길동은 둘리랑 쌍문동에 살 테니까 역시 홍길동이려나. 그리고 있지, 사당행. 4호선 하행 열차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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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공원 리노베이션
Omok Park Renovation
다시, 봄
봄이 왔고 나무에 생기가 흐른다. 겨울을 견디지 못한 개체들은 사월에도 가지가 말라 있다. 때 이른 더위에 꽃을 내미는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오목공원은 지난겨울 완공됐다. 해를 넘기지 말자고, 어찌어찌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가림막이 걷히고 모든 통행로가 열렸다. 농구장에서는 다시 아이들의 공놀이 소리가 들린다. 아직 가끔 쌀쌀하다. 몇몇은 볕을 찾아 의자를 들고 공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문득 궁금해졌다. 의자들은 무사한 걸까. 가을과 겨울이 지나는 동안 한 개의 의자가 분실됐다고 한다. 너무 가벼운 탓이었을까.
붙박이 벤치가 없는 공원을 상상했다. 공원은 극장이 아니므로 한쪽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없다. 혼자도 오고 여럿이 함께 오기도 하기에, 따로 또 같이 앉을 수 있으면 좋다. 무리를 등지고 앉을 수도, 서로를 바라보고 앉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의자와 테이블은 세트다. 공원을 즐기려면 차를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맛있는 점심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테이블 위에서 대화가 피어난다. 우리는 이런 공간을 라운지라고 부른다.
다양성은 좋은 말이지만 모호하다. 다목적은 합리적이지만 버겁다. 무언가가 선명하다는 것은 그것을 유지하려는 무게가 부담된다. 오목공원은 무목적 공원이다. 설계의 첫 단추는 앉는다는 행위였다. 걷는 것은 속도와 방향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목적이나 목표가 분명하다. 앉는다는 것은 걸음을 멈춰야만 할 수 있는 원초적 행동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공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행위다. 공원의 많은 공간을 앉는 행위를 위해 설계했다.
공간 혹은 장치
좁고 긴 통로를 따라 ‘걷는’ 회랑은 오목공원에 없다. 앉아 있는 공간을 단순히 덮고 있는, ‘회랑형 덮개’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덮개가 있으면 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가려주니 안온함이 생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어 쓰임새가 좋아진다. 하나의 시설물이 아닌 공원의 구심점으로 작동하는 공간적 장치다.
해는 계절마다 각도를 달리하며 뜨고 진다. 비바람의 방향도 일정하지 않다. 서로 다른 네 면을 가졌으므로 모든 면이 동시에 그늘지거나 똑같이 비바람이 들이치지는 않는다.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앉는 행위가 무참히 침해되지 않는다.
회랑 안쪽은 살짝 낮춰진 마당이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길게 걸터앉을 수 있다. 반대편을 바라보면 또 다른 무리가 앉아 있다. 앉는 행위는 때때로 전염되거나 닮아간다. 우리도 좀 앉았다 가자. 공원의 겨울은 길다. 찬바람을 피하고 몸을 녹일 공간이 필요하다. 회랑 아래 작은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서 낮은 각도로 들어오는 겨울철 볕을 모을 수 있다. 지난겨울, 강추위 속 마무리 공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각각 작은 전시 공간으로, 책 쉼터로, 식물을 공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비록 협소하지만 필요한 장치다.
설계공모 당시 제안했던 커뮤니티 센터는 실현되지 못했다. 회랑과 연결되는 건축물이었다. 공원의 관리 기능과 주민들의 활동을 담을 것을 기대했으나 예산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생겼다. 대신 기존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화장실, 수유실, 작은 창고, 관리 사무실로 재구성하고, 중심 공간은 미술관으로 꾸몄다. 지역 예술가들을 비롯해 청년 작가들, 아이들, 동네 예술 동호인들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공원 개장에 맞춰 ‘오목한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키즈 카페는 공모 이후 서울시 예산으로 추가된 프로그램이다. 협소한 야외 놀이 시설을 보완한다. 공원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이용하기 좋은 공간이다. 부모들이 잠시 휴식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를 즐긴다. 놀이 공간 구성은 별도의 전문 설계 팀이 맡았다. 바깥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식물을 공부하고 가꾸는 장소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업데이트
날카로운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다. 어른 팔뚝만한 가지들이 투두둑 잘려 나간다. 큰 나무를 많이 심지는 않았으나 오래된 나무들을 전정하는 작업은 필요했다. 나무 아래는 텅 비었고 위에는 무성한 가지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잘라낸 가지들이 아래로 떨어지니 바닥이 한순간 풍성해졌다. 이만큼의 작은 나무들이 필요한 것이다.
숲은 여러 층이다. 1989년 나무들 아래로 2023년 나무들이 연이어 심긴다. 가장 아래층은 지면을 낮게 피복할 풀들이 차지한다. 중간층의 나무들은 도시를 부드럽게 순화시킨다. 눈에서 멀어지면 소음도 완화되는 법. 기꺼이 숲속에 머물 수 있다.
나무와 풀은 상부상조한다. 같이 모여 있어야 정겹고 아름답다. 오랜 시간 굳어진 땅을 뒤집으니 흙냄새가 피어오른다.
숲을 지나는 길은 살짝 떠 있다. 그 틈으로 풀이 연결되고 물이 흐른다. 벌레들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단단한 길로만 다녀주세요. 여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길이 이어지다 넓어지는 곳에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으니, 여기는 일명 숲속 라운지다. 새들도 쉬어가는 곳. 공원 바깥 보도와 가까워서 드나들기에 좋다. 회랑이 삼삼오오 즐기는 곳이라면, 이곳은 혼자 책 읽고 음악 듣기에 좋다. 원래 큰 나무 아래 그늘은 인기가 많은 장소였다. 공원 리모델링 이전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차지하는 곳은 바로 이 숲속 벤치였다. 좋지만 벤치가 너무 부족했다.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빈터를 찾아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의자와 테이블을 여러 개 놓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장과 어른들이 즐겨 찾는 체력 단련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학생들의 소란함을 불편해하는 어르신도 많다. 기존 위치를 존중하되, 낡은 시설을 보수하고 쾌적성을 높였다. 리모델링 이전부터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공간이었다.
