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문장은 꺼내 쓰는 거야
빈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가 날 놀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오늘도 할 말 없지? 쥐어짜야 하지? 곧 마감인데! 커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박자에 맞추어 내가 만든 걱정거리를 노랫말처럼 붙이다 보면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 기자라면서 고작 잡지 한 면 채우는 일을 이렇게 괴로워하다니. 게다가 지금은 2020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읽고 보는 데 게으르고 쓰는 데 더더욱 성실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면 긴 한숨을 뱉지 않을 수가 없다.
글이 술술 쓰이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렷한 날에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널따란 공백이 순식간에 가득 찬다. 머릿속을 나도는 생각들을 마구 꺼내서 순서를 맞추어 정렬하고 살을 덧붙이는 것만으로 그럴듯한 얼개가 만들어진다. 가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량 바깥으로 삐져나와 가다듬어야 할 때는 괜히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과일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던 음료가 농도 짙은 생과일주스로 바뀌는 순간 같아서 늘 설렌다.
그렇게 수월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날에는 문장이 만들어진다기보다 이미 완성되어 있던 것처럼 툭 튀어나온다. 특히 오랜 시간 품었던 생각을 풀어놓을 때는 더. 반년 전 즈음, 코다CODA가 잘안 풀려 친구에게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으니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연하지, 원래 문장은 꺼내 쓰는 거야.” 마음속에 담아둔 의문과 생각들을 길을 걷고,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며 천천히 문장으로 완성시켜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라는 말이었다. 학부생 시절 교수님이 친구에게 해주었다는 그 말이 내 안으로 날아와 콱 꽂혔다.
긴 시간 공들여 만든 문장이 더 설득력 있고 아름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 문제지만 말이다. 이따금 퇴근길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다 저 문장이 떠오르면 괜히 마음이 분주해진다. 뭐라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허겁지겁 최근에 본 책이나 영화들을 뒤적여보지만 재밌었다, 지루했다 같은 단편적인 감상들만나열될 뿐이다. 수필이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듯이’(피천득, ‘인연’) 써지 듯, 무언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능력 또한 그러하겠지 여기니 씁쓸해졌다.
얼마 전 최영준과의 인터뷰에서 저 말과 꼭 켤레를 이루는 것 같은 답변을 발견했다. “생각을 8시간 정도 하고 1시간 이내에 그리려고 해요. 오늘 저녁에 설계안을 그려야 한다면, 전날 아침부터 계속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설계안을 발표하는 과정까지 시뮬레이션해요. 발표를 논리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면 그림은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본문 60쪽) 그 말들을 꼭꼭 씹으며 새해에는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겠다고 다짐했다. 메모해두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는 문장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의지가 불타오른다. 여유가 없다고 둘러대기에 나는 이미 시간은 만들면 생긴다는 진실을 알고 있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문장 하나하나를 조금 더 오래 마음속에 붙잡아두고자 기획한 꼭지다. 우리는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넘쳐나는 글 속에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달마다 묶어내는 이 잡지의 지면은 물론, 책뿐 아니라 그 책을 소개하는 문구,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광고의 카피, 영화나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대사, 심지어는 엄마가 툭 내뱉은 잔소리에까지 반짝이는 것들이 숨어있다. 그런데 쉽게 발견된 문장들은 그만큼 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너무 사소해서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문장들을 매개로 조경의 이야기를 또 조 경 변두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문장들이 조경을 일상과 동떨어진 무언가로 느끼는 이들에게 조경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편집부의 소소한 나날도 계속 들려드릴 계획이다.