농구장을 둘러친 높은 안전 펜스는 아이들이 공을 주우러 이리저리 다니는 수고를 덜어준다. 체력 단련장의 목재 데크는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아 운동하기 편하다. 적지 않은 예산의 투임이 있었으나, 좋은 재료로 공간을 개선하는 것은 공공을 위한 당연한 투자다.
비우고 채우기
공원은 때로는 한적하고 때로는 붐벼야 한다. 설계공모 당시 회랑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중 ‘일시적 시장’을 염두에 두었다.
생산적 교류가 중요하다. 지난 3월부터 마르쉐 농부 시장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지역의 농부들과 소비자들이 화합하는 장터다.
도시공원은 광장의 기능도 해야 한다. 평소에는 비어있으나 어떤 때는 북적이는 활동을 담아야 한다. 회랑의 공간적 장치―지붕과 단차―가 장터를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감동을 준다. 여기저기 걸터앉아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스몰 토크가 오고간다. 공원의 일상은 소소하다.
회랑의 지붕은 바닥에서 3.5m 정도 떠 있다. 저녁 때 공원을 방문하면 위층에서 산책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더 늦은 시간에 가보면 젊은 커플이 즐비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행위는 즐겁다. 한 개 층 높이에 불과하지만, 시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의자를 옮겨가며 아래 중정을 보거나 반대편 숲을 바라볼 수 있다. 폭은 제법 넓어서 필요한 활동을 더 담을 수 있다. 한정된 공원 면적을 늘린 셈이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편안한 이동이 절실한 사람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땅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땅을 점유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실효적 행위에 속한다. 공원의 기본적 가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영구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것에 있다. 수천억에 달하는 땅을, 누군가 차지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고 행정을 통해 땅을 지킨다. 도시는 변화하고 공원도 진화한다. 오목공원은 30년동안 유지되었고 잘 자라주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됐다. 공원을 만들고, 고치고, 즐긴다. 공원은 조경가의 숙명이다. 진행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박승진·최상민·김희정 인터뷰
도심 속 공공 라운지를 만드는 일
오목공원 리노베이션은 ‘목동중심축 5대 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됐다.
박승진(이하 진) 오목공원이 위치한 양천구 목동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목동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개발됐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원의 필요성이 제기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목동중심축에 다섯 개 공원을 조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이 달라지고 성장했는데, 공원은 시설 보수만 진행됐다. 양천구는 시설 보수와 더불어 공원을 대하는 태도와 이용 방식에 접근해 순차적으로 공원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5대 공원 중 하나인 오목공원의 리노베이션은 다양해진 시민들의 공원 이용 방식을 고려해 진행됐다.
오목공원은 1차, 2차 공사를 거쳐 개장됐다. 1차 개장(2023년 9월)의 반응을 보고 2차 개장(2023년 12월) 전 설계에서 수정한 사항은 없는지 궁금하다.
최상민(이하 민)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다층적 수목 식재다. 나무 아래 식물을 더해 좀 더 풍성한 숲을 조성했다. 1차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원에 맞는 규격, 형태, 물량의 수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2차 때는 현장에서 시공사와 상의하고 상황에 맞게 수정해 나가며 진행했다. 덕분에 다양한 층을 가진 도시숲을 조성할 수 있었다.
둘째, 의자다. 오목공원에는 지붕이 있는 라운지, 숲 라운지 등이 있는데, 이곳을 오랜 시간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1차 개장 이후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의자의 인기가 많았다. 아침 일찍 공원에 방문해 좋은 의자를 선점하지 않으면 앉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다양하고 많은 의자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양천구와 상의하며 필요한 영역에 의자를 추가 배치하는 등 보완해 나갔다.
김희정(이하 정) 건축적 시점에서 1차와 2차 개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점은 오목한 미술관과 키즈 카페의 탄생이다. 목공방과 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던 건물이 있었다. 양천구가 이 건물을 미술관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면서 오목한 미술관이 탄생했다. 붉은색 건물이 공원과 어울리지 않아 루버를 설치해 건물을 가렸다. 진한 색 루버 덕에 공원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공모 때는 실내 놀이터, 화장실을 하나의 건물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기존 화장실이 있어서 이를 리모델링하고 실내 놀이터를 키즈 카페로 바꿨다. 키즈 카페는 새로 건물을 지어 만들었고, 건물 외관을 회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띠게 했다.
설계설명서의 마스터플랜 범례가 인상적이다. 공간의 용도를 적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어떤 공간에서 이용자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적었다.
민 기본계획도와 미스터플랜을 만들라는 공모 지침이 있었다. 기본계획도가 있는데 마스터플랜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스터플랜은 대규모 공간이나 여러 단계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면이다. 오목공원 규모에는 맞지 않는 도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리 해석해 도면을 풀어나갔다. 도시와의 관계, 즉 공원 주변까지 확장해 마스터플랜을 만든다는 의미로 접근해 이 공원에서 할 수 있는 100가지 행위를 뽑았다. 30년 동안 오목공원과 함께한 추억을 회상하고, 리모델링된 공원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등 공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적어 내려갔다. 어떻게 보면 공원을 이렇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정 우리의 직업과 연관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 미루어 짐작하고 예상하는 게 설계를 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이런 과정이 설계에 반영되어 방문객들이 공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 도시에서 아무 목적 없이 편안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이 공원이다. 다른 공간은 뚜렷한 목적이 있다. 길은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곳이고, 음식점이나 카페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곳이며,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무언가를 보는 곳이다. 설계가는 사람들이 왜 공원을 찾는지 고민하고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에겐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닿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스터플랜은 왜 공원이 필요한지를 나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모 당시 다른 설계안들은 대부분 중앙을 부드러운 유선형 공간으로 설계했는데, ‘어반 퍼블릭 라운지’만 정사각형 회랑 디자인을 제안했다.
진 둥근 형태보다 사각형이 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원과 달리 중심에서 변 위의 한 지점에 이르는 길이가 각기 다르므로 사각형이 가진 분위기가 원보다 더 강하면서 부드럽다. 기존 공원에서는 원형 요소가 눈에 띄지만 자세히 보면 중앙과 주변 숲을 나눈 것은 직선의 산책로다. 이를 틀로 잡아 사각 모양을 도출했고 이 형태가 정사각형의 회랑까지 이어졌다.
정 공모에 참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소장이 사각형 회랑을 그린 도면을 보여주며 같이 공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설계안을 보며 기존 오목공원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모이기에 설계하는 데 수월한 점이 많았다. 유선형 공간을 만들면 곡선이 생기는데, 이 곡선을 살려 건축물을 만들 경우 무리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사각형이어서 원보다 더 자연스럽게 설계할 수 있다.
주변 상업 시설의 유동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공원의 규모가 작다. 많은 행위를 담으려면 공간이 입체적이어야 한다. 곡선에 벤치를 두면 빈 공간이 생기지만, 직선을 따라 벤치를 둘 수 있기에 쓸모없는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직선 덕분에 효율적이고 쓰임새가 많은 공간이 탄생했다.
공모 때 제안한 안과 완공된 공원을 비교해보니 회랑 2층을 사용하는 것과 회랑 사이의 수목이 잔디마당으로 옮겨진 점이 다르다.
진 공모에는 한 변 길이 40m, 폭 7.2m, 높이 3.8m의 정사각형 회랑을 제안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한 변의 길이는 짧아지고 폭은 더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졌다. 지금의 회랑 모습과 비슷한 사례가 없어서 기차 플랫폼을 많이 참고했다. 설계 당시 대구를 자주 왔다갔다했다.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의 폭과 플랫폼들 사이의 폭을 걸음 수로 재보면서 공원에 어울리는 공간감을 찾았다. 사각형이라 맞은편 사람과 불편한 눈 맞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36m란 길이는 신기한 보호 거리를 만든다. 맞은편 사람의 성별 정도만 구분할 수 있을 뿐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된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그늘이 있는 곳이 달라지는데, 사각형이라서 하루 종일 그늘이 지거나 해만 드는 공간이 없다. 그늘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그늘 밑으로 의자를 들고 이동하면 된다. 나무 위치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해 햇빛이 회랑 어디까지 비추고 그늘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정했다.
정 회랑을 설치할 위치에 키가 큰 다섯 그루의 수목이 있었다. 회랑 지붕에 구멍을 만들어 수목을 보존하려니 나무 폭에 맞게 구멍을 뚫어야 하고, 지붕을 뚫고 나온 나뭇가지를 보호하는 난간을 만들어야 하는 등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생겼다. 그런데 수목을 잔디마당으로 옮기자 문제가 쉽게 풀렸다. 잔디에 앉은 사람에게 그늘을 선사해주고 2층 산책로를 걷는 사람에게 눈높이에서 수목을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해준다.
회랑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문제에 부딪쳤을 것 같다.
정 수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회랑 2층이 공중 산책로로 바뀌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기둥이다. 기둥의 굵기를 정하기 위해 거리에 설치된 전신주 둘레를 재보았다. 도시에 설치된 전신주의 굵기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모두 크기와 굵기가 다르더라. 다양한 전신주 둘레를 회랑 기둥에 적용해 보며 회랑에 어울리는 기둥의 둘레를 시뮬레이션했다. 안정적이면서 회랑 높이와 폭의 비례와 맞는 기둥을 설치하고 싶었다. 하중을 견뎌야 하므로 재료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사용한 재료는 철골 기둥이다. 구조 계산으로 나온 기둥의 두께는 23mm인데, 설정한 기둥 사이즈에 맞는 철골을 찾을 수 없었다. 용접을 하지 않고 봉강에 열을 가해 가운데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심레스(seamless) 파이프에서 착안해 기둥을 제작했다. 용접으로 철골을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하나 구부려가며 기둥 두께에 맞게 연결하고 속은 비워 단단한 기둥을 만들었다. 많은 고생을 했지만 원하는 모양대로 완성되어 뿌듯하다.
폭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박 소장이 나에게 준 미션이기도 했는데, 공중 산책로를 산책뿐 아니라 팝업 스토어가 운영되는 등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하라는 제안이었다. 여러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산책로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길이로 만들고 여기에 여유 폭을 더했다. 이 여유 폭은 난간 밖으로 튀어나온 공간인데 난간에 발을 헛디뎌 추락할 위험을 줄인다. 이 공간을 비워두기보다는 화분을 두어 자연스럽게 공원과 어우러지게 하고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회랑 한가운데를 잔디마당으로 만들었다.
진 처음에는 여러 안을 고민했었다. 이곳을 가변형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회랑 어디서든 중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고자 했고, 그래서 비워야겠다고 결정했다. 도시공원은 도심 속 숲이라 자연을 어느 정도 구현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원에 나무를 가능한 한 많이 심어 녹지 공간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넓게 비워진 공간에 잔디를 깔았다. 잔디를 사용함으로써 녹지가 더해졌을 뿐 아니라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쓰임새가 많아진 것이다.
민 점심시간에 방문해 보니 직장인들이 회랑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만히 잔디를 바라보며 쉬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따라서 회랑에 앉아 잔디를 바라봤다. 푸른 잔디로 만든 빈 공간을 바라보는 것도 쉼이 된다는 걸 깨달았고 이런 휴식이 더 여유롭다고 느꼈다. 여러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는 빈 공간이지만 잔디 그 자체만으로 색다른 휴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게 잔디가 가진 장점이지 않을까.
정 이 공간에 패턴을 더하고, 길을 만들었으면 공원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잔디를 깔고 비워두어서 회랑과 그리고 공원과도 더 조화로울 수 있었다.
주로 잔디는 들어갈 수 없는 불가침 공간으로 여겨진다.
진 예전에는 잔디 관리가 어려워 들어가지 말라고 막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관리만 잘하면 잔디를 밟고 누울 수 있다. 잔디를 보식하고 보조제를 깔아서 잔디가 무게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끔 했다. 이곳에서는 잔디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중앙 잔디마당이 비가 오면 빗물을 저류해 수경관을 연출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실현되었나.
민 일시적으로 물을 모으려면 잔디마당의 중앙 지면을 낮춰야 한다. 물을 담을 수 있지만 배수 문제와 겹치게 되고, 잔디 생육 문제와도 연결된다. 잔디 생육을 위해 배수를 원활하게 하려면 잔디 중앙을 높여 가장자리로 물이 흐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배수 문제도 있지만 잔디마당의 활용, 일시적인 수공간 연출을 위한 별도의 장치 마련, 유지·관리 방법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여러 사람과 논의한 끝에 아쉽지만 수공간 아이디어는 구현하지 않기로 했다.
정 가끔 상상한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잔디마당이 잠기면서 자그마한 호수가 생기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현재 상태에서 트렌치를 막고 방수 패드를 깔아 물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회랑과 단차가 있으니 잠길 수 있을 것 같다.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실현되진 않을 테지만 잠시라도 도심 한복판에서 작은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낭만적일 것 같다.
공원 리모델링과 건축 리모델링에 차이가 있다면.
정 기술적 부분과 디테일 요소에선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똑같다. 설계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경설계는 살아 있는 자연을 다루는 일이므로 건축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건축 리모델링은 페인트나 재료를 활용해 색을 바꾸고 기존 시설물을 없애거나 새로운 시설물로 교체하는 등 기술적 요소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데, 조경은 설계에 포함해야 할 요소가 많다. 회랑에 기존 나무를 보존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때 나무는 설계의 방해 요소인 동시에 새로운 제안을 하는 기준이 되었다.
“로비가 서성이는 공간이라면, 라운지는 앉아서 떠드는 장소다. 공원은 일하러 오는 데가 아니다. 운동만 하는 곳도 아니다. 공원은 편하게 앉아 오래 머무르며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라운지(여야 한)다.” 박승진 소장이 어느 인터뷰(각주 1)에서 말한 내용인데, 오목공원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라운지가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진 도시 라운지가 갖춰야 할 최소한 조건은 의자다. 오래 전 선유도공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벤치는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시설이다. 당시 선유도공원이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시민들이 의자를 원하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기며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벤치가 모두 고정되었지만 잠시나마 시민들이 벤치를 자유롭게 활용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공원에 의자를 왜 붙박이로 해놔야 하는 지 의문을 가졌다. 오목공원을 설계할 때는 무조건 의자를 움직일 수 있게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라운지가 되려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의자, 특히 움직일 수 있는 의자다. 어느 공원을 가도 벤치는 한자리에서 내리쬐는 땡볕을 받아내고 비를 정통으로 맞기도 한다. 의자를 자율적으로 가지고 다니면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테이블도 같이 있어야 한다.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테이블이 없으니 손에 들고 있거나 의자 사이에 두거나 땅에 놓기도 한다. 음식을 올려놓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정 최소한의 건축도 필요하다. 오목공원에는 실내 공간, 즉 실내 라운지를 조성해 공원의 쓰임을 풍요롭게 했다. 회랑 모서리에 실내 공간을 조성했다. 단순히 사방이 뚫린 통로로만 쓰이도록 비워 둘 수 있지만, 회랑에 작은 건축물을 더해 식물·책·그림 쉼터로 활용하면서 공간의 쓰임새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제 오목공원은 설계가의 손을 떠나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공원을 이용하기를 바라는가.
정 2차 공사를 하면서 본 방문객의 표정이 기억난다. 의자와 테이블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이리저리 옮겨가며 이용했다. 망설이던 표정이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공간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원을 자신의 아지트처럼 이용하면 좋겠다.
민 1차 개장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집 마당에 들어온 기분이라 이야기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고 그곳에서 캠핑하고 파티를 한다. 그런 행위를 이 공원에서도 할 수 있으니 더 좋은 반응이 나온 것 같다. 앉아 있는 동안은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공원을 대하면 좋겠다.
진 작년 가을 중정에서 버스킹, 오케스트라 연주 등 콘서트가 개최됐다.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마르쉐 농부 시장이 열린다. 처음부터 이렇게 활용되기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잘 쓰이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 디자인 팽선민
**각주 정리
1. 배정한, “오래 머무르는 공원, 도시의 라운지”, 「한겨례」 2023년 09월 24일.
글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사진 유청오
공원 설계 총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조경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최상민, 오지훈, 고희선, 김희서)
건축 설계(회랑, 실내 놀이터, 미술관, 관리실 리모델링) 모스건축사사무소(김희정, 정다현, 최찰, 이제현)
경관 조명 설계 이온에스엘디
전기 통신 설계 코담기술단
사이니지·회랑 실내 가구 설계 및 제작마음 스튜디오(maumstudio)
실내 놀이터 구상 및 기획 설계 조경작업소 울
조경 시공 신성종합조경
회랑 시공 퍼스트종합건설
미술관 및 관리실 리모델링 웅산건설산업
실내 놀이터 건축 시공 새강종합건설
실내 놀이터 시설 설계 및 시공 아이땅
공사 감독 서울시설공단
발주 서울시 양천구청 공원녹지과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1번지
면적 21,470m2
완공 2023. 12.
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작은 설계 회사다.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사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 정원,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등 사람과 자연을 잇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우리나라 1세대 조경설계 사무실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워커힐호텔, 서울아산병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7년에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등을 설계했다.
최상민은 단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다. 조경설계사무소 디자인엘을 거쳐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으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이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통의동 브릭웰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북촌 설화수의 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김희정은 조성룡도시건축과 희림건축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2년 스튜디오 유비에이씨(studio ubac)로 시작해 현재 모스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소장이다. 경주 금관총 보존전시 공간, 양양 기사 문항 어촌 뉴딜사업, 자양동 한국야쿠르트 사옥, 세계유산 축전 수원화성 파빌리온, 성북동 한양 도성길 순성쉼터, 제물포역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도시재생 가이드라인 수립, 남해 상주초등학교 나무로 만든 비밀기지 프로젝트 등 문화, 도시, 건축 그리고 일상에까지 이르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구획된 분야와 장소의 경계를 넘나들며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2024년06월 /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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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공원 리노베이션] 경관–건축으로서 조경
경관은 건축된 것인가(각주 1)
가렛 에크보(1910~2000)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이 문장으로 조경의 오래된 화두인 경관과 건축의 관계를 짚었다. 단 세 단어로 말이다. 질문에 담긴 맥락은 다음과 같다. “건축가는 구축에만 관심을 두고, 조경가는 배경을 이룰 경관에만 관심을 두는 듯하다. 이러한 전문적, 학술적, 법적 경계는 땅에 없는 지적인 분리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건물과 경관을 한눈에 보는데 말이다. …… 조경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바를 해내야만 한다. 경관과 건축을 통합해야 하는 것이다.”
에크보는 건물과 경관, 실내와 실외,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끊임없이 되묻고 해체한 모더니스트 조경가로 꼽힌다.(각주 2) 에크보가 지금의 오목공원을 봤다면 어떻게 평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이하 loci)의 시도는 구축의 기술이 경관의 조직을 이루어낸, 달리 말하면 건축의 언어로 조경의 표현을 이루어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사각형 공원의 한가운데 정사각형 회랑으로 틀을 짠 단순하고 과감한 설계는 에크보의 질문에 대한 동시대 조경의 답으로서 의미가 있다.
새롭게 자리매김한 건축의 언어
리모델링 이후 다시 찾아간 오목공원은 익숙함과 새로움을 차례로 느끼게 했다. 차도를 건너 공원 입구로 들어서는 과정은 전과 같았다. 입구의 위치와 울창한 숲은 그대로였고, 이용자를 맞이하는 조형물의 모습도 눈에 익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서 만난 공원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예전의 오목공원은 가운데 선큰광장이 넓게 펼쳐지고 계단과 화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눈앞의 오목공원은 가운데 네모나게 잔디가 깔렸고 주위에 트인 입면의 회랑이 세워져 있었다. 공원의 골격과 인상을 지배하던 붉은 톤의 석축과 그로 인한 단차는 대부분 사라졌다. 턱 없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공원의 표면과 쭉 뻗은 콘크리트의 선형은 리모델링보다 리노베이션, 리디자인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들어서는 과정은 익숙하고 들어서서 보는 풍경은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주변부보다 중심부를, 평면보다 입단면을 더 많이 재설계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88년 설계안을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정방형 부지에 원과 마름모로 중심을 잡고 상하좌우 대칭을 부여한 기존 평면은 현재의 공원 배치에서 동일하게 확인되는 특유의 중심성이 전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시야를 확장해보면, 이러한 중심성은 목동 신시가지 계획의 선형 중심축에서도 정가운데를 차지하는 특유의 입지와 밀접하다. 오목공원은 목동의 다섯 근린공원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다른 공원들이 선형 중심축의 굽이와 끄트머리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이 공원은 두 축이 맞물리는 가운데 위치해 유일하게 정방형 부지를 갖추고 있다.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단연 중앙의 광장이다. 예전에는 주출입 동선을 따라 들어오면 석축으로 이루어진 단 위로 안내되어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광장을 내려다보게 됐다. 광장으로 가려면 방향을 틀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지금은 같은 동선을 따라 들어오면 기다란 회랑의 트인 입면을 창틀 삼아 중정을 바라보게 된다. 회랑을 지나 잔디로 발 딛기까지 의자 높이만큼의 단차가 있긴 하지만 동선이나 시각 측면에서 전보다 한층 열린 모습이다. 주변부가 다수의 교목이자리를 지키며 우거진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면, 중심부는 재료와 형태, 레벨과 시각이 모두 달라졌다.
기하와 단차를 이용해 땅을 조각하듯 공원을 형상화한 설계자는 건축가 류춘수(이공종합건축사무소, 이하 이공건축)다. 목동의 다섯 근린공원 중 두 공원을 대상으로 별도의 설계가 발주되어 하나―파리공원―는 조경가에게, 다른 하나―오목공원―는 건축가에게 맡겼던 셈이다. 그가 건축가임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더라도 예전 오목공원의 설계 양상은 상당히 건축적이다. 동선과 영역을 설정할 때 두드러지게 쓴 직각과 원호, 마운딩보다 단에 가까운 경계부의 지형 처리, 주요 지점에 쓰인 구조물이 그러한 인상을 준다.
주목할 점은 구조물에 관한 건축가의 제안이 시공과 정비를 거치며 점차 축소된 이후, 조경가의 리모델링 제안에서 다시 구조물이 부각된 것이다. 이공건축의 안에서 눈길을 끄는 마름모꼴 평면의 목재 프레임 구조물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정중앙의 원형 구조물은 실현되었다가 2008년경 공원 정비와 함께 철거됐다. 이번 리모델링에서 loci는 상층까지 활용 가능한 회랑 건축물을 설계 핵심으로 제안해 실현에 옮겼다. 말하자면 현재의 오목공원은 건축가가 심은 나무를 배경으로 조경가가 지은 건축물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각주 3) 리모델링을 매개로 일어난 변화와 교섭의 양상은 상당히 흥미롭다. 구조물 외에도 설계에서 불규칙한 선을 쓴 부분은 대개 조경의 몫으로 여기기 쉽지만, 건축가가 분수나 화단에 썼던 그러한 선들은 이번 리모델링에서 조경가에 의해 상당 부분 소거됐다. 오목공원은 동시대 한국 조경에서 에크보의 문제를 논하기에 가장 좋은 현장이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Garrett Eckbo, “Is Landscape Architecture?”, Landscape Architecture Magazine 73(3), 1983, pp.64~65.
2. 관련 내용은 가렛 에크보의 전기에 해당하는 다음 책에서 참고할 수 있다. Marc Treib & Dorothée Imbert, Garrett Eckbo: Modern Landscapes for Living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3. 이 문장은 다소 이견을 부르리라 예상한다. 나무를 심은 것은 시공 업체 인부이고, 현재의 건축물은 협업한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원의 전체 틀을 그린 두 기획자의 역할에 착목해 이러한 표현을 선택했다.
임한솔은 서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공부하고역사건축기술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국내연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건축과 조경이 나뉘지 않았던 시절, 한국 공간 문화의 역사와 미학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어낸 앎을 바탕으로 지금의 공간 문화를 이롭게 하고자 한다.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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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지난 5월 16일부터 26일까지 뚝섬한강공원에서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됐다. 초청정원(1개)을 비롯해, 작가정원(10개), 학생·시민·기업동행정원(10개, 15개, 17개), 기관참여정원(4개), 글로벌정원과 시민참여로 조성한 정원(19개) 등 76개 정원을 선보였다. 정원 명칭을 비롯해 작가정원 공모 키워드에서 발견되는 ‘동행’이라는 단어는 서울시의 정책과 연관을 맺고 있는데, 시는 ‘정원도시 서울’(2023), ’매력가든·동행가든 프로젝트’(2024)를 연이어 발표하고 정원이 시민 일상이 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초청정원은 지난해 서울시 조경상 대상을 수상한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과 김영찬(바이런 소장)이 조성했다. 작가정원 국제공모는 다양한 조경가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규모와 공모 키워드를 달리해 두 개 부문으로 진행됐다. ‘정원이 가진 회복력(작가정원 A)’, ‘정원과의 동행(작가정원 B)’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연과 함께하는 정원, 모두가 함께하는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작가정원 A는 정원을 통해 심신의 안정 및 평안을 추구하며, 자연의 회복력을 기반으로 정서적 회복력에 기여하는 정원이다. 지구 환경을 고려한 재사용, 재활용, 자원 순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해져 있다. 작가정원 B는 남녀노소 여러 계층이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정원이다. 지속가능한 공공 정원을 통해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지구의 생명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운 한강 풍경을 그려낸다.
2023년 11월 16일부터 12월 18일까지 33일간 진행된 공모에 111팀(작가정원 A 51팀, 작가정원 B 60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그중 국내 6팀, 해외(중국·태국·방글라데시) 4팀의 작품이 최종 참여작으로 선정됐다. 심사는 정원 조성 이후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심사 결과 허양·천훙량(He Yang‧Chen Hongliang)의 ‘섹션 가든’과 이지훈·문경록의 ‘기억과의 동행’이 A, B 부문별 금상을 수상했다.
한편,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도심 속 대형 공원에서 뚝섬한강공원으로 그 무대를 옮겼다. 한강공원이 명실상부한 서울 시민의 랜드마크1인 만큼, 첫 주말에만 50만 명이 박람회장을 찾는 등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방문객이 박람회를 찾았다. 개최 5일째 되는 날에는 방문자 수가 102만 명을 돌파했다.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막을 내렸지만, 뚝섬한강공원에 조성된 초청정원과 작가정원, 기업정원은 존치되어 자연을 일상 가까이에서 즐기는 정원 문화 확산을 꾀할 예정이다.
진행 김모아, 이수민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국제공모
주 최 서울특별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주 관 환경과조경
위 치 서울시 뚝섬한강공원 일대
기 간 2024. 5. 16. ~ 26.(박람회 이후 존치)
작가정원 A
키워드 정원이 가진 회복력
규 모 3개소(260m2 내외/개소당)
지원금 1억2천만원(개소당)
상 금
금상: 1천만원(1팀)
은상: 7백만원(1팀)
동상: 4백만원(1팀)
작가정원 B
키워드 정원과의 동행
규 모 7개소(140m2 내외/개소당)
지원금 7천만원(개소당)
상 금
금상: 7백만원(1팀)
은상: 5백만원(2팀)
동상: 3백만원(4팀)
초청정원
앉는 정원 _ 김영민ㆍ김영찬
작가정원 A
금상 섹션 가든 _ He YangㆍChen Hongliang
은상 회복의 시간 _ 이창엽ㆍ이진
동상 더 버터플라이 이펙트 _ Nicha Chongkriengkrai‧Sorat Sitthidumrong
작가정원 B
금상 기억과의 동행 _ 이지훈ㆍ문경록
은상 바이오로지컬 셀프 오거나이징 가든 _ Shen ShixianㆍYang Yiming
겸재선생님, 한강공원에서 뵈어요 _ 조동범ㆍ임승재
동상 호미 정원 _ 차용준
정원의 삶: 토룡은 큰 물에도 스러지지 않는다_ 김현ㆍ김은영
뚝둑, 걸어보길 _ 이호우ㆍ김태원
심심해지다 | 명상하다 | 고마워하다 _ Md Adshraful Az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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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앉는 정원
Sitting Garden
정원에 가는 이유
우리는 정원에 왜 가는가. 단지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인가. 정원은 단지 심미적 요소로만 채워지는가. 정원은 아름다운 것들의 향연인 공간을 넘어, 생각보다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은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원이 보는 것 이상의 공간이 되도록 정원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담아내고자 한다. 인간과 자연이 모두 앉아 쉬는 정원 쉼의 정원, 즉 앉는 정원을 제시한다. 뚝섬한강공원 잔디밭에서 이루어지던 쉼의 행태 중 앉기에 집중했다. 더불어 인간의 쉼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쉼으로 정원을 채우고자 했다. 뚝섬한강공원의 잔디밭은 본래 일상을 벗어난 쉼, 돗자리 위 펼쳐진 쉼, 한강을 바라보는 쉼, 산책 속의 쉼, 무의식적 멈춤 속의 쉼 등 다양한 쉼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가장 기본적인 쉼의 행위는 눕기, 앉기, 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앉기는 걸터앉기, 다리 꼬고 앉기, 기대어 앉기, 나란히 앉기 등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앉기의 방식은 외부 요인에 더욱 다채롭게 변주되고, 변수가 무한한 정원에서 더욱 넓고 진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정원의 구조
정원에 제대로 앉아서 쉼을 즐기려면 공공장소이지만 어느 정도 사적인 공간으로 느껴져야 한다. 공공 공간에서 사적 영역을 형성하려면 가로, 세로 5m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정사각형 아홉 개를 3열, 3행으로 배열해 하나의 정방형 공간의 정원을 만들었다.
아홉 칸은 다섯 개의 앉는 칸과 비워진 네 개 칸으로 구성된다. 한 칸을 앉는 칸으로 사용하면 사이 한 칸은 비우는 방식이다. 그래야 다양한 쉼이 머무를 수 있다. 비워진 칸은 나와 타인의 거리이며, 작은 풍경을 위한 간격이기도 하다. 앉는 다섯 칸은 일종의 방으로 각기 다른 다섯 가지 방식의 앉기를 제안한다. 그 위치와 비워진 칸과의 작용에 따라 경험하는 풍경이 달라진다.
인간의 쉼
앉기의 방식은 크게 앉기, 같이 앉기, 따로 같이 앉기로 나뉜다. 세 가지 앉기 방식 내에서 다양한 변주를 통해 다섯 가지 방을 구성했다.
첫 번째 방은 따로 아늑하게 앉는 방이다. 가장 번잡한 위치에 놓은 이 방은 역설적이게도 벽처럼 높은 등받이와 칸막이를 두어 가장 사적이고 아늑하게 꾸렸다. 두 번째 방은 같이 자유롭게 앉는 방이다. 가운데 평상을 놓아 개인 또는 다수가 함께 앉을 수 있게 했다. 세 번째 방은 따로 같이 앉는 방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의자를 두었다. 정원의 중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맞이하는 거실처럼 가장 규정되지 않은 자유롭게 열린 쉼의 공간이다. 네 번째 방은 따로 바라보며 앉는방이다. 각기 다른 높이의 스탠드는 개인의 영역을 형성하고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한강을 바라보게 한다. 다섯 번째 방은 같이 나란히 앉는 방이다. 상대적으로 외진 위치의 방으로 뚝섬한강공원 본래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행태에 가장 가까운 활동들이 일어난다. 깊은 폭의 벤치는 사람들이 한참 앉아 한강을 바라보게 만든다.
아홉 칸의 정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붙이면 선형공원, 근린공원, 도시 경관 등 수많은 형태로 변주할 수 있다. 이로써 앉는 정원은 공원, 도시, 경관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소 외부 공간의 단위가 된다.
자연의 쉼
우리는 정원의 꽃과 풀을 보고 예쁘다고 느낀다. 아름답고 화려한 정원일수록 일반적으로 관리가 많이 필요하다. 이는 즉 그냥 두면 자연이 우리가 아는 정원처럼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꽃과 풀이 자란 자연의 모양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특별한 수종보다 개망초, 마타리, 엉겅퀴, 개미자리처럼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을 사용했다. 인간에 의해 수없이 변형되어 온 자연과 식물이 회복하며 자연 또한 쉼을 가지는 정원이 되기를 바랐다.
도시의 폐기물을 정원의 자원으로 활용해 여전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목재 잔재물로 만든 바이오차와 폐콘크리트, 폐석재를 활용했다. 도시의 폐기물은 정원에서 분류되고 정렬되어 자연에게 쉼을 제공하게 된다. 폐기된 것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되찾은 새로운 자연의 조각이 된 폐기물들로 낭만적인 암석정원을 연출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함으로써 자연의 흙과 돌, 꽃과 풀은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 쉼을 가지고 인간에게 쉼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자연의 쉼으로 채워진 네 개의 칸은 그 위치와 인간의 쉼의 모습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로써 아홉 칸이 비로소 채워지며 서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설계 김영민, 김영찬
조성 바이런(김인호, 문선아, 강아람)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후원 예건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김영찬은 극동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CA조경기술사사무소와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설계에 대한 업무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는 바이런에서 소장으로 자리매김하며 새로운 공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 김영민, 김영찬 / 2024년06월 /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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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섹션 가든
Section Garden
동식물과 인간의 공생
동식물과 인간이 함께하는 정원을 꿈꾸며, 자연의 횡단면을 통해 미시 세계를 볼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지그재그 경사로를 따라 놓은 다섯 개의 서식지 섬은 한국의 식생 커뮤니티를 보여준다. 서식지 섬에 설치된 유리벽은 토양의 단면, 그 속에 담긴 식물의 뿌리와 곤충의 삶을 드러낸다.
한국의 경관 특성을 담다
완만하게 경사진 대상지의 고저차를 증폭시켜 더욱 가파른 지형과 흥미로운 옹벽을 만들었다. 공간의 큰 골격은 한반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정원에는 코르텐스틸로 만든 다섯 개의 서식지 섬을 배치했다. 각 섬에 양치식물, 철쭉, 돼지풀, 구절초 등의 초본 식물,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고 고목 등을 배치함으로써 산골짜기, 꽃이 핀 초원, 숲이 우거진 황무지 같은 한국의 대표적 경관을 담았다.
자연을 학습하는 정원
정원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코르텐스틸 옹벽사이에 유리벽을 끼워 넣어 토양의 단면, 식물 뿌리의 성장, 토양 속 곤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딱정벌레 유충의 서식지를 만들기 위해 버려진 고목들을 모았는데, 유리벽을 통해 죽은 나무가 토양으로 변하는 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작은 포유류와 땅속에 사는 동물도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코뿔소 딱정벌레, 사슴벌레, 꽃벌레 등과 같은 많은 종류의 딱정벌레가 있는데, 성충들이 참나무 수액을 먹으면서 반半인공적인 환경에서 전체 생명주기를 완성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관찰 거리가 되어준다. 또한 식물 뿌리의 성장도 볼 수 있다.
벽 사이를 통과하는 지하 터널에 들어가면 유리돔으로 고개를 내밀어 정원을 색다른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땅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있고, 땅 속으로 뻗쳐 성장하는 뿌리의 역동적인 모습 역시 궁금한 풍경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못생긴 모습까지 보아야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유리 단면은 실제 자연의 회복력을 보여주고, 나비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의 존재도 드러냄으로써 ‘못생긴 시’라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으로 방문자를 안내한다.
이 정원은 사람만이 아닌 나비, 딱정벌레, 새와 같은 토종 동물들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며 이를 통해 성장한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정원은 물론,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지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설계 He Yang, Chen Hongliang
기술 자문 Xia Yiping, Wu Xiaocheng
시공 마이조경
목재 딱정벌레 설치 Zhang Tong
허양(He Yang)은 중국예술아카데미 조경 및 건축 디자인 연구소에서 조경 프로젝트 매니저 겸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조경과 건축을 모두 공부했으며 주로 파라메트릭 디자인, 곤충학, 재야생화 조경을 연구한다. 도시 개발과 서식지 보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천훙량(Chen Hongliang)은 중국예술아카데미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자연을 주창하고 조경을 사랑하며 조경설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 He Yang, Chen Hongliang / 2024년06월 /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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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회복의 시간
Immersive Resilience
바쁜 도시 생활 속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평온한 삶은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동경의 대상이다. 도시 속 정원은 현대인이 자연에 둘러싸여 잠시나마 조용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뚝섬한강공원에 주변의 인공물과 번잡함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연에 360도로 둘러싸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라운지형 공간 구조와 식재 스케일의 섬세한 관계 맺음은 시각적, 촉각적, 감성적으로 순수 자연과 온전히 연결되는 장소를 형성한다. 다년생 초화류의 생애주기를 존중해 계절의 누적에 따라 더 깊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정원을 구상했다. 이를 통해 정원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들어가 느끼는 ‘곳’으로 바꾸고, 도시 안에서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맺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형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하고자 했다.
오롯한 자연 속의 정원
대상지의 나무와 사람들의 흐름을 고려해 꽃잎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구상했다. 이 형태에 대응하며 바닥으로부터 1m가량 선큰된 계단식 공간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패턴을 신비로운 3차원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정원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주변을 두른 도시적 요소들이 사라지고 정원의 중심에 도착하면 오롯이 자연에 둘러싸이게 된다. 선큰 공간은 평소와 다른 눈높이로 도시 환경을 바라보게 한다. 자리에 앉았을 때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연결의 상대가 된다. 둘러싸인 정원과 그 안의 공간은 인공으로부터 탈출과 쉼의 매개체가 된다. 정원 안에서 자연과 물리적, 심리적으로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접촉을 통해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명상적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창엽, 이진
협업 스튜디오 리빌드,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 시스템시티 연구실
시공 스튜디오 이레
후원 한양대학교 Linc3.0 사업단, 이새, 네테조명디자인연구소, 영공조명, 샤뜨
자문 정원다움, 지에스아이
이창엽은 한양대학교에서 실내디자인을,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와 프론트에서 실험적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현재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조교수로 스튜디오 ReBD(리빌드)와 협업하며 교육 및 연구와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영국 일급 건축사와 왕립 칙허 건축사 자격을 갖고 있다.
이진은 스튜디오 ReBD(리빌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정원가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런던대학교에서 공공 정책을 전공했으며, 영국 RHS의 정원 관리 자격 레벨 2 과정을 밟고 있다. 2022년부터 천지식물원 소속으로 피트 아우돌프의 한국 프로젝트 전반에 함께 참여했고, 정원다움에서 도심 속 정원 만들기를 통한 공공 기여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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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더 버터플라이 이펙트
The Butterfly Effect
나비효과 정원의 땅
작은 공간이지만 나비효과처럼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는 정원을 구현했다. 자연재해와 같은 국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가능성 중심의 적응형 패러다임을 담고, 서울의 다른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후 변화 완화 해결책을 제공하고자 했다.
세 가지 전략
첫째, 정원 내 쉼터를 조성해 사람들의 삶을 질을 높이는 가시적 증거를 만들었다. 이 쉼터는 기후 위기를 직면한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나비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철재 프레임으로 만든 정원 피난처는 그늘막이자 상징적인 조형물이 된다.
둘째, 빗물 정원을 만들어 빗물 유출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집중 호우에 취약한 서울의 특성을 고려해 도시가 침수되기 전 물을 흡수하는 생태 수로를 조성했다. 경사면 방향에 수직으로 배치한 생태 수로는 빗물 유출을 방해하고 그 흐름을 바꾸어 물이 정원 내에서 점진적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홍수 위험을 낮출 뿐 아니라 대지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물을 머금게 만든다.
셋째, 생태 수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조성했다. 산책로를 구성하는 목재 데크는 기분 좋은 보행감을 선사할 뿐 아니라 탄소 저장 재료이기도 해 정원의 회복력에 기여한다. 쉼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거닐며 정원의 복잡한 아름다움에 몰입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4호(2024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Nicha Chongkriengkrai, Sorat Sitthidumrong
시공 제이제이가든스튜디오
니차 총끄리엥끄라이(Nicha Chongkriengkrai)와 소랏 싯티둠롱(Sorat Sitthidumrong)은 쭐랄롱꼰대학교에서 조경학을 공부했다. 니차는 독일 베를린대학교에서 도시 관리 석사 학위를 받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지속가능한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쳤다. 두 사람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의 거주지와 자연환경 사이의 균형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경이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을 만드는 토대이며, 자연 생태계 개선이 지역 사회와 취약 계층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포용적 도시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열쇠라 생각한다. 함께 와디 스튜디오(Wadi Studio)를 이끌며, 방콕의 여러 환경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Nicha Chongkriengkrai, Sorat Sitthidumrong / 2024년06월 /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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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기억과의 동행
Walking with Memories
동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함께할 길과 동반자. 연속된 점이 모여 선을 만들고 길이 된다. 사람의 인생도 수많은 찰나의 점들이 모여 만든 선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떤 기억은 선명하고 뚜렷한 반면 어떤 기억은 흐릿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래된 기억에 빈 구멍이 생기고, 옛 기억이 다른 기억과 뒤섞여 왜곡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의 개념을 정원으로 표현했다.
기억의 선
기억의 밀도에 따라 기억의 선명도가 달라진다. 긴 원통을 반으로 나누어 연결한 직선으로 기억을 표현했다. 스테인리스 관으로 만든 각기 다른 반원통의 지름과 식재의 양을 통해 기억의 밀도를 나타냈다.
기억의 섬
기억의 프레임은 서로 순서가 바뀌거나 생겨나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기억의 번짐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번짐은 기억의 선을 잘라내고 경계를 허물게 되는데, 허물어진 경계를 면으로 표현해 녹지 공간을 확보했다. 녹지 공간에는 섬기린초, 백리향 등 화려한 색상의 초화류와 꼬랑사초, 수크령 등 그라스류를 식재했다. 미러 마감한 스테인리스 관과 여러 색의 식물,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두 재료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게 연출했다. 선적인 조형물 사이에 식물을 심었는데, 강한 구조물과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것이다. 또한 기존 담장이 자아내는 인공적인 느낌을 완화하기 위해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부분에 틈을 만들고, 그 틈에 작은 크기의 다육이와 세덤을 식재하고 솔방울로 덮어 담장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꾀했다.
기억의 길
주변 산책로와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진입로를 만들었다. 정원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순환형 동선을 구축했다. 이는 정원을 돌아보는 동선인 동시에 쉼터로 기능한다.
그림자 쉼터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정원 양측에 퍼걸러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기억의 선들이 뚜렷해 보이기도 하고 흐릿하게 보이기도 한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스테인리스판에 반사되는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설계 이지훈, 문경록
시공 시트러스 가드닝, 이인조경, 엘엔씨플랜
이지훈은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2010년 지아이디자인을 설립했다. 서울에서 조경설계를 하다가 대구로 내려와 주택 건축 시공과 조경설계를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모든 공간에 관심이 많으며 관여하기를 좋아한다.
문경록은 영남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대구에서 25년 넘게 조경설계를 하고 있다. 넓고 다양한 조경의 영역을 경험하고 공부하고 있으며 정원이 가지는 매력에 빠져 열심히 탐구하고 있다. 현재는 에스엠에이의 대표 이사다.
- 이지훈, 문경록 / 2024년06월 /